여행 프롤로그 7월 15일(목) 비가오는 오후 2시 40분경.. 숨가쁘게 아이들과 함께한 1학기의 모든 수업을 마쳤다. 작년까지는 대학생이었지만 지금은 엄연한 직장인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직장인이라는 위치는 시간을 내기가 힘든 위치이다. 그나마 교사이기에 방학이라는 짧은 시간이나마 나에게 주어지는 특권이 있기에 큰 불만은 없었다. 모든 짐을 정리를 하고 인천의 친구집으로 갔다. 오랫만에 만나는 친구와 술한잔을 하고 내일의 여행에 대해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내일 당장 떠나기는 하지만, 여행을 간다는게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고 막막하기만 했다. 이번 여행의 목표는 바로 하드코어 여행이다. 3번의 티벳여행을 비롯한 많은 여행은 나에게 오지여행전문가라는 딱지를 붙게 했고 난 더 많은 도전을 원했다. 오사마빈 라덴, 알카에다, 테러, 무자헤딘.. 이 모든 단어가 속하는 중심지 아프가니스탄을 여행하고 타지키스탄을 통해 중국으로 빠져나오는 여정이다. 말이 쉽기는 하지만 위의 여행지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시피하고 무엇보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그야말로 목숨을 건 여행이다. 여행을 떠나기 얼마전 이라크에서 김선일씨가 피살된 뉴스를 접했다. 그렇지만 난 별로 망설이지 않고 여행을 속행하기로 했다. 두려움은 보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나의 마음을 움직여 주었기 때문이다... 자.. 또 시작이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 |
파키스탄 여행기 1 (새로운 출발 04.7.16) 7월 16일(금) 새벽 6시반에 친구집에서 일어나서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아프가니스탄을 가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을 가기 위해서는 파키스탄을 거쳐야 하기에 이미 3달전부터 파키스탄 라호르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파키스탄이라.. 작년 8월말.. 베트남, 라오스, 중국, 티벳, 서부티벳을 3개월정도 여행을 하고 파키스탄에 도착했을때에는 거의 기진맥진한 상태였다. 파키스탄의 무더위를 비롯해서 전혀 맞지 않은 식사는 나에게 피료를 더 안겨 주었고, 나에게 파키스탄은 여행하기 보다는 최대한 한국으로 빨리 돌아가기 위해 아둥바둥 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말을 왜 하느냐.. 작년 여행의 종착점이 바로 이번 여행의 시작점인 라호르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시간과 기운이 더 있었더라면 평소에 가보고 싶었던 아프가니스탄을 갔을 것이다. '언젠간 다시 와야지..'라는 여운과 함께 방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것이다. 그 후 11개월뒤... 난 다시 라호르로 돌아간다. 작년의 못다한 여행을 이어가기 위해서이다. 라호르로 가는 비행기표는 타이항공 편도로 55만원을 지불해서 1달전에 이미 발권을 해놨다. 먼저 인천에서 방콕까지 5시간 반정도를 날아간후 방콕 공항에서 5시간을 대기하고 다시 라호르를 향해 4시간 40분의 비행기를 타야하는 고된 여정이다. 인천에서 비행기는 이륙을 하고.. 운 좋게도 옆자리에 앉은 한국분이 태국어로 된 책을 읽을 정도로 태국을 잘 아시는 분이라서 태국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방콕에 도착하고 5시간을 기다리는 지루한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아까 옆자리에 앉은 그분이 비싼 공항 밥을 사주셨다. (이거 처음부터 운이 좋은데..) 그분과 태국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외대에 태국어과가 생긴지 30년이 넘었고 많은 교민들이 태국에 살고 있지만 정작 태국의 글을 읽고 쓸줄 아는 사람은 극소수라고 한다. 많은 젊은이들이 영어, 일어, 프랑스어를 공부하지만 10년을 내다보면 남들이 하는 그런 언어보다는 미얀마, 태국, 라오스어 같이 남들이 개척하지 않은 그런 언어를 배우는게 더 장래성이 있다고 하셨다. 선진국들은 이미 발전을 해서 더 크게 발전할 여력이 없지만 개발 도상국들은 발전할 여력이 크기 때문이다. 중국과 같은 경우는 너무 많은 사람이 중국어를 배우지만 나머지 개발도상국에 대해서는 우리가 무관심한 편인건 사실이다. 또 그분한테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는 지금 태국에서는 한국식 고기부폐가 유행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일했던 한 태국인이 태국에 한국과 같은 고기부폐집을 차렸는데 그게 태국사회에 대히트를 쳤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류열풍의 모습이기도 하다. 방콕 공항에서 지루한 5시간의 기다림을 끝내고 라호르행 비행기에 올랐다. 인천에서 출발할때와는 달리 다행히 창문좌석이다. 4시간이 지나고 비행기가 라호르에 접근하는 파키스탄 시각 11시경(우리나라보다 4시간이 느리다.) 비행기 차창 밖으로 수 많은 불빛들이 보였다.. 아.. 바로 라호르구나.. 작년에 너무도 지친 나머지 라호르에서 빠져 나올때는 다시는 안 올줄 알았는데 다시 오게 되다니.. 창턱에 기대어 작년을 회상해보았다. 라호르 공항에 도착하고 입국심사를 받을때 아프가니스탄에서 2년째 활동하는 한국인 NGO분에게 중요한 정보를 얻었다. 내 계획은 페샤워르에서 아프간 수도인 카불로 가는 육로를 이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아프가니스탄은 정치적 불안과 탈레반 잔당의 대통령선거 방해로 대도시를 제외한 전 지역이 혼란에 쌓여 있다고 한다. 때문에 육로는 절대로 가지 말라고 하며 정 가고 싶으면 이슬라마바드에서 항공을 이용하라고 하신다.. 휴.. 언제나 그렇듯 이번 여행도 쉬운 여행이 되지 않겠구나... 고심끝에 안전한 여행을 위해서 이슬라마바드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라호르공항을 빠져 나오자 여행동아리 후배 재용이가 마중나와 있었다. 재용이는 대학 여행동아리 후배로 지난달 19일 터키로 출발해서 실크로드를 횡단하고 있었다. 이렇게 이국에서 친한 후배를 만나다니 정말로 반가웠다. 재용이 역시 오랫만에 한국말을 써서 그런지 감격에 겨워하는 모습니다. 우리는 곧바로 라호르의 레갈 게스트 하우스로 향했다. 작년에 내가 묵었던 숙소이기도 하다. 게스트하우스로 가는 버스에서는 호기심 많고 친절한 파키스탄인들이 동양인인 우리에게 계속해서 말을 건다. 역시..^^ 다시 한번 작년생각이 났다. '휴.. 또 와버렸구나' 도착하고 나서 낯익은 환경에 무심코 중얼거렸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우리를 제외한 한국인은 한명도 없고 일본인들만 10명이 넘는다. 재용이와 그 동안 쌓인
이야기를 하며 밤을 지샜다. 여행지에서의 만남은 언제나 즐거운 것이다.^^ |
비행기에서 바라본 대만 도시 모습 |
5시간동안 지루하게 기다렸던 방콕 공항 |
파키스탄 여행기 2 (기억을 더듬으며, 라왈핀디 04.7.17) 7월 17일(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라왈핀디를 가기 위해 길을 나섰다. 작년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대우버스를 타고 라왈핀디에 갈려고 했지만 대우버스정류장을 찾는거 부터가 쉬운 과정이 아이었다. 무심코 탔던 릭샤(오토바이 택시)는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알고는 있었지만 운전중인 운전사에게 아무말도 할 수 없는 이 답답함.. 결국 우리는 라호르역에서 내렸고 물어물어 대우버스터미널까지 갈 수 있었다. 그러니 거긴 대우시내버스 터미널 이었다. 허탈감과 함께 그래도 우리나라 회사가 시내버스 업계에도 진출했다는 뿌듯함이 함께 몰려왔다. 라호르 대우버스 터미널에서 라왈핀디(375루피)행 표를 끊고 차시간을 기다렸다. 대기실은 매우 쾌적하고 에어컨이 소리를 내며 가동중이다. 파키스탄에서 대우버스는 번호표를 끊고 기다려야 할 만큼 인기가 많은데 그 이유는 좋은 시설과 서비스가 있기도 하지만 출발시각을 정확히 지키는데 그 이유가 있다. 출발시각을 지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당연한 것이지만 사람이 버스에 다 찬뒤에서 출발을 하는 이곳 사람들에게는 혁신적인 아이디어였고 그러한 아이디어가 이곳 중상류층 사람들에게 먹혀들어 대우버스가 큰 성공을 거두었다. 버스안에 안내양이 있고 기내식 비슷한 차내식을 주는 서비스.. 무엇보다 바깥 무더위와는 전혀 다른 세상인듯한 시원한 차내.. 이 모든것이 이곳 이국땅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뿌듯함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4~5시간을 달려서 라왈핀디에 도착지만 이내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해야 했다. 라왈핀디에서 배낭여행객들에게 유명한 숙소인 파퓰러인에 찾아갈 정보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작년에도 온 기억이 있으므로 1년전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가물가물했다. 일단 버스를 타고 샤다르바자르|(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지명)에 내려서 KFC를 찾았다. 기억이 날듯도 하지만 숙소를 찾기에는 라왈핀디는 너무 넓었다. 물어물어 KFC를 찾았다. 작년에 여행에 지치고 무더위에 지쳤을때 상류층의 문화를 보여주고 시원함을 제공해준 공간이었다. 우리나라에 비해 더 비싸기는 했지만 더 큰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다. KFC에서 기억나는것은 오직 하나.. 이슬라마바드 방향으로 쭉 걷는것.. 그렇게 30분을 걷다보니 낯익은 삼거리가 나왔다. '와~ 저기야..' 힘들지만 말없이 따라와준 재용이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다. 아무런 정보 없이 길을 찾는 선배의 모습을 재용이에게 보여줘서 뿌듯했다. 그런데 파퓰러인으로 가니 공사중이었다. 겨우 찾았는데 공사중이라니.. 공사중인 호텔앞을 자세히 보니 어설픈 한글로 파퓰러인이 옮겼다고 하면서 아까 삼거리와 반대 방향으로 100m를 더 가야 한다고 표시되어 있다.(실제로는 200미터 정도) 천신만고 끝에 새건물에 들어선 파퓰러인으로 들어갔고 친절하고 인상좋은 주인 아저씨가 우리를 맞아주셨다. 도미토리가 1인당 150루피(3000원)이다. 도미토리는 덥기는 하지만 5층 옥상에 있어 주변전망을 볼 수 있어서 괜찮았다. 여장을 풀고 재용이와 함께 곧바로 이슬라마바드로 향했다. 파키스탄에서는 유일하게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고 작년에 내 홈페이지에 글을 올리셔서 지친 나에게 한국 음식을 대접해 주셨던 서울식당 아줌마를 만나기 위해서이다. 이슬라마바드행 버스에 탄 시각이 6시 40분이다. 너무 늦는게 아닌가 걱정 되었지만 옆의 파키스탄 청년에게 이슬라마바드~라왈핀디 버스가 12시까지 이어진다는 말을 듣고 안심했다. 버스를 탔지만 정작 어떻게 찾아갈지 기억이 가물가물 했다. 오늘은 작년 기억력을 끌어올리느라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함께 버스를 탄 파키스탄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서울식당의 주소를 본 이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뱉어 냈고 이내 버스안은 우리의 행선지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토론장으로 변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중에 '지나 슈퍼마켓'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난 순간 'RIGHT!'라고 소리를 쳤다. 작년에 서울식당에 가기 위해 내렸던 곳이 바로 지나슈퍼마켓이었기 때문이다. 나와 재용이 그리고 버스에 같이 탔던 사람들 모두가 웃었다. 잠시 웃음 바다가 일었던 VARAN(라왈핀디 회사버스) 버스를 뒤로한채 지나 슈퍼로 가는 미니버스를 파키스탄 학생의 도움으로 탈 수 있었다. 지나 슈퍼에 도착하자 작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물어물어 서울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주인 아줌마.. 아니 이제부터 이모님이라 부르겠다. 이모님은 날 아아보시면서 반갑게 맞아주셨다. 1년만의 만남이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출발해서 1달째 여행중인 재용이는 서울식당에 오기전부터 김치찌게가 먹고싶다고 되 뇌였었다. 이제 재용이 소원이나 풀어 줘야지.. 김치찌게 대자 하나랑 맥주 2병을 시켰다. 술이 금지된 파키스탄에서 마시는 맥주맛은 정말 달았다. 식사를 하는 동안 이모님은 우리 테이블로 오셔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15년동안 교편을 잡으시다가 홀로 이슬람 지역인 파키스탄으로 오셔서 식당을 세운일은 여자 혼자 몸으로 쉬운일이 아니었으리라.. 말씀하시는 동안 우리네 어머님, 할머니 세대가 그러했던 한국 여인의 억척스러움이 느껴졌다. 이모님은 나와 재용이가 믿음직하게 보이셨나보다. 힘든일과 상처받았던 일들도 우리에게 풀어 놓으셨다. 식사가 끝날때쯤 라호르 공항에서 만났던 아프가니스탄 NGO를 만났다. 2년째 아프가니스탄에서 봉사활동을 하시는 이병희 간사님이다. 이간사님은 페샤워르~카불 육로는 현재 너무 위험하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오늘 조금만 일찍 왔으면 UN비행기를 타게 해줄수 있었다고 하면서 안타까워 하신다. 집에서 걱정할까봐 앞의 여행기에는 적지 않았지만 사실 아프간 상황이 악화된 것은 방콕에서 우연히 알 수 있었다. 방콕 공항에서 트랜짓을 하기 위해 내릴때 한 좌석에 꽃혀 있는 동아일보를 꺼내서 라호르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읽어보았다. 신문에는 현재 아프간은 대통령 선거때문에 혼란에 쌓여있고 탈레반과 알카에다가 선거 방해를 위해 조직적으로 테러 활동을 하고 있는 위험한 상황이라고 쓰여있다. 최근 들어 외국인 피살 사건이 잦아지고 있다는 글과 함께.. 동아일보기사와 이간사님의 현지 사정을 듣고 아프간 상황이 매우 악화 되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럴수록 왜 더 가고 싶은거지? 이간사님은 카불에 오면 연락 하라며 연락처를 주셨다. 밤10시.. 이모님은 다시 찾아와서 고맙다며 내손을 꼭 잡아주셨다. 언제 뵐지는 모르지만 꼭 다시 뵙겠다고 말씀드렸다. 다시 라왈핀디 파퓰러인으로 들어오니 한국인 여행자 2명이 있었다. 잠시 이야기를 하다가 게스트북을 펼쳐보니 작년 8월 내가 적었던 정보들이 보였다. 내가 적은 정보가 1년동안 많은이들에게 유용하게 쓰여졌을거라 생각하니 정말 뿌듯했다. 내가 적은 정보는 300루피 이상 드는 탁실라 투어를 60~70루피에 싸게 갈 수 있는 방법과 이슬라마바드에서 라호르~방콕행 비행기표를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적혀 있었다. 탁실라 정보는 내일 재용이가, 비행기표 정보는 내가 유용하게 쓸 것이다. 내가 적은 정보로 내가 유용하게 쓰다니.. 피곤한 몸을 달래려 잘려고 했지만 도미토리는 너무 더웠다. 결국 옥상에 매트리스를 깔아놓고 잤다. 입술이
매울 정도로 릭샤와 자동차들이 뿜어내는 매연으로 공기가 오염되었지만 그래도 더운것 보단 낫다. |
라호르의 배낭여행족 아지트인 레갈 게스트 하우스 골목에서.. |
모스크가 보이는 라호르 시내 |
락샤를 타고 대우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에.. 이리저리 번잡한 도시이다. |
라호르 대우버스터미널 상류층만이 이용할 수 있는 터미널로서 한국의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
고속도로 휴게소.. 우리나라와 비슷한 분위기이지만 파는 음식들은 그야 말로.. 윽... |
땡볕 더위에서 대우버스와 함께.. 밖과 달리 버스안은 에어컨이 빵빵한 천국이다. |
파키스탄 여행기 3 (아프간을 향한 시작.라왈핀디,페샤워르 04.7.18~19) 7월 18일(일) 더위와 모기때문에 고생을 하면서 겨우 잠을 청했었다. 따가운 햇살과 함께 눈을 뜨니 이미 길에는 릭샤와 차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아침부터 매연이 무척 심했다. 재용이와 난 노트북에 있는 '맹부삼천지교'라는 영화를 봤다. 잠시 고된 여행을 잊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듯 했다. 영화의 감동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재용이는 탁실라로, 난 이슬라마바드로 향했다. VARAN 1번 버스를 타고 블루에어리어에 내렸다. 카불로 향하는 비행기표를 예약하기 위해 작년에 이용했던 여행사를 찾았다. 그런데 모든 사무실이 닫혀 있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사무실 문을 연 여행사를 찾을 수 없었다. 1시간 반을 헤멘 끝에 문을 연 여행사를 찾을 수 있었는데 내일 카불(아프간수도)까지 가는 편도가 210달러(25만원)을 한다는 것이다. 140달러도 비싸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너무 비싸다. 발길을 돌려서 다시 파퓰러인으로 돌아오니 홀로 여행하는 한국인 여자 여행자 1명을 만날 수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누나와 오랜시간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 하다 보니 누나는 나와 같은 초등교사이다. 인천교대 90학번으로 여행과 하고싶은 일을 위해 과감히 사표를 내고 가끔 기간제 교사를 하면서 여행을 하는 멋쟁이 누나이다. 이야기 도중에 누나가 '혹시 박문수씨 아세요? 같은 교대 출신인데 지금쯤 여행하는것 같던데..' 박문수? 혹시 박찬수가 아니냐고 물어보니까 맞다고 한다. 이런.. 나잖아.. 내가 박찬수라고 하니까 믿기지 않은 표정으로 정말이냐고 반문한다. 누나는 아프가니스탄에 1달전에 갔다왔다. 내가 아프간으로 가는걸 말리기 위해서 처음에는 정보를 주지 않았지만 내 정체를 알고부터는 적극적으로 정보를 주셨다. '그래! 조금 위험하지만 못 가볼 곳은 아니구나..' 누나의 이야기를 듣고 육로로 카불로 가기로 결정했다. 이야기를 하던 도중 누나는 아프간 주요도시의 지도를 나에게 베껴 그리게 해주었다. 4시쯤에 누나와 같이 파키스탄 전통 의상을 사러 갔다. 아프간에 들어갈때 현지인처럼 보이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훗날 좋은 교육자료가 될듯 싶어서이다. 사람들과 차들로 북적한 바자르에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생기 넘치는 사람들의 표정.. 저마다 다른 목적으로 바자르에 왔겠지만 모두가 즐겁고 흥겨운 표정이다. 몇개의 가게를 돌아다니다 250루피(5000원)에 전통옷을 샀고 복대를 90루피에 살 수 있었다. 알뜰한 누나 덕분에 싸게 산 것이다. 다시 파퓰러인으로 들어오자 탁실라를 갔다온 재용이와 혼자서 실크로드를 여행하는 대학생과 만났다. 우리넷은 근처 가게에서 마기라면(파키스탄 라면)을 사서 한국식으로 끓여 먹었다. 라면을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새로온 대학생도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이거 완전히 유명인 됬네.. 잠깐 노트북을 점검 할때 한 일본인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 노트북을 쳐다 본다. 장기 여행자인듯한 일본인에게 얼마전 출시된 삼국지 10탄을 보여주니 흥미로와 한다. 너무나 좋아하길래 게임을 하도록 자리를 비켜주니 한 3시간을 플레이 한다. 나와 재용이 누나와 대학생.. 이렇게 4명은 밤늦도록 많은 이야기를 횄다. 평소에 한국에 있으면
만나기 힘든 이런 인연들도 여행을 자연스럽게 이어준다. 그래서 난 여행이라는 놈을 좋아한다.
7월 19일(월) 카불로 가기 위해서는 페샤워르로 가야한다. 육로로 카불을 가는 나에게는 당연히 지나쳐야 하지만 재용이는 치트랄로 가기 위해 페샤워르로 간다. 원래 재용이는 라왈핀디에서 길기크로 가야 하지만 아무래도 나때문에 페샤워르로 가는듯 했다.^^ 버스터미널에 가기 위해서 파퓰러인 주인이에게 물어보니 자신의 명함에 터미널 위치를 우르두어로 적어주는 친절을 베푼다. 작년에도 느낀거지만 정말로 친절한 아저씨다. 아저씨가 적어준 우루두 메모를 택시 기사에게 보여주니 OK.. 50루피에 터미널까지 갈 수 있었다. 페샤워르로 가는 버스는 1인당 55루피이다. 180킬로 밖에 안떨어졌다고 해도 너무 싸다. 하지만 대우버스랑 달리 매우 낡은 버스이고 자주 정차를 한다. 고생스럽기는 해도 파키스탄 서민들의 문화를 잠시 옅 볼 수 있었다. 버스가 정차 할때마다 간식, 과일등을 파는 잡상인들이 버스에 오르는데 이들에게 사탕주스나 주스를 사먹는 것도 솔솔한 재미가 있다. 오후 2시쯤 페샤워르에 도착하고 길을 물어물어 투어리스트인 호텔에 도착했다.(하루 150루피) 제일 먼저 할 일은 내일 아프간 국경으로 가는 택시를 예약하는 것이다. 여관주인은 2200루피(44000원)에 차를 구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건 택도 없는 소리.. 주인말을 무시한채 국경 통과 허가증을 발급 받으러 페샤워르 경찰서에 가려고 했지만 이미 문 닫았다고 한다. 카불 버스라는 회사에 갔지만 알아듣기 어려운 영어로 말하길래 일단 여관으로 돌아왔다. 하루종일 먹은게 없어 근처 슈퍼마켓에 갔다. 아프간에서 흘러들어오는 마약의 도시인 페샤워르는 은행이나 사무실 입구에는 무장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는데 게스트 하우스 근처에 있는 슈퍼는 주로 상류층이 이용하는 곳이라 그런지 무장경관이 지키고 있었다. 슈퍼마켓 안으로 들어가니 더운 바깥과 달리 별천지이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에 모처럼 입맛에 맞는 음식도 많았다. 여기에도 이런곳이 있구나. 기념으로 슈퍼마켓 내부를 사진으로 찍었다. 먹을 것을 사고 계산을 할려는 찰나.. 한 사나이가 내게 다가오더니 내 사진기를 뺏는 것이다. '자기를 찍었다고 생각하나?' 성급히 디카 화면을 보여주면서 당신에게는 관심이 없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 사나이는 앞으로 사진찍을때 조심하라고 하다. 나..참.. 미안하다는 말은 못하고 오히려 잔소리를 하다니.. 옆에서 지켜보던 재용이와 사나이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고 바로 옆에 경호원인듯한 또 한 사나아와 실랑이가 시작되었을 때.. 찰칵.. 경호원인듯한 사나이가 총을 꺼내더니 정전하고 재용이 배를 겨누는 것이다. 그와 우리의 거리는 2m이므로 우리가 달려들어도 충분히 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조금만 어긋나면 큰일 나는 것이다. 절대절명의 순간..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게 느껴졌지만 최대한 태연하고 침착한 표정을 지으면서 난 우리가 조심하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정중하게 말하니 처음 시비를 건 사나이가 총을 겨눈 이를 말린다. 조금이라도 돌발 상황이 일어나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다. 단 10초 정도의 상황이지만 그 어느때 보다 길게 느껴졌다. 사태는 일단락 됭고 우리는 나머지 쇼핑을 하고 여관으로 돌아왔다. 사실 처음에는 어리둥절 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아찔한 순간이다. 이렇게 또 하나의 위기를 넘겼다. 돌아와서 식사를 하고 재용이가 많이 놀랬을까봐 노트북에 있는 영화(목포는 항구다)를 보면서 마음을 추스렸다. 저녁때 다시 그 슈퍼에 먹을것을 사러 가니 친절한 무장 경관이 이미 소문을 들었는데 우리에게 아까 청년들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다. 그들은 빠탄 종족으로 약간 미쳐있는 상태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총기사고가 빈발하며 아까 우리가 무사한것도 운이 좋아서 그런거라고 한다. 무엇보다 아무대나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고 한다. 생각하면 할수록 다행이다. 슈퍼에서 먹을것과 반지의 제왕 3편 시디를 샀다. 여관에 돌아오니 여관 주인과 택시기사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2000루피에 국경까지 간다고 택시기사가 말했지만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여관에는 우리외에 프랑스인 여행자 한명이 더 있었는데 한쪽다리가 없이 여행하고 있다. 정말 대단한 의지이긴 하지만 저녁 식사를 못한듯 했다. 식사를 같이 하자니까 선뜻 응한다. 식사를 하고 아까 슈퍼에서 사온 '반지의 제왕 3'를 봤다. 영화의 끝 장면쯤되자 졸리기 시작했다. 여행을 하면서 가장 직접적이고 큰 위기를 넘긴 날이다. 아프간에서는 이런일이 없겠지? 매사 조심해야 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드디어 내일 아프간으로 들어간다.. 과연 어떤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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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왈핀디의 번잡한 모습.. 막지어진 도시티가 난다. |
반면에 바로옆의 이슬라마바드는 잘 정리된 도시 |
파퓰러인 게스트하우스 종업원과(새로 산 파키스탄 옷을 입고^^) |
버스안의 모습.. 겉 모양도 그렇지만 정말 휘양찬란하게 꾸며 놓는다. |
페샤워르.. 거의 모든 건물에 무장경비원이 있다. |
무장경관과 함께.. 파키스탄인들은 사진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항상 경직된 표정을 짓는다. |
파키스탄 할아버지와 함께 |
문제의 그 사진.. 이 사진을 찍다가 총맞을 뻔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