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여행기 4 (앙코르유적 (2) 05.1.12 )  

1월 12일(수)

 앙코르와트에서 일출을 보려고 오전 5시 20분에 일어났다. 사실 일어날 때 일출이고 뭐고 그냥 잠만 자고 싶었다.

 어제 일행과 밤늦도록 한잔하며 이야기를 하느라 늦게 잔 게 화근이다. 실제로 진옥이는 나오지 않았다.

 운전사 넷은 우리 일행을 태우고 앙코르와트로 향했다. 우리 일행이 잠을 깨라고 계속해서 영어로 말을 건다. 정말 고마운 가이드이다.

 일출은 앙코르와트에서 본다. 흔희들 앙코르 유적을 앙코르와트라고 하는데 그건 잘 못된 말이다. 앙코르와트는 앙코르 유적의 한 건물일 뿐이다. 단지 앙코르와트가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기 때문에 이곳 유적의 대명사로서 쓰이고 있을 뿐이다.

 앙코르와트에 들어서니 많은 관광객들이 일출을 보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해가 뜨는 지점이 이곳 건물과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다고 한다.

 아쉽게도 오늘따라 날씨가 흐려서 일출을 보지는 못했다. 단지 재미있는 사진을 몇장 찍어서 만족할 뿐이다.

 만족이고 뭐고 일단은 졸릴 뿐이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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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시 반이 되어 우리 일행은 다시 택시 앞에서 모였다.

 오늘은 어제처럼 빡빡하게 돌아다니지 않고 오전에는 앙코르와트를 돌고 오후에는 아름답기로 유명한 반티아이 쓰레이만 돌기로 했다.

 앙코르와트 유적지로 들어가는 입구는 역시 표 검사를 한다. 이곳저곳에서 검사하는 게 마음에 안 들기는 하지만 이곳 입장료 수입이 캄보디아 정부를 먹여 살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이해가가기는 한다.

 앙코르와트 입구 앞으로 250미터에 이르는 다리가 있다. 이 다리를 건너기 전에는 인간의 세계이고 다리를 건너면 신의 세계로 들어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럼 내가 지금 신의 세계에 들어 온 건가?

 앙코르와트는 동남아시아 최대의 유적으로 수리야바르만 2세가 1113년 왕위에 즉위하자마자 자신의 분묘로서 36년이 걸려 앙코르와트를 건축했다고 한다.

 이 유적은 현대 건축 기술로도 200년이 걸린다고 하다. 그런데 중장비도 없던 그 시절에 어떻게 36년 만에 만들었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앙코르와트에 들어서자마자 한국인 관광객들이 가이드를 대동하고 관람하는 모습이 보였다. 가이드는 앙코르와트를 연구하는 교수님이시다. 아싸 이런 행운이..

 우리 일행도 묻어가기로 했다. 덕분에 1층 벽화들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1층 회랑은 벽면 전체가 부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곳에서 담고 있는 부조의 내용은 성경책 10권의 내용을 담고 있을 만큼 어마어마한 내용이라고 한다.

 첫 번째 펼쳐진 내용은 흰두교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마하바라타 전투이다. 전투 내용은 판다바 5형제와 키우라바 100형제의 전투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부조를 보며 교수님의 설명을 들으니 마하바라타 전투 과정을 잘 알 수 있었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판다바가 적의 편에 선 자신의 할아버지이자 스승을 죽이는 것을 망설이고 있을 때, 판다바 형제는 4번 연속 전투에서 패배를 했다.

 결국 계시를 받은 판다바는 자신의 할아버지를 활로 쏴 죽이고 남은 세력들을 규합해서 키우라바 100형제를 무찌르게 된다.

 훗날 이 전투는 인도의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데 정의를 위해 싸우기 위해서는 어떠한 희생을 들여서라도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적으면서도 머리가 복잡하네.. 역시 흰두교란..)

 마하바라타 전투가 묘사된 부조를 지나 왼쪽으로 돌면 이 사원을 지은 수리야바르만 2세의 군대 행렬장면이 나온다.

 왕관을 쓴 수리야바르만 2세를 필두로 해서 군대가 행진하는 모습이다. 수리야바르만은 15개의 양산을 썼는데 바로 왕을 표시한다고 한다. 중간에 보면 수리야바르만 2세보다 2개 많은 우산을 쓴 왕이 보이는데 덕분에 적군이 수리야바르만 2세인 줄 알고 죽였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끝부분에 보면 행군 도중 딴 짓을 하는 병사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당시에도 고문관 병사가 있다는 뜻이라 특이해 보였다.

 다음 부조는 천국도와 지옥도이다. 중간에 소를 탄 염라대왕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실제로 인도에서 소를 신성시 하는 이유가 염라대왕이 소를 탔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염라대왕(야마)과 그를 도와주는 다르마의 모습도 재미있지만 죄를 짓고 애원하는 이들과 심지어는 돈으로서 환심을 사려는 인간의 표정이 재미있다.

 부조에는 끔찍한 지옥의 형벌이 묘사되어 있다.

 거짓말 한 숫자만큼 혀를 잡아당기는 모습은 어렸을 때 어른들에게 들었던 내용과 같다.(정말 신기하다.)

 부조의 오른편에는 남자의 몸에 못을 박는 장면이 있다. 이것은 간통을 한 남자들에게 행해지는 형벌인데, 여자의 마음에 못을 박게 해서 그러한 형벌을 내렸다고 한다.

 반대로 여자의 경우에는 남자의 마음에 불을 지르게 했다고 해서 불덩이에 집어 넣는 장면이 보인다. 이렇게 부조를 보며 설명을 들으니 정말 재미있다.

 천국도 지옥도를 지나 커브를 돌면 흰두교에서 유명한 신화인 유해교반(젖의 바다 휘젖기)의 내용이 있다.

 유해교반은 선신과 악신의 사이가 좋지 않자 비슈뉴 신이 젖의 바다에다 1000년 동안 뱀을 돌려 불로불사의 명약을 얻어 나누어 마시고 사이좋게 지내라는 말을 한다.

 88명의 데사(선신)들은 원추형 모자를 뱀의 머리를 92명의 투구를 쓴 아수라(악신)은 뱀의 꼬리를 잡고 우주의 중심은 메루산을 중심으로 뱀을 돌린다.

 그런데 돌리는 과정에서 메루산이 물 안으로 가라앉게 되자 비슈뉴가 커다란 거북이로 화신 하며 메루산을 바친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서 말하는 화신은 불의 신이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악의 화신이라고 하듯이 무엇을 대신 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화신은 흰두어로 바로 아바타라고 한다. 우리가 흔희 인터넷에서 자신을 대신해서 꾸미는 아바타가 여기서 나온 말이다.

 교수님은 우리에게 천장을 보라고 하셨다. 이곳 천장은 완전한 아치가 아닌 세미 아치형이다. 이 기술은 석굴암보다 훨씬 떨어지는 기술이라고 한다. 1100년대의 앙코르와트를 지은 크메르인의 건축 기술보다 신라시대의 우리 조상들의 기술이 훨씬 앞선 기술이라고 한다.

 흥미 있게 부조를 보다 보니 입구와 정 반대편에 서게 되었다.

 교수님은 나머지 부조는 앙코르 제국이 멸망한 후 16~17세기에 만들어진 부조라며 잠시 1층 회랑을 빠져나와 중앙사원으로 우리를 안내 했다.

 앙코르 제국의 상징은 바로 뱀이다. 때문에 크메르인들은 별자리 중에서 용의 자리를 신봉했는데 곳곳에 흩어져 있는 앙코르 유적이 정확하게 용의 자리와 일치한다고 한다.

 몇백년을 두고 꾸준히 지어진 앙코르 유적이 처음부터 계획되어진 그야말로 놀라운 스케일이라고 밖에 말을 못하겠다.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라가니 또 하나의 층이 보였다.

 당시 앙코르와트 인구인 100만의 백성 중에서 3층으로 올라 갈 수 있는 사람은 5명밖에 안 되었다고 한다.

 3층은 이곳의 하이라이트인 신의 영역을 의미한다. 곳곳에 성산 즉 수미산을 의미하는 탑들이 세워져 있다. 수미산? 바로 내가 2003년 여름에 여행했던 카일라스산이잖아? 다시 한번 보니 카일라스산과 모양이 매우 흡사했다.

 매우 가파른 계단으로 이루어져 올라가는 건 쉬우나 내려올 때는 그야말로 고역이라고 하신다.

 5명만이 올라 갈 수 있었던 그 영역.. 그 말에 솔깃해서 얼른 올라갔다. 올라가니 수려한 정글이 펼쳐진 경관이 한눈에 보였다.

 4구역으로 나누어져 욕조가 있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돌의 조합만으로 물이 새지 않게 만들었는지 신기하다. 또한 제일 높은 탑의 무게는 18톤인데 어떻게 큰 돌을 여기까지 올렸는지 궁굼하다. 정말로 앙코르와트는 신비와 의문투성이 유적이다.

 3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는 건 한쪽 계단이 철봉으로 연결되어 있어 떨어지지 않고 내려올 수 있었다.

 나와 현주와 진옥이는 가이드북을 보면서 아까 못 본 나머지 부조를 나름대로 분석하고 해석을 하며 나왔다. 앙코르와트 건물뿐만 아니라 앙코르왕국의 역사, 흰두교 이야기를 알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앙코르와트 사원을 나오니 거의 점심이 되어 있었다.

 어제 갔던 일식집으로 렛즈고~

 점심을 먹고 다시 모인 시각은 오후 3시이다. 마지막으로 앙코르 유적 중 가장 아름다운 사원인 반디아이 쓰레이로 향했다.

 그런데 친절한 운전자 넷은 우리를 왓트마이 사원으로 안내해 주었다. 바로 크메르루즈군 세력이 이곳을 형무소로 삼고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 현장이다.

 역사의 희생자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드렸다.

 지금은 희생자들의 유골이 들어있는 추모탑이 있고, 사원 안에는 아이들이 캄보디아 전통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이 사원에서는 한국어를 비롯해 영어, 일본어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 주로 학교를 가지 못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왓트마이 사원을 떠나 시엔리업에서 25킬로 떨어진 반디아이 쓰레이로 갔다.

 반디아이 쓰레이는 ‘여자의 성’이라는 뜻이다. 다른 사원과 달리 색깔이 화사하고 부조도 정교하다. 이곳은 앙코르와트보다 200년 앞서 지은 흰두교 사원이다. 특히 여자로 표현된 부조가 대부분이다.

 이번 투어의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반티아이 쌈레라는 사원이다. 이 사원은 앙코르 유적 중에서 가장 보존이 잘 된 사원이다. 고립된 지역이기 때문에 20년간의 내전에도 무사할 수 있었다.

 이곳에 이르자 관람객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외진 곳이라서 그런가? 사원 안을 돌아다니는 아이들과 사진을 찍었다.

 돌아올 때가 되자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난 운전사 넷과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 특히 현재 캄보디아 교육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현재 캄보디아의 모든 어린이들은 교육을 받고 있지만 아무래도 외국의 원조가 없이는 역부족인가 보다.

 캄보디아 역사와 현실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이 저녁을 먹은 곳은 시엔리업의 중국 음식점이다. 이번에는 운전사 넷까지 같이 식사를 했다. 그동안 인상 한번 찡그리지 않고 친절하고 자상한 넷이 너무 고마워서 이다.

 식사를 하면서 우린 2일 동안의 택시 이용비 45달러와 팁 10달러를 줬다. 10달러는 넷에게는 정말로 큰 돈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많은 여행을 했지만 진심으로 팁을 줘야 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 넷에게 내가 더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원래는 앙코르와트를 관람한 후 곧바로 태국으로 들어오려고 했으나 캄보디아에 대해서 더욱 알고 싶어졌다. 때문에 내일은 캄보디아 수도인 프놈펜으로 가기로 했다.

 long live 게스트하우스 직원들과 정이 많이 들었다. 밤에 술을 마실 때 우리 일행은 한국말로 게스트하우스 간판을 만들어 주고 칠판에 이곳 직원소개를 적었다. 물론 내 홈페이지 소개도 살짝..^^

 이곳 주인아저씨는 우리가 적어준 간판을 게스트하우스 앞에 달고 칠판 글씨를 지우지 않으실 눈치이다.

 사실 주인아저씨는 킬링필드와 인연이 깊다. 크메르루즈가 집권하던 시절 아저씨께서는 대학생이셨다. 크메르루즈 법에 의하면 죽어야 되는 신분이었다.

 그렇지만 아저씨께서는 시골로 돌아가 일부로 글씨를 틀리게 쓰는 둥 살기위한 몸부림 덕분에 살아나셨다고 한다.

 주인아저씨의 대학 동기는 35명이었는데 살아남은 사람은 아저씨를 포함해서 5명밖에 되어 않았다고 한다.

 도대체 이 나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내일 가게 될 프놈펜에서 실마리를 찾아 봐야겠다.

 일출을 보러 앙코르와트로 왔다. 해가뜨기전 앙코르와트에서 막간의 포즈

  날씨가 흐려서 일출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리마리오 퍼포먼스로.. 수백명의 관광객이 보는 앞에서 용감하게 했다.(한국인 관광객들의 웃음 소리가 간간히 들렸다.)

앙코르와트 입구 앞으로 250미터에 이르는 다리가 있다. 이 다리를 건너기 전에는 인간의 세계이고 다리를 건너면 신의 세계로 들어오는 것이라고 한다.

  앙코르와트 1층은 사방에 걸쳐 부조가 조각되어있다.. 그 벽화의 분량은 성경책 10권 규모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한다.

앙코르와트에서 바라본 다리의 모습.. 긴 다리를 보면 이곳의 위엄이 느껴진다.

  부조에 조각된 전투를 하는 모습

  캄보디아와 태국의 역사분쟁(?)이 된 부조 희희덕거리는 태국 병사부조를 군기가 빠졌다는것과 용감해서라는 의견으로 나누어진다.

  수 많은 관광객들이 앙코르와트를 관람하고 있다. 그중에서는 한국인이 제일 많다.

  가이드지를 보며 부조를 확인하는 모습

  왕의 행차모습.. 부채의 갯수로 신분을 나타냈다.

  미진이와 나..

  1930년대부터 복구공사가 시작되어서 지금은 잘 정돈되어 있다.

  전투를 하는 모습을 묘사한 부조

  염라대왕이 판결을 하는 모습.. 돈을 주며 유혹을 하는 사람도 보인다.

  지옥의 고통.. 바람을 피운 남자는 여자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고 하여 이처럼 온몸이 못에 박히는 고통을 당한다.

  이곳 천장은 완전한 아치가 아닌 세미 아치형이다. 이 기술은 석굴암보다 훨씬 떨어지는 기술이라고 한다. 1100년대의 앙코르와트를 지은 크메르인의 건축 기술보다 신라시대의 우리 조상들의 기술이 훨씬 앞선 기술이다.

회랑에서 포즈를 취한 나.. 파란색 티와 청바지는 어느덧 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흰두교에서 가장 유명한 유해교반설화 아바타와 거북이로 변신한 비슈뉴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앙코르와트 하이라이트인  신의 영역을 의미한다. 예전에는 오직 5명만이 올라갈 수 있었다고 한다.

  여인들의 모습이 조각되 부조..

신의영역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앙코르와트는 사방에 탑이 있다.

  현주와 나.. 명랑한 성격의 현주는 나와 잘 맞는 편이다.

  예전에는 많은 승려들이 있는 화려한 사원이었지만 세월이 지난 지금은 한산한 유적지일 뿐이다.

앙코르와트에서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수미산을 본뜬 탑.. 수미산은 카일라스산으로 신의 세계를 뜻한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2003년 여름 티벳 카일라스 산을 다녀왔다.

  3층에서 바라본 주변의 모습.. 저멀리 열기구가 보인다.

  앙코르와트에서의 장난.. 다이빙을 하려는 포즈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방문한다.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가파르기 때문에 관광객들은 파이프를 잡고 내려간다.

킬링필드의 흔정 왓트마이 사원에 있는 희생자 유골들

  사원안에는 마침 아이들이 민속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신기한 민속 악기

  많은 어린이들이 악기 연주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왓트마이 사원은 이곳 주민들의 학교이기도 하다. 영어, 한국어, 일본어도 가르친다고 한다.

앙코르 유적 중 가장 아름다운 사원인 반디아이 쓰레이 사원입구

  입구에 조각되어 있는 부조..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섬세하고 아름답다.

반디아이 쓰레이 사원은 '여자의 성'이라고도 불린다.

  이곳 역시 고요하고 정적이 흐른다.

  아름다운 탑들

가이드와 나와 사랑의 하트^^

  사원의 주변에는 아름다운 연못이 있다.

   반디아이 쓰레이 사원에서 나오는 모습

 택시운전사 넷과 찍은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한 장면.. 명작중에 하나다.

  사원 주변의 상인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기념품과 군것질 거리를 판다.

  반이아이 쌈레 앞에서 축구를 하고 있는 아이들

이번 투어의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반티아이 쌈레라는 사원

  이곳 사원에서 일몰을 볼 수 있었다.

  영화 매트릭스의 한장면^^

  이곳의 아이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