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여행기 5 (광적인 살인집단 크메르루즈, 프놈펜 05.1.13)  

1월 13일(목)

 프놈펜에 가기 위해 오전 6시 40분에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나와 미진이 현주와 준구는 프놈펜으로 가고 진옥이는 이곳에서 하루 더 머무르기로 했다.

 원래 여행을 하면서 만남과 헤어짐은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하지만 피곤 할텐데도 배웅 나와 준 진옥이가 정말 고마울 뿐이다.

 우리 탄 버스는 까피톨 버스이다. 까피톨은 베트남의 신카페 여행사와 마찬가지로 캄보디아를 방문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숙박, 운송, 투어를 하는 여행사이다.

 까피톨 버스는 우리가 숙소로 삼았던 long live게스트하우스에서 조금 먼 정류장에 있지만 게스트하우스 앞까지 픽업을 하러 옴으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씨엠리업에서 프놈펜까지는 4대의 버스(4달러)가 있고 동시에 움직인다. 대부분이 외국인 여행자가 이용을 하지만 간혹 현지인이 눈에 띄기도 한다.

 이곳의 다른 버스와는 다르게 좌석제로 되어 있기 때문에 버스에 오르자마자 자리다툼을 할 필요는 없어서 좋았다.

 태국 국경에서 씨엠리업으로 가는 거리보다 프놈펜까지 가는 거리가 훨씬 더 멀다. 그렇지만 길이 잘 닦여 있기 때문에 시간은 4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 왜 태국에서 씨엠리업 구간은 길이 그 모양이지? 길만 잘 닦아 놓으면 관광객들이 찾아오기 쉬울 텐데?

 아무래도 캄보디아 정부에서 일부러 길을 정비하지 않은 것 같다. 오는 길을 험하게 만들어서 외국인들이 비싼 비행기를 이용하게끔 만들거나 가난한 캄보디아를 부각시켜 씨엠리업에서 돈을 더 쓰게 하려고 한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며칠째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난 덕분에 버스 안에서는 거의 잠만 잤다. 나 말고도 다른 일행도 그러한 모양.. 지루한 버스 여행보다는 잠자는 게 더 낳을 듯^^

 차창 밖으로 펼쳐진 풍경은 끝없는 평지와 간혹 눈에 띄는 평화로운 마을이 펼쳐져 있다. 이렇게 평화로운 땅에서 왜 전쟁을 해야만 했는지..

 버스는 2번 휴게소를 들렸는데 두 번째 휴게소에 내렸을 때는 버스에 3명의 아이들이 붙어 세차를 하고 있었다.

 운전자의 잔소리를 들으며 세차를 하는 아이들을 보니 측은해 보였다. 하루에 얼마나 받으며 저렇게 고생할까? 태어난 곳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어렸을 때부터 고생을 하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아무걱정 없이 편하게 사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

 시엠리업에서 프놈펜까지 버스로 4시간이면 된다고 했는데 예정 시각보다 늦은 오후 2시가 되서야 프놈펜에 도착 할 수 있었다.

 처음 상상했던 프놈펜은 재작년 베트남 여행 때 들었던 대로 아주 척박하고 사람살기 힘든 도시로 생각을 했다.

 하지만 프놈펜은 척박하기는커녕 오히려 활기가 넘쳤다. 잘 정비 된 도시와 많은 오토바이와 차량들이 보였는데 베트남의 사이공시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오히려 동냥을 하는 아이들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씨엠리업보다 더 잘 사는 것 같았다.

 버스가 선 곳은 까피톨 게스트하우스 앞이다. 일단 까피톨 게스트하우스(4달러)에 짐을 풀고 우리 일행은 뚜어슬렝 박물관으로 향했다. 4명이서 뚝뚝이를 타고 박물관으로 향했는데 뚝뚝이 가격은 1달러면 충분하다.

 뚜어슬렝 박물관에는 내가 가장 보고 싶어 했던 캄보디아의 역사가 있다.

 1962년 평범한 고등학교로 개교한 이곳은 1975년 크메르루즈가 집권을 하면서 집단 수용소로 쓰이기 시작했다.

 도대체 크메루루즈는 누구인가?

 캄보디아는 1953년 프랑스의 세력 확장을 경계하는 미국의 지원을 받고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했다.

 당시 씨아눅 국왕은 스스로 왕좌에서 물러나 1955년 국민투표를 통해 수상이 되었다. 이 상태로 수상이 선정을 했으면 캄보디아의 생활수준과 인구는 지금보다 훨씬 나아졌겠지만 사회주위에 관심이 많았던 씨아눅 수상은 중국과의 관계를 긴밀히 하고 경제 체제를 시장경제로 전환 하였다.

 하지만 당시 캄보디아의 경제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던 미국, 태국, 남베트남와의 관계가 급격히 악화가 되자 자연스럽게 경제는 파탄에 이르렀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씨아눅 수상은 다시 친미노선을 걷게 되지만 그러한 변덕스러운 외교 노선에 많은 반대파들이 생겨나게 되고 결국 미국의 지원을 받은 론놀 장군의 쿠데타에 의해 쫓겨나게 되었다.

 론놀 장군은 크메르공화국을 세워 지식인을 비롯한 국제적인 지지를 얻었으나 몇 달도 안가 부패와 무능으로 캄보디아는 혼란에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아마 준비 안 된 정권의 부작용일 것이다.

 반면 국제 정세는 남베트남이 패망을 해서 베트남이 공산화 되고 바로 이웃인 라오스마저 공산화가 되었다.

 캄보디아 전역에 분산 되어 있던 공산 세력 크메르루즈는 폴포트를 중심으로 강력한 세력으로 등장하였고, 미국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1975년 론놀 정권을 무너트리고 프놈펜에 입성하게 된다.

 처음 캄보디아 국민들은 크메르루즈를 지지 했었다.(이점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비슷함) 하지만 크메르루즈는 철저한 공산화 정책을 실시했다. 세계최초로 화폐제도를 폐지하고 무자비한 색출작업에 들어간다.

 씨아눅, 론놀 정권에서 이득을 봤거나, 크메르루즈의 이념에 반대하는 사람을 비롯해서 소위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과 그 가족들을 모조리 잡아서 살해를 했다.

 광적인 살인집단으로 변모한 크메르루즈는 계속적인 색출작업을 했었는데 글씨를 쓸 줄 알거나 외국어를 하는 사람 심지어는 안경을 썼거나 손이 고운 사람마저 잡아서 고문을 하고 살해를 했다.

 그렇게 죽어간 사람이 150만~200만명.. 당시 캄보디아 인구가 1100만이라는 점을 감안 했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알 수가 있다.

 그러한 광적인 살인집단인 크메르루즈는 아이러니하게도 1979년 같은 공산 국가인 베트남에 의해 무너지게 된다.

 정글로 숨어 든 크메르루즈는 계속해서 저항을 하게 되고 1998년 폴포트가 숲 속에서 사망한 후 정부군에 투항을 할 때까지 캄보디아의 분쟁은 계속 되게 되었다.

 크메르루즈가 사람들을 많이 죽인 것도 커다란 죄악이지만 그 당시의 모든 교육시스템과 경제시스템이 무너지고 사회의 방향을 제시해야 될 지식인들을 모조리 소멸 시킨 한편 20년 넘게 내전으로 나라를 이끌어 감으로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가져왔다.

 뚜어슬렝 박물관은 4개의 건물로 되어 있다. 입장료 2달러를 내고 들어가니 오후 3시에 상영되는 영화가 시작되었다.

 영화의 내용은 자극적인 내용보다는 크메르루즈 시절 한 가족의 비극을 중심으로 꾸며져 있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는 크메르루즈에게 아들과 며느리를 잃은 할머니가

 ‘나는 남녀가 사랑을 하는 것도 이해를 하고, 부모가 사랑하는 것도 이해를 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 할 수 있다. 하지만 왜 가족들이 헤어져야 하는지는 이해를 못했다. 아니 지금도 이해를 못한다.’라는 말이 와 닿았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매표소 기준으로 왼쪽에 있는 A동으로 갔다. 가는 도중에 14개의 무덤이 있었는데 그 무덤의 주인공은 크메르루즈가 프놈펜에서 쫓겨 날 때 사살된 사람들의 묘지이다.

 A동은 구속 된 사람들을 조사하고 고문을 했던 곳이다. 각 방마다 고문장면을 담은 끔찍한 사진과 고문도구 등이 있다. 난 얼굴을 찡그리면서 사진들을 관찰했다.

 하지만 B동에서 받은 충격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B동은 수감자들의 사진 촬영, 조서작성, 신체측정을 했던 장소인데 이곳에서 사진 촬영을 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사실을 당시 수감이 되었던 2만여 명의 사람들도 알고 있었다고 한다.

 B동 1층에 빼곡히 전시되어 있는 사진들은 머라고 표현해야 할까.. 나에게 많은 생각을 던져 주었다.

 죽기 직전의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어떠한 기분이 들까? 여기 있는 사진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아무런 표정이 없이 무표정한 사람, 마지막으로 애원하는 표정, 허탈한 웃음, 조금이라도 반항을 해보려는 표정, 죽음을 기다린 듯이 체념한 표정, 겁먹은 표정, 두려운 표정..

 사진을 보며 죽음 직전의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에 저런 상황에서 사진을 찍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사진 중에는 여자들의 사진도 많았다. 특히 애를 안고 눈물을 지으며 죽음을 기다리는 여인의 모습이 잊을 수 없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어린이들의 사진도 꽤 있다는 것이다. 이념이 뭔지도 모르는 어린이들의 사진들..

 이 아이들이 무엇을 잘 못 했기에 이렇게 죽여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갔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애원하거나 두려운 표정을 지어서 더욱 안타까웠다.  

 사진 중에는 죽은 후의 사진도 있는데 총알이 아깝다는 이유로 대부분이 뒷통수를 몽둥이로 쳐서 살해한 듯 하다.

 죽으면서까지 웃음을 잃지 않으려고 했던 시체사진이 인상적이다.

 C동은 이곳에 끌려온 사람들이 수감되었던 곳이다. 죽이기 위해 끌려온 사람들을 수용한 시설은 오죽하랴.. 온 건물이 철조망으로 둘러졌는데 수용소 시절에는 전기가 흘렀다고 한다.

 D동은 각종 고문기구들과 당시 수용되었던 화가가 고문, 살해 장면을 그린 그림이 전시 되어 있다.

 끔찍한 고문기구들도 그렇지만 사실적인 그림은 더욱 끔찍했다.

 사람을 비인간적으로 고문하는 장면과 살해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었는데 제일 끔찍한 것은 아기들을 죽이는 그림이었다.

 아기를 공중에 던져서 그대로 총검에 찔러 죽였다. 그것도 구덩이를 파 놓고 차례로 많은 아기를 죽이는 장면이었다.

 대략적으로 상상은 했지만 이렇게 끔찍할 줄을 몰랐다.

 이념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동족들을 죽일 수가 있는가?

 하긴.. 그런 면에서는 우리도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를 증오하고 죽여야 했던 증오의 시대.. 북한 측에서도 많은 사람을 죽였지만 남한 역시 대부분 무고 했던 사람들 30만명을 죽였던 보도연맹 사건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 역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아무 말 없이 가만있었다. 생각하고 느낀 것 충격 받은 게 많았기 때문이다.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우리 일행은 내일 시아눅빌로 가기 위한 버스 티켓을 사러 중앙시장(center market) 앞으로 갔다 거기서 내일 12시 반 차표를 끊었다.

 똔레쌉 강으로 가니 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나와 있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의 사람들.. 아픈 역사를 지닌 채 다시 일어서려는 지금의 캄보디아 모습이 보였다.

 나와 미진이는 내일 오전에 프놈펜 시내를 좀 더 보려고 12시 반 차표를 끊었고, 그동안 함께 했던 현주와 준구는 오전 7시 반 차를 타고 간다.

 아쉬움이 많기에 슈퍼에서 맥주를 사다가 간단하게 한잔 했다.

 프놈펜 시내에 꽤 많은 한국 중고차들이 보이는데 특히 티코가 많다. 아직까지 주변 국가보다 한국 제품이 눈에 띄지는 않지만 멀지 않은 세월 한국산이 물결을 이루길 바란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이곳의 경제 발전이 먼저 되어야겠지?

프놈펜으로 가는길.. 포장이 잘 되어있다.

  아직 개발이 덜된 이곳은 드문드문 집들이 있을 뿐이다.

  세차아르바이트를 하는 소년.. 과연 보수는 얼마나 될까?

  크메르루즈의 집단수용소였던 뚜어슬렝

  집단 수용소 이전만 해도 이곳은 고등학교였다.

  14개의 무덤이 있었는데 그 무덤의 주인공은 크메르루즈가 프놈펜에서 쫓겨 날 때 사살된 사람들의 묘지

  크메르루즈에 체포되어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갇힌 독방

  인권의 사각지대였던 이곳..

  학살된 사람들의 유골

  수용소였던 이 건물은 건물전체가 전기가 흐르는 철조망으로 뒤덮혀 있다.

  아픔을 간직한 프놈펜의 시가지

  프놈펜의 중앙시장.. 웅장한 건물이다.

  길에 늘어선 잡상인들.. 이곳에 도착한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한산하다.

 많은 건물들로 빽빽히 차있다. 이곳 역시 개발의 바람이 분다는 것을 느꼈다.

  프놈펜을 지나는 메콩강

  이곳에도 플스방이 있다. 대부분 게임이 위닝일레븐 8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