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여행기 2 (인례호수 05.1.21~22)  

1월 21일(금)

 새벽 4시가 되자 쉐양에 도착했다. 원래는 6시쯤 도착을 해야 하는데 2시간쯤 일찍 도착한 것이다.

 일찍 도착하면 좋기는 하지만 문제는 지금 시각이 새벽 4시라는 것.. 주변에는 불빛하나 없었다.

 

 우리 일행과 서양 여행자 3명이 어리둥절 서있을 때 택시 한대가 우리한테 다가오더니 5000쨋(5.5달러)에 여기서 11킬로 떨어진 양쉐까지 태워주겠다고 했다. 양쉐는 인레 호수 입구인 도시이다.

 낮이면 히치를 해서라도 갔겠지만 지금은 새벽이고 산악지역이라 날씨도 추웠다.  하는 수 없이 5명이서 택시를 탔다.

 3명의 서양인들은 택시가 세워준 게스트하우스로 가고 나와 주영이는 아쿠아리우스(Aquarius) 게스트하우스에 갔다. 양곤에서 여행자들에게 들은 정보가 있기 때문이다.

 게스트하우스는 잠겨 있었지만 택시기사가 문을 두드리자 좀 차가운 인상의 주인이 나왔다.

 방이 꽉 차서 지금은 체크인을 할 수 없고, 8시에 체크아웃 할 예정인 화장실 없는 더블룸이 7달러라고 한다.

 주인아저씨는 우리를 위해 종업원을 깨워서 잠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비록 야외 침대이지만 이불이 2겹이라 견딜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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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침대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오전 8시에 체크인을 했다.

 인심 좋은 종업원이 아침을 먹으라며 식당으로 안내했다. 하루만 묵기로 해서 원래는 내일 아침 밖에 먹지 못하지만 주인아저씨의 배려로 한끼를 더 먹을 수 있었다.

 아침식사 메뉴는 계란 후라이에 토스트~

 아침을 먹고 정비(샤워, 빨래)를 한 다음 밖으로 나왔다.

 인례호수로 유명한 양쉐는 관광지보다는 평화로운 농촌 마을이다. 시내는 관광객들로 분주하기는 하지만 모터보트들로 가득한 강을 건너가면 한적한 농촌이 펼쳐진다.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밍글라바(안녕하세요)’ 말하니 웃으면서 응해준다.

 한적하다고는 하지만 저마다 일상을 위해 논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간혹 외국인이 신기한 듯 달려 나오는 아이들..

 마치 우리나라 70년대 농촌 기록 영화에 내가 쏙 들어간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물질적으로는 부족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겹다.

 걷다가 지쳐서 지나가는 차를 히치를 했다. 인심 좋은 운전자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우리를 양쉐까지 태워주셨다.

 어제 밤새도록 차를 타고 온 관계로 오후 일정은 그냥 쉬기로 했다.

 특히 이곳에 볼만한 것도 있는 게 아니다. 이곳을 찾는 여행객의 일정은 하루는 보트로 호수를 둘러보고 2일 정도는 그냥 푹 쉰다. 태국의 깐자나부리처럼 이곳 역시 며칠 쉬기에는 딱 좋은 장소이다.

 아쿠아리우스 게스트하우스로 우선 점심을 먹었다.

 오랜만에 한국 라면 맛 좀 보려고 배낭 속에 있는 라면을 꺼냈다. 주인아저씨에게 뜨거운 물을 달라고 부탁하니까 뜨거운 물은 물론 수저와 밑반찬거리를 비롯해 라면에 말아먹으라고 밥까지 주셨다.

 푸짐한 점심을 먹고 정원에서 편하게 책을 읽고 있으니 게스트하우스 직원들이 주스와 간식거리 팝콘 등을 연신 가져와준다.

 정말 이 게스트하우스에 감동을 했다. 미얀마를 여행하는 이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론니플래닛에도 실리지 않았으면서 항상 이곳 게스트하우스가 꽉 차는 이유를 알겠다.

 하나부터 열까지 손님에 대한 배려로 가득 찬 곳이다. 헌신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손님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다. 여행객을 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대한다는 것을 느꼈다.

 마침 이 게스트하우스에 머물고 있던 한국인 여행자와 저녁을 함께하게 되었다.

 미얀마를 여행하는 거의 모든 한국인이 선생님이다. 동행을 하고 있는 주영이를 제외하고 나보다 어린 여행자를 전혀 못 봤고 서양 여행자들도 마찬가지이다.

 비자를 받고 비행기로 입국을 해야 하는 관계로 젊은 여행자들이 미얀마 여행을 꺼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함께 저녁을 먹은 한국인 여자 여행자는 김포의 한 고등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치고 계신 선생님이다.

 그 분에게서 미얀마 교육의 현주소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중 한 일화..

 트래킹을 하는 도중 가이드가 직업을 묻기에 교사라고 대답을 하니 월급이 어느 정도 되는지 물어보았다고 한다.

 한달에 2000달러 정도 된다고 하니까 가이드는 까무러칠 듯 놀랐다고 한다.

 가이드는 교직에 있다가 생활고에 시달려서 그만 두었는데 한달 월급이 10000짯이었다고 한다.

 미얀마는 전 국민이 무상 교육을 받고 있지만 교사의 월급은 10000짯.. 우리 돈 11200원 이다.

 이 월급으로 생활을 하지 못하기에 많은 전문 인력들이 교사를 그만두고 외국인을 상대로 한 가이드를 비롯해서 관광업에 많이 종사한다고 한다.

 나 역시 미얀마를 여행하면서 답답함을 많이 느낀다.

 194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미얀마는 독립투쟁의 영웅 아웅산 장군이 암살 되면서 정치상황이 꼬이기 시작한다.

 정치는 혼란을 거듭한 끝에 결국 1962년 네윈이 쿠데타를 일으키게 된다. 우리나라의 박정희 의장이 쿠데타를 일으켰던 상황과 너무도 흡사하다.

 수출 위주의 개방적인 경제 성장을 지향했던 박정희와 달리 네윈은 정 반대의 선택을 하게 된다.

 불교를 접목시킨 미얀마씩 사회주의를 외치며 사유재산 몰수, 기업 국유화를 했으며 무엇보다 역사상 유래가 없는 쇄국정책과 공포정치로 네윈 자신의 왕국을 만들려고 시도했다.

 넓은 국토와 많은 자원을 가지고 있고, 한때 동남아에서 가장 잘 살았던 미얀마는 이 싸이코틱 한 지도자 한명 잘못 만나서 유엔이 최국국가로 지정할 정도로 경제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1988년 대대적인 민중봉기가 일어나 양곤에서만 3000명의 민중들이 목숨을 잃고 나서야 얻은 선거..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의 딸 아웅산수지 여사가 이끄는 NLD당이 승리를 했지만 민주화의 꿈은 다시 군부에 의해 철저히 짓밟히고 아웅산수지 여사의 가택 연금과 함께 미얀마는 또 다시 기회의 끈을 놓치게 된다.

 그 어느 나라에게도 지지를 받지 못하는 정권.. 더욱더 피폐해지는 경제..

 결론은 몇몇 군 수뇌부의 욕심 때문에 4500만의 미얀마 국민이 철저하게 희생당하는 나라 구조이다.

 군부가 자신들의 권력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국민들의 눈과 귀를 철저하게 틀어막는 것..

 예전에는 미얀마보다 못했지만 지금은 발전을 거듭하게 된 이웃나라 태국과 중국..

 또한 미얀마 사람들은 캄보디아가 자신들보다 훨씬 못 산다고 믿고 있지만 내가 직접 두 나라를 비교해보면 ‘전혀 아니올시다.’ 이다.

 경제 위기의 여파는 이제 군부조직까지 스며들고 있다. 물자부족과 급료에 대한 불만이 군 하부조직에서 나오고 있다고 한다.

 현재 국제적인 외교적 압박은 더욱더 조여들고 있다고 한다.

 론니플래닛에는 미얀마를 방문하는 여행자는 여행가이드북이나 몇몇 잡지를 가져와 미얀마 현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라고 되어있다.

 눈과 귀가 가려져 있는 미얀마 사람들에게 현실을 알게 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미얀마 사람들이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어서 군부독재가 끝나야 한다. 그러지 않는 한 미얀마는 퇴보를 거듭할 뿐이다.

 만약 우리나라도 미얀마처럼 독재자에 의한 철저한 쇄국정치를 하게 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미얀마를 보며 생각을 해 보았다.

 하지만 강대국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지정학적 위치와 경제적인 구조.. 또한 조선시대 대원군이 펼친 쇄국정책실패의 교훈을 가지고 있기에 그럴 일은 없었을 거라는 결론을 내렸다.

 미얀마 역시 지금의 실패를 소중한 역사적인 교훈으로 간직하길 바란다.

 내가 여태까지 만난 미얀마사람들은 모두 친절하게 순박하다. 미얀마에 와서 한번도 바가지를 쓰지 않고(이 시점은 입국한지 3일이 지났지만 여행기는 그 이후에 쓴 것임^^) 도움을 청하면 친절히 도와주는 착한 사람들이다.

 이러한 착한 동족들을 권력을 위해 불행에 빠트리고 자신들만 잘 살려는 군부..

 내 생각에는 지금쯤 군부는 자신들의 한계를 절실하게 느끼며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부를 유지하며 정치에서 빠질지 고민하고 있을 듯 하다. 욕심이 있는 한 자신들의 권력에 대해 최대한 비싼 값을 부르겠지?

 반면에 조만간 미얀마에서 젊은 신군부에 의해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도 해봤다. 쿠데타가 성공을 하면 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정권이 탄생할 가능성이 크고 실패를 하면 내전이 일어날 가능성도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임..)

 하지만 가장 좋은 시나리오는 캄보디아처럼 국제적인 감시 하에 선거를 하는 것이다. 국제적인 지지를 얻음으로써 경제 재건을 위한 지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쉽지 않을 듯 하다. 그동안 막아놓은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갑자기 열면 봇물처럼 비난이 쏟아질 것임을 군부 자신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소 사견이 많이 들어갔다. 미얀마를 여행하면서 이곳 정치 상황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나름대로 도출해낸 생각들이다.

 캄보디아 여행에 이어 국민에게 있어서 정치는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또 한번 느꼈다.

 우리나라 역시 시대에 뒤떨어진 정치가 항상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1월 22일(토)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아쿠아리우스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미얀마 여행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바로 게스트하우스에서 아침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아침부터 따로 식당을 찾는 것 보다는 시간절약도 되고 저렴해서 좋다.

 오전 7시 30분.. 나와 주영이 그리고 스위스 여행자 2명.. 이렇게 4명은 함께 인레호수를 보트를 타고 누비게 되었다. 하루 동안 모터보트를 타는 데는 보트 한대 당 7000짯(8달러)를 주면된다. 사람이 많을수록 더 싸게 갈 수 있다.

 인레호수는 미얀마를 여행한 여행자라면 누구나 추천을 하는 코스로서 미얀마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선착장에서 모터보트를 타고 강을 따라 쭉 내려오니 넓디넓은 인레호수가 보였다.

 아침 안개가 그윽하게 깔려있어 은은하고 아름다웠다.

 물고기를 잡는 현지인의 대나무배에 접근해서 인사도 하고, 다른 관광객이 탄 모터보트가 지나가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인레호수는 경치 구경뿐만 아니라 이곳 사람들의 생활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시장으로 가니 입구에는 배들로 꽉 차 있었다. 시장은 언제나 그런 것처럼 시끌벅적.. 여기저기서 물건을 고르고 흥정을 하는 모습이 정겹다.

 이곳 사람들은 이미 적응이 된 듯 외국인이 와서 사진을 찍으면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해줄 줄 아는 여유를 가지고 있다.

 시장 관람을 마치고 다시 배에 올랐다. 호수를 지나 운하지역으로 들어갔는데 집들이 모두 수상에 지어졌고, 이동수단을 배로 다녔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도 수상에 지어진 게 특이하다.

 모터보트는 담배, 우산, 은세공, 옷감 공장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공장에 들어갈 때마다 차를 대접받으며 영어로 설명을 들을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물건을 팔려는 상술이 깔려 있는 듯 했다. 그래도 물건을 사던 안 사던 외국인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모습이 보기 좋다.

 점심을 먹고 파웅다우 사원을 관람한 후 인뗑으로 향했다.

 인뗑으로 가는 글은 농가의 수로를 한참 지나는데 많은 수상 가옥과 푸른 논..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볼 수 있었다.

 인땡 유적에 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게 없지만 천년의 세월을 지닌 백여기 이상의 탑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유적이다.

 배에서 내려 인땡 사원으로 가다 보면 500미터 정도 회랑이 있다. 회랑의 천장은 허스름한 천장으로 되어 있지만 기둥이 정교한 조각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전 성스럽게 여겨진 사원인 듯 하다. 그래서 회랑이 있는 게 아닐까?

 회랑 안에는 많은 상인들이 있는데 크게 호객행위를 하지 않아서 크게 불편하지 않다.

 유적지에 가니 여기저기 파괴된 탑들이 보인다. 원래 이 탑들도 관광객이 접근을 못 하도록 시설을 해 놓아야 하지만 아직까지는 마음대로 가서 만질 수 있다.(심지어 훔쳐갈 수도..) 미얀마가 발전이 되면 달라지겠지..

 인뗑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했다.

 만달레이로 가는 버스가 18:00에 있는데 벌써 16:00이다.. 이러다 버스를 놓치겠군..

 보트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몇 군데 상점을 더 들린다.

 마지막 코스인 점핑켓 사원에 도착했을 때 17:00.. 같이 동행한 서양 애들한테는 미안하기는 했지만 양해를 구해서 보트를 돌렸다.

 초초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보트는 느리게만 가고.. 결국 버스 시간을 10분 남긴 17:50분이 되서야 양쉐에 도착했다.

 아.. 이렇게 버스를 놓치고 마는가?

 급하게 아쿠아리우스 게스트하우스로 가니 주인아저씨께서 우리를 진정을 시키며 19:00까지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과일주스와 간식거리를 대접해 주신다.

 정말로 고마울 뿐이다... 이렇게 친절하고 여행객을 배려해주는 게스트하우스는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주인아저씨와 함께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서 주인아저씨께 드렸다. 아저씨는 좋아하시면서 게스트하우스에 전시해 놓으신다고 하신다. 또 하나의 흔적을 남겼네..

 버스가 출발하는 쉐양까지는 11km떨어져 있기 때문에 차를 타고 가야 했다. 저렴한 픽업트럭은 16:00에 끊어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가야했다. 처음 4000짯을 부르는 것을 3000짯으로 겨우 깍았다.

 18:40에 쉐양으로 가니 아직 버스가 도착하지 않았다고 한다. 알고 보니 이곳에서 출발하는 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 이미 출발한 버스가 도중에 정차를 하고 그 시각도 19:00라고 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호들갑 떨지 않았어도 되는데..

 기다리는 동안 수다스러운 스위스인 부부와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아까 우리와 같이 모터보트를 탄 부부도 스위스인인데.. 이곳에는 스위스사람들이 많이 여행하는 듯 하다.

 그 역시 교사라고 하며 부부가 1년 동안 여행을 한다며 이제 3주째라고 이야기 한다.

 나한테는 거의 모든 서양인들의 관심을 끌어낼만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티벳 여행이다. 이상하게 서양 여행자들은 티벳에 대한 환상이 많은 듯 하다.

 이야기를 하는 도중 우리가 탈 버스가 왔다. 아쉽지만 스위스 교사와는 이별.. 인연되면 또 보겠지..(그 뒤로 못 봄..ㅡ.ㅡ)

 이곳에서 만달레이로 가는 버스는 나와 주영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현지인이다. 만달레이로 갈 때까지 몇 번 검문이 있다. 검문소의 경찰들은 현지인에게는 꽤 까탈스럽고 짐 검사도 서슴치 않지만 외국인인 우리는 아예 신경도 안 쓴다. 왜 이리 외국인과 자국민을 차별하는지...

 오늘도 버스 안에서 밤을 지새는군.. 숙박비를 절감한다는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정말이지 피곤한 여정이다.

인례호수에 인접한 양쉐의 한 집.. 아름다운 꽃과 조화를 이룬다.

  수로에 늘어선 배들.. 이곳에서는 배는 중요한 운송수단이다.

 강가에 지어진 수상가옥

  모든생활은 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마을과 마을이 이어진 다리사이에서도 배는 유유히 지나간다.

론지를 입은 미얀마남자.. 이곳 사람들은 외국인에게 친절하다.

마을은 강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사진을 찍자 수줍게 웃는 소녀.. 얼굴에는 다나까가 칠해져있다.

  사탕수수 껍질을 벗겨내는 할아버지

  우리나라 할머니와 비슷한 외모의 할머니

  농촌 풍경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분위기이다.

  햇볕이 따가웠지만 나무가 우거진 오솔길이 있어 덥지는 않았다.

  논에서는 오리들이 놀고 있다.

  이쁜 사진중에 하나 아름다운 수로와 마을

  물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이곳의 중요 운송수단은 자전거와 경운기이다.

배를 타고 노는 아이들.. 웃는게 이쁘다

  환하게 웃는 아이.. 해맑은 웃음

  새로운 집을 공사하는 사람들..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주고 있다.

  어마어마한 양의 지게를 짊어진 청년

아이들과 함께 찰칵

  다른 동남아지역과는 달리 미얀마의 농민들은 성실하다.

  도로 공사중인 농부들과 기념으로

외국인을 발견하자마자 뛰어나오는 아이들

  주영이가 찍어준 폴라로이드 사진을 보고 신기해하는 사람들

  주영이가 미얀마 민가를 찍고 있다.

아쿠아리우스 게스트하우스에서 먹은 신라면.. 감격스러웠다.

  야간의 한 호텔에서 민속공연을 했다.

인례호수 주민들은 대나무배를 타고 고기잡이를 한다.

  노는 다리로 젖는다.

 화물 운반은 모터보드로 운반이 된다.

  호수위에 떠있는 수상 사원

  호수를 가로지르니 저 멀리 마을이 보인다.

  마을의 전 가옥은 수상가옥으로 이루어져있다.

시장에 모인 배들.. 빽빽하게 모여있네

  미얀마 담배.. 한뭉치에 우리돈으로 100원정도이다.

  물건을 사고파는 모습은 여느시장이나 같다.

 귀여운 아기  

  물건을 파는 이쁜 여인

  우리나라의 뻥튀기와 비슷한 음식.. 이곳 사람들은 주식으로도 먹는다.

 시장 이발소 바로옆에는 동물시장이 잇다.

  가축시장의 소.. 덩치가 크긴 크다.

  미얀마 음식은 우리입맛에도 맞는 편이다.

  화장실 모습.. 원래 여행을 오면 깨끗한 화장실은 포기를 해야한다.

  닭을 들고 있는 아이

 이곳 사람들 음식인 것 같은데 정확히 뭔지는 잘 모르겠다.

소수민족 여인.. 소수민족도 많은 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물건을 사고 판다. 외국인들도 눈에 많이 띈다.

  기념품과 골동품을 파는 상인들

 미얀마 씹는담배.. 잎에다가 여러 가지 물질을 넣는다.. 나도 씹어봤는데 혀가 마비가 될정도로 써서 금새 밷었다.

카누는 시장을 지나 마을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무명공장에서 베틀을 짜는 여인.. 우리나라 베틀과 비슷하다.

물레를 돌리는 할머니

  여기의 실은 이처럼 수상식물에서 얻는다.

  아기를 안고 있는 나

  여기서도 축구를 하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베틀은 어느집이나 다 있는 생활용품이다.

  아름다운 마을.. 베네치아와는 다르지만 색다른 분위기다.

  소녀가 유창한 영어로 담배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해주고 있다.

  이곳에서 유명한 파웅다우 사원 건물이 웅장하다.

  수많은 금박을 붙인 불상.. 너무나 많이 붙여서 불상의 형태는 없어졌다.

  고등학교를 방문하니 많은 학생들이 교실에 있었다.

  전통한지 공장에서 한지를 만드는 여인

 인뗑유적으로 가는길.. 배는 수풀을 헤쳐간다.

  수로에는 한농부가 한가롭게 물소를 목욕시키고 있다.

  인텡유적 선착장.. 이미 관광지화 되어 있다.

  인땡유적으로 가는 긴 회랑.. 기념품 노점상이 즐비하다.

  인뗑유적의 탑군들.. 많이 파손되었다.

  사원에서 불상을 배경으로.. 옆의 팻말에는 여자들은 들어오지 못하다고 써있다.

  탑들을 배경으로 바라본 주변 환경

  내려오는 길에 마주친 소수민족들.. 저마다 이것저것 들고 있다.

  소수민족 여인들.. 이들의 발걸음에는 강인함이 느껴진다.

한소녀가 자신 보다 몇배 큰 소를 몰고 있다.

  수상가옥.. 주변에 물풀들이 집을 덮고 있다.

  너무도 친절한 아쿠아리우스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저씨와 종업원.. 정말 감사하다.

  우리와 함께한 여행자들.. 서로 에티켓을 잘 지키고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