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여행기 7 (흘러가는 시간에 추억을 달아... 05.1.31)  

1월 31일(월)

 오전 8시 반.. 아쉬움을 뒤로한 채 만달라이로 떠나는 날이다. 떠난다는 홀가분함도 있기는 하지만 끔찍한 버스를 타고 다시 22시간을 가야한다는 걱정이 더 앞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미 난 여기서는 유명인사가 된 덕분에 버스 자리를 VIP좌석인 맨 앞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것이다.

 VIP좌석이기는 하지만 의자의 높낮이가 달라 오래 앉으면 허리가 아프다. 또한 뒷좌석은 완전히 꽉 찼기 때문에 버스가 잠시 정차했을 때 밖으로 나가기가 힘들다.

 때문에 난 버스창문을 이용해서 안과 밖을 드나든다.

 떠나기에 앞서 스티븐과 폴을 비롯한 5명이 나를 배웅 나왔다. 그중에 한 목사님은 곧 한국에 온다고 한다.

 그에게 어떻게 한국에 오는지 물어보니 2년 전 만달라이에서 만난 한국인이 자신을 한국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지금은 기다리고 있다고 하면서 올해 8월쯤에 올수도 있다고 했다.

 동남아에서 간혹 현지인들에게 말로 환상만 심어주고 떠나는 한국인 여행자들이 많기에 구체적으로 물어보았다.

 목사님은 한국의 서울에 있는 한일 대학교에 장학금을 받으며 유학을 할 것이라고 한다.

 한일대학교? 처음 들어보는 대학교인데? 혹시...

 한국에 가서 확인해 봐야겠지만 생소한 대학교 이름을 비롯해서 공수표를 뿌린 한국인의 주소도 없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 공수표를 뿌린 것 같다.

 목사님이 기대를 많이 하고 있는 눈치라서 확실히 이야기는 못하고 한국에 돌아가면 확인만 해보겠다는 대답만 했다.

 버스가 떠났다. 다행히 우려했던 경찰 검문은 없었다. 경찰들은 내가 하카에 있는 동안 별 특이점을 발견하지는 않은 모양이다.

 일단 1차 관문은 통과^^

 하카에서 만달라이로 가는 길은 친스테이트의 환경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처음 이곳을 통과할 때는 밤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친스테이는 전체적으로 산악지역이고 산등성이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친민족은 전통적으로 강인한 민족이라 이웃 나라에 용병으로 많이 고용되었다고 한다. 그 강인함의 힘은 바로 산악에서 나오는 것 같다. 유럽의 스위스와 흡사하다. 국토의 대부분이 스위스 역시 유럽에서는 가장 강한 용병이었지 않은가..

 버스 안에는 자리가 없어서 지붕위에 타는 사람도 있었다.

 버스는 출발한지 3시간 정도 지난 12시경 한 마을에 멈췄다. 점심식사를 하는 시간이다.

 버스에서 내려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2명의 청년이 영어로 말을 건다. 그들은 말레이시아로 일을 하러 간다고 한다면서 나에게 음료수를 하나를 꺼내더니 권한다.

 한 청년은 나이가 24살이고 인도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전공했다고 한다. 친지역에서는 엘리트 두뇌인 청년이지만 미얀마에서 컴퓨터 전공은 아무 쓸모가 없다.

 결국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말레이시아로 막일을 하러 떠나는 안타까운 사연이다. 아무리 개인의 능력이 출중하더라도 국가나 사회가 뒷받침을 하지 못하면 사장되고 마는 현실이다.

 그나마 이 청년들은 말레이시아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설레인가 보다.

 식당 주인은 외국인을 처음 봤는지 무척 신기해한다. 친스테이트에서 가장 좋은 혜택중에 하나는 외국인 바가지요금이 없다는 것이다. 미얀마는 외국인에 대해서는 모든 것에 대해 50%를 더 받고 그걸 당연시 여긴다. 하지만 외국인의 방문이 전무한 친스테이트에는 그런 제도가 있을 리가 없지.

 버스는 산악지역에서 평지를 향해 계속 내려왔다. 길은 열악하기 그지없지만 언젠가는 이곳도 개발이 되겠지..

 버스 안에서 내가 할일은 그저 계획을 세우고 생각하는 길 뿐..

 미얀마를 여행하면서 한 가지 안타까운 게 있다.

 현재 한국의 삼성, 엘지, 현대는 전 세계인들이 아는 브랜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끊임없는 투자와 기업의 글로벌화로 이루어진 성과이다.

 하지만 전 세계인들이 인지하고 있는 또 하나의 우리나라 상표가 있지만 지금은 우리 스스로에게 외면 받고 사장되어가고 있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대우이다.

 미얀마에서는 대우는 ‘좋다’라는 명사로 쓰일 정도로 미얀마인들의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있다.

 우리나라 기업 중에서는 가장 먼저 글로벌화를 외치며 세계로 뻗어나갔으며 전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선봉장이었다.

 하지만 무모하다싶은 공격적인 투자와 때마침 다가온 IMF의 직격탄으로 한때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김우중 회장은 해외를 떠도는 신세가 되었고 기업은 공중분해가 되었다.

 비록 회사는 공중분해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 브랜드를 어떻게 살리는 길은 없을까?

 현재 삼성, 엘지는 일본 기업들을 이미 추월하고 가전제품에 관해서는 세계 일류기업이 되었다.

 우리나라 가전 제품브랜드는 삼성, 엘지 투톱 체제인데 여기에 대우를 붙여서 쓰리톱으로 나가면 한국이 가전제품에 대해서는 전 세계를 이끌어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하면서 대우라는 브랜드가 이렇게 점점 사장되어가는 것이 정말 안타깝다.

 오후 6시.. 안갈 것 같은 시간도 지나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버스가 갑자기 멈춘다. 도로 공사를 하고 있어서 길을 완전히 막고 차량을 못 지나가게 하는 것이다.

 버스 승객은 잠시 내려서 휴식을 취한다.

 도로공사를 하는 인부들 사이로 한명의 군인이 보인다. 아마 군인의 지시대로 작업을 하고 있고 때문에 차들이 항의도 못하고 멈춰있는 것이리라.

 영어가 통하는 젊은이에 도로 공사를 하는 인부는 일당을 얼마나 받는지 물어보았다.

 ‘원싸우전트 파이브헌드레드 짯(1500짯)’

 머? 1500짯...!!

 이곳의 인부들은 11시간을 중장비도 없이 맨손으로 일하면서 하루에 1500원을 받는 것이다.

 한국은 얼마인지 물어보기에 50달러(5만원)정도 된다고 대답을 하니 오히려 청년들이 놀란다.

 이곳에서는 한달 교사 월급이 정식 임명을 받은 교사는 한달에 15000짯(15000원)을 받고 교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임시교사는 10000짯(10000원)을 받는다고 한다.

 도대체 난 이들의 몇 년치 월급을 받는 거야?

 한때 동남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였고, 한국에게 구호물자를 보내준 미얀마의 현주소이다.

 그건 그렇고 30분이 지나도 버스를 지나가게 하지를 않는다. 이렇게 한없이 기다려야 하나?

 이럴때 외국인의 특권을 사용해야지..

 난 도로공사를 하는 현장으로 가 사진을 두어장 찍었다.

 감시하는 장교는 ‘저건 누구야?’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미얀마사람에게는 군인 앞에서 허튼짓을 한다는 건 상상조차 안 되는 일이다.

 난 한국인이라고 소개하며 언제 길을 내줄 건지 물어보았다.

 장교는 자기도 모른다고 하면서 밤 이후라고 말한다.

 난 당당하게 잠시 버스가 지나가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잠시 생각하는 장교는 금새 알겠다고 하며 악수를 청한다.

 귀찮게 외국인을 앞에 두고 버스를 세우기보다는 빨리 보내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으리라..

 곧 도로공사가 잠시 중지되고 기다리던 차들이 지나갔다. 난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버스 안으로 들어왔다. 버스안의 사람들은 웃으며 나에게 잘 했다고 박수를 친다.

 어때? 이정도면 VIP좌석에 탄값은 한거지?^^

 저녁을 먹기 위해 마을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다시 달렸다.

 버스에 오래타면 탈수록 지겹기는 하지만 ‘아무리 지루해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라는 군대시절의 구호를 떠올리며 근근히 버텼다.

 이렇게 군바리 정신이 발휘가 된다. 아.. 그러고 보니 군대 제대한지도 4년이 넘었네..

 돌이켜보면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빨리 가는 시간을 잡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그 시간 시간마다 추억과 경험을 붙여 넣는 것은 나의 의지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터미널에서 유유히 누워있는 개의 모습

  먼길을 떠나는 가족을 마중나온 사람들.. 우는 이들도 있다.

  하카에서 만달라이로 빠져 나오는 길은 산등성이에 이어져 있다.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돼지를 모는 유목민

  저 멀리 마을이 보인다.

  저멀리 만달라이로 이어지는 길이 보이다. 외부 세계와 통하는 유일한 빛줄기이다.

  잠시 쉴때 내려서 한컷.. 좀 어색한 표정이다.

  자리가 모자라서 버스위에 사람들이 타고 있다.

  숲속의 마을

  점심 식사를 한 식당에서 한가롭게 있는 사람들

산악족 아이.. 이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는 여기도 많이 변해있겠지

  식당 주인 아저씨와 아줌마와 함께

  버스안은 이처럼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비좁다. 이 상태로 비포장도로 22시간을 가야 한다.

  친스테이트는 쭉 산맥이 이어져있다.

  마을의 모습.. 한산하다.

  산악지대를 벗어나자 평지가 보인다.

  아스팔트 도로이기는 하지만 열악하다.

  나무로 만든 다리.. 허술하기는 하지만 이 지역 사람들의 생명줄이다.

  검문소.. 서서히 미얀마 군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군인과 함께.. 외국인을 처음 본 듯 뻣뻣한 자세로 나와 사진을 찍었다.

  나와 함께 사진을 찍자로 부탁한 아줌마.. 난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곳 사람들에게는 흥미거리였다.

만달라이로 가는 중간 도시에서 하차하는 사람들

  다리밑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

  문제의 공사구간.. 나의 재치가 아니었으면 한 없이 기다릴 뻔했다.

 만달라이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몇 년동안 일했다며 반갑게 한국어로 맞아준 택시기사 아저씨

 외국으로 취업을 위해 이곳으로 온 친족 청년들.. 이 청년들에게 행복이 충만하길 바란다.

  스님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이제 불교 문화권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