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여행기 1(7.3~5) 국경을 넘어 쿤밍으로

 7월 3일(목)

 라오스 국경에서 비엔티안으로 향하는 경모형과 경남이 형을 뒤로한채 라오스 볼더에서 출국도장을 찍었다.. 이제는 중국이다.

 국경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한산하다.. 차들은 가끔 지나가고 더군다나 외국인은 아예 볼 수가 없었다.

 중국볼더쪽 까지는 그냥 걸어갔는데 의외로 거리가 멀다.. 한 20분 걸었나? 그 20분은 무거운 짐들과 무더위와 함께 가세해서 나를 땀으로 부터 흠뻑 젖게 하기에 출분한 시간이었다.

 라오스쪽은 2층 이상의 건물을 보기 힘들었는데 그에 비해 중국쪽은 건물도 많고 새로 지은듯한 신식건물들이 즐비하다.

 '와~ 선진국이다..' 내가 중국을 보고 그렇게 느낄때가 있다니.. 마치 외지의 세계에서 문명세계로 온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중국측 볼더도 한산했다. 내가 볼더에 다가가자 그제서야 놀고 있던 직원들이 움직이고.. 우선 검역을 받아야 한다나? 검역이래봐야 종이쪼가리에다가 신상과 질병유무(그걸 누가 적나?)를 적는것과 사스때문인지 체온을 검사하는게 전부였다. 참.. 사스 진원지에서 사스가 발병하지도 않은 라오스에서 오는 여행자를 대상으로 사스검사..

 대충 마치고 다음에 간 곳은 바로 옆방에 귀중품 신고하는 사무실이다. 짐검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나가도 상관 없지만 가지고 있는 노트북과 디지털 카메라가 분실되었을때 보험회사에 청구 할 수 있는 유용한 자료가 되기 때문에 일부러 신고를 했다.

 경남이 형이 비엔티안으로 다시 떠나기 전에 한말이 있다. '사고는 보험을 들지 않는 사람이 나.. 그러니 보험에 드는게 좋아.'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인거 같다.

 신고를 끝내고 스탬프를 받으로 다시 볼더 사무실로 갔다. 거기에는 미모의 여직원이 있었는데 공무원 특유의 딱딱함과 귀여움이 어우러진 머라 그럴까.. 머 색다른 모습이었다.

 여직원이 스탬프를 찍어주고.. 여권을 받음과 동시에 여직원에게 안재욱이 담긴 엽서를 주었다. 중국에서 처음만난 여인이 미모의 여인이 되게 해준 일종의 고마움의 표시였다.

 모한에서 국경도시 멍라까지는 버스비 12위엔(1800원)이다. 친숙한 중국어가 들리고(친숙해도 못 알아들음..)

 멍라로 가는 도로는 포장한지 얼마 안되서 도로 상태가 좋았다. 멍라로 가는 도중 공안으로 부터 2번이나 검문을 당했다. 아무래도 이 근처에 무슨일이 있는듯.. 한국 여권을 보여주니 무사 통과

 멍라의 도착하니 선진국을 보는듯 했다. 최신식 건물에 어우러진 야자 나무들.. 마치 시골에서 갓 서울로 상경한 시선으로 멍라를 보았다.

 멍라에서 곧바로 시상반나의 주도인 찡홍으로 가는 버스(32위엔)를 탔다. 가는 도중 시상반나의 풍경을 볼 수 있었는데 소수민족들의 집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의 강원도와 비슷한 풍경이다. 평화롭게 농사일을 하는 농부들을 볼 수 있었다.

 불과 171킬로 떨어진 찐홍까지 5시간이 넘게 걸렸다. 찐홍에 도착하니 벌써 해는 넘어가 있었고.. 할머니 삐끼의 꼬심에 넘어가 방을 잡고(물론 35위엔에서 15위엔으로 깍음) 곧바로 피시방으로 갔다.

 라오스에 있으면서 비싼 인터넷 이용비로 정보에 목말라 있었던 것이다.
버스터미널에서 왼편으로 걸어가다보면 큰 왕빠(피시방)이 있는데 1시간에 2위엔(300원).. 캬..눈물난다. 바로 어제 지불했던 1분에 650낍(78원)에 비하면 그야말로 천국이다. 속도도 국내 못지 않게 빠르다.

 중국에서의 첫날.. 아름다운 시상반나의 석양을 보며.. 왕빠에서 문명세계의 편리함을 느끼며.. 그렇게 지나갔다.

 7월 4일(금)

 찐홍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바로 환전이다. 어제 미쳐 환전을 하지 못한 덕분에 어제 저녁과 아침을 굶고 있었다. 9시 은행문 열리는 시간이 되자 마자 중국은행을 찾아 나섰다.

 중국은행이 보이지 않자 중국공상은행에 들어갔다. 다른지역은 원래 안되지만 이곳에서는 환전을 해준다. 200달러를 환전하니 두둑한 기분이 들었다.

 다음은 서점에 가서 중국 지도를 사기.. 간단하게 서점에 가서 샀다.

 라오스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외국인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다. 사스의 영향인듯.. 터미널을 서성이고 있을때 서양인 커플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서 이야기 하니 중국에서 영어 강사를 하고 있고 지금은 여행중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학생을 가르쳐서 그런지 중국어를 정말 유창하게 한다.(물론 이들과는 영어로 대화..)

 1시반에 쿤밍으로 떠나는 버스를 탔다.(요금 145위엔) 경치좋고 편안하고 가기 어려운 시상반나라 많이 보고 가고 싶었지만 14일에 동생들 4명과 난주에서 합류하기 위해서는 서둘러야 한다.

 참.. 중국.. 특히 티벳을 가는 가장 큰 목적은 내 논문이다. 내 논문 주제가 '티벳 어린이에게 한국의 미술교육을 시켰을때의 반응'이라는 제목이다.

 때문에 저번 티벳 2차 여행에서 라싸의 한 초등학교(웨이동소학교)에 직접 방문을 해서 교장선생님한테 7월에 다시 방문할때 미술 수업을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놓은 상태이다.

 나 혼자가 아니라 2명의 후배와 같이 준비를 했는데 6월 13일 내가 여행을 간 이후는 자기네들끼리 잘 준비하고 있는 모양이다. 배째는 선배를 대신해서 수업준비를 해주는 동생들이 정말 고맙다.

 처음 난주에 합류할 인원도 2명에서 4명으로 늘었다.. 어째튼 14일까지 북상을 하자면 서둘러야 된다.

 버스는 침대 버스로 중국 각지를 다니는 침대 버스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찐홍을 지나 아름다운 시상반나의 풍경과 많은 차 밭들을 보면서 잠이 들 무렵..

 갑자기 버스가 선다. 우리 버스 말고도 앞의 버스들도 모두 멈춰있다.
버스 문이 열리자 공안 2명이 일일히 사람들 신분증 검사를 하고 짐검사를 한다. 어제부터 계속 검문을 하는게.. 무슨일이 있나?

 공안이 나한테 오자 난 여권을 보여주며 한국인이라고 했다. 어설픈 영어로 'can you speak china?' 물어본다. 당연히 대답은 'no' 공안은 다른사람에게 가고.. 모두들 긴장한 표정으로 짐검사를 받는다. 여자들 가방까지도 아무렇지도 않게 내용물을 다 꺼내라고 한다. 그렇다고 나까지 긴장할 필요까지 없지..

 만약에 공안이 나한테 와서 짐을 꺼내달라고 하면 당연히 거절 할 것이었다. 짐검사는 엄연한 인권침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민주주의가 발전한 나라에서는 영장없이 절대 짐검사를 할 수 없다.(세관은 예외)

 만약에 공안이 내 짐검사를 하면 국제법을 운운하면서 거절할려고 하는데 공안이 내 짐은 아예 검사를 하지 않는다.. 역시 외국인 눈치는 보는군.

 버스안에 있기 갑갑해서 주변 풍경 사진이나 찍을려고 버스 밖으로 내렸다. 앞에는 버스가 쭉 서 있었는데 운전기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버스 밖으로 내리지 않았다. 공안이 그렇게 무서운가?

 밑에 물소들이 싸우고 있어 디카에 담아둘려는 순간.. 갑자기 버스에서 공안이 내리더니 제지를 한다. 사진을 찍지 말라는 것이다. 혹시나 검문하는 모습 외국에 흘릴까봐 그런가? 오호.. 애네들 내 눈치보고 있었구나..

 사진의 약발이 닿아서 일까? 공안은 황급히 버스에서 내리더니 우리 버스를 먼저 보낸다. 앞에 버스들이 밀려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버스가 제일 먼저 떠났다.. 그 이유는 궂이 말하지 않겠다.^^

 버스를 타면서 어둠이 깔리고.. 찐홍에서 쿤밍까지는 18시간의 고행이었다. 머.. 이제 익숙해 질때가 되었지.. 여태까지 여행기를 쓰면서 장거리 버스나 기차를 탈때의 괴로움을 계속 서술했기에 더 이상 쓰지는 않겠다.

 다른때와 다를게 없었다. 소음이 심한 버스에서 잠이 들고.. 가다 깨고.. 다시 자고.. 그래도 혼자서 여러가지를 생각 할 시간이 있다는게 장점이기는 하다.

 벌써 며칠째 버스만 타는지... 몸이 좀 힘겹기는 하다.

 7월 5일(토)

 오전 7시 낯익은 풍경이 들어온다.. 와.. 드디어 쿤밍이구나.. 저번 겨울 동티벳을 들어가기 위해 쿤밍에서 긴장하면서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한 때가 생각이 난다.(결국 동티벳은 통과하는데 성공)

 이번에 쿤밍을 들린곳은 도시 자체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4계절이 항상 봄인 도시.. 사람이 살기에는 가장 적합한 도시라는 이야기를 듣는 쿤밍은 나에게도 편안함을 준다.

 궂이 곧바로 다리로 가지 않고 쿤밍에 온 것은 앞으로의 여행 계획상 쿤밍을 들를일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쿤밍에 도착하자 마자 한것은 오늘 밤에 출발하는 다리행 기차표를 끊는 것.

 역시 역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표를 살려고 줄을 서고 있고, 그 속에서 새치기를 하거나 서로 떠미는 장면은 중국 어느 역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

 표를 살려고 줄을 서는데 좀 이상하다.. 모든 사람들이 무슨 쪽지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뭐지? 몰라.. 배째.. 외국인이라 봐주겠지.

 드디어 내 차례라고 하고.. 아예 처음부터 외국인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역무원은 영어로 된 쪽지를 새로 가져오더니 적으라고 하는 것이다.

 아.. 사스 때문에 건강명세를 적는거구나.. 새치기가 빈번할 정도로 급한 표를 살려는 중국인과 언제나 화를 내는 역무원도 내가 명세서를 쓰는동안에는 얌전해 진다. 나를 중심으로 내 주위는 갑자기 조용해지고.. 무슨 시간이 멈춘것 같은듯한 기분도.. 이것도 외국인의 특권인가?^^

 표를 끊자마자 간 곳은 민족촌이다. 저번 여행때는 석림만 보고 갔는데 이번에는 민족촌을 보기로 했다.

 44번 버스를 타고 2위안의 요금을 내서 민족촌에 도착했다. 국제학생증과 국내학생증 2개를 꺼내서 당연하듯이 35위엔에 반표를 끊고(원래는 70위엔)

 들어가자 마자 공연이 열리는 민족으로 갔다. 바로 티벳족.

 아참. 민족촌은 26개의 민족이 지정된 장소에 건물을 짓고 자신들의 문화를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고 있었는데 각기 다른 시간대에 공연을 보여준다.

 낯익은 티벳인들의 건물이 보이고.. 공연시간이 되자 4명의 여인과 남자가 나와서 민속공연을 하는데.. 이건 티벳에서 듣던 음악과 판이하게 다르다. 아무래도 중국인의 입맞에 맞게 만든거 같다.

 바이족, 모수족, 이족.. 넓은 민족촌을 헤집고 다니고 공연도 몇개 보았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것은 와족의 공연이다. 와족촌에 들어가자 마자 느낀것은 무슨 아프리카의 한 부족에 온것 같았다. 다른부족들에 비해 중국풍도 적고 좀 원시적이지만 그들의 공연은 정말로 역동적이고 살아있었다.

 북과 나무 꽹가리 비슷한 악기로 음악을 내었는데.. 남자들 공연은 칼을 입에 물고 추는 칼춤이 인상적이고 여자들 춤은 긴 머리를 마구 흔드는 공연이 인상적이었다. 여자들의 긴머리를 역동적으로 흔들며 춤추는 것을 보면서.. 아 저게 얼마전 국내에 충격을 주었던 서태지 컴백공연때 나온 헤드춤의 원조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족촌을 돌면서 특히.. 중국인들 입맛에 맞게 만든 민속공연들을 보면서 다시한번 우리나라에 감사를 했다.

 만약에 독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조선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전통음악과 춤이 중국인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했다면..

 중국의 수도와 가장 가까우면서도 독립을 지킨 우리 민족이 새삼 자랑스러웠다.

 3시에 민족촌을 나오고 버스에 타는순간.. 엉덩이가 뜨거웠다. 엉덩이 부분의 청바지가 찢어져서 살이 햇볕으로 달궈진 의자에 닿은 것이다. 청바지가 찢어지고.. 그동안 노트북을 들고 다녔던 작은 가방이 찢어지고..

 일단 쿤밍역으로 근처 가게에서 가방을 샀다. 20위엔.. 정말 싸다.. 근처 옷시장에 가서 20위엔(3000원)_에 옷을 사고 DICOS라는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패스트푸드점에 갔다.

 오랫만에 햄버거를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햄버거 세트를 들고 2층에 자리를 잡을려는 찰나.. 앗.. 콜라와 아이스크림을 쏟았다..

 순식간에 내 주위는 난장판.. 점원이 왔다. 난 미얀하다고 했지만 점원은 괜찮다며 웃으며 치워준다. 너무나 고마워 가방안에 있던 월드컵 열쇠 고리를 주었다. 점원은 고마워 한다.

 햄버거를 다 먹고 나갈려고 하는데 아까 본 점원이 아닌 다른 점원이 내 주위에 서성이며 청소를 한다.

 아.. 아까 점원이 한국인이 기념품을 줬다고 이미 자랑했구나.. 다 먹고 나서 중국인처럼 쓰레기를 그대로 탁자위에 두었다.. 그리고 점원에게 가서 난 갈테니 치우라고 했다.. 물론 쓰레기와 함께 월드컵 기념품도 남겨 두었다.. 아.. 내가 생각해도 멋있는 발상이다. 최소한 몇명한테는 한국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었다는 뿌듯함이..

 저녁을 먹고 나오니까 열차출발시간까지는 5시간이 남았다.. 머.. 언제나 그랬듯 남은 시간은 밀린 여행기를 정리하는 시간으로 삼았다. 여행기를 쓰면서 내가 느꼈던 것들을 정리를 하고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10시 40분 피시방에서 나와 쿤밍역으로 행했다. 열차 출발이 11시 16분인 것이다.

 쿤밍역에는 사스 후폭풍이 불고 있었다. 후폭풍은 저번 티벳 여행때도 쓴 단어이지만 핵폭탄이 터지고 나서 시간이 조금 지나면 몰아치는 폭풍을 말하는것이다. 핵폭탄이 터지는 순간에는 좁은 지역의 사람들이 죽지만 그 이후 불어오는 후폭풍은 몇배가 넘는 사람들을 살상하고 방사능을 순식간에 퍼트리는 것이다.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에서는 핵무기 파워에 전략적 가치를 두기 보다는 핵무기를 쓰고 나서 불어오는 후폭풍에 더 많은 전략적 가치를 두고 있다.

 저번 2월말에 중국 춘절의 후폭풍으로 모든 교통비가 오르고 그마저도 구하기 어려웠던 상황이라면 이번 후폭풍은 사스의 영향..

 표검사보다도 체온검사와 확인도장이 찍힌 종이를 우선 검사를 하고 절차도 느렸다.. 저러다 기차 놓치는 사람이 있는게 아닐까?

 기차를 타고 나서도 예전에는 표를 걷었지만 온도 확인서만 걷는다.. 아무래도 중국 여행이 조금 까다로와 졌다는 것을 느꼈다. 한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그만큼 관광객이 줄어들어서 삐끼와 협상을 할때 훨씬 유리한 위치에서 협상할 수 있다는 점은 괜찮은거 같다.

 이제 다리다.. 다리의 한국인이 운영하는 No3게스트하우스에 가서 며칠 푹 쉴려고 한다.

 그동안 쉼없이 여행을 해서 며칠간의 휴식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는것을 몸이 느끼고 있었다.

 여느 중국의 도시에 비해 깨끗하고 쾌적한 찡홍시. 라오스에서 갓 들어온 나로서는 선진국으로 느껴졌다.

 하교하는 초등학생들.. 우리나라 아동의 모습과 흡사하다.

 찡홍시 중심가..

 찡홍~쿤밍 구간의 길에는 차밭이 많았다.

 공안이 버스를 검문할 때 잠깐 나와서 찍은 물소 사진. 이 사진을 찍은 덕분에 우리 버스는 일찍 떠날 수 있었다.

 운남 민족촌.. 26개 민족의 삶과 민속공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티벳 전통집을 꾸며 놓았는데.. 글세올시다. 내 경험상 저정도 규모의 집의 소유자는 공산당 간부밖에..

 티벳 민속 무용.. 여기서 들려주는 티벳음악은 티벳인 보다는 한족들 정서에 맞춘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자가 가장이 되는 모수족.. 민속춤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사실 모수족의 전통의 거의 사라졌다.

 공연이 많다보니.. 어느족인지 모르겠네.. 그냥 감상 하길..^^;;

 쿤밍에서 유래가 깊은 서산..

 여느 소수민족보다 특이하게 느꼈던 와족

 민속공연을 하는게 아니라 포크음악을 들려주었다.

 민족촌 가운데는 아름다운 탑이 있다.

 와족 공연.. 악기들이 특이하다

 서산과 어우러진 호수.. 아름답다..

 

 중국 여행기 2(7.6~7.12) 다리에서의 휴식 그리고 새로운 시작

 7월 6일(일)~9일(수)

 5일 밤 11시에 쿤밍에서 다리로 향하는 기차를 탔다. 기차를 탈 때 혼잡했던 이유중에 하나가 엑스레이 짐 검사를 해서 줄이 많이 밀렸었는데 이제는 거기에다 사스 체온검사가 추가 되었다.

 긴장된 마음으로 역무원이 나의 체온을 재고.. 체온은 34도.. 이론상으로는 난 저 체온증 환자인 것이다. 그런데 내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도 저체온증이니.. 기계가 의심스럽다.

 하루종일 민족촌을 돌아다니는 통에 기차에 타자마자 침대에 뻗었다. 요 며칠간의 강행군으로 몸이 많이 피곤했던 것이다.

 일어나기 싫은 새벽시간.. 기차는 다리에 멈췄다. 다리역의 정확한 지명은 샤관(하관)이라는 곳이다. 다리국의 고성이 남아 있는 다리고성으로 갈려면 샤관역에서 4번 버스(2위엔)를 타고 20분 정도를 가야한다.

 버스를 타고 다리로 가서 제일먼저 찾은곳은 한국인인 문사장님이 경영하는 NO3게스트 하우스 이다. 다리는 쉬어가기에는 가장 좋은 곳으로 여행자들 사이에 알려진 곳이다. 그 동안 피곤한 여정을 잠시 접고 이곳에서 며칠동안 쉬기로 했다.

 NO3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중여동에서 욤욤공주라는 아이디로 유명한 영심이 누나를 직접 만났다. 둘다 이름은 알고 있어도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게스트하우스의 손님은 나와 영심이 누나 둘 뿐이었다.

 문사장님은 다리에서 유명하신 분이다. 처음 본 나한테 푸짐함 아침과 저녁 식사를 대접해 주셨다.

 영심이 누나와 어울려 다녔으며 내가 온 이후로 하나둘씩 온 한국 사람들과 지내며 푹 쉬었다. 원래 계획은 2~3일 쉬다가 리장쪽으로 갈려고 했는데 다리라는 곳이 마음에 들었고 영심이 누나가 혼자 있으면 심심해 할 거 같아서 더 머물기로 했다.

 이 여행기를 읽는 이 들중에서 다리로 갈 일이 있으면 꼭 NO3게스트하우스 바로 앞에 피자가게에 가보길 바란다. 15위엔(2250원)이면 손으로 직접 만들고 구운 피자를 먹을 수 있다. 영심이 누나가 소개 시켜 줘서 가봤는데 피자 맛이 일품이었다. 가게 안에는 화로도 있었는데 바로 옆에서 피자를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다. 피자 역시 기름기가 없고 빵도 바싹바싹해서 정말 맛있었다.

 게스트하우스에 있으면서 중국인 종업원들과 친해졌다. 우리나이로 대학을 다닐 나이에 한달에 400~650위엔을 받으면서 그저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서 일하는 종업원들.. 옛날 우리나라가 가난할 때 집안에 입 하나 덜려고 부자집으로 가서 가정부 일을 했던 분들이 생각났다.  

 게스트하우스라는 하나의 공간에 같은 나이(21세)라도 잔소리를 들어가며 일하는 중국인 종업원과 유학 생활중 애인과 다리로 놀러와서 하루에 옷을 5번정도 갈아입으며 데이트를 하는 한국 유학생.. 정말로 대비가 되는 순간이다. 이들의 차이는 그저 어디에서 태어나고 누구한테 태어났냐는 차이일 뿐.. 그렇게 보면 나도 행복한 이들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스트 하우스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중국인 종업원에게 막대하거나 무관심하다. 하지만 난 그들에게 언제나 웃으면서 밥을 시켜서 가져오면 고맙다는 인사를 빼놓지 않았고 또한 월드컵 기념품도 나누어 주었다. 그들은 무척 고마워한다.

 난 그들에게 그저 마음 따뜻했던 한국인 남자로 기억되고 싶었다. 작은 행동에도 감동하는 중국인 종업원을 보면서 우리나라 여행자들이 좀 무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는 기념품을 살려고 물건을 고르는데 물건 파는 상인을 보니 정말로 이뻤다. 아.. 순간 정신을 못 차렸다. 필사적으로 가격을 깍아야 하는데 미모에 현혹이 되서 그저 물건을 집으면서 얼굴을 보는데 만족해 하고 있었다.

 옆에서 영심이 누나가 정신차리라고 말할 정도였다. 결국 기념품을 67위엔씩이나 사고 말았다.. 상인의 나이를 물어보니 18살이라고 한다. 발랄하고 이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이렇다하게 할 일이 없나 보다. 때문에 부모님을 도와서 잡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9일에는 다리시내 바로 옆에 유유히 흐르고 있는 얼하이 호수의 섬에 투어(150위엔)를 간 것이다. 문사장님과 8명의 한국인이 갔다. 외딴섬의 분위기도 좋았지만 푸짐한 먹거리들이 더 좋았다. 모닥불을 피우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마지막에는 함께 여행중인 2명의 유학생과 나와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유학생 둘은 평소에 서로를 의지하고 친하게 지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여행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서로 상처를 많이 받은 모양이다.

 여행을 함께 하면서 찢어지는 경우는 세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는 서로의 여행루트가 맞지 않아서이다. 한곳에 머물기를 좋아하는 사람과 여러곳을 둘러보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함께 여행하면 열에 아홉은 찢어진다. 둘째는 서로의 여행방식이 맞지 않는 경우다. 세 번째는 바로 돈문제 이다.

 이 두 유학생은 두 번째 유형인거 같다. 나한테 조언을 구하지만 난 아무런 해결책 보다는 그저 원론적인 이야기 밖에 하지 못했다. 서로 여행의 의미에 대해서 많은 견해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행’ 참 매력적인 단어이면서도 사람마다 생각하는 의미가 다른 것이다.

 난 여행을 왜 할까? 많은 경험과 추억들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여해을 하는 것은 바로 재미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둘은 여행이 재미 보다는 고통과 갈등으로 나타났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둘은 서로에게 상처를 안주려고 노력을 한다는 것이다. 여행자들의 갈등의 논쟁속에서 모닥불의 나무는 자기의 몸을 희생해서 불빛을 우리에게 비춰주고 있었다.

 7월 10일(목)

 섬에서 하루 자고 기대하는 마음으로 NO3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오늘 리장에서 영심이 누나가 잘 아는 동생들이 오는데 그중에 한명과 소개팅을 해준다는 것이다. 무척 기대가 되는걸..^^

 근처의 피시방에 갔다. 거기서 얼마전 경모형과 라오스로 되돌아간 경남이 형과 다음 챗팅을 했다. 경남이 형은 내일 다리로 온다는 것이다.

 헤어진지 얼마 안되서 다시 만나다니..

 하지만.. MSN으로 난주에서 나와 합류하기로 했던 후배와 통화가 되었다. 어제(9일)에 한국에서 출발해서 오늘(10일) 도착했는데 바로 난주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고 한다. 도착은 11일.. 이런 무식한 것들 첫 해외여행이면서 어떻게 기차표를 산거야? 어쩔 수 없다.. 이들과 시간을 맞출려면 곧바로 떠날 수 밖에

 곧바로 NO3에 가서 문사장님과 영심이 누나한테 작별 인사를 했다. 누나는 무척 아쉬운 듯 자신이 가지고 있던 중국여행책자를 기차안에서 보라며 나한테 주었다. 또 다른 아쉬움.. 바로 소개팅을 할려고 했던 중국 유학생과도 소개팅 하기 전에 아쉬운 이별을.. 난 그녀에게 웃으며 ‘이렇게 된 바에 손이라도 잡아봐야죠..’라고 말하며 악수를 했다.

 다리에서 곧바로 샤관(하관)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샤관에서 곧장 쿤밍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6시간에 걸친 고행끝에 쿤밍에 도착해서 내일 성도로 떠나는 침대기차표(201위엔)를 끊고 방을 잡았다. 처음에 40위엔을 부르는 방을 20위엔에 잡았다. 모두 다 사스 덕분.. 이제 휴식이 끝나고 새로운 모험이 시작된다.

 7월 11일(금)

 오후 1시 50분에 성도 떠나는 기차를 타기위해 1시에 역으로 갔다. 역시 체온을 재고 있었는데 나의 체온은 34.4도.. 저번보다 0.4도 오르긴 했지만 이론상으로는 난 여전히 저 체온증이다. 나 말고 내 주위 사람들도.. 이런 엉터리 검사를 왜 하는지 이해가 안간다.

 쿤밍에서 성도로 가는 구간은 절경이었다. 풍경을 제외하고는 여느때와 비슷한 기차 여행이었다. 티벳을 함께 여행할 동생들은 오늘 난주에 도착했겠지.. 마음이 급했다.

 7월 12일(토)

 오전 7시가 조금 넘어서 성도에 도착을 했다. 잠이 덜 깼지만 곧바로 성도에서 난주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진티엔(오늘) 난저우(난주) 잉워(침대) 이거런(1명)’ 이제 기차표를 끊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매표원의 한마디.. ‘메이요(없어요)....’

 순간 나의 머리 10cm 위에서 ‘개고생’이라는 단어가 해머가 되어 나의 머리를 강타 하였다.. 윽 잉쭈어를 타야 하다니.. 어쩔 수 없이 난주까지 가는 잉쭈어(140위엔)를 끊었다.

 잉쭈어를 많이 타봐서 그런대로 버틸 수 있지만 잉쭈어의 고생을 알기에 더욱 두려웠다.

 여태까지 가장 오래탄 기차와 버스를 순서대로 정리하자면.(이 기록도 훗날 서부티벳을 여행하며 갱신됨)

 1. 동티벳 참도~성도까지 비포장도로 버스 60시간

 2. 상해~쿤밍까지 잉쭈어 55시간

 3. 꺼얼무에서 라싸 트럭 히치를 해서 고산병 걸린채로 48시간

 4. 성도~청도까지 잉쭈어 40시간

 이 밖에도 많은 비포장도로 버스와 잉쭈어를 이용 했었다. 처음 탔을때는 고통스럽고 괴롭지만 내릴때는 커다란 성취감으로 다가왔다.

 특히 지난 겨울 춘절기간 상해~쿤밍구간 3박4일을 잉쭈어는 쿤밍에서 내렸을때 마치 군대에서 제대한 기분을 느꼈을 정도로 커다란 성취감으로 다가왔다.

 여하튼 오늘도 각오를 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차표를 사고 잠시 성도시내를 돌아다녔다. 성도는 2번째 오지만 2번 합쳐서 13시간을 채 머물지 못했다. 둘다 그저 거쳐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참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언젠간 시간을 내서 사천성을 여행하고 말리라.. 또 다른 목표가 나한테 주어졌다.

 짐을 역근처 보관소에 맡기고 그냥 아무런 목표없이 걸었다. 걷다 보니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고 있는 큰 건물이 보였다.

 호기심에 한번 가보니 무슨 취업 박람회 같았다. 어딜가나 취업의 열기는 뜨겁구나.. 진지하게 설명을 메모해가며 적는 예비 사회인들을 보면서 사람사는 것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옆 건물에서는 유학 박람회인듯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많은 선진국의 학교에서 유학생들을 유치할려고 학생 한명한명에게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미국, 호주와 유럽을 비롯해서 일본, 싱가폴... 그런데 우리나라는 없었다. 하긴.. 수많은 유학생들을 보내는 판에 다른나라에서 유학생들을 유치할 생각을 하긴 힘들겠지..

 2시에 성도에서의 짧은 여정을 끝내고 기차에 올라탔다.

 잉쭈어라서 허리가 좀 아팠다. 잉쭈어를 타고 4시간후..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게된 근처 좌석의 중국 대학생 3명이 먼가를 상의하는 것 같았다. 오호.. 대번에 나한테 말을 걸려고 하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영어로 이야기 하기에는 자신이 없나 보다. 그려 나도 심심한테 어여 와서 말이나 걸어라.. 한 학생이 크게 호흡을 가다듬더니 영어로 말을 건다. 머가 그렇게 겁나는지.. 떨면서 영어로 말 한다.

 한국에 대한 궁굼증을 풀어주고 그들의 생각도 들었다.

 그들과 이야기 하면서 난주에서 성도까지 유학을 와서 3개월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대학생들의 홀가분한 표정이 좀 부럽다고 해야 하나.. 난 언제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가나.. 지겨운 잉쭈어 였지만 오랜만에 중국대학생들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다리고성안.. 사스의 영향탓인지 저번 겨울보다 외국 관광객이 줄어들고 중국 현지인들이 많았다.

 다리고선 성문.. 위에 올라가는데 돈을 요구해서 올라가지 않았다.

 중화사에서 본 삼탑과 다리시내의 모습..

 섬으로 투어때 얼하이 호수를 배경으로..

 다리에서 신세를 진 문사장님과 영심이 누나

 쿤밍이서 성도로 가는 기차.. 그나마 쾌적했다.

 성도 시내에 위치안 사원.. 많은 사람들이 초를 키면서 소원을 빌고 있었다.

 사원안은 사진과 같이 많은 노인들이 거닐기 좋은 정원으로 꾸며져 있다.

 KFC 2층에서 바라본 성도 시내.. 사람들로 넘친다.

 상품을 홍보하기 위한 이벤트..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유일한 백색 마오쩌둥상. 이런 것을 보면서 중국의 민주화의 길은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서민들의 삶을 옅볼 수 있는 뒷골목이 난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