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여행기 1(6.25~26) 라오스 들어가기, 비엔티안

 6월 25일(수)

 원래 출발이 오후 7시였던 하노이~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으로 가는 버스는 8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을 했다.

 비엔티안으로 가는 버스는 25달러로 여태까지 이동했던 것에 비하면 매우 비싼편이지만 버스 시설은 여태껏 탔던 버스들중에서 최고였다.

 버스안에 화장실과 정수기도 있고 의자 역시 푹신푹신한 의자였다. 운전기사쪽으로는 VCD를 볼 수 있는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버스에는 나를 비롯한 이숭용씨 가족과 한사람의 한국인이 더 탔다.

 이름은 김대인.. 나보다 1살 많은 형으로서 재일교포 3세이다. 한국말을 들을 수는 있는데 말하는게 서툴다고 한다.

 재일교포를 직접 만나는건 처음이라 많은 말을 할려고 했지만 대인이 형은 나와 이야기 하는 것 보다 일본어가 능통한 이숭용 아저씨와 일본어로 이야기 하는 것이 더 나은 듯 했다.

 버스에는 외국인들 이외에 비엔티안으로 가는 라오스인들이 몇 명 있었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기쁨과 설레임에 외국인들한테도 명랑하고 하고 쾌활하게 외국인들한테 인사를 한다.

 그 모습들을 보면서 작년의 나의 모습이 떠올라 흐뭇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외국으로 나갔을때.. 설레임과 신기함속에 외국인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인사하고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난다. 풋.. 나도 그럴때가 있었지.. 어라? 아직 1년도 안되었는데..

 버스는 어둠속에서 남쪽으로 향했다. 출발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잠드는 승객들은 많아지고.. 후에에서부터 같이 한 사모님과 지금 같이 여행중인 신이와 현이의 교육과 사모님이 젊었을때 여행을 했던 경험들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사모님 역시 남편인 이숭용씨 못지 않다고 생각이 된다. 초등학교 3학년인 현이를 1달동안 결석을 하게 하면서 같이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결정이 아니다.

 사모님과 난 앞에서 틀어주는 라오스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한참 웃었다. 우리나라의 70년대 전형적인 버라이어티 쇼.. 남진이나 나훈아를 떠올리는 듯한 가수가 나와 윗도리 앞단추를 몇 개 풀은 채 댄서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인상깊은 댄서의 허리꺽끼 춤) 그 노래에 흥얼거리는 라오스 인들..

 모두가 잠들 시간.. 나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잠이 들고.. 앞에 설치된 티비에서 버라이어티 쇼만 외로이 정적을 메꿀 뿐이었다.

 오전 5시 반쯤에 일어나니 버스는 이미 산악지역으로 들어왔다. 베트남에서는 거의 처음 있는 일.. 바로 옆에는 절벽이 있는데 이 운전기사는 머가 그렇게 바쁜지 난폭 운전으로 우리 모두를 깨운다.

 6시가 조금 넘었을때 버스는 멈췄다. 드디어 베트남~라오스 국경에 도착한 것이다. 7시에 국경이 열리므로 다들 버스에서 잠시 내려 쉬었다.

 생각보다 한적한 곳이다. 주변 경치를 감상하고 있을때 국경수비대인듯한 관리 한명이 오더니 베트남이 어떠냐고 물어본다. 베트남은 아름답고.. 무엇보다 강한 민족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상대방 기분좋게 하는 말은 전혀 돈이 드는 것은 아니니까.. 그는 만족한 듯 라오스 여행을 잘 하라며 돌아간다.

 7시가 되고 국경통과 업무가 시작되었다. 이숭용씨 가족과 제일교포 대인이형과 함께 줄을 섰는데 대인이형 여권에는 KOREA라고 써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국적은 한국인인 대인이형.. 여권은 한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에서 찍어준다고 한다.

 관리들이 생각보다 빨리 일을 처리해줘서 맨뒤에 줄을 섰던 난 30분도 안 되어서 앞에 서게 되었다. 나의 여권을 내밀자 아까 대화한 관리가 웃으면서 스탬프를 찍어준다. 베트남의 마지막을 미소와 함께 끝내서 기분이 상쾌하다.

 라오스 국경까지는 100미터가 조금 넘나.. 도착하자 서류하나 작성하고 스탬프를 찍음으로서 끝.. 이제 라오스다!!

 베트남~라오스 국경을 넘었다고 다 온게 아니다. 비엔티안까지는 한참을 가야 했다. 길은 비포장도로이고 크게 흔들렸다.

 버스에서는 희안한 여행객기 있었는데 머리는 완전히 빡빡깍고 버스를 타는 내내 인상을 쓰는 잉글랜드인이다. 이 사람이 희안하다는 것은 졸리면 말설이지 않고 버스 복도에 매트리스를 깔고 그래도 잔다는 것이다. 와.. 이런 철면피도 있다니.. 덕분에 버스안에 있는 사람들은 흔들리는 버스에서 이 철면피를 밟게 하지 않을려고 조심조심 다녔다.

 오후 3시가 되자 포장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제 비엔티안에 가까워 올려나.. 1시간이 더 지나자 비엔티안에 도착했다.

 처음 도착하고 나온 첫마디가..‘무슨 수도가 이래..’ 5층 이상의 건물이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한나라의 수도라고 하기에는 뭔가 엉성한 면이 많았다. 집들도 촘촘히 있는게 아니라 널찍히 떨어져 있고 차들도 많지 않고 그렇다고 오토바이 역시 적고.. 먼가 한산했다.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 우리를 기다리는건 이곳에서 택시역할을 하는 툭툭이었다. 툭툭은 오토바이와 자동차의 중간이라고 해야 하나.. 차체를 개조해서 사람과 물건을 싣고 있었다.

 대인이 형이 가지고 있던 일본어 가이드북에 한국인이 경영하고 침대한칸에 하루에 2달러씩 하는 게스트하우스가 있다고 했다. 한국인 여행자한테도 유명한 RD게스트 하우스 이다.

 툭툭을 타고 게스트 하우스로 갔다. 게스트 하우스는 비교적 쾌적하고 안락했다. 무엇보다도 저렴하다는데 장점이 있다.

 정리를 마치고 저녁을 먹기 위해서 이숭용씨 가족과 나, 대인이 형이 다시 만났다. RD게스트 하우스에서 멀리 안떨어진 메콩강가에서 밥을 시키고 맥주한잔을 했다.

 유유히 흐르는 메콩강에 노을이 지고 저건너편 태국에서도 불이 하나둘 켜지고.. 이러한 분위기에서 먹는 비어라오(라오스의 대표적인 맥주)의 맛이란...

 밥을 먹으면서 난 과일쉐이크의 팬이 되버렸다. 생과일과 얼음을 넣고 믹서기로 돌려서 쉐이크로 만든것인데 정말 시원하고 맛있다. 가격도 3000낍(360원)~5000낍(600원) 밖에 안한다.

 대인이 형과 나 이숭용씨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난 다른나라의 교포와는 달리 왜 재일 교포는 궂이 한국국적을 고집하는지 궁굼했다. 형의 대답은 간단했다. ‘저는 한국인이잖아.’ 한국말을 잘 못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한국을 사랑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국국적을 고집하면 일본사회에서 불이익이 있을텐데.. 그래도 형은 결혼하고나서 자식이 있게되면 자식한테도 한국국적을 물려줄거라고 한다. 대인이 형을 보면서 얼마전 국민들을 기만한 스티붕유와 대비가 되었다.

 한국사회와 일본사회에 대해서 대인이 형과 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중간에 이해하기 힘든면이 있으면 일본통인 이숭용씨가 중간에서 정리를 해주었다.

 술자리를 마칠 무렵 난 형한테 한마디 했다. ‘형.. 내가 형을 만나자마자 형이라 부르며 형을 따르는 것은 한국인은 원래 마음을 쉽게 여는 습성이 있어서도 그렇지만 다른나라에 살면서도 한국에 사는 사람보다 더 한국을 사랑하는 형에게 배울것이 많아서야..’라고 했다.

 조용한 비엔티안을 유유히 흐르는 메콩강을 보면서 난 또 다른형태의 나라사랑을 보았던 것이다.

 술자리를 마치고 게스트하우스의 내 침대로 들어왔다. 바로 옆침대 사람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그는 호기심이 생겼는지 이것저것 물어본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인으로서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에게 아프가니스탄 비자와 파키스탄 리턴 비자, 그리고 이란비자에 관한 중요한 정보들을 들었다. 어쩌면 그 때문에 내 여행에 전면적인 수정이 가해질지도 모르는 살아있는 정보들이다.

 아프가니스탄 교수님과 국제정세에 대해서 생각들을 교환한 뒤 잠들었다.

 오늘은 6.25동란 53주년이 되는 날이다. 선조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이렇게 여행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6월 26일(목)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고 싶었지만 약간 과음을 한 관계로 해가 중천에 뜨고 나서야 일어났다. 대인이형 역시 뻗어있기는 마찬가지(약골~ 겨우 그거 마시고)

 대인이 형과 난 근처 식당으로 가서 샌드위치로 아침을 떼웠다. 아침을 먹으면서도 대인이 형과 난 많은 이야기를 한다. 대인이형은 한국에 대해서 많이 궁굼한 모양이다. 나 역시 일본에 대해서는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각자의 여행을 위해 아침을 먹고 헤어지고..

 오늘의 미션은 비엔티안 돌아다니기..

 일단 제일 먼저 간곳은 라오스 혁명기념관이다.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이라고 해야 하나.. 라오스의 고대사와 현대사 유물과 사진들을 전시한 박물관이다.

 들어가는 순간 놀랬다.. 왜냐? 박물관이 이렇게 허술하게 지어질 줄아야... 국립박물관이라고 해야 하기엔 작은 2층 건물이었다.

 그래도 내실이 좋으면 되지.. 일단 티켓을 끊고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 나라의 박물관에나 다 있는 고대 유물들.. 하지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왜냐.. 이렇게 허술할수가.. 보전처리는 고사하고 관람객들이 쉽게 만질 수 있게 전시를 해 놓았다. 또한 만져도 아무소리를 안 한다.

 2층은 더 가관이다. 라오스 독립운동때 쓰던 무기와 총들을 전시해 놓았는데.. 진열장은 고사하고 지키는 직원이 한명도 없는것이다.. 와.. 이런 박물관은 처음이다. 이거 너무 관광객들을 믿는거 아냐? 배째는건지... 관람객들을 믿는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마 세계에서 유일하게 유물들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박물관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2층은 온 전시실이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 놔서 1층으로 나오기가 싫었다.

 박물관을 나오고 향한곳은 탓담이라는 탑이였다. 박물관에서 왼쪽으로 200미터도 채 안걸어서 보였다.

 ‘검은 탑’이라는 뜻의 탓담은 비엔티안에서 가장 오래된 탑 중 하나로, 세워진 연대가 불분명하다. 라오스 국민들을 지켜 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이 탑 역시 보자마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론니플래닛, 헬로우에 비엔티안의 주요 볼거리에 소개될 정도 귀중한 문화 유산인 이 탑은 곳곳이 균열되어 있고, 탑 이곳저곳에 잡초가 자라고 있었다. 또한 관람객들이 만지거나 심지어 올라가도 제지 할 사람이 없다.

 아까의 박물관에서 가졌던 의문이 풀렸다. 관광객을 믿는게 아니라 그냥 배째는거다. 난 탑에게 한마디 했다. ‘으이구..탑아.. 다른나라에서 태어났으면 진작에 호강할텐데.. 그래도 살다보면 좋은일 있으니 그때까지 비엔티안이나 잘 지켜라..’

 다음은 대통령궁을 갔다. 한나라의 국가 수반인 대통령이 사는곳 답게 건물은 백악관을 모방해서 잘 지어져 있었다.

 근무중에 하품하며 졸고 있는 대통령궁 경비원을 뒤로하고 간곳은 대통령궁 바로 앞에 있는 비엔티안에서 가장 오래된 왓씨씨켓 사원.. 가이드 북에는 화려한 수식어로 사원을 설명하고 있지만.. 난 이미 티벳에서 많은 화려한 사원들을 본 몸이 아닌가.. 이미 사원에 대해서는 눈이 높아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발길을 돌린곳은 바로 독립기념탑이다.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탑으로 대통령궁에서 좀 걸어가야 했다.

 바로 앞에서 보니 프랑스의 개선문과 흡사했다. 독립기념탑에는 1000낍(120원)의 입장료를 내고 독립기념탑 꼭대기로 올라 갈 수 있었는데... 독립기념탑 역시 나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독립기념탑 3,4층 전체가 물건을 파는 상점들인 것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남대문안에서 장사한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옥상으로 올라가니 비엔티안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그 이야기는 높은 건물이 없다는 뜻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렇게 확 트인 시내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비엔티안 시내를 감상했다.

 다시 내려오고 나서 독립기념탑 바로 아래에 있는 가게에서 콜라한병 시켜먹었다. 가격은 2000낍(240원) 콜라를 들이키며 땀을 식히고 있을때 한 라오스 여자애가 말을 건다. 라오스인으로는 드믈게 영어가 유창하다.

 이름은 그히타로서 16살이라고 한다. 비엔티안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최근 방학을 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한다. 방학? 벌써? 방학이 며칠이냐고 하니까 3개월이라고 한다. 한국은 45일이라고 하니까 이해가 안 간 듯 고개를 갸우둥 거린다.

 그히타와 이야기 하고 이메일 주소를 교환한뒤 걸어서 RD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비엔티안 시내 돌아보기 미션은 3시간만에 막을 내렸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샤워를 하고 시원한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 인상좋은 사모님과 라오스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게스트하우스 사모님의 추천으로 사모님과 나 그리고 같이 있었던 이숭용씨 가족과 한국식당으로 밥을 먹으로 갔다.

 쌈밥집이었는데 한국과는 다르지만 이 식당에서 먹는 쌈밥의 맛은 그야말로 환상이다. 쌈밥과 파인애플에 담긴 비빔밥을 정신없이 먹고나니 배가 거의 터질 지경이었다.

 라오스에는 차를 많이 발견하지 못했는데 그 이유중에 하나가 차가 수입되면 관세가 무조건 180%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1000만원하는 차가 들어오면 세금만 1800만원이고 결국에는 2800만원에 팔린다는 것이다.

 이 곳 핸드폰 역시 색다른 시스템이다. 핸드폰을 쓰다가 월말에 정산을 해서 내는 것이 아니라 미리 15달러를 내고 칩을 사서 핸드폰에 다는 시스템이다. 핸드폰 역시 차와 마찬가지로 무척 비싸다고 한다.

 밤이 되자 대인이 형과 맥주한잔 하러갔다. 대인이 형과 난 이미 우정으로 똘똘 뭉쳤던 것이다.

 대인이 형은 조총련계 고등학교를 나와서 수학여행을 북한으로 다녀왔다고 한다. 북한에 머물면서 원산, 평양, 백두산을 돌아보았다면서 정말로 북한 사람들은 불쌍하게 산다고 했다. 지금은 한국국적이라서 북한을 방문하지 못한다고 한다.

 대인이 형과 이야기 하면서 우리나라의 삶의 질이 일본보다 크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대인이형 나이에 한달 월급은 24만엔.. 우리나라 돈으로 240만원정도 한다.

 표면적으로는 우리 보다 많지만 상대적으로 비싼 식비, 의료비.. 특히 일본에서 집 값이 웬만한 아파트가 4000만엔(4억원)으로 장만할려면 평생 노력을 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전자제품과 같은 경우는 싸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 가까우면서도 너무 다른 나라이다. 나의 일본에 대한 감정은 보통한국인이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감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단 한가지 마음에 드는건.. 일본이 발전하고 잘 살기에 우리나라도 자극을 받고 발전할 수 있었고 지금은 많은 나라들이 부러워 할 정도의 위치에 섰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더 일본을 바라보며 달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라오스 국경 마을 전경

 혼자 여행중인 영국 여인과 함께(그녀는 23살)

 베트남~라오스 국경 라오스측 볼더

 대인이 형과 나.. 만난지 몇시간도 안되 친해졌다.

 산악국가 라오스의 전경.. 신록이 아름답다.

 다른이의 시선은 상관없이 졸리면 버스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자는 잉글랜드 여행자

 아름다운 기암괴석..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지는 않다.

 비엔티안 터미널.. 허름하기 짝이 없다.

 우리 일행은 뚝뚝이를 타고 게스트하우스로 갔다.

 메콩강전경.. 저 멀리 보이는 땅이 태국이다.

 라오스에서 유일한 경기장. 작지만 시설은 깨끗하다.

 라오스 역사 박물관 전경

곳곳에 풀이 무성한 탓담탑.

 대통령궁.. 깨끗하기는 하지만 규모가 작다.

 대통령궁 바로 옆에 있는 사원. 불교국가 답게 화려하다.

 터미널 옆의 큰 마켓.. 아마 라오스전체로 볼 때 가장 클 듯..

 프랑스 개선탑을 본딴 독립 기념탑

 독립탑 위에서 바라본 라오스전경. 비엔티안은 라오스 수도임에도 5층 이상의 건물이 전무하다.

 발랄한 라오스 여고생 그히타.

 비엔티안의 선교사님이 운영하시는 식당의 별미 파인애플 밥

 

 라오스 여행기 2(6.27~28) 즐거운 레프팅의 추억 방비엥

 6월 27일(금)

 9시쯤에 일어나서 곧바로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방비엥으로 가는 10시반 차를 타기 위해서인데 주말이니만큼 빨리가서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엔티안에서 가장 큰(아마 라오스에서 제일 크다는 생각) 아침시장 옆에 있는 버스터미널로 가서 10시반행 버스에 배낭을 집어 던져놓고 아침을 먹을 곳을 찾았다.

 바로 옆 시장 가게.. 이곳에서 바게트빵에 여러 가지 음식들을 집어 넣고 샌드위치를 팔고 있었다. 값도 저렴하고 무엇보다도 맛 있었다.

 다 먹을 수 없어서 반은 아침으로 먹고 반은 점심으로 먹기위해 싸달라고 했다. 예쁘게 종이 포장지로 싸준다.

 10시 반이 되자 방비엥으로 가는 버스가 출발했다. 몇몇 외국인과 라오스사람으로 북적거리는 버스..

 방비엥으로 가는 길은 아스팔트가 깔려 있있어서 대채로 좋았으며 멋진 라오스의 풍경들이 스쳐 갔다.

 4시간이 지나니 방비엥에 도착했다.. 와.. 절경이다.. 무슨 산수화에서 나올법한 풍경들이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니까 비가 오고 있었다.

 RD게스트하우스 아저씨가 가르쳐 준대로 싸이송게스트(saisong)를 찾았다.

 싸이송게스트하우스는 메콩강변에 위치하고 있으며 방 한칸에 3달러 였다. 나와 대인이 형 그리고 우리에게 묻혀온 터키 여행자 오스만.. 이렇게 3명이서 각자 1달러씩 내고 방하나를 잡았다.

 산수화에 나올법한 산과 유유히 흐르는 강.. 거기를 줄침대에 누워 바라보는 기분.. 환상이었다.

 짐을 풀고 가장 먼저 간 곳은 방비엥에서 유명한 탐짱동굴. 방비엥에서 15분정도 걸어가야 한다.

 동굴로 갈려면 리조트를 들어가야 하는데 요금은 1000낍이다. 동굴에 들어서자 다시한번 돈을 받는다. 9000낍.. 윽 비싸다..

 동굴로 향하는 계단을 오르니 전망대가 있다. 거기서 바라보는 방비엥의 평화로운 모습..

 동굴은 머.. 종류석 동굴이 다 비슷비슷하지.. 우리나라의 종류석 동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동굴 구경을 끝내고 다시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와서 내 노트북에 있는 음악과 뮤직비디오를 감상을 했다.

 노트북에는 영화음악과 더불어 예전에 유명했던 외화 시리즈 음악이 있었다. A특공대, 맥가이버, 전격Z작전, 스머프등 향수를 불러 일으킬만한 음악들이다. 터키인 오스만과 나와 대인이 형은 웃으면서 음악을 들으며 이야기를 했다.

 터키에서도 A특공대, 맥가이버, 스머프, 600만달러의 사나이등이 인기가 있었나 보다. 그런데 일본에서 자란 대인이 형은 맥가이버와 스머프를 모른다.

 그런데 노트북을 검색하다 보니 제작년에 하도 신기해서 받아놓았던 뮤직비디오가 있었다. 일본인 그룹으로 이름은 YATTA.. 아마 한국에도 아는이가 드물 것이다.

 35~37세의 중년아저씨 그룹으로 한가지 특징이 있다면 팬티만 입고 노래를 하는 것이다. 또한 그들의 2:8 가르마와 환상적인 아저씨의 똥배 몸매를 본다면 누구든 오래 기억할 것이다.

 대인이형은 정말로 오랜만에 YATTA를 봤다며 반가워 하고, 오스만은 한번 뒤집어 진뒤 그 이후로 계속 YATTA노래를 흥얼거린다..(기회가 되면 여러분도 직접 보길..)

 난 오스만에게 장난을 쳤는데.. 바로 전지현 사진을 보여주면서 내 여자친구라고 했다. 오스만은 정말 이쁘다고 하면서 그런데 나이가 14~15살 밖에 안된거 같다고 한다.

 머? 전지현이 14살로 보여? 말도안되..

 서로의 문화의 동질성을 발 저녁을 먹으로 갔다. 우리 일행(나, 대인이형, 터키인)은 피시방 바로 앞에 있는 식당으로 갔는데, 이곳은 비엔티안보다 더 저렴하고 맛있었다. 특히 과일 쉐이크(3000낍)가 끝내 주었다. 덕분에 2개나 먹었다.

 밤이 되자 대인이 형과 난 게스트하우스에서 맥주 한잔 했다. 맥주를 마실 때 터키인 오스만도 자기 돈으로 음료수를 산뒤 우리와 같이 이야기 했다.

 오스만은 나보다 1살 많고 활발하다 못해 오바를 좀 한다. 키는 좀 작지만 친근하고 특히 작년 월드컵에서의 한국과 터키에 대해서 좋은 기억들을 가지고 있었다.

 맥주를 마시다 보니 웬 바이킹이 들어온다.. 스위스인으로 이름은 롤리였다. 난 그에게 간달프(반지의 제왕에서 나오는 할아버지)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그는 ‘오우..간달프’라며 자기는 25살 밖에 안됬다고 한다..

 머? 나랑 동갑이라고? 말도 안되.. 생일도 나보다 불과 8일이 빠른 78년 6월 11일... 어떻게 나와 동갑이 저렇게 겉 늙을 수가..

 그런데 오스만이 옆에서 자꾸 내 여자친구가 정말 이쁘다며 깝죽거린다. 롤리는 사진을 한번 보여달라고 한다. 난 여자친구가 못 생겼다며 사진을 보나 마나다라고 말했다. 그래도 보여달라고 한다. 휴.. 또 전지현을 내 애인으로 만들어야 하는군..

 롤리에게 보여줬다. 그는 ‘Oh my god'이라며 이게 머가 못생긴거냐고 하며.. 18살로 보인다고 한다.. 그나마 오스만 보다 낳군.

 이런저런 이야기로 서로가 친해질 무렵 롤 리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종이로 싼다.

 말로만 듣던 마리화나 이다. 라오스는 이런 마약에 노출이 되어서 누구나 쉽게 마약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일부러 마약을 할려고 라오스로 들어오는 외국인이 많다.

 태어나서 마약을 처음 봐서, 한번 냄새를 맡아보니 담배보다도 냄새가 맹하다.. 하지만 불을 붙이면 건강에는 치명적..롤리는 마리화나를 피면서 감상에 잠긴 듯 하다.

 낯선곳이지만 새로 많은 친구들을 알게 되어서 알 찬 하루였다. 나 홀로의 여행은 외로울때가 있지만 그보다도 더 많은 친구들을 만들어 주는 특징이 있다.

 원래는 내일 루랑프라방으로 갈려고 했지만 이왕 온 김에 캬약레프팅을 하기로 했다.

 휴.. 내일이 기대 되는군..

 6월 28일(토)

 단돈 6달러(7200원)으로 아침, 점심 식사와 하루종일 카약을 탈수 있는 투어.. 비록 비가 오기는 했지만 놓칠 수 없었다.

 대인이 형과 나 오스만은 아침을 먹으로 여행사로 갔다. 아침은 빵과 계란 후라이.. 오랜만에 계란 후라이를 먹어본다.

 9시반에 카약을 실은 트럭에 6명이 탑승했다. 트럭은 상류쪽으로 꽤 멀리 달려갔다.

 이번 투어에 참여자는 나와 나와 많은 대화를 해서 한국어 실력이 부쩍늘은 대인이형, 어제 본 야타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아직도 흥얼거리는 오스만, 멋진 미국인과 글래머 중국계 캐나다 커플, 인상좋은 잉글랜드 아저씨..

 3분동안의 짧은 교육을 마치고 카약을 탔다. 빠른 물살을 헤쳐나가는 스릴과 병풍처럼 펼쳐진 환상적인 자연경관..

 1시간정도 카약을 타고 나서 도착한 곳은 한 마을이었다. 마을에는 묶여있는 원숭이가 반갑게 맞아주었는데 사람한테 떨어지지 않을려고 한다.

 마을에서 튜브를 지고 간 곳은 산으로 가로막힌 작은 강가였다.. 여기서 멀 할라 그러지? 가이드는 초를 하나씩 나누어 주면서 튜브를 타고 동굴로 가라고 했다.

 사람이 하나 절벽에 들어갈만한 작은 공간으로 튜브를 타고 들어 가니 큰 종류 동굴이 보였다. 환상이었다. 물에 반쯤 잠긴 동굴.. 튜브하나에 몸을 의지하고 발가락 사이에 초를 끼우고 양손으로 노를 저으며 동굴 위쪽으로 거슬러 갔다.

 악의 무리를 무찌르려 동굴을 탐험하는 구니스와 같은 영화에서 나오는 장면처럼.. 여기저기에는 종류석들이 새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300m정도를 거슬러 올라갔다.

 아름다운 광경을 손으로 직접 만져보고 튜브를 타면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좋았지만 이렇게 동굴이 관광객들에 의해 파괴되어 간다는 씁씁함도 있었다.

 동굴탐험이 끝나고 점심을 먹었다. 볶음밥과 빵 그리고 바나나.. 배불리 먹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어제 대화 했던 것처럼 A특공대와 맥가이버, 스머프 이야기를 했다. 역시.. 다들 보았던 드라마고 모처럼 추억에 잠기는 듯 했다. 영국인 아저씨는 마리화나를 종이에 싸더니 담배피듯이 핀다.

 1시가 되어서 다시 카약을 탔다. 비가 와서 물살은 더욱 빨랐고 스릴역시 더 했다. 간혹가다 뒤집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다들 어린애처럼 신나했다.

 중간에 카약을 뭍에다 대고.. 이번에는 7m정도 되는 절벽에서 다이빙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모두들 두려워하며 차례를 미루고 있을때 그냥 내가 먼저 뛰어들었다. 어짜피 다들 할건데.. 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스릴과 다이빙 하는순간 솟구쳐 오르는 기분..

 내가 하고 나서 모두들 용기가 났는지 다들 풍덩풍덩 잘도 들어갔다. 또 한번 스릴을 맛볼려고 한번 더 했다.

 무서워 하는 오스만에게 난 2번이나 했다니까 자극을 받았는지 다이빙을 하러 간다..

 다이빙 시간이 끝나고 또 카약을 탔다.. 아침에 자동차가 멀리도 갔나 보다.. 이렇게 오래 타다니..

 중간에 내려서 라오스 농가를 보는 시간이 있었다. 거기에는 미국인 봉사원이 기거하고 있었는데 미모의 미국 여인이었다. 그녀로부터 봉사활동의 많은 설명을 들었다.

 다시 또 카약.. 정말 질리도록 탄다.. 카약을 타면서 서로 시합을 하고 서로의 배에 물장난도 치고.. 또 강변에 사람이 있으면 인사를 하고.

 시간이 언제 갔는지.. 4시반이 되어서 방비엥에 도착했다. 정말 오늘 하루 재미있게 놀았다. 여전히 비는 오고 있었지만 만약에 이 투어에 참가하지 않았더라면...

 어제 갔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이렇게 여행기를 정리하고 있었다. 4일치를 한꺼번에 쓸려니 정말 빡세다.

 이렇게 많은 분량을 쓰면서도 사실 빼먹는 내용들이 많다. 그만큼 여행은 나에게 많은 경험과 추억들을 안겨준다. 일상생활에서의 하루하루는 그저 스치는듯한 기분으로 빨리 지나가지만.. 여행지에서의 하루는 평생 추억에 남는다.

 

탐장동굴 입구.. 입장료가 비싼게 불만이었다.

 다리위에서의 멋진 포즈^^

 동굴안에 있는 재단.. 여기서도 미신을 믿는듯하다.

 탐장동굴 정상에서 바라본 방비엥..

 비가 떨어지는 연못.. 사진이 멋지게 나와서 게시

저렴하고 편한 사이송 게스트하우스에서의 휴식

 시장에는 이런 벌레도 판다.. 어떻게 조리할까?

 방비엥 시장 풍경

 

 라오스 여행기 3(6.29~7.1) 천년의 고도 루랑프라방

 6월 29일(일)

 10시에 출발하는 루랑프라방행 버스를 타기 위해 9시반에 체크아웃을 했다. 루랑프라방까지는 50000낍(6000원) 생각보다 비싸다고 생각되었지만 다른 버스를 찾을 수 없기에 그냥 탔다.

 버스안에는 모두 외국인 승객인 것으로 보아 현지인들이 이용하는 값싼 버스는 따로 있나 보다.

 예정보다 조금 늦은 10시반에 출발을 했다. 내가 앉은 바로 앞자리에 2명의 동양인 여자가 앉았다. 앉는 폼이 영 느슨한 것을 보아 직감적으로 한국인임을 알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한국인 인가요?’ 역시 반갑게 인사를 한다.

 베트남에서 어학연수를 하다 라오스를 여행 온 한국인 여학생 이다. 이런 오지까지 한국인의 발길이 닿다니..

 비엔티안~방비엥 구간과는 달리 방비엥~루랑프라방은 구간은 많은 고개를 넘어야 된다. 길이 험하기는 하지만 아름다운 라오스의 산악과 나무로 지어진 라오스 전통 가옥을 볼 수 있어서 슬슬 감상하면서 왔다.

 역시 북쪽으로 가면 갈 수록 차의 숫자가 줄어 든다. 그만큼 문명의 때가 덜 묻는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는 5시가 다 되어서 루랑프라방에 도착 했다. 우라나라의 경주, 일본의 교토, 베트남에 후에가 있다면 라오스에는 역사의 고도 루랑프라방이 있다.

 도시전체가 1995년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었다. ‘백만마리 코끼리의 나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도차이나 반도를 호령했던 옛왕국의 영화를 누리다가 18세기 비엔티안으로 수도를 옮기기까지 라오스를 이끌던 도시이다.

 처음 비엔티안에 도착했을때 ‘이게 무슨 도시야?’라는 말이 나왔었는데 여기까지 오고 보니까 ‘그나마 비엔티안이 대도시 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루랑프라방은 발전은 더디지만 그만큼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도시의 분위기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라고 할까..

 버스에서 내리니 계속해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와 제일교포3세인 대인이형 버스에서 만난 여학생 2명은 툭툭을 타고 바로 위라데사 게스트 하우스로 갔다. 이곳에서는 가장 저렴한 게스트하우스이다.

 2사람이 쓸 수 있는 3층방이 하루에 3달러.. 대인이 형과 내가 1.5달러씩 내면 된다. 3층이라서 그런지 루랑프라방시내가 쭉 보인다. 해가 지는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가까운곳에 메콩강이 역사의 흐름에 관심없다는 듯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인터넷방으로 가니 올해 2월에 티벳 라싸에서 만난 경남이 형이 내일 루랑프라방으로 출발한다고 했다. 비엔티안과 방비엥도 구경 못하고 나를 보기 위해서 곧바로 루랑프라방으로 오는 것이다.

 비가 내리는 천년 역사의 고도 루랑프라방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그렇게 나의 인생 역사가 쓰여지고 있었다.

 6월 30일(월)

 오늘의 미션은 루랑프라방 시내 하루만에 돌아보기.. 비를 맞으며 곧바로 루랑프라방시내를 둘러 보았다.

 제일 처음 간 곳은 1975년 라오스에서 공산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왕궁으로 사용되었던 루랑프라방 박물관이다.

 입장료가 10000낍이라서 표를 살려고 하니까 낍이 없다. 달러도 20달러짜리 밖에.. 매표원한데 20달러도 바꿔주냐고 물어보니 바꿔준다고 한다.

 그런데 거스름돈을 1달러에 10000낍으로 계산해서 준다. 분명 10500낍인데.. 이렇게 20달러면 10000낍인데 그렇게 날릴수 없지.. 다시 달러를 돌려 받고 근처 은행에 가서 환전을 했다. 휴.. 밥한끼 지켜냈네..

 옛 왕궁은 화려하면서도 소박했다. 왕이 사용하는 각종 집기들이 고스란히 다 전시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벽화와 각종 보물들.. 그렇지만 무엇보다 나의 가슴속에 와 닿았던건 왕이 사용하던 침대와 식탁등 일반 집기들이었다. 아.. 왕도 저렇게 잠을 자고 식사를 하는구나.. 여지껏 왕이면 먼가 특별할 줄 알았지만 일반사람과 비슷한 침대를 쓰고 소박한 식탁을 쓰는 일반 사람이었다. 어렸을때부터 배워온 평등사상을 이제야 눈뜨다니..

 왕궁을 보고 나서 간곳은 사원들이었다. 루랑프라방에는 많은 사원들이 있는데 우리나라처럼 산에 따로 절이 있는게 아니라 집들속에 자연스럽게 위치하고 있었다. 라오스 불교는 생활속의 종교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반 사원들과 입장료를 내는 씨앙통사원을 들렀다. 사원마다 특징이 있고 각자의 유래가 있었지만 내 느낌에는 그게 그거였다. 특히나 2번의 티벳 여행을 통해 많은 화려한 사원들을 봤기 때문에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유적들 보다 루랑프라방시내에 있는 집들과 사람들이 생활하는 모습을 지켜보는게 더 재미있다.

 루랑프라방시내를 돌아다니다 비가 계속 오길래 그냥 오늘은 게스트하우스에서 쉬기로 했다. 위다레사 게스트하우스에서 큰길로 나가서 왼편에 보면 칼국수집이 있는데 매우 저렴하고 무엇보다 맛있었다. 라오스 여행을 하기전 티벳에서 만난 희원이가 가르쳐 주었는데 외국인은 거의 없고 현지인들이 즐겨 이용하고 있었다.

 칼국수의 부드러운 면발과 뜨끈한 국물이 위속으로 파고들자 비에 젖어 쳐져 있던 몸에 생기가 돌았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빨래를 하고 앞으로의 여행일정을 정리를 했다. 그리고 노트북에 있는 게임을 했다.

 밖에는 비가 계속 내리고.. 캬..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은 삼겹살에다 쇠주..

 그런 감상에 젖고 있을때 갑자기 일본인인듯한 한 남자가 오더니.. 영어로 여기 한국남자 있나요? 라고 물어본다.. 엇.. 자세히 보니 경남이 형이다.. 덮수룩한 수염 때문에 순간 못알아보았던 것이다.

 4개월만의 만남이었지만 이런 오지에서 만나서 기쁨은 더욱 배가 되었다. 우리는 얼싸안고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했다. 옆의 대인이 형도 소개 시켜주었다.

 3명이서 저녁을 먹으로 밖으로 나섰다. 외국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식당지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시장을 지나야 한다. 여기저기서 흥정을 하고 희비가 엇갈리는 각종 표정들.. 어린아이들은 머가 그리 좋은지 뛰어다니고.. 어디를 가나 사람사는곳은 똑같다는 생각이 들 무렵..

 ‘호시~ 한구사람 아니에요?’ 시퍼런 눈을 한 서양인이 한국말로 말을 거는 것이다. 이름은 칼이고 서울 노원구에서 영어를 가르친다고 한다. 그는 한국인이 한국사람을 만난것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하긴 여긴 한국사람이 없으니까..

 칼과 우리 일행은 칼이 시켜주는 값싼 식당에 가서 배불리 먹었다. 역시 공짜로 네이티브스피커랑 대화를 하면서.

 칼은 작년에 한국에 와서 한국의 팬이 되었다. 각종 한국음식을 좋아하고(심지어 순대, 떡볶이까지) 한글을 읽을 줄 아는 서양인이다.

 무엇보다 한국에 죽을때까지 산다고 했다.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우리의 아름다움을 미국인인 칼은 사랑하고 있었다.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쉬운 문자라고 열변을 토하는 칼에게 한국어는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한국문자는 쉬워도 한국어는 좀 어렵다고 한다. 아무래도 칼에게는 한국어는 힘든가 보다.

 칼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때 CNN뉴스에서 한국의 철도노조 파업을 보도 하고 있었다. 외국에서 이런 뉴스를 보니 씁씁했다.

 생각해보면 1988년 서울 올림픽과 작년 월드컵은 공통점이 많았다. 둘 다 한국이 4위를 했다는점과 한국을 세계에 알렸다는점.. 그리고 정권교체시기와 맞물려 이루어졌고 정치적으로 크게 발전한 시기라는점.. 그외에도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룬 후 노사분규가 많아지고 부통산 투기가 사회문제화 되었다는 점.. 한가지 우려되는건 서울 올림픽때 반짝 치솟던 한국의 경기는 이후 비틀거리면서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고 급기야 1997년 IMF사태까지 몰고왔다.

 혹시 우리가 거대 국제행사를 통해 자부심을 뛰어넘어 자만심을 갖는건 아닌지.. 서로 조금씩 양보를 하고 물러선다면 싸우는 일은 없을텐데..

 우리일행은 식사를 마치고 술을 마시기 위해 안주를 사러 시장으로 갔다. 난 칼과 같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형들은 안주를 고르고..

 술을 사러 게스트하우스 근처에 올 무렵 칼이 맛있고 싼 커피집을 알고 있다고 한다. 칼의 안내로 들어간 가게는 바로 우리가 술을 사려고 했던 싼 슈퍼.

 커피가 처음 나오자 난 칼에게 한국에서는 연장자가 제일 먼저 먹는다고 했다. 근데 칼은 내가 더 나이가 많은거라고 한다.

 설마... 아무리 봐도 40대 아저씨였던 칼의 나이는 24살.. 오 맙소사! 나보다 2살이나 어리잖아.. 서양인들의 나이는 도대체가 알 수가 없다.

 여기서 2000낍에 맛난 라오커피를 마시고 맥주 10병을 샀다.

 처음 본 우리에게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여기저기 안내해준 고마운 칼.. 이번 여행이 끝나면 광주로 내려가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친다고 한다. 친절함과 붙임성과 명랑함을 가지고 있고 무엇보다 한국을 사랑하는 칼.. 광주의 어떤 학생인지는 몰라도 칼에게 가르침을 받는 학생은 복받은 것이다.

 나도 내년에 교편을 잡으면 칼처럼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해야 되는데.. 그래! 최소한 나한테 배운 학생들에게 넓은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멋진 선생님이 되야지. 세상에는 나쁜 사람보다도 착한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고 슬픈일 보다는 기쁜일이 더 많은 세상이라는걸.. 그렇게 가르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세상을 사랑해야 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경남이 형과 나 그리고 대인이형은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오자마자 술판을 벌였다. 바로 옆의 한국여학생 2명도 부르고..

 이곳 오지에서 한국인 5명이 모여 웃고 즐기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옛 추억에 잠기며.. 서로의 인생사를 교환할 수 있는 술자리..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오고 있고.. 그렇게 루랑프라방의 밤은 웃고 떠들게 해주는 맥주와 함께 깊어가고 있었다.

 7월 1일(화)

 이제 7월 달이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가나.. 여행지에서 하루하루는 무척긴데 1주일 한달은 짧다.

 어제 과음을 한 관계로 속이 좀 안좋았다. 이럴때는 그냥 배째고 자는게 현명한 처사이다. 옆방의 한국여학생들은 태국쪽 국경인 훼이싸이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떠났다.

 대인이형, 경남이형, 나.. 속은 쓰린데 해장할거는 없고.. 그때 필살의 아이템을 경남이형이 꺼냈다. 이름하야.. 신라면.. 우리셋은 라면봉지 안으로 스프를 풀고 뜨거운물을 붓는 뽀글이(군대식용어)를 해먹었다. 이런 오지에서 먹는 한국 라면 맛이란..아. 좋다.. 속이 확 풀린다.

 10시 반이 되자 대인이형과 나.. 일본인 여행자 2명..이렇게 4명이 이 근방에서는 유명한 쾅시폭포로 가기로 했다.

 쾅시폭포는 루랑프라방에서 29킬로 정도 떨어져 있으며 뚝뚝으로 1시간을 가야한다. 처음 10달러를 부르던 뚝뚝은 일본인의 집요함과 한국인의 끈덕짐에 굴복을 해서 곧 6달러로 하락했다.

 대인이 형은 일본인들이랑 일본어로 대화를 하고.. 나와 일본인들은 영어로.. 가끔 대인이 형이 통역을 해주었다. 4명사이에서 일본어, 한국어, 영어가 오가는 좀 괴상한 풍경이었다.

 이곳은 일본인들이 정말 많다.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나를 볼때 마다 일본어로 인사를 한다. 일본인들은 대부분이 혼자 여행을 한다. 대인이형 말로는 10년전만해도 일본인들이 패키지여행으로만 여행을 다녔었는데 5년전 2명의 젊은이가 한푼도 없이 유라시아 대륙을 6개월동안 여행했다고 한다. 그 여행과정을 캠코더에 담았는데 그게 티비에 방영이 되서 홀로 여행이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그런 붐이 일어났으면.. 여행을 다니다 보면 너무 무리지어서 다니려는 경향이 우리는 너무 짙은거 같다.

 1시간이 걸려서 도착한 쾅시폭포는 입장료가 15000낍..와 비싸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김에 그냥 내고 들어갔다.

 조금 걸어서 올라가니 커다란 폭포가 나온다. 와.. 장관이다(교육부장관이 아님^^).. 비가 와서 그런지 물살이 거세다. 여기까지는 물이 깨끗한 편인데.. 메콩강의 물 색깔은 메콩강이 시작되는 티벳에서부터 초콜렛색이니..

 폭포를 감상을 하고 기념 사진을 찍은 후 다시 뚝뚝을 타고 돌아왔다. 흔들리는 뚝뚝에 어제 술과 안주로 꽉 찬 내 위장도 흔들렸다.. 대인이 형도 그런 눈치.. 하지만 참아야지..

 돌아오니 경남이 형이 내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다. 경남이형은 게임에 맛들인 눈치..

 경남이 형과 어제 갔던 식당에 가서 점저(점심저녁)을 먹은 후 다시 돌아갈려는 찰나.. 소나기가 몰려왔다.

 한 30분을 갇혀 오도가지도 못한채.. 그냥 경남이형과 난 젖는걸 각오하고 비속을 걸어갔다..

 시원한 빗줄기가 우리한테 뭐가 유감이 있는지 우리의 옷과 머리를 강타 했다. 덕분에 좀 시원했지만..

 옷이 완전히 젖고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할때쯤.. 해가 쨍쨍 비치면서 비가 멎었다. 이걸 머피의 법칙이라고 했지..

 내일은 시간이 되면 루랑프라방 중앙에 위치한 푸쉬탑에 들르고 루랑남타로 갈 예정이다. 이제 라오스에서 추억을 만들날도 얼마 안 남았다.

 루랑프라방으로 가는 길.. 북부와 비엔티안을 잇는 산업의 대 동맥이지만 길 사정은 열악하기만 하다.

 루랑프라방 터미널.. 여기에 이르자 비엔티안이 대도시임을 느꼈다.

 위라데사 게스트하우스에서 바라본 전경.. 야자수와 어울려 운치가 있다.

 루랑프라방은 북부의 중추 도시답게 비교적 분주한 분위기 이다.

 옛왕궁인 루랑프라방 박물관.. 왕이 쓰던 많은 집기들이 전시되어 있다.

루랑프라방 박물관에서.. 며칠째 같은옷

 시내 중심의 사원. 종교 색체가 강한 루랑프라방에서는 시내 어디서나 사원을 볼 수 있다.

 루랑프라방 시내 전경.. 비교적 한산한 분위기

 오전부터 승려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깊은 산속에 있는 우리나라의 사원과 달리 라오스에서는 시내 중심에 자연스럽게 사원이 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는 미국인 칼(23살이란다!)

 쾅시폭포 입구로 가는 길.. 루랑프라방에서 뚝뚝을 타고 1시간 걸린다.

 관광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있는 노점상

 아름답기로 유명한 쾅시폭포.. 그 웅장한 광경에 처음 보자마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쾅시폭포 앞에서 내가 작아 보인다.

 쾅시폭포 위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풍경

 

 라오스 여행기 4(7.2~7.3) 국경을 향하여(루랑남타, 보텐)

 7월 2일(수)

아침 7시에 우돔사이로 떠나는 버스가 출발한다는 이야기에 경남이 형과 난 일찍 일어나서 준비를 해야 했다.

 경남이 형과 내가 늦을까봐 먼저 일어나서 우리를 깨워준 대인이 형..
여행을 하면서 서로 다른문화와 다른환경에서 자랐지만 대인이 형과 나를 연결해준 끈이 있었다. 그건 바로 같은 민족이라는 것.

 제일교포 3세이고 비록 우리말과 글에는 서툴지만 누구보다도 조건없이 조국을 사랑하는 대인이 형 앞에 국가에 대해서 그저 무덤덤했던 나에 모습에 대해 반성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왜 일본국적을 선택을 안 하고 살지도 않을거구 일본에서 불이익을 받을지도 모르는 한국국적을 선택했냐고 물어 봤을때.. 어설픈 한국말로 나를 숙연케 하던 한마디.. '당연한거다. 난 한국 사람이다.'

 자식들을 미국국적을 얻게 하겠다는 이유로 미국으로 원정출산을 나가는 젊은 부부와 얼마전 전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던 스티붕유.. 정말로 대비가 되는 사람들이다.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달라고 하기 전에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라..' 미국의 존경받는 대통령인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식때 전국민을 상대로 했던 말이다. 대인이 형을 만나고 나서야 이 문구에 대한 감동이 몰려왔다.

 물론 국가와 정치가를 혼돈해서는 안된다. 정치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을 하면 그건 후퇴하는 민주 정치를 만들 뿐이다.

 국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면 국가를 위해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여행을 떠나거나 국가와 멀리하게 되었을때도 언제나 관심있게 국가를 지켜보는 관심.. 그게 바로 국가를 위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국가를 위해야 하는걸까? 저번 중국 여행을 하면서 느낀게 있었다. 300개의 소수민족중에서 살아남은 민족은 56개.. 나머지 56개 민족도 한족에 흡수되는 과정이고 이미 한족의 문화가 뿌리깊게 박혀 있다.

 중국의 시점에서 한명의 소수 민족인 내가 이렇게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것도 바로 한국이라는 국가가 있기에 가능한것이 아닐까? 내가 사는 국가가 이만큼 발전하고 다른나라로 부터 부러움 받는 위치에 올랐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만약에 우리가 한국인 아닌 중국의 조선족으로 불렸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내가 대인이 형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면 대인형 역시 나를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한다. 8년 동안 잊었던 한국말을 나와 함께 있으면서 다시 떠올릴 수 있었고, 한국과 일본의 관계와 한국의 자세한 실정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다고 한다

 태국으로 가는 대인이 형과 작별하기전 한번 부둥켜 안고 서로 주소와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그리고 빠른시간내에 내가 일본으로 놀러가기로 했다. 물론 대인이 형을 보기 위해서 일본을 여행하지만.. 사실 대인이 형이 이쁜 일본 여자를 소개시켜준다길래 ^^;;;(어쩔수 없는 남자의 본능이여~)

 우돔사이로 가는 버스는 북부 버스터미널에서 8시 반에 출발했다. 요금은 25000낍.. 게스트 하우스에서 가르쳐준 잘못된 정보(7시 출발) 덕분에 경남이 형과 난 1시간 반동안 무료하게 이야기 했다.

 아.. 경남이 형에 대한 소개를 안했군.. 경남이 형은 저번 겨울에 했던 2차 티벳여행때 라싸에서 만난 형이다. 다음카페 동호회를 통해 이미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본 것은 라싸에서 처음이었다. 만나는 순간부터 서로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경남이형과 난 라싸에서 찰떡처럼 붙어다녔고 겨울에 헤어질때도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현재 경남이 형은 5달째 여행중이고 일부러 내 얼굴을 보기 라오스로 왔다. 대인이 형을 보내고 든든한 동료 경남이 형을 얻다.. 무슨 롤플레잉 게임 같다..^^

 루랑프라방에서 우돔사이로 가는 풍경은 '아 이것이 라오스구나!'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험준한 고산지역과 나무로 만든 고산족들의 집들.. 버스가 마을에 정차 할때 마다 가지각색의 표정을 지은 사람들이 저마다 물건을 팔려고 버스로 접근한다.. 그 진지한 표정들이 재미있다.

 버스는 생각보다 오래 갔고 오후 2시가 되어서야 우돔사이에 도착했다. 휴.. 도착하는 순간 비엔티안의 RD게스트하우스 사모님이 해주신 말이 생각 났다. '위로 올라갈 수록 대도시라는것을 느낄거에요' 정말이지 처음 허술해 보였던 비엔티안은 여타 도시들에 비해 대도시였던 것이다.

 우돔사이에서 곧바로 루랑남타로 가는 버스를 잡았다.(요금 21000낍) 잠시 버스출발을 기다리는중 버스터미널 테이블에 장식용으로 박힌 타일을 말판삼고 병뚜껑을 말을 삼아 재미있게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호기심어린 눈으로 나와 경남이 형은 옆에 앉아서 보았다. 오호.. 보면 볼수록 의외로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규칙을 완전히 알게된 내가 승리자에게 도전했지만 완전한 패배.. 이거 우리나라에 보급시키면 꽤 인기 끌겠는데.. 규칙은 간단하면서도 전체적인 전략과 전술을 짜는 재미있는 게임이다.

 우돔사이에서 루랑남타까지 가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3시반에 출발한 버스는 6시 반이 되어서야 루랑남타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는 도중 아인트호벤팬인 네덜란드 여행자와 심심치 않게 이야기를 했다.

 루랑남타에 갔을때.. 아까 우돔사이에서 느낀게 더 와 닿았다. 이게 도시인가?

 가까운 여관에 2명이 2달러로 자리를 잡고 저녁을 먹으로 레스토랑을 찾아 다녔다. 가로등이 없는 루랑남타는 몇몇 가게에서 뿜는 전구를 제외하고는 어둠에 휩싸였다.

 다행히 'panda'레스토랑을 찾았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외국인의 입맞에 맞게 음식을 한다. 외국인들이 많이 오는것을 봐서 론니에 소개된듯 싶다. 혹시 루랑남타로 가는 사람은 꼭 가보도록.(밥종류는 8000낍이하, 과일쉐이크 3000낍)

 중국쪽으로 올라가는 우리와는 반대로 다리의 NO3 게스트하우스를 문사장님 대신 맡고 있던 경모형님이 새로운 비자 발급을 위해 우리쪽으로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메일과 다음카페를 확인해야 될 상황.. 루랑남타의 플래닛 인터넷방을 찾아서 접속을 시도했다.

 1분당 650낍(78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요금.. 거기다가 메일 하나 보는데 10분이 걸리는 초 저속도.. 메일과 카페글을 봐도 경모형님의 대답이 없었다. 어쩔 수 없다.. 그냥 중국 국경으로 가야지

 라오스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도시라고 하지만 주변은 어둡고 정적만이 흐른다.. 그렇지만 밤하늘을 바라보니 영 딴 세상이다.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환한 별들이 나의 시선을 붙잡고 있었다.

 7월 3일(목)

 경남이 형과 난 어제 갔던 판다레스토랑에서 라오스에서의 마지막 식사를 하고 중국과 인접한 보텐으로 8시 20분에 출발했다.(요금 12000낍) 아 이제 마지막이구나.. 그런데 만나기로 했던 경모형이 감감무소식..

 만약에 경모형을 만나지 못하면 경남이 형은 보텐에서 하루를 기다리기로 했다. 갈길 바쁜 난 그러지 못하는 현실..

 차로 2시간을 달려서 보텐에 도착했다. 보텐에 도착하자마자 경모형 메일을 확인하러 인터넷카페에 간다는 우리의 의지는 여지없이 깨어지고 말았다.

 여기 국경도시 맞아? 마을에는 몇개의 집들만 보이고.. 도저히 국경도시의 특성인 활발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한산할 뿐이었다.

 경모형 만나는것을 포기하고 중국으로 가기위해 라오스 볼더로 가는 순간... '앗!' 경남이 형은 탄성을 질렀다. 거기에는 경모형이 있었다.

 외딴 라오스 북단에서 이렇게 3명의 한국인이 만났다. 다음카페에서 중여동과 티만사에서 유명하고 활발하게 활동중인 경남(중여동아이디: 산소같은남자)이형과 경모형(중여동아이디:주는기쁨)을 이렇게 한자리에서 보다니..

 경남이형은 지금가지고 있는 2개월짜리 중국비자를 버리고 3개월짜리 비자를 받기 위해 다시 나와 떨어져 경모형과 비엔티안으로 가기로 했다.

 아쉽지만.. 다시 홀로서기를 해야지..

 이렇게 라오스의 여행은 끝나고 라오스측 국경 초소의 경비병에게 눈짓으로 찡긋 인사를 하고 중국쪽으로 향했다.. 이미 3번의 중국여행의 경험이 있어서 마치 모국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자.. 이젠 중국이다.~

 루랑프라방에서 루랑남타로가는 길은 전형적인 정글이다.

 산악지역에 나무들이 무성하다.

 산악 소수민족들이 사는 집

 버스가 잠시 정차하자 과일을 팔러 나온 산악족 할머니.. 옆의 어린이들의 표정이 호기심 어리다.

 우돔사이 버스 터미널전경.. 산위에 불탑이 있다.

 테이블 타일과 병뚜껑으로 나름대로의 규칙을 만들어 게임을 하고 있다. 나도 도전했으나 완패

 아름다운 구름이과 실루엣

 루랑남타.. 거의 마을수준인데 지도에는 도시로 표시되어 있다..와.. 정말 비엔티안은 대도시라는 생각

 경모형과 경남이형.. 이후 여행동지로서의 만남이 계속된다.

 라오스~중국 국경.. 허술하고 한산하다.

 

 라오스 여행기 마지막편 (라오스를 떠나며..)

 라오스를 떠나며..

 라오스에서 느낀것은 한마디로 순수하다는 것이다.

 순수한 자연과 순수한 사람들(물론..관광객을 상대로 바가지 씌우는 사람은 늘 있게 마련..)

 그렇지만 세계에서 2번째로 GNP(1인당 국민소득)가 낮은 나라이기도 하다.

 주변국에 비해 특별히 눈에 뛸 자원을 가진것도 아니고 2차산업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오죽하면 라오스에서 크다고 하는 시멘트 공장이 5000낍 지폐에 그려져 있을까?

 무엇보다도 사회간접시설이 너무나 취약하다는 것이다. 또한 육지로 둘러쌓여 있어서 외국과 교역을 할 무역항 하나 가지고 있지 않다.

 한 여행자는 라오스는 관광하기에는 최적의 장소이지만 발전하기에는 희망이 없는 나라라고 섣부른 감정을 하기도 했다.

 라오스를 10일간 여행하면서 느낀것과 라오스에 거주하는 한국인으로 부터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도 위의 이야기와 크게 다른 결론은 나오지 않다.

 내가 만약에 라오스의 대통령이 된다면.. 부실한 사회간접자본의 영향으로 느린버스를 타며 많은 시간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뚜렷한 자원도 없고.. 무역항도 없고.. 너무나도 성격이 다른 5개국(베트남, 중국,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에 둘러쌓인 나라..

 아.. 혹시 스위스를 모델로 하면 어떨까? 스위스 역시 내륙국에다 가진자원은 빈약하고 국토의 대부분이 산악에 둘러쌓여 있다. 또한 라오스와 같이 너무나도 성격이 다른 강대국(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에 둘러쌓인 나라이기도 하다. 조건이 라오스와 너무나도 비슷하다.

 그렇지만 내 기억으로 몇년전까지만 해도 인구 100만이상의 국가중에 1위의 GNP(1인당 국민소득이 40000달러가 넘는다.)를 기록한 나라이다.

 스위스가 강대국 사이에서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었던것은 악조건을 기회로 잡은 것이다. 주변이 강대국으로 둘러 쌓인것을 기회로 잡은 것이다. 스위스는 국가적으로 총력을 기울여서 알프스에 도로를 깔고 터널을 뚫었다. 그것은 이탈이아와 여타 국가를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무역루트가 되는것은 물론이다.

 2차세계대전때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가 나찌의 손아귀에 떨어졌을때도 스위스는 굳건히 중립을 지켰다. 그 원동력은 히틀러가 스위스를 넘보려고 하자 스위스정부는 이탈리아와 연결 시키는 모든 도로와 터널을 파괴시킨다고 오히려 히틀러를 위협했다.

 그 위협에 히틀러가 오히려 스위스를 달래야 되는 상황이 되었을 정도로 스위스의 알프스 도로는 스위스는 물론 주변 국가에게 중요한 사회간접 자본시설이 되었다. 당연히 금융이라던지 유통회사가 스위스에서 발전이 될 수 밖에 없었고 또한 장엄한 알프스에 대한 부수입으로 관광산업까지 눈부신 발전을 했다.

 라오스 역시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그에 대한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바로 주변국인 중국, 태국, 베트남, 미얀마, 캄보디아의 발전이다. 이들의 경제 성장이 무역을 활발하게 해 주고 바로 라오스를 발전시켜줄 원동력이 될 것이다.

 현재 라오스의 지리적 위치를 봤을때 중국에서 태국으로 통하는 가장 빠른루트는 라오스를 거치는 것이고 베트남에서 태국을 가장 빨리 도달하기 위해서도 라오스를 거쳐야 된다.

 중국, 베트남, 태국은 현재 매년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고 앞으로도 기대하게 될 것이다. 미얀마 또한 현재 민주화의 과정에 조금씩 접근하고 있으며 정치적인 불안감이 해소되면 경제 발전이 뒤따라올 것으로 생각된다.(그러나 캄보디아는..ㅡ.ㅡ)

 그때를 대비해서 사회 간접자본 시설을 확충해 놓는것이 어떨까? 물론 국제적인 도움이 절실해야 하는것은 물론이지만 그전에 외국의 원조를 상당수 갉아 먹는 공무원들의 부패를 없애는게 선결 과제이다.

 현재 라오스에는 철도가 없는데.. 태국 농카이에서 중국으로의 철도를 추진하고(물론 중국도 쿤밍에서 멍라까지 철도를 연결 해야 하지만..), 베트남에서 사바나켓으로의 철도를 추진하는것도 좋은 방법으로 생각 된다.

 또한 라오스를 관광하기 편한 나라로 만드는것은 어떨까? 현재 외국인에게 받는 비자를 선진국에 한해서는 면제해주고, 공공연하게 받는 외국인 차별 요금도 완전히 폐지시키는것.. 라오스는 여행을 하기에는 많은 매력을 지니고 있다.

 이상으로 내가 라오스를 여행하면서 생각했던 발전 방향이다. 다른이들도 각각의 생각이 있지만 두서없이 적어 보았다.

 하지만 여행자 입장에서는 라오스가 지금에 머무르는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세계는 문명발전이라는 이름하게 순수함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다.

 그 어느곳 보다 순수하다고 생각되는 라오스가 변하지 않는게 좋을거라는 생각은 여행자로서 가질 수 있는 이기적인 생각인가?

 라오스는 몇년을 지나서 방문을 하면 변하는건 물건 가격밖에 없다고 한다. 하지만 몇년 뒤 라오스를 방문하면 좀 더 발전된 모습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