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여행기여행기 1(8,19~8.21) 실크로드 쿤자랍패스를 넘어 장수마을 훈자까지...

 8월 19일(화)

 어제 새벽에 늦게 카스에 도착하는 바람에 샤워를 하자마다 침대에 쓰러지다시피 잠이 들었다.
오전 11시.. 밝은 햇살이 나의 뺨을 간지를 무렵 잠에서 깨었다.

 옆침대의 유카는 피곤한듯 계속 자고 있고..

 사방을 둘러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온 사방이 빨래들로 가득차 있었다. 심지어 속옷까지..

 피곤함으로 인해 차안에서 계속 잠들었던 유카가 호텔에 도착하자 마자 그동안 밀린 빨래를 한 것이다.

 나중에 유카에게 물어보니 새벽 4시까지 빨래를 했다고 한다.. 역시 일본인의 철저함이란..

 유카랑 같이 아침을 먹을려고 했지만 유카가 계속해서 자는 바람에 일단 나 혼자 카스시내로 나왔다.

 아.. 1년만에 온 카스.. 1년전 파키스탄으로 넘어갈려다가 비자가 없어서 막히고.. 카스로 되돌아오는 길에 산사태가 나서 꼼짝없이 갇혀 있었던 악몽들이 기억났다. 그 후 신장남로를 돌면서 더욱 힘든 고생들을 하고.. 돌이켜 보면 생각하기 싫은 시절이다.

 하지만 그때 파키스탄을 못간 바람에 티벳에 눈을 돌렸고, 지금의 성취감을 얻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모든게 1년전과 흡사하지만 모스크 옆의 바자르는 공사관계로 인해서 완전히 사라졌다. 인간냄새 물씬 풍기는 그런 풍경이었는데..

 인터넷 방으로 가서 여행기를 정리를 하고 유카와 같이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데이트를 했다. 파키스탄으로 갈 준비를 할려고 시내 중앙의 백화점에 들렸는데 거기 점원이 외국인인 우리에게 짧은 영어로 계속 해서 말을 걸면서 나에게 '당신은 나의 영어 선생님'이라고 이야기 한다.

 한국인이라고 밝히니까 한국은 기회가 많은 땅이고 중국은 그렇지 못하다고 이야기 한다. 중국의 현실에 대해서 많이 답답해 하는구나..

 난 중국경제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언젠가 한국에 오면 연락하라고 하면서 전화번호를 줬다.. 그녀가 한국에 올 가능성은?

 유카와 잠시 헤어지고 밀린 여행기를 정리하러 다시 피시방에 갔다. 그동안 밀린 메일과 카페글.. 여행기를 정리하다 보니 밤 11시..

 호텔에 들어가자 유카가 계속해서 날 기다렸다고 한다. 아.. 오늘이 마지막 밤이지..

 난 내일 파키스탄으로 떠나고 유카는 반대방향인 우루무치 방향으로 떠난다.

 유카와 맥주한잔 걸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둘다 그동안 정들어었는데..

 그때 우리방에 일본인 남자 한명이 들어왔다. 그는 파키스탄에서 3개월가까이 여행을 했다고 하면서 중국에 대한 정보를 묻는다.

 아.. 그동안 파키스탄의 정보에 목말랐는데 하늘에서 선물을 내려주었구나..

 오늘 역시 이리저리 행운이 따르는 날이다.

 8월 20일(수)

 드디어 중국의 마지막이다.. 버스 출발시간은 10시.. 난 10시 반이 넘어서야 호텔 밖으로 나왔다. 어짜피 오후 1시정도가 되야 출발하는게 뻔하니까..

 유카가 호텔 밖에까지 마중 나왔다. 유카의 표정은 아쉽다는듯한 표정. 아.. 그동안 생사고락을 같이 했는데. 이제 헤어지는 구나. 그래도 진정한 친구를 만들게 된 좋은 추억이 되었다.

 유카와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면서 포옹을 했다. 따스한 유카의 품이 느껴졌다. 내년에 한국을 방문한다고 하니까 그때야 볼 수 있겠지.

 여행자들은 같이 여행을 할땐 생사고락을 같이 하지만 떠날때는 미련없이 떠난다. 나 역시 그러한 떠돌이 중에 하나. 유카와 헤어지자 마자 곧장 카스 북버스터미널로 갔다.

 터미널에서 중국측 국경도시인 타슈쿠르간까지 가는 표를 63위엔에 샀다. 운전기사는 왜 파키스탄 서스트까지 가는 표를 사지 않느냐고 물어 보지만.. 기사에게 작년의 아픈 기억을 말해줄 언어능력이 되지 않았다.

 역시 버스는 예상대로 오후 1시반에 출발.. 그때까지 운전기사에게 짐을 맡기고 카스시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버스는 작년과 같은 과정으로 타슈쿠르간으로 향하고( 작년 실크로드 여행기 참조 www.travel4edu.com) 한가지 바뀐게 있다면 작년에는 거의 전구간에 걸쳐 공사중이었는데 지금은 공사가 마무리되어 비교적 빠른 속도로 타슈쿠르간까지 갈 수 있었다.

 외국인은 나와 캐나다인 부부가 탔다. 이들 부부는 영어가 유창한 파키스탄 인들과 이야기 하면서 영어를 못하는 중국인을 조롱하는 듯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참.. 기가 막혀서.. 영어 못하는게 죄가 되나? 자기들도 다른나라 말을 못하면서 자기말을 못하는 중국인을 욕하다니..

이들 부부와는 쿤자랍패스 여행이 떠날때까지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아니.. 대화를 나누는것 자체가 역겹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7시쯤에 타슈쿠르간에 도착을 했다. 중국에서의 마지막 밤이군.. 침대한칸에 10위엔에 잡고 같은 방을 쓰는 인심좋은 파키스탄 아저씨에게 빵과 고기를 얻어 먹었다.

 타슈쿠르간 시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데.. 새로지은 듯한 건물에 위구르 인들이 민속옷과 정장을 입고 꾸역꾸역 들어가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군 지원으로 문화예술회관이 건립이 되었고 그 기념으로 축하민속 공연을 한다고 하는 것이다.

 아싸~ 오늘 역시 행운이다... 5위엔의 입장료를 내고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와.. 이렇게 작은 마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나.. 한 1500명이 넘는듯한 인파..

 이 근처의 사람들은 다 모인거 같다. 간간히 중국군 고위인사들도 볼 수 있었다. 아무리 고위인사가 많아도 난 이 공연을 관람하는 유일한 외국인이 되겠지.. 라고 생각하며 혼자 흡족해 했다. 이런식의 생각은 머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나의 정신건강에는 상당한 도움이 되겠지.

 각종 민속 음악들과 간간히 이어지는 공연들.. 위구르 민속음악을 실컷 들을 수 있었다. 나오는 여자 가수들도 정말로 이뻤다.

 그런데 위구르 민속음악은 모든 박자가 같고 춤또한 팔을 펼치며 한바퀴 도는것이 춤의 전부이다. 그래도 사람들은 흥겹다는듯 박수를 치며 즐거워한다.

 이날의 히어로는 5살이 된 듯한 어린아이.. 2명의 남녀 어린이가 가수가 바뀌는 중간 타임에 나와서 입담을 선사했는데 5살인듯한 남자아이가 무슨 이야기를 할때마다 좌중은 온통 폭소의 바다로 빠지고.. 나 역시 뜻은 모르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같이 웃었다.

 저렇게 어린나이에 좌중을 압도 하다니.. 훗날 유명한 위구르 코메디언이 될 것이다.

 반복되는 가락이 지겨워 1시간정도 구경하다가 숙소로 나왔다. 카스는 무척 덥지만 이곳은 고지대라 쌀쌀하다.. 얼른 숙소로 종종걸음으로 갔다.

 아.. 이제 내일은 파키스탄이다.! 작년의 실패가 새삼 떠오른다.

 8월 21일(목)

 아침 10시에 버스는 출발해서 곧장 중국측 볼더로 갔다. 여기서 비자 검사와 출국 도장을 받는 것이다.

 이번엔 단단히 준비하고 왔기에 아무런 문제 없이 OK.. 생각보다 파키스탄인에 대한 검사도 까다롭지 않았다. 볼더에서 서스트로 가는 표를 215위엔에 샀다. 매표원은 작년에 파키스탄으로 못 넘어가게 되자 환불해달라는 나의 요구를 무자비하게 무시했던 그 매표원.. 아마 나를 기억 못하는듯 한다.

 중국측 볼더를 출발하고.. 아름다운 쿤자랍패스가 펼쳐졌다.

 아.. 이길이 과거 실크로드 였구나.. 혜초스님을 비롯해서 동서교역을 담당했던 교역상들이 목숨을 걸고 넘었던 바로 그 하늘길.. 이곳을 중심으로 많은 세력이 흥망성쇠를 하고.. 중국과 인도의 문물을 교환하던 바로 그곳..

 역사적인 감상이 없었다면 쿤자랍패스는 나에게는 그리 감동을 주지 못했을 것이다. 풍경이 그동안 지긋지긋하게 고생했던 서티벳과 흡사했기 때문이다.

 2시간을 달리던 버스는 중국~파키스탄 국경에 다다르고.. 국경은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중국과 파키스탄은 친하지 않나? 유난히 영토분쟁이 많은 지역이라 그런 조치를 했나 보다.

 파키스탄으로 넘어가는 순간 버스안의 파키스탄인들은 환호를 지르고.. 그래.. 고국에 온 기쁨이겠지. 난 언제 그런 기쁨을 느끼나...

 파키스탄으로 넘어가자 모든게 변화되었다. 표지판 언어부터 사람들의 옷 차림.. 무엇보다 변화를 실감한건 오른쪽 차선 주행이 왼쪽으로 변화했다는 것이다.

 또한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눈발은 곧 거세져 차는 눈발을 헤치며 천천히 서행을 하고..

 지금 8월인데? 한낮인데도 불구하고 싸늘해서 점퍼를 계속 입고 있었다.

 반대방향에서 차가 올때 마다 마음을 졸였다. 오른편 주행에 익숙한 난 반대편에 차가 올때마다 웬지 충돌할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스트를 얼마 안남기고 역시 쿤자랍패스는 나에게 작은 시련을 주었다. 산사태로 길이 막혀 버린 것이다.

 2대의 불도저가 급히 동원되어서 생각보다 빠른 2시간만에 도로는 복구가 되었다.

 오후 6시 서스트에 도착을 했다. 간단한 입국심사를 마치고 서스트 마을로 나왔다. 일단 1위엔-7루피의 비율로 환전을 했다. 372위엔을 주니 2600루피로 환전을 해준다.

 환전을 마치고 훈자의 수도인 카리마바드로 가는게 막막했다. 무엇보다 이곳 물가를 파악해야 하는데..

 사람이 많이 탄 봉고차를 100루피(2000원)내고 탈 수 있었다. 100킬로에 2000원이면 그리 나쁘지 않은 가격이다.

 하지만 나와 같이 탄 파키스탄인은 50루피(1000원)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아.. 오자마자 뒤집어 썼구나.. 앞으로 파키스탄의 물가를 파악하기 위해서 거쳐야될 시행착오일 뿐이다.

 봉고차는 100킬로를 달렸다. 서스트에서 길기트로 가는길은 그야말로 위험천만한 낭떨어지.. 흡사 동티벳의 알룽차포 협곡과 흡사했다. 아.. 쿤자랍패스는 동, 티벳을 다 볼수 있는 곳 이구나..^^

 봉고는 길기트-훈자가 갈라지는 도로에 날 떨어트려 놓았다. 날은 이미 칠흙같이 어두워진 상태였다.

 갈림길에서 카리미바드로 향하는 작은 봉고를 휘양찬란하게 치장한 스즈끼를 탔다.

 아 참 스즈끼는 파키스탄에서 버스역할을 하는 봉고차로 일본 회사인 스즈끼 제품이 많아서 고유명사화 된 파키스탄의 대중교통이다. 만약에 대우의 다마스가 일찍 파키스탄에 진출했다면 스즈끼대신 다마스라는 이름이 붙여졌을건데..

 스즈끼는 카리미바드를 향해 산을 올라갔다.

 카리미바드에 도착해서 10루피(200원)을 지불할려는데 500루피, 1000루피 지폐밖에 없었다.

 운전자에게 500루피를 내밀자 그냥 가라고 한다.

 어두워서 풍경은 보이지 않지만 산 이곳저곳에 위치한 집들에서 켜진 불들이 마치 땅위에 별이 빛나는것처럼 보였다. 아름다운 풍경이다.

 일단 숙소를 잡아야 하는데 한 할어버지의 소개로 허름한 여관을 25루피(500원)에 잡을 수 있었다. 여태까지 여행하면서 가장 싼 숙박비..

 도대체 이곳의 물가는 어떻게 된거야..

 친절한 주인 할아버지의 환대를 받으며 파키스탄의 첫날밤은 지나갔다.

 유카와 작별하기 앞서 기념으로.. 내년(04년) 4월에 한국을 방문한다고 한다.

 쿤자랍패스 입구..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타슈쿠르간.. 위구르 병사의 모습

 민족문화예술센터라는 곳이다. 마침 개관식 날이었다.

 위구르 어린이들의 합창.. 민속 음악을 합창했다.

 이날 가장 예쁘다고 생각되는 위구르 여인.. 그녀는 나의 마음을 흔들정도의 미모의 소유자다.(노래는 별로..)

 쿤자랍패스는 서부티벳과 흡사한 풍경이다.

 옛 실크로드의 험로를 오늘날의 트럭이 달리고 있다.

 중국~파키스탄 경계비.

 8월에 크리스마스? 이날 눈이 내렸다.

 중국측 보다 파키스탄측의 도로가 더 열악했다.

 쿤자랍패스 입장료 징수소.. 그냥 지나가는 것인데도 입장료라며 4달러나 털렸다.

 서스트를 얼마 안남기고.. 갑작스러운 산사태 때문에 오랜시간 발이 묶였다.

 저녁때가 되서야 서스트에 도착했다. 자.. 이제 본격적인 파키스탄이다.

 

 파키스탄 여행기여행기 2(8,22~8.23) 길기트와 라왈핀디 가는길

 8월 22일(금)

 파키스탄에서 맞는 첫 아침이다..

 상큼한 공기를 흠뻑 마시며 여관밖을 나왔다.

 와.. 이곳이 바로 훈자구나.. 산자락에는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으며 사방은 설산으로 뒤덮혀 있었다.

 훈자는 장수마을로 유명한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사방의 설산에서 흐르는 신선한 눈녹은 물을 항상 마실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티벳을 여행한 이후 이렇게 많은 나무들을 보는게 처음이었다.

 초록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고 했던가? 잠시 눈을 감고 초록잎에서 뿜어내는 산소의 맛을 음미해 보았다.

 역시 사람은 초록을 봐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키스탄에 넘어오기 전 만난 한 일본인은 훈자에서 2달 동안을 지냈다고 한다. 훈자를 기점으로 많은 트래킹 코스가 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쉬어가기에는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여유는 흔히 '시간이 남아도는 팔자 좋은 여행자'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일종의 사치였다.

 학교 개강이 3일 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정을 빨리 진행해야만 했다. 이제 나의 여행도 슬슬 끝나가는 시점이 온 것이다.

 친절한 여관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바로 밑의 마을로 향했다.

 허겁지겁 학교로 뛰어가는 아이들.. 헬로우 하며 친절하게 말을 거는 파키스탄인, 어떻게 생겼을까 궁굼증을 자아내는 차도르를 쓴 여인들..

 모두가 낯선 풍경이지만 정겹기만 한 풍경이기도 했다.

 길기트로 가는 차를 50루피에 잡았다. 봉고는 손님을 모으느라 출발이 더디긴 했지만 훈자에서 95킬로 떨어진 길기트까지 우리나라 돈으로 1000원이면 갈 수 있다는 기쁨으로 그럭저럭 참을 만 했다.

 난 봉고의 맨 뒤에 앉았는데 갑자기 동양인으로 보이는 여자애 하나가 봉고 앞쪽에 타는 것이다.. 혹시 우리나라 여행자? 그런데 첫눈에 봐도 섬나라(일본)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봉고는 출발하고.. 길가에 손님이 있으면 밭에서 열매를 따듯이 사람들을 픽업하고.. 이곳 봉고는 그야말로 일자 무식이다. 15인승 됨 직한 봉고에 24명이 탔으니.. 하지만 더 놀랄일은 더 이상 사람을 태울 수 없을때 일어났다.

 손님이 보이면 봉고는 서행을 시작하고.. 봉고가 서행을 할때 손님은 달리기를 시작한다.. 봉고 뒤쪽에 매달려 가는 것이었다. 매달린 후에는 아무리 차가 빨리 가도 떨어지지 않는다. 떨어지면 이세상과는 이별이니 그럴 수 밖에.. 그렇게 매달린 채 비포장 도로 30킬로를 가는 사람도 봤다.

 오전 11경 길기트에 도착했다. 정보가 없었던 나에게 오직 하나 믿었던건 아까 앞에 탔던 일본 여자애.. 그런데 길기트 시내를 지나쳐도 여자애는 내릴 생각을 안하는 것이다.

 시내를 지나서 일본 여자애랑 같이 내렸다. 말을 걸어보니 그녀도 여기가 처음인 모양이었고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나마 '투어리스트 게스트 하우스'라는 여행자 게스트 하우스 이름 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둘이 다시 길기트 시내로 걸어가면서 소개를 했다. 이름은 카오리.. 전공을 물어보니 현재 와세다대학 경제학부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한다.

 대학은 묻지도 않았는데.. 하긴 이해가 된다. 일본의 제 1의 대학은 동경대이고 그다음이 와세다 대학이다. 카오리는 일본의 엘리트 중에 엘리트..

 카오리와 웃으면서 많은 대화를 했다. 마치 데이트 하는 연인처럼.. 이상하게 이번 여행에는 참 일본 여자들과 많이 접하는 거 같다.

 카오리와 투어리스트 게스트 하우스에 들어갔다..헉.. 그런데 이게 웬인.. 손님은 모두 일본인..게스트 하우스 주인도 일본인.. 나 혼자 태극기가 그려진 옷을 입은 이방인.. 좀 망설였지만 에라 모르겠다. 라는 마음으로 체크인을 했다.

 친절한 일본인 여주인은 카오리와 나를 같은 방에 배치해 주었다.. 또 사람 설레이게 하네..
길기트는 특별한 관광지는 없고 그냥 하루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air port road라는 메인도로를 중심으로 게스트 하우스와 상점들이 모여있다.

 오늘의 미션은 파키스탄 물가 알기.. 도대체가 물가를 종잡을 수 없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과일도 사보고..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아이스크림은 5루피(100원), 식사는 30루피(600원), 파키스탄 식사는 만들어진 반찬을 짜파티라고 하는 얇은 빵을 이용해 집어먹는다. 이를테면 짜파티가 우리나라의 밥이나 마찬가지인 셈..

 그렇지만 문제는 내 입맛에 안 맞는다는 것..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올때 포도를 사보았다. 한 송이를 집으니 영어를 잘 못하는 주인은 25루피(500원)을 달라고 한다. 머가 이렇게 비싸? 그래도 비타민 보충을 해야 했기에 달라고 했다.

 알고 보니 1킬로... 혼자 먹기에는 무지막지한 양이었다.

 일본인 게스트 하우스긴 하지만 정말 편하다. 미인 카오리랑 정보도 교환하고.. 열대야를 피해 정원으로 나가 편한 의자에 앉아 책을 읽으며 다음 여행을 계획했다.

 8월 23일(토)

 휴.. 잘 쉬었다. 아침부터 더운 날씨이지만 그래도 아침의 상쾌함은 살아 있었다.

 카오리는 밤 늦도록 멀 했는지.. 여전히 자고 있고..

 일단 라왈핀디로 가는 버스표를 구하러 나갔다. 에어포트 로드를 이리저리 둘러봐도 버스정류장이 나오지 않았다. 이상하다? 분명히 이 자리에 있다고 했는데.. 론니의 지도에 나온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론니 파키스탄 최신판은 98년도에 나왔다. 무려 5년전에 나온 것이다. 그러니 틀릴 수 밖에..

 친절한 파키스탄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길기트 시내 끝쪽에 있는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갈때에는 파키스탄의 명물 쓰즈끼를 탔다. 처음 쓰즈끼를 탈때에는 매달릴 엄두도 못 내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매달려 가는게 재미있을 정도의 경지에 올랐다.

 오후 4시에 출발하는 에어컨 버스가 560루피.. 난 학생증을 내 보이며 좀 싸게 해달라고 웃으며 말했다.

 웃음이 통해서 일까? 400루피까지 깍아준다. 원래 정부버스 이외에는 할인이 안되는데..

 일본인 게스트 하우스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카오리와도 작별 인사를 한 후 라왈핀디행 버스에 올라탔다.

 지도상으로는 라왈핀디와 가까이 있지만 산을 이리저리 돌아서 가기에 18시간이나 걸린다고 한다.

 버스는 에어컨이 나오고 쾌적했다. 내 옆에는 파키스탄 교수가 탔는데 미국이 다른나라를 건드릴 수 있어도 파키스탄은 절대 못 건드린다고 한다. 그 이유는 미국이 파키스탄을 침공하면 파키스탄에서 이스라엘로 대륙간탄도탄(ICBN)을 이용해 이스라엘에 핵공격을 할 수 있기때문이라고 한다.

 뉴스 메디어로는 전혀 듣지 못했던 새로운 학설.. 파키스탄이 ICBN까지? ICBN은 오직 미국과 러시아만이 가지고 있는 고도의 기술로 알고 있었는데..

 신뢰성이 없기는 하지만 난 와 대단하다라는 말을 연발했다. 그 교수외에 7명의 일행이 같이 북부 트래킹을 하다가 돌아가는 길이었다.

 한눈에 봐도 파키스탄 상류층임을 알 수 있었다. 덕분에 그 들과도 친해지고..

 여행을 하면서 일본인들한테 나도 많이 배운거 같다. 기분이 어땠든지 간에 내 얼굴에서 절대 미소를 잃지 않는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서 버스가 잠시 멈췄을때 그들은 내 옆으로 와서 파키스탄이 어떻냐고 물어본다.

 사실 내가 느낀건 무척 덥고, 혼란스럽고, 좀 지저분하지만 그나마 사람들이 친절하고 자연환경이 중국측 실크로드 보다는 볼 만하다는 것..

 그렇지만 그들한테는 파키스탄은 최고로 아름답고 모두가 친절한 사람들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결과는 곧 저녁식사 무료.. 난 내가 먹은건 내가 내겠다고 해도 그들은 '넌 우리의 손님이니까 그럴수 없어'라고 일축한다.

 어디가든 스마일은 통하는 법이다.

 버스는 아슬아슬한 계곡을 헤치며 라왈핀디로 향했다..

 장수마을로 유명한 훈자.. 카리니바디의 모습

 평화롭기 그지 없는 풍경

 사방이 산으로 막혀있는 훈자.. 외부로 통하는 길은 오직 실크로드뿐..

 750년간 훈자왕국을 지배한 왕이 살았던 발티트 궁전.. 티벳 양식으로 지어졌다.

 웅장한 설산과 그에 어울리는 웅장한 계곡.

실크로드에서 나 역시 찰칵~

 길기트전경 파키스탄에 와서 처음으로 맞는 도시이다.

 파키스탄 햄버거.. 처음에는 맛있었지만 질리게 먹어서 지금은 상상만 해도.. 윽~

 한 정육점 아저씨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해서 찍어줌

 라왈핀디로 가는 버스를 타기직전 파키스탄인들과..

 

 파키스탄 여행기여행기 3 (8,24~8.25) 라왈핀디, 이슬라마바드

 8월 24일(일)

 버스는 밤 새도록 산악도로를 달려 아침이 되었을 때는 평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지겨운 버스 여행이기는 하지만 날이 밝아지자 파키스탄 사람들의 아침 일상을 잠깐 엿볼 수 있었다.

 라왈핀디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날씨는 후덥지근해지고 사람과 차들로 혼잡해져 간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지자 버스는 라왈핀디터미널에 도착했다. 라왈핀디의 숙소는 길기트의 게스트하우스 방명록에서 읽은 파퓰러인으로 정해놨었다.

 그런데 이 드넓은 도시에 파퓰러인이 어디 있는지 알아야지..

 일단 수많은 택시 호객꾼을 뒤로한채 스즈끼를 탔다. 놀랍게도 스즈끼 안에는 같은 버스를 탔던 스위스인이 타고 있었다.

 버스에 타고 있을 때는 말을 붙이지 않았었는데 스즈끼를 타고 나서야 스위스인에게 처음 말을 걸었다.

 그는 훈자에 들렀다가 라왈핀디로 다시오는 길이었고, 내가 찾는 파퓰러인으로 가는 중이었다. 덕분에 어렵지 않게 파퓰러인으로 갈 수 있엇다.

 파퓰러인(100루피)으로 들어가자 짐을 놓고 허기진 배를 달랠려고 식사를 시켰다. 오무라이스가 나올 때까지 파퓰러인의 방명록을 봤는데 놀랍게도 바로 어제까지 한국인 여인이 있었다.

 어.. 설마 한국인이?

 식사를 하고 있는데 일본인인 듯한 여인과 마주쳤다.. 혹시.. 한국인이 이냐고 물어보니 한국인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나보다 3살 많은 누나이고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1년을 계획하고 홀로 세계일주중이라고 한다.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한지는 5개월이 되었는데 도저히 지치고 힘들어서 한국으로 돌아가고 있는중이라고 했다.

 누나는 파퓰러인의 열악한 시설 때문에 오늘중으로 더 좋은 호텔로 옮긴다고 했다.

 짐을 정리하고 거리에 나서자 후덥지근한 불볕더위가 나를 맞아 주었다. '마치 사우나에 들어온거 같은걸..' 쏟아지는 땀을 감내해내며 피시방을 찾았다.

 수 많은 사람들이 활보하는 거리 이곳저곳에서는 쓰레기와 악취가 났다.

 '휴.. 내가 여기서 살라면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사람들의 표정은 낙천적이고 밝다. 파키스탄인 특유의 발랄함을 엿 볼 수 있었다.

 피시방은 1시간에 우리나라돈으로 300원.. 속도가 느린게 불만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인터넷을 쓸 수 있다는게 어딘가..

 그동안 밀린 여행기를 정리를 하고 그리운 고국의 정보를 이리저리 훝어보니 저녁이 되어 있었다.

 저녁은 이슬라마바드에서 약속이 있었다. 이슬라마바드에 거주하시는 한 교포분이 내가 여행중에 연재하는 여행기를 보시고 파키스탄에 오면 꼭 연락을 주라면서 연락처를 주셨다.

 파퓰러인에서 만난 누나와 함께 이슬라마바드로 가는 버스(10루피)다. 라왈핀디에서 20킬로 정도 떨이진 이슬라마바드는 왁자지껄한 라왈핀디와는 달리 조용하고 정돈된 분위기의 도시였다.

 파키스탄의 내륙 개발을 위해 만들어진 계획 도시이미 현재 파키스탄의 수도이기도 한 도시이다.

 주로 상류층들이 사는곳이라는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교포분께 전화를 드리고 약속된 장소에 가보니 파키스탄인 직원이 우리를 맞아 주었다.

 직원은 교포분이 운영하시는 식당으로 인도했다.

 부자 동네라 그런지 이곳의 거의 모든 집이 무장 사설 경호원을 두고 있었다. 평화로운 가운데 살벌한 분위기마저 감돈다.

 식당에 들어서자 한국인 아줌마께서 우리를 맞아 주신다.

 주로 상사원이나 교포들을 상대로 식당을 운영하시는데 가격은 한국에서보다 훨씬 더 비싸다.

 인심좋은 교포분께서는 우리에게 맛있는 한국 음식과 맥주를 대접해 주셨다.

 아.. 얼마만에 먹어보는 한국 음식인가.. 서부티벳과 파키스탄을 여행하면서 그리워했던 한국 음식을 드디어 맛 보게 된 것이다.

 식사를 하면서 바로 옆 테이블에 있는 아프가니스탄 구호를 담당하는 한국인NGO와 기업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의 사정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고 구호단체에 활동하면서 겪는 어려움과 에피소드를 이야기 해 주었다. 나로서는 귀한 간접 경험을 했다. 정말 멋진 분들이다.

  사실 더 좋은건 그분들이 소갈비를 드시고 계셨다는 것이다.^^ 이국 땅에서 이런 성찬을 먹어보다니.. 정말 땡잡았다는 기분.

 아프가니스탄은 전쟁이 끝나고 한참 재건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위험이 산재하는 지역이다. 테러위협이 있기는 하지만 여행은 가능하다. NGO분들은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는 법과 여행지역.. 주의할점등을 알려 주셨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연락을 하면 재워주신다고 하셨다.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고급정보를 들으니 새로운 도전 정신이 나의 가슴을 콕콕 찌른다.

 아.. 시간만 더 있었어도.. 학교는 이미 개강한 상태라 다음 기회를 기약해야 했다.

 한참 담소를 나누며 저녁을 먹고 있을 때 기브스를 한 분이 보였다. 사업차 아프가니스탄에 들어가셨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셨다고 한다.

 식당 주인 아줌마와 NGO분들은 우리 일행에게 친절하고 많은 이야기를 해주시는 반면 나머지 한국인들은 우리에게 무관심했다.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하더라도 그저 건성으로 받을 뿐이다. 휴.. 고급스럽게 다니는 사람들의 한계인가? 좀 서운하기도 했다.

 저녁을 다 먹고 후식까지 먹은 후 아줌마와 NGO분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내가 얻어먹는데 달인이라서 그런가? 그리운 한국 음식을 실컷 먹었다.

  일행인 누나와 함께 이슬라마바드에서 라왈핀디로 가는 봉고를 탔다. 깨끗한 이슬라마바드와는 달리 라왈핀디는 혼잡하고 지저분함 자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 냄새를 물씬 맡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파풀러인에 도착해서 동행했던 누나와 인사를 하고 곧바로 피시방에 가서 그동안 밀린 여행기를 정리했다.

 밤 11시.. 잠들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더운 더위와 모기들이 날 습격하는 바람에 밤새도록 전쟁을 치루어야 했다.

 8월 25일(월)

 드디어 돌아갈 준비를 할 날이 왔다. 다니는 대학교는 이미 개강을 했다.

 원래는 초조하고 서둘러야 하는데.. 개강하고 1~2주 빠져주는건 이미 익숙해 있었고 교수님들도 이해를 해주신다. 여행전 교수님들을 찾아뵙을때 교수님들은 '너무 늦지 말고 돌아만 오게나..'하고 말씀 하실 뿐이다.

 오늘 할 일은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비행기표를 구하는 일이다. 한국에 바로 가는 비행기는 가격이 매우 비싸기 때문에 일단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를 구한뒤 방콕에서 한국으로 날아가기로 해다.

 오전 10시쯤 어제 동행했던 누나와 버스를 타고  이슬라마바드로 향했다.

 파키스탄의 버스는 특이하다. 여자, 남자석이 따로 있는데 여자석이 더 좁은 편이다. 하지만 여성이 대외 활동을 하기 힘든 파키스탄 전통 때문인지 서 있기 조차 힘든 남자구역과는 달리 여자 구역은 한산하기 짝이 없다.

 외국인이라고 배려를 해주어서 자리에 앉기는 앉았어도  땀 뻘뻘 흘리며 불편하게 앉아있는 나와 달리 누나는 편하게 앉아있다. 철저하게 얼굴까지 가리는 파키스탄 여인과 다리가 떡 드러다는 반 바지를 입고 누나가 대비가 되는 모습이다. 누나는 외국인이라 그런지 옷차림에 대해서 머라고 하는 파키스탄인은 없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젊은이가 나한테 말을 건다. 그 친구는 21살이고 라호르에서 의과 대학을 다닌다. 영어가 유창하기는 한데 도대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이다. 중간에 단어만 겨우 알아 들을 수 있다.

 내가 잘 못알아 듣는걸 지켜본 이 친구의 반응이 가관이다.

 나보고 여행을 할려면 영어를 해야 한다며.. 자신에게 MSN 주소를 알려주면 메신저를 통해서 영어를 가르쳐 주겠다고 한다. 나에 대한 배려는 고맙지만 여지껏 여행하면서 유럽, 미국애들과는 의사소통에 거의 문제가 없었던 나로서는 다소 황당했다.

 한참 영어 강의를 듣는 동안 버스는 이슬라마바드의 SADAR ROAD에 도착했다. 이곳은 각종 사무실이 모인 곳으로서 특히 여행사들이 많이 있었다.

 파키스탄에 대안 한 정보가 거의 없는 우리에게 어제 만난 NGO분은 자신과 거래를 하는 여행사를 소개해 주셨고 우리가 도착하기전 직접 전화를 하셔서 부탁하는 수고를 아끼시지 않으셨다.

 우리가 소개받은 곳은 블루여행사라는 곳인데 여행사 안으로 들어가니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인심좋게 보이는 아저씨가 우리와 상담을 해주셨다. 해외에서 비행기표를 구하는게 처음이라 긴장되기는 했지만 어렵지 않게 라호르에서 출발해서 방콕으로 가는 비행기표를 구할 수 있었다. 절차가 조금 번거롭기는 해도 신용카드로 비용을 결재했다.

 그렇지만 비행기표를 발권할려면 항공사에서 직접 표를 가져와야 하기 때문에 다소 시간이 거린다고 했다. 크게 할 일이 없는 우리는 근처의 고급까페에 가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많은 여행이야기를 했다.

 오후 2시 비행기표는 나오고 우리는 다시 라왈핀디로 향했다. 누나는 현금이 거의 다 떨어져서 시티은행 라왈핀디지점으로 가서 현금을 인출했다.

 누나를 통해서 해외여행을 할 때 시티은행 카드가 요긴하게 쓰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나의 부탁으로 우리 일행은 파키스탄 물가에 비해서는 터무니 없이 비싼 KFC로 갔다. 파키스탄에서 KFC는 어떤 모습일지 궁굼했기 때문이다.

 무장 경호원이 있는 입구를 지나 KFC안으로 들어갔다. KFC안은 그야말로 귀족적인 분위기 이다. 모든 사람들이 부티나는 옷을 입고 한눈에 부자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엇다.

 허름한 차림의 우리가 KFC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외국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으리..

 KFC안은 그야말로 천국이다. 와이드티비로 유럽축구가 중계되고 있었고 가족단위로 식사하러 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특이한 것은 여자들이 차도르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 상류층 여인들은 차도르를 거의 하지 않는구나.. 악습을 타파해야 한다는 것을 상류층들은 인식하고 있는 것일까?'

 햄버거 세트 가격은 200루피.. 우리나라 돈으로 4000원이다. 우리나라보다 비싼 것도 그렇지만 이곳 사람에게는 상상할 수도 없는 가격이다.

 여기 치킨은 특이한 소스를 발라먹는데 대충 우리나라의 양념치킨 맛과 흡사하다. 우리나라의 양념치킨이 여기서는 고급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나랑 에어컨 바람을 즐기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엽자리에서 왁자찌껄한 소리가 난다.

 한 가족이 7살이 된 듯한 아이의 생일잔치를 하고 있었다. 아이가 케익의 초를 끄자 모두들 기뻐하며 축하해준다. 엄마인 듯한 분이 기념 사진을 찍어준다. 모두들 기뻐하며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세계 어디를 가나 단란한 가족은 행복해 하는구나..' 물끄러미 가족들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미소를 읽었다.

 KFC를 나서서 숙소인 파퓰러인으로 갔다. 오늘 역시 무더위와 싸우며 잠을 청했다...

 정말 더운 나라라는 생각이 뼈속까지 박히는 것 같았다.

 많은 버스들로 번잡한 라왈핀디 터미널

 혼잡한 라왈핀디 거리

 파퓰러인 근처, 라왈핀디의 전체적인 분위기인 듯

 이슬라마바드의 거리

이슬라마바드 주차장에서.. 전체적으로 가로수가 많다

 KFC 안에서 생일잔치를 하는 다정한 가족

 

파키스탄 여행기여행기 4 (8,26~) 라왈핀디, 이슬라마바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