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티벳 여행기 1(7,13~7,16) 티만사 3차 원정대 창설, 꺼얼무~라싸

 7월 13일(일)

오늘의 시작 역시 기차에서 시작되었다. 잉쭈어는 어떠한 자세로 자도 편하게 자기 힘들다. 그저 시간이 지나가는걸 바랄 수 밖에..

 어제 친해진 한 중국 대학생이랑 이야기를 했다. 축구 이야기를 하다가 공안(경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한국 사람들중에 일부는 술취하면 경찰서로 가서 행패를 부리고 만약에 경찰이 시민을 일방적으로 때리면 신문에 크게 나고 그 윗사람까지 짤린다고 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우리나라처럼 경찰을 만만하게 보는 국민도 드물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이야기를 들은 대학생은 신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신들은 공안(경찰)을 무척 두려워한다고 했다.

 12시쯤에 난주에 도착하고.. 바로 중국에서의 공안의 힘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혼잡한 역 출구에서 한 공안이 무서운 표정으로 서있으니 바로 중국인들이 2줄로 가지런히 선다. 가끔 삐져 나오는 사람을 공안이 몽둥이로 가르키면.. 놀란 중국인은 황급히 줄로 들어가고.. 공안의 두 눈과 팔 하나가 무질서한 중국인들을 질서있게 만드는 것이다. 참.. 대단한 힘이다.

 난주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2일째 날 기다리는 동생들을 만나는 일이다. 난주역 바로 앞에 별2개짜리 호텔이 있는데 거기 도미토리가 하루 20위엔으로 저렴한 편이다. 때문에 거기에서 만나자고 메일로 전했지만 미처 못봤나 보다. 일단 호텔에 자리를 잡고 난주 시내로 나갔다.

 1년사이에 난주는 3번째 이다. 남북으로 험한 산악지형에 유유히 흐르는 황허를 중심으로 횡으로 시내가 구성되어있다. 근처에 공장들이 많아 대기 오염이 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 이며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이 넓은 도시에서 동생들을 어떻게 만나지? 일단 난주에서 유명한 소고기 국물이 일품인 우육면을 먹고 피시방에 갔다.

 난주에서 유일하게 한글이 되는 난주대학 바로 옆의 피시방에 가서 메일을 검색했다. 메일로도 감감무소식.. 에라이 모르겠다. 이럴때는 그냥 자는게 최고야.

 호텔로 돌아와서 잤다. 아마 후배들은 날 애타게 찾고 있겠지..

 밤 9시가 되어서 다시 피시방으로 갔다. 후배들한테 영어로 된 메일이 왔다. 난주역 앞에서 오후 9시에 만나자.. 어라? 지금이잖아.. 부랴부랴 역앞으로 가니 후배들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지? 5분정도 역앞에서 서성이고 있을때 ‘어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동생들이랑 만난 것이다.

 1달만에 주변사람들을 만나는 그 기쁨.. 특히 이국에서 만나는 동생들이라 기쁨은 더 했다. 우리는 잠시 얼싸안고 안부를 물었다. 그리고 곧바로 내일 꺼얼무로 떠날 기차표(잉쭈어 78위엔)를 예매했다.

 동생들에게 잉쭈어를 경험해 보라고 일부러 일쭈어를 예매했다.(사실.. 돈아낄려구..)

 동생들이 묵은 방은 1인당 15위엔짜리 초대소.. 화장실도 최악이고 샤워 역시 하지 못한다. 내가 묵는 20위엔짜리 호텔과 대비가 되는순간.. 정보의 중요성을 배웠으리라..

 나를 찾기 위해서 역주변을 중심으로 백방으로 뛰어다녔나 보다. 과일과 맥주 좀 사서 앞으로의 계획과 일정에 대해서 의견을 교환했다.

 동생들 소개를 좀 하자면

 심재현(25)- 춘천교대 미술교육과 98학번으로 나의 바로 밑 후배이다. 저번 겨울 나와 같이 청소년 국토순례 지도자를 했다. 성격이 깐깐하고 매사 신중한 편이라서 내가 무엇을 결정을 할 때에 조언을 구하는 편이다. 나 혼자서 여행을 떠난 후 이번 여행과 논문(티벳어린이에게 우리나라 미술교육 교수하기) 준비를 총 지휘 했다. 문학도로서 등단을 하는게 목표이고 이번 여행은 나의 권유와 많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 시작했다. 글을 매우 잘 쓰는 편이다.

 이상걸(22)- 춘천교대 컴퓨터교육과 00학번으로 01년도에 내가 학교에 국토순례동아리를 창단 했을때부터 함께한 후배이다. 작년 내가 동아리에서 손을 뗀 후부터는 여행동아리를 계속 이끌었으며 현재까지 5번의 국토순례를 경험한 든든한 후배이다. 이번에 교생실습을 하면서 티벳 어린이에게 교수할 미술교육 주제를 한국 어린이에게 수업을 했으며 성실한 성격으로 내가 무엇이든지 믿고 맡길 수 있는 그런 후배이다.

 진민구(24)- 유한대학 건축과 휴학중이며 저번 겨울 청소년국토순례 지도자를 했을때 만났다. 국토순례를 하면서 많이 힘들었지만 언제나 밝게 웃으며 여행을 하는게 마음에 든다.

 민구는 이번에 내가 베트남으로 떠날때 공항까지 마중나와 줬는데 내가 떠날 때 장난으로 ‘민구야 난주에서 보자’라고 했던 한마디가 계속 귀에 멤돌았다고 한다. 그래서 티벳을 가기로 결심하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민구 역시 무엇이든 맡길 수 있는 든든한 동생이다.

 신전근(25)- 홍익대 재학중으로 재현이 친구로서 재현이 말을 듣고 무작정 따라왔다고 한다. 아직 성격 파악은 안되었지만 티벳에서 만큼은 절대적으로 내 말을 들어야 된다고 일러 놓았다.

 이렇게 4명의 동생을 만나고 나니 정말로 든든하다. 무엇보다도 평소에도 내 말이면 무엇이든지 따고 신뢰하는 동생들이라서 더욱 그렇다.

 처음에 같이 여행을 하자고 했던 것도 색다른 경험을 쌓게 해주기 위해서였다.

 이들이 가지고 온 어마어마한 짐의 양을 보고 놀랐다. 티벳 어린이에게 수업을 하기 위한 준비물인데.. 도화지, 색종이, 물감, 파스텔, 지점토까지.. 이것들을 가져오느라고 고생 꽤나 했던 모양이다.

 상걸이와 민구를 내방으로 데리고 왔다. 방에는 웨일즈인 여행자가 나와 함께 방을 쓰고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 양해를 구하고 상걸이와 민구에게 한번 영어를 직접 써보라고 했다.

 역시 둘 다 떨면서 영어를 한다. 이럴때 나의 영어실력을 자랑해야지^^ 문법은 하나도 안맞지만 자신감이 넘친 나의 영어실력을 동생들에게 뽑냈다. 23살인 웨일즈인 필. 그는 2년째 여행중으로 동생들이 어렵게 영어를 하면 웃으면서 편안하게 받아주는 자상한 사나이이다.

 40분정도 대화를 하고.. 아마 동생들은 여행의 색다른 재미를 알았을 것이다. 그들은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며 꼭 다시 만나자고 했다.

 여태까지 나 혼자만의 여행이었다면 이제 해외여행이라고는 처음인 4명의 후배를 데리고 라싸까지 가야 한다. 외국인에게 꺼얼무에서 라싸가는 육로가 막혔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라 많은 걱정이 되었다.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그렇지만 난 믿는다 내 주변에는 항상 이쁜 행운의 여신이 따라준다는걸.. 자 이제 티벳이다!

 

 7월 14일(월)

 상걸이와 민구가 호텔에까지 깨워주러 왔다. 호텔에서 체크 아웃을 하고 동생들이 있는 초대소로 가니 영어가 조금 능통한 중국인 여대생과 같이 있었다. 중국인 여대생은 방학을 해서 오늘 밤 10시에 기차를 타고 집인 산동성으로 가는데 우리가 기차를 탈때까지(오후 5시)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했다.

 동생들은 여대생을 따라 난주 관광을 가고.. 다리에서부터 쉬지 않고 여기까지 온 난 또다시 시작되는 고생을 앞에두고 동생들이 있었던 초대소에 5위엔을 주고 기차 출발하는 시간까지 쉬기로 했다.

 오후 4시에 다시 모여 5시에 기차를 타고..

 동생들에게 잉쭈어의 고통을 경험해 보라고 일부러 잉쭈어를 탔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없다. 휴.. 김샜네

 그래도 잉쭈어는 잉쭈어다. 깔끔한 성격 때문에 적응하지 못하고 밤새 뒤척이면서 제대로 잠을 못자는 재현이.. 상걸이와 민구도 잠은 자지만 추위 때문에 거의 선잠을 잔 듯 하다.

 익숙한 고생을 하는 나와 첫 고생을 잘 참아내는 동생들.. 라싸까지 무사히 가야 할텐데.. 일단 꺼얼무로 가보면 무슨수가 생기겠지.. 많은 생각이 교차하며 나의 두 눈이 스르르 감겼다.

 7월 15일(화)

 오전 11시가 조금 넘어서 꺼얼무에 도착을 했다. 잉쭈어를 타면 아무말 없이 묵묵히 생각만 하던 때가 많았는데 역시 동생들과 함께 하니까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즐겁게 갈 수 있었다.

 꺼얼무에 도착한 직후부터 우리의 이름을 티벳의 선교사님 장한종 선생님의 명에 따라 티만사(티벳에서 만난 사람들) 3차 원정대라는 호칭을 붙이기로 했다. 형식적이기는 하지만 웬지 특공대가 된 기분.. 3차 원정대의 첫 임무는 티벳초등학교에서 우리 미술교육을 교수하기이고 두 번째는 육로로 통과하는 것이다. 또한 티벳의 정보들을 티만사 다음카페에 티벳 여행자를 위해서 정보를 수집하고 올리는 것이다.

 꺼얼무에 도착하자 ‘라싸, 라싸’하면서 많은 삐끼들이 붙는다.. 처음에 우리를 중국인으로 알았는지 라싸까지 150위엔을 제시하다가 이내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900으로 올라간다.

 역 주변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건 라싸가는 사람이 적다는 것이다.

 일단 점심을 먹고 역 왼편에 위치한 금지빈관으로 갔다. 1인당 20위엔.. 시설에 비해서 저렴한 편이다.

 금지빈관에서 여장을 풀고 라싸가는 차를 알아보기 위해 민구와 함께 역 주변으로 갔다. 역시 1인당 800, 900.. 여기서 더 이상 내려가지 않는다.

 그런데 한 삐끼가 600을 부른다. 그런데 조건은 선불이라는것.. 그건 절대 안된다. 검문소가 있는걸 뻔히 알고 있는데 만약에 우리가 검문에 걸리고 우리가 탄 차는 그냥 꺼얼무로 돌아간다면 눈뜨고 600위엔을 날리는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처음 꺼얼무에서 얼마를 주고 라싸에서 얼마를 주냐는 것이다. 계속 교섭을 하다 보니까 꺼얼무400, 라싸 200까지 부르지만.. 난 꺼얼무 200, 라싸에서는 100을 더 줘서 500을 불렀다. 그래도 거부.. 700을 준다는데도 거부하는 것은 돈을 떼먹기 위한 목적이다. 미련없이 금지빈관으로 돌아왔다.

 많은 생각이 교차 되었다. 아.. 이러다 정말 라싸로 갈 수 있을까? 지금 다리에서 경남이형과 경모형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데 같이 합류해서 갈까..

 지난 여름 라싸에서 출발해서 동티벳을 통과해서 육로로 성도까지 가는데 성공했고, 지난 겨울에는 쿤밍에서 출발해서 역시 육로로 동티벳을 통과해서 라싸까지 한번도 검문에 안 걸리고 갔던 경험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딸린 동생이 4명.. 힘들었다.

 그렇다고 퍼밋을 사서 가자니 1인당 비용이 1800위엔이고, 만약에 꺼얼무에서 출발해서 라싸로 가다가 공안에게 걸리면 1인당 500위엔의 벌금을 내고 차 요금도 다 날린채 다시 꺼얼무로 쫏겨 나니..

 한참을 고민하고 있을때 내방을 누가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알았는지 두명의 삐끼가 우리와 요금 교섭을 하러 온 것이다.

 어디 한번 해볼까? 티벳 지도를 펼쳐놓고 삐끼들에게 3곳의 검문소 위치를 정확하게 지적해 주었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고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을 삐끼들에게 인지시켜주기 위해서이다.

 삐끼들은 서툰 영어로 700위엔이면 라싸까지 데려다 줄거라고 했다.

 ‘그럼 검문소는 어떻게 통과할거냐?’ 날카로운 나의 질문이 이어지자.. 꺼얼무의 검문소 공안은 자신들의 친구라서 문제가 안 되고, 나취와 라싸의 검문소도 자신들과 안면이 있고 100위엔씩 찔러주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처음 꺼얼무에서 출발할 때 300위엔씩.. 라싸에서 400위엔이라는 조건을 제시했다.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 아까 역에서 만난 삐끼보다는 그나마 신뢰가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들 말은 2대에 지프에 중국인 1명을 포함해서 3명씩 나누어서 간다는 것이다. 그건 말이 안되는데.. 지프를 그렇게 싸게 빌려..

 자고 있는 동생들을 깨워서 잠시 회의를 했다. 결론은 황량한 꺼얼무에 있는 것 보다는 한번 베팅을 해보자는것! 좋다 행운의 여신을 믿자..

 오후 8시에 2대의 차가 도착하고.. 차를 보니 짚차가 아니라 승용차였다. 아까 가졌던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다.

 빈관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을때 삐끼가 소개료로 100위엔을 달라고 한다. 어디서 이게 돈을 뜯을려고.. 난 즉시 동생들을 다시 불러 들였다. 그리고 오늘 안갈거라고 삐끼에게 말했다. 당황한 삐끼는 1인당 700위엔만 내면 된다며 소개료는 안줘도 된다고 했다.

 나와 민구와 한명의 회족이 한차에 타고, 상걸이와 재현이 정근이가 다른 한차에 탔다. 상걸이와 나를 나누어서 탄 것은 혹시 한차가 걸려서 꺼얼무로 돌아가면 둘중에 한명이 티벳초등학교에서 수업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2대의 차는 외진 건물로 가더니 다시 운전사들이 내린다. ‘라후반..’이라며 나를 부른다. 오호 내가 3차 원정대 대장이라는건 알고 있는 모양이군.

 그들은 꺼얼무에서 400, 라싸에서 300을 달라고 한다. 그들역시 아주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난 당연히 거절.. 이제부터 여행을 하면서 운전사와 나 간에 신경전이 계속 펼쳐진다.

 꺼얼무에서 300, 라싸에서 400아니면 다시 내리겠다고 했다. 그들은 꺼얼무에서 300을 주고 나머지는 나취에서 통과하면 400을 달라고 한다.. 라싸에도 검문소가 있는걸 알기에 거절했다.

 결국 1인당 꺼얼무에서 300, 나취를 통과하면 200, 라싸에서 200을 주기로 했다.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안전장치를 한 것이다. 우리 5명을 라싸까지 수송하기 위해서 동원된 2대의 택시와 4명의 운전자.. 무슨 특공대도 아니고..

 약속대로 꺼얼무를 출발할 때 5명 분인 1500을 줬다. 삐끼 2명한테는 200위엔씩 돌아가고.. 씁씁했지만 난 어떻게든 1인당 700위엔에 라싸로 도착하면 되니 상관없다.

 라싸로 향하는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통과하고.. 30분쯤 달리니 검문소가 보였다. 바로 첫 관문이었다. 운전사는 민구와 나를 차안에 몸을 숨기라고 하고 중국인 1명과 2명의 운전자가 사스검사를 받았다.

 차를 타고 검문소를 지날 때 앞의 차의 사스검사증을 검사하던 공안이 우리차는 그냥 가라고 한다. 아무래도 모종의 거래가 있었나 보다.

 이제 나취까지는 안전하다. 풍경들을 감상하면서 갔다. 우리가 탄 차는 100킬로가 넘는 속도로 달리다가 비포장도로가 나오면 천천히 가기를 반복했다.

 몇시나 됬는지 볼려고 주머니에 있는 디카를 찾았는데 보이지 않는다.. 헉.. 확실히 주머니에 흘렸는데.. 아무래도 흘린 모양이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고.. 다른데 신경을 쓰느라 미쳐 디카를 챙기지 못했던 모양이다.

 절망감이 나한테 다가왔다. 물론 보험에 들기는 했지만 그동안의 사진은 다 날라가고.. 무엇보다 디카를 절대 잃어버리지 말자는 나와의 약속이 깨지고.. 민구도 함께 찾았지만 역시 없엇다.

 차가 잠시 섰을때 혹시나 배낭안에 있을가 싶어서 차 문을 연채로 운전자에게 트렁크를 열어달라고 했다.

 그때 민구가 ‘형 찾았어요!’라며 소리를 지른다. 디카는 차문에 돌출되어 있는 나사에 간당간당하게 매달려 있었던 것이다.

 순간 나는 치를 떨었다.. 어떻게 디카가 떨어질때 흐물흐물한 줄이 나사에 제대로 걸렸으며 또한 시속 140까지 가는 속력에서 차에 잘 매달리며 갔으며.. 만약에 내가 차문을 열었다 다시 닫았으면 부서졌을텐데 내가 문을 연채로 나왔으며.. 아.. 정말로 행운의 여신이 내 곁에 있는 모양이구나.

 앞으로 절대로 방심하지 말라는 하늘의 경고로 받아들였다.

 밤 12시쯤에 2대의 차는 식당앞에 서고.. 밥을 먹었다. 그런데 식비로 150위엔을 내라는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음식은 이미 시켰고.. 재현이와 의논을 해서 이번만 우리가 접대하는 차원에서 내주기로 했다.

 나와 같은 차를 타는 대장인 듯한 운전자가 나를 부르더니 ‘핑안, 핑안’하면서 멀 요구하는것이다. 대충 눈치를 보니 내가 편안해야 너도 편하다는 뜻인거 같다. 이럴때 가장 좋은 방법은 ‘틴부동(못알아 듣겠다)’ 그는 라싸까지 빨리 갈려면 자신들이 잠을 자면 안되고 그럴려면 담배값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담배값으로 1인당 50위엔을 요구하는 것이다. 4명이니 200위엔을 내라고 하는것이다. 완전히 순 억지.. 이런 기싸움에는 이미 익숙해졌다.

 그들도 위험을 감수하고 가는 만큼 외국인인 우리에게 돈을 많이 뜯을려고 하는것이다. 난 ‘밍티엔(내일), 훠티엔(모레) 커이(좋아)’라고 하면서 너희들이 언제 라싸에 도착하던지 간에 우리는 별로 상관없다고 하며 절대 담배값을 안준다고 했다.

 어짜피 그들도 조급한 만큼 일부러 늦게 갈일은 없을거라는 판단이다. 나의 이런 단호한 태도는 운전자에게도 어필하기 위한거지만 오직 나만 믿고 따라온 4명의 동생들에게도 흔들리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이다.

 식사를 하고 다시 출발했다. 역시.. 빠른 속도를 낸다. 운전자는 간혹가다가 담배값을 달라고 요구를 하지만 난 일언지하에 거절..

 서로의 대장이 있는 민구와 내가 탄 차와는 달리 상걸이와 재현이 차는 재미있게 가는 모양이다. 운전자와 손님사이에 서로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서로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간다.

 긴장된 마음속에서 이렇게 긴박한 하루가 갔다..

 7월 16일(수)

 차는 생각대로 빠른속도로 나취를 향해 가고 있었으며 3번째로 이길을 가는 나로서는 낯익은 풍경이 펼쳐졌다.

 이제 슬슬 고산병 증세가 나타난다. 옆의 민구는 증세가 좀 심한거 같다.. 무기력하게 눈만 감고 있을뿐이다.

 10시쯤에 차가 서더니 식사를 한다고 나한테 말했다. 어제처럼 당하기 싫어서 우리는 머리가 아파서 도저히 못 먹겠다고 했다. 이제 절대 돈을 뜯길 마음이 없다.

 식사를 마치고 차는 달리고 12시쯤에 꺼얼무~라싸의 절반 지점인 해발 5190미터 탕그라 고개 정상에 오르고..

 계속 긴장한 나와는 달리 동생들은 티벳의 경치에 감동을 한 모양이다. 고산병으로 아픈머리를 추스르며 여기저기 사진을 찍는걸 보니..

 운전자는 담배값을 요구하는거에서 벗어나 이제는 ‘쇼비 쇼비’라고 하면서 100위엔을 요구하는데 아무래도 수고비를 달라고 하는 것 같다. 일언지하에 거절.. 계속해서 신경전을 펼쳐지고.. 돈만 뜯을려는 운전자와 이제 인간으로서의 교감을 포기했다.

 오후 4시쯤에 나취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정말 빨리 온 것이다. 작년에 트럭 히치를 해서 올때는 24시간이 넘어서 왔는데..

 나취는 전 도시가 무슨 공사를 한다고 뒤집어 놓은 분위기였다. 검문소인듯한 장소가 하나 보였지만 아무도 없었다.. 운전자도 검문이 없어서 의아한듯.. 아싸 신이 도운것이다. 나취까지 무사통과..

 약속했던 1000위엔을 주고 다시 차는 라싸를 향해 달렸다.

 고행이었다. 티만사 3차 원정대 전원이 고산병에 걸리고.. 나역시 머리가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옆의 민구는 오바이트를 했다.

 그나마 다행인건 승용차가 정말 빨리 달린다는 것이다. 이건 랜드크루져도 아닌데 물길도 잘 건너고 험한 비포장도로를 잘 건너는 것이다. 가끔 무리한 길이 있으면 다들 내려서 차의 무게를 가볍게 해서 통과했다.

 오후 9시에 당슝에 도착했다.. 이제 라싸가 가까워오는구나.. 티만사 3차 원정대의 바램은 오직 하나.. 어서 빨리 라싸에 도착해서 야크호텔에 가길..

 민구는 아무말도 없고 죽은 듯이 눈만감고 있다.. 나역시 머리가.. 오늘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아서 더욱 힘들었다. 먹었어도 아마 토 했을 것이다.

 오후 11시 10분.. 'china mobil'이라는 마크가 달린 가로등들이 아름답게 도로 양옆을 수놓고 있었다.. 드디어 라싸다!.. 걱정했던 마지막 검문소는 보이지 않았다.. 역시 무사통과..

 정말로 기뻤다.. 동티벳을 통과할때도 이렇게 긴장되게 가지는 않았는데.. 어제 이 시간만 해도 제말 라싸까지만 무사히 들어갔으면 했던 바램이 이루어진 것이다.

 차에서 짐을 내리고 잔금 1000위엔을 치루고.. 우리가 내린곳은 버스터미널 근처이다. 먼저 한 택시를 잡아서 짐을 트렁크에 다 넣었고 5명이 12위엔이 야크호텔까지 갔다.

 고산병은 이미 잊혀졌다. 머리가 좀 아프지만 해냈다는 성취감과 승리감이 몰려왔다. 이렇게 3차 원정대의 꺼얼무~라싸 구간은 성공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나를 믿고 의지하고 고산병의 아픔을 잘 참아준 동생들이 고맙다.

 야크호텔에 도착하자마자 3307호로 달려갔다. 순식간에 3층으로 올라가서 머리가 띵하기도 했지만..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3307호 문을 두들겼다.. 장한종 선생님의 목소리고 들리고.. 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한마디

 ‘장선생님, 박찬수 입니다. 티만사 3차 원정대 5명 무사히 라싸에 입성했습니다.’

 청해성 티벳에서 바라본 설산의 모습..

 꺼얼무~라싸구간 이처럼 길이 좋은데도 있지만 만싱창이가 된 구간도 있다.

 무모하게 지름길로 가다가 전복당할뻔한 승용차

 꺼얼무~라싸 구간에서 제일 높은 고개인 탕그라 고개에 세워진 동상.. 별로 맘에는 안든다.

 탕그라 고개 정상에서..

 라싸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초록빛 초원이 나타난다.

 

 제3차 티벳 여행기 2(7,17~7,23) 라싸에서의 휴식과 추억

 7월 17일(목)~7월 23일(수)

 그 동안 여행기가 뜸했다. 라싸는 1년사이에 3번째 길이기 때문에 여행지라기 보다는 다시 집에 온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옥같은 꺼얼무~라싸 육로여행을 마치고 라싸의 야크호텔에 도착했을 때부터 달콤한 휴식이 시작되었다.

 지금 내 기분은 격렬한 전투속에서 잠시 여유를 갖는 병사의 기분이랄까.. 라싸를 떠나고 나면 또 다른 고행이 기다리겠지.. 하지만 라싸에서는 푹 쉬기로 했다.

 숙박은 야크호텔에서 한다. 4인실(120위엔)을 5명이서 사용하니 거의 도미토리 가격으로 우리만의 공간에서 생활을 하는 것이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4명의 동생들에게 오늘은 어느곳을 갔다오라고 지시를 하면 알아서들 잘 찾아간다. 포탈라궁도 바락바락 우겨서 25위엔에 들어가고(종전에는 100위엔) 나머지 사원들은 다들 뒷구멍으로 잘 다녀서 입장료를 전혀 내지 않는 것이다. 역시 누구 후배 답군^^

 동생들이 라싸시내를 이리저리 익히고 있을때 난 노트북에 있는 게임을 하다가 가끔 야크호텔을 나와서 조캉사원쪽으로 가고..

 식사는 야크호텔 바로 옆에 잇는 티만사(티벳에서 만난 사람들) 레스토랑에서 매일 한국에서도 먹기 힘든 맛있는 한국음식을 실컷 먹었다.

 티만사 레스토랑의 음식이 맛있는 이유는 장선생님과 사모님의 요리실력도 일품이지만 장소가 티벳이기 때문에 더욱 맛있다.

 티벳에서의 된장찌개, 티벳에서의 비빔밥, 티벳에서의 삼계탕등.. 음식 이름 앞에 티벳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것 자체만으로도 나의 입을 즐겁게 해주었다.

 그 누가 세계에서 가장 오지 중에 하나인 티벳에서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었을까 상상이나 했으리오...

 처음 우리가 도착했을때 한국인이 거의 없었는데 며칠 지나고 부터는 많은 한국인들이 보였다.

 모두가 이국에서 만나서 반가운 얼굴이기는 하지만 제일 반가웠던 사람은 우리가 라싸에 도착하고 3일뒤에 육로를 타고 라싸에 들어온 경남이 형과 경모형이었다.

 라오스~중국 국경에서 헤어지고 다시 또 만난 것이다. 경남이 형은 내 동생들과도 금방 친해져서 우리 방에서 잠을 잤다. 4인실에 6명이 잤다.

 날이 지날수록 한국 여행자들이 꾸역꾸역 모여들고.. 새로운 사람들을 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많은 한국인들이 모이다 보면 그러한 기분이 반감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처음 인사를 하면 반갑게 맞아주지만 인사를 해도 아무런 반응도 없이 무시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우리 바로 윗층에 묵었던 사람들이 그러한 사람들이다. 경상도 사람들인거 같은데... 난 처음 마주치자 마자 첫눈에 이들의 거만한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역시나.. 다음날 경모형이 아침부터 열받아 있기에 이유를 물어보았다. 답은 우리윗층 사람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는데 그 사람들 반응은 냉담했다는 것.

 하루 뒤에는 장선생님이 역시 그 사람들로 인해 상처를 받으셨다. 그 사람들의 성격이 어떻다는 것은 나의 관심사 밖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내 주위 사람들이 상처를 받는건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아니.. 솔직히 이해가 안 갔다.

 하루는 저녁때 방에 들어가다 보니 바로 윗 층에 문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어글리 코리안들이 안에 있는것도 확인을 했다.

 아싸.. 기회가 왔다. 난 문과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일지를 쓰고(항상 일지를 쓰라고 평소에 강조했슴^^) 있는 동생들을 내 주위로 모이게 했다.

 의아해 하는 동생들에게 한쪽 눈을 찡긋 거리며.

 ‘애들아.. 난 도대체 이해가 안가.. 자기네들이 집이 부자라서 그런가? 그래도 같은 야크호텔에 묵었으면 다 같은 여행자잖아.. 자기네들이 머가 그렇게 잘났다고 사람은 무시하냐? 내가 듣기로는 우리 바로 윗층에 있는 사람들이 한국인들 무시하는 모양인데.. 난 여행을 많이 했지만 우리 윗층 사람들처럼 역겹고 구역질나게 하는 사람들은 처음인거 같아. 나이를 보니 40대인거 같은데.. 자기네 자식들은 부모들이 이런 사람인줄 알고나 있는지? 이런 사람들 쓸데없이 해외 여행 나와서 선한 여행자들이 어렵게 만든 좋은 한국의 이미지를 순식간에 꺽어 놓으니..’

 이런말을 일부러 윗층 사람들 들으라고 크게 외치면서 동생들에게 말 했다. 이미 눈치를 채고 맞장구 치는 귀여운 동생들..

 내 말을 듣고 열받을 법도 한데 찔리는게 있는지 윗층은 조용했다.

 그리고 다음날.. 우리 바로 윗층에는 경상도 사투리 대신 중국어가 들리기 시작했다.

 휴식이라고 하지만 매일 야크호텔에서 아무런 할일 없이 있는 것은 아니다. 밤에는 다같이 샤브샤브를 먹으로 가고, 민속공연은 하는 나이트클럽도 가고, 새로 야크호텔에 한국인들이 많이 오면 야크호텔 바로앞에 있는 깔라멘토바에 가서 맥주한잔 걸쳤다.

 깔라멘토.. 이번 라싸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일 것이다. 바 전체에는 티벳 화가들이 그린 그림들이 전시가 되어 있고.. 티벳에서 가장 잘나가는 티벳 오렌지들을 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깔라멘토가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분위기에 비해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라싸 맥주 한병에 6위엔(900원).. 이해가 안가면서도 좋은 것은 안주를 팔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야크호텔 앞에 있는 꼬치(1위엔)을 사고 수박 반덩이를 가져와서 깔라멘토 직원에게 썰어달라고 하면 친절하게 쟁반에 담아오면서 썰어오는 것이다.

 깔라멘토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도 생겼다. 하루는 깔라멘토에 중국 유랑가수가 오게 되었는데 장선생님이 게스트로 섭외를 받은 것이다.

 모든 외국인들과 티벳, 중국 오렌지들이 보는 앞에서 장선생님은 기타를 치고 상걸이와 난 작년 월드컵때 유행했던 붉은 티셔츠를 입고 뒤에서 코러스를 했다.

 곡명을 ‘아리랑’..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 외딴 이곳 티벳의 카페에서 은은하게 울려퍼지는 아리랑이었다.

 나태한 생활이 이어지고.. 이러면 안된다면서도 여행중의 휴식이라는 마음속의 변명이 교차할 무렵.. 나의 인생에 큰 보람이 될 활동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편에는 라싸의 웨이동 초등학교에서 세계 최초로 외국인이 티벳 어린이를 상대로 미술 수업을 한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나라 교육과정을 외국의 어린이에게 적용한 첫 사례로 알고 있습니다.-

 3차 원정대 환영식.. 이 당시 여기 모인 인원이 라싸에 있는 한국인의 전부였다.

 야크호텔 바로 앞에 있는 깔라멘토 호프집에서.. 라싸를 떠날 때까지 자주 들렸었다.

 깔라멘토에서 공연중인 중국의 유명 유랑가수.. 이야기를 하니 영어도 유창하게 한다.

 우리나라돈 3000원이면 60가지 음식을 원없이 먹을 있는 호거.. 정말 배불리 먹었다.

 깔라멘토에서 게스트로 초대되 공연을 하는 장선생님과 뒤에서 코러스를 하는 나와 상걸이

 티벳 나이트에서의 민속 공연(입장료 맥주 한캔 10위안)

 깔라멘토에서 경남이 형과 나..

 티벳 맹인학교.. 이곳에서 경모형과 경남이형의 아름다운 눈물을 보았다.

 

 제3차 티벳 여행기 3(7,24~7,26) 세계최초로 티벳에서의 연구수업

 티벳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연구 수업이 이루어지기 까지...

 앞의 여행기에서도 말했다시피 이번 티벳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은 티벳 어린이에게 한국의 교육을 직접 교수 해보는 것이다.

 작년 11월 졸업논문으로 ‘티벳어린이에게 미술 교육을 시키겠다’라는 나의 주장과 그 고집을 꺽으려고 노력하신 교수님.. 교수님은 내 마음을 돌려 놓으려고 하셨지만 결국 나의 고집을 꺽지 못하셨다.

 우리나라 교육 역사상 외국어린이를 대상으로 연구수업을 한 예가 없었고 의사소통 문제를 비롯한 어려운 점들이 많이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교수님이 걱정 하셨던 것은 연구수업을 한다는 장소가 티벳이라는 것이다.

 작년 여름 티벳을 한번 갔다오고 그런 주장을 했던 나였는지라 솔직히 불안하기도 했지만 난 아직 20대라는 생각이 더욱 앞섰다.

 쉽게 졸업할 수도 있겠지만 대학생활의 마지막 흔적이 될 졸업논문은 평소에 하고 싶었던 주제로 하는게, 먼 훗날 지금 시절을 되돌아 봤을 때 후회되지는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춘천교대 미술교육과 졸업생중에서 졸업작품(회화, 공예, 서예, 도자기)은 44명이고 졸업논문은 1명이다. 그 한명은 바로 나다. 졸업논문을 하는 대신 잘 못 될 경우 졸업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전제로 교수님의 허락이 떨어졌다.

 막상 허락은 떨어졌지만 무엇을 해야할지 막막했다.

 때문에 지금으로부터 5개월전 험난한 동티벳을 육로로 넘어 라싸로 다시 왔었고, 야크호텔 근처에 있는 웨이동 초등학교를 무작정 방문했다. 그때 워이동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에게 7월중에 다시 와서 미술 수업을 해도 된다는 약속을 받았다.(찬수의 제 2차 티벳 여행기 참조-www.travel4edu.com)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났다. 난 6월 13일 방학하자마자 베트남으로 떠났고 남겨진 든든한 후배 2명이 내가 여행을 떠난 동안 연구수업 준비를 했다. 거기에 2명이 더 동참을 해서 7월 9일 인천을 떠나 중국으로 건너왔으며 13일 난주에서 나와 합류를 했다.

 티만사 3차원정대라는 이름으로 험난한 꺼얼무~라싸 육로를 무사히 통과했다.

 라싸에서 며칠 쉬고난 후 우리 일행과 통역을 해주실 장한종선생님 사모님이 같이 웨이동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오후 1시에 방문했었는데 학교에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학교 건물안에 들어가도 아무도 없었다.

 주변 티벳인들에게 물어보니 8월 4일까지 방학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정말 낭패였다.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노력을 한 만큼 하늘이 도울 거라고 믿고 며칠 더 기다려 보기로 했다. 여기까지 와서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며칠이 또 지나고... 23일 아침에 경모형, 경남이형과 함께 아침을 먹을때 였다.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데 초등학생인 듯한 어린이가 책가방을 메고 학교로 가는 듯 했다.

 초등학생들에게 방학이 아니냐고 물어보니까 방학이라도 오전 9~11시 사이에 수업을 한다고 했다. 웨이동 초등학교는 아니지만 희망을 주는 메시지였다. 혹시 웨이동 초등학교도?

 아침을 먹자마자 웨이동 초등학교에 갔다. 그러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른 학교를 알아 봐야 하나?’라는 허탈감이 밀려올 무렵.. 교문앞에 붙여진 자보에 교무실과 선생님 전화번호가 적힌 것을 볼 수 있었다.

 전화번호를 적고 장한종 선생님 사모님에게 가서 부탁을 하니 전화를 걸어 주셨다. 전화 통화는 사모님이 직접 전화를 받으셔서 옆에서 내가 하는말을 통역해 주시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전화를 받은 분은 그날 일직인 선생님이었다. 그 선생님께 교장선생님 전화번호를 받을 수 있었다.

 곧바로 교장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역시 저번 겨울 30대 중반인듯한 인상좋은 교장선생님은 나와의 약속을 잊지 않으셨다. 내일, 모레중으로 미술선생님에게 지시를 내려 방학중이지만 수업을 할 수 있게 조치해주시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교장선생님과 통화가 끝난순간.. 사모님은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시고 난 곧바로 동생들에게 소식을 전하기 위해 야크호텔 3307호를 뛰어 나가며 중얼 거렸다. ‘드디어 꿈이 이루어 지는 구나. 아싸~’

 7월 24일(목)

 오전에 교장선생님에게 다시 전화를 거니, 미술선생님에게 지시를 했고 오늘 내일 중으로 연락이 올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로부터 1시간뒤.. 장선생님의 전화에 ‘따르릉~’ 소리가 들렸다.

 설레이는 마음에 사모님은 전화를 받으시고.. 예감대로 미술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내일 10시에 아이들이 오기로 약속 되었다면서 그때 수업을 할 수 있느냐고 물으셨다. 대답은 물론 OK..

 전화를 끊자마자 곧바로 동생들에게 갔다. 착하게도 상걸, 재현, 민구, 정근이는 군소리 없이 라싸에서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내일 연구수업 준비에 들어갔다.

 동생들은 내일 수업에 쓸 교구제작을 하고 난 인터넷을 통해 연구수업을 할 자료와 아이디어를 찾았다.
저녁이 되어서 상걸, 재현이와 함께 포탈라궁 앞에 있는 백화점으로 갔다.

 내일 아이들에게 나누어줄 초코파이와 음료수를 사고 돌아오면서 난 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우리가 잘 할 수 있을까?’

 ‘형 답지 않게 왜 그러셔? 일단 수업 시작을 하면 잘 할 수 있을거야’ 천군마마와 같은 재현이의 대답이었다.

 이 날밤 새벽 3시.. 수업을 때 쓸 지도안(약안) 작성을 마치고 자기 직전에 잠시 생각에 빠졌다. ‘어떻게 티벳 어린이들을 대해야 되나?’, ‘성공적으로 수업을 마칠 수 있을까?’

 차라리 시간이 이대로 멈쳤으면... 중고등학교 시절 시험보기 전날의 기분과 비슷한 기분이 들었다.

 7월 25일(금)

 9시쯤 일어나서 모두들 준비물을 챙겼다. 아.. 오늘은 나의 추억속에 길이 남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9시 40분쯤에 야크호텔 마당으로 나왔다.

 나와 상걸, 재현, 민구와 비디오 촬영을 해주실 장선생님, 통역을 맡아주실 사모님과 경모형을 비롯해서 상해에서 유학중인 혜진이 수영이.. 이렇게 9명이 10시에 웨이동 초등학교로 출발했다.

 학교에 도착하자 이미 미술선생님은 나와 계셨고 아이들은 10명이 나와 있었다. 반가워하시는 미술선생님과 해맑은 표정의 아이들을 보자 긴장되었던 나의 마음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그래.. 교생실습때처럼 편하게 하면 되는거야..’

 웨이동 초등학교 3층 한 교실에서 수업이 이루어 졌다.

 교실은 우리나라 초등학교보다 작았고 책상이 빼곡히 들어가 있었다. 한반에 40명정도 수업을 받는거 같은데 평소에 이와 같은 좁은 교실에서는 모둠활동은 불가능해 보였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교단에 나와 사모님이 나란히 섰다. 아이들은 모두 나를 응시를 하고.. 아.. 이제 수업이 시작될려나 보다..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니하오.. 타시델레..’ 싱긋 웃으면서 수업을 시작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한국말로 수업을 하면 사모님이 중국어로 통역을 해주시는 방식의 수업이 이루어 졌다.
처음에 생각했던 것은 내가 한국말로 수업을 하면 사모님이 중국어로 통역을 해주시고 미술 선생님이 티벳어로 하는 2중 통역을 생각했었다.

 그렇지만 티벳 학교에서의 모든 수업은 중국어로 해야한다는 규정 때문에 학생들도 중국어를 곧잘 알아들었다.

 수업하기는 수월했지만 일제시대때 강제로 일본어로 수업을 했어야 했던 우리 조상들의 아픔이 여기서 느껴졌다.

 인사를 하고 수업방식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3~4명씩 모둠을 구성했다. 오늘 수업은 개인 수업이 아닌 모둠방식의 수업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내가 내린 지시에 정말로 잘 따랐다. 참관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아이들 역시 긴장되었을법 한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다. 그려.. 학생들이 저렇게 자연스럽게 수업을 받는데 선생님인 내가 긴장해서는 안되지..

 본 수업에 앞서 한국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부끄러움을 타서 그런지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역시.. 어디가나 아이들은 다 똑같구나.

 웃으면서 ‘한국에 대해서 아는 학생 있어요?’라고 묻자 한명이 손을 들더니 작년 월드컵에서 4강을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한국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주고 싶었지만 자칫하면 정치적인 문제가 튀어 나올까봐 곧바로 본 수업에 들어갔다.

 수업 내용은 한국 초등학교 5학년 미술 11단원에서 ‘집만들기’라는 단원이다. 먼저 중국에서는 볼 수 없는 파스텔 사용법을 알려주고, 셀로판지의 소개와 사용용도를 알려 주었다. 아이들은 파스텔로 먼저 그은 후 휴지로 문지르는 것을 보자 신기해 하는 표정이다. 다음은 어제 동생들이 열심히 만든 예시작품을 이용해서 집을 꾸미는 과정을 알려주었다.

 선생님의 설명이 끝나고 나서 곧바로 모둠별로 미래의 집을 토의하고 스케치를 먼저 하라고 지시했다.

 모둠활동이 익숙하지 않은 듯 망설이는 아이들에게 곧바로 보조교사들이 투입되었다. 상걸이와 재현이도 열심히 돌아다니며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었지만 무엇보다 도움이 되었던건 혜진이와 수영이였다. 둘 다 중국어가 유창하고 아이들을 좋아해서 쉽게 이해시킬 수 있었다.

 ‘집만들기’ 스케치가 끝나고 다시 정렬을 시켰다. 모둠별로 한명씩 나와서 자신들이 만들 집을 발표 시켰다.

 다음은 우리가 준비한 색종이, 셀로판지, 도화지, 색연필, 싸인펜을 이용해서 집만들기를 하는 것이다.

 수업분위기는 활발하면서도 진지하게 이루어 졌으며 모든 아이들이 즐거운 표정으로 자신이 미래에 꾸미고 싶은 집을 만들었다. 모둠 별로 집을 하나씩 만드는 것이므로 협동심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2차시 80분 수업으로 계획했는데 어느새 2시간이 훌쩍 넘어갔다.

 원래 연구수업은 정확히 시간을 맞춰야 하지만 새로운 수업에 즐거운 표정으로 임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러한 형식적인 절차는 약간 무시하기로 했다.

 만들기가 끝나고 모둠별로 한명씩 나와서 자신들이 만든 집을 자랑을 하고 수업 소감을 이야기 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이들은 ‘오늘 하루는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태어나서 제일 기쁜 날이다.’라는 이야기를 했고 한 아이는 ‘재미있는 수업이었고...’라고 하면서 갑자기 울먹이더니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사모님은 아이를 달래고.. 난 잠시 그 아이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억지로 달래기 보다는 옆에서 지켜봐주는게 제일 좋은 방법이다. 그 아이는 나중에 이야기 하기를 기뻐서 할말은 많았는데 막상 앞에 나와서 말하려니 말이 안나와 속상해서 울었다고 했다.

 정말로 순수한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번 수업으로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주게 되어서 행복했다.

 수업 마무리는 아리랑을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나와 보조교사들이 한 소절씩 부를때 마다 곧잘 따라했다.

 ‘여러분.. 선생님은 오늘 여러분은 절대로 잊지 못할 거에요. 여러분 역시 선생님 수업을 잊지 않았으면 하고 내일 더 많은 친구들이랑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라는 말로 수업을 마무리 했다.

 준비한 초코파이(오리온)와 음료수를 아이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서로 말은 알아들을 수 없지만 이미 우리는 커다란 인연으로 서로 다가온 것이다.

 아이들을 집으로 보내고 미술선생님(푸치 선생님)과 협의회를 가졌다.

 티벳 미술선생님의 총평은 그야말로 ‘너무 좋다’라는 표현을 계속 썼다. 티벳에서 미술은 1주일에 1차시가 전부이고 그나마도 체육/미술/음악 중에서 선택하여야 한다고 한다.

 이곳에서의 미술은 그리기 위주의 수업인데 오늘처럼 입체적인 집만들기를 해서 너무 좋다고 하셨다. 또한 여기는 선생님 위주의 수업인데, 오늘은 아이들이 주가 되어서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스스로 수업에 임하는 모습이 너무 인상에 깊었다고 하셨다.

 난 한국에서는 미술이 어렸을때부터 아이들의 성격형성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고, 미술 시간외에도 국어, 음악, 사회등 다른 과목에서도 미술을 도입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푸치선생님은 자신도 그러한 교육방식에 찬성을 하지만 중국정부에서 관심이 없고, 또한 이곳에 학교 다니는 아이들은 다들 가난하기 때문에 재료를 사기가 힘든 처지라고 한다.

 일부 미술에 재능 있는 아이들을 모아서 교장선생님에게 말씀드려 재료를 사서 소수 인원으로 수업을 하는게 전부라고 한다.

 이곳의 교육환경은 우리의 60~70년대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이야기 할 때 수업시간에는 중국어를 하다가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에게 티벳어로 이야기 하는 모습을 보면서 티벳은 티벳만의 교육?문화?사회를 교육하는 여건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서 빨리 이곳 아이들에게도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찾아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7월 26일(토)

 어제에 이어서 10시에 웨이동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보조교사들은 어제와 동일하지만 아이들은 24명으로 늘어났다.

 소문을 듣고 더 많은 아이들이 온 것이다. 교실은 어제와 같은 장소에서 했다.

 어제 수업으로 난 자신감이 붙어 있었다. 지도안도 물론 짰지만 수업은 정해진대로 맞춰가는게 아니라 물 흘러가듯이 흐르는대로 진행하는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는 입체를 주제로 했다면 오늘은 평면을 주제로 삼았다.

 주제는 5학년 4번째 단원인 ‘이야기를 듣고 표현하기’이다.

 어제 배웠던 아리랑을 아이들과 함께 합창했다. 외딴 티벳 초등학교에서 아리랑이 은은히 울려 퍼졌다.

 한국의 어린이는 모두 한번쯤은 들었을 ‘강아지똥’이라는 이야기를 티벳어린이에게 들려주었다.

 이야기 내용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강아지똥이 친구를 찾으려고 이리저리 말을 걸지만 아무도 강아지똥이 쓸모 없다는 이유로 강아지똥을 상대해주지 않는다.

 실의에 빠진 강아지똥에게 말을 거는 꽃봉오리.. 꽃봉오리는 자신을 도와달라고 하면서 강아지똥과 친구가 되준다.

 비가와서 깍이고 따가운 햇빛에 고통스러워도 강아지똥은 참아내고 마침내 꽃봉오리가 피어서 꽃이 되면서 꽃과 하나가 되는 감동적인 스토리 이다.

 5분정도의 긴 이야기 이지만 옆에 재현이가 장면장면마다 바뀌는 그림을 들고 있고 옆에서 사모님이 통역을 잘 해주셔서 티벳 아이들에게 잘 전달 되었다.

 이야기를 끝내고 느낀점과 내용을 아이들에게 발문 함으로써 이야기의 내용이 잘 전달되었는지 확인했다. 결과는 OK..

 이야기를 듣고 느낀점을 가지고 그림을 그려보도록 했다. 개인 작품을 그리는거긴 하지만 책상을 모둠별로 짜서 잘 그리는 아이가 잘 못하는 아이를 도와주도록 했다.

 아이들의 손과 얼굴에 파스텔이 묻어지고.. 열심히 하는 것을 보니까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간 한국인들도 아이들과 어울려 자신들의 그림을 그렸다. 경모형은 제일 앞에 앉아서 파스텔로 그림을 그리며 동심에 돌아간거 같다고 흡족해 하고, 중국어가 능통한 혜진이와 수영이도 자신들의 그림을 재미있게 그렸다.

 그런데 뒤에서 남자아이가 막 우는것이다. 당황해서 다가가니 그 아이의 그림에 그리고 지웠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왜 그러는지 알고보니 잘 그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잘 그려지지 않아 슬퍼서 우는거라고 했다.

 피식 웃으며 못 그려도 괜찮으니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말했다. 어딜 가나 아이들은 너무 순수하다는 것은 새삼 느꼈다.

 어제와 같이 오늘도 시간을 많이 썼다. 처음에 아이들이 무엇을 그릴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특히 여자애들 같은 경우는 섬세하게 그리고 붙이느라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모둠을 보면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따로 앉는다. 여기도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속담이 있나? 우리나라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그리기를 마치고 아이들에게 작은 종이공 4개씩을 주었다. 그림 전시회를 하는데 제일 잘 그린 친구 그림에다가 하나씩 올려놓으라고 이야기 했다.

 아이들 스스로 평가를 해보자는 의미에서 시도해본 것이다.

 아이들이 공을 많이 올려놓은 3명과 상걸이와 재현이가 뽑은 작품 하나씩 해서 총 5개 작품을 골랐고 5명의 아이들에게 월드컵 기념품을 상품으로 주었다.

 이제 모든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에게 마무리 하는 시간이 되었다.

 ‘여러분.. 선생님은 여러분을 영원히 기억할거에요.. 여기 있는 여러분도 다들 어른이 되어서 아까 말한 강아지똥처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그럴려면 많은 고통과 어려움이 여러분에게 다가올거랍니다.’.. 잠시 침묵을 했다.

 이틀동안이지만 정들었던 아이들과 헤어질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치밀어 올랐다. '안돼.. 난 아이들 앞에 선 선생님이야.. 참아야지' 속으로 생각하며 참았다.

 ‘선생님이 여러분을 기억하듯이 여러분 역시 저희를 절대 잊지 말고.. 여러분과 만나서 선생님은 너무나 행복했어요.’라며 수업을 마쳤다. 아이들 몇몇이 눈물을 글성거리는 것이 내 눈에 비쳤다.

 수업이 끝난 뒤 아이들과 초코파이와 음료수를 나누면서 다과를 하고..

 경모형의 제안으로 티벳 어린이 10명과 우리 일행 5명이 웨이동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축구시합을 했다.

한국과 티벳의 첫 축구시합.. 남자아이들이 정말로 기뻐했다.

 장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일부러 져주자고 하면서 기술적으로 져주는 것을 강조를 했다.

 그러나...

 시합을 시작하자마자 7골을 내리 먹었다. 나 역시 5분정도 뛰다가 완전히 퍼지고.. 아.. 여기는 산소가 평지의 60%밖에 안되는 티벳이지.. 숨이 턱까지 차오르다 막혔다.

 우리일행은 그러한 고통에 쌓여있는데 아이들은 정말로 잘 뛰고..

 응원하는 티벳 어린이들 사이에서 ‘한궈팀 짜요(한국 힘내요)’라는 응원의 구호가 계속 나왔다.

 휴.. 우리가 불쌍하나 보다..

 질질 끌려가던 시합은 경모형이 경남이형을 데리러 갈겸 아이들에게 나누어줄 과자와 음료수를 사오면서 양상이 달라졌다.

 티벳팀도 더욱 어린아이로 선수 교체를 하고.. 처음 우리가 봐주자고 했던게 상황이 반대가 된 것이다.

 겨우겨우 7:6으로 따라왔을때 전반전이 종료가 되고.. 간식을 먹고 다시 후반전에 돌입했다.

 전반에 전력질주를 하다가 쓴맛을 본 나는 후반에는 슬슬 뛰면서 움직임을 최소한으로 했다.

 그래도 숨이 막히니...

 결과는 12:10으로 우리가 졌다. 어떻게 보면 처음 의도했던 계획과 맞아떨어지기는 하지만.. 아무튼 졌어도 기분좋은 스코어였다.

 축구시합이 끝나고 어제에 이어서 협의회를 했다. 미술선생님인 푸치 선생님과 중국어선생님 한분과 함께 협의회를 했는데 푸치선생님은 어제와 같이 너무 좋았다고 하고..

 중국어 선생님은 선진 수업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정말 괜찮았다면서 이런 수업은 시장(티벳)에서 처음일거라고 하시며 앞으로 자신들의 교육도 그런식으로 이루어졌으면 한다고 하셨다.

 본의 아니게 우리나라의 앞선 수업을 여기에 소개를 한 것이다. 정말로 뿌듯했다. 아.. 우리 교육도 이렇게 외국에 통하고 특히 선생님들에게 커다란 인상으로 남는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잘 못사는 나라에 기술자와 의사를 파견을 하는데 교사를 파견해서 수업을 현지 선생님들에게 소개하는 것은 어떨까?

 의술과 기술은 현재 살아가는데 중요한 도움이 되지만 교육은 미래를 위해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티벳에서의 연구수업을 하면서 가장 와 닿았다는 것은 아이들은 어디를 가나 순수하다는 것이다. 또한 앞으로 이런 연구수업을 누군가가 이어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수업이 이루어지도록 도와준 후배들과 티벳에서 만난 한국인들.. 특히 통역을 기꺼이 해주신 사모님께 정말로 감사할 뿐이다.

 이번 수업을 찍은 비디오 테잎은 장선생님이 방송국으로 보내주시겠다고 하셨다. 또한 이번 수업의 과정과 연구 결과는 11월에 있을 논문 발표회때 우리나라 최초로 우리나라 수업을 외국에 적용한 사례이자 세계 최초로 티벳에서 연구수업을 한 사례로서 발표 될 것이다.

 연구수업 하기 전날.. 다들 교구를 만들고 있다.

 떨리는 마음으로 첫마디를...

 둘째날 모습.. 첫째날과 달리 교실이 꽉 찼다.

 둘째날 수업중.. 난 강아지똥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모님은 통역을 해주시고 재현이는 예시 그림을 보여주고 있다.

 수업에 집중하는 귀여운 티벳 아이

 모두들 선생님에게 집중!

 개구쟁이들이 무엇을 만들지 의논하고 있다.

 사모님은 통역뿐만 아니라 아이들을 직접 지도 하셨다.

 상해에서 유학중인 수영이.. 티벳 수업을 위해 통역을 자처했다. 정말로 큰 도움이 되었다.

지각을 해서 눈치를 보는 아이

 이곳 학교 미술선생님인 푸치 선생님.. 아이들이 그리는 것을 지켜보고 계시다.

 이번 수업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 상걸이.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는 후배이다.

 한 아이가 나와서 발표를 하면 사모님이 통역을 해주신다.

 첫날 교실 전경의 모습.. 모두들 만드는데 온 정신이 팔려 있다.

 수영이와 함께 중국어 통역을 해준 혜진이.. 무엇을 그릴지 몰라 우는 아이를 달래고 있다. 역시 어디를 가나 아이들은 순수하다.

이날의 주인공인 나도 빠질 수 없지.. 상냥하게 지도하는 모습

 어린이가 된 경모형.. 수업내용에 따라 같이 그림을 그린다.

 둘째날 수업..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서 느낌을 표현했다.

 수업이 끝나고.. 모두 모여 기념촬영을 했다.

 첫날 수업이 끝나고 협의회를 하는 모습.. 푸치 선생님에게 듣기 민망할 정도로 과찬을 받았다.

 다과 시간의 막간을 이용해서 기념 촬영

 수업이 끝나고 다과를 하기 직전..

 첫날 수업이 끝나고 협의회를 하는 모습. 통역을 해주시는 사모님이 안 계셨으면 이번 수업이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보조교사(재현, 상걸)가 잘된 작품을 뽑고 왜 뽑았는지 설명하고 있다.

 창의적인 작품과 아동들 스스로 잘됐다고 뽑은 작품에 선정된 아동에게 월드컵 기념 배지를 주고 있다.

 축구시합을 할 때 뛰지는 못하고 응원만 하는 여자 어린이들과 함께

 축구시합이 끝나고 모두들 기념 촬영

 둘째날 최종 협의회가 끝나고.. 선생님들 모두 찰칵~

 

 제3차 티벳 여행기 4 (이제는 West Tibet)

 이제는 서부티벳이다.

 지금이 3번째 티벳여행을 왔지만 주로 동티벳을 여행하느라 라싸 서쪽은 전혀 여행하지 못했다. 라싸를 여행 온 여행자들의 필수코스인 시가체도 아직 가보지 못했다.

 작년 이맘때 서부티벳으로 나갈지 동티벳으로 나갈지 고민했을때 당시 실크로드를 한바퀴를 돌고, 티벳에 온 상태이기 때문에 동티벳을 선택했었다.

 모두들 동티벳은 여행하기가 불가능하다는 말을 했었지만 한국인 여행자한테 부탁을 해서 복사해간 론니만을 의지한채 동티벳(육로)에 도전해서 많은 고생 끝에 성공했고, 저번 겨울에는 쿤밍~라싸간 육로에도 성공을 했다.

 이제 나의 눈동자는 서부티벳을 향하기 시작했다.

 시가체를 거쳐서 라체를 통과한 후 알리로..

 알리에서 아시아에서 가장 신성한 산 카일라스 산과 마나사로바 호수를 이 두 눈으로 보고 말리라.

 이번 여행 역시 라싸에 있는 사람들은 어렵다고 말한다. 아직 사스여파가 남아있고 상황이 크게 좋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한 말들을 들을수록 나의 도전정신을 자극하는 것은 왜 일까? 어떻게 되든지 간에 일단 부딧쳐 보는 것이다.

 내일(29일) 3차 티만사 원정대 중에서 상걸이와 민구는 작년의 나의 추억에 남아있는 동티벳으로 여행을 가고 재현이와 정근이는 꺼얼무로 향한다. 난 다시 혼자가 되어서 서부티벳으로 향하고...

 서부티벳 사정상 오랫동안 이 여행기가 멈춰질지도 모른다. 두려움과 설레임.. 또 다른 추억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