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여름방학.. 이제 대학시절에 맞는 사실상의 마지막 방학이나 다름이 없다. 교대의 대부분의 4학년은 여름방학을 임용고사 공부와 졸업논문이나 작품을 위한 준비로 쓰지만 나 과감하게 여행을 결심했다.

 특히 이번 여행의 주 목적인 나의 논문 프로젝트는 우리나라 최초로 외국 어린이에게 우리나라 교육을 교수해보는 것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번 여행은 베트남, 라오스까지는 나 혼자의 여행이 될 것이고, 중국에서는 이번 여행에 같이할 후배들이 함께할 것이다. 같이 오지를 돌아다니며 나중에 선생님이 되었을 때 아이들에게 다양한 문화를 전파하고 또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으면 한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출발지를 태국과 베트남을 두고 고민을 했었다. 결국 선택은 베트남..

 우리나라와는 베트남전쟁을 비롯해서 최근에 베트남에 일고 있는 한류 열풍과 기업들의 베트남 진출로 점점 먼나라에서 가까운 이웃으로 다가오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베트남을 여행하면서 더욱 굳어지게 된다.

 03년 6월 13일 방학이 시작하기게 무섭게 베트남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5시간을 날아 베트남 최대의 도시 호치민에 도착했다. 도착시간은 현지시간 밤 12시... 막막한 기분으로 입국 수속을 마지초 탄손나트공항을 빠져나오면서 새로운 모험은 시작된다.

 

 베트남 여행기 1(6.13~15) 여행의 시작, 메콩델타투어

 6월 13일(금)

 비행기 티켓을 받는데 창가쪽 자리가 없다고 한다. 어짜피 밤이라서 바깥 경치도 보이지 않을테니.. 그냥 복도쪽 좌석을 달라고 했다.

 8시 20분경 호치민행 비행기에 탑승을 했다. 그런데 여기서 작은 행운이 올줄이야.. 스튜디어스가 나한테 오더니 자리좀 바꿔달라고 부탁을 한다. 베트남 부부가 따로 떨어져 앉게 되었는데 마침 바꿔줄 자리가 창가쪽이었다.

 여행의 시작부터 행운의 징조가 나타난다는 흡족감에 빠졌다.

 8시 40분 비행기가 이륙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인천 공항의 불빛은 점점 희미해지고 처음 가졌던 긴장감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해외로 나가는데 비행기는 처음 타봤지만 이륙할때만 느낌이 이상할 뿐 아무렇지도 않았다.

 5시간이나 걸리는 여정은 좀 지루했다. 아니.. 그보다 베트남에 도착하고 나면 무엇을 해야할까 두려움이 앞섰다.

 거의 아무런 정보없이 밤 12시가 넘어서 도착을 할텐데.. 걱정을 해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일단 잤다.

 다시 깨어나니 비행기는 이미 베트남 영공에 들어가 있었다. 조금 있으니 스튜어디스가 미네랄워터와 녹차를 가져오면서 여행을 잘하라고 한다. 아까 입국서류를 작성할때 스튜어디스한테 볼펜을 빌렸는데 그때 혼자서 배낭여행을 간다고 이야기 했었다. 이렇게 챙겨주니 정말 고마웠다.

 잠시 후에 또 다른 스튜어디스가 고추장팩 6개를 나한테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혼자서 배낭여행을 하냐고 말하면서 물어볼게 있다고 한다. 자신도 며칠 후에 휴가를 내서 베트남 여행을 갈건데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어본다.

 기대에 찬 그녀의 눈빛에 차마 대책없이 간다는 이야기를 못했다. 조금은 전문가가 된듯한 표정으로 일단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으라고 말했고 서양 여행자들한테는 이미 성경책이나 다름없는 ‘lonely planet'을 구해서 보면 될 거라고 했다.

 그리고 내 메일과 홈페이지를 가르쳐 주었다.

 뜻하지 않게 미인들의 환송을 받으면서 여행을 시작하게 되서 정말 기분이 상쾌했다. 한가지 아쉬운게 있다면 원래 내가 덮던 비행기 담요를 몰래 가져갈려고 했는데 이미지 관리상 그게 힘들어진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베트남시간 11시 55분(베트남 시간은 우리나라 시간보다 늦다) 호치민시의 관문인 탄손나트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하면서 사실 걱정거리가 있었다. 내 배낭에 스프레이 모기 퇴치약이 있는데 원래 폭파 위험이 있기 때문에 비행기에 실어서는 안되는 물품이었다. 하지만 버리기 아까워서 그냥 무대포로 가져갔다. 검색하는 직원이 여행자라는 것을 배려해주기를 바라면서..

 간단한 입국 수속을 마치고 수화물 벨트로 갔다. 그런데 수화물 벨트에 아무리 기다려도 내 배낭이 보이지 않는다. 어떻해야 하지? 혹시 한국에서 통과를 못한게 아닌가? 두려운 마음으로 주위를 돌아보니 구석에 배낭이 보였다. 알고보니 누군가 내 배낭을 미리 내려 놓았던 것이다. 엑스레이 검사에 걸렸을텐데도 여행자 배낭임을 생각해줘서 통과시켜준 이름모를 직원이 고마웠다.

 공항을 벗어나자 마자 더운바람과 함께 날 맞이해주는건 바로 삐끼였다. 내가 아는 정보는 딱 한가지.. 베트남 여행은 ‘신카페(shin cafe)'만 알면 웬만큼 할수 있다는 것이다. 신카페는 우리나라의 개념과는 달리 여행사의 일을 하는 곳이다.

 일단 택시삐끼에게 다가가서 신카페까지 얼마면 되냐고 물어보았다. 대답은 7달러.. 후훗.. 이럴줄 알고 미리 정보를 입수해 놓았지.. 4달러면 충분하다는 정보를 이미 알고 있었다.

 한 기사가 4달러에 해주겠다고 한다. 흡족한 마음에 택시를 타니 요금 4달러에 팁 1달러를 더 줘야한다는 것이다.

 미련없이 다시 나왔다. 음.. 이럴때는 허름한 택시를 찾는게 최고다.. 마침 낡은 택시가 보이길래 신카페까지 4달러를 제시했다. 결과는 OK..

 택시를 타고 호치민으로 가는 도로를 가니 늦은 밤인데도 오토바이들이 많았다. 중국은 자전거가 많은 방면 베트남은 오토바이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간혹 가다 모델급 몸매의 베트남 여자가 오토바이를 몰고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신카페에 도착하니 문은 굳게 잠겨있고.. 이미 새벽 1시가 넘어서 어서 숙소를 잡아야 되었다. 역시 이럴때 이용할수 있는게 바로 삐끼이다. 한 삐끼가 오더니 7달러를 제시한다.

 마침 서양여인이 지나가길래 7달러면 비싼건지 물어보았다. 그녀는 비싸다고 이야기 하면서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호주 여행자이고 4달러짜리 숙소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

 걸어가는데 삐끼가 달라붙었다. 내가 4달러를 제시하니까 좋다고 한다.. 원래 3달러까지 깍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몸이 좀 피곤했다.

 2인실 방에 나혼자.. 이곳은 매우 더워서 찬물로 샤워를 해도 더웠다. 샤워를 하고 가져온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다가 베트남에서의 첫 잠이 들었다.

 6월 14일(토)

 새벽 6시 반에 일어나자 마자 신카페로 갔다. 여러 종류의 투어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1박2일짜리 메콩델타투어를 하기로 결정했다. 서부티벳의 카일라스산에서 시작하는 메콩강은 바로 이곳 베트남에서 끝난다. 이번 여행일정에 서부티벳의 카일라스산 가기로 했다. 때문에 메콩강의 시작과 끝을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신청을 했다.

 신카페 직원의 영어가 유창해서 어렵지 않게 예약을 할 수 있었다. 원래 14달러인데 난 혼자이므로 싱글룸을 사용해야하며 때문에 4달러를 추가로 더 내야한다고 한다. 생각 같아서는 2명이서 같이 방을 사용해도 상관없지만 괜히 모르는 사람한테 피해를 주기 싫었다. 때문에 18달러를 냈다. 또 여기서 환전을 했는데 100달러에 152만동(베트남 화폐단위)으로 환전을 했다.

 8시가 되어서 미니버스가 도착했다. 이번 투어에는 나까지 8명이다. 사스의 영향으로 관광객이 거의 없는 관계로 투어가 계속 미루어졌던 모양이다. 서양 사람은 보이지 않고 다들 동양인들이다.

신카페에서 3시간 반정도 달려서 베트남전쟁때 배트콩이 주둔을 했던 Xeo Quyt기지로 갔다.

 베트남 전쟁은 한국전쟁처럼 남북이 서로 밀고 당기는 전쟁이 아니라 남부 베트남에서 정부와 게릴라들간의 싸움이었다.

 동쪽의 평야지대는 미군과 남베트남정부군이 장악을 하고 있었고 서쪽의 산맥지역과 정글지역은 베트콩이 활동하고 있었다.

 미니버스는 우리를 메콩강에 내려 놓았고 거기서 모터보트를 타고 1시간을 상류쪽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운하가 발달되어 있는 이곳은 교통이동수단이 배로 이루어진다. 비록 날씨가 덥기는 하지만 강바람이 시원하게 내 뺨을 스쳤고 지나가는 배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모터보트가 도착한곳은 Rung Tram Forest이다. 영어가 유창한 가이드의 설명으로 베트남전쟁때 베트콩들의 활동과 보급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설명을 듣는 옆에는 작은 나무배들이 있었고 거기에는 베트콩 복장을 한 아줌마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이드는 그녀들은 총이 없으니까 여러분들이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농담을 했다. 우리나라에 왔으면 썰렁하다고 몇 대 맞았을 것이다.

 거의 잠길듯한 나무배에 3명이 타고 베트콩복장을 한 아줌마가 막대기로 배를 이동했다. 작은 운하에 무성한 정글들.. 베트남전쟁 영화에서만 보던 장면들이 내 앞에 펼쳐지고 있다. 30년전 이곳은 하늘에는 미군헬기와 고엽제.. 땅에서는 베트콩이 설치한 각종 부비트랩과 함정들.. 비록 지금은 안전하기는 하지만 사뭇 긴장감마저 들었다.

 최첨단 무기에 맞선 베트남인들의 저항은 원시적이기는 하지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썼던 것이다. 이 같은 배로 말미암아 보급을 유지할 수 있었고 그것이 베트남 통일의 밑거름이 되었을 것이다.

배를 타고 가면서 베트콩이 사용하던 지휘소와 레스토랑 식당등 숨겨진 건물들을 볼 수 있었다.

 오전투어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했다. 메뉴판을 보면서 ‘멀먹지?’라고 중얼거렸다. 그때 바로 옆에 앉은 아저씨가 ‘한국분이세요?’라고 반가운 목소리로 물어본다.

 이렇게 빨리 한국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이야. 그분은 우리은행에서 호치민으로 파견을 나오셨고 나이는 48살이라고 하셨다. 부인은 미국에 있는 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고자 어제 서울로 떠나셨고 마침 시간이 나서 투어에 참석했다고 한다.

 반가웠다. 그분에게 베트남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으며 푸짐한 점심도 얻어먹을 수 있었다.

 그때서야 일행 8명의 구성을 알 수 있었다. 4명의 베트남인과 한국인 2명, 그리고 말레이시아인 2명이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배를 타고 다시 차가 기다리는 곳으로 왔다. 차는 다시 다음목적지를 향해 달렸다. 바깥경치를 보고 싶었지만 배도 부르고 날씨도 더워서 스르르 눈이 감겼다.

 큰 강가에 이르자 차가 멈추더니 잠깐 우리보고 내리라고 한다. 메콩강은 한강보다 더 넓은 너비를 가지고 있는데 베트남에서는 다리를 설치한 기술력과 자본력이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강은 여러대의 페리가 차와 오토바이 사람들을 나르고 있는 실정이다.

 페리를 타고 반대쪽 나루로 가서 다시 차를 탔다.

 다시 차는 달리기 시작했다. 이때에 이르러서는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싼 값에 투어를 하는건 좋지만 차를 탔다가 괜찮은 곳이 있으면 내렸다.. 다시 탔다.. 아무래도 투어랑 나랑은 맞지 않은거 같다.

 호치민 남서쪽에 있는 칸토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거기서 여장을 풀고 호텔에 방 배정을 받았다. 들어가자마자 샤워를 했다. 입고 있던 티셔츠는 하루만에 땀으로 젖어서 오늘 신카페에서 서비스로 준 티셔츠를 입었다. 샤워를 끝내고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자다가 보니까 누군가가 내 방문을 두드린다. 오늘 친해진 아저씨였다. 저녁 먹으로 가자면서 나오라고 한다.

 식당을 찾아가면서 시내를 구경했다. 저녁이 되자 많은 사람들이 바람을 쐬러 바깥으로 나온거 같았다.

 식당에서 시원한 맥주와 함께 베트남 전통음식을 푸짐하게 먹었다. 베트남 음식은 중국음식과 달리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았다.

 아저씨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어떠한 나라든지 그 나라에 대해서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현지사람보다도 그 나라에 살고 있는 한국인에게 듣는 것이 가장 좋다. 그분도 하노이에서 4년을 근무하시고 호치민에는 9개월째라고 하셨다.

 베트남의 정치제도에 대해 많은 사실을 들었다. 베트남은 다른 공산국가와 달리 한사람에게 권력이 집중이 되지 않고 권력이 분산된다. 그리고 베트남이 통일이 되었을 때 인민재판을 했지만 정작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듣고 보니 공산주의 보다 민주주의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는 베트남이 공산주의인 것은 소련의 힘을 빌려 독립과 통일을 위한 것이라고 하면서 베트남이 정치제도는 잘 발달되어있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경제사정은 우울하다. 다리가 없어서 페리를 타고 차들이 건너가는 것도 그렇고 베트남 방송국에서 자본이 없어서 한국드라마를 더빙은 하지 못하고 변사가 나와서 이야기하는식으로 방영한다고 한다. 홍보효과를 노린 우리나라 기업이 드라마를 사서 방송국에 방영하도록 하고 있으며 때문에 베트남에서는 지금 한국드라마 열풍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저녁을 다 먹고 시내를 돌아다녔다. 오늘 하루종일 아저씨한테 얻어먹어서 저녁값은 내가 낼려고 했지만 한사코 말리신다. 정말 고마우신 분이다.

 강변에는 큰 호치민 동상과 함께 공원이 있었는데 시민들로 가득찼다. 거기에는 다양한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데이트하는 연인.. 술마시는 사람들.. 가족들이 나와서 오순도순 이야기 하는 모습..

 한가지 분명한건 그들 모두가 표정이 밝다는 것이다. 항상 삶에 찌들어 가면서 표정이 어두운 우리나라 사람과는 대조가 되는 부분이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사람들과 잘 살지만 항상 불만인 우리나라 사람들.. 과연 누가 더 행복하고 잘사는 것일까?

 지금 쓴 여행기를 올리려 인터넷 방으로 갔다. 하지만 한글이 되지 않는다. msn에서 다운을 받아도 한글이 되지 않는다.. 할 수 없지 호치민으로 돌아가면 올려야 겠다.

 이왕 나온김에 콜라나 사 마셔야겠다. 근처 가게에 들어가서 콜라를 가르키니까 꼬마남자애가 신기한 듯 나한테 말을 건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리엉애’라고 하며 꽤나 반가운척한다.. 리엉애가 머지? 알고보니 탤런트‘이영애’인 것이다. 조그만게 이쁜건 알아가지고..

 많은 한국 연예인들을 나열하기에 미리 준비해 온 연예인 사진을 줄려고 했다.. 아차..큰 배낭에 놓고 왔구나.. 다음부터는 노트북 배낭에 같이 넣어놔야 겠다.

한국 음식점에서 주로 서비스로 나오는 병콜라가 3000동.. 1000동이 대락 120원이니까 360원정도 했다. 그리고 콜라를 사는데 얼음 몇덩이도 같이 준다.

 이제 투어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베트남 사람들과 접촉을 해봐야겠다. 바로 그게 여행의 재미 아닌가...^^

 6월 15일(일)

 아침 6시 반에 일어나서 대략챙기고 아저씨가 사주시는 아침을 먹고 나서 7시 반에 차에 올라탔다.

 투어 2일째.. 오전 코스는 모터보트로 메콩강을 다니면서 이곳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는 것이다.

 8시 20분쯤에 모터보트에 올라타서 수상마켓으로 갔다. 사회간접 자본시설이 빈약한 이곳은 자동차가 다닐수 있는 길도 한정이 되어있다. 때문에 이동은 주로 오토바이로 하고 화물은 배를 이용해서 다닌다.

 우리 일행이 탄 배는 수상시장으로 향했다. 수상시장은 말 그대로 강위에서 물건을 거래를 하는 곳이다. 주변이 전부 정글이어서 마땅한 공터가 없는 이곳 사정과 물건을 사자마자 배로 쉽게 운반할 수 있도록 이곳 수상시장이 형성이 된 것이다.

 수상 시장을 관람한 후 배를 타고 상류쪽으로 올라갔다. 상류쪽으로 올라가면서 베트남사람들의 생활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집을 강가에다 지어났으며 집도 폐쇄적이기 보다는 누구나 볼 수 있게 개방적으로 구조되어 있다.

 강가에서 수영하는 모습, 빨래하는 모습, 편하게 자고 있는 모습등 이곳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마치 슬라이드 필름이 돌아가는 것처럼 볼 수 있었다.

 우리가 탄 배는 상류로 더 거슬러 올라가서 다시 수상마켓으로 갔다. 이곳은 아까와는 달리 모터가 달린 큰 배보다는 노를 젓는 작은 배들이 서로 거래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 본 마켓은 백화점이라면 이곳은 슈퍼마켓이라고 이해를 하면 될 것이다.

 이곳을 벗어나 다시 다른방향의 하류쪽으로 향했다.. 정말 원없이 모터보트를 타 본다. 정글 깊숙이 들어간 배는 잠시 멈추더니 우리를 과수원으로 내려 놓는다.

 잠시 쉬었다 가는것이다. 성질 급한 우리나라 사람과는 달리 이곳 사람들에게는 여유가 보였다. 우리나라 사람같으면 루즈해 진다는 느낌이 들지만 이곳 사람들은 힘들면 당연히 쉬었다 가야된다는 의식이 있는거 같았다.

 아저씨는 여기서도 음료수와 과일을 나한테 사주시면서 베트남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다. 내가 궁굼한 것이 있으면 거의 모든 대답을 척척해주셨다.

 거의 4시간동안 배를 탔다. 평화롭고 자연그대로의 베트남 사람들의 생활상을 본 후 쌀창고에 갔다.

 가이드는 안남미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고 탈곡해서 쌀이 제조되는 과정을 설명해 주었다.

 점심을 맛있게 먹고(역시 아저씨가 사주심) 미니 버스를 이용해서 칸토지방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정말이지 어제 낸 18달러가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만약에 베트남에 올일이 있으면 꼭 메콩델타 1박 2일 투어는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하루코스는 너무 빡빡하고 2박3일 코스는 지겨울거 같다.

 미니버스를 타고 가면서 정말이지 이곳은 오토바이의 천국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길에는 온통 오토바이 행령이었으며 지나가는 차량에 대해서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신경쓰는 쪽은 오히려 차량 운전사들이다. 아무리 경적을 울려도 쳐다보지 않고 배째는 오토바이를 차량이 요리조리 피해가는 실정이었다.

 심지어는 역주행하는 오토바이도 있었다. 불과 2차선인 국도에는 오토바이와 빠르거나 느린 차량, 자전거, 무단횡단하는 사람들로 혼잡해 보였다. 사고가 나지 않은게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혼돈의 와중에서도 외국인인 나에게는 보이지 않은 질서가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까지나 난 외국인이고 이곳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식.. 즉 자신의 문화에 따라 살기 때문이다.

 호치민시로 돌아가는 길에 아저씨가 자신의 집에서 자라고 하신다. 아무리 뻔뻔한 나도 이렇게 실컷 얻어먹고 집에서 까지 신세를 지는게 정말이지 미얀했다.

 아저씨는 부인이 미국에 가셔서 괜찮다고 하시면서 혼자 있으면 심심하니까 자신의 집에서 자고 가라고 하신다.

 6시경이 되어서 우리는 신카페에 도착을 하고 짧은 시간이지만 정든 사람들과 헤어졌다. 난 가이드와 운전사에게 월드컵 기념품을 하나씩 주었다. 역시 가이드의 표정이 밝아진다.

 아저씨의 집에 가기 앞서 아저씨는 한식을 사주셨다. 육개장과 베트남 소주를 먹었다. 여기 한식은 우리나라와 가격이 거의 비슷하고 메뉴판을 보니까 안주 가격은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더 비싸다.

 아저씨가 거주하시는 빌라에 들어갔다. 무슨 고급 호텔같았다. 입구에는 도어맨이 있었고 정부청사와 멀지 않은 금싸라기 땅에 위치해 있었다.

 집안에 들어가니 이미 에어컨이 켜져 있었고 두분이 사시기에는 너무나도 넓은 집이었다.

 처음 보는 나를 이렇게 믿어주서 재워주시는 아저씨가 정말 고마웠다.

 내일은 원래 신카페를 통해서 호치민시티 투어를 할려고 했지만 관광객이 적은 관계로 예정되어 있지 않다고 하다.

 그럼 내 스스로 해봐야지.. 투어에서 아저씨를 만난덕분에 어제 오늘 내가 쓴돈은 투어비를 제외하고 화장실 이용비 1000동(약120원), 콜라 3000동(360원)이 전부이다.

 혹시 초반부터 너무 운이 좋은게 아닌가? 하지만 하늘이 나에게 내려준 선물이라고 여기는게 더 좋을 듯 하다.

 베트남행 비행기에서 나온 기내식(맛은 별로..)

 '신카페' 베트남 여행은 이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새끼 악어.. 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 있었다.

 메콩강에 있는 수상가옥

 보트위에서 한컷~

 베트남 전쟁때 베트콩의 보급을 직접 재현했다.

 모터보트를 타다가 마주친 오리떼들

 영어가 유창하고 친절한 가이드

 페리안에서..

 큰 다리가 없는 베트남에서는 페리가 그 역할을 한다.

베트남의 정신적 지주 호치민의 동상

 수상 가옥.. 보통사람의 생활을 볼 수 있었다.

 수상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모습

 농가에서 돼지를 싯어주고 있다.

 어린나이에 당구를?

 2일동안 원없이 탄 모터모트 안에서..

 수상시장의 모습.. 주로 야채들이 거래되고 있다.

 하루종일 일하고 하루 3달러를 버는 노무자들

 시장에서 본 새끼 오리

 베트남 소도시의 전경

 

 베트남 여행기 2(6.16) 사이공 시내 둘러보기

 6월 16일(월)

 푹신푹신한 침대에서 자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가벼웠다.

 아저씨도 일어나셔서 출근 준비를 하신다. 7시 30분쯤 되자 베트남인 가정부가 들어왔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미션은 호치민시 하루만에 돌아보기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호치민시라 부르기보다는 사이공시라 부르겠다. 호치민시를 돌아다니면서 예전에 낭만적이었던 사이공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이공 지도를 펴고 둘러볼 곳을 대략 정해 보았다. 일단 옛 대통령궁이었던 통일궁은 둘러봐야 되고, 근처에 전쟁박물관, 혁명박물관, 노틀담성당.. 지도를 쭉 보니 볼만한 곳은 가까운 곳에 몰려 있었다.

 아저씨가 아침을 먹자고 하셔서 식탁으로 갔다. 이럴수가! 김치찌개에 각종 한국 반찬들... 그리고 정말로 맛있었다. 아저씨는 웃으시면서 베트남인 가정부는 한국음식에는 일류라고 하셨다.

 이국땅에서 맛본 한국음식에 감탄한 나머지 두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8시가 조금 넘어서 아저씨가 일하시는 우리은행 호치민 사무소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니 이미 기사가 차를 대기 하고 있었다. 아저씨가 타는 차도 선망의 대상인 도요타의 랜드크루져이다.

 우리은행 사무소는 오피스 건물의 18층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눈에 호치민 시내가 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아저씨는 일하기에 앞서 베트남인 비서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시고 나한테 정보를 가르쳐주셨다. 그리고 미네랄워터 1.5리터짜리를 주시면서 오늘 다니면서 마시라고 하셨다.

 이럴 때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오피스건물을 나오고 나니 나를 맞이해주는 것은 더위와 수많은 오토바이었다.

 제일 가까운 옛 국회의사당으로 갔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때의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으로 드어갈려고 하자 경비원이 못 들어가게 한다.

 그럼.. 가까운 혁명 박물관에 갔다. 요금은 10000동(800원)이고, 들어가니 3쌍의 예비부부들이 결혼 기념 촬영을 하고 있었다. 사이공시 사람들은 이곳에서 결혼앨범 촬영을 하는구나... 긴장된 신랑과 신부의 얼굴.. 어떻게든 긴장을 풀어주고 자연스러운 표정을 이끌어 내려고 쩔쩔매는 사진사.. 우리나라와 다를 것이 없었다.

 혁명박물관은 사이공시의 유래와 역사를 다루었고 1975년 이전의 물건과 집기들을 주로 전시해 놓았다. 외국인은 보이지 않고 수학여행 온 듯한 중학생들이 박물관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혁명박물관을 나와서 향한 곳은 옛 대통령궁인 통일궁이다. 이곳의 상징적인 의미는 1975년 4월 30일 이곳이 점령됨으로서 베트남은 완전한 통일을 이루었다고 말할 정도로 베트남에서는 영향력이 큰 장소이기도 하다.

 입장료는 15000동(1200원) 좀 비싸기는 하지만 상징성을 볼 때 비싼금액도 아니다. 이곳의 모든 관람객은 가이드와 함께 관람을 해야 한다. 대통령궁 건물로 가니 미녀가이드가 영어가이드를 붙여준다고 했다. 나야 Ok.. 일행은 9명이고 나를 제외한 모두는 호주인이다.

 비교적 정확한 발음의 가이드 덕분에 대통령궁 구석구석에 대한 설명을 잘 들을 수 있었다.

 이럴 때 나의 영어 실력을 테스트 해봐야지.. 인심 좋게 생긴 아저씨에게 국적을 묻고 대화를 시도햇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왔으며 하노이에 동생이 거주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국에 대해서도 물어본다. 난 한국은 1975년 이전의 베트남과 흡사하다고 했다. 그는 현재 북핵문제 때문에 두렵지 않느냐고 물어 보았다.

 평소 생각대로 만약에 북한이 한국을 공격하는걸 마음 먹으면 북한은 핵폭탄이 아니더라도 DMZ에 배치한 대포로도 충분히 서울을 초토화 시킬 수 있다고 대답했다. 북한핵을 두려워하는 것은 일본과 미국이 우리보다 더 두려워한다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최근에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한국인들의 미국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졌다고 했다. 그외에도 호주의 유명한 도시와 축구이야기를 가지고 흥미롭게 대화를 했다.

 이런 대화를 가능할 정도로 내 영어가 될 줄이야.. 불과 6년전에 수능 외국어 영역 80점 만점에 40점 넘는것을 목표로 했던 나에게는 크나큰 성취감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영어가 유창한 가이드와는 대화가 잘 안된다. 그녀의 영어는 좀 이해하기 힘들었고 그녀도 나의 영어를 이해하기 힘들었나 보다.. 대화를 하면 그저 상대방에게 미소만 지을 뿐 이었다.

 갑자기 한순간에 그녀의 영어가 귀에 확 들어왔다. 그녀는 나한테 한국에서 탤런트를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오호.. 역시 사람보는 눈이 있군.. 나랑 장동건이랑 비슷하게 생겼다고 했다.

 기분이 좋아서 가지고 있던 원빈 사진을 그녀에게 주었다. 그녀는 내 사진이냐고 물어본다. 장동건, 원빈과 날 동격으로 보다니.. 만약에 그녀가 우리나라에 와서 이런 이야기를 내 후배들한테 했으면 인생의 쓴맛을 봤을 것이다.

 열심히 가이드 한 그녀에게 월드컵 기념품을 선물로 주었다. 그녀는 표정이 밝아지면서 정말로 고마워 했다.

 영어로된 기록영화를 보고 일행과 작별한 후 대통령궁을 나왔다.

입구에 나오자마자 시클로(자전거 형태로 된 사이공의 이동수단) 운전사가 끈질기게 달라 붙는다. 아무래도 사스의 영향으로 벌이가 시원찮아서 그런지 필사적이었다.

베트남의 시클로를 타보는것도 괜찮을 듯 해서 전쟁박물관까지 얼마냐고 물어 보았다. 대답은 10000동..훗.. 전쟁박물관이 얼마 안 떨어진 걸 지도를 통해서 알고 있어서 난 무시하고 그냥 돌아섰다. 계속 걸어가니 가격도 계속 떨어진다. 5000동.. 3000동.. 2000동.. 음.. 2000동이면 한번쯤 타볼만 해 서 시클로를 타고 전쟁박물관으로 갔다.

 전쟁박물관은 11시 45분부터 13시 30분까지 점심시간이라고 한다. 내가 간 시간은 11시 50분.. 할수 없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벤탄마켓으로 갔다. 전쟁박물관보다 멀기는 하지만 시간도 떼울겸 슬슬 걸어갔다.

 벤탄마켓은 거대한 시장이고, 곳곳에 서양인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다.

 벤탄마켓을 나오고 신카페로 갔다. 내일 나트랑으로 갈 버스를 예약하기 위해서 이다.

 벤탄마켓에서 신카페까지도 멀었지만 아일랜드인 부부가 길을 잘 설명해주어서 쉽게 찾아 갈 수 있었다.

 신카페에서는 사이공을 출발해서 하노이 방향으로 가는 버스들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많은 외국인들이 이용하고 있다.

 나트랑까지는 8달러이고 내일 아침 7시 30분에 출발한다고 한다. 시간은 대략 1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신카페에서 나오는 도중 서점에서 그토록 찾던 론니플래닛 베트남편을 발견했다. 가격을 물어보니 12달러.. 표지에는 분명히 20달러라고 써있던데.. 아무래도 복사본 같다.

 10달러까지 깍아서 론니를 샀다. 포장을 뜯고 보니 복사본이라고 하기에 너무나 정교하고 정품과 다를게 없었다. 이상하다? 베트남의 인쇄기술이 이렇게 발달한거 같지는 않은데.. 그냥 정품 샀다고 생각하고 가지고 다니는게 정신 건강에 더 좋을 듯 했다.

 시간이 좀 남아서 공원에서 론니를 읽다가 오토바이를 잡아서(5000동) 전쟁박물관으로 갔다.(입장료 10000동)

 어느 곳 보다도 많은 서양관광객이 보인 이곳에는 베트남전에 사용되었던 각종 무기와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또한 미군들이 잔학하게 양민들을 살해한 모습을 고발하고 있었고 고엽제에 관한 설명과 그에 대한 피해들을 사진으로 전시하고 있었다.

 특히 미군이 목이 잘린 베트남인 앞에서 웃으면서 기념촬영을 한 사진을 보면서 항상 자유를 수호하는 군대라고 선전하는 미군에 대해 가진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환상이 다 깨졌다.

 박물관에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 때 쓰던 단두대와 감옥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쟁박물관을 통해서 결코 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는 베트남인들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독립기념관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는것 같았다.

 전쟁박물관에서 곧바로 노틀담 성당으로 갔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때인 1880년에 세워진 것으로 사이공시에서는 가장 큰 성당이다.

 성당에 들어가자마자 한 베트남인이 나보고 모자를 벗으라고 한다. 성당안은 우리나라 전주의 전동성당과 비슷한 분위기 였으며 특인한게 있다면 옆면에는 칸이 나누어져 있어서 성모마리아상과 그리스도상이 있고, 벽에는 기부를 많이 한 듯한 사람의 이름과 년도가 판넬식으로 차곡차곡 붙여져 있었다.

 노틀담성당 옆에 있는 우체국으로 갔다. 이곳도 프랑스풍의 건물로 안에는 통풍이 잘 되어서 무척 시원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땀을 식혔다.

 우체국 앞에서 쎄옴(오토바이)을 탔다. 동물원과 식물원이 있는 보타니칼 가든으로 가기위해서인데 처음에 10000동을 제시했지만 이내 5000동으로 내렸다.

 보타니칼 가든 앞에서 내리니 입장료는 8000동(640원) 입구에서부터 한 껌팔이가 계속 붙는다. 껌 살일이 없어서 무시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그 껌팔이가 끈질기게 따라다니면서 나한테 가이드를 한다고 한다. 휴.. 한번 져줄까? 그냥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중학생인줄 알았는데 30살된 아줌마라고 한다..키는 150도 안되보이는데..

 그녀는 원숭이, 하마, 사자, 호랑이.. 누구나 보면 알수 있는 동물을 가이드랍시고 영어로 알려준다.

 이 동물원에서 특이한 것은 호랑이와 사자, 표범등 육식동물의 먹이로 살아있는 토끼를 준다는 것이다. 덕분에 사자가 토끼를 덮쳐서 잡아먹는 것을 직접 보았다. 옆 우리의 호랑이 주위에는 토끼내장이 흩어져 있다.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은 혼자서 사색 할려고 왔는데 껌팔이가 동물원을 구경하고도 계속 따라다니길래 그냥 물건 하나 사주기로 했다. 난 베트남 여인 사진이 담긴 엽서 세트를 골랐다.. 20000만동 부른다.

 미련없이 뒤돌아서니, 자기가 가이드도 해줬는데 사줘야 하지 않느냐고 한다. 내 이럴줄 알았다니까.. 누구나 다 아는 동물 이름 댄걸로 가이드 했다고 하다니.. 일단 10000동까지 끌어내렸다. 그런데 20000동짜리 밖에 없는 것이다. 그 지페를 주자 잔돈이 없다고 한다. 난 끝까지 거스름돈을 달라고 했고, 그녀는 사이공 시내 사진이 담긴 엽서세트를 하나 더 주며 도망치듯 나갔다.. 하긴 저 사람도 먹고 살려니..

 천천히 사이공 시내를 돌아다니니 어느새 5시 30분이 다 되어 있었다. 아차.. 아저씨가 6시까지 와서 저녁먹으라고 하셨지..

 6시쯤에 아저씨집으로 가니 먹음직한 보쌈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 저거 먹어본지가 참 오래되었는데.. 거기다가 미역국까지 있었다.

 3일뒤인 19일은 내 생일이다. 미역국도 못 먹고 지나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먹게 될 줄이야.. 그 이야기를 들은 아저씨는 잘 되었다고 하시면서 많이 먹으라고 하셨다.

 저녁을 먹고 차이나타운으로 갔다. 차이나타운의 최대시장인 촐롱마켓은 이미 문을 닫고 있었다. 그냥 강가를 따라서 걸어갔다. 강가는 시내 중심과 달리 빈민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가난하기는 하지만 즐거운 표정으로 사는 사람들.. 그들의 일상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걸어갔다. 단지.. 끊임없이 내 옆에 서서 오토바이를 타라는 사람들만 없으면..

 한2시간을 걸었다. 걷다보니 오토바이가 무척 많이 모여 있는 장소가 있었다. 오토바이를 탄채로 강변을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많은 숫자이다. 어누곳이나 연인들의 사랑의 속삭임은 아름답다고 생각이 된다. 왜냐하면 그 순간만큼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고 보니 내가 좀 처량해진다.. 내 님은 과연 어디 있을까? 이국땅까지 와서 연인들의 행복을 그저 옆에서 지켜만 봐야 되다니..

 시원한 환타 한잔 마시고 세옴(오토바이)를 타고 아저씨집으로 갔다. 이 나라는 어찌나 오토바이가 많은지.. 오토바이의 홍수 속에 파묻혀 쩔쩔매며 다니는 차들이 불쌍하게 보일지경이다.

 이렇게 하루만에 사이공을 다 둘러보았다. 박물관이나 유적들을 통해서 사이공의 옛 모습을 보았고 저녁때는 걸어다니면서 활기찬 사이공의 현재 모습을 보았다.

 아침에 집을 나섰을대 생각했던 사이공의 모습은 1975년 4월 30일 공산화 직전의 패닉상태에 빠진 모습이었지만, 저녁때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 가지게 된 사이공의 모습은 활발하고 발랄한 현재의 모습을 간직한 채로 돌아오게 되었다. 발랄한 여대생과 같은 도시.. 오~ 사이공이여6월 16일

 푹신푹신한 침대에서 자서 그런지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가벼웠다.

 아저씨도 일어나셔서 출근 준비를 하신다. 7시 30분쯤 되자 베트남인 가정부가 들어왔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미션은 호치민시 하루만에 돌아보기이다. 그리고 지금부터 호치민시라 부르기보다는 사이공시라 부르겠다. 호치민시를 돌아다니면서 예전에 낭만적이었던 사이공의 모습을 그려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이공 지도를 펴고 둘러볼 곳을 대략 정해 보았다. 일단 옛 대통령궁이었던 통일궁은 둘러봐야 되고, 근처에 전쟁박물관, 혁명박물관, 노틀담성당.. 지도를 쭉 보니 볼만한 곳은 가까운 곳에 몰려 있었다.

 아저씨가 아침을 먹자고 하셔서 식탁으로 갔다. 이럴수가! 김치찌개에 각종 한국 반찬들... 그리고 정말로 맛있었다. 아저씨는 웃으시면서 베트남인 가정부는 한국음식에는 일류라고 하셨다.

 이국땅에서 맛본 한국음식에 감탄한 나머지 두 그릇을 뚝딱 해치웠다.

 8시가 조금 넘어서 아저씨가 일하시는 우리은행 호치민 사무소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니 이미 기사가 차를 대기 하고 있었다. 아저씨가 타는 차도 선망의 대상인 도요타의 랜드크루져이다.

 우리은행 사무소는 오피스 건물의 18층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눈에 호치민 시내가 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이다.

 아저씨는 일하기에 앞서 베트남인 비서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시고 나한테 정보를 가르쳐주셨다. 그리고 미네랄워터 1.5리터짜리를 주시면서 오늘 다니면서 마시라고 하셨다.

 이럴 때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다..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오피스건물을 나오고 나니 나를 맞이해주는 것은 더위와 수많은 오토바이었다.

 제일 가까운 옛 국회의사당으로 갔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때의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안으로 드어갈려고 하자 경비원이 못 들어가게 한다.

 그럼.. 가까운 혁명 박물관에 갔다. 요금은 10000동(800원)이고, 들어가니 3쌍의 예비부부들이 결혼 기념 촬영을 하고 있었다. 사이공시 사람들은 이곳에서 결혼앨범 촬영을 하는구나... 긴장된 신랑과 신부의 얼굴.. 어떻게든 긴장을 풀어주고 자연스러운 표정을 이끌어 내려고 쩔쩔매는 사진사.. 우리나라와 다를 것이 없었다.

 혁명박물관은 사이공시의 유래와 역사를 다루었고 1975년 이전의 물건과 집기들을 주로 전시해 놓았다. 외국인은 보이지 않고 수학여행 온 듯한 중학생들이 박물관 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혁명박물관을 나와서 향한 곳은 옛 대통령궁인 통일궁이다. 이곳의 상징적인 의미는 1975년 4월 30일 이곳이 점령됨으로서 베트남은 완전한 통일을 이루었다고 말할 정도로 베트남에서는 영향력이 큰 장소이기도 하다.

 입장료는 15000동(1200원) 좀 비싸기는 하지만 상징성을 볼 때 비싼금액도 아니다. 이곳의 모든 관람객은 가이드와 함께 관람을 해야 한다. 대통령궁 건물로 가니 미녀가이드가 영어가이드를 붙여준다고 했다. 나야 Ok.. 일행은 9명이고 나를 제외한 모두는 호주인이다.

 비교적 정확한 발음의 가이드 덕분에 대통령궁 구석구석에 대한 설명을 잘 들을 수 있었다.

 이럴 때 나의 영어 실력을 테스트 해봐야지.. 인심 좋게 생긴 아저씨에게 국적을 묻고 대화를 시도햇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왔으며 하노이에 동생이 거주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국에 대해서도 물어본다. 난 한국은 1975년 이전의 베트남과 흡사하다고 했다. 그는 현재 북핵문제 때문에 두렵지 않느냐고 물어 보았다.

 평소 생각대로 만약에 북한이 한국을 공격하는걸 마음 먹으면 북한은 핵폭탄이 아니더라도 DMZ에 배치한 대포로도 충분히 서울을 초토화 시킬 수 있다고 대답했다. 북한핵을 두려워하는 것은 일본과 미국이 우리보다 더 두려워한다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최근에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한국인들의 미국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졌다고 했다. 그외에도 호주의 유명한 도시와 축구이야기를 가지고 흥미롭게 대화를 했다.

 이런 대화를 가능할 정도로 내 영어가 될 줄이야.. 불과 6년전에 수능 외국어 영역 80점 만점에 40점 넘는것을 목표로 했던 나에게는 크나큰 성취감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영어가 유창한 가이드와는 대화가 잘 안된다. 그녀의 영어는 좀 이해하기 힘들었고 그녀도 나의 영어를 이해하기 힘들었나 보다.. 대화를 하면 그저 상대방에게 미소만 지을 뿐 이었다.

 갑자기 한순간에 그녀의 영어가 귀에 확 들어왔다. 그녀는 나한테 한국에서 탤런트를 하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오호.. 역시 사람보는 눈이 있군.. 나랑 장동건이랑 비슷하게 생겼다고 했다.

 기분이 좋아서 가지고 있던 원빈 사진을 그녀에게 주었다. 그녀는 내 사진이냐고 물어본다. 장동건, 원빈과 날 동격으로 보다니.. 만약에 그녀가 우리나라에 와서 이런 이야기를 내 후배들한테 했으면 인생의 쓴맛을 봤을 것이다.

 열심히 가이드 한 그녀에게 월드컵 기념품을 선물로 주었다. 그녀는 표정이 밝아지면서 정말로 고마워 했다.

 영어로된 기록영화를 보고 일행과 작별한 후 대통령궁을 나왔다.

 입구에 나오자마자 시클로(자전거 형태로 된 사이공의 이동수단) 운전사가 끈질기게 달라 붙는다. 아무래도 사스의 영향으로 벌이가 시원찮아서 그런지 필사적이었다.

 베트남의 시클로를 타보는것도 괜찮을 듯 해서 전쟁박물관까지 얼마냐고 물어 보았다. 대답은 10000동..훗.. 전쟁박물관이 얼마 안 떨어진 걸 지도를 통해서 알고 있어서 난 무시하고 그냥 돌아섰다. 계속 걸어가니 가격도 계속 떨어진다. 5000동.. 3000동.. 2000동.. 음.. 2000동이면 한번쯤 타볼만 해 서 시클로를 타고 전쟁박물관으로 갔다.

 전쟁박물관은 11시 45분부터 13시 30분까지 점심시간이라고 한다. 내가 간 시간은 11시 50분.. 할수 없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벤탄마켓으로 갔다. 전쟁박물관보다 멀기는 하지만 시간도 떼울겸 슬슬 걸어갔다.

 벤탄마켓은 거대한 시장이고, 곳곳에 서양인 관광객들을 볼 수 있었다.

 벤탄마켓을 나오고 신카페로 갔다. 내일 나트랑으로 갈 버스를 예약하기 위해서 이다.

 벤탄마켓에서 신카페까지도 멀었지만 아일랜드인 부부가 길을 잘 설명해주어서 쉽게 찾아 갈 수 있었다.

 신카페에서는 사이공을 출발해서 하노이 방향으로 가는 버스들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많은 외국인들이 이용하고 있다.

 나트랑까지는 8달러이고 내일 아침 7시 30분에 출발한다고 한다. 시간은 대략 11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신카페에서 나오는 도중 서점에서 그토록 찾던 론니플래닛 베트남편을 발견했다. 가격을 물어보니 12달러.. 표지에는 분명히 20달러라고 써있던데.. 아무래도 복사본 같다.

 10달러까지 깍아서 론니를 샀다. 포장을 뜯고 보니 복사본이라고 하기에 너무나 정교하고 정품과 다를게 없었다. 이상하다? 베트남의 인쇄기술이 이렇게 발달한거 같지는 않은데.. 그냥 정품 샀다고 생각하고 가지고 다니는게 정신 건강에 더 좋을 듯 했다.

 시간이 좀 남아서 공원에서 론니를 읽다가 오토바이를 잡아서(5000동) 전쟁박물관으로 갔다.(입장료 10000동)

 어느 곳 보다도 많은 서양관광객이 보인 이곳에는 베트남전에 사용되었던 각종 무기와 사진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또한 미군들이 잔학하게 양민들을 살해한 모습을 고발하고 있었고 고엽제에 관한 설명과 그에 대한 피해들을 사진으로 전시하고 있었다.

 특히 미군이 목이 잘린 베트남인 앞에서 웃으면서 기념촬영을 한 사진을 보면서 항상 자유를 수호하는 군대라고 선전하는 미군에 대해 가진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환상이 다 깨졌다.

 박물관에는 프랑스 식민지 시대 때 쓰던 단두대와 감옥이 전시되어 있었다. 전쟁박물관을 통해서 결코 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는 베트남인들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독립기념관과 비슷한 역할을 하고 있는것 같았다.

 전쟁박물관에서 곧바로 노틀담 성당으로 갔다. 프랑스 식민지 시대때인 1880년에 세워진 것으로 사이공시에서는 가장 큰 성당이다.

 성당에 들어가자마자 한 베트남인이 나보고 모자를 벗으라고 한다. 성당안은 우리나라 전주의 전동성당과 비슷한 분위기 였으며 특인한게 있다면 옆면에는 칸이 나누어져 있어서 성모마리아상과 그리스도상이 있고, 벽에는 기부를 많이 한 듯한 사람의 이름과 년도가 판넬식으로 차곡차곡 붙여져 있었다.

 노틀담성당 옆에 있는 우체국으로 갔다. 이곳도 프랑스풍의 건물로 안에는 통풍이 잘 되어서 무척 시원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땀을 식혔다.

 우체국 앞에서 쎄옴(오토바이)을 탔다. 동물원과 식물원이 있는 보타니칼 가든으로 가기위해서인데 처음에 10000동을 제시했지만 이내 5000동으로 내렸다.

 보타니칼 가든 앞에서 내리니 입장료는 8000동(640원) 입구에서부터 한 껌팔이가 계속 붙는다. 껌 살일이 없어서 무시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그 껌팔이가 끈질기게 따라다니면서 나한테 가이드를 한다고 한다. 휴.. 한번 져줄까? 그냥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중학생인줄 알았는데 30살된 아줌마라고 한다..키는 150도 안되보이는데..

 그녀는 원숭이, 하마, 사자, 호랑이.. 누구나 보면 알수 있는 동물을 가이드랍시고 영어로 알려준다.

 이 동물원에서 특이한 것은 호랑이와 사자, 표범등 육식동물의 먹이로 살아있는 토끼를 준다는 것이다. 덕분에 사자가 토끼를 덮쳐서 잡아먹는 것을 직접 보았다. 옆 우리의 호랑이 주위에는 토끼내장이 흩어져 있다.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은 혼자서 사색 할려고 왔는데 껌팔이가 동물원을 구경하고도 계속 따라다니길래 그냥 물건 하나 사주기로 했다. 난 베트남 여인 사진이 담긴 엽서 세트를 골랐다.. 20000만동 부른다.

 미련없이 뒤돌아서니, 자기가 가이드도 해줬는데 사줘야 하지 않느냐고 한다. 내 이럴줄 알았다니까.. 누구나 다 아는 동물 이름 댄걸로 가이드 했다고 하다니.. 일단 10000동까지 끌어내렸다. 그런데 20000동짜리 밖에 없는 것이다. 그 지페를 주자 잔돈이 없다고 한다. 난 끝까지 거스름돈을 달라고 했고, 그녀는 사이공 시내 사진이 담긴 엽서세트를 하나 더 주며 도망치듯 나갔다.. 하긴 저 사람도 먹고 살려니..

 천천히 사이공 시내를 돌아다니니 어느새 5시 30분이 다 되어 있었다. 아차.. 아저씨가 6시까지 와서 저녁먹으라고 하셨지..

 6시쯤에 아저씨집으로 가니 먹음직한 보쌈이 준비되어 있었다.. 아.. 저거 먹어본지가 참 오래되었는데.. 거기다가 미역국까지 있었다.

 3일뒤인 19일은 내 생일이다. 미역국도 못 먹고 지나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먹게 될 줄이야.. 그 이야기를 들은 아저씨는 잘 되었다고 하시면서 많이 먹으라고 하셨다.

 저녁을 먹고 차이나타운으로 갔다. 차이나타운의 최대시장인 촐롱마켓은 이미 문을 닫고 있었다. 그냥 강가를 따라서 걸어갔다. 강가는 시내 중심과 달리 빈민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가난하기는 하지만 즐거운 표정으로 사는 사람들.. 그들의 일상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걸어갔다.

 한2시간을 걸었다. 걷다보니 오토바이가 무척 많이 모여 있는 장소가 있었다. 오토바이를 탄채로 강변을 바라보며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 많은 숫자이다. 어누곳이나 연인들의 사랑의 속삭임은 아름답다고 생각이 된다. 왜냐하면 그 순간만큼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고 보니 내가 좀 처량해진다.. 내 님은 과연 어디 있을까? 이국땅까지 와서 연인들의 행복을 그저 옆에서 지켜만 봐야 되다니..

 시원한 환타 한잔 마시고 세옴(오토바이)를 타고 아저씨집으로 갔다. 이 나라는 어찌나 오토바이가 많은지.. 오토바이의 홍수 속에 파묻혀 쩔쩔매며 다니는 차들이 불쌍하게 보일지경이다.

 이렇게 하루만에 사이공을 다 둘러보았다. 박물관이나 유적들을 통해서 사이공의 옛 모습을 보았고 저녁때는 걸어다니면서 활기찬 사이공의 현재 모습을 보았다.

 아침에 집을 나섰을대 생각했던 사이공의 모습은 1975년 4월 30일 공산화 직전의 패닉상태에 빠진 모습이었지만, 저녁때 다시 집으로 돌아올 때 가지게 된 사이공의 모습은 활발하고 발랄한 현재의 모습을 간직한 채로 돌아오게 되었다. 발랄한 여대생과 같은 도시.. 오~ 사이공이여

 사이공 시내 전경

 혁명 박물관을 지키는 호치민 동상

 베트남인들의 교통수단 오토바이

 1975년까지 남베트남의 정치 중심지 대통령궁

 대통령궁 내부 모습.. 옆에 있는 서양꼬마가 귀엽다.

 사이공의 거대한 시장 촐롱 마켓

노틀담 성당 전경

전쟁박물관 안에 있는 단두대

 베트남전쟁 당시 수집된 미군 무기들

 사이공 우체국.. 내부가 시원했다.

노틀담 성당의 내부 모습. 모자를 벗고 들어가야 한다.

기부금 명단으로 보이는 뒷면의 벽돌들이 이색적이다.

 사이공 우체국 모습. 거대한 호치민의 초상이 이색적

 거리는 온통 오토바이로 뒤덮혔다.

 동물원에서 아이가 코끼리에게 풀을 주는 모습

 거대한 하마.. 정말 컸다.

 호랑이 우리.. 곧 있음 호랑이 먹이가될 토끼들

 흑표범이 토끼를 잡아먹는 모습

 동물원안에 있는 옛 다리

 저녁 퇴근시간이 되자 거리는 거리반 오토바이반..

 

베트남 여행기 3(6.17~19) 추억과 낭만의 나트랑

 6월 17일(화)

 나트랑으로 가는 버스가 7시 반에 출발하는 관계로 6시 반에 일어났다. 아저씨도 거의 동시에 일어 나셨다.

 짐을 챙기고 밖으로 나왔다. 이른 시간인데도 아저씨께서 몸소 나오셨고 오히려 아침을 못챙겨줘서 미얀해 하셨다.

우리은행 사이공 사무소의 한용성 사무소장님.. 학생이라는 이유로 도움을 주셔서 정말로 감사할 따름이다.

 집에서 신까페로 가는 택시를 탔다. 택시비는 1달러가 나왔지만 팁으로 1달러를 더 달라고 한다. 좋다.. 까짓거 인심한번 쓰지.. 2달러를 주었다.

 버스를 타기 직전에 한국인 아저씨 2명을 만났다. 아저씨들은 혼자 여행하는 내가 대단하다고 하시면서 같이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버스 출발 시간이 되어서 아저씨들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나트랑행 버스에는 6명 밖에 타지 않았다. 아무래도 사스의 영향으로 관광객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버스에는 에어컨이 잘 되어있었고 자리 또한 넓은 편이다. 버스를 타며 창 밖의 사이공 시내를 보다가 그만 잠이 들었다. 도중에 주유소를 들렸는데 거기서 한 한국인 사업가를 만나서 과일을 얻어 먹었다.

 깨어보니 산이 조금씩 보이고 그 많던 오토바이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12시가 가까워지자 버스는 식당앞에 섰다. 점심식사를 할려고 선 모양이다.

 내려서 밥과 콜라를 시켰다. 베트남의 음식은 중국음식과 달리 입맛에 잘 맞았다. 조금 쉬었다가 버스가 출발할려고 하자 다시 버스를 탔다.

 한 10분정도 가다 보니 좀 이상했다. 이까는 차창에 커튼이 있었는데... 설마? 뒤에 서양인들에게 물어보니 나트랑으로 가는 버스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버스를 잘 못 탈줄이야!

 급히 차장에게 가서 사정을 이야기 하였다. 옆의 가이드는 도와주겠다면서 버스를 세운 뒤 전화를 하러 밖으로 나갔다.

 가이드의 안내로 오토바이를 섭외하여 원래 식당까지 가게 했다. 경황이 없는 도중이라 가이드에게 제대로 인사하지 못해서 마음에 걸렸다.

 처음 식당으로 가니 처음 탄 버스는 이미 떠나 있었고 같은 신카페 소속의 버스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짐도 이미 옮겨 실었다.

 새로 탄 버스는 나트랑보다 더 북쪽인 후에까지 가는 버스로서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혹시 돈을 더 지불해야 할까봐 불안해 하자 같은 신카페 소속의 버스라서 따로 돈은 안 받는다고 하고, 편하게 가라고 한다. 정말 고맙기 그지 없다.

 오후 6시가 되자 도로를 달리는 오토바이의 숫자가 급증했다. 아마 나트랑에 거의 도착했나보다. 버스는 신카페 앞에서 섰고 버스에서 내린 후 월드컵 기념품을 운전기사와 가이에게 주었다.

 이제는 방을 잡아야지.. 역시 내리자마자 삐끼가 붙는다. 처음에는 하루 7달러를 부르더니 결국에는 2일에 7.5달러로 굳혔다.

 다시 신카페로 가서 나트랑에서 유명한 4개섬 투어를 예약했다. 버스를 타느라 하루종일 가만히 있었는데도 피곤했다. 사람의 신체는 움직이지 않아도 버스를 타는 동안에 다른 무언가의 에너지가 소모되나 보다..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노트북에 있는 게임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

 6월 18일(수)

 8시 반에 신카페로 갔다. 우선 내일 오후 6시에 호이안까지 갈 버스를 예약했고 내 나이 또래인 신카페 직원과 영어로 많은 대화를 했다.

 좀 기다리니 대형버스가 도착했고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타고 있었다. 버스는 나트랑 시내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호텔로 직접 외국인들을 싣고 있었다.

 항구로 가서 배를 타니 영어가 능숙한 멋진 가이드가 나와서 오늘 일정을 설명해 준다. 쉬운 영어로 유머를 곁들이면서 설명을 해주는데 나를 비롯한 모든 관광객들이 어느 순간 그의 팬이 되었다.

 1시간정도 배를 타고 못섬(못아일랜드)에 갔다. 거기서 친해진 가이드와 함께 같이 수영을 했다. 이곳 바다는 정말 아름답다... 바닷물 색깔이 파워에이드 마운틴블러스트(파란색)와 똑 같은 색깔이다.

 혼자서 두리번 있으니 가이드가 와서 말을 건다. 친해진 가이드 이름은 트란으로 나이가 28살이라고 한다. 아직 애인이 없다고 하며 나보고 애인이 있느냐고 물어본다. 준비해두었던 전지현 사진을 꺼내서 애인이라고 보여줬다.

 트란의 입에서 놀라운 탄성이 나왔다. 후훗.. 당연하쥐.. 난 다시 농담이라고 하면서 나 역시 애인이 없다고 했다.

 트란과 나.. 둘다 애인이 없다는 공통점 때문에 놀라울 속도로 공감대가 형성이 되었다. 그와 함께 수영을 하고 서로의 나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이메일 주소도 교환했고 전지현 사진과 월드컵 기념품을 트란에게 주었다.

 11시 30분이 되자 다시 배에 올라탔다. 배에 타면서 베트남 여자애 2명과 친해졌다. 그녀들은 자매로서 사이공에 산다고 한다. 한명은 고1이고 한명은 고2다. 둘다 이쁘고 명랑했지만 연애의 대상으로 여기면 우리나라 기준으로 내가 범죄자가 되겠지..

 역시 고등학생들은 우리나라의 연예인에 대해 꿰뚫고 있었다. 서로 어설픈 영어로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 시간이 되었다.

 점심때가 되자 베트남인들은 배 아래층으로, 외국인들은 배 윗층으로 옮겼다. 점심은 배위에서 먹었다. 6달러 내고 투어를 하기엔 미안할 정도로 진수성찬이 나왔다. 윗층의 관광객중에 동양인은 불과 나 하나.. 좀 쓸쓸했다. 차라리 베트남인들이 있는 밑층으로 갈걸.

 바로 옆의 잉글랜드 남자랑 이야기를 했다. 그는 울산에서 고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어디서나 그렇지만 잉글랜드 애들이랑 대화를 하면 어휘력이 완전히 딸린다. 일단 너무 빨리 이야기를 해서 이해하기가 힘들고.. 나의 어휘력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점심을 먹고 배 근처에 튜브를 띄어놓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큰 튜브에는 트란이 탔고 포도주와 파인애플을 준비해 두어다. 관광객들은 바다로 뛰어들어 가이드가던져주는 튜브를 타고 트란 근처로 모여들었다.

 나 역시 2층 높이에서 다이빙을 하고 던져준 튜브를 잡고 트란쪽으로 갔다. 수영복을 가져왔냐구? 오늘은 내 팬티가 수영복이다.

 트란은 관광객들에게 포도주를 따라 주면서 특히 나한테 계속 마시라고 했다.

 친해진 잉글랜이 애한테 '두 유 노우 코리안 위스키?'라고 묻자 고개를 갸웃거린다. 난 소주라고 설명을 해주니까 그는 아하 하면서 쇠주.. 라고 외친다.

 그는 한국에서 원샷이라는 단어가 제일 무섭다고 한다. 나 역시 배달민족의 건아 답게 그에게 원샷을 권했다. 튜브에 몸을 의지한 채 포도주를 1병 반이나 마셨다. 머.. 화장실은 따로 갈 필요가 없었다. 바다의 생물들에게 양질의 영양분을 기꺼이 기증했으니..

 40분정도 바다에서 놀다가 또 다른섬으로 갔다. 벌써 3번째 섬이네.. 해변에서 수영을 하는 시간이지만 친해진 서양애들과 함께 같이 비치 발리볼을 했다. 어떠한 스포츠던지 승부욕으로 불타오르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서양애들은 그저 같이 즐기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비치 발리볼을 하다가 다른배의 서양애들과 친해졌다. 잉글랜드인 2명이었는데 한국인이라고 하자 둘 다 분당에 위치한 학원에서 영어를 가르친다고 했다.

 좀 부럽다.. 나도 여행을 하다가 한국어를 가르치며 돈을 벌면서 여행경비를 충당하고 싶은데.. 오늘 여행을 계기로 몇 년안으로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가는 구상을 했다.

 여행을 하면서 영어 실력을 더 굳혀야 된다는 생각이 더 절실해진 순간이다.

 또 다른섬에 가서는 베트남 아이들과 수영을 하다가 친해진 잉글랜드인 2명과 수영을 했다. 여기서 깜짝놀랄일이.. 한 잉글랜드인이 멀리 다이빙을 할려고 갑자기 팬티까지 벗더니 그대로 바다로 뛰어든다... 무엇이 보였는지는 다들 짐작 갈거라 생각..

 같은 남자라도 쇼킹.. 그런데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하루종일 놀다 보니 5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정말 오늘처럼 시간 가는줄 모르고 놀기는 오랫만인거 같다. 친해진 가이드가 나한테 와서 작년까지만 해도 일본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음.. 아마 그럴것이다. 나 역시 베트남을 여행하기 전에 베트남에 일본인들이 바글바글 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근데 정작 지금까지 베트남 여행을 하면서 일본인들은 한번도 못 봤다.

 평소에 일본인들이 새가슴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베트남 여행와서 더 확신을 하게 되었다. 사스가 두려워서 어디도 못 나가는 일본인들.. 4월쯤인가?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축구시합이 상암구장에서 열렸다. 그때 일본의 지코 감독은 제외한 전 일행이 마스크를 쓰고 우리나라로 입국을 했다.

 사스가 발생하지도 않은 우리나라에서 사스가 두려운 일본인들.. 개개인은 새가슴이지만 새가슴들이 뭉치면 제어가 안되는 것을 60년전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하긴.. 일본인들도 안보이지만 한국인 역시 보기 힘들다. 여기에는 서양인들만 바글바글 하다. 오늘 친해진 트란을 비롯한 일행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버스를 타고 호텔앞에서 내렸다. 하루종일 수영을 해서 그런지 샤워를 하자 마자 잠이 들었다.

 단 6달러를 가지고 원없이 놀았다. 신카페에 대한 신뢰가 더욱 커졌다.

 6월 19일(목)

 오늘은 나의 25번째 생일이다. 보통 생일이면 생일상 거하게 차려놓고 친한 사람들끼리 파티를 하지만 현자 난 알아주는 이 아무도 없는곳에서 생일을 맞고 있다.

 인생을 100살로 봤을때 25살이면 4분의 1이 지나간 것이다. 하지만 난 150살까지 살 예정이니까 6분의 1이 지나간 것이다.(나의 과대 망상임^^)

 11시쯤에 짐 챙기는 것을 완료하고 호텔을 나왔다. 친절한 주인에게 월드컵 기념품을 주었다.
신카페로 가서 짐을 맡겨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어제 친해진 동갑내기 직원은 짐 놓는 지점을 알려주면서 잘 구경갔다 오라고 한다.

 우선.. 피시방으로 가서 그동안 쌓은 이메일을 체크해 보았다. 내 생일을 축하해주는 사람은 나랑 중국에서 합류할 상걸이와 재현이뿐..

 그러고 보니 아침, 점심을 안 먹었네.. 생일이니까 배는 든든하게 해야지.. 우선 식당으로 가서 가격은 좀 나가지만 비싼 음식을 시켰다.. 왜냐.. 내 생일이니까..

 밥을 먹고 오토바이를 섭외해서 나트랑 시내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오토바이는 3군데 가는데 40000동을 제시하다가 20000동에 합의를 봤다.

 먼저 간 곳은 베트남 전쟁당시 분신을 함으로서 부패한 남베트남정부에 항거한 베트남 불교계의 대부 탕쾅덕스님이 거쳐했던 곳으로 지금은 그를 추모하기 위해 대형 불상이 세워져 있다.

 들어가니 입장료를 받지 않고 가이드가 붙는다. 2명이었는데 자신들은 야간학교를 다닌다고 하면서 자기소개를 한다.

 그런데 갑자기 엽서를 사라는 것이다. 입장료를 받지 않는 대신 파는거라고 한다. 얼마냐고 물어보았다. 50000동(4000원).. 애들이 미쳤구나.. 그래도 사원은 보고 싶어서 필사적으로 깍아서 15000동에 샀다. 어째튼 롱손 사원은 봐야 하니까.

 그런데 여자애들은 가고 한 노인이 붙더니 가이드를 해준다. 사원안에서는 절대 경건해야 한다며 말을 절대 하면 안된다고 했다.

 향을 가지고 사원을 다니는데 절대 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칫.. 바로 옆에는 베트남 인부들이 잘도 퍼질러 자고 고 있는데..

 사원안을 나름대로 경건하게 돌아다니더니 역시 돈을 요구한다... 그가 부른 돈은 50000동.. 슬프기까지 했다.

 민중을 위해서 희생한 탕쾅덕 스님의 영혼이 숨쉬는 곳인데.. 이렇게 사기꾼들에 의해 더렵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10000동만 쥐어주고 나왔다.

 이 여행기를 보는 이들중에 베트남 갈일이 있으면 절대 롱손 사원으로 가지 말기를 바란다. 내가 25000동(2000원)을 희생하고 나서야 얻은 교훈이다.

 다음은 포가나르 사원.. 이곳은 1000년전에 지어진 참파왕국 시절의 탑이 서 있다. 입구에서 입장료 4000동을 내고 언덕위로 올라갔다. 오랜 세원이 지났는데도 탑은 원형 그대로 서 있었다. 그리고 위에서 바라보는 나트랑의 해변이 정말 아름답다.

 포가나르사원 다음에는 오토바이 운전사가 소개해준 유명한 바위로 갔다. 이름이 홍락이었던가? 가서 입장료 3000동을 내고 봤지만.. 별 특이한것은 없었다.

 이 정도면 나트랑 시내를 다 본거겠지.. 좀 기분이 상했지만 다시 신카페 앞으로 갔다. 오토바이 운전사에게 약속한 20000동을 주기 위해 50000동짜리 지폐를 주고, 수고한 운전사에게 기념품을 주기 위해 가방을 뒤졌다.

 운전사에게 잔돈을 받고 월드컵 기념품을 주었다. 그는 고맙다며 황급히 떠났다.

 그런데 아무 의심없이 잔돈을 받았는데 세어보니 20000동만 거슬로 주었던 것이다. 아차..

 휴.. 오늘은 완전히 나의 패배다.. 롱손사원에서 뒤집어 쓰고 운전사한테까지 10000동 사기 당하다니..

 그렇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지금의 패배가 나의 여행에 있어서 100배 이상의 교훈으로 남을 것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 1년전 리허설격으로 연합군은 프랑스 해안에 영국군과 캐나다군을 무모하게 투입했었다. 그때 투입된 1만명의 병사는 거의 전멸을 했다.

 하지만 그당시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아이젠하워는 '이때 죽은 한명의 병사는 다음 대규모 상륙작전때 10명을 살려낼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했다.

 실패 그 자체를 가지고 자절하기 보다는 앞으로의 인생의 밑거름으로 삼았으면 하는게 더 나은 삶을 지향하는 것이다.

 음.. 35000동(2800원) 손해 본 걸로 이렇게 멋진 생각이 떠오르다니.. 하늘이 오늘 나에게 준 생일 선물인듯 싶다.

 나트랑 해변.. 90년대 초 우리나라 TV에서 베트남전쟁을 소재로 '머나먼 송바강'이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제작 되었다.

 주인공이 전쟁에 지쳐 해변에 누워있자 저 멀리서부터 가까워지는 아름다운 베트남 여인.. 파도는 너울 거리고 해변의 모든 공간이 그들만을 위한 영상으로 꾸며진다..

 나한테는 그런 행운이 안 올까? 잠시 야자나무에 기대어 감상에 젖고 있는데 갑자기 바로 앞에 여인들이 나타났다.. 그것도 둘씩이나..

 휴.. 아직 초등학교도 안 갔을 법한 꼬마여자애 2명이 껌 팔아 달라며 접근한 것이다. 에잇.. 그런 허상을 바란 내가 잘못이지.. 하긴.. 꼬마들도 여자이긴 여자지..

 그들에게 월드컵 배찌를 주었다. 정말 좋아한다. 그런데 여행기를 정리하는 내내 1시간 반동안 내 옆에서 멤돌며 자기네들끼리 웃으면서 놀고 있다.

 저녁이 되자 밥을 먹고 호이안으로 향하는 차를 탔다.. 저녁 6시에 출발하면 내일 아침 6시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떠나기 직전 나의 생일 축하 노래를 들었다. 버스 바로 옆에 서있는 경적 소리가 'Happy birthday to you'음악이다.. 이것도 하늘에서 날 축하해 준 것일까?

 이상하게 생긴 츄츄라는 이름의 과일

 나트랑에 도착했을 때 아름다운 무지개가 보였다.

 나트랑 앞바다.. 바다가 정말 아름답다.

 배위에서 바라본 선착장의 모습

이날 투어에서 친해진 트랑과 함께

 아름다운 바다의 유혹에 팬티만 입고 뛰어들었다.

 아름다운 바다를 배경으로..

 아름답다는 말밖에.. 전형적인 열대의 항구

 배위에서의 식사.. 입맛에도 잘 맞았다.

 튜브와 포도주 사진을 찍고 나역시 바다에 뛰어들었다.

 사이공에서 학교를 다니는 여고생과 함께

 3번째 섬은 입장료를 내야 했다..

 아름다운 해변.. 낭만이 깃들어 있다.

 배위에서의 간식.. 처음 보는 과일들이 많았다.

 나트랑 해변에서 볼 수 있는 열대 나무들

 베트남에서도 한국드라마를 볼 수 있다. 김소연의 모습

 거대 불상에서 한 컷~

 상업적으로 물들어진 롱손 사원의 모습

 포가나르 사원 안에 있는 1000년된 불탑

 천진난만한 미소의 껌팔이 소녀

 

 베트남 여행기 4(6.20~21) 역사의 도시 후에

  6월 20일(금)

 오랫만에 차안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어제 저녁 6시에 출발한 버스는 호이안을 향해 느릿느릿하게 가고 있었다.

여태까지 나름대로 최악이었던 버스를 타봤지만 이번것은 많은 인내력을 요하는 버스였다.

 처음 탈때는 밤새도록 달리는 버스라서 호텔비도 안내고 밤을 지샌다는 생각에 기뻐했지만.. 접혀지지 않는 의자와 의자막이는 편안하게 자는것을 거부했고.. 결국.. 거의 안자서 선잠을 잔채 밤을 새야 됬다.

 바로 뒷자리에는 베트남와서 처음 마주친 일본인 부부가 있었다.

 이번에는 먼저 아는척하기 보다는 일본인들이 먼저 말을 걸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보기로 했다. 어짜피 내 복장이야 태극기가 그려진 빨간티셔츠 이므로 한국인인것을 티내고 다녔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국 도착할때까지 전혀 아는척을 안한다.. 좀 서운했지만 그런 막연한 기대를 가진것도 잘못이었다.

 버스는 20일 오전 7시경 한 호텔앞에서 섰다. 호인안에 대해서 아는것이라고는 론니 플래닛에 적혀있는 내용인데.. 솔직히 별로 볼게 없는거 같았다.

 운좋게도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한국인 가족을 만났다. 부부와 어린 아이들 2명.. 총 4명의 가족이 한달동안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를 여행중이라고 한다.

 정말 대단한 가족이다. 특히 초등학교 3학년애는 1달동안 수업을 빠진채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진정한 교육을 시키기 위해서 여행을 같이 하고 있다고 한다. 참.. 용기있는 결정이다.

 한국인 가족에게 물어보니 호이안에서는 볼게 없다고 한다.. 피곤한 몸이라 쉬고 싶었지만 한국인 가족을 따라 곧바로 5시간 걸리는 후에로 향했다.

 4가족중에서 가장인 아저씨는 사업가로서 일본에서 7년동안 유학생활을 하셨다고 한다. 사업을 잠시 쉬고 여행을 다닌다니신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아이들과 같이 다니다보니 신경쓸게 이만저만인게 아니다.

 그래도 일본인과 일본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겉과 속이 다른 일본인.. 세계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 사람만이 일본인을 무시하고 있지만 사실 그들의 민족성과 잠재력은 우리가 경계해야 할정도라고 한다.. 맞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봤을때 뼈아픈 역사속의 교훈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사모님과 아이들과도 금방 친해졌다. 이국땅에서 만나는 한국인은 금방 터울없이 지낼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역시 아침, 점심도 얻어먹었다..^^(이게 키 포인트)

 후에로 향하는 버스는 중간에 휴게소에 섰다. 휴게소 바로 위에는 미군이 쓰던 벙커들이 있었다.. 평화로운 베트남에 아직도 전쟁의 흔적을 느낄 수가 있었다.

 오후 1시쯤에 후에에 도착을 했다. 원래 도착하자마자 싼숙소를 잡지만 아저씨가 보태주셔서 에어컨이 딸린 호텔을 잡았다.. 나 답지 않게 5달러나 쓰면서..

 어제 저녁 6시부터 강행군한 몸이기에 잠이 몰려왔다.. 일단 샤워를 하고 잤다.

 오후 6시쯤에 아저씨께서 날 깨우셨다. 저녁먹으로 가자고 하신 것이다.

 호텔 바로앞에는 신카페가 있고 바로 옆에 만다린이라는 식당이 있다. 여기는 값도 저렴했고 음식도 매우 맞있었다. 맥주도 걸치면서 아저씨와 사모님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대개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평소와는 다른 이야기들을 한다. 우리나라에 살면서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 정치적인것과 경제적인것.. 특히 한국의 위상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한다.

 나도 그렇고 대부분의 한국 여행자들이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에 대한 위상이 참으로 커졌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우리가 작게 보이지만 베트남의 곳곳에 있는 한국기업 간판과 많은 한국산 차들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곳 사람들을 만나면 한국은 잘 사는 나라라고 하면서 특히 젊은이들은 한국을 동경하고 있는것을 느꼈다.. 우리가 예전에 미국을 동경했던 것 처럼..

 맥주한잔 걸치고 아저씨와 사모님이랑 헤어졌다. 밀린 여행기를 정리하기 위해서 인터넷방을 찾으러 다녔다.. 어? 근데 한국인은 듯한 사람 2사람이.. 반갑게 다가가서 말을 거니 역시 한국인이었다.

 하노이에서 근무하시는 50대 여성분과 그의 조카인 나보다 1살 어린 여자애였다.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밤 11시에 만나서 맥주한잔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인터넷 방에서 여행기 정리를 마치고 11시에 만다린 식당앞으로 갔다.

 하루에 2탕 뛰는것은 처음인데.. 역시 맥주를 얻어마시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새벽이 되어서 좀 취한채로 호텔에 들어왔다. 낮에 잠을 많이 자서 좀 걱정이 되었는데 술취한 덕분에 금새 잠들 수 있었다.

 6월 21일(토)

 그저께는 내 생일이었다면 오늘은 하나밖에 없는 동생 생일이다.. 챙겨주지도 못한채 그저 이국땅에서 마음만 축하할 뿐이다.

 오늘의 미션은 후에시 돌아다니기..

 일단 지나가던 씨클로(자전거 형태의 택시)를 잡았다. 원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구엔왕궁을 제일 처음 갈려고 했는데.. 씨클로 운전사의 권유로 베트남에서 가장 유명한 탑중에 하나인 푸옥두엔 탑이 있는 티엔무 사원으로 향했다.

 티엔무 사원은 후에에서도 4킬로 떨어져 있어서 오토바이를 타고 가야 했지만 시클로 운전사의 애원하는듯한 설득으로 그냥 시클로를 타고 갔다. 요금은 오고 가는데 30000동.. 오토바이이면 오히려 10000동이면 충분한데.. 힘든 시클로를 운전하느라 고생하는 운전사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었다.

 역시 거리가 되다 보니 오랜 시간을 가야했다. 뒤에서 시클로 페달을 밟는 운전사의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티엔무 사원에 도착했다.. 명소 답지 않게 요금은 공짜.. 몇몇 외국인 관광객도 보인다.. 사원 바로앞에는 푸옥두엔 탑이 보인다.. 21미터 높이이고 8각형 형태의 7층 탑이다.. 어떻게 이런게 아름다운 탑을 만들수 있었으며.. 이렇게 완전하게 보존을 했을까? 처음 베트남에 왔을때는 문화적으로 약간 떨어진다고 봤었는데 우리와 다를게 하나도 없었다. 역시 우월감을 가지고 여행하는것 보다는 그 문화를 이해할려는 노력이 수반 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교훈을 얻은채 시클로를 타고 구엔왕궁으로 향했다.

 구엔왕궁에 도착해서 수고한 시클로 운전사에게 30000동(2400원)을 주었다.. 그렇지만 역시 이 사람도 배신을 때린다.. 5000동을 더 달라는 것이다.

 아.. 착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난 내가 오토바이를 타지 않고 시클로를 탄것은 너를 생각해서 탔고 만약에 오토바이를 탔으면 15000동이면 충분한거 알고 있고 너의 시클로를 탄것은 나의 실수다. 라고 말하고 그냥 무시하고 갔다.

 시클로 운전사도 내말에 찔리는게 있는지 이내 포기하고 돌아간다.

 구엔왕궁의 입장료는 55000동.. 어마어마한 요금이지만 세계 문화 유산이라는데..

 요금을 내고 가니 정면에는 아름다운 궁전이 있었다.. 그렇지만 감격도 잠깐.. 몇몇 건물을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폐허로 방치되어 있었다.

 1805년 만들어진 구엔왕궁은 6미터 높이의 성벽이 10킬로나 되었고 중국의 자금성을 모델로 프랑스식으로 건축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부분이 파괴되어 있었다.. 이게 무슨 문화유산이야?

 한가지 특이한점은 성문 2층에 예전에 우리나라의 신문고 역할을 했던 북이 있다는 것이다. 생긴것도 우리나라의 신문고랑 비슷하게 생겼다. 최소한 이곳에 있었던 왕조는 일방적인 독재가 아닌 민본주의의 정치를 했다는것을 짐작 했다.

 구엔 왕궁에서 나오자 오후2시.. 너무 더웠다. 이럴때 가장 좋은 곳이 피시방..

 느린 피시와 씨름하면서 끙끙대고 있는데 바로 옆에 매력적인 서양여자가 앉았다.. 와 진짜 이쁘다.. 무슨 영화배우 같았다.

 갑자기 천둥이 치고 비가 오더니 피시가 꺼진다.. 그 이후로 인터넷이 잘 안된다.

 주인한테 이야기 해서 복구 시키고 있을동안 서양여자한테 말을 걸었다. 그녀의 이름은 미미라고 한다. 덴마크인이고 방콕에서 사업을 한다고 한다.

 난 웃으면서 정말 이쁘다고 하니.. 고맙다고 한다.

 내가 덴마크와 스웨던의 차이를 묻자 덴마크에서는 맨끝에 센이라는 이름이 많고 스웨덴이나 노르웨이는 손이 많다는 것이다. 센과 손은 같은 뜻이지만 불리는 것은 다르다고 한다.. 오호.. 새로운 사실 접수.. 그래 서 덴마크에서는 안데르센이 스웨덴에서는 안데르손이 되는구나..

 미미 입센에게 독일에 대해서도 들었다. 독일은 예전에 두번의 세계대전을 일으켜서 지금도 모든 유럽인들이 않좋게 생각한다고 한다.

 독일 여행자들을 만날때마다 유난히 친절하던게 생각난다.. 항상 전쟁 범죄딱지를 달고 다니는 독일인들.. 일본과의 차이점을 상기 시켜 본다.

 오후 5시가 되자 배가 고팠다.. 어제 갔던 만다린 식당에 가니.. 또 다른 한국인이 있었다. 두 여자였는데 한명은 동갑이고 한사람은 32살이다.. 둘다 여행중이라고 한다.

 덕분에 또 맥주를 얻어 먹었다. 불과 24시간 안에 3팀의 한국인한테 맥주를 얻어 먹다니.. 베트남에서는 결코 흔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여행은 특히나 한국 여행자들한테 많이 얻어먹고 다닌다.. 이국땅이라 다들 반가워서 그런가? 아님 나의 인상이 좋은건가? 어째튼 내 돈주고 밥사먹는것 보다는 얻어먹는게 더 많다..

 오후 6시에 하노이로 가는 버스를 탔다.

 사이공에서 나트랑으로 가는 길.. 아름다운 바다다

 베트남 전쟁때 미군 관측소.. 주변이 아름답다.

 고개 정상에 있는 작은 성

티엔무 사원에 있는 푸옥두엔 탑

티엔무사원의 전경.. 푸옥두엔 탑이 뒤에 보인다.

 포신이 12m나 되는 거대한 대포

 세계문화 유산인 구엔왕궁 입구

 왕이 살던 걸물.. 외관은 화려하다

 구엔왕궁안은 이처럼 폐허가 된곳이 많다.

 복구되지 않는 다리를 보며 문화재 관리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신문고 역할을 한 북.. 가운데 태극마크가 있다.

 성문.. 현대화된 지금에도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베트남 여행기 5(6.22) 북베트남의 중심지 하노이

 6월 22일(일)

 오후 12시가 넘고 22일이 시작되었을 때 훙에서 하노이로 가는 버스를 타는 중이었다.

 처음 호치민~나트릉, 나트랑~호이안... 가면 갈수록 더 힘든 버스 여행이었다. 후에~하노이 구간도 시간대는 나트랑~호이안 버스와 비슷한 시간이었지만 문제는 버스에서의 환경이었다.

 탈 때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같은 요금을 내고도 여태까지 함께한 이숭용씨 가족들과는 다른 버스를 타야 했고 더군다나 내가 탄 버스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한 2시간정도 가더니 버스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고 다시 30분 있다가는 기어코 버스가 멈추고야 말았다. 버스의 생산지는 Made in korea...

 베트남인들과 서양 여행자들 틈에 끼어서 버스에서 내렸다. 베트남어는 아예 모르고 서양애들은 자기들 일행끼리 놀고... 동양 사람들은 아예 안보이고.. 아.. 이럴때 외톨이라는 단어를 쓰는구나..

 할일 없이 그저 버스 고치는거나 구경하고 있을 때 갑자기 '헤이 찬슈~'라는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아까 인터넷 카페에서 친해진 매력적인 덴마크 여인 미미입센이었다.

 오호.. 이런데서 다시 만나다니.. 근데 미미는 7달러 짜리 버스표를 끊었고 난 9달러짜리를 끊었는데 같은 버스야?

 불쾌감이 나의 뇌리를 강타하기 직전 미미 바로 옆의 여인이 상냥하게 인사를 한다. 아.. 아까 미미가 말한 동행하는 미국 여인이구나^^

 그녀는 이미 미미에게 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는지 친숙하게 다가왔다. 음.. 이렇게 친숙하게 다가 올 때 한국식 유머를 한번 써먹어 볼까?

 미미 친구(아쉽게도 결국 이름을 물어보지 못함..ㅡ.ㅡ)에게 'very beautiful!'이라고 이야기 했다. 그녀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한다. 그때 나의 한마디.. 'your cloth(너의 옷)'ㅋㅋ

 그녀는 갑자기 어리둥절 하더니 뜻을 이해하는 듯 갑자기 크게 웃는다. 이 유머는 유치개그의 일종으로서 한국에서 사용시 왕따 당할 위험이 농후한 유머다.

 이럴수가.. 미국인한테 통하다니!

 대화를 하는 도중 이쁜 강아지가 지나가길래 미국여인은 정말 귀엽지 않냐고 물어본다. 'yes i like dog' 라고 말하고 잠시 뜸을 들인뒤 'i like hotdog'ㅋㅋ

 이 글을 읽는 95%의 독자가 분명히 눈쌀을 지푸렸을 것이다. 그러니 미국인에게 효과는 만점.. 그녀는 크게 웃으면서 옆의 미미에게 재미있다는 식으로 이야기 했다.

 그녀와 난 급속도로 가까워짐을 느꼈다.

 '이름이 머니?, 몇살이야? 한국에서 머하니? 미얀하지만 학교에서는 머 배워?, 어디어디 여행하니?..' 수많은 속사포 같은 질문에 대답하느라 쩔쩔매고 있을 때.. '너 여자친구 있니?'.. 엥? 혹시 나한테 작업 들어간거야? 오호.. 한국 남자의 특유의 도끼병(모든 여자들이 자기를 찍는 걸로 착각하는 병)에 걸린 채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캘리포니아주에 살고 방콕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에는 3주동안 여행을 한다고 한다.

 내 영어가 많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웬만큼의 대화가 되었다.

 한국에서 학원을 다니는 것 보다 이렇게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네이티브스피커들한테 직접 영어를 배울 수 있다. 단지 외국인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2시간뒤에 차가 고쳐졌다. 우리 일행은 황급히 버스에 탔다.

 아.. 최악의 버스.. 의자 간격이 좁아서 다리를 제대로 필 수가 없는 상태이고.. 꽉 찬 버스에서 많은 사람들이 36.5도의 난로가 되어서 열기를 뿜고 있었다.

 그래도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잠은 들었다.

 일어나니 여전히 버스안이다. 밖에는 오토바이의 숫자가 점점 늘고 있었고 비도 내리고 있었다. 비가 내리면 좀 시원해야 할텐데 오히려 습기가 차서 더 최악의 버스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 이것도 경험이야.. 머.. 좋게 생각하지..

 8시가 다 되어서 하노이에 도착했다. 큰 버스는 터미널에 간다며 나를 비롯한 외국 여행자들을 시 외곽에 내려 놓았다. 우리는 준비된 미니버스를 타고 하노이 시내로 갔다.

 신카페 앞에서 내렸다. 비도 오고 호텔을 잡느라 경황이 없었던 터라 미미랑 미국친구에서 인사를 못했다.. 아.. 이메일 교환하기로 했는데..

 삐끼의 안내로 간 호텔은 Ahn-shin2 호텔이라는 곳이다. 이곳에서 4달러에 방을 잡고 내일 하롱베이투어를 예약을 했다.

 오전에는 하노이 시내를 구경하기로 결정했다. 원래 투어를 이용할려고 했지만 이미 투어들은 출발한 상태라 그냥 혼자서 시내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어느 도시든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 바로 역사 박물관이다. 하노이의 지리는 아예 모르기 때문에 오토바이를 이용했다. 역시.. 외국인이라 2만동(1600원)을 부른다. 돌아서니 이내 1만동.. 걸어가자 나보고 말하라고 하면서 자꾸 쫏아 온다. 그 즉시 5000동을 불렀다.. ㅋㅋ 하노이 시내에서는 모든 오토바이에게 이 방법을 썼다.

 하노이 역사 박물관은 생각보다 규모도 컸고 많은 유물들이 있었다. 특히 입장권을 사면서 나누어 주는 영어로 된 안내서는 유물을 이해하고 베트남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베트남 역사도 우리나라의 역사와 비슷하다. 중국의 영향을 많이 많이 받았지만 계속되는 중국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역사의 연속이었다.

 또한 불교 문화가 매우 발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중국과는 달리 불상의 약식이 우리나라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베트남의 고대, 중세사를 알기 위해서 역사 박물관에 갔다면 프랑스 식민지 이후의 역사를 알려면 바로 옆에 위치한 혁명 박물관에 가면 된다.

 베트남의 웬만한 도시에는 혁명 박물관이 있지만 역시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에는 외국인도 쉽게 알 수 있게 체계적으로 잘 전시되어 있었다.

 혁명박물관을 다녀오고 나서의 느낌은.. 한마디로 베트남 민족이 존경스럽다는 것이다. 일부 한국 여행자들이 잘 산다는 이유만으로 베트남에서 추태를 보이는 경우가 있는데.. 베트남 민족은 우리가 이루지 못했던 자주독립과 자주통일을 이룩한 민족이다.

 때문에 이곳 사람들의 자부심은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솔직히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자주독립과 통일은 공짜로 던져지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의 희생을 요구하게 되고 결국 민족성이 강하고 단결력이 강한 민족이 그것을 쟁취하는 것이다.

 중국~프랑스~일본~미국으로 이어지는 많은 외세들의 침략을 받았지만 결국 그들은 이겨냈다. 그렇지만 그에 따른 희생은 너무나 컸고, 아직까지도 베트남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혁명박물관에서는 오래 머물렀다. 물론 그들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도 그랬지만 바깥의 더운 날씨가 나로 하여금 박물관 안의 에어컨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었다.

 다음 코스는 호치민의 유체가 안치된 호치민 공원으로 갔다. 베트남에서 신과 같이 추앙을 받는 호치민의 모습과 그의 생을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을 잘못 맞춰갔다. 호치민의 유해가 안치된 건물에는 오전 8시에서 11시까지만 개방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호치민 박물관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렇지만 1시반까지 점심시간.. 어쩔 수 없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보는 수 밖에..

 가까운 사원을 들렸다가 날씨도 덥고 어제 최악의 버스를 탄 나머지 몸이 너무 피곤한걸 느꼈다. 일단 호텔로 돌아가서 쉬기로 했다.

 그전에 사원에서 가까운 한국대사관을 찾아갔다. 론니 플레닛에 나와 있는 지도를 따라 한국대사관을 찾았다. 그런데 국기도 걸려있지 않고 정문은 잠겨 있다.. 잘못 나와 있었던 건가? 아하.. 오늘 일요일이지.. 휴.. 음료수나 얻어먹을려고 했는데..

 그런데 반대편에 낯익은 국기가 보였다. 가까기 가서 확인해 보니 북한 인공기.. 오호 말로만 듣던 북한대사관이네.. 예전에 북한 대사관에서 남한 사람을 납치해간 전례가 있다고 했지만 그전에 호기심이 발동했다.

 북한 대사관 앞에는 무장경비원이 서 있었고 바로 옆 게시판에는 김일성 사진과 체제선전을 하는 벽보가 붙어 있었다. 이곳 역시 일요일이라 문을 닫았다.

 하노이 같이 복잡한 도시에서는 호텔의 약도가 그려진 명함을 오토바이 기사들에게 보여주면 알아서 찾아가준다. 한 오토바이맨 한테 가서 명함을 보여주니 아는 장소라고 한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3달러를 달라고 한다. 훗.. 45000동.. 여태까지 베트남에 있으면서 오토바이 맨한테 불려진최고로 높은 가격으로 기억된다.

 아까 설명한 방법을 되풀이해서 5000동에 갔다.

 호텔에 도착하자 4시.. 일단 쓰러지듯 잤다.

 한참 자다가 일어나서 노트북에 있는 게임을 했다. 배가 출출해서 어제 후에에서 만났던 미영이와 누나 일행에게 핸드폰 전화를 했다.

 전화는 누나가 받았다. 주소를 받고 곧바로 누나 호텔로 돌진..

 그런데 누나와 미영이는 많이 피곤하나 보다.. 한숨도 못잤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 셋은 바로 옆 재즈바에 가서 밥과 맥주를 먹기로 했다.

 재즈바에는 전부 서양 여행객들만 있었다. 라이브로 연주되는 재즈 음악을 들으며.. 분위기에 취하는.. 아 이것도 여행의 재미구나.. 이렇게 재즈를 듣는것도 즐겁지만 여행을 오면 외국인들이 하는 특권을 나도 같이 누릴 수 있다는 즐거움도 찾았다.

 누나와 미양이가 너무 피곤한 나무지 금방 재즈카페를 떴다.

 천천히 하노이 시내를 걸었다. 사이공과는 좀 다른 분위기로 오토바이맨들도 덜 극성이고.. 사이공 보다는 좀 차분하다고 해야 하나? 궂이 사이공과 비교하자면 사이공은 발랄한 여대생이면 하노이는 참한 여대생으로 보인다.(아무튼 난 여대생을 무지 좋아하나 보다..)

 어렸을때 미국에서 만들어진 베트남 전쟁영화를 보면서 하노이 하면 웬지 악의 소굴이고 무서운곳인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 어느곳보다도 정감이 가고 사람사는 냄새가 물신 풍기는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나 혼자 하노이 시내 돌아보기 미션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하노이 역사 박물관. 구석기 시대부터 시작해서 베트남의 전반적인 역사를 알 수 있었다.

 호치민 박물관. 점심시간이라 못 들어가고 바로 앞에서 환타와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호치민 묘소. 세계에서 5개(북한,러시아,중국,베트남, 불가리아) 있는 유체보존 묘이다.

하노이시내의 한 사원. 풍취가 느껴진다.

 사원안의 정원. 쾌적한 분위기이다.

 재즈카페에서.. 여행의 낭만을 흠뻑 즐겼다.

 

 베트남 여행기 6(6.23~24) 바다위의 계림 하롱베이

 6월 23일(월)

 원래 오전 7시에 출발하는 하롱베이행 버스는 8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을 했다. 신카페 버스로 가는 길에 캐나다 여행자와 친해져서 같이 이야기를 하며 버스까지 걸어갔다.

 앗.. 버스에 타니 후에~하노이가는 버스에서 잠시 헤어졌던 이숭용씨 가족이 있는게 아닌다.

 하긴 어짜피 신카페 이용자들은 신카페 투어를 이용을 하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것이다.

 하롱베이로 가는 버스는 시원한 에어컨 버스였고 외국인뿐만 아니라 많은 베트남 관광객들도 눈에 띄었다.

 특히 베트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많았었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효도 관광을 가는듯한 인상이었다..

 우리나라처럼 효도관광을 출발하는 노인들의 표정은 설레임과 기대속에 어린애처럼 밝기만 하다.. 이렇게 보면 사람사는게 다 똑같은게 아닌가 싶다.

 5시간이 걸려서 하롱베이에 도착을 했다. 버스에 탄 일행은 버스에서 내려 여행사에서 제공해주는 점심을 먹었다.

 버스안에서 부터 내 뒷좌석에 앉은 이쁜 여자애가 궁굼했다. 혼자 여행온 모양인데.. 동양사람이구.. 혼자서 아무말도 없이 얌전히 앉아 있었다.

 점심을 먹을때 일부러 여자애 옆에 앉았다. 의자에 앉을때 곧은 자세로 앉는걸 보니 영락없는 일본 여자애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머지 말을 걸었다.

 일본 여자애는 22살에 혼자 여행중이고 이름은 유키라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고 레스토랑에서 계속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며 3개월 정도 시간을 내서 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계속 대화를 하면서 여자애가 마음에 들었다. 얼굴도 반반하고 대화를 할때 상냥하게 웃고.. 거기다 신비감까지 겸비했다.

 유키와 즐겁게 식사를 하고 일본통인 이숭용씨에게 소개시켜 주었다. 일본에서 7년간 유학을 가셨던 이숭용씨는 유키와 일본어로 대화를 한다.

 점심을 먹고 배를 타러 선착장에 갔다. 나와 유키사이에는 이숭용씨의 둘째 아들인 7살 신이가 나와 유키의 손을 잡고 있었다.

 신이는 장난으로 나와 유키의 손을 잡게 하면서 '둘이 결혼해!'라고 한다.. 겉으로는 나도 유키와 같이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신이가 너무나 대견했다.. 아.. 일본 여인네의 손이 어찌나 따뜻한지..

 언제나 활짝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는 유키에게 내가 거의 넘어갈려고 하기 직전.. 이숭용씨가..

 '찬수야 절대 일본사람들 웃는것에 넘어가면 안되.. 어렸을때 부터 친절이 몸에 베여 있어서 항상 웃으면서 이야기 하지만 속은 모른단다..'

 아.. 음.. 잠시 유키의 미모와 상냥함에 눈이 멀었던 나의 정신에 평정심이 찾아왔다.

 그 이후로는 유키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 역시.. 내가 먼저 유키에게 말을 걸어도 결코 유키가 나한테 말을 거는 법이 없었다.

 아무 표정없이 걸어가다 나와 마주치면 지어낸듯한 미소.. 역시 친절이 몸에 베인 민족이구나..

 유키는 하루코스이고 나와 이숭용씨 가족은 1박 2일 코스이므로 배를 탄 이후에는 만날 수 없었다.(헉.. 솔직히 아쉽다.. 이뻤는대..)

 배는 선착장에서 출발을 해서 바다를 쭉 달려갔다.

 하롱베이는 유네스코에서 자연유산으로 지정해 놓은 곳으로서 중국의 계림과 흡사하다고 해서 소계림이라고도 불린다. 바다 곳곳에 삐쭉 솟아 있는 바위들과 섬들.. 좀 많아서 질리는 감이 있지만 한번쯤 꼭 와봐야 할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배는 한 섬앞에서 잠시 멈추더니 특별히 2만동을 더 내면 작은 배를 타고 좁은 동굴로 들어가 절경을 볼수 있다고 가이드가 설명을 한다.

 머..온김에.. 작은 배를 타고 동굴로 들어가니 잠시간의 어둠을 지나 사방이 병풍처럼 된 절경들이 나온다.. 와.. 여기가 신세계구나..

 롤플레잉 게임을 하다 보면 사방이 바다로 둘러져 쌓여 있고 섬 가운데도 역시 바다인 외딴 섬에서 마지막 보스와 싸우게 되는데... 꼭 거기에 온거 같다.

 나는 지금 인생공부와 추억이라는 아이템을 습득해 가면서 편견과 좁은 현실이라는 보스와 싸워나가는 배달 민족의 용자... 에구.. 그런데 공주는 어디 있는거야?

 하롱베이 일주는 오후 6시쯤이 되어서야 마쳤다. 우리일행은 카파 아일랜드에 내려서 호텔에서 숙소를 배정 받은 다음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저녁을 먹었다.

 난 아침부터 같이한 캐나다 여행자와 한 방을 썼는데 둘이 있기엔 괜찮은 방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영어가...

 이숭용씨 부부에게 '저 오늘 영어공부 열심히 하게 생겼네요'라고 살짝 웃으면서 방으로 갔다.

 밥을 먹고 나 홀로 카파 아일랜드 항구를 걷고 있었다. 원래 피시방에서 내 취미생활인 여행기를 올릴려고 했지만.. 여기는 1분에 400동(32원)으로 무자비하게 비싸다.

 다시 호텔로 가고 있는데 반대편에서 나와 함께 방을 쓰는 캐나다 여행자가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도 역시 혼자..

 우리 둘은 자연스럽게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맥주를 마시면서 서로 소개를 했다.

 캐나다 여행자의 이름은 에즈(ed)로서 나이는 32살이라고 한다. 캐나다에서 엔지니어를 하고 있으며 생각할 것들이 있어서 혼자서 여행을 왔다고 한다.

 대충 그의 이야기와 내 특유의 필살기인 눈치를 보니 사랑에는 한번 실패한거 같다.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했다. 비록 내가 영어가 짧지만 에즈가 많이 이해해줬다.

 맥주를 마시다 에즈에게 곤란한 질문을 했다. '에즈.. 많은 서양사람들은 동양사람보다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니?' 짧은 영어에 이해를 못한 에즈에게 남아공의 인종차별을 예로 들어주었다.

 에즈는 '너의 호텔 요금은 어떠니? 너의 소득수준은 어떠니?'라고 되 물은뒤 내가 대답해 주자 '거봐.. 우리나랑 비슷하잖아.. 캐나다에서는 한국은 잘사는 나라로 알고 있어. 예전에는 모르지만 요즘에 여행하는 서양인은 백인 우월의식을 가지고 여행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 짖궂은 질문을 해서 좀 미얀했다..

 '넌 미국을 어떻게 생각하니?' 에즈의 질문이 이어졌다.. 아.. 깜짝 놀랬다.. 어떻게 생각해야 하나.. 미국과 캐나다는 완전한 이웃 아닌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곤란해 하고 있을때 에즈는

 '난 미국정부가 정말 싫어.. 그들은 자국의 이익이 되면 무슨짓이든 다하는 나라야'

 난 되물었다. '그렇지만 캐나다와 미국은 밀접하지 않니?'

 '그렇지 지금 캐나다와 미국은 무역, 사회 여러 모든 면에서 밀접하지.. 그래서 캐나다 사람들은 미국을 싫어한단다. 미국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니까.. 그렇지만 미국사람들은 정말 친절하고 친밀해.. 내가 싫어하는건 미국정부야.'

 난 '그래. 정말로 미국이 자유를 사랑한다면 이라크 전쟁이전에 이스라엘 군인이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죽이는걸 막아야 겠지.. 그들이 좋아하는건 돈과 석유야.' 에즈는 내말에 동의를 했다.

 에즈 역시 나처럼 한국인들의 미국에 대한 생각이 잘못되어 있어서 작년에 우리나라를 달구웠던 여중생 사망사건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래.. 난 캐나다 사람들은 무조건 미국을 좋아하는줄 알았다.. 역시 편견이다. 세상에는 편견으로 가득차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 역시 거기서 빠져 나올려면 앞으로 많은 사람들을 더 접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에즈는 9월쯤에 한국에 방문한다고 한다. 내가 한국에 대해서 열변을 토했던게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나.. 우리는 서로의 전화번호와 이 메일 주소를 교환한뒤 잠들었다.

 카파아일랜드에서 해변을 바라 보며 너울대는 파도와 살살 부는 바람을 맞으며 시원한 맥주를 걸치며 나눈 서양인과의 진솔한 대화.. 하루종일 내몸을 달구웠던 몸은 식힐 수 있었지만 여행에 대한 열정은 더욱 불타 올랐다.

 6월 24일(화)

 카파아일랜드에서 하룻밤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바로 선착장으로 떠났다. 어제 대화한 에즈는 2박 3일 코스라서 이 섬에 더 머물게 된다고 했다.  

 에즈와 난 포옹을 하고, 다시 만날것을 기약했다. 그 역시 동양인과 진솔한 대화를 했다고 기억하겠지.

 배는 어제의 길을 되집어 돌아갔다. 배를 타면서 이숭용씨에게 일본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수 있었다.

 이웃이지만 결코 다른 일본과 우리.. 한번 일본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공부해 보고 싶었다.

 저번에는 영어 연수를 간다고 했는데.. 여행은 나에게 만족을 준다기 보다는 계속해서 불만족을 제공해 주는것 같다. 더더욱 배워보고 싶은게 많아지니.. 이게 세상을 넓게 보여지는 것일까?

 중간쯤에 한번 멈춰서 승객들에게 더운 몸을 식히도록 수영을 하게 했다. 나 역시 팬티만 입고 2층 배에서 다이빙을 하고 재미있게 놀았다. 그런데 다이빙을 하는 순간 목이 잠깐 꺽어 목이 계속 아팠다.

 다시배는 출발하고..

 배는 처음 배를 탔던 선착장에 도착했다.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먹고 하노이로 향하는 차를 탔다.

 차를 타면서 풍경을 관찰하면 한가지 특이한게 있다. 베트남의 집은 시골이나 농촌이나 폭이 똑같다는 것이다. 길이와 높이는 제각각 다른데 도로를 기준으로 폭을 따지면 어떠한 집이나 똑 같다는 것이다. 또한 골목과 공터가 있어도 정해진 폭을 넘지 않고 다음 집을 지을것을 예상했는지 골목과 공터 역시 같은 폭으로 구조 되어 있다. 또한 아무리 호화스러운 집이라도 옆면에는 페인트칠을 하지 않는다.

 무슨 장난감 나라도 아니고.. 헌법으로 규정되었나.. 베트남 여행을 하면서 가지게 된 미스테리중에 하나이다.

 하롱베이에서 하노이로 가는 길은 공단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다. 역동적인 베트남의 경제 활동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가끔 우리나라 공장이 나오면 가슴이 뿌듯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하노이에 도착하고 저녁 7시 라오스 비엔티안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전에 샤워를 하고 짐을 꾸리고 있었다.

 그와중에서도 호텔 프런트에서 인도인과 친해졌다. 만난지 30분도 안되 인도에 오면 꼭 자기 집으로 오라며 명함에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줬다.

 비결은 하나.. 인도의 국내정세를 물었고, 간디와 호치민을 둘다 치켜 세워줬기 때문이다.

 특히 독립 문제를 묻자 그는 무려 5분동안 열변을 토한다.. 원래 인도, 파키스탄, 부탄, 미얀마가 한나라 였다고 한다.. 미얀마까지였나? 역시 새로 알게된 사실.. 일단 접수..

 인도인을 비롯해서 친해진 호텔직원들과 작년 월드컵 이야기를 했다. 베트남을 비롯해서 인도 역시 우리나라를 열렬히 응원하고 아시아를 대표해서 잘 싸워 주웠다며 고마워 했다... 나로 하여금 이렇게 뿌듯함을 느끼게 할때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감사를 느낀다.

 정들었던 호텔 직원과 기념 촬영을 하고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이숭용씨 가족과 함께,..

 베트남 여행은 이로서 끝났다. 비록 11일간의 짧은 여행이지만 많은 사람들과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베트남에 대해서 조그이나마 알게 된게 큰 결실로 다가왔다.

 

 초등학교에 장기 결석을 한채 여행을 하는 아이들..

 

 아이들과 귀여운 일본인 유키와 함께..

 

 유키와 나.. 기분 좋았다~

 

 베트남의 소계림으로 유명한 하롱베이 입구

 

 배위에서 이승용씨와 나..

 

 하롱베이의 봉우리.

 

 동굴의 전경.. 그 어느곳보다 웅장했다.

 

배와 하롱베이를 배경으로

 

 기암 괴석들이 즐비하다.

 

 아름다운 전경.. 기암괴석이 가지각색이다.

 

 기암괴석 가운데 구멍이 뚫려있다.

 

 작은 나룻배 위에서 멋진 포즈^^

 

 이곳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날씨가 무척 더운 관계로 배위에서 뛰어내려 수영을 했다.

 

 하노이에서 정든 호텔보이와 함께..

 

 애국심이 투철한 인도인과 함께

 

 베트남 여행기 마지막편 (베트남을 떠나며..)

 불과 며칠 안되는 베트남이었지만 역동적인 베트남 사회를 잠시나마 볼 수 있었다.
솔직히 평소에 베트남하면 우리보다는 조금 떨어진 나라.. 우리가 도와주어야 할 나라라는 우월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결코 가지지 못한 자주 독립과 자주통일을 이룩한 나라이고 민족이다. 그러한 민족이기에 그들이 가진 저력은 그야말로 굉장하다고 표현할 수 있다.

 베트남 현지 교민과 외국인들.. 또 내 스스로가 본 베트남은 선진국으로서 갖추어야 될 거의 모든 요건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베트남은 많은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 이유때문에 강대국으로 부터 많은 핍박을 받았지만 지금은 기회로서 활용을 할 수 있다. 아직도 개발되지 않은 무궁무진한 자원들이 개발을 기다리고 있고, 풍부한 석유자원은 그들이 개발 도상국.. 나아가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힘찬 에너지가 될 것이다.

 둘째. 그들의 강인한 민족성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역경을 이겨내고 쟁취한 그들의 민족성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다. 다른나라와 달리 공산 통일 이후에는 같은 민족을 이념적인 이유로 살해하지 않았다. 통일된 민족 의식은 그들에게 동기부여만 된다면 기꺼이 경제발전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셋째. 지리적인 이점이다. 3000킬로가 넘는 해안과 많은 관광 자원.. 중국, 태국, 동남아, 일본 나아가 인도와 호주까지 연결할 수 있는 천혜의 벨트를 베트남은 보유하고 있다. 그러한 개방된 루트는 외자를 유치하는데 좋은 요소로서 작용할 것이고 아시아의 중심으로서도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다.

 넷째. 주변국에서 무시못하는 군사력이다. 중국, 일본, 프랑스. 미국을 물리친 그들의 실전 경험과 안보 의식은 주변 나라들이(특히 중국) 감히 넘볼 수 없는 요소로서 자리잡고 있다. 중국과의 국경분쟁에서 승리하고, 메콩델타가 자기 땅이라며 쳐들어온 캄보디아의 폴포트를 간단히 요리한 베트남의 군사력.. 또한 군사력을 이용해서 다른나라를 넘보지 않는 그들의 절제된 안보 의식은 라오스. 캄보디아를 비롯한 주변 나라의 신뢰를 구축하고 주변의 정세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발전 할 수 있는 밑 거름이 될 것이다.

 다섯째. 교육열이다. 솔직히 이곳 베트남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영어를 더 잘하는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식민지 시대의 영향도 있지만 베트남 사람들 역시 교육열이 많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여섯째, 근면한 민족성.. 베트남을 다니면서 베트남인들은 항상 부지런하다는것을 보았다. 남방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을 지녔으면서도 일에는 게으름이 없는 베트남인들..

 이렇게 선진국이 될 수 있는 많은 요건을 갖췄지만 아직 베트남에는 부족한 사회 간접 자본, 높은 실업률등 많은 부정적인 요인이 있다.

 무엇보다도 베트남이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갖춰야될 요건중에 한가지 부족한게 있었다.

 쭉 지켜보면서 베트남은 아직도 호치민의 영향에 들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자주 독립과 통일을 이룩한 위대한 지도자 이고 현재까지도 베트남 인들을 하나로 만드는 역사적인 인물이기도 하지만 호치민은 독립과 통일 시대를 위해 적합한 인물이었다.

 시대에 따라서 적합한 지도자가 나타나야 된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의 박정희가 70년대 등장을 했고, 그의 지도력에 따라 우리나라는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다. 물론 민주정치를 희생하기는 했지만 경제발전을 이룩하는데는 적합한 지도자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에 지금 시대에 박정희가 등장한다면? 아마 지금의 우리나라 국민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호치민의 후광을 뛰어넘어 베트남을 발전으로 이룩하게 해줄 지도자..

 지금 베트남에는 국민을 통합시키고 비전을 제시해주고 목표에 힘차게 달려가게 해줄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으로 하여금 희망을 주고, 스스로 경제발전에 동참게 하는 그러한 지도자..

 그러한 지도자가 베트남에 나타난다면 베트남은 무서운 발전의 속도로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솔직히 아쉽다.. 많은 시간이 있었으면 베트남의 이모저모를 더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평소에 궁굼했던 베트남의 독립과 통일의 과정을 자세히 알 수 있었고 많은 사람과 만났던 베트남.. 이제 난 앞으로 베트남의 발전을 지켜보는 서포터로서 베트남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념에 잠기며.. 24일 오후 8시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찬수의 여행기 베트남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