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티벳 여행기여행기 1(7,29~8,5)고생과 환희가 교차하는 알리 가는 길

 7월 29일(화)

 어제밤 서부티벳으로 가기 앞서 장선생님과 티만사 식구들이 나를 위한 환송회를 해주었다. 이곳 라싸에서 받는 환송회란..

 모두들 취해서 잠들 무렵 나와 장선생님 단 둘이서 이야기를 하고 있을때 걱정 스러운 얼굴로 민구가 왔다.

 민구는 내가 서부티벳으로 떠날때 상걸이랑 동티벳으로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3살 연상인 여자친구가 많이 아파서 비행기를 타고 급히 한국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애인이 없는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결정이지만 민구의 표정은 너무나 진지했다.

 어쩔 수 없지.. 전날 환전을 해서 재현이랑 민구에게 1000위엔(15만원)씩 빌려줬는데, 또 없는 돈을 쪼개서 300달러를 민구한테 주었다.

 합쳐서 66만원이 다른사람한테 가고.. 이제 재정 상태에 빨간불이 켜지는 순간이다.

 밤새 걱정속에서 잠을 못이룬 민구가 새벽 6시에 날 깨워주었다.

 준비를 하고 7시에 시가체행 버스에 올라탔다. 시가체까지 30위엔이고 야크호텔 왼편으로 걸어가다 보면 시가체행 버스가 손님을 끌어모으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게 보일 것이다.

 오후 3시까지 버스를 탔다는거 외에는 별게 없었던 하루이다.

 시가체에서 텐지호텔(30위안)에 잤다. 4명짜리 도미토리였는데 여기서 에베레스트로 향하는 일본인 2명이랑 친해졌다. 그들은 알리로 간다는 나의 말에 꽤 놀란 표정이었다.

 침대에 누워 싸늘한 날씨에 이불을 목까지 올린채 많은 생각을 했다.

 과연 알리까지 갈 수 있을까.. 몸이 고생하는건 각오했지만 무엇보다 정보가 거의 없다는것이 불안하게 만들었다.

 쉽지 않지만 한번 해보는거다...

 내 주위를 감싸고 있는 행운의 여신을 믿어보기로 했다.

 7월 30일(수)

 새벽 내내 비가 내리고 있엇다.

 어제 많은 생각을 하느라 8시 50분에 일어났다. 이럴수가!! 라쯔까지 가는 버스는 9시에 출발한다는데..

 그냥 하루 여기서 더 묵어.. 아니다.. 시작부터 게으른 생각은 하기 싫었다. 부랴부랴 체크아웃을 하고 시가체의 제일의 사원인 타실훈포 사원앞으로 갔다.

 다행히 비때문에 손님이 별로 없는 관계로 라쯔행 버스(30위엔)가 출발을 못하고 있었다. 휴.. 다행이다. 하루 벌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라쯔행 버스에서도 라싸~시가체 구간과 마찬가지였다. 점점 건조해지는 티벳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고.. 오후까지 운행은 계속되었다.

 오후 3시쯤에 라쯔에 도착했다. 이제 공공교통 수단은 지금이 마지막이다.

 라쯔에서는 초대소(15위안)에서 잤다. 중국의 여느곳과 달리 이곳은 신분증 검사를 하지 않는다.

 불안한 마음은 마찬가지.. 그렇지만 알리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것은 분명했다.

 7월 31일(목)

 아침 7시 40분쯤에 일어나서 8시에 초대소를 나섰다. 오늘 작전은 라쯔에서 6킬로 떨어진 검문소를 일단 걸어서 넘고 그다음에 히치를 하는 것이다.

 라쯔를 벗어나자 마자 빈 트럭이 달리고 있는게 보였다. 손을 흔들어 차를 세웠다. 결과는 성공..

 장무, 알리 갈림길까지 어렵지 않게 갈 수 있었다.

 갈림길에서 잠시 망설였다. 그냥.. 어렵지 않게 네팔로 넘어갈까?

 아니다.. 이왕 온김에 알리는 가야지.. 갈림길에서의 유혹을 뿌리치고 무작정 걸었다.

 걷다 보니 다리가 하나 보이고.. 바로 건너편에 중국 오성기가 걸린 건물이 보였다.

 저기가 검문소 이구나.. 긴장하는 마음으로 검문소 앞으로 갔지만 아침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었다.

 역시~ 행운의 여신은 날 안버리는 구나.. 첫번째 검문소는 무사통과 했다.

 이제는 차를 잡아야 하는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간간히 지나가는 차들이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대신 티벳 마을에 다가가면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나한테 무엇(사탕이나 돈인듯)을 주라고 손을 벌린다.

 검문소를 통과하고 3시간쯤 걸었다. 차는 안잡히지.. 배는 고프지.. 일단 아침이나 먹기로 했다.

 시가체에서 산 신라면을 부셔먹고 있을때 웬 오토바이 한대가 지나갔다. 일단 저거라도 타야 한다는 생각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오토바이 운전자는 기꺼이 태워 주었다.

 오토바이는 불과 2킬로쯤 가다가 멈췄다. 자신들의 목적지까지 다 왔다는 것이다.

 다시 내려서 걸어갈려는 찰나.. 트럭이 지나가고.. 다시 히치..

 트럭에는 운전자와 운전자 아들인듯한 아이가 타고 있었는데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 몇방 찍어주고 보여주면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엇다.

 트럭은 라쯔에서 53킬로 떨어진 Kaga까지 건축재를 운반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어렵지 않게 Kaga까지 갈 수 있었다.

 트럭에서 내려서 근처 식당에서 류러우면(우육면)을 먹었다.

 14:00 다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어떻해든 히치를 해야 하는데 애절한 나의 마음에 아랑곳 하지 않고 지나가는 차들은 나를 무시하며 자기 갈길을 찾아서 지나갔다.

 그냥 계속 걸었다. 머 어떻게 되겠지.. 주변 풍경은 정말 장관이었지만 나에겐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폭우까지 내리고.. 덕분에 옷이 완전히 젖었다.

 5시간 정도를 걸었다. 간간히 비는 계속 오고.. 날씨는 점점 추워지면서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이제 어떻하나.. 일단 아무 민가나 들어가서 자기로 했다.

 그런데 민가가 보이지 않는다. 비는 계속 오고.. 젖은 상태에서 계속 걸었다.

 18:55 오늘 하루 25킬로 정도를 걸은거 같다. 본의 아니게 국토순례를 하게 되다니.. 점점 어둠이 깔리고...

 그때 트럭 한대가 지나갔다. 그래 저것을 꼭 잡아야되.. 이번 트럭의 운전자는 선한 생각의 소유자이기를 바라며 필사적으로 트럭을 잡았다.

 트럭은 잠시 내 앞을 지나가더니 서서히 멈췄다.

 우연히도 트럭의 목적지는 알리.. 신분증과 허가증이 있냐는 운전자의 말에 무조건 있다고 했다.(허가증은 무슨.. 중국정부에 돈 대줄일 있나)

 흥정은 좀 있다가 하기로 하고 쌍쌍까지 갔다.

 20:25분.. 트럭은 쌍쌍에 도착하고 모두가 내렸다. 운전자가 교대로 트럭을 운전하는게 아니라 한사람이 계속 운전하다 밤이 되면 초대소에서 쉰다.

 운전자와 2명의 동행자와 나.. 이렇게 4명은 쌍쌍이라는 외딴 마을에 묵게 되었다.

 마을의 규모가 워낙 작아서 식사할데가 없었다.

 운전자가 가져온 말린고기와 야크티에 보리가루를 넣어서 뭉친 이름모를 음식으로 요기를 했다.

 운전자에게 알리까지 며칠이나 걸리냐고 물어보니 5일이나 걸린다고 한다.

 그냥 내일 다른트럭을 타고 갈까? 그렇지만 또 다시 국토순례를 하기 싫었다.

 일단 이 트럭을 타고 북로를 통해서 알리로 가기로 결정을 하고 알리까지 350위엔에 합의를 봤다.

 어렵게 트럭을 잡는데 성공했지만 알리까지 5일.. 늦으면 6일.. 그냥 그기간에는 죽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8월 1일(금)

 8월의 첫날이다. 장마가 끝나고 모두가 낭만적인 바다와 계곡을 떠올리며 피서 계획을 세우고 있을때.. 난 추위에 부들부들 떨며 트럭에 몸을 맡긴채 새벽에 출발했다

 지금부터의 여행기는 트럭 여행을 하면서 간간히 메모해놓은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하도록 하겠다.

 라싸에서 알리까지 버스나 랜드쿠르져를 이용하면 3~4일이면 갈 수 있지만 불편한 트럭에 몸을 맡긴 나로서는 고행일 수 밖에 없었다.

 서쪽으로 향하면 향할수록 인구가 희박해지는것을 느낄 수 있었다.

 10:00 트럭은 협곡으로 들어갔다. 협곡의 풍경은 동티벳이 더 낳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0:40 협곡을 빠져 나온 트럭은 길가의 외딴 티벳 집앞에 멈추었다.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서.. 전날 보릿가루와 야크티, 말린고기를 먹은 나로서는 속이 안 좋아서 그냥 굶을려고 했다.

 그런데 집 안에 자그마한 글자로 한국식 라면이라고 쓰인 컵라면이 있는게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사이다와 같이 사 먹었다. (사이다 3위안, 라면 5위안)

 간이 휴게소인 이 집에서 티벳인들의 삶을 볼 수 있었다. 두꺼운 옷에 나무가 없어서 말린 야크똥으로 불을 지핀다.

 라면을 먹으면서 이렇게 그냥 고생을 하는건지 낭만적인 여행을 하는건지.. 생각을 해 보았다.

 지금이야 무척 힘들지만 여행이 끝나면 낭만으로 남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12:45 트럭이 산 고개의 정상에 다다를때쯤 전복된 트럭을 발견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동티벳과 마찬가지로 서티벳에서도 열악한 도로 여건으로 인해 사고가 많이 나는거 같다. 제발 내가 탄 트럭에게 불행이 닥치지 않기를 바랄수 밖에..

 14:30 라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황량한 라카는 몇몇 가게와 초등학교가 있을 뿐이다. 특히 초등학교는 이 근방의 유목민들의 자녀들이 여기에 유학을 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유학을 하는 유목민 자식들은 그나마 행복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유목민의 자녀들은 교육보다는 양이나 야크를 몰고 다니는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14:50 라카를 떠나고 얼마 안 지나서 알리로 향하는 남로와 북로의 갈림길이 나타났다. 운전자는 어디로 갈거냐고 물어본다.. 나의 첫 계획은 남로로 가는거지만 이왕 잡은 트럭을 타고 북로를 가기로 계획을 바꿨다.
북로도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겠지.. 사실 이런 합리화 보다 밖에 비바람이 내리고 낮인데도 불구하고 추운 이곳에서 내리기 싫어서 그냥 북로를 택했다는 편이 좀 더 정직 할 것이다.

 15:51 트럭은 북쪽으로 향하고.. 다시 협곡으로 들어갔다. 협곡에서 좀 올라가는 순간 멋진 노천 온천이 보이고.. 수증기가 몇미터 올라가고 곳곳에 온천수가 나오는게 보였다.

 그렇지만 난 차를 세워서 온천목욕을 하자고 할 정도로 여력이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저 디카로 풍경을 담는데만 만족할 수 밖에..

 16:20 협곡을 빠져나오고 벌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운전자는 트럭을 세우더니 일행과 함께 말린고기를 벌판에 앉아서 먹었다. 나 역시 같이 먹었다.

 야크고기는 별다른 맛이 없지만.. 배는 채워야 하지 않는가.. 아무도 없는 티벳의 벌판에서 먹는 야크고기라는 추억을 새로 만들었다는데 만족해야지..

 18:45 서부 티벳은 태양이 있을때는 무척 덥지만 태양이 구름에 가리거나 저녁이 되면 무척 추워진다. 특히 이곳 지역은 바람이 거세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진다.

 벌판에 외로이 서있는 휴게소에 들어갔다. 거기서 라싸의 장선생님께 전화를 했지만 실패.. 아침에 먹었던 한국식 라면을 또 먹었다. 어떤 착한 운전자가 한국식 라면을 알리로 이동하면서 뿌려놓았나 보다.. 누군지 모를 운전자에게 감사함을 느꼈다.

 19:40 휴게소를 떠날때쯤 운전자와 친한듯한 트럭(5대)부대들이 위풍당당한 모습을 드러냈다. 여태까지 트럭 앞자리에 4명이 탔는데 자리가 무척 불편했었다.

 트럭부대들이 보이자 마자 한명이 짐을 싸더니 동료 트럭으로 가는것이다. 덕분에 앞좌석에 3명이 타게 되었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고..

 22:50 트럭부대들과 합류한 후 고개를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던 트럭은 한 게스트하우스에 멈췄다. 트럭 부대의 모든 멤버들이 내려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을 깨워서 그들이 가져온 식량으로 식사를 했다.

 말린고기, 보릿가루에 주인이 제공하는 야크티.. 나의 입맛에 전혀 안 맞았다. 날씨도 춥고 피곤하기도 해서 먼저 잠자리를 찾았다.

  게스트하우스라고 하지만 그냥 바람막이 용도의 집과 이불 몇개가 딸랑있는 침대가 전부.. 그래도 편하게 자는걸 감사하게 여겨야지.. 그런데 숙박비가 20위엔이나 한다. 주인하고 싸우다 시피 해서 15위엔으로 깍았다.
내가 침대를 잡고 같은 트럭 부대에 몸을 맡긴 사람들이 다들 잠자리를 찾아 들어왔다. 이들은 그대로 20위엔을 지불한다.

 춥기는 하지만 5년전 첫 겨울 국토순례때 침낭 하나로 노숙을 했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8월 2일(토)

 5:30 며칠째 한국에 있을때의 꿈을 꾼다. 아.. 한국이 그리워지는 모양이다. 그러한 달콤한 꿈을 꾸고 있을때. 새벽부터 운전자가 날 깨웠다. 새벽부터 출발할 모양.. 머 빨리가면 좋으니까..

 7시쯤에 해가 떠서 일출을 볼려고 했지만 구름에 가려서 보는데 실패했다.

 10:30 비교적 평탄한 분지길.. 비가 온지 얼마 안되서 그런지 땅이 질퍽질퍽 하다. 역시나 트럭부대에서 비교적 작은 트럭 한대가 수렁에 빠진다. 동료 트럭을 이용해서 무사히 구조.. 트럭부대의 힘을 한번 느꼈다.

 11:30 서부티벳은 크게 두개의 도로가 관통하고 있다. 바로 북로와 남로인데 내가 지금 가고 있는길은 그 두도로를 잇는 중간길이다. 그 중간도로에서의 중간지점이 초첸이라는곳이다.

 초첸에 들어서기전 운전자는 트럭을 개울앞에서 잠시 멈췄다. 세면을 하자는 것이다. 며칠만에 해보는 세면인지..

 론니플래닛에는 여기까지 3개의 검문소를 거쳐야 된다고 하지만 난 아직까지 한번도 안 걸렸다. 운이 좋은 편이다.

 조금씩 알리가 가까워진다는 희망 덕분일까.. 이제 론니의 알리 부분을 보게 된다. 막막하고 빡세지만 추억에 남고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될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초첸은 300미터 가량의 도로를 기준으로 건물들이 나열해 있고 마을중앙에 벽돌공장이 있어서 그런지 마을 여기저기서 공사를 하고 있다.

 마을 한켠에는 군부대가 있었는데 군기빠진 군인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일부러 군부대 앞을 어슬렁 거렸지만 나한테는 신경도 안 쓴다.

 초첸에서 점심을 먹고 라싸의 장선생님께 전화를 했다. 전화를 마치고 운전자에게 가니 오늘 출발 안 한다고 한다. 무슨소리지?

 15:35 오늘 출발할지 안할지 모르는 상황.. 트럭을 타고 초첸에서 1킬로 떨어진 먼뚱사원을 방문했다. 승려들의 강요로 코라는 2번이나 돌고.. 그 이후에 그냥 트럭뒤에서 잤다.

 예배를 마친 운전자를 따라 다시 초첸으로 왔다.

 트럭을 히치한지 3일이 되어서야 운전자와 동료의 이름을 물어보았다. 운전자는 20살이고 다찌르라고 한다. 동료는 29살의 다와트릭.

 다찌르는 차에 관심이 많아서 랜드쿠르져나 짚차 수리하는 곳으로 가서 관심있게 지켜보며 수리공에게 이것저것 물어본다.

 다찌르를 따라 차 수리하는것을 지켜보다 다찌르가 출발하자는 말에 트럭에 올라탔다. 무슨 말이지? 오늘 출발 안한다며..

 트럭 뒷칸에는 2명의 부부가 새로 탔다. 그들은 알리까지 150위엔.. 나보다 훨씬 싸지만 먼지 휘날리고 바깥을 볼 수 없는 뒷칸에 타서 크게 불만은 없다.

 출발 직전 웬 트럭에 서양인으로 보이는 노무자 3명이 보였다. 러시아 사람들 같았는데 물어보니 자신들은 중국인이라고 한다. 이곳 척박한 땅까지 왜 왔지? 사연이 있어보이지만 더이상 묻지 않았다.

 16:00 초첸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트럭에서 보니 갈매기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근처의 호수때문인가? 이런 육지 한가운데 갈매기가 날아다녀 신기했다.

 17:30 차창밖을 보다 멋진 광경이 있으면 디지털 카메라로 찍었는데 운전자인 다찌르가 관심이 많아 보인다. 350위엔대신 디카를 주면 안되냐고 나한테 물어본다.. 난 디카가 2000위엔정도 한다는 대답으로 답을 대신했다.

 18:40 무리하게 적재를 해서 그런지 언덕을 오르다 차가 계속 멈췄다. 둘다 열받아서 그런지 다찌르와 다와트릭은 서로 말싸움을 하고.. 다찌르는 흐느껴 울기 시작한다. 덕분에 트럭은 계속 멈춰있는 상황.. 아.. 언제 알리가나.. 괜히 이 트럭을 탔다는 생각이 들었다.

 19:00 서로 말싸움을 하나 나를 가운데 두고 서로 운다.. 난 무표정.. 아 짜증난다.

 잠시 올라가다 트럭한대가 진탕에 빠져있다. 새로히 나타난 한족 3명과 트럭 부대 티벳족 사이에 말다툼이 일어났다. 대충이해하기를 한족이 길을 새로 만들어 놓고 돈을 받을려고 했다가 티벳 인들이 길이 안 좋아서 빠졌기 때문에 책임지라는 식으로 보였음.

 21:10 한족들이 부른 불도저 2대를 이용해서 겨우 트럭을 꺼냈다. 벌써 허비한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23:30 이때가 되어서야 모든 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알고보니 트럭부대는 이곳 도로공사에 이용할 시멘트를 운반하는거였고 내가 탄 트럭도 그중에 하나.. 시멘트를 하차할때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동원되었는데 그중에는 10살이 갓 넘어 보인 티벳 아이도 있었다. 이들은 천막에서 지내며 밤늦게 까지 일한다.

 24:02 오늘은 이곳에서 그냥 잔다고 함. 나한테 이불 하나 꺼내주더니 트럭안에서 자라고 함.. 침낭은 잃어버린게 정말로 후회가 되었다. 좁은 트럭안에서 담요에 의지한채 잤다.

 자세도 안나오고 너무나 추워서 새벽에 4번 깼다. 모든상황이 최악이라고 생각되었다. 잠시 트럭밖으로 나왔다. 추운 바람이 날 맞이했다.

 그때... 하늘위를 올려다 보니 별천지였다. 너무나 가까운곳에 별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순간 추위가 잊혀지고.. 별자리를 몇개 알고 있지만 모든별들이 밝아서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그중에 가장 빛나는 별이 금성이라는 추측밖에..

 별빛을 따라 나의 눈빛도 빛나고..힘든 고행길에 맞이하는 아름다움에 매료되는 순간이었다.

 8월 3일(일)

 7:20 깊은 잠을 못잤다. 그저 시간이 지나가기를 자면서도 빌었다.

 아침에 일어나자 햇볕이 날 맞이해 주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아침에는 다시 에너지가 샘솟음을 느꼈다. 어제 밤에는 어두워서 느끼지 못했지만 주변풍경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내일은 해가 뜬다라는 노래를 크게 불렀다. 갓 일어난 티벳인들이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아도.. 꿋꿋히..

 9:30 어제 시멘트를 모두 내려서 그런지 트럭 속도가 빨라졌다. 트럭부대는 해산되구.. 트럭들은 제갈길을 찾아 떠났다. 내가 탄 트럭은 호수 바깥을 가로 질로 공로로 들어섰다.

 9:30 트럭이 잠시 멈추더니 친구인듯한 티벳인을 한명 태운다. 다찌르는 잠시 운전석을 그 친구에게 맡긴다. 환희에 찬 표정으로 친구는 트럭을 잠시 몰고..대신 난 불안에 떨었다.

 10:20 벌판을 질주하던 트럭은 외딴 천막 앞에 선다. 간이휴게소인듯한 천막에서 야크티를 만드는 과정을 직접 보고.. 여기는 특이하게 양똥을 이용해서 불을 지핀다. 신기했다.

 야크티는 설탕이나 향료를 전혀 넣지 않은 그야말로 오리지날 야크티.. 한모금 마시고 더이상 마시지 못했다.
주인인듯한 티벳인은 데운 양젖에 보릿가루를 주었다. 그건 좀 먹을만 했다.

 티벳 농가 앞에는 돌담을 만들고 밤에 양을 가두어 두는데 거기에는 양똥을 수거할려는 목적도 있는거 같았다.

 시멘트 수송을 마친 트럭은 겉면에 쓰인 용도로 변신을 해서 농가 이곳저곳을 다니며 소식을 전하고 편지를 전달하는 용도로 변환되었다. 덕분에 천막과 티벳 농가를 많이 방문할 수 있었다.

 여태까지 트럭의 느린속도에 불만이 많았지만 이제는 티벳 문화를 알게되어서 만족한다. 만약에 랜드쿠르져나 버스를 탔으면 이러한 경험을 하지 못했으리..

 특히 초첸 북쪽 지방은 여태까지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 진정한 티벳 이미지와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평화로운 풍경에 홀로 떨어져 있는 집들.. 전통적인 생활양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12:40 티벳 농가를 방문할때 마다 30분이상씩 머물렀다. 좀 지루했지만 참아야지..

 다시 트럭이 달리다 멈췄다. 트럭이 지나갈때 길가의 노동자들이 트럭을 향해 달려온다. 모두가 운전자인 20살 투치치를 중심으로 모인다. 투치치는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전날 사온 사탕을 나눠주고.. 투치치는 이곳 지방의 모든 티벳 사람에게 친절하고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가 투치치를 좋아하고 잘 따른다.

 투치치가 어떤 이야기를 할때면 모두가 진정한 눈빛으로 투치치를 쳐다보고..

 20살 나이에 대단하다는 생각에 약간의 고집까지도 소유하고 있는 것을 보아 혹시 미래의 티벳 지도자가 되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14:40 다시 트럭이 출발... 조금있다 외딴길로 진입.. 노인부부가 사는 농가에 가서 또 이야기를 한다. 우리나라 산골 우체부랑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된다. 휴.. 그냥 내가 참아야지

 16:10 다시 출발.. 광활한 초원에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이제서야 차가 제속도를 낸다.

 19:58 드디어 북로 진입.. 동초라는 아름다운 호수가 보인다. 북로에 진입한거 같은데 표지판이 없다. 평평한 초원이라 따로 도로가 없기 때문이다. 길을 따라가지 않고자기 마음 내키는대로 달린다.

 사람이 없는 무인지대.. 이곳이 진정한 파미르 고원이다. 유목민은 아예 안보이고 영양과 야생마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북로는 남북 수십킬로의 너비로 산맥이 있고.. 도로는 일종의 회랑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한 회랑이 수백킬로 이어진 것이다.

 21:35 평탄한 고원의 도로는 이어지고 트럭부대에 함께 있다가 어제 밤 헤어졌던 트럭 2대를 발견했다. 승부욕이 강한 투치치는 그 트럭들을 따라잡고... 트럭을 추월하며 경적을 울리자 반대편 트럭의 운전자는 멋적게 웃는다.

 23:02 사막의 외딴 도시 게체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잘듯하더니 한족 한명을 내 옆에 태운체 다시 떠난다. 내 옆의 한족은 뒷칸의 티벳인들이 못 미더웠는지 짐을 앞칸에 놓는다. 덕분에 좁은 공간이 되었다.

 24:50 외딴 집에 도착. 밥을 먹는다고 한다. 트럭들이 모두 여기에 집결햇다. 가방속에 있는 마지막 남은 신라면을 뽀글이(봉지에다 물을 부은채 익힘) 해먹음.

 오직 나 혼자만이 외국인이라 다들 챙겨지주만 가끔 나를 향해서 웃음이 터질때면 좀 기분 나쁨..

 코카나 펩시가 없어서 중국산 비천콜라를 먹었는데.. 먹는순간 후회함.

 내 옆에 탄 한족이 NEC 핸드폰을 과시하듯 계속 만지작 거리길래. 시가체 이후 처음으로 노트북을 꺼내서 과시함.. 역시 효과가 있음. 여관 역할을 하는 이곳은 1인당 15위엔씩 받았다.

 휴.. 라싸를 떠난지 6일이 되었다.

 아.. 언제쯤 트럭 여행이 끝날려나..

 8월 4일(월)

 7:20 오늘도 역시 비오는날 한국에서 삼겹살에 소주한잔 하는 꿈을 꿨음. 꿈에서 깬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잠도 편하게 잤고 날씨도 포근한 편이라서 상쾌했다. 무엇보다 내일이면 알리에 도착한다는 것.

 7:55 오늘의 트럭 여행 시작 휴게소를 떠나면서 밖에있는 아이에게 손을 흔드니 따라서 흔든다. 역시 어디가나 마음은 통한다

 트럭의 앞좌석에는 나와 투치치와 어제 탄 한족.. 각각의 언어가 달라서 앞좌석이 조용하다. 그저 투치치가 운전하면서 튼 티벳 민요만 흐를뿐..

 10:55 서쪽으로 갈수록 사막화가 더 심해진다. 계속해서 사막길을 다니고 있고 오늘은 여태까지와 달리 정차를 하지 않는다. 며칠째 마을을 제외한 곳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야생동물이 뛰어 노는것은 가끔 보일 뿐이다.

 11:20 알리에서 312킬로 떨어진 타카에 도착했다.

 12:10 타카에서 난주 류러우면(우육면)을 먹었는데 8위엔으로 비싸기는 하지만 입맛에 맞았다. 우리나라의 화교들이 중국집을 하듯이 여기 중국에서는 회족들이 어디를 가나 우육면집을 차려서 영업을 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다 식당에서 이소룡 영화를 봤는데 이소룡이 거구의 서양 무도가를 무찌를때 마다 환호.. 우리나라에 김두환이 있다면 중국에는 이소룡이 있다고 생각됨.

 12:20 타카에서 알리와 신장쪽 길이 갈라지는데 트럭이 신장쪽으로 간다. 만약에 신장쪽으로 가서 알리로 가면 2개의 검문소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대충 투치치와 중국인과의 대화를 들어보니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름길이 있다고 함.

 13:30 차는 한참을 달리다 산 중턱에 있는 사원으로 올라갔다. 알고보니 지름길이 아니라 소금 호수에서 나는 소금을 실으로 간 것이었다.

 2대의 빈차(어제부터 일행이 2대의 차가 되었음)에다 무거운 소금 가마를 실어야 하는데 뒷칸에 있는 티벳인들이 자기일인양 20킬로 짜리 소금포대를 2대의 차에다 실어줌. 그 숫자가 50포대는 되는것 같음..

 나 역시 티벳인들과 어울려 같이 도와줬다. 덕분에 일행인 모든 티벳인과 친해질 수 있었다. 그들은 나한테 수고했다며 등을 토닥여 주고 작업을 마치고 나의 등을 토닥여 주고 옷에 묻은 먼지들을 털어줌.

 바로옆에서 손끝하나 안대로 지켜만 보는 옆자리의 중국인과 대비되는 장면임.

 남아도는 힘을 좀 사용해서 티벳인들과 친해졌음. 티벳인들과 친해져서 이제 뒷차에 실은 배낭이 도난당할 염려는 없다고 판단됨.

 17:30 오늘은 내가 탄 트럭보다 일행 트럭이 자주 고장을 일으킴. 한번 고장을 일으키면 최소 30분 이상 소요.. 처음 트럭 여행을 할때는 짜증났지만 이제는 그마져도 여유롭게 넘김.

 18:56 잠시 내려서 세수를 했다. 7시인데도 불구하고 날은 대낮같이 밝았다.

 19:45 정차.. 사막 한가운데 티벳 마을에서 저녁을 먹었다. 난 입맛에 안 맞아 못 먹었다.

 그렇지만 같이 자리를 하면서 티벳인들과 친해졌다. 특히 티벳 할머니한테 손에 V자를 그리며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니가 기꺼이 찍음.

 모든 티벳인들이 나를 주목함.. 어느새 내가 이곳의 분위기 메이커가 되었음을 느낌.

 이왕 티벳인들과 친해짐김에 티벳어를 약간 배웠다. 역시.. 론니에 적힌 내용을 외우는거 보다 한번 티벳 사람들과 대화하는게 더욱 효율적이다.

 서부 티벳 사람들은 중국어를 거의 모른다. 때문에 나와는 오직 바디 랭귀지로 대화를 해야 했다.

 저녁 식사 후 출발할려고 하는데.. 차 타이어에 이상이 있어 멈춤.. 정말 짜증난다는 생각이 든다. 급한 성질의 소유자는 못 견뎠을지도..

 타이어를 고치면서 난 최대한 도울려고 노력을 했는데 중국인은 바로 옆에서 손하나 까딱안하고 말만함.. 티벳인들은 중국인이 머라그러든 무시.

20:50 출발..

 한참을 가다가 23:10경 알리에서 112킬로 떨어진 게지(gegye)에 도착.. 이곳 빈관은 1인당 35위엔이지만 오랫만에 전기가 통하는 방이라 그냥 여기서 잤음.. 노트북의 게임을 했다. 저녁은 여태까지 계속 먹은 한국식 컵라면을 먹었음

 그것도 잠시.. 24:00 넘어가자 전기가 끊김. 내일이면 그렇게 바라던 알리에 도착한다고 위안을 삼음

 자다가 화장실에 가면서 하늘의 별을 봤다. 아.. 그야말로 환상이다. 온세상에 정적이 흐른채 별과 난 서로를 응시했다.

 기록에 남기기 위해서 디카로 하늘을 찍었지만.. 전혀 나타나지 않았음.. 그래도 내가 터트린 디카 플래시 빛이 먼 하늘을 질주해 수억 광년 떨어진 어느 외딴 별에 수억년 후에 도착할 것이라는 쓸데없는 희망을 가짐..

 8월 5일(화)

 8:10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 오늘 알리에 도착한다는 기쁨으로 차를 탔다. 트럭에 탄 사람들은 더 늘어나고.. 내 옆에 17살 티벳 여고생이 탐.. 언어는 전혀 통하지 않지만 티벳 여고생이 주는 과자들을 맛있게 먹음

 9:45 투치치(운전자)가 소변을 보느라 잠시 트럭을 멈췄다. 잠시 내려 티벳 중,고생들과 이야기를 했는데 한국의 가수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난 SES, HOT, 강타등.. 한국의 유명 가수의 노래를 불러 주었다.  정말로 좋아한다.

 11:50 알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트럭 여행 6일째.. 라싸 출발 8일째.. 드디어 알리에 도착한 것이다. 사막위에 외딴 도시인 알리는 나에게는 감동으로 다가왔다.

 12:30 친해진 티벳인들이 집으로 들어갈려고 하는데 문이 잠겨서 못들어갔다. 난 내 특기인 담타기를 해서 담을 타고 문을 열어주었다. 모든 티벳인들이 환호..

 친해진 중고생들이 수첩을 가져오더니 나의 이름과 이메일 주소를 알려달라고 한다. 그들은 한국 연예인을 동경했는데 태어나서 처음 한국인을 보니 신기했나 보다.

 처음 투치치에게 350위안을 주고 인빈관(30위엔)에 자리를 잡음

 인빈관에서 스위스인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1년 동안 여행중인 그들은 카일라스와 마나사로바 호수와 그밖의 장소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주었다.

 정보도 정보지만 거의 1주일만에 의사소통을 하는데 더 큰 감격을 누볐다.

 그런데 정신없는 찰나.. 여권을 잃어버렸다. 이곳에서 여권을 잃어버리면..!!! 끝장이다!!

 하늘이 도왔을까.. 내 방에서 여권을 찾을 수 있었다.

 알리에 도착하자 마자 스위스인과 함께 점심을 먹고.. 이곳 왕빠(4위엔)에서 주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한글을 쓸수 있어서 이렇게 여행기를 적고 있다.

 결국 또 성공했다.. 모두가 힘들고 불가능 하다고 했지만 그럴수록 더 도전하고 싶은건 왜 일까? 우려속에 도전해서 역시나 성공.. 2번의 동티벳 육로 여행에 이어서 서부티벳 앞으로도 뿌듯함으로 남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로 고난의 시간이었다. 느리고 자주 멈추는 트럭과 추위와 딱딱한 트럭 시트의 고통과 외로움.. 하지만 티벳 문화를 직접 볼 수 있었고 밤새도록 달리는 버스와 랜드크루져와는 달리 더 많은 티벳의 자연을 볼 수 있었다.

 힘들었던 만큼 열매는 달다고 했던가.. 외국인이 거의 없는 이곳 알리.. 어느 책에는 알리를 여행하지 않고는 티벳을 봤다고 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 기분은 글로 표현하기에 너무나 벅차다..이곳 알리에서 날아갈 듯한 기분으로 여행기를 적었다.

 다음 모험은 카일라스산과 마나사로바 호수.. 그리고 구게 왕조 유적지이다. 어떠한 추억들이 날 기다릴까?

 시가체 가는 버스가 잠시 정차할 때 마주신 아이.. 그의 눈빛을 보며 한마디 하고 싶다. '너 사회 불만있냐?'

 텐지 게스트 하우스에서 바라본 고성

 타실훈포 사원 꼭대기에서 바라본 고성

 판첸라마가 거주하는 타실훈포 사원 정문.. 중국 정부가 내세운 가짜 판첸이 살고 있다.

 티벳 제 2의 도시 시가체의 구 시가지 지역

 라체가는 길.. 주변 경관이 점점 건조해 진다.

 버스에서 잠시 내려 식사.. 휴계소

 황량한 고원을 배경으로..

 근처에 강을 이용해 이곳에서도 경작을 한다.

 교통의 요충지 라체시의 전경.

 황량한 고원의 경작 작물은 마치 진흙속의 진주를 보는 듯 아름답게 비친다.

 운명의 갈림길.. 왼쪽은 네팔로 가는 길. 오른쪽은 알리로 가는 길.. 잠시 고민했었다.

 외국인을 보면 구걸을 하는 마을 개구쟁이들

 첫 알리가는길.. 저 멀리 마을이 보인다.

 이름모를 호수이지만.. 다양한 빛깔의 산과 어우러져 신비감을 자아낸다.

 다른 각도에서 찍은 사진

 저 멀리 야크를 방목하고 있다.(검은 점으로 보임)

 고개 정상.. 구름과 어우러저 아름다운 모습니다.

 고개 정상에서 바라본 산새.. 온세상이 험한 산이다.

 높은 고도라 그런지구름과 산이 거의 붙어 있다.

 정상에서 한 포즈~

 나무가 없는 이곳은 침수로 패인 계곡이 그대로 드러난다.

 호수를 뒤덮는 산.. 그 앞에는 양떼들이 유유히 풀을 뜯고 있다.

 티벳사람들도 풍수지리를 믿나? 전형적인 배산임수(뒤에는 산 앞에는 하천) 마을

 서부티벳으로 가는길은 전부 비포장이라서 고개를 넘을 때는 힘겹게 넘어가야 한다.

 호수에 비치는 구름의 모습을 보며 호수가 마치 거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형적인 유목민의 텐트.. 진정한 티벳을 본다는 느낌이 들었다.

 저 멀리 티벳 마을과 여기저기서 야크를 방목하고 있다.

 티벳 민가의 모습.. 가운데는 야크똥으로 열을 내는 난로와 양 옆에 침대가 있다.

야크티를 제조하는 기구.. 서부티벳의 야크티는 그 느끼함이 라싸는 저리가라고 할 정도이다.

 티벳 어린아이. 여자아이이다. 커서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트럭한 대가 전복되어 있다. 동티벳과 마찬가지로 서부티벳 역시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계곡과 산.. 다 드러나는 계곡을 보면서 지질 학자들이 계곡 생성 과정을 연구하는데 티벳이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멀리 비포장 도로가 보인다.

 론니에도 표시되어 있는 파양.. 민가 몇채와 작은 소학교 전부이지만 여기서 몇킬로를 더가면 남로와 북로로 나누어진다.

북로로 들어서는 길.. 끝없이 자갈이 널려있다.

 노천 온천.. 생각 같아서는 몸을 담그고 싶었지만 약자입장이라 트럭운전사에게 말을 못했다.

 노천 온천에서 얼마 안가면 '킹타이거'라는 멋진 이름의 호수가 나온다. 어떻게 호수에 영어 이름이 붙지? 론니에 그렇게 써져 있다.

 허허 벌판에 차량이 고장났다. 카센터까지는 적어도 몇백킬로가 되기 때문에 차량이 고장나면 전적으로 운전사가 해결을 해야 했다.

 식사를 하는 장면.. 말린 양고기를 먹고 있다.

 폐허가 된 마을.. 운전사들이 쉬었다가는 마을 이지만 빈집이 많았다.

 전형적인 티벳개.. 8월인데도 불구하고 바람이 매서워서 추위까지 느꼈다.

 휴게소에서의 잠시 여유.. 처음 보는 한국인에 대해 모두가 호의를 갖고 대해 주었다.

 다마트릭, 나, 다찌르.. 6일간 미운정 고운정 다 든다.

 조난 당한 크럭을 구조하는 장면

 갈림길에서 235킬로 지점에 있는 초첸.. 교통의 요지라 그런지 건물도 많도 전기나 전화 시설도 괜찮았다. 거의 모든 차량들이 이곳에서 수리를 받는다.

 초첸에 들어가기전.. 저 멀리 초첸이 보인다.

 세면은 어쩔 수 없이 냇물에 의지해야 했다.

 초첸 시내에서 얼마 안떨어진곳에 위치한 먼뚱사원

 다시 목적지를 향해서.. 언제쯤 알리로 갈까 막막한 심정이었다.

 도로변에서 만난 유목민.. 행색이 말이 아니지만 물을 달라는 다찌르의 말에 웃으며 귀한물을 주고 있다.

 유목민이 사는 텐트.. 평생 이곳에서 사는 사람도 있구나!라는 탄성이 입가에 맴돌았다.

 유목민 할아버지들.. 겉모습은 말이 아니지만 속마음 만큼은 순수함으로 가득차 있다.

 시멘트를 내리는 모습.. 날도 추운 밤에 그대로 차안에서 선잠을 자야 했다.

 다찌르와 다마트릭의 잠자리 모습.. 나야 이번 여행 한번으로 끝나지만 이들은 트럭을 운전하는 내내 이렇게 지내야 한다.. 난 행복한 인간이다.

 트럭안에서 추위와 싸워가며 동이 트길 기다리며 선잠을 잤다. 동이 트자.. 아름다운 호수가 나타났다.

 초첸 북쪽.. 이곳 지역은 비교적 따뜻해서 유목이 가능하다.

 염소똥 화로.. 주인은 끊임없이 말린 염소똥을 화로에 집어 넣었다.(다 나무가 없는 탓이오!)

 티벳인들과 함께 차한잔.. 예전에 야크티 때문에 배탈난 경험이 있어서 못 마셨는데 마침 이집에서는 데운 염소젖을 대접해 주었다.

 아까 염소젖을 대접받은 집..

23살 티벳 여인.. 벌써 애가 2명이 있는 아줌마다.

 디지털 카페라에 흥미있는 다마트릭이 자신이 사진을 찍을테니 꽃을 들고 있으라고 해서 그 말을 따랐다.

 머리감고, 발 싯고.. 오랜만에 여유있게 싯고 난후 햇볕을 쬐고 있다.

 어미 야크와 새끼 야크.. 정겨운 풍경이다.

 끝없이 이어진 초원길..

 드디어 북로 진입.. 사람이 살 수 없는 무인지대. 저 멀리 동초호수가 보인다.

 사람이 살지 않은 이곳은 야생동물의 천국.. 저멀리 야생 당나귀가 보인다.

 알리가 가까워질수록 주변 풍경은 점점 사막으로 변해간다.

 알리에서 300여 킬로 떨어진 타카. 이곳 역시 교통의 요지 이다.

 저 멀리 사원이 보인다. 서부티벳의 사원은 라싸주변과 달리 화려하지가 않다.

 벽돌공장 저 너머로 소금 호수가 보인다. 이곳은 소금 집산지로도 유명하다.

 타카를 떠나도.. 소금 호수는 쭉 이어진다.

 산 중턱에서 바라본 소금호수의 모습

 서부티벳은 상상과는 달리 거의 사막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소금을 트럭에 싣는 일을 도와주며 친해진 티벳인.

 어느새 난 트럭멤버에서 분위기 메이커가 되었다.

 한 티벳 민가에 장식된 야크 두개골.. 야크두 개골을 장식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방문한 가옥의 내부.. 외국인인 내가 이렇게 자유롭게 티벳 전통 농가를 볼 수 있다는거 자체가 행운이다.

잘 생긴 티벳 아이., 늠름한 모습과는 달리 외국인인 내가 다가가자 두려움에 울음을 터트렸다.

 나와 티벳 할머니의 승리의 'V' 할머니 포즈는 내가 일일이 지정해 주었다.

 이제 풀마저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저멀리 알리가 보인다.. 천신만고 끝에 온 알리라 그 감격은 더 하였다.

 마지막날 친해진 고등학생들.. 한국에 관심이 많은 그들은 처음 만난 한국인인 나에 대해 대단히 호의적이었다.

 알리 중심부.. 비교적 한산한 분위기였다.

 

 서티벳 여행기여행기 2(8,5~8,9) 감동의 카일라스와 마나사로바

 8월 5일(화)

 알리에 도착해서 인빈관에 들어가자마자 찾은 것이 외국인이었다. 다행히 2명의 스위스인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1년째 여행을 하고 있고 카일라스산과 마나사로바호수 정보(주로 체크포인트)에 대해서 주었다. 그들 역시 나와 같이 허가증이 없는 상태에서 여행을 하고 있었다.
스위스인들과 이야기를 하고 바로 앞 은행으로 환전할려는 찰나.. 아뿔싸 여권이 없어졌다. 이곳 알리에서 여권을 잃어버리는것은 거의 대책이 없는 일이다.

 30분동안 찾아다녔다. 제발.. 제발.. 조급한 마음과 함께 왜 나한테 이런 시련이 와야 하는지 갑갑했다.

 다행히 여권은 내 방에 안보이게 놓았던걸 나도 모르게 기억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만감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마치 나도 모르는 힘이 여행중 조심하라고 알려준 경고 메세지 같았다. 앞으로 더욱 조심해야지..

 그 후로는 알리 시내를 돌아다니고 5시간동안 그간의 여행기를 썼다. 여행기를 쓰면서 참 고생을 많이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생끝에 찾아온 황량한 도시 알리.. 그만큼 뿌듯함이 몰려왔다.

 인터넷바에서 돌아온 8시..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한국인이 들어오는 것이다. 3명의 한국인과 1명의 일본인.. 이곳에서 한국인을 볼줄이야..

 그들은 신장 예청에서 왔으며 체크포인트에는 한번도 안걸렸다고 한다. 막혀있는줄 알았는데 의외로 쉽게 뚫려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여행중 만난 홍콩인 부부와 식사를 한다면서 같이 가자고 한다. 홍콩인 부부와 우리 5명의 일행은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중국인 입맛에 맞게 음식들이 나왔기 때문에 그리 맛은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서를 보니 무려 180위엔.. 살인 적인 알리의 물가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식비는 홍콩인 부부가 냈다. 우리도 같이 내겠다고 했지만.. 요지부동.. 머 할수 없지.. 어정쩡하게 땡잡은 날이다.

 8월 6일(수)

 알리에서의 2일째 날이다. 그동안의 여독을 푸는 의미에서 근처 샤워장(10위엔)에서 샤워를 하고, 그동안의 밀린 빨래를 했다.

 나를 제외한 3명의 한국인중 2명은 카일라스와 마나사로바를 보지 않고 곧바로 라싸로 간다고 한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가다니.. 아무리 말려도 요지부동.. 할수 없다.. 여행은 자기자신이 결정하는 거니까.

 나 역시 내일 마나사로바로 출발 하기로 했다.

 8월 7일(목)

 8시에 일어났다. 이미 3명의 한국인은 각자의 길을 찾아서 떠나고 보이지 않았다. 2명은 라싸로 가고, 1명의 여대생은 카일라스 방향으로 간 것이다. 휴.. 나도 좀 같이 가지..

 8시 20분에 인빈관을 나와서 카일라스산으로 가는 길목에 서 있었다. 이미 나 말고도 몇몇의 사람들이 트럭을 히치하기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한명의 한국 여학생이 새벽 6시쯤 트럭을 히치해서 푸란방향으로 갔다는 것이다. 정말 대단하다.. 여자 혼자 몸으로 잘도 히치해서 가다니..

 내가 도착한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트럭이 거의 없었다. 택시와 공사차량이 지나갈뿐..

 막연히 트럭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는데 한 중국 대학생이 나한테 말을 건다. 이름은 샹이고 나이는 21살 이다. 우루무치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으며 2005년에는 중학교 중국어 선생님이 된다고 한다.

 어? 나랑 같은 직종이네.. 비록 둘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어정쩡한 중국어와 영어를 섞어 가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계속 이야기를 해도 차는 잡히지 않고.. 오늘 그냥 포기할까? 아침에 한국 여학생은 히치에 성공했는데.. 그냥 포기하기에는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걸리적 거렸다.

 13시 30분.. 벌써 히치를 시도한지 6시간이 지났다. 인내력의 한계를 느끼는 시간대.. 그냥 돌아갈까 생각했는데 샹이 오늘 차가 있을거라면서 말린다. 샹 역시 차를 잡을려고 2일째 있는 상태.. 샹은 가지고 있는 먹을 거를 주면서 좀더 기다려 보자고 한다. 샹의 착한 마음 씀씀이에 다시 기다려 보기로 했다.

 그때. 한 중국인이 오더니 푸란 방향으로 가는 차가 있고 태우고갈 사람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샹과 같이 그 트럭을 잡았다. 1인당 130위엔.. 좀 비싸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150에서 깍은 것이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무엇보다 부담스러웠던것은 좁은 트럭앞좌석에 8명이 탄다는 것이다. 거의 꼼짝도 못하고 쪼그려 가야 할 상황이지만 다른 방도가 없기에 그냥 타기로 했다.

 14:15 이것저것 수리하고 휘발유를 넣은 후 푸란을 향해 출발했다. 출발부터 좁은 자리 때문에 불편했다. 트럭 속도도 짐을 가득실어서 그런지 정말로 느렸다. 운전은 직원인 듯한 중국인이 하고, 트럭 주인은 오른편에 타고.. 주인은 욕심 많아 보이는 전형적인 중국인 이었다.  

 1시간뒤 트럭이 잠시 멈췄을때 샹과 난 짐이 실려있는 트럭 뒷칸으로 옮겨 탔다. 뜨거운 태양과 찬바람에 괴롭기는 했지만.. 그래도 좁은 자리에서 웅크리고 있는거 보다는 낳다는 생각이 들었다.

 15:45 이 트럭 역시 문제를 일으켰다. 타이어가 펑크가 나서 수리하느라 계속 정차했다. 오늘 안으로 목표한 마나사로바 호수까지 가기 힘든 상황.. 아.. 마나사로바까지 가는 길이 이렇게 힘들어서야..

 18:15 2시간 30분동안의 수리를 마치고 다시 출발했다. 그렇지만 곧 도로 공사 차량때문에 또 정차했다. 밤이 되고 날씨가 어두워져서 다시 좁은 트럭 앞좌석으로 들어갔다.

 계속 되는 정차와 느린 속도.. 그리고 좁은 자리.. 여태껏 여행하면서 최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여행중에 최악이라고 생각 되는 순간이 의외로 많다..)

 19:45 트럭은 다시 출발했다. 130위엔이나 내고 이렇게 고생하면서 여행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좁은 트럭 앞좌석에 라호반(트럭주인)은 제일 편한 자리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앉아 있고..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잠시 정차했을때 일부러 라호반 자리를 조금 침범해서 앉았다.

 라호반은 계속 자기 자리를 다 차지할려고 밀어부치고.. 나 역시 자는 척 하면서 밀리지 않았다. 결국 보이지 않은 신경전이 벌어졌다.

 30분뒤 라호반은 참을 수 없는지 나한테 비키라고 손으로 밀고.. 나역시 지지 않았다.

 결국.. 라호반은 나에게 "셔쳐!(내려!)'라고 말한다. 사람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사막지대에 내리라고 하다니.. 하지만 나 역시 믿는 구석이 있었다. 적어도 30킬로 정도 걸으면 민가가 있다는것을 지도상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중국인 친구 샹을 비롯한 여러사람이 말렸지만 나와 라호반의 태도는 단호했다.

 난 트럭에서 내려 짐칸에 실린 배낭을 가지고 정말로 걸어갈려고 했다. 그런데 샹 역시 나와 같이 내릴려고 하는것이 아닌가.. 고생은 그냥 나 혼자 하면 되는데. 난 샹에게 나 혼자 간다고 이야기를 해도 친구를 버리고 혼자 갈 수 없다고 하며 같이 갈려고 한다.

 트럭에서 내려 걸어갈려고 할때 라호반이 내 배낭을 뺏는다. 그러면서 130위엔을 내라고 한다. 눈치를 보아하니 겁줄려고 내리라고 했는데 무인 사막지대에 정말로 배낭을 챙겨서 갈려고 하니 라호반 자신도 무척 당황한 모양이다.

 내 배낭을 가지고 신경전이 벌어졌다. 생각같아서는 배낭을 그냥 가져 가게 해서 공안에 신고하고 싶었지만 배낭안에는 내 동생 노트북이 들어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었다.

 5분동안 신경전이 벌어지고.. 서로 중국어 한국어 욕을 교환해가며 싸웠다. 차는 아무런 움직임 없이 사막위에서 막연히 서있고..

 결국 나머지 6명의 중재로 다시 차를 탔다. 대신 난 라호반 자리에서 약간 떨어진 제일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당당했던 아까의 태도와 달리 라호반은 이동하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머 이번 싸움의 결과는 지지 않았다는 것..

 결국 오늘 하루만에 마나사로바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의 초대소(10위엔)에 묵게되었다. 라호반은 초대소주인에게 8명이서 타는데 어떻게 나혼자 편하게 갈려고 하느냐는 식으로 말하는거 같았다.

 다시 열받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트럭 번호가 적힌 수첩을 보여주면서 웃으며 어정쩡한 중국어로 한마디 했다. '너 지금 후진타오가 사스때문에 외국인을 우대하는거 알지? 내일 베이징, 라싸, 알리에 전화를 할거니까 알아서 하셔..' 곧 라호반의 태도는 달라졌다.

 8월 8일(금)

 7:23 어제 불쾌한 일이 있었지만 그냥 잊기로 했다. 오늘은 바로 그렇게 염원하고 그리던 카일라스산을 보는 날이 아닌가..

 트럭은 어제의 일도 아랑곳 하지 않은채 여전히 느리게 갔다. 어제의 투쟁의 결과로 좋은 자리로 옮겨타 비교적 편하게 갈 수 있었다(비교적!)

 10:30 샹이 갑자기 나의 등을 두드리더니 손가락으로 산을 보라고 한다. 바로 카일라스산이 꼭대기가 구름에 가린채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 카일라스.. 4개의 큰 강의 발원지이고, 4개 종교에서 신으로 섬기는 그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신성한 산이다. 카일라스가 더 신비스럽게 신성한 것은 바로 찾아오기가 어렵다는 점이 더 작용한다. 지금이야 교통수단으로 올 수 있지만 예전에는 몇개월을 걸어서 어렵게 올 수 있는 곳이 바로 카일라스였다.

 10:47 카일라스 입구인 다르첸에 다다르기 직전 강이 길을 막고 있었다. 트럭은 잠시 정차해서 건널수 있는지 재보고.. 아침부터 우리뒤를 따르던 트럭도 섰다.

 어? 그런데 바로 뒤 트럭에 어제 새벽에 헤어졌던 한국인 여학생이 타고 있는게 아닌가.. 반가운 마음에 여학생한테 가니 바로 옆에 이 트럭을 타고 예청에서 부터 왔다는 한국인 남자도 한명있었다. 이런 우연이..

 그런데 한국인 여학생은 나보다 7시간 먼저 출발했을텐데.. 휴.. 나름대로 고생을 많이 했구나..

 재회의 기쁨도 잠시.. 다시 트럭을 타고 다르첸 마을로 들어갔다.

 10:55 당장에 카일라스로 가고 싶었지만 오늘은 카일라스에서 30킬로정도 떨어진 성호 마나사로바호수를 먼저 보기로 했다. 다르첸을 지나던 트럭은 잠시 멈추더니 라호반이 나한테 허가증이 있냐고 한다. 난 당연하게 없다고 했다. 당황한 라호반은 뒷 트럭 운전사에게 가서 먼가를 묻고나서 나한테 비자는 있냐고 물으며 다시 출발한다.

 그러나 다르첸에서 500미터도 안가서 다시 타이어 펑크..

 샹은 오늘은 카일라스를 먼저 보자고 했다. 나 역시 이 보기 싫은 트럭과 계속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짐을 내리고 꼴 보기 싫은 라호반에게 130위안을 던지듯이 주고. 다르첸으로 향했다. 론니에는 검문소가 있다고 하지만 전혀..

 다르첸에 한 식당에 들러서 아침을 시키고.. 면을 하는동안 배낭을 맡길 빈관을 찾기로 했다. 그런데 허름한 초대소가 자는데 50위엔(외국인은 120위엔)이고 배낭을 맡기면 30위엔을 내야 된다고 한다. 거의 폭리를 떠나서 폭거 수준이다. 깍을려고 해도 주인은 돈이 궁하지 않다는듯 외면한다.

 우리는 아이디어를 짜서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식사비와 하루 배낭 맡기는데 10위안에 하기로 식당 아줌마와 합의했다.

 12:14 드디어 카일라스로 향하고.. 코라를 돌려고 물어물어 길을갔는데 길은 자꾸 산쪽으로 향하는 것이다. 샹은 이내 지치고.. 이상하다? 왜 계속 오르막이 이어지지? 산을 오르면서 그 같은 의문이 계속 들었다. 하지만 주변 경치는 정말 이상적이었다. 평화로운 산새에.. 저 멀리 마나사로바 호수가 보이고..

 2시간을 산을 올랐다. 아무래도 코라길이 아닌 모양이다. 힘든것도 힘든것이지만 언덕이 완만히 경사를 이루고 있어서 끝이 보이지 않아 더 괴로웠다.

 샹은 한참 뒤로 뒤쳐져 있고.. 이를 악물고 언덕위를 올랐다.. 아..이럴수가...

 언덕을 오르고 나서 보이는건 바로 카일라스 주봉이었다. 몇천년동안 신으로 섬겨지는 이 산은.. 꼭대기 부근은 약간 산 가운데 부분이 구멍이 뚫린 구름으로 가려져 있었다.

 구름의 구멍은 마치 산의 눈 같았다. 마치 어서와.. 라고 말하며 나한테 윙크를 하는거 같았다.

 이내 구름은 걷혀지고.. 산의 완전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샹과 난 감탄을 하며 잠시 산을 보았다.

 언덕을 밑을 보니 사원이 하나 있었다. 사원으로 내려가 물어보니 이 길은 코라가 아니라 트래킹 코스라는 것이다.

 다시 내려가 코라를 돌아야 하나.. 산을 완전히 한바퀴 도는 코라는 52킬로로써 2박 3일이 걸린다고 한다. 내가 코라를 돌려는 이유는 단 하나.. 완전한 카일라스 산을 보려는 것이다. 그런데 벌써 목적이 이루어졌으니..

 잠시 고민했다.. 모든 여행자가 코라를 도는데.. 하지만 그냥 안돌기로 했다. 여행은 노가다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판단이 들었다. 억지로 돌기는 싫었던 것이다.

 샹은 산 안쪽으로 더 들어간다고 하고.. 나와 길이 다른 관계로 여기서 헤어져야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좋은 친구였는데.. 아마 좋은 선생님이 될거라 믿는다.

 내려오는 길에 독일인 교사 부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들과 잠시 이야기를 하고 배낭을 맡겼던 식당에서 다시 배낭을 찾고 마나사로바로 향했다.

 다르첸을 빠져나오는 길에 한 기념품 상인이 자신의 기념품과 나의 디지털 카메라를 교환하자고 했다. 어디 그게 말이 될 말인가..

 코라를 돌지 않은 대신 나만의 국토순례를 하기로 했다. 바로 카일라스~마나사로바 국토순례 33킬로의 길이었다.

 다르첸에서 주민들에게 물어보니 오늘은 차가 없을거라고 하면서 말린다. 없으면 그냥 걷지 머..

 오늘의 목표는 마나사로바앞의 마을인 바카까지 걷기..

 17:35 산위에서는 가까운거 같았는데 역시 걸으니 장난이 아니다.. 계속 되는 평지에 간간히 강이 길을 막고 있었다. 강이 길을 막을때면 별수 없이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배낭을 맨채 건널수 밖에 없었다. 이 작업도 여러번..

 바카까지 걷는동안 3대의 차량이 지나갔지만 모두 날 외면했다.

 처음에는 자신있었지만 걸으면서 점점 지쳐갔다. 이 길은 좋은 길을 따라 삥 돌아가는 찻길로 가는거 보다 직선으로 이어진 전봇대를 따라가는게 더 빨랐다.

 해가 조금씩 석양으로 넘어가고.. 몸도 지쳐갔다. 힘들기는 하지만 티벳 사람이 야크를 타고 유유히 집으로 가는 모습과 야생동물을 볼 수 있어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는 완전히 지고.. 날은 어두워지고..

 다카까지 서둘러야 되었다. 하늘에 구름이 완전히 깔려있어서 별빛과 달빛을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22:20 거의 5시간동안 쉬지 않고 걸었다. 주위에는 이미 어둠이 깔리고.. 날이 더 어두워져 완전히 안보이는 상황이 되면 끝장이다.. 거의 초인적인 힘으로 걸었다. 다리는 저려오고.. 아 그냥 내일 출발할껄..이라는 후회감이 몰려왔다.  

 어? 그런데 저 벌리 불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속도를 내서 걸어가니 마을이었다. 마을이래봤자 집몇채가 전부일뿐..

 마을입구에 들어서자 검문소 검문대가 날 막았다.. 이럴때는 그냥 사뿐하게 넘어주면 된다.

 마을에 들어가 HOTEL 간판이 쓰인 집에 들어가니 이미 꽉차서 자리가 없다고 한다. 또힌 절망적이게도 이곳에는 다른 초대소가 없다고 한다.. 어떻해야 하지... 이대로 어두운 상태에서 마나사로바까지 가야 하나...

 초대소를 나온 순간.. 갑자기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로 '니혼징 데스까?(일본인이세요?)'라는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초대소 안에서 내가 중국인과 대화를 잘 못하는것을 보고 일본인인줄 알았나 보다.. 일본인 남녀 한쌍은 초대소주인에게 잘 이야기를 해서 날 20위엔(콜라1캔 포함)에 주인집에 자게 해주었다. 정말 절망적인 상황에서 반가운 만남이었다.

 23:00 일본인의 도움으로 주인집에서 잘 수 있었다. 주인방에는 많은 상품들이 있었다. 날 믿기에 이렇게 재워준다는것을 알 수 있었다. 침대는 아니지만 덕분에 티벳 전통방식으로 편하게 양털을 덮고 잘 수 있었다.

 8월 9일(토)

 어제는 카일라스산이었다면 오늘은 마나사로바다!!

 8:13 어제 도움을 주었던 일본인들에게 제대로 인사를 하지 못한채 마나사로바로 향했다. 거리는 8킬로.. 2시간이면 걸을 거리이다.

 그런데 지나가는 사람마다 20킬로는 될거라고 하는것이다...불길한 예감이..

 역시.. 마나사로바로 가는 길은 나에게 많은 고통을 주었다. 끝없는 언덕이 반복되고.. 방심하느라 미쳐 물을 준비하지 못한게 정말 후회가 되었다.

 할수 없지.. 계속 걸을 수 밖에.. 어제에 이어 국토순례는 계속 되었다.

 한참 걷다가 그냥 도로를 따라가는것 보다는 일단 호수를 직접 만져본 후 호수를 따라 가기로 했다.

 11:13 딱 3시간후.. 몇개의 언덕을 오르고 내렸는지 기억이 안난다.. 한 언덕 정상을 올랐을때... 이럴수가! 마나사로바 전면이 날 맞이해 주는게 아닌가..

 정말 아름답다.. 마나사로바 호수는 조용한 미소로 날 맞이해주었다. 한편에서는 햇빛에 반사된 물결들이 살랑살랑 미소 지으며 나한테 어서오라고 말하는거 같았다. 디카로 사진을 찍었지만.. 사진으로는 결코 표현될 수 없는 그런 풍경이었다. 아 어서 마나사로바를 향해 가야지.. 마나사로바가 보여도 호수가까지는 몇킬로를 걸어야 했다.

 12:20 언덕을 내려와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내려 마나사로바 호수에 닿았다.. 간간히 코라를 도는 티벳인들이 보였다. 와 아름답다..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아름다움이었다.

 일단 호숫물로 세면을 했다. 세면을 하는 장면을 디카의 자동기능으로 찍었는데 나를 제외한 다른 풍경이 온통 환한 빛으로 사진이 나오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일지는 몰라도 한번도 그런적이 없었다. 와..역시 성스러운 호수이구나..

 물을 마셔 보았다. 약간 짭짜름 하면서 짜지 않았다.. 이렇게 어정쩡한 짠 맛 때문에 마나사로바에 물고기가 살지 않나 보다.

 여기서 가까운 치우사원까지는 몇킬로가 되어보였다. 이왕 이렇게 온거 짧지만 호숫가를 거닐며 코라를 돌기로 했다.

 따가운 햇빛이 나의 몸을때렸지만 반짝이는 호수와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치우사원방향으로 걸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다 시피 너무나 목말랐다.

 13:20 치우사원 근처까지 왔다. 이곳은 아까 처음 보았던 호수에 비해 물이 그리 맑지도 않고 벌레들이 많았다. 아.. 호수가 나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줄려고 일부러 저편으로 인도했구나..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너무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팠다. 치우사원입구의 작은 언덕을 오르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릴정도이니..

 하지만 목적지에 도달하고.. 가게를 보자마자 음료수 2개를 사서 뚝딱 해치웠다.

 치우사원 근처에 마을이 있는데 이곳에서 한국식 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13:40 이제 알리로 돌아가야지.. 라면을 먹고 잠시 쉰 후 지나가는 차를 기다렸다. 어짜피 오늘안으로 들어가기는 힘들거 같구.. 제발 빨리 차가 잡혀라..

 알리로 가는 길목에 서 있는데 한대의 유조차가 지나간다. 기대를 안하고 히치를 했는데 차가 순순히 선다. 운전자를 비롯한 3명의 멤버.. 3명은 운전자, 운전자 동료, 군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운전자에게 물으니 알리로 간다고 한다. 그러면서 통신증(허가증)이 있냐고 물어본다. 당연히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운전자는 알리까지 처음 300위안을 요구하다 이내 200위안으로 내린다. 난 현재 가지고 있는 돈이 총 400위안밖에 없으며 만약에 여기서 200을 주면 신장 예청까지 가지 못하고 따라서 신용카드도 못쓰기 때문에 꼭 100위안에 가야 한다고 절박한 표정으로 말했다.(내 주머니에는 300달러와 1400위안이 있는 상태)

 말하면서도.. '이 정도 되면 아카데미상 감인데?'라며 나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운전자는 학생이냐고 물어보더니.. 잠시 생각한다. 한국인이라는 말에 흥미를 느낀 군인이 옆에서 내 말을 거들어 준다. 이내 100위엔에 '커이(좋아)'라는 대답을 해준다. 좀 미얀하기는 하지만 어쩔수 없는 생존의 방식.

 이번 유조차는 정말 좋았다. 자리도 넓었고 무엇보다 운전자가 잠을 자는 칸을 내가 다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어제의 트럭에 같은 자리에 4명이 꾹꾹눌러 앉았던 것에 비교하면 그야말로 천국..

 14:40 그런데 어제 잠을 잤던 바카에서 문제가 생겼다. 여태까지 검문에 한번도 안걸렸는데 이곳은 양상이 다르다 모든 통행자가 차에서 내려 통행증 검사와 신분증을 검사하는 것이다. 어제밤 걸어서 넘었을때는 몰랐는데 결과적으로 걸어 들어가기 잘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

 내가 탄 유조차도 마찬가지로 모두 내려서 검사를 받고 등록을 한다.. 아.. 여태까지 검문에 한번도 안걸린 신화가 여기서 무너지는구나.. 어떻해야 하지? 이미 운전자에게 통행증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일단 검문소를 살폈다. 두명의 군인이 있는데 한명은 실내에 들어가서 이름을 장부에 등록을 하고 한명은 가만 앉아 있다가 차의 모든 멤버들이 검문을 마치면 검문대를 열어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우리차의 멤버들이 등록을 마치고.. 난 조금 시간을 지체하면서 등록을 하는척 했다. 물론 다른 차의 중국인들이 있기에 가능한일.. 일단 운전자와 검문대를 열어주는 군인만 속이면 되는 것이다.

 잠시 시간을 지체하다.. 등록을 한것 처럼 신분증을 주머니에 넣는 척하며 호주머니를 들척이고 포커페이스(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유조차에 승차했다.

 잠시 정차한 유조차는 출발하기 시작하고.. 검문대를 열어주는 군인이 검문대를 열어주었다.. 아싸! 성공이다.

 또 하나의 성공에 기뻐하는 찰나.. 검문대를 지난 유조차는 10미터도 안가더니 다시 선다.. 뒤에서 서라는 신호를 했나 보다. 운전자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다시 내리고..

 아.. 결국 걸렸구나.. 휴..

 군인과 운전자에게 할 변명을 생각하고 있는데.. 어? 아무도 나한테 오지 않는 것이다. 긴장한채로 가만 있는데 트럭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운전자와 몇몇 군인이 담배를 꼴아 물며 쭈그려 앉아 이야기를 하고 있고.. 난 조심스럽게 빽미러를 통해서 지켜보았다.

 알고보니 검문소 군인이 차를 다시 세운 이유는 동료군인을 알리까지 태우게 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가격협상이 안되는 모양..

 협상은 결렬되고 트럭은 출발했다. 아까 같이 차를 탔던 군인이 나를 비롯한 나머지 3명의 멤버에게 맥주 한캔식 던져주고. 아싸 성공!! 이건 무슨 첩보 드라마도 아니고.. 검문소 무사통과에다 맥주 보너스까지..^^

 하사인듯한 군인은 통신병인거 같았다. 군대 막사를 지날때 마다 내려서 전령을 전해주고.. 그는 한국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거 같았다. 금강산도 알고 한국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도 알고 있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내가 약자가 입장에서 이해해주는척 했다. 특히 그는 일본을 무척 싫어하는것 같았다.

 15:00 다르첸으로 달리고 있는데 우박이 내린다. 만약에 또 걸어갔으면 크게 낭패를 볼 뻔했따.

 18:00 다르첸을 지나 달리던 차는 한 마을에 선다. 이곳에서 식사를 할 모양.. 그런데 이곳에서 어제 도움을 받았던 일본인들을 만났다. 그들은 오전에 마나사로바호수를 보고 오후에 랜드쿠르져를 이용해서 알리까지 200위엔에 가는 모양이다.

 내 이야기를 들은 일본인들은 스고이(대단하다)를 외치며 서로 이야기 했다. 오랫만에 영어로 이야기를 통하는 사람을 만나서 더욱 반가웠다.

 일본인들과 같이 라미엔(10위엔)을 먹고 나니 우리 유조차가 출발할려고 한다. 값을 지불할려고 얼마냐고 물어보니까 일본인들도 모른다고 한다. 그런데 일본인이 탄 랜드쿠르져 주인인듯한 운전자가 자기가 사주는 거니 그냥 가라고 한다. 일본인과 동승한 중국인들에게 미소로 대했던게 주요했던 모양.. 와.. 10위엔 벌었다.

 유조차를 타기 앞서 일본여행자가 나한테 한 의미심장한 한마디.. 'You are very lucky'

 18:45 차는 다시 출발하고.. 유조차 운전사가 다시 120위엔을 달라고 하기에 난 학생이라고 간단하게 대답하며 넘어갔다.

 유조차의 전 멤버가 계속 일본을 욕하며 나한테 동의를 구한다.. 어쩔수 없지.. 정말 아까 만난 일본인들에게 미얀할 뿐이다.

 중국도 한국 못지않게 일본을 싫어한다.

 중간에 군인은 내리고..

 23:10 오늘 도착 못할줄 알았던 알리에 오늘 도착했다. 일본인들이 탄 랜드쿠르져는 고장이 나서 오히려 나보다 더 늦게 왔다.

 잠시 인빈관에서 쉬고 있는데 내방에 2명이 더 온다. 아까 만난 일본인들.. 그들과의 우연한 몇번의 만남을 통해 친해졌다.

 둘다 중국어가 능통하며 중국에서 유학을 하고 있다. 남자는 나보다 한살 어린 24살 이름은 요시오고 쿤밍에서 유학을 하고 있다. 여자는 나보다 한살 많은 26살이고 이름은 유카..

 앞으로 며칠동안 이들과 여행을 하게 된다.

 카일라스 마나사로바.. 둘다 찾아가는데 정말 힘들었다. 힘들었던 만큼 남는게 많다고 했던가.. 그 어떤때보다 스릴넘치는 여행이고 감동스러운 여행이다.

 카일라스산과 마나사로바호수를 처음 대면했을때의 감동의 전율을 글로써 표현하지 못한게 아쉽기만 할 뿐이다.

 -다음은 자댜의 구게왕조 편이 이어집니다-

 알리시내를 관통하는 하천.. 이 하천은 남쪽으로 흘러 인더스강과 합류한다.

 알리시내 외곽의 모습.. 한산하다.

 알리에서 남동쪽으로 330킬로 떨어진 카일라스산으로 가는길.. 저 멀리 설산들이 보인다.

 넓은 사막을 구름들이 가렸다.

 설산이 쭉 이어져 있다. 온난한 이곳과 달리 설산 부근은 영하권 이라는 뜻.

 알리~푸란 구간은 현재 포장도로 공사가 진행중.. 일부도로가 포장이 잘되어 있다.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사람이 사는 마을 주면에는 하천과 식물들이 있다.

 트럭위에서 찍은 모습.. 이 사진을 보며 '나도 이때는 티벳 사람이 다 되었구나'라는 회한에 잠긴다.

 카일라스산의 입구인 다르첸.. 수천년동안 순례자들의 출발지로 여겨져왔다.

 다르첸 내부의 모습.. 거의 모두가 순례자를 대상으로 하는 식당과 가게들이다.

 카일라스산으로 가는 입구.. 신의 산과 만난다는 생각에 설레였다.

 카일라스산 중턱에서 바라본 카일라스 호수.. 신의 호수를 멀리서나마 볼 수 있었다.

 카일라스산과 나.. 주변 구름으로 인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카일라스 주봉.

 카일라스산 중턱에 위치한 세룽사원

 단 2일동안의 만남이지만 서로를 배려하는 친구가된 샹

 신의 산 카일라스.. 경외감으로 카일라스를 바라 보았다.

 하산을 하기 직전 카일라스가 구름 옷을 벗고 모습을 드러냈다.. 잘까라는 작별 인사였으리..

 다르첸 주변의 순례자들의 텐트.. 이들의 종교적인 신념으로 가득찬 눈빛으로 카일라스의 코라를 돈다.

 다르첸의 한 잡화점에서.. 물건이 많은걸 보니 장사가 존 되는 모양이다.

 군기 빠진 티벳 개 3마리..

 마나사로바 입구인 바르카로 가는길.. 계속되는 평지라서 목표가 손에 잡힐 듯 하지만 사실 33킬로의 만만치 않은 거리이다.

 멀리서 바라본 다르첸.. 인연이 있으면 또 오게 되겠지..(완전히 질려서 아마 안올듯..)

 야크를 타고 한가히 집으로 가는 티벳인들.. 정겨운 모습이다.

 바르카에서의 나의 침대.. 추울줄 알았는데 양털옷 덕분에 따뜻하게 잘 수 있었다.

 마을이라고 하지만 많은 집이 천막으로 되어 있다.

 저 멀리 설산이 은은하게 보이는게 아름답다.

 멀리서 바라본 마나사로바.. 마나사로바가 처음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넓디 넓은 마나사로바.. 호수의 넓이가 디지털 카메라로는 표현이 안된다.

 잔잔한 신의 호수..

 태양빛에 반사되어서 그런지 표면이 반짝반짝 빛나지만 난 신의 호수가 나를 반기는 걸로 생각했다.

 마나사로바 코라를 도는 순례자들

 우연일까? 카메라 자동기능을 이용해서 마나사로바호수에서 세수하는 장면을 찍었는데 사방이 빛으로 가득한 모습으로 나왔다.. 한번도 이런적이 없었는데.. 우연일까? 아님 호수의 신성한일까?

호수를 배경으로 한컷~

 마나사라바 북서쪽에 위치한 치우사원

 

 서티벳 여행기여행기 3(8,10~8,13) 악전고투속에 피어난 우정, 구게왕조 유적

 8월 10일(일)

 어제 밤에 알리에 도착해서 그런지 나와 일본인 여행자들(유카, 요시오)는 12시가 넘도록 잤다.

 카일라스와 마나사로바를 봤으니 이제는 알리를 떠나 신장 예청으로 넘어가는 여행이 날 기다렸다.

 일본인 여행자들은 구게왕조의 유적지가 있는 쟈다로 떠난다고 하며 나랑 같이 가자고 권한다.

 서부티벳의 중심도시 답게 알리는 분주한 분위기였다. 한가지 이해하기 힘든것은 이 작은 도시에 지나치게 많은 택시가 있다는 것이다. 머.. 특별한 공장이 없는 알리에서 머고 살려면 이것저것 해야 겠지만.. 빈택시를 저렇게 하루종일 몰고 다니면 오히려 기름값이 나지 않을까?

 작은 도시에 더구나 소득원이 적은 티벳인들이 택시를 탈리는 없고.. 미스테리였다.

 서티벳에서 신장 예청까지는 1100킬로가 넘는 거리이다. 역시 트럭을 섭외해서 가야될 상황.. 트럭을 알아보기 앞서 근처 식당에서 신장 라미엔(10위엔)을 아점삼아 먹었다. 값이 비싸기는 하지만 모처럼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어서 만족했다.

 한참 라미엔을 먹고 있을때.. 옆의 손님이 말을 걸었다. 어디로 가냐는 말에 예청에 간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의 말.. '예청루 뿌통(예청길 끊겼다)' 이런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

 이제 난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답은 라싸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 험한 길을 또 되돌아가는 과정을 밟고 싶지는 않았다.

 혹시나 해서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니.. 역시 뿌통..

 알리에서는 인빈관 근처에 있는 피시방을 이용했는데 너무 느리고 인터넷도 자주 끊겼다. 한글도 안깔아지길래 주인에게 말을 해서 프로그램 다운이 되는 컴퓨터로 교체를 해서 쓰는 실정이었다.

 이날도 피시방에 갔다. 이미 요시오와 유카가 자리를 잡고 느린 인터넷과 씨름하고 있었다. 인터넷을 했지만 이내 느린속도에 질려서 금새 나왔다.

 숙소에 들어가서 노트북으로 게임을 하고 있으니 유카가 들어온다. 유카는 나보다 한살 많은 26살로 성도에서 유학을 하고 있다. 친절하고 일본인 치고는 미인이다. 서부티벳을 여행하기에는 가날픈 여인의 인상이었다.

 유카가 계속 '이따이.. 이따이..'하고 중얼거린다. 이따이? 아.. 중고등학교때 일본에서 환경병이 발생했는데 그때 일본 주민들이 '이따이(아프다)'라고 외쳐서 환경병 이름이 이따이이따이 병으로 책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유카가 많이 아프구나.. 유카에게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보니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때마침 배낭에 한번도 쓰지 않은 두통약이 있어서 유카에게 주었다. 유카는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정말 고마워한다.
유카에게 밥을 먹었냐고 물어보았다. 유카의 대답은 NO.. 마땅히 밥먹을데를 찾지 못해서 계속 굶었던 모양이다.

 유카와 며칠전 스위스인에게 소개받은 티벳식당에 들어갔다. 거기서 샴다(카레밥에 야크고기와 감자가 얹져져 있음)를 시켰다.

 다행히 샴다는 유카의 입맛에 맞는 모양이다. 맞있게 잘 먹는다.

 유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유카가 꺼얼무에서 당한 황당한 사건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유카가 라싸를 들어가기 위해 꺼얼무에서 차를 알아볼때 유카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중국인이 마구 화를 내더니 유카의 카메라를 던져버렸다고 한다.

 카메라 렌즈가 깨졌지만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주변의 냉담한 시선이 무서워 아무런 말도 못하고 숙소로 들어갔다고 한다.

 유카는 우울한 표정으로 많은 중국인이 일본 사람을 싫어한다고 했다.

 하긴.. 중국 역시 우리나라 못지 않게 일본에게 역사적인 응어리를 가지고 있다. 특히 일본이 난징을 점령한 직후 학살한 30만명에 달하는 민간인에 대해 일본 정부는 아직까지도 침묵 하고 있지 않은가..

 역사와 정부는 밉지만 사람까지 미워해서는 안될텐데.. 중국의 어디를 가나 미움을 받는 일본인의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진지하게 역사와 일본 정부 때문일거라고 이야기 했다. 현재 세계는 새로히 경제블록을 형성하고 있다. 유럽의 EC, 북미의 NAFTA, 동남아의 ASEAN등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 일본, 한국, 북한으로 이어지는 경제 벨트는 그야말로 이상적인 벨트이다. 일본, 한국의 자본력과 기술, 중국의 자원과 노동력, 북한의 노동력, 거기에다 화교 경제권이 합쳐진다면 그 어느 경제 벨트로 능가할수 없는 거대 벨트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정부의 태도 변화와 역사 청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유카와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앞으로 좋은 방향으로 외교관계가 형성되었으면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사람들끼리 1:1로는 금방 친해지는데 국가간에 해묵은 앙금은 풀어내기가 왜이리 힘든지..

 저녁이 되자 알리의 다른 피시방을 찾았다. 인빈관에서 사거리를 직선으로 건너 100미터정도 가다 보면 'E왕빠'라고 쓰여진 인터넷 방이 있었다. 혹시나 해서 들어갔다..

 와.. 정말 빠르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쓰는것과 흡사한 속도이다. 한글 프로그램도 잘 다운받아지고.. 값은 여태껏 이용했던 왕빠와 같은 1시간에 4위엔.. 하.. 여지껏 여기를 몰랐을까..

 인터넷을 하고 인빈관으로 돌아가니 반가운 소식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어가 능통한 요시오가 쟈다까지 가는 트럭을 섭외했는데 1인당 50위엔이라고 한다. 놀라운 금액이다.

 며칠전 한국 여학생이 알아본 금액은 1인당 150위엔..

 또한 요시오는 내가 쟈다로 갈걸 예상하고 이미 3명이 갈거라고 이야기를 해 놨다는 것이다.

 멋적은 요시오의 표정.. '마에조노 베리굿..'이라고 외쳤다. 일본 여행자들 중에서 긴머리 산발을 한 일본 남자에게 난 무조건 마에조노(현 안양 LG 축구 선수)라는 별칭을 붙인다.

 이렇게 배려를 해줬는데 안갈 수 없지.. 마침 예청으로 가는 길도 끊기고.. 그래 이왕 서부티벳에 온 김에 구게왕조 유적지도 보는거다..!

 8월 11일(월)

 7:40 나와 요시오, 유카는 8시에 출발하는 트럭을 타러 인빈관을 출발했다. 사거리는 약간 지나 CHINA POST 건물 옆에 있는 트럭 주차장으로 갔다.

 그런데 쟈다로 출발하는 트럭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근처 기사에게 물어보니 오늘 쟈다로 가는 트럭은 없고 모레나 있을거라고 한다. 이런.. 우리가 속은 걸까?

 요시오는 좀 더 기다려 보자고 한다. 같은 트럭 운전사에게 물어보니 신장 예청에 길에 관한 자세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 공사때문에 막혀있고 10일중 하루만 길을 연다는 것이다... 휴.. 부정확한 정보들이기는 하지만 분명한건 지금 길이 막혀있다는 것.

 약속된 8시가 훨씬 지난 9시 20분경.. 그냥 오늘 포기하고 돌아갈까 고민하고 있던 찰나에 한 운전사가 초대소에서 나오더니 오늘 쟈다로 가냐고 물으며 금방 차를 가지고 온다고 한다.

 역시 기다린 보람이 있구나.. 그렇다고 해도 1시간 20분이나 늦게 나타나다니. 하지만 50위엔에 가는 쟈다 가는 길이기에 그냥 싼값의 고통의 일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9:40 차는 출발하고.. 이내 근처 식당에 멈췄다. 아침 식사를 한다냐.. 아.. 참 출발하기 힘들다.

 아침을 먹기직전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는데 설사가 심하다.. 어제 뭘 잘못 먹은 모양이다. 아무래도 힘드 여행이 될듯.. 배가 계속 아파왔다.

 10:07 차는 다시 출발하고.. 유카는 앞좌석에 타고 요시오와 나와 한명의 중국인은 화물칸에 탔다. 화물칸이기는 하지만 메트리스가 있어서 편하게 누워서 갈 수 있었다.

 그것도 잠시.. 비포장 도로에 계속해서 화물칸은 흔들리고.. 또한 흙먼지가 날리고.. 때로는 비가 내렸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잠이 오다니.. 인간은 정말 위대한 존재라는것을 나 스스로가 증명하고 있었다.

 13:00 사막을 달리는 도로는 카일라스로 이어지는 다르첸도로와 쟈다 도로가 갈라지는 분기점이 나타났다. 트럭은 쟈다로 향하고.. 쟈다로 향하는 도로는 계속되는 산길 오르막이었다. 매트리스가 깔려있기는 하지만 오르막 비포장은 계속해서 나의 등을 비롯한 신체를 강타하였다.

 오르막을 가나보니 계곡이 나타나고 야크티 찻집이 있었다. 티벳에는 따로 음식점이 있는게 아니라 야크티와 휴식처를 제공하는 일종의 휴계소가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운전자는 쉬면서 가져온 음식과 야크티로 배를 채우고..

 나와 일본인 여행객들은 주인이 계속 야크티를 권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야크티 2잔을 마셨다.. 아.. 아침부터 아픈 속이 더 아파진다.. 그나마 말린 야크고기와 함께 먹어서 느끼함이 덜 했다.

 트럭은 다시 출발하고.. 또 고통속에서 트럭을 탔다.. 산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추워지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내 온몸은 비로 젖어 버리고.. 아침부터 문제가 되었던 배는 계속 아파왔다. 간간히 트럭이 멈출때마다 설사를 해야만 했다.

 큰 고개를 2개 넘고 평지가 나타났다. 이제 쟈다가 가까워지나.. 다시 계곡이 나타났다. 반대편에 다르첸 방향에서 쟈다로 올라오는 길이 보였다. 아.. 여기서 또 길이 합쳐지는 구나.. 신비의 구게왕국으로 가는 길은 이렇게 2개의 길 뿐이었다.

 티하우스에서 잠시 쉰뒤 다시 쟈다로 향했다. 험한 산길이었던 길은 어느순간 아름다운 토사 협곡으로 변해 있었다.

 아.. 아름답다.. 책에서만 보던 그랜드 캐년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백만년동안 침식되고 침식되어서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만들어진 토림들.. 평소 론니 플래닛 책에 수록된 사진중에서 서티벳이 소개된 사진에 아름다운 토림들이 배경으로 있는 사진이 있는데.. 그걸 보며 아.. 서티벳은 아름답구나.. 하는 감탄을 했었다.. 거기가 바로 여기였다.

 황량한 모래사막에서 아름다움에 심취했다. 사진으로 보는 풍경과 직접 보는 풍경은 결코 비견될 수가 없었다.

 트럭은 끝없이 토림을 헤쳐 나가고.. 21시가 다 되어서 저 멀리 쟈다가 보였다. 사막의 외딴도시 쟈다.. 이곳에 화려한 왕국이 있었다니.. 도져히 믿기지 않았다. 걱정했던 검문소는 역시 존재하지 않았고..

 쟈다에 도착하고 약속된 50위엔을 운전사에게 줄려고 하는데 갑자기 운전사는 80위엔을 달라는 것이다. 머야? 약속과 틀리잖아.. 50위엔을 준다는 말에 운전사는 그냥 숙소로 들어가고.. 우린 추운 날씨에 가만 서 있어야 했다.

 유카와 요시오는 그냥 돈을 지불할려는 눈치.. 아하.. 이럴때 나의 실력을 보여줘야지.. 난 운전자가 들어간 방으로 들어가 50위엔을 받지 않으면 그냥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나와서 가방을 챙기고 정말로 가는 척 했다.

 놀란 운전자는 황급히 나오고.. 결국 나와 요시오는 50위엔에.. 앞좌석에 탄 유카는 편하게 갔다는 이유로 80위엔을 냈다. 이러한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요시오와 유카는 '스고이(대단하다)'를 연신 중얼 댔다.

 숙소는 1인당 25위엔의 저렴한 숙소에 묵었는데 여기서도 3인에 70위엔으로 깍았다. 역시 일본인들은 감탄사..

 숙소에서 요시오와 유카에게 한국에 음식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고, 한국을 저렴하게 여행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잠은 파출소나 교회 마을회관에 얻어자고 정 없으면 어디에나 있는 찜질방이나 피시방에서 자면 저렴하다고 이야기 해줬다. 내가 설명하면서도 정말 우리나라 여행하기는 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부터 아픈 배는 아직도 아프다.. 점점 심해질거 같다..

 8월 12일(화)

 밤새 설사가 심했다. 아무래도 몸에 무리가 간거 같은데..

 11:30 구게왕조 유적지를 가는 차량을 구할려고 초대소를 나섰다. 쟈다에서 20킬로 정도 떨어진 구게왕조 유적인 걸어갈려면 이미 늦은 시간이고 더구나 사막의 따가운 햇빛을 보며 전혀 걸어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초대소 주인에게 물어보니 바우쳐(랜트카)를 500위엔에 하루 빌리면 된다며 자신이 소개시켜준다고 했다.

 웃으며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속으로 정신나간 소리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구게왕조로 가는 길목에 섰다. 역시.. 차량이 거의 없고.. 일단 잠시 걷기로 했다.

 5분정도 걷자 트럭이 나타나고 뒤쳐진 유카가 트럭을 잡더니 이내 트럭을 보낸다. 어? 구게 왕조까지 안가나.. 앞서 걸어가는 요시오와 난 다시 트럭을 세웠다.

 중국어로 요시오가 머라고 말하더니 그냥 트럭을 보낼려고 한 찰나.. 내가 한마디 했다. '구게 왕궈 커이마?(구게왕조 좋아요?)' 운전자의 대답은 '커이(좋아)' 1인당 얼마받냐는 이야기에 '뿌야요 챈..(돈 필요없어요)'.. 오 이런 돈을 안 받고 태워주다니.. 여태껏 중국을 여행하면서 운전자에게 처음으로 들어보는 말이었다.

 근데 왜 일본인들은 그냥 트럭을 보낼라 그랬지?

 론니 플래닛에는 쟈다에서 구게왕조유적지로 가는길에 히치를 하면 대단한 행운이라고 했다. 그럼 지금 우린 대단한 행운을 잡은건가?

 트럭은 구게왕조 유적지에서 4킬로정도 떨어진 지점의 갈림길에서 우릴 내려 놓았다. 인심좋은 운전자는 지름길까지 알려 주었다.

 요시오는 산을 가르키며 거기까지 가면 된다고 했다. 음.. 금방 갈거 같은데..

 그러나... 결코 쉬운길이 아니었다. 햇빛이 쨍쨍 내리는 햇빛도 햇빛이지만 구게왕조로 가는길에 깊게 파여있는 계곡을 넘는것도 큰 일이었다. 결국 길찾기 전문인 내가 앞장서 계곡을 헤쳐나가고..

 힘든 고행과 계속 되는 배아픔.. 무엇보다도 물을 준비 안해서 정말로 목 말랐다.

 1시간 30분을 그렇게 고행길을 걷고 나서.. 13시 50분 구게 왕조 입구에 도착했다. 마치 신비의 왕국을 찾아 떠나서 고행끝에 찾아내는 인디아나 존스와 같은 기분이었다.

 일단 가게에 들어가서 물을 2병 사먹었다. 물 한병당 쟈다의 2배가 넘는 7위엔이지만 목마름에 지친 나에게는 천금을 줘야 해도 마셔야 하는 소중한 물이었다.

 구게왕조 유적지는 관람료가 105위엔이었다. 작년까지는 350위엔이었는데.. 어떤 이유인지는 몰라도 입장료가 대폭 하락되었다.

 신비의 구게 왕국은 문화혁명때 파손된채 그대로 있었다. 가이드를 따라 벽화들을 관람하고.. 여태껏 여행하면서 볼수 없는 그림들이 내 눈앞에 다가왔다. 인도와 네팔 양식이 혼합되고 거기에다 중국양식과 티벳 양식이 양념쳐진.. 그야말로 하나의 문화였다.

 1635년.. 화려한 구게 왕국은 이웃나라에게 점령당하고..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때문에 구게 왕국에 관한 역사적인 사료가 거의 없는 편이다.

 아.. 세월은 무구한거구나.. 이렇게 황량한 유적지만이 지난 역사의 흔적을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구게왕국유적은 계속되는 오르막을 올라야 하는데 계속 배가 아팠다. 옆에서 유카가 '찬수, 찬수'라고 이름을 부르면서 챙겨 주었다. 정말 고마울 뿐이다.

 계속 되는 계단을 오르는데 중국인 커플이 보였다. 군인인듯한 사내는 유카에게 말을 걸고.. 유카는 일본인이라면서 일본인 특유의 친절한 미소로 답을 해주었다.

 그 미소에 매료 되었는지 사내는 잠시 이야기 하더니 갈때 차편이 없으면 자신이 가져온 차를 타고 가자고 이야기 했다. 내심 쟈다로 가는 차에 대한 걱정이 앞선던 우리에게 큰 희소식이다.. 아.. 행운이 계속 되는구나.. 본이 아니게 일본인의 미소 덕을 보았다.

 구게 왕국 유적의 꼭대기에 올라갔다. 아.. 아름답다.. 파괴된 문명의 흔적이기는 하지만 주변 사막과 어울려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배만 아프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텐데.. 배는 계속 아파왔다.

 15:30 우리 일행은 기다리고 있던 한족 커플의 차를 탔다. 우리가 탄 차가 여기서 출발하는 마지막 차 였다. 만약에 이 차를 타지 못했음 그냥 쟈다까지 걸어가야 했지만.. 사막길과 아픈배로 가기는 불가능했다.

 한족 커플은 애인이 외지에서 이곳까지 면회를 나와서 잠시 차를 빌려 데이트를 하는거 같았다. 참 행복해 보였다.. 나도 저런 애인이 있었으면.. 그들은 우리에게 우유를 대접해 주었다. 정말 고맙고 계속 되는 행운에 감사할 뿐이다.

 잠시 티벳 전통 다리에서 기념 촬영을 한뒤 쟈다로 향했다. 16:20 쟈다에 도착했다.

 초대소에 도착하자마자 잤다. 배가 아팠기 때문이다. 걱정스런 눈빛으로 유카는 나의 안부를 묻고.. 난 괜찮다고 했다.

 잠들다 오후 7시정도에 유카와 같이 쟈다 근처의 튀린사원으로 갔다. 승려가 없는 사원이고 입장료는 80위엔.. 아마 사원속의 그림을 볼려면 입장권을 구입해야 되는거 같았다.

 사원속 그림을 위해 80위엔을 투자할 생각이 없었다.

 튀린 사원을 둘러본 후 다시 잤다...

 22시경.. 일어나서 다시 설사를 하고.. 내일 차를 구해야 될텐데.. 하고 걱정하고 있는 찰나 요시오가 반가운 소식을 가져왔다. 이미 60위엔에 알리까지 가는 차를 구했다는 것이다. 정말 대단한 능력이다..

 처음.. 왕복 교통비 300위엔에 입장료 350위엔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결국 교통비 110위엔에 입장료 105원으로 구게왕조 유적을 본 것이다..

 정말로 행운의 여신은 계속 날 지켜주나 보다.. 아니.. 혹시 보이지 않은 큰 손이 나의 여행 곳곳에 이런 행운을 배치한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오늘도 유카, 요시오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이미 국경을 넘은 친구가 된 것이다. 우리는 어정쩡한 영어와 중국어.. 간간히 일본어로 대화를 했다.

 요시오는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은거 같다. 특히 요시오학교(쿤밍대학)에 5명의 한국인 친구들과 친한거 같은데 한국의 음식과 술문화에 흥미를 느끼는거 같았다.

 다른 두 문화가 서로 공존을 하며..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8월 13일(수)

 자다가 한명의 일본인이 우리 숙소에 들어왔다. 그는 서부티벳을 2주째 여행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일본인들은 서부티벳에서 만나다니..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은 카일라스로 떠난 이후에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

 아침에 산뜻한 기분으로 일어났다. 어제까지 아픈 배는 어제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덕분인지 그나마 진정되고 있었다.

 오전 11시에 출발하는 트럭을 타기 위해 초대소를 나섰다.. 그러나 약속된 차는 오지 않고.. 역시 60위엔에 알리로 가기에는 무리인가?

 우리는 알리로 가는 길목에 그저 기다리기로 했다.

 알리로 가는 트럭들은 대부분 이른 새벽에 출발하기 때문에 지나다니는 차는 공사차량 외에는 거의 없었다.

 1시간.. 2시간.. 뜨거운 햇볕과 막연한 답답함이 우리를 괴롭게 했다. 요시오가 오늘은 차가 없는거 같다면서 그냥 돌아갈까 고민하고 있었다.. 알리에서 출발할때와 달리 이번에는 내가 더 기다려 보자고 했다.

 13:15 요시오와 내가 쟈다로 다시 들어가 직접 트럭을 수배할려는 찰나.. 약속 된 트럭이 보였다. 이럴수가 2시간 15분이나 늦다니.. 그래도 오늘 알리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반갑기만 했다.

 트럭은 출발하고.. 나와 요시오 유카는 짐칸에 탔다.

 최악이다.. 서부티벳을 여행하면서 이런 수식어를 많이 썼지만.. 그야말로 최악이다. 트럭은 계속해서 흙먼지를 우리가 있는 짐칸으로 뿜어내고.. 계속해서 뿌연 먼지속에서 트럭여행을 해야 되었다.

 나와 유카는 옷으로 입을 막고 숨을 쉬고.. 요시오는 포기한듯 그냥 잔다.. 정말 스고이(대단하다) 하다.

 이렇게 3시간이 경과하자 나 역시 먼지를 마시던 말던 그냥 숨을 쉬고.. 그냥 포기하고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2일전에 왔던 과정을 반대로 꼽씹으며 트럭은 알리로 향하고.. 이미 나의 옷과 안경 온 몸은 먼지로 둘러 쌓였다. 이렇게 짧은 글로 표현하지만 정말로 긴 시간이었다.

 힘든 상황이긴 하지만 우리 3명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말은 잘 안 통하지만 서로 힘내라고 겪려해 가며.. 가끔 비포장에 흔들리는 상황을 이용해 난 댄스를 추고.. 유카의 유쾌한 웃음이 이어졌다.

 악전고투속에 우리는 진정한 친구가 되어 있었다.

 23:30 저 멀리 알리가 보였다. 그런데 트럭은 알리를 지나치는게 아닌가.. 차를 세우니 운전자는 알리에서 북쪽으로 350킬로 떨어진 르투로 간다고 하는 것이다.

 다시 차를 돌려 알리로..

 알리에 도착하자 뿌듯함이 몰려왔다. 이렇게 값싸게 구게왕조유적을 보다니.. 온몸이 흙투성이가 된채로 우리 3명은 인빈관으로 왔다. 빈관에 들어서자 빈관주인이 우리의 행색에 놀란다. 빈관에 맡긴

 짐들을 다시 찾고..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이내 침대에 뻗어버렸다.

 쟈다로 가는길.. 알리~푸란 구간을 100킬로 정도 가다가 꺽어서 계속 산을 올라야 한다.

 쟈다 토림의 시작.. 와.. 이쁘다.. 하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시작에 불과했다.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이 잘 어우러져 있다.

 영화에 한 장면에 나올 법한 분위기.. 어두침침한 속에서 신비한 모양의 토림이..

 저녁이 되자 토림은 황금빛으로 변했다. 저 멀리 쟈다가 보인다.

 쟈다에 도착하기 직전 쌍 무지개가 보였다. 태어나서 2개의 무지개가 보이는건 처음임.

 구게왕조 유적지로 가는 길에서 바라본 쟈다

 전날과 달리 화창한 맑은 날이었다. 비가 거의 안오는 지역인듯

 병풍처럼 펼쳐진 토림이 수백킬로 이어진다고 한다.

 이 기이한 풍경에 인물 사진을 안찍을 수 없지^^

 저 멀리 구게왕조 유적지가 보인다.. 이런곳에도 왕국이 번영할 줄이야.. 인간의 능력은 끝이 없다.

 유적지 위에서 바라본 주변 풍경

 주변이 척박한 곳에 왕국을 세웠을 줄이야.. 감탄 또 감탄!

 폐허가 되 버린 유적지.. 하지만 그 폐허마저 주변 풍경과 잘 어우러 진다.

 유적지 정상에서 바라본 유적지전체 모습.. 돌아보면 알겠지만 거의 난공불락의 요새이다.

 겨울궁전이라고 불린 장소에서 한컷~

 일본의 유명 축구선수 마에조노라고 별명을 붙여준 요시오와 함께.

 일본인 특유의 친절미소가 베어 있는 유카와 함께.

 성벽이 여기저기 파괴되어 있다.

 파괴된 왕국의 애환은 이미 사람들 기억속에 잊혀진채.. 구름은 유유히 흐르고..

 머라고 쓸말이 없네.. 그냥 감상하시길

 작년에 17명의 우리나라 스님이 유적지에 기증을 했다고 한다. 그걸 기념해서 쓴 문구.

 티벳 전통 다리에서.. 좀 많이 흔들거린다.

 구게왕조 유적지를 관람하고 난 후 즐거운 모습

튀린사원탑.. 아무것도 볼거 없는 사원보다 아름다운 탑이 풍경과 어울려 보기에는 일품이었다.

쟈다에서 알리로 가는길.. 트럭을 타고 2시간이 경과했을 때의 모습.. 앞으로 10시간을 더 달려야 한다. 여행이 끝나고 그 시점을 되돌아 봐도 끔찍~

 

 서티벳 여행기여행기 4(8,14~8,18) 일본 여인과 함께한 아름다운 여행 (알리~예청)

 8월 14일(목)

 어제 고생해서 쟈다를 갔다온 후유증 때문인지 3명 모두 늦게 일어났다.

 인빈관 근처에 있는 샤워장에서 10위안을 주고 샤워를 하고 흙먼지가 가득 묻어 있는 옷들을 세탁했다.

 개운한 마음으로 알리시내를 돌아다녔다. 아.. 이제 알리도 낯설지 않은 도시가 되었군..

 개강(25일)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이제 서둘러야 하지만 현재 알리는 들어오기도 힘들고 나오기도 힘든 그런 도시가 되었다. 단 1주일만에 라싸로 가는 버스는 200위안에서 500으로 오르고 예청으로 가는 버스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일단 목적지인 예청으로 가기 위해서 정보를 얻었다.

 역시 말하는 이들마다 정보가 다르다. 분명한건 알리로 가는 버스가 끊겼고 현재 예청으로 향하는 도로에 무슨 문제가 있는것은 분명해 보인다는 것이다.

 알리시내를 돌아다니는데 군중들이 모여있는 모습이 보였다. 많은 군인과 공안(경찰)들도 동원이 되고..

 무슨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고위인사가 알리로 오나 보다. 시내 중심으로 공안의 호위를 받으며 20여대의 차가 알리에서 가장 고급인 포스트 호텔에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린이 고적대까지 동원되고, 행진이 끝나고 나서야 알리시내 전체가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녁때 인빈관에 돌아오니 유카가 예청행 트럭을 알아놨다고 한다. 1인당 300위엔씩..

 어? 예청으로 가는 길이 연결되어 있나? 의구심이 들기는 했지만 오늘 하루종일 트럭을 알아보느라 분주하게 돌아다닌 유카를 생각하면 그러한 의구심을 유카에게 말할수 없었다.

 좋아.. 일단 타보자!

 밤에 요시오와 유카와 함께 송별회를 했다. 이제껏 여행동료로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요시오는 학사일정때문에 빨리 라싸로 가서 쿤밍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한다.

 반면 전형적인 일본 미인 유카는 나와 함께 예청으로 가는 여행을 한다.

 둘다 만만치 않은 여행.. 갑갑하기는 하지만 시원한 라싸맥주를 들이키며 그러한 갑갑함을 순간 싯어 버렸다.

 8월 15일(금)

 오늘은 광복절이다. 정확히 58년전 35년간의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이 기쁜날.. 난 아이러니컬 하게도 일본인인 유카와 함께 이곳 알리를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을 시작하게 되었다.

 8:20에 일어나서 요시오와 작별인사를 하고 트럭 기사와 약속된 장소로 이동하였다. 40분에 기사와 만났지만 9시에 출발한다는 트럭은 10시가 지나도록 요지부동.. 이젠 익숙해진 현상이다.

 10:15 유카와 기다리다 지쳐 잠시 왕빠에 갔다. 왕빠에서 10분정도 메일을 검색했는데 이미 단골이 되어있어서 그런지 왕빠 주인이 돈을 안내도 된다고 했다. 아침부터 운이 좋은걸..^^

 10:53 드디어 예청으로 향하는 트럭이 출발했다. 아.. 또 빡센 여행이 시작되는 구나. 트럭은 알리시내를 관통해서 달렸는데 어제에 이어서 오늘 역시 알리시내 거리들이 깨끗이 청소되어 있었다.

 그러나... 알리시내를 벗어나자 마자 정차.. 라호반(트럭주인)이 볼일이 있어서 잠시 내렸다. 기다림은 계속 되고..

 11:30 다시 트럭이 출발했다.

 11:40 알리시내를 조금 벗어나자 체크포인트가 보였다. 공안이 천막안에 상주하는데 예청으로 가는 차량이라 그런지 아예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트럭기사가 직접 천막으로 가서 간단한 신분증 검사에 응한다.

 물론 OK.. 다시 출발. 유카는 웃으며 나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나를 만난 이후로 계속 럭키하다고 이야기 한다. 음.. 나도 동의하는 바임..

 트럭은 알리에서 카일라스(다르첸)으로 갈때와 비슷한 환경이다. 다른점이 있다면 카일라스로 갈때는 8명인데 지금은 4명이라는 것. 다리를 쭉 뻗고 가는것도 감사한데 운전기사와 라호반이 정말로 친절하다.

 일본 미인인 유카의 영향인듯. 유카는 항상 웃으면서 중국말로 이들의 말 벗이 되어준다. 덕분에 나까지 간접적으로 편해졌다.(트럭을 탈때마다 알 수 없는 중국말로 항상 질문공세를 받았었음)

 15:00 알리에서 예청까지는 총 1065킬로인데 중국지도상에는 그 구간에 10개의 도시와 마을이 표시되어 있다. 때문에 난 10개로 나누어서 트럭이 어디까지 진행했는지 재기로 했다. 재든 안재든 트럭이 가는건 같지만 그 만큼 트럭에서는 할일이 없다는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첫번째 표시지점인 알리에서 117킬로 떨어진 르뚜에 도착했다. 르뚜는 마을이라기 보다는 도시에 가까웠고 많은 트럭들이 정차해 있었다. 이곳이 교통의 요지라는 것을 대충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 내려서 식사(8위엔)를 했다.

 15:50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

 19:05 지도상에 지정한 두번째 표시지점(도마르)에 도착했다. 아직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운전사는 이곳에서 잔다고 한다. 라호반에게 예청 까지 며칠 걸리냐고 물어보니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한다.

 라호반은 진지한 표정으로 길이 통하면 모레, 길이 불통이면 3일이 더 걸릴거라는 말을 한다. 아.. 제발 길이 통해야 될텐데..

 도마르 초대소(10위안)에 여장을 풀었다. 초대소 주인은 나와 유카가 부부인줄 알고 계속 밀폐된 방을 권한다.

 유카는 성도에서 4개월째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일부러 외국인이 없는 학교(성도 사범대학)를 택했다고 한다. 때문에 같은 기간 공부한 요시오에 비해 중국어가 더 능통하다.

 같은 방을 쓰는 운전기사들은 계속 유카에게 질문 공세를 펼친다.

 자신들의 말이 유창한 일본 미인이 중국인들에게 신기한 호감의 대상이 되는가 보다. 모든이들이 유카에게 말을 걸고, 유카는 웃으며 대답해주며 때때로 나에게 통역까지 해준다. 여태껏 많은 트럭 여행중에서 편한 트럭 여행이 되었다.

 유카와 같이 도마르 주변을 걸으면서 한국과 일본의 음식문화에 대해서 이야기 했다. 미인과 외딴 티벳에서 데이트를 하다니..

 유카와 초대소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천둥소리가 몰아친다.. 아차! 배낭을 트럭 위에 그냥 올려 놓았지.. 유카와 트럭으로 뛰어가서 배낭을 꺼냈다.

 침대방 옆에는 중국인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밖에는 천둥이 치며 비가 오고.. 유카와 난 커피한잔을 하면서 이야기를 했다.

 유카는 꺼얼무에서 중국인에게 큰일을 당할 뻔했다. 멋모르고 중국인 남자를 따라갔다가 낭패를 볼뻔했는데 다행히 구조가 되었다.

 몸은 괜찮지만 마음에 큰 상처로 남는다고 했다. 때문에 모든 중국 남자가 싫어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유카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자 혼자 여행하는것이 정말 위험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속마음을 숨기는 일본인 답지 않게 모든 이야기를 해주는 유카가 내심 놀라웠다. 그만큼 여행파트너로서 나를 신뢰한다는 말도 되겠다.

 11시 반이 넘도록 유카와 이야기를 했다. 난 여태까지 일본 국민이 우리 나라 국민보다 월등하게 잘 살줄 알았는데 유카와 이야기를 하면서 꼭 그런것은 아니라는것을 알았다.

 난 유카에게 한국은 6년전 IMF로 인해서 변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또한 젊은 대통령을 뽑은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 구성원이 변화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해주었다.

 유카는 일본은 결코 변화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한다.

 유카와 이야기를 하면서 역동적인 우리사회에 대해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경제는 배로 따지면 작은배와 항공모함과 같다.

 작은 배는 쉽게 파손이 되고 폭풍우가 몰아치면 치명적인 파손을 당할 수도 있지만 반면에 고치는게 수월하고 방향도 쉽게 변화시킬 수 있다.

 반면에 항공모함은 눈에 들어나게 파손은 안되지만 방향을 돌리기가 작은배에 비해서 힘들고 에너지도 많이 소비된다.

 지금 양국의 경제 상황은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있는 방에 중국인 운전자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들은 남,녀가 국적이 다른것이 신기한가 보다. 계속해서 나와 유카에게 질문공세를 퍼붓는다. 운전자들과 이야기를 듣다가 한 운전자에게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운전사는 자신은 절대 외국인을 안태운다고 하면서 만약에 외국인들 태우다 검문에 걸리면 면허증을 뺏긴다고 한다. 운전사에게는 생계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

 이 운전사의 말을 듣고 왜 트럭들이 히치를 꺼려하는지 알게 되었다. 덧붓여서 중국인은 200위안에 알리~예청 구간을 통과한다고 한다. 우린 300위안이니까 그렇게 손해보는것도 아니다.

 오늘은 총 229킬로를 달렸다. 너무 이른시간에 운행을 마쳐 좀 불만스럽지만 한번도 고장이 안나는 트럭과 쾌적한 실내 분위기.. 무엇보다 친절한 운전기사 덕에 만족한 여행이 될 수 있었다.

 앞으로 예청까지 835킬로 남았다.

 8월 16일(토)

 9:32 아침을 먹고 여유있게 출발했다.

 12:03 아침내내 빠른속도로 달렸다. 한 고개(제산등성)를 넘자 운전사가 손가락으로 가르키면서 이제부터는 티벳지역을 벗어나 신장지역으로 들어선다고 했다.

 한달만에 티벳을 빠져나온 것이다.

 그런데 내가 가지고 있는 한국 티벳 책자는 제산등성이 6700미터가 된다고 써 놓았다. 말도안되는 소리.. 5000미터가 약간 넘을까? 예담차이나라는 출판사에서 발행되었는데 중국 여행출판사에서 발간한 책을 여과없이 번역만 했다.

 서부티벳을 여행하면서 이 쓰레기 책에 대해서 많은 분노를 느끼고 찢어 버릴까 하는 충동도 많이 느꼈다. 책 표지에는 화려한 수식어로 책을 소개했지만 맞는 여행정보는 거의 없다시피 하고 티벳 문화와 역사를 소개할때에서 중국입장을 여과없이 써 놓은 그야말로 쓰레기 책이다.

 그나마 간접적으로나마 유적이나 문화를 알 수 있다는점 때문에 여태까지 가지고 다녔던 것이다.

 제산등성 6700미터.. 책을 출판하기 앞서 티벳에 여행자라도 한명 보냈는지 의심스럽다. 하지만 더욱 힘빠지는건.. 유카가 가지고 있는 자세한 일본어 티벳 책자와는 달리 우리나라에는 제대로된 티벳 책자가 없다는것.. 때문에 이런 쓰레기 책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길은 비포장이지만 트럭은 아스팔트 못지 않게 속도를 낼 수 있을정도로 양호한 편이다. 이 속도라면 트럭이 고장나지 않는 한 내일 예청에 도착할거 같다.

 운전사와 라호반 역시 여태껏 만났던 중국인들과 달리 너무나 친절하다. 식사를 할때 손수 컵을 싯어 줘서 우리에게 차를 따라 주고 진정 손님으로서 우리를 대한다.

 유카와 난 오늘 역시 운이 좋다고 이야기 했다.

 그런데 운전자가 우리에게 신분증을 보여주라고 한다. 검문소가 있나? 그래도 걱정할건 없다. 여기는 티벳이 아니라 신장지역이니..

 유카는 운전자에게 외국인은 신장지역에서 통행증이 필요없다고 이야기 했다.

 16:45 몇시간째 고개를 넘고 내려가길 반복.. 고개를 올라가는데 작은 무덤이 보였다. 라호반은 알리로 오다가 고산병으로 죽은 중국인의 무덤이라고 했다. 이곳은 정말 오기 힘든 곳이라는것을 새삼 느꼈다.

 서서히 길이 내리막이 되기 시작한다. 고도가 서서히 낮아지는것을 느꼈다.

 17:45 잠시 정차했다. 트럭에 기름을 넣기 위해서이다. 아직까지 한번도 문제를 안일으키고 아직까지는 부통구간을 발견 못했다. 부통구간은 없는걸까?

 21:35 출발한지 딱 12시간만에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삼십리병영)은 크고 주변에 공군기지가 있는것을 발견했다.

 난 유카에게 예청에 가면 가장 먼저 외국인들에게 정보를 줘야한다고 이야기 했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지금 티벳에 들어올려고 하는 외국인에게는 중요한 정보체라고 이야기 했다. 유카는 감동하는 표정..

 계란 볶음밥(8위안)과 내가 가지고 있는 쌈장에 비벼먹었다. 유카는 '오이시(맛있다)'를 계속 외쳐대고..

 식사 후 유카와 하늘의 별을 보러 나갔다. 높은 지역에서 보는 마지막 별이었다. 하늘은 별로 가득차 있고.. 밝은 별들을 보면서 평소에 별자리를 알아두면 좋았을껄.. 하는 후회감이 몰려왔다.

 초대소 안으로 들어가자 중국인들이 마작을 하고 있었다. 유카와 옆에 앉아서 관찰했지만.. 도무지 규칙을 알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오늘 우리 트럭 라호반은 우리를 위해 손수 세숫물까지 떠다 주었다.. 감동

 8월 17일(일)

 트럭 여행 2박 3일째 되는 날이다. 오늘이면 예청에 도착하겠지.. 유카와 난 예청에 도착하면 멀할지에 대해서 웃으며 이야기를 했다.. 난 제일 먼저 왕빠에 가야지..

 07:55 보통보다 일찍 출발했다.

 13:27 트럭은 빠른속도로 가다가 갑자기 멈췄다. 멈춘지점에는 많은 트럭들이 가지 못하고 정차해 있고.. 아.. 이곳이 부통구간이구나.. 예청에서 불과 245킬로 남은 지점이다.

 부통이 된 이유는 이곳에서 부터 80킬로에 걸쳐서 도로 공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차가 못지나가게 아예 막아 놓다니.. 중국정부에 대해 치를 떠는 순간이다.

 검문소 앞의 공고문을 보니 4월 1일부터 시행되고. 매달 9일, 19일, 29일에 48시간에 한해 도로를 개방하다고 써 있다. 그 이외에는 부통.

 친절한 라호반은 간혹 허가증이 있는 차는 부통구간을 지나가니 그 차를 잡으라고 한다. 그러면서 여기까지는 200위안을 받는다고 했다. 유카와 난 200위안을 주고 트럭에서 짐을 꺼냈다.

 유카와 난 허가증이 있는 트럭을 찾았다. 그러나 없었다. 상황이 안 좋기는 하지만 우리는 웃으면서 주변 사람들과 친해졌다. 특히 식당에서 카드놀이 하며 노닥거리는 중국군들과 친해졌다.

 1시간.. 2시간.. 3시간.. 시간은 계속 지나가고...

 오늘은 우리에게 행운이 오지 않는건가... 여기서 2일을 더 보내야 되다니..

 난 유카에게 통역을 부탁하고 검문소에 있는 검문원에게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우리둘은 외국 유학생으로 25일까지 학교에 가야 한다는 거짓말.. 공안은 과심있게 들으면서도.. 허가증이 있는 차가 올때까지 기다리라고 한다.

 18:20 기다리는 시간도 5시간이 되고.. 이제 포기할까 생각하는 순간. 트럭 4대가 검문소를 통과한다. 앗 저거다... 유카와 함께 배낭을 메고 트럭으로 뛰어갔다.

 운전사와 이야기를 한 유카는 예청까지 가는게 아닐수도 있다고 했지만 난 유카의 손을 잡으며 일단 트럭에 타자고 했다.

 트럭기사는 우리가 외국인이라 계속 망설인다. 그냥 우리를 무시하고 핸들을 꺽으려 한다.. 아 오늘은 결국 여기서 지내야 하는가..

 그때.. 우리와 친해진 4~5명의 중국인들이 몰려와 외국인은 허가증이 필요없다면서 운전사를 설득해 준다. 유카와 내가 웃으며 그들을 대했던게 효과를 발휘하는 순간.. 또한 그들은 처음 100위안을 요구하는 운전기사의 기세를 단체의 힘으로 50위안으로 꺽어준다. 정말로 든든한 지원군..

 운전기사의 입에서 커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순간.. 유카와 난 얼싸안고 기뻐했다. 트럭 뒷칸에 타고.. 도와준 중국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출발했다.

 22:00 부통구간은 그야말로 곳곳이 도로 공사중이었다. 트럭은 너무 느리고 트럭 뒤에 아무것도 깔지 않고 타서 엉덩이부근이 계속 부딧친다.

 느린 트럭은 쿠디라는곳에 도착했다. 도착직전 우리는 한 건물에 들어가 신분증 검사를 받아야 되었다.

 좀 불안하지만 여기는 신장지역 아닌가.. 난 유카를 안심시키고 무엇보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라고 했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나와 유카는 초록색(한국), 빨간색(일본)여권을 꺼냈다. 중국인들에게 화를 막 내면서 딱딱하게 굴었던 공안은 표정이 밝아지더니 우리에게 흥미를 가지며 이야기 한다.

 웃으며 답을 해주자 여권검사는 아예 안한채 그냥 통과... 아.. 이제 성공이다.

 검문소를 통과하고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면서 우리와 같은 트럭에 탄 86년생 위구르 남자애가 9살 연상인 유카에게 같이 우루무치를 여행하자며 작업을 건다. 유카는 정중하게 거절하지만 남자애는 이것저것 질문하며 유카를 귀찮게 한다.

 이럴때 내가 도와줘야지.. 난 유카에게 하늘의 별이 정말 밝으니 한번 나가서 보라고 한다. 유카는 고맙다는 윙크를 하며 밖으로 나간다.

 이곳 여관에서도 유카와 난 관심의 대상이다. 한,일 두나라 남녀가 같이 다니는게 그렇게 신기한가? 힘들었지만 오늘 역시 행운의 여신은 날 버리지 않았다... 내일이면 진정 예청으로 가겠지..

 8월 18일(월)

 아침일찍 트럭이 출발했다. 운전자들과 친해진 덕분에 앞자리에 편하게 앉을 수 있었다.

 예청에 빨리 도착할거라는 희망사항과 달리 트럭은 공사구간을 어렵게 통과했다. 공사차량에 막혀서 기다리기를 4회(평균40분 기다림), 군대 유조차가 전복되어서 막혔다. 역시 중국군대는 날 실망시키지 않는다.. 1시간동안 트럭이 못지나가게 길을 막아놓고 작업을 한다.

 또 길이 뚫렸다 싶으니 정차해서 식사를 한다고 한다.

 그럭저럭 오후 2시가 넘으니 사막이 나타났다.

 어제와는 판이하게 다른 풍경.. 추위에 떨었던 어제와 달리 온몸에서 땀이 흐르고.. 사람들도 티벳 사람에서 위구르 사람으로 변하고.. 유카와 난 마주보며 하루만에 달라진 풍경들에 어리둥절 했다.

 길은 예청 93킬로 지점을 남겨놓고 아스팔트로 변해있었다. 그러나 신나게 달리던 트럭은 다시 예청 70킬로지점에서 멈추더니 운전자는 식사를 한다고 한다.

 식사를 할때 주변 위구르 할아버지가 나에게 말을 건다. 난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꼬레아'하면서 반가워한다.

 할아버지는 신장도 언젠가는 독립해야 한다는 정치적인 발언을 나한테 한다. 맞는말이다.. 이곳에서 나는 막대한 석유는 부유한 중국인 호주머니속으로 들어가는 현실이니..

 한국돈이 있냐고 하는 할어버지의 말에 만원짜리 지폐를 보여주었다. 할아버지는 내심 욕심이 나는 모양.. 자신이 가지고 있는 100위안지폐랑 바꾸자고 한다.

 바꾸면 내가 이익이지만 그럴수가 없었다. 할아버지에게 정중히 거절하고 대신 1000원짜리 지폐를 주었다. 할아버지는 정말로 기뻐하며 주변사람들을 부르더니 자랑을 한다.

 예청에는 오후 5시에 도착했다.. 1년전 실크로드 여행을 하고 비자가 없어서 파키스탄 국경에서 돌아왔을때 이곳을 통해 티벳에 들어갈려고 했다.. 그러나 처참한 실패를 맛보고... 결국 신장 남로를 타고 여행을 했다.

 1년만에 이곳에 다시 오다니.. 하지만 회환을 느낄새도 없이 나와 유카는 짐을 다른트럭에 실은 바람에 꼼짝못하고 짐을 실은 트럭이 올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계속 기다려도 트럭이 안왔다.. 혹시.. 도난당한걸까? 조바심이 났다... 아.. 왜 차량번호를 적지 않았을까 후회가 되었다..

 일단 기다릴수 밖에..

 결국 1시간 반뒤에 뒷 트럭이 왔다. 그런데.. 트럭뒤에 짐이 없다. 트럭 운전사는 우리가 탔던 트럭에 옮겨실었다고 한다.. 아....

 결국 트럭주차장으로 가서 찾을 수 있었다.. 앞으로 짐에 더 신경써야지..

 카스까지 가는 버스는 밤 9시30분 차까지 있었다. 유카와 난 버스를 타고... 버스는 황량한 사막을 달렸다. 피곤한 여행으로 졸리고.. 경적소리는 계속 나를 깨우고..

 졸고있는 유카는 머리를 댈데가 없는지 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아.. 유카와도 이별할 날도 얼마 안 남았구나.. 그동안 여행의 동반자로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같이 고생을 했는데.. 둘다 어정쩡한 영어이지만 의사소통에는 전혀 불편이 없었다.

 새근새근 잠든 유카 얼굴을 보았다. 목선이 참 아름다운 유카.. 언제나 환한 미소로 이야기를 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찡그리지 않는 유카.. 참 대단한 여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서 아니 우리 둘이서 여행하기 어려운 지역으로 손꼽히는 서티벳을 여행했기에.. 피곤하고 힘든 상황에서도 서로 미소를 잃지 않았기에... 우리는 서로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밤의 별빛과 사막을 가로지르며 달린 버스는 새벽 2시에 카스에 도착했다.

 알리를 떠나는날.. 이상하게 이날은 아침부터 사람들이 시내 전체를 청소를 한다.

 알리~예청 국도.. 비포장이라는건 여느 티벳 도로와 다르지 않다.

 서부 티벳의 웅장한 산새.. 신장지역까지 이어진다.

 르뚜에서.. 힘든 여행으로 지칠대로 지쳤다.

 르뚜시내 전경. 르뚜는 교통의 요지로 대부분의 트럭들이 이곳에서 멈춘다.

 웅장하게 솟아있는 산..

 도마르마을 전경. 이곳에서 하루 머물렀다.

 도마르 주변.. 힘든 여행이기는 하지만 여유를 잃지 않았다.

 사방이 묶여있는 양.. 머 잘못한거 있나?

 제산등성 정상에서 바라본 호수의 모습..

 서부티벳에 간간히 보이던 풀도 신장에 가까워지니 흔적을 감췄다.

 수동기계를 이용해 드럼통에 담긴 휘발유를 차량에 주유하는 모습. 여태까지 본 바로는 입으로 호수를 빨아들여 휘발유를 주유했는데 그것보다는 발전되었다.

 

 알리~예청 도로의 마을은 차량을 대상으로 숙박, 식사, 차량수리로 생계를 이어가는 집들이다.

 불통구간.. 차량들이 며칠째 움직이지도 못하고 묶인채 검문대가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온통 바위산.. 신장에 가까워질수록 산세는 오히려 더 험해진다.

 이곳에서도 설산들이 보인다. 아직까지 고도가 높다는 것을 나타낸것이리~

 군대 주유차량이 전복된 모습.. 샘통이긴 하지만 이 일을 처리할때까지 1시간정도 기다려야 했다.

 이쁜 유카의 모습.. 나와 10일동안 같이 여행을 하면서 한,일간의 장벽을 허물고 우정을 쌓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