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제주도에 이어서 영남대로 탐사가 시작되었다. 이미 2번 왔던 길이라서 그렇게 큰 의미는 없었지만 주로 무섭게 아이들을 지도하는 입장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소중한 경험들을 수확했다.

 디지털 사진기를 가져갔지만 많은 사진은 찍지 않았다. 때문에 여행기와 여행사진을 구분해서 이곳 페이지에 올려 놓았다. 투박하고 거친 나의 문장보다도, 장래 작가가 꿈인 후배 재현이의 부드럽고 섬세한 문장으로 된 여행기를 이 페이지에 실어 놓는다. 이번이 6번째인 나에게 대학생 신분으로 하는 마지막 국토순례가 아닐까 싶다..

 1월 14일(화)

아직 시작도 안했단다!  

 

 안녕하십니까? 어머님, 아버님들 아이들 걱정으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거라 생각됩니다. 먼저 인사부터 드립니다.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처음 오시는 분들을 위해서 다시 한번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 지 인터넷으로 부모님들께 소식을 전하는 인터넷 중계 대장 심재현이라고 합니다.

 어머님, 아버님들 잠이 안 오시죠? 아이들이 집에서 놀던 모습이 눈에 선하리라 생각됩니다. 500킬로 가까이 되는 거리를 걸어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실 테니 더욱 걱정이 많으시겠지요. 제주도도 보내신 부모님들은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고 하실 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오류입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영남대로종주는 무척 힘이 듭니다. 어른들도 힘든 일인만큼 아이들에게는 더욱 힘들지요.(그렇기 때문에 더욱 걱정이 크신 부모님들이 대부분 일 것입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영남대로종주는 초반부터 힘들었습니다. 오늘만큼은 착하디 착한 대장들도 웃는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았지요. 잘못해서 아이들이 풀어지다가는 영남대로종주는 물 건너 갈 지 모르기 때문이지요. 부산에서 출발해서 복천박물관, 동래 향교, 동래 읍성을 둘러보고 바로 강행군이 시작되었습니다. 목적지는 양산. 결코 짧은 길이 아니었습니다. 대장들도 긴장하고, 아이들도 긴장했습니다. 대장들은 평소하고 다르게 아이들에게 무섭게 대하고 기합을 주기도 했습니다. 출발한 지 얼마 안가 쳐지는 아이들이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다리에 쥐가 나서 비틀거리기도 하고, 힘들다고 우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대장들은 격려와 질책을 섞어가면서 아이들이 낙오하지 않도록 했지요. 시간은 흘러서 해는 저물어가고, 아직 목적지는 한참이나 남아있고...... 렌턴을 키기도 하고, 달빛과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가면서 걸었습니다. 하루종일 걸어다녀서 그런지 아이들은 밥을 아주 잘먹더군요. 아마 오늘 아이들의 즐거움은 밥 먹는 시간이었을 걸요? 먹고 모자르면 더 먹으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들은 밥을 또 먹으려고 우루루 몰려오더군요. 밥을 세 번이나 먹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식사시간 다음은 혹독한 강행군이었습니다. 준현이는 몇 번씩이나 뒤쳐져서 대장들을 곤혹스럽게 했지요. 혼내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지요. 준혁이도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지를 않았는지 매우 힘들어했답니다. 그래도 아이들 모두 무사히 목적지까지 갈 수 있었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잘 걸어가서 커다란 문제는 생기지 않았습니다. 걷는 것에 익숙한 아이들은 뒤에 쳐지는 아이들과 함께 가고, 도와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오늘의 결과에 만족을 할 수는 없지요. 오늘보다는 내일이, 내일보다는 모레가 더욱 힘들기 때문이지요.

 영남대로 종주에 대한 설명을 들으시고 아이들을 보내실 때는 아이들이 무엇인가 좋은 것을 배워오기를 바라셨겠지요. 하지는 그 무엇을 배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 지금 잠자리에 들면서 내가 왜 왔을까? 하고 후회하는 아이도 있을 것이고, 여기에 보내신 부모님을 원망하는 아이도 있겠지요. 하지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은 불만이 넘치고, 힘들어도, 시간이 흐르면 영남대로 종주는 좋은 약이 되겠지요.

 지금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힘든 오늘이었던 만큼 아이들은 무슨 꿈을 꿀까요? 아직은 조금 걱정이 됩니다. 아이들이 이 힘든 일을 해낼 수 있을지...... 혹시 낙오하거나 너무 힘들다고 탈출을 하는 아이가 생길지 않을까....... 그래도 걷다보면,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그러는 만큼 생각도 깊어지고, 무엇인가는 얻는 것이 있겠지요. 또 아이들이 그런 것들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저희 대장들의 몫이고요.

 어머님, 아버님들. 걱정이 많으실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기는 뭐하지만 그런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저희들도 아이들이 힘들어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이런 안타까운 마음이 아이들을 대견해 하는 마음이 되기를 빕니다. 당연히 그러기 위해서는 저희들도 아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써야하겠지요. 아직은 아이들이 힘들어하지만, 아이들이 다시 어머니, 아버지 품에 안길 때 부모님들이 대견해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아이들도 힘을 내겠지요.

 나의 이야기- 밤새도록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아이들을 인솔해서 부산까지 왔다. 벌써 3번째 부산행 기차를 타다니.. 영남대로의 출발지인 동래향교에서 제주도 대원들과 합류를 했다. 동래향교와 동래읍성을 비롯해서 여러 문화유적을 관람한 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첫날부터 걸어서 그런지 낙오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처음부터 그런 아이들은 강제로라도 걷게 해야 됬다. 아이들과 친해질 새도 없이 화를 많이 냈던 날이다. 

 

 1월 15일(수)

 조금은 익숙해진......  

 어머님, 아버님들 걱정으로 하루를 보내지는 않으셨는지요. 식사하실 적에 아이가 좋아하던 반찬을 차마 건드리지도 못하고, 목이 메이지는 않으셨는지요. 오늘은 영남대로종주 이틀째입니다. 오늘도 역시 어제와 마찬가지로 강행군이었지요. 하지만 아이들이 보여준 모습은 어제와 달라졌습니다. 어제 아이들의 모습은 완전히 오합지졸들이었지요. 줄도 제대로 못 서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하고...... 정신도 못 차리고, 이리 저리 헤맸지요. 그러나 오늘은 어느 정도 군기가 잡혀 움직임이 달랐습니다. 줄도 잘 서고, 말도 잘 듣고...... 어제 하루 종일 뒤에 쳐지던 준현이와 준혁이가 오늘은 뒤에 쳐지지도 않고, 앞에서 잘 걸어나갔답니다. 물론 대장들도 어제보다 더욱 무서운 모습을 보여준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아이들이 알아서 스스로 잘 하더군요. 어제 하루종일 고생 고생하면서 걸었더니 '내'가 아닌 '우리'라는 것을 알았나 봅니다. 혜선이는 발을 삐었지만, 우는소리 없이, 대장들과 농담도 하면서 잘 걷더군요.

 오늘은 하루종일 걸어서 삼랑진에 도착했답니다. 동네 어르신들의 배려로 텐트에서 야영을 하지 않고, 마을회관에서 잘 수 있게 되었지요. 우리 아이들은 동네 어르신들에게 인사하기가 바쁩니다. 밥도 잘 먹고, 설거지도 알아서 잘하고...... 어제와는 다른 모습에 대장들도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영남대로종주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아실 것입니다. 춥고, 배고프고, 힘들고...... 굳이 길게 늘어놓지 않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아마 부모님들 가슴 한 구석에 멍울이 생겼겠지요. 걱정도 많이 하시고, 괜히 보냈나 싶어 속상해서 잠을 못 이루는 부모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걱정만큼, 아이들은 커가고 있습니다. 제주도와는 달리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갑니다. 어머님, 아버님들의 걱정이 좋은 비료가 되고, 힘든 경험들이 좋은 채찍이 되어 아이들을 자라나게 하는 것일까요?

 내일도 오늘과 같은 강행군이 시작되겠지요. 아직은 완전하지 않은 아이들이라 이런 저런 말썽도 부리고, 서로 힘들게 하는 아이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내일의 아이들은 오늘보다 더욱 커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나의 이야기- 제주도가 그렇듯이 이번 여행도 나에겐 있어서 큰 의미는 없었다. 영남대로는 3번째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여미사 탐험대장으로 와서 길을 헤메면서 국토순례하던 때가 더 재미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날 역시 뒤쳐진 아이들과의 전쟁을 벌였다.

 

 1월 16일(목)

 악으로! 깡으로!  

 어머님, 아버님들 오늘도 아이들을 걱정하시느라, 하루종일 멍하니 남쪽 하늘만 바라보지는 않으셨는지요. 오늘도 역시 힘든 강행군이었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어제처럼 쉽게 뒤로 쳐지는 아이들은 얼마 없었습니다. 여전히 힘들지만 아이들은 잘 걸어갔답니다. 재호는 배가 아프다 면서도 잘 걸어갔고, 아이들은 물집이 잡히고, 발바닥이 아파도 열심히 걸었습니다. 오늘의 목적지는 청도. 햇빛이 따사로운 것이 '따뜻한 남쪽 나라'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밀양을 지나면서 밀양강이 한 눈에 들어왔습니다. 강둑을 걸어가면서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놀라서 날아 도망가는 꿩들은 아이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만들었고, 쥐죽은듯이 앉아 있다가, 한번에 수 십 마리씩 날아가는, 청둥오리 떼는 한발한발 나아가는 걸을음 가볍게 하였습니다. 밀양에 도착해서 영남루에 도착했습니다. 영남루에서 사진도 찍고, 여러 전시물도 보면서 쉬었습니다. 아랑각에서 아이들은 아랑전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진지해하며, 아랑각에 전시된 아랑의 영정을 보았습니다. 전설에 대해 들었을 때는 진지한 표정을 짓더니 영정을 한번 보더니 모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와 예쁘다!' 그리고, 또 다시 열심히 걸어서 청도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하루종일 뒤에 쳐지는 녀석이 있었습니다. 가다가 주저앉고...... 어르고 달래도, 바위처럼 지독하게 굳은 의지로 주저앉아 절대 움직이지 않는 녀석...... 대장이 10명인데 그 녀석에게는 3명의 대장이 붙었지요. 처음에는 50미터 가량 쳐지다가 나중에는 본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떨어졌습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힘들어하고, 대장들은 무전기 하나에 의지해서 길을 찾는 것도 곤혹스러웠지요. 온갖 협박도 안통하고, 몇 대 쥐어박아도 효과가 없고...... 목적지는 아직 한참인데, 녀석은 움직일 생각이 없는 듯 했습니다. 끌고 가기도 하고, 뒤에서 밀기도 하면서 결국은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물론 예정 도착시간은 한참을 지났고, 먼저 도착한 대원들은 이미 식사를 하고 있었지요. 이번에 느낀 것은 '하면 된다' 이것은 그 녀석과, 대장들 모두 느꼈습니다. 악으로 깡으로 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진리......

 힘든 길을 걸으면서 몇 번씩 주저앉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입니다. 그것은 대장들도 마찬가지이지요. 다리는 무겁고, 피곤하고, 춥고...... 하지만 대장들이 아이들 앞에서 힘든 기색을 보일 수 없는 노릇이지요. 낙오자가 생기면 끝까지 데리고 가야하는 것도 대장입니다. 물론 이런 말을 하시는 부모님들도 계시겠지요. 힘들면 차 태워서 보내라고...... 하지만 그것은 영남대로종주의 목적과는 멀어지는 것이지요. 걸어가는 여행에 차를 타고 다닌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까요? 그렇다고 낙오된 아이들을 내버려두고 갈 수 없는 노릇이지요. 아이들이 힘들어한다는 것을 대장들은 잘 압니다. 이미 경험한 일들이기 때문이지요. 어디쯤이면 힘들고, 피곤해 하는지 까지 생각하지요. 하지만 세상의 일들이 힘과, 체력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렇게 힘든 일들을 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은 아이들의 정신력입니다. 피곤해도, 힘들어도, 끝까지 간다는 정신력. 힘으로 안되면 악으로 깡으로 이긴다는 의지. 그런 의지로 낙오가 되어도, 시간이 늦어도 끝까지 갈 수 있는 것이겠지요.

 오늘은 낙오된 녀석을 끝까지 데리고 가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잘 하고 있다고 격려하기도 하고, 좀 더 열심히 가라고 하면서 어르기도 하고...... 결국은 도착했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듭니다. 과연 그 아이가 악과 깡을 어느 정도 이해를 했는지...... 아니면 주위에서 하도 뭐라고 하니까 억지로 한 것인지...... 대장들이 옆에 붙어있지 않아도 끝까지 갈 수 있었는지...... 한 가지 바램은 그 녀석이 내일은 낙오되지 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힘이 없으면, 악으로, 깡으로라도 버틸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나의 이야기- 낙오된 아이들과의 며칠째 전쟁이 이어졌다. 행군대열의 맨 앞은 상걸이가 있기 때문에 안심하고 맡길 수 있지만 맨 뒤와 같은 경우는 재현이 하나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요즘애들은 참 나약하게 자란다는 것을 많이 깨닫는 하루였다.

 

 1월 17일(금)

 참기 힘든 아쉬움  

 

 어머님, 아버님들 오늘도 안녕하십니까? 아직도 아이들 걱정에 안절부절 하지는 않으신 지 모르겠군요. 오늘도 역시 걸었습니다. 항상 걸으니 이 글을 읽는 부모님들도 조금 지겨우시죠? 항상 걷는 구나...... 하고...... 영남대로종주의 의미 가운데 하나는 걸어서 가는 한성 옛 길이니 걷는 것은 어쩔 수가 없군요. 오늘은 청도를 지나 팔조령을 넘고, 대구에 왔습니다. 청도는 생각보다 작은 도시더군요. 청도를 지나면서 소싸움을 볼 수 있나 싶었는데 시간도 없고, 시기도 소싸움할 때가 아니라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청도를 지났습니다. 청도를 지나서 팔조령을 넘는데 아쉬운 것이 한 둘이 아니더군요. 팔조령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아주 죽인 다는데, 아쉽게도 팔조령을 넘을 때는 해가 진 후라서 그 좋다는 경치를 구경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팔조령에서 내려다보는 청도의 야경도 볼 만 하더군요. 팔조령을 넘는 순간은 무슨 지옥 훈련을 하는 줄 알았습니다. 밤에 산길을 걷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옆에는 낭떠러지가 시커먼 입을 벌리고 있고, 갑자기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몸은 점점 추워지는 데 팔조령을 넘어가는 길은 끝이 보이지 않고...... 그러다가 갑자기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항상 뒤에 쳐지던 녀석이 갑자기 앞에서 누워버린 것이었습니다. '더는 못 가요.'라는 말만 남기고, 누워서 일어날 줄을 몰랐습니다. 이것은 절대절명의 위기였습니다. 잘못하면 녀석은 아래로 굴러 떨어질 위험이 있고, 그 녀석이 좁다란 산길에서 누워버린 바람에 뒤에 있던 아이들은 발이 묶여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온갖 협박과 공갈을 비롯해서 말도 안 되는 약속과 상품을 걸어가며, 달래서 겨우 팔조령을 넘을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이 얼마나 힘든지 그 녀석에게 모든 대장이 붙어야 했습니다. 조금 힘들었긴 했지만, 다행히 인명사고는 나지 않아서 어쩐지 가슴이 뿌듯해지는 것을 느껴습니다. 팔조령을 넘고, 대구로 가는 길은 힘들었습니다. 아이들도 하나 둘 지쳐가고, 졸면서 걷는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해가며 겨우 겨우 걸어나갔습니다. 아이들이 뒤로 쳐져도 앞에서 기다리면서, 서로 뭉치며 겨우 걸었습니다. 승호와 병우는 서로를 깨워가면서 걷고, 잘 못 걷는 준현이도 쳐지지 않고, 걸어나갔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걸어가며 대구에 왔건만...... 대구는 서울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수많은 신호등과 자동차들...... 높이 솟은 빌딩들...... 어쩐지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걸어간다는 것도...... 한성 옛 길을 찾는 것도 의미가 없을 만큼 대구는 다른 도시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변한다는 것은 바람직하기도 하지만(물론 좋은 방향일 경우에만 말이죠) 때로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하지요. 대구를 바라보면서 그것을 느꼈습니다. 도시가 발달하고, 사람살기에 편리해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지만 굳이 변할 필요가 없는 것도 변했다는 느낌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저만의 생각이고 욕심일까요? 옛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는 무언가가 부족하다는 느낌......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지금 길을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변하기를 바라는 생각과 좋은 점은 그대로 유지하였으면 하는 생각. 물론 둘 다를 이룬다는 것은 힘든 일이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되기를 바라며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물론 부모님들도 그런 생각이겠지요. 동작이 느린 아이는 조금 빠릿하게 움직였으면 하고, 쉽게 포기하고 퍼지는 아이는 악으로라도 버티기를 바라고...... 이기적인 아이는 조금이라도 남들을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어떻게 생각하면 짧은 시간 안에 많은 것을 바라고, 그렇게 만든다는 것도 무리겠지요. 하지만 한 사람이 잘못하면 전체기합을 받고, 한 사람을 위해 모두가 기다리고, 잘 때도, 밥을 먹을 때도,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동료들과 함께 하게 하는 것도 모두 아이들이 좋은 쪽으로 변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지요. 어쩌면 이것이 이번 종주의 진정한 목적일 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많이 변해버린 길을 걸으며, 무엇인가를 찾는 다는 것. 그것이 저희하고, 아이들하고는 다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길을 걸으며 아이들이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좋은 쪽으로 변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조급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너무 성격이 급해서 그런 것일 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아이들에게 아쉬움이 묻어 나옵니다.

 나의 이야기- 야밤에 팔조령을 넘으라는 무모한 명령이 나에게 떨어지고.. 상걸이와 둘이서 맨앞에 나와 길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길을 잘못 들었던거 같았다. 무수한 가시밭을 헤쳐 나가고 새로운 길들을 개척하고.. 그 와중에서도 뒤에 잘 따라붙는지 확인해야 됬다.

 중간정도 헤쳐나갔다고 생각했을 때 준현이가 문제였다. 날은 어두워지고 비까지 오는 상황에서 준현이가 못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말썽을 피우는 것이다. 어쩔 수 없지 패서라도 데리고 와야 됬다. 팔조령을 넘고 나서 8킬로 정도 더 걸은후 버스를 타고 대구시내를 통과해서 한 초등학교에 숙소를 잡았다.

 

 1월 18일(토)

 갈림길  

 

 어머님, 아버님들 오늘도 안녕하신 지요. 오늘도 역시 아이들은 걸었습니다. 아이들이 걸어오는 길이 어디쯤인지, 언제나 우리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지 날짜를 세어가며 눈에 밟히는 아이들을 생각하고 계시겠지요. 오늘은 대구 위에 있는 칠곡군에서 출발하여 구미에 도착했습니다. 가는 중간에 가산에 있는 전적 기념관에 들렸습니다. 6.25 전쟁 초반 다부동전투에서 목숨을 걸어 궁지에 처한 나라를 구해낸 순국선열들의 고귀한 영혼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지요. 전시관은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전시된 무기들과 당시의 전쟁상황. 목숨을 걸고 찍은 전쟁사진, 무명용사의 유물들...... 전쟁의 흔적을 보면서 아이들은 많은 것을 느꼈답니다. 전쟁의 아픔과 죽어간 사람들의 아픔, 그리고 남겨진 사람의 슬픔. 짧은 시간 동안 둘러보았지만, 들어가기 전과 들어온 후의 아이들의 표정은 달랐습니다. 그 장소, 그 시간에 공교롭게도, 작은 싸움이 있었습니다. 아이들끼리 주먹이 오가는 것이 무슨 큰 대수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고 하지요.) 그것은 커다란 사건이었습니다. 6.25 전쟁이 가장 아프고, 슬픈 이유는 같은 동족의 가슴에 총을 겨누어야만 했다는 것이겠지요. 우리 아이들은 함께 영남대로를 걷는 동안은 한 가족이고, 형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끼리의 싸움은 동족끼리 싸우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6.25전쟁과 비교를 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요. 하지만 생각이 다르고, 예민해진 상태에서, 쉽게 짜증을 낸다고 하더라도 별 문제없이 지낼 수도 있지요. 불가능 한 것일까요? 서로 이끌어주고, 밀어주면서 함께 의지한다면 가능한 일이지요. 그 녀석들은 대장이 가만히 놔두었을까요? 당연히 온 몸의 기름기가 쭈욱 빠지도록 굴려주었지요.  가장 큰 죄목은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이 아니고, 골육상잔의 비극을 야기한 죄. 녀석들이 구르면서 '우리는 친구다.'라는 말을 계속 하도록 했지요. 사소한 싸움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6.25 전쟁처럼 골 깊은 상처와 분노, 슬픔을 낳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과잉해석일지도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이 걸음을 모두 다 걸을 때까지, 웃으면서 서로를 생각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아주 혹독하게 굴려주었지요.(그렇다고 온 몸의 기름기는 빠지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싸우고, 굴렀다는 이야기가 조금 우울하고 가슴이 아프겠지요. 하지만 아름다운 일도 있답니다. 항상 쳐지는 녀석을 데리고 가면서 본대는 점점 멀어지고, 나중에는 길이 엇갈리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일단은 구미로 향한 길을 걸으며 본대와 계속적인 교신이 오가는 가운데 한 1시간 정도 지났나요? 옆에 있는 큰 길에 본대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본대도 우리를 발견하고, 아이들은 목소리를 높여 외쳤습니다. '00아 힘내라!' 계속되는 아이들의 응원.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가슴 한 구석에 뭉클한 것이 솟구치더군요. 행군은 계속되고, 녀석은 계속 쳐지고, 본대는 진행을 제대로 못하는 가운데, 아이들은 녀석을 욕하거나, 원망하지 않더군요. 오히려 아이들이 녀석을 부축해가며 걸었습니다.

 구미에 도착하고, 짐을 정리하는 가운데 대장 한 명이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힘든 여행을 하면서 무엇을 배웠니?' 아이들의 대답은 여러 가지였습니다. '집과 가족의 소중함, 물의 귀중함, 자연의 소중함, 사람들의 고마움, 삶의 소중함 등등......' 저희들이 생각한 것 보다 아이들은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웠더군요. 앞으로도 아이들은 무엇을 더 배우고, 더 깊이 생각할 까요?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은 한발한발 걸을수록, 조금씩 커간답니다.

 오늘은 분열과 화합의 갈림길에서 고민한 하루였습니다. 아이들끼리 싸운 한편,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갈림길에서 어디를 선택하고, 걷고 있는 것일까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자라고 있느냐에 따라 그 길이 어디인지 알겠지요.

 나의 이야기- 몇몇 문제되는 아이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아이들이 행군에 적응을 잘 해가는걸 느꼈다. 문화유적이 나타날 때 마다 아이들을 모아놓구 설명을 해주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설명을 하는데 힘들기는 하지만 잡다한 지식을 모아놓으면 그런대로 아이들을 이해시키는데 어렵지는 않았다. 다부동 전투 기념관과 같은 경우는 6.25의 참상을 알려주면서 지금 걷고 있는 길이 얼마나 소중한 길인지를 인식시켜 주었다.

 가산에서 밥을 먹고 늦은 저녁부터 차들이 많이 지나가는 위험한 길을 행군하기 시작했다. 며칠째 계속되는 야간행군.. 행사일정을 무리하게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숙소를 잡고 도착할 때마다 난 아이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 그만큼 많이 배워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오늘은 힘든 행군을 하면서 집의 소중함에 대해서 깨달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무엇보다도 부모님들이 힘든 여행에 아이들을 왜 보냈는지 이유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상의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고생을 함으로서 평소의 생활에 대해서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1월 19일(일)

 물 흐르듯  

 

 어머님, 아버님들 오늘도 아이의 얼굴이 눈에 밟히시죠? 보낼 때는 '고생 좀 해보고 사람이 되어서 와라.'하고 보냈겠지만, 아이들 걱정에 불편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셨겠지요. 밥은 잘 먹고 있는지, 한데서 자다가 감기는 걸리지 않았는지, 화장실은 제대로 가는지...... 지금 이곳은 낙동읍입니다. 오늘은 아침부터 바람이 거세게 불었습니다. 몸이 휘청거릴 정도로, 쓰고 있는 모자가 날아갈 정도로 바람이 셌답니다. 날이 그렇게 추운 것은 아니었지만, 바람이 너무 불어서 온 몸이 떨리더군요. 그래도 아이들은 잘 걷는 답니다. 물집이 생겨도 걷고, 무릎이 아파도 걷고...... 이제는 뒤로 쳐지거나 하지 않더군요. 뒤에는 워낙 무서운 대장들이 대기하고 있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걸음에 익숙해진 듯 아주 잘 걷는 답니다. 오늘은 오리엔테어링이 있었습니다. 뭐 오리엔테어링이라고 해봤자 길 따라서 주욱 걸어가는 것이 전부입니다. 강가의 오솔길을 그대로 걸어가면 되는 것이니, 어려운 것은 없고, 다만 인솔하는 대장 없이 가는 것이 평소와 다른 것이지요. 사실 제대로 하려면, 칼과 성냥, 지도와 나침반만 주고서 산 한가운데 떨어뜨리고, '알아서 목적지까지 내려와라.' 하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아이들이 무슨 특수부대도 아니니 심각하게 할 필요는 없지요. 너무 쉬워서 싱거운가요? 이번 오리엔테어링은 혼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대대끼리 모여서 움직이는 것입니다. 길을 얼마나 잘 찾아서 오느냐를 보는 것이 아니고, 얼마나 뭉치고, 서로 챙겨주느냐를 보는 것이지요. 상품은 초코파이와 귤, 초콜릿. 상품에 눈이 어두워져서 저 혼자 뛰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지만, 그것은 괜한 걱정이더군요. 잘 못 걷는 아이는 서로 부축해가며 서로가 서로를 떨어뜨리지 않고 열심히 걸었습니다. 인영이는 물집 때문에 걷기 힘들어도 왕 언니, 왕 누나 노릇을 잘하고, 승호나 승재는 아주 날아다니더군요. 명건이는 이상한 길로 들어섰다가 거의 꼴찌로 들어오고,(자신의 말로는 진정한 탐험을 위해서 라지만, 그것은 그다지 신빙성이 없어 보입니다.) 잘 못 걷는 준혁이나, 준현이는 서로 부축해가며 잘 걸었습니다. 아이들은 서로를 챙겨주면서, 서로를 채워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는 법. 한 녀석이 따돌림을 당한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오리엔테어링의 아름다운 모습에 좋았던 기분이 갑자기 가라앉았습니다. '이 녀석들이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악마를 또 깨우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장에 온 몸의 기름기를 다 빼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정보만 믿을 수도 없고,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굴리는 것은 그만 두었습니다.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나요? 일단은 아이들은 모아놓고, 일장연설을 했지요. 앞으로는 그런 일이 또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아니, 없겠지요?

 욕심이 과하면 눈앞이 흐려지고, 자기 재주만 믿다보면 제 풀에 꺾이는 법. 물 흐르듯이 살아가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물은 항상 흐릅니다. 물은 고이면 썩지요. 부족하면 스스로 채웁니다. 필요한 곳에는 아낌없이 대주지요. 물은 제 살을 갈라 배가 갈 수 있도록 합니다. 자연스럽게, 쉬지 않으며, 항상 채워주지요. 너무 자연스러워 그 존재가 잊혀질 수가 있지만, 없으면 물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끼지요. 강가를 걸으면서 서로를 채워주는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이들 사이에 도는 불미스러운 정보는 무엇일까요? 강가를 걷는 아이들을 보면서 물 흐르듯 살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꼭 필요하면서도 겸손하고 아낌없이 주는 그런 사람이 되라는 말을......  

 나의 이야기- 아이들이 행군을 할 때 언제나 지도자들이 옆에 있었지만 오늘 같은 경우는 대대별로 행군을 했다. 어짜피 길은 하나이기 때문에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출발한 후 계속해서 야간행군을 하는 것 같았다. 오늘과 같은 경우는 한 초등학교 체육관에서 숙소를 잡았다. 숙소를 잡기전 따돌림 당하는 아이가 있어서 아이들을 모아놓고 주의를 주었다.

 

 1월 20일(월)

 귀곡산장  

 

 어머님, 아버님들 오늘은 정말 운이 좋은 날입니다. 자칫하면 재미난(?) 일지를 보시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실 뻔했습니다. 오늘 저와 다른 대장들과 몇몇의 아이들이 귀신에게 홀려 산에서 까마귀밥이 될 뻔했더랍니다. 무슨 말을 하는 지 모르시죠? 생각만 해도 오싹해지고, 등골이 서늘한 이야기를 한번 풀어보렵니다.

 아침부터 길은 좋았습니다. 행군도 순조롭고, 미 개통 고속도로를 가로질러서, 거리도 단축하고...... 순찰차가 뒤에서 에스코트도 해주는 등 오늘은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았습니다. 자유 행군을 하면서, 기분은 최고조로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무슨 놈의 바람이 그렇게 부는지...... 하늘은 시커먼 구름이 하나, 둘 몰려들고...... '아무래도 조금 힘들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점심을 먹고, 다시 미 개통 고속도로로 왔습니다. 한창 공사중인 곳이지만, 콘크리트가 잘 깔려있고, 차도 다니지 않아서 걸어가기 그만 이었지요. 다시 시작된 자유 행군. 날이 조금 차고, 바람이 불었지만, 아이들은 좋다고 잘 걸어갔습니다. 부담 없이, 대장들 눈치 볼 것도 없이, 마음대로 떠들면서 장난도 치면서 걸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걸어가기 싫은 녀석들도 있는 법. 집에 가고 싶다고 매달리는 아이들이 몇 명 있었습니다. 눈물과 때가 섞여 얼룩이 덕지덕지 붙은 얼굴로 애원하는 그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애처롭습니까? 그러나 종주도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가고, 아이들이 모여서 어떻게 집으로 가겠습니까? 또, 중도에 포기를 해 버린 아이들의 얼굴을 본 다면, 부모님들도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애원해도 할 수 없다며 그대로 걷도록 했지요. 그러나 그것이 화근이 될 줄은...... 녀석들 덕분에 먼저 간 아이들과의 거리는 점점 벌어지고...... 마침내 대장 4명과 녀석들 3명만이 남아서 고독하게 걸어야 했습니다. 무전기 하나에 의지해서 길을 찾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잘 가다가 마을에서 헤매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잘 찾아가서 산길에 들어섰습니다. 산길만 지나면 남는 것은 본 대와의 합류...... 산길은 아주 어둡고, 으스스한 것이 뭔가 튀어나올 것 같았습니다. 마침 무서움을 잘 타는 여자 대장이 있어서 놀려줄 생각으로 슬슬 귀신 이야기를 시작했지요. 가운데서 걷는 사람이 귀신에게 홀린다, 귀신은 자기를 무서워하는 사람을 잘 홀린다 등등..... 계속 귀신 이야기를 했지요. 여자 대장은 무서워서 어쩔 줄을 모르고...... 한참 그렇게 떠들다보니 길을 잃었습니다. 한참 걷고 나면 제자리. 그리고 아까는 없던 길이 생겨있고...... 졸려서 그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졸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눈도 내리고 바람도 불어 날이 추웠고, 추위에 잠이 싹 달아났던 것이지요. 정신을 차리려고 담배도 태우고, 노래도 불러보고...... 그러나 길은 계속 꼬이고, 한참 걸으면 다시 제자리였습니다. 슬슬 불안해지고, 무전기도, 핸드폰도 먹통이고...... 손전등도 없이 달빛에만 의지해서 걷는 것도 어렵고, 배고프고, 다리도 아프고......그러나 종일 걸어도 길은 없고......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귀신에게 홀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생각 난 것이 있었습니다. '귀신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좋아한다.'는 말. 귀신이 좋아한다는 것은 홀린다는 이야기를...... 온몸이 얼었습니다. 저도 기가 세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지만, 어째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없던 길이 생기고, 암만 걸어도 제자리고...... 뭔가 이상했습니다. '이런 곳에서 귀신에게 홀리면 그것은 죽음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긴장하고 다시 길을 찾았습니다. 아니 없는 길을 만들고, 논과 밭을 가로질러가면서 다른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마침내 길을 하나 발견하고 그 길을 죽 걸어나간 결과는......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었습니다. 길의 끝에 있는 것은 다 쓰러진 폐가. 여기 저기 퍼런 빛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다른 곳과는 다르게 적막하고, 한기가 흘렀습니다. '젠장 여기는 흉가다. 이런 곳으로 사람들을 끌어당긴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피곤하고, 자고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대장들도, 아이들도 힘들어하고...... 주저앉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곳에서 자거나 하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시 반대로 걷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또 다시 걸어가냐는 아이들의 불만도 있었지만, 더 이상 이런 곳에 있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걸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보우하사 조금 걸으니 멀리 빛이 보였습니다. 그것은 탐험대 차량에서 나오는 불빛. 다행히 그 차와 합류해서 산을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산을 빠져나간 길은 저희들이 걷기 시작한 장소에서 얼마 안 되는 곳에 있었습니다. '왜 그 길을 보지 못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빠져 나오니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우선 이었지요. 그렇게 한참을 헤맸는데, 본 대와 합류하는 길은 가까웠습니다. 그 산길을 걸으면서 십 년은 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아직도 등골이 서늘합니다. 7명이나 되는 사람이 길을 못 찾고 헤맨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지 않습니까? 한참 걸어도 제자리, 힘들게 길을 찾았더니 그 끝은 다 쓰러져 가는 폐가. 암만 생각해도 귀신에게 홀린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귀신 하나가 7명을 다 홀릴 수 있나요? 아니면 귀신도 일곱이었을까요? 그것은 모르겠지만,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다행히 살아있지만......만약 그 차를 보지 못했다면...... 혹시 부모님들은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닐까 하시겠지만...... 이것은 오늘 있었던 실화입니다. 95%는 진실이고, 나머지 5%만 약간 오바입니다.

 어쨌건 대장들도 아이들도 무사히 돌아왔고, 내일은 내일의 모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일은 아마도 문경새재를 넘겠지 요. 영남대로 종주의 하이라이트 가운데 하나인 문경새재...... 내일은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아무리 힘들어도 귀신에게 홀리거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의 이야기- 오늘부터는 행군에 집중하기 보다는 발전체에 물집이 잡혀 힘들 게 행군하고 있는 인영이에게 신경을 쓰기로 했다. 아픈데도 불구하고 꾹 참고 행군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재현이의 일지를 보면 귀신에 홀린소동을 적었지만.. 난 인영이와 단 둘이서 별을 보며 데이트를 했다. 여러명에 신경쓰다고 한명에 신경쓰니까 오히려 더 편했다. 오늘 행군 대형은 본대, 나와 인영이, 뒤쳐진 재현이네.. 이런식으로 걸어갔다.

 

 1월 21일(화)

  울고 넘는 문경새재  

 

 오늘은 21일입니다. 어느덧 시간이 이렇게 흘렀습니다. 부산을 출발한지 어제 같은데 벌써 문경새재를 넘었군요. 너무도 빨리 흐른 시간이라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군요. 오늘은 어제 예고 한 것처럼 문경새재를 넘었습니다. 점촌에서 출발하여 문경으로 가는 길은 멀었습니다. 하루 대부분을 걸어야 하는 거리를 얼른 걸어야 한다는 부담이 어깨를 누르고...... 해가 지기 전에 문경새재를 넘어야 한다는 마음에 아침부터 아이들의 마음을 조급하게 했지요. 다행히 날이 그렇게 추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람도 없고, 해는 쨍쨍하고...... 날은 좋아도 문경으로 가는 길이 멀어 심리적 압박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문경으로 가는 방법은 행군이 아닌 구보였습니다. 뛰고, 또 뛰고...... 빨리 걷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뛰는 수준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뛰면서 제발 좀 천천히 가자고 울기도 하고, 너무 힘들어서 울고...... 아이들이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눈물이 묻어 났습니다. 그렇게 뛰어가더니 문경새재에는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습니다. 문경새재에 도착해서 바로 문경새재를 넘는 것이 아니고...... 어머님, 아버님들도 기다리셨고, 아이들도 기다렸던 편지 배달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부모님들이 쓰신 편지를 곱게 나누어주느냐? 그것은 절대 아닙니다. 해가 뜨기 전의 새벽이 가장 어두운 법. 아이들이 편지를 받기 전의 약간(?)의 시간은 참 우울하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오리걸음도 걸어보고, 선착순도 해보고...... 땀과 함께 눈물을 줄줄 흘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일장연설이 있었겠지요? 가정의 포근함과, 부모님의 소중함. 따뜻한 집 등...... 아이들이 그리워하는 집과,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까 아이들의 어깨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힘든 순간에 가장 그리워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일까요? 흐느끼는 소리가 조금씩 들리고, 남자아이들도 고개를 숙이고, 울먹이고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점점 숙연해지는 순간에 편지 배달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이름이 불리우는 순간에 아이들의 손에는 하얀 봉투가 쥐어지고, 아이들이 봉투를 여는 순간부터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엄마, 아빠를 부르며 울었습니다. 편지배달이 있고 난 후 본격적으로 문경새재를 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문경새재를 넘어가는 길은 잘 닦여 있어 걷기에는 편했지요. 그러나 해는 점점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문경새재가 힘들어도, 경치에 취해서 힘든 줄도 모른다는 곳인데, 해가 떨어져서 볼만한 경치도 보이지 않고, 눈이 쌓여서 길은 미끄럽고, 날은 추워지고...... 아이들은 부모님의 편지를 받고 나서 눈물을 흘리고, 문경새재가 힘들어서 눈물을 흘리고...... 오늘 아이들이 흘린 눈물을 받아두었으면 아마 한 바가지는 나왔을 것입니다.

 오늘은 무척이나 힘든 날이었지요. 팔조령을 넘는 것도 힘든 일이었지만, 문경새재도 힘든 관문이었지요. 오늘 아이들이 흘린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눈물만큼 아이들은 얼마나 컸을까요? 오늘 아이들이 흘린 눈물은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진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움, 고통, 사랑...... 평소에 익숙했던 것이 그리워 눈물을 흘리고, 잘 알지 못했던 것이 힘에 겨워 눈물을 흘리고...... 아이들은 그 눈물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요? 혹시 모른다고 해도, 아이들은 눈물을 흘릴 만큼 커간 것이겠지요.

 내일부터는 크게 어려운 길이 없습니다. 경복궁을 향한 날짜는 점점 가까워오고.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아이들은 부모님들의 품에 안기겠지요. 그리고 그날 아이들은 어떤 눈물을 보여줄까요? 그리고 그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나의 이야기- 준현이와의 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제는 준현이가 아무리 뒤 쳐지더라도 끝까지 데리고 가기로 했다. 문경새재로 가는길에는 아이들에게 긴장을 주기 위해서 최대한 속보로 뺐다. 체력이 약한 아이들은 계속해서 뒤쳐지고 나와 수호가 뒤에서 최대한 끌어갈려고 노력을 했다.

 문경새재 역시 저녁때 출발을 했는데.. 난 2번 넘은 꼴이 되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인솔해서 가고.. 두 번째는 준현이랑 가고.. 숙소에 도착하니 새벽 1시가 넘어 있었다. 고단한 하루였지만. 준현이를 치료해주고 3시쯤에 잠들었다.

 

 1월 22일(수)

  뒤에 서서  

 

 오늘은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어머님, 아버님들이 계신 곳도 눈이 많이 내렸나요? 이곳 충주는 눈이 쌓일 정도로 많이 내렸습니다. 이런 날엔 부모님들 걱정이 더욱 크시겠지요. 혹시 눈 맞고, 옷이 젖지나 않을까, 추워서 감기나 걸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잠을 못 이루시겠지요.

 사람은 거의 앞을 보면서 가지요. 가끔은 옆에도 바라보면서 주위에 관심을 가지기도 하지만, 걸어가는 방향은 앞이지요. 걸어가면서 얼마나 많이 뒤를 돌아볼까요? 뒤에 무엇이 있는 지 알고 있을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우리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뒤에서 응원하고, 챙겨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 일 것입니다. 아이들이 먹고, 자고, 남들과 어울려 살 수 있는 것은 뒤에서 챙겨주는 부모님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지요. 오늘은 탐험대를 뒤에서 받쳐주고, 챙겨주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렵니다.

 탐험대에 아이들을 맡기고 많은 걱정 가운데 하나는 먹는 것과, 자는 것이겠지요. 밥은 거르지 않는지, 잠은 한데서 자는 것이 아닌지...... 그러나 그런 걱정들을 말끔히 해결하는 해결사가 있습니다. 부대장이 그 주인공이지요. 아침에 가장 먼저 일어나고, 가장 늦게 자는 사람...... 생긴 것은 야인시대에 나오는 김무옥이처럼 우락부락하게 생겼어도, 머리 속은 항상 아이들을 위하여, 오늘은 무엇을 먹일까, 오늘은 어디에서 자야 따뜻하게 잘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이들이 배고프지 않게, 될 수 있으면 밖에서 텐트를 치고 자지 않게 하려고, 고민하고, 고민한 만큼 담배꽁초도 재떨이에 수북히 쌓이지만, 싫증을 내거나,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는 일은 없답니다. 언제나 아이들 생각이지요. 아이들이 굶지 않고, 바람을 막을 수 있는 데서 잘 수 있는 것은 부대장의 노력 때문이지요. 걷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 잘 걷는 아이들도 있고, 못 걷는 아이들도 있지요. 못 걷는 아이들은 쉽게 쳐집니다. 처음에는 본대와 50미터 정도 차이나지만 시간이 흐르면 몇 킬로미터가 되지요. 그러다 보면 목적지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지지요. 그런 아이들이 조금 더 빨리 갈 수 있도록 대장들은 많은 노력을 한답니다. 때로는 무섭게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아이가 자기 자신을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지요. 언제나 뒤에 있는 대장은 아이들과 몇 미터 떨어져 있지요. 차에 치이지 않게 교통정리도 하고, 아이들이 뒤에 쳐지지 않게 아이들을 밀어주고, 끌어주지요. 앞에 있는 대장은 바른 길을 찾는데 온 신경을 쓰면서 아이들이 잘 따라올 수 있게 힘을 쓰지요. 앞이나, 뒤나 언제나 몇 미터씩 아이들과 떨어져 있고,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장난도 치고 싶어하지만 자기 위치를 지키며 묵묵히 아이들을 챙기지요. 대장들만 아이들을 챙기나요?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도 서로를 챙겨준답니다. 윤수는 영남대로 종주를 힘겨워하는 문우나, 현이, 민경이를 너무 잘 챙겨준답니다. 제 때 밥 먹을 수 있게, 상처가 난 곳이 있으면 바로 치료할 수 있게, 뒤로 쳐지지 않게 많은 신경을 쓰지요. 인영이는 나이 어린 광인이를 귀여워하고, 보살펴주고, 혜원이는 자신도 힘들겠지만, 대장들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등 대장들을 챙기지요. 명건이가 아이들을 챙기고, 보살펴주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강원도 감자바우의 멋진 모습을 느낄 수가 있지요. 병우, 원대, 승호, 철오 등 탐험 경력이 있는 아이들은 짬밥의 무서움을 느끼게 한답니다. 다른 아이들을 얼마나 잘 이끌고, 밀어주는지 어떤 때는 대장들 보다 더 잘한답니다. 승은이는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설거지를 도맡아 하고요......

 첫날에는 정신도 못 차리고, 자기 앞만 볼 줄 알았던 아이들이 어느덧 자기의 주위도 둘러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남의 뒤에서 다른 사람을 응원하고, 챙겨주게 된 것이지요. 이제 다른 아이의 배낭을 들어주고, 식사를 챙겨주는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습니다. 아직은 미숙한 아이들이지요. 완전하기를 바란다는 것이 이상한 모습이겠지요. 그러나 아이들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습니다. 수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던 아이들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경복궁에서 부모님들과 눈물겨운 상봉을 하겠지요. 아이들은 자신의 뒤에 부모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열심히 하겠지요. 그리고 어머님, 아버님들 가끔은 뒤를 돌아보세요. 아마 우리 아이들이 부모님들의 뒤에서 미소를 지을 수 있겠지요.  

 나의 이야기- 드디어 부모님이 계시는 충주까지 왔다. 아이들을 인솔하다가 잠시 집에 올 생각을 아침부터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러한 생각은 뒤에 쳐진 아이들 때문에 꿈으로만 존재시켜야 했다. 뒤쳐진 준현이를 인솔하다가 절대 안 가겠다고 버틴다.. 아무리 때리고 얼러도 되지 않길래.. 석우형이랑 의논을 해서 그냥 방치해 두기로 결정했다.

 점심을 먹고 본대랑 합류할려고 하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 할 수 없이 승민이형일행과 주덕읍으로 갔다. 나의 말발 덕분인지.. 주덕읍 사무소에서 기꺼이 우리에게 숙소를 내 주었고, 지원도 많이 해주었다.

 역시 준현이가 문제였다. 준현이가 힘들어 하는 나머지 준현이 아버지가 오셨다. 이대로 준현이를 데려간다면.. 준현이는.. 내가 준현이를 직접 설득했다. 끝까지 같이하자는 나의 말에 감명을 받았는지.. 준현이는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하고, 준현이를 보러온 아버지를 만나지도 않았다. 항상 말썽만 피우던 아이인데 모처럼 대견해 보였다.

 아이들을 재워주고 나면 지도자들끼리 한잔 한다. 오늘 역시 재현이와 상걸이.. 승민이 형이랑 한잔했다. 서로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탐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자리였다.

 

 1월 23일(목)

 며칠만 버티면 집으로......  

 

 어머님, 아버님들 이제 슬슬 달력을 보면서 미소를 짓고 계시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경복궁에 도착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어제 눈이 내려서 오늘 가는 길은 매우 미끄럽고, 추울 줄 알았죠. 그러나 날은 생각보다는 좋았고, 길이 미끄럽지도 않았습니다. 오늘은 경기도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막 경상북도를 지난 것 같은데, 어느새 충북을 지나고, 경기도에 도착T했군요. 언제나처럼 하루종일 걸었습니다. 아침 먹고 걷고, 점심 먹고 걷고...... 하루종일 걸었지요. 지겹고, 짜증나는 순간이었지만, 아이들이 경기도라고 쓰여진 이정표를 발견하는 순간에는 날아갈 듯이 기뻐했답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집으로 갈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일까요? 발걸음이 평소보다 빨랐습니다. 그러나 막바지에 이르러 가기 때문일까요? 불만도 많이 쌓여 있었기 때문일까요? 분위기는 조금 가라앉은 느낌이었습니다. 건들면 꽝 하고 터질 것 같은 그런 느낌...... 결국은 평소에 말썽을 부리던 문제아 3명이 또 사건을 벌이고 말았답니다. 그 결과 분위기는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지요. 하지만 집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에서인지 분위기만 가라앉았지 커다란 사건이 벌어지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막바지일수록 가장 불안하고, 문제가 쉽게 일어날 수 있는데...... 하긴 내일이 있으니,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기대를 하는 것도...... 나쁜 것이겠죠? 내일이면 용인을 통과해서 성남에 도착하겠죠?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고맙습니다. 어린아이들부터 머리가 조금 굵은 아이들까지, 서울 깍쟁이서부터 부산 갈매기, 강원도 감자바우까지 전국 각지에서 아이들이 모였고, 생김새도 성격도 서로 다른 아이들이지만 별다른 사건 없이 지금까지 잘 걸어왔습니다. 물론 양산과 대구에서 갑자기 집으로 사라져 버린 아이들도 있고, 본의 아니게 갑작스런 부상으로 낙오자의 낙인을 찍어야만 아이들도 있고, 문제만 일으키고 다니는 녀석들도 있지만 서로 어울려 커다란 하나를 이루었더군요. 지역감정도 없고, 빈부의 격차도 없고...... 아직 세상의 어두움을 모르는 순수한 아이들이기 때문일까요? 어쩐지 부럽더군요. 아직 내일이 남아있지만, 아이들은 힘든 길을 걸어왔습니다. 대장들도 힘든 길인데, 아이들은 오죽하겠습니까? 그 동안 아이들은 무엇을 배웠을까요? 아이들의 글을 읽어보면 참 많은 것을 배웠던데...... 그 동안 아이들이 얼마나 컸는지 첫날에 본 아이들의 모습이 기억이 나질 않는답니다. 부모님들도 아이들이 얼마나 고생할까 걱정이 많으셨겠지요. 눈물도 흘리고, 잠도 못 이루시고..... 내가 왜 귀여운 자식에게 고생을 시킬까 후회도 하셨겠지요.  부모님들이 왜 보내셨는지 그 속마음을 누가 알겠습니까? 짐작만 할 뿐이지요. 아이들이 자기자신을 이길 기회를 주고, 그것을 도와주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 그럴 때는 기분이 좋습니다. 집에 가라는 말에도 집에 안가는 녀석들..... 아마 부모님들이 보실 때는 훌쩍 커버린 아이들을 안을 수 있겠지요. 며칠만 버티면 집으로 가겠지만..... 그 며칠동안 조금 더 컸으면 합니다.    

 나의 이야기- 탐험대에서 가장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 3명이 있었다. 이들은 내가 무심코 붙인 원,투,쓰리로 불리고 있다. 역시 이들의 활약은 오늘 역시 기대를 저 버리지 않았다. 아프거나 계속해서 낙오된 아이들은 이제 차로 다니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은 편할지 몰라서 결국 남는게 없는 여행이 된다는 생각에 안타깝기만 하다.

 인영이랑 많은 이야기를 했다. 내가 없으면 계속 쳐지는 인영이에게 계속 신경을 써야 됬다. 같이 걸어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

 

 1월 24일(금)

  벌써 이렇게 컸니?  

 

 숨이 막히고, 사람보다 자동차가 많이 보이고, 산과 들보다는 포장도로가 많은 것을 보니 서울 땅을 밟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귓가에는 아직 적응하기 힘든 경상도 사투리가 남아있는데, 어느새 경기도 땅이고, 금방 서울에 와있습니다. 시간이 금방 흐르는군요. 힘들게 힘들게 걸어왔는데 어쩐지 조금 아쉬운 생각도 드는군요. 그만큼 아이들에게 부족했기 때문일까요?

 내일이면 영남대로 종주도 끝나는군요. 내일이면 경복궁에서 아이들과 헤어져야 하겠지요. 그리고 저도 집으로 가겠지요. 그 동안 힘든 날들이었습니다. 추운 날씨에 10일이 넘도록 걷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걷고, 아침 먹고 걷고 점심 먹고 걷고, 저녁 먹고 걷고...... 하루 종일 걸었습니다. 한, 두 명이 아닌 팔십 명이 조금 안 되는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요. 그 동안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계속 걷고 많은 생각을 하는 가운데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란 노래가 많이 생각났고, 많이 불러보았습니다. 탐험대가 군대하고는 다르지만, 힘든 걸로 치자면 군대와 비교도 할 수 없지만, 어쩐지 군대와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 밖을 나설 때
가슴속엔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 포기, 친구 얼굴 모든 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아이들이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가던 날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설레이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걷는 중엔 '괜히 왔다.'라는 생각도 했겠지요. 대장들이 무섭게 굴기라도 한다면 속으로 많은 원망도 했겠지요. 다 큰 아이들도 아니고, 한창 어리광을 부릴 나이이지만 집을 떠나서 긴 시간동안 가족과 떨어져 있는 것이, 스스로 고생을 한다는 것이 군대와 비슷할까요? 어른들이 그런 말을 자주 하지요. '군대를 갔다와야지 사람이 된다.'고 집을 떠나서 고생을 하는 것이 고마움을 알고, '나'만이 최고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보다는 '우리'를 안다는 것. 뭔가 사소한 것이라도 스스로 해본다는 것. 그러한 것들이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자라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닌 것인데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도, 그냥 웃어넘기지 못하고, 화도 내고, 속으로 원망한 적 많았습니다. 인터넷 작업을 하다가 컴퓨터가 다운이 되거나 인터넷 연결이 제대로 안되면 노트북 컴퓨터를 그 자리에서 박살내고 싶은 충동. 예 느꼈습니다. 단체생활에서 이기적인 행동은 규제한다는 명목 하에 아이들에게 걷었던 초콜릿과 육포, 그  밖에 여러 간식거리들...... 정말 먹고싶었습니다. 너무 먹고싶어서 몰래 빼다 먹을까 하고 망설인 적도 있었습니다.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문제를 항상 만들고 다니는 녀석들에게 '집에나 가라고.' 윽박 지른 적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편지를 홈페이지에 올리는 작업을 하면서, 이름 안 쓴 녀석, 비룡체, 지렁이체 등 알아보지 못할 필체를 구사하며 편지를 쓴 녀석, 이모티콘의 남발을 비롯하여 문법과 맞춤법이 틀린 녀석...... 이런 녀석들의 편지를 올리지 말아 버릴까 하는 생각도 했었지요. 아이들에게 장난도 치고, 놀린 적도 있습니다. 시간에 쫓겨, 컴퓨터가 맛이 가서...... 이런 저런 말이 안 되는 이유로 아이들의 편지나 일지를 늦게 올린 적...... 세어 보면 수없이 많습니다. 아이들의 일지를 보면서, 보노보노, 수오대마왕, 정우용준장혁빈탐크루즈, 꽃미남, 해리포터 등 다른 대장들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만, 일지에 저에 대한 이야기가 없으면 서운했습니다. 아이들이 '오늘도 새벽까지 수고하십시오.'하면 어쩐지 서러워지는 것을 느끼며 밤하늘을 보며 담배만 태운 적도 있었습니다. 사진 찍는 기술도 시원찮아서 사진도 제대로 못 찍고, 못 올려서 부모님의 속을 태운 적 많습니다.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을 외우는데 며칠이 걸렸습니다. 다른 대장들처럼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장난도 치고 싶었지만, 해가 떠 있을 때에는 뒤에 쳐진 애들 뒤치닥거리하고, 해가 지면 제일 먼저 노트북을 들고, 콘센트를 찾아나서는 제 모습이 어쩐지 처량해져 몰래 소주도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밖에도 많은 잘못을 하고, 실수도 했지요. 뭐...... 뒤돌아보면 별 것도 아니고, 그냥 슬쩍 넘어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아쉬움이 많습니다. 제가 뭔가 부족해서...... 덜 열심히 했기 때문에 그런 아쉬움이 남는 것일 테지요. 항상 이번에는 잘해보자, 열심히 해보자. 아이들에게 잘해주자 하고 하루에 몇 번씩은 마음을 먹지만, 어쩐지 그것이 잘 안 되는군요. 아이들 이름도 잘 모르고, 제가 맡은 아이들을 잘 챙겨주지 못하면 스스로에 대해 화가 나서 인상만 쓰고 다닌 적도 많았습니다.(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카리스마가 넘친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힘들었지만, 재미난 일들이 많았습니다. 가슴 찡한 일도 있었고...... 팔조령을 넘다가 비를 맞으며 애 태운 일도 있었고, 대구에서 실시된 특수작전은 거의 기적에 가까웠지요. 아이들이 다 자고 난 뒤에 몰래 나가서 소주 한잔으로 스트레스를 녹일 때의 그 느낌...... 아이들이 볼까 몰래 숨어서 피우는 담배 맛이란....... 문경새재 넘을 때 무슨 막걸리가 그렇게 먹고 싶은지...... 충주를 걸어가며 눈이 내릴 때는 조금 불안하기도 했고...... 술에 취에 시비 거는 아저씨도 있었고...... 뭔가 부족한 듯한 얼굴로 간식거리를 달라고 말하는 선아, 왕 언니 인영이, 마술로 대장들을 즐겁게 해주는 충하(몇 가지만 가르쳐 달라고 해도 안 가르쳐 주더군요.) 아는 것도 많아서 먹고싶은 것도 많아 보이는 재우, 작아도 당찬 재호, 대장들을 챙겨주기도 하지만 구박도 하고, 잔소리도 하는 혜원이, 일지나 편지 등 글쓰는 일이라면 기가 막히게 하는 준혁이, 어머니 가게에 죽 먹으러 오라는 혜선이(그 대가로 강원도 감자 한 박스를 요구하더군요.) 언제나 재미난 말과 행동으로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강원도 사나이 명건이, 목소리만 박경림같은 정현이, 장래희망이 백수건달이라던 슬비, 짬밥의 무서움을 보여주는 승은, 승호, 승재 남매, 귀여운 우리 딸 민경이, 무식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먹어대는 범준이, 수운이...... 참 재미난 녀석들도 많았고, 골 때리는 녀석들도 많았습니다.

 내일이면 그런 녀석들과 헤어져야겠지요. 참 아쉬움이 많이 남는군요.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다면 더 잘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한심스럽습니다.('더 잘해준다.'가 정답이겠지요.)
매일 걷기만 하는 지루하고, 힘든 나날들이었지만, 지금까지 이겨낸 아이들이 대견합니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과 함께 했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아이들에게 못해준 것이 많아서 미안하고, 별 볼일 없는 대장을 따라줘서 고맙기도 하고...... 어머님, 아버님들. 내일 아이들을 만나면 꼭 안아주시고, 얼마나 자랐는지 확인해보십시오. 분명히 아이들은 전에 보다 훨씬 자랐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녀석들...... 정말 멋진 아이들이었습니다.    

 나의 이야기- 마지막이라서 걷는데 좀 질려 버린거 이외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던 하루이다. 역시 난 이날도 인영이와의 데이트에 집중했다.^^ 확실히 서울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차들이 더 많아지고, 그에 따라서 행군시 위험도도 부가 되었다.

 저녁때는 오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의 한 체육관으로 향했다. 지하철에서 아이들이 무질서 하길래 달리는 지하철 안에서 벌을 줬다. 이제 마지막 날이다.. 아이들과의 헤어짐을 준비하고 곧 있을 티벳 여행을 준비해야겠다.

 

 1월 25일(토)

  날려보내기 위해 새들을 키웁니다  

 

 지금쯤 아이들은 자기의 방에서 편안히 자고 있겠군요. 아니면 텔레비전의 채널을 돌리고 있을까요? 어머님, 아버님들 아이들에게 먹고싶어하는 것을 많이 먹여주셨나요? 경복궁에 들어서면 아이들이 엉엉 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웃더군요. 처음에는 집 생각도 나고, 엄마 생각도 나서 울던 아이들이 부산에서 서울까지 걸어온 동안에 강해진 것 같습니다. 축 처지지 않고, 당당하게 걸어오던 아이들을 보면서 부모님들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아마 '내 자식은 멋진 녀석이다.'라고 느끼지 않았을까요? 힘든 길을 걸으면서 아이들이 알게 하고싶었던 것은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였습니다. 아직은 어리지만,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어른이 되면 세상으로 나가야 하겠지요. 새는 푸른 하늘을 마음대로 날아다닐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새장 안에 갇혀있는 새는 초라할 뿐이지요. 저희 대장들은 도종환님의 '스승의 기도'라는 시의 첫 구절을 인용하고 싶습니다. '날려보내기 위해 새들을 키웁니다.' 아직은 갓 태어난 병아리지만 나중에는 커다란 독수리가 되어 푸른 하늘을 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스스로 세상의 쓴맛과 사회의 어려움을 조금이라도 맛보게 하여 보다 더 세상에 적응을 잘 할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부모님들도 그렇게 생각하신 분이 있나요? 아이들은 날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아이들은 날개를 어떻게 사용하느냐 고민해야겠지요.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에게는 날개가 훌륭한 도구가 되겠지만 새장 안에 있는 새에게는 날개란 무거운 짐일 뿐입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날개를 펴고 날아갈 수 있다면, 그리고 그 과정에 영남대로 종주가 포함된다면 저희에게는 정말 고마운 일이고, 보람을 느낄 것입니다.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사회를 구성하여 생활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서로 적응을 잘 해가며 서로를 보살펴가며 지내왔습니다. 지금 바로 세상으로 나가라고 하면 무리이겠지만, 나중에는 그 누구보다 더 열심히 살아가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나의 이야기- 마지막날은 언제나 그렇듯이 허탈하다. 그동안 정들었던 아이들과의 헤어짐... 그 속에서 나 스스로도 아이들을 다루는데 많이 성장했음을 느꼈다. 지금의 이 시간은 비록 힘들기는 하지만 나중에 교단에 나가서 소중하게 쓸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처음 동래 향교에서 새로 탐험을 시작한 아이들은 아직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효선, 수호, 상걸이.. 이번 탐험은 무엇보다도 지도자들끼리 호흡이 잘 맞았고 별 마찰도 없었다.

 처음 동래향교에서.. 다들 처음에는 깨끗한 복장이다.

 동래향교의 전체 사진..

 저번 백두산때 함께했던 슬비의 이쁜 모습.. 3일뒤면 탐험온 것은 철저하게 후회한다.

 

동래 향교에서 500미터 떨어진 지점인 복천 박물관이 뒤에 보인다.

 동래읍성 정상에서.. 의외로 가파른 동래읍성 때문에 무척 더웠다. 뒤에 부산시내가 보인다.

재현이와 함께..언제나 뒤를 받쳐주는 든든한 후배이다.

 

 상걸이.. 처음 만났을 때는 전형적인 모범생타입인데.. 많이 변했다.

 탐험대 배식하는 장면.. 3명씩조를 짜서 밥을 먹엇다.

 낙동강이 한눈에 보이는 낙동루에서.. 1년반전 여미사 탐험이후 3번째이다.

 한가한 철길 옆을 행군하는 장면..
 

 슬비가 깃발을 앞세우고 제일 앞에서 행군을 하고 있다.

 행군대열의 중간중간마다 지도자들이 배치되어서 질서정연한 행군을 이끌었다.

야간 행군중 쉬는 모습.. 나 역시 인간의 형상이라고 하기엔..^^

 몇시간동안 계속되는 야간행군중 부여되는 짧은 쉬는 시간은 탐험대에게는 꿀맛같은 소중한 시간이다.

 단선된 경부선 터널 앞에서.. 뒤에 아이들이 열심히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상걸이 역시 여기서 찰칵..
 

 밀양 영남루에서 재현이와..

 영남루를 관람하러 질서 정연하게 박물관으로 올라가는 모습

 밀양 외곽에 길없는 길을 걷는 장면.. 내가 선봉에 섰다.
 

 문경 근처에 있는 고모산성에서.. 관광지화를 위해서 한창 공사중이었다.

 1,2대대의 모습.. 내 옆에 귀여운 인영이가 있다.^^

팔조령가는 길목의 아름다운 연못이 있는 한 정자에서..

 날씨가 무척 추운 관계로 얼음이 꽁꽁 얼어 있었다.
 

 아이들이 기념촬영을 할동안 별동대와 지도자들은 쉬고 있었다. 처량하게 귤을 까먹는 재현이 모습이 정말 처량하다.

 선아와 인영이와 함께.. 오리엔테이링이라서 여유로왔다.

 오리엔테이링에서 쉬는 모습..

 아줌마들도 연출하기 힘든 지하철에서의 효선이의 모습

 나와 인영이가 다정하게 지하철을 타고 있다.

 지하철에서는 피곤에 지친 아이들이 다 곯아 떨어졌다.

 역시.. 지하철 바닥에 쭈그려 앉아 자고 있는 충환이

 토요일 경복궁은 시끌벅적 했다. 짧게는 12일 길게는 19일동안 보지 못했던 자녀들을 보러온 부모님과 친척들.. 친구들이 감격스러운 만남을 가지고 있다.

이로서 6번째 국토순례도 끝.. 난 물집한번 나지 않은채 무사히 끝냈다.

 제주도에서 나의 애인이었던 하연이와 함께.. 탐험을 하는동안 여대생이 되어 있었다.

 19일동안 함께한 역저의 용사들과 함께.. 언젠간 다른모습으로 마주칠 날이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