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섬여행 1 (벗들과 함께한 여행,광주,거금도) 1월1일~2일

 1월 1일(목)

 2004년의 시작이다. 언제나 그렇듯 다사다난했던 지난해를 마감하고 희망찬 새해가 시작이 되는 지금 서울에서 충주 가는 버스표를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조치원의 PC방에서 새해를 맞이 하고 있었다.

 ‘뒤죽박죽 섬여행’ 이번 여행의 테마를 이렇게 정한 것은 그냥 막연히 섬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정한 테마이다.

 난 새해가 시작되면서 출발하지만 후배 상걸이와 민구는 이미 28일부터 여행을 시작하였고 상걸이의 과동기인 경윤이와 희진이는 30일에 합류를 해서 경기도에서 전라북도를 거쳐 광주까지 내려왔다.

 새벽까지 피시방에서 기억에 남을 새해를 맞이하고 새벽 6시에 부랴부랴 기차를 타고 충주집으로 갔다.

 잠시 눈을 붙이고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집을 나선 시간은 오후 3시...

 충주에서 대전역으로 기차를 타고, 대전역에서 다시 서대전역으로 이동한 후 서대전역에서 광주로 가는 무궁화호를 타고...

 광주에 도착하니 오후 9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마침 1월1일은 나와 절친한 여행친구인 경남이형 생일이다. 경남이형은 생일을 핑계로 나를 비롯한 후배들을 집으로 불러서 후하게 영양보충을 시켜 주었다.

 경남이형 친구들과 많은 여행자들을 만날 수가 있었다.

 쌓인 이야기와 서로 인사들을 하면서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어 가고...

 경남이형이 아는 후배라는 이유만으로 기꺼이 집에서 재워주시는 경남이형 누님내외에게 정말 감사할 뿐이다.

 따뜻한 인정속에서 여행 첫날밤은 저물어 갔다.

1월 2일(금)

 여행을 시작하는 이때.. 우리는 여행 계획을 세우기는 커녕 여행의 목적지를 정하지 못했다. 테마대로 뒤죽박죽인 것이다.

 얼핏 진도에서 출발한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우리와 계속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인지 경남이 형이 자기가 태어난 거금도로 같이 가자고 하는 것이다.

 경남이 형과 헤어지기도 아쉽고 처음 만나서 엠티를 가는거라 생각하고 일단 거금도로 출발했다.

 이번 여행의 이동수단은 히치여행이다. 자전거와 걷는 것도 좋은 여행이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허락하지 않는다. 히치에서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돈이 들지 않는다는 것!(밑줄 쫙^^).

 그렇지만 광주같은 대도시에서는 히치를 하면 택시밖에 안서기 때문에 광주에서 화순까지는 버스를 이용해서 이동을 했다.

 2번째 버스가 화순역에 도착해서 히치를 하기 시작했다. 5명이기 때문에 2명 3명으로 2개조로 나누어서 각각 히치를 했다.

 전라도 인심이 좋다는게 히치를 하자마자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화순에서 낙안민속촌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거의 히치를 시도하자마자 차가 잡혔다.

 나와 같은 조인 경윤이는 처음 여행을 해서 인지 신기해 하기만 하고.. 사진배달을 가시던 친절한 사진관 아저씨는 약간 우회를 하면서 목적지 바로 앞까지 태워다 주셨다.

 낙안민속촌은 벌교에서 10킬로정도 떨어져 있으며 낙안읍성을 중심으로 민속촌이 형성되어 있다.

 지금은 시대의 흐름에 밀려 쇠퇴를 했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전략의 요충지로서 읍으로 지정된 곳이었다.

 입장료(1000원)을 내고 읍성을 둘러보았다. 옛모습 그대로 초가집이 늘어서 있고 테마별로 둘러보기 쉽게 꾸며져 있었다.

 대부분의 읍성들은 발전이라는 이름하에 거의 대부분 파괴가 된 반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된 이곳은 오히려 발전되지 않은게 더 큰 관광사업으로 이어졌다는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피식 웃었다.

 낙안민속촌은 인기드라마 ‘허준’의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는 곳이다. 궁중과 귀족중심을 그려 내던 기존 드라마와 달리 사극의 새 지평을 열었던 허준의 촬영지라는 이야기를 듣고 조선시대 서민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집들 사이로 이리저리 뛰어다녔던 한시대의 명의가 떠올랐다.

 낙안민속촌을 예정시각보다 늦은 4시쯤에 출발을 했다. 2개조로 나누어서 히치를 했다. 여름과 달리 겨울은 히치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오후 5시반으로 제한되어 있다.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차들이 잘 세워주지 않기 때문에 5시반을 가이드라인으로 설정하고 잘 곳을 찾는 나름대로의 시스템을 채택했다.

 같은조가 된 경윤이와 여행이야기를 하면서 구례를 거쳐 고흥까지 히치를 했다.

 구례에서 고흥으로 갈때에는 날카로운 인상의 청년의 차를 탔다. 우리한테는 정중하게 해주었지만 청년이 핸드폰을 받았을때 잠시 긴장되기도 했다.

 ‘머여? 사기? 주민등록 대봐? 몰러? 그럼 전화번호 가지고 찾을 수 있을지 알아볼텐께 좀 기다려 보더라궁’

 직업을 짐작할 수 있는 전화통화를 듣고 나서 긴장되기도 했지만 뒷좌석에 타고 있는 우리에게는 친절했다.

 고흥에 도착하고 다시 녹동을 향해 새로 차를 잡았다. 인심좋은 봉고차 청년둘이 우리를 반갑게 태워주었다.

 녹동에 모여서 따뜻한 오뎅국물을 곁들이며 붕어빵을 먹으며 얼었던 속을 데웠다.

 녹동에서는 경남이형 고향인 거금도에 갈 예정이다. 녹동에서 거금도로 가는 배는 30분이 소요되고 1인당 900원으로 생각보다 저렴했다.

 광주에서 뒤늦게 출발한 경남이형과 녹동에서 재회를 한후 거금도행 배에 올랐다.

 거금도에 도착하니 이미 어둠을 깔려 있었다. 경남이형네 집은 지금은 사람이 살고 있지는 않지만 제사때나 집안행사때는 형제들이 모두 모인다고 한다. 집 형태는 전형적인 어촌농가이다.

 장작으로 떼는 온돌방에서 우리 모두는 삼겹살과 술잔을 걸치며 밤을 지세웠다. 처음 만나는 이들도 있었지만 낭만적인 분위기에서는 어색함이라는 벽도 금방 허물어 졌다.

 광주의 경남이형 집에서 나와 경남이형.. 언제나 봐도 편한 형이다.

 광주에서 버스를 타서 처음 도착한 목적지.. 화순역. 모두들 화장실로 직행^^

 낙안 민속촌의 전경.. 거의 모든 집이 초가집이다.

 

 민구와 경윤이.. 어색한 둘의 포즈

 초가집.. 드라마 허준의 촬영지이기도 했다.

 디딜방아를 밟는 나와 경윤이..

 낙안민속촌안의 도예전시실.. 저렴한 가격에 각종 도예제품들을 판매한다.

 민구의 포즈는 언제나 똑같다.

 낙안민속촌을 배경으로..

 성곽 깃대앞에서 한장 찰칵!

 낙안민속촌의 화장실로 초가집이다.

 늙은 말.. 생긴 모습이 여느말과는 다르다.

 옛 관청앞에 있는 비석 앞에서..

 서를 끌고 가는 민구.. 정말 어울린다.

 그네타는 경윤이

 그네타는 나..

 곤장맞는 나.. 맞으면서도 왜이리 즐거운지..

 관청의 모습을 재현한 마네킹앞에서 빌고 있는 민구..(시킨다고 진짜 하냐 ㅋ)

 역시나 빌고 있는 희진이와 상걸이..(추하다..)

 시늉만하라고 했는데 희진이가 정말로 상걸이를 때렸다.. 대나무라서 많이 아팠을 텐데..

 자신만만한 대장.. 나

 반면 비굴한 상걸이...

 박물관안에서 농촌풍경을 재현한 인형을 관찰

 나뭇잎을 재료로 만든 그림

 낙안민속촌의 전경을 볼 수 있는 조망도다.

 성루에서 각자의 어색한 포즈..

 희진이와 경윤이.. 배경이 멋있다.

 상걸이의 목을 조르는 나..

 역시 어색한 포즈의 민구.. 사진찍을 때는 활짝 웃는다.

 낙안민속촌 전경.. 집들이 올망쫄망 모여있다.

 외딴 시골의 버스정류장.. 인간미가 묻어난다.

 녹동 항구의 전경..

 상걸이를 괴롭히는 경윤이..(지는 일지 쓰지도 않았으면서 ㅋ)

 배를 타고 건너온 거금도에서 경남형과 우리 일행..

 

전라남도 섬여행 2 (여행의 본격적 시작 보성, 강진, 완도)1월3일~4일

1월 3일(토)

 술과 젊음이 함께하는 낭만적인 밤을 지새고 일어나니 오전 11시였다. 장작으로 떼는 온돌방이 너무 뜨거워서 밤새도록 땀을 뻘뻘 흘렸다. 한마디로 장작 무시하다 뜨거운 맛을 본 것이다.

 날이 밝은뒤에 본 거금도는 생각보다 큰 섬이었다. 사방에 바다는 보이지 않고 작은 산들이 둘러싼게 보였다. 섬이라면 어업을 주로 할거 같은데 의외로 농사를 많이 짓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경남이형은 오랜만에 고향에 온김에 아버님 제사를 지내고 간다고 한다. 목적지가 정해져 있지 않았던 우리는 다시 녹동으로 나가기로 결정 했다.

 눈부신 햇살과 푸른 하늘이 우리를 따스하게 감쌌다. 이곳의 겨울은 춘천과는 전혀 다른 형태의 겨울이다.

 강원도 춘천과 같은 겨울을 생각하고 준비해온 나로서는 두껍게 입은 옷들을 배낭속으로 집어 넣어야만 했다.

  덕분에 배낭이 약간 무거워졌다. 포근한 날씨에 평화로운 초록들을 보며 강원도에 있던 난 ‘초봄인가?’라는 착각에 들었다.

 머.. 쓸데없는 이야기를 많이 한거 같은데.. 한마디로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녹동에 도착하고 거문도로 갈지 완도로 갈건지 잠시 모여서 의견을 나누었다. 처음 계획은 거문도였지만 15000원이나 하는 배삯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었다.

 결과는 완도행.. 같은 시간과 자금으로 더 많은 곳을 보는게 여행에 있어서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완도를 가기 위해서는 육로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거리가 만만치 않았다. 오늘은 일단 차의 고장으로 알려진 보성을 목적지로 두었다.

 농동을 출발해서 고흥과 벌교를 거쳐 보성까지 가야 했는데 녹동에서 출발할 때 시간이 3시반이 되었기 때문에 내심 걱정이 되었다.

 그러한 걱정은 단 한번의 행운으로 떨쳐버리게 되었다. 민구와 경윤이와 짝이 되어 녹동에서 고흥까지 히치를 하고, 다시 벌교로 가는 차를 히치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 앞에 테라칸이 멈췄다.

 테라칸에는 상걸이와 희진이가 타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일행은 모두 테라칸에 타고..

 운전자 아저씨는 처갓집인 영광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우리 때문에 빠른길을 놔두고 보성으로 우회하는 도로를 타셨다. 젊었을때 여행을 많이 했다고 하시면서 지금도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가족들과 1달에 2번정도 여행을 간다고 하셨다.

 나 역시 가정을 이루게 되면 저 분의 모습이 될까? 아저씨가 휴게소에서 사주시는 캔커피를 홀짝이면서 결혼 후 나의 미래를 상상해 보았다.

 보성에 내리니 대락 오후 5시.. 오늘 하루 신세질 곳을 찾기에는 적당한 시각이었다. 먼저 바로 앞에 보이는 보성향교를 관람했다.

 향교는 서당과 달리 국가에서 운영하는 고등교육기관이었다. 도시에 향교가 들어섰다는 것은 조선시대때 발전된 번창한 도시여야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한면에서 보성은 예부터 발전된 도시형태를 띄고 있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보성읍에서 교회와 사회복지관을 찾았지만 사정의 여의치 않았다. 또한 여자애들이 며칠째 샤워를 하지 못한 것을 보면서 온수 샤워를 할 수 있는 마을 회관이 좋을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마을회관은 읍보다는 좀 떨어진곳에서 쉽게 신세질 수 있을거 같았다.

 보성읍에서 남쪽으로 조금가서 두술마을 회관에서 하룻밤 신세질 수 있었다. 마을회관엔 할머니 한분이 계셨는데 우리는 친손자들이 온 것처럼 반가이 맞아 주셨다. 상걸이와 함께 저녁거리를 사러 슈퍼에 갔다온 사이 마을회관에 이장님이 오셨다.

 이장님께서는 오랜만에 보는 젊은이들이 반가운 나머지 보성에 대한 자랑을 많이 하셨다. 일도 바쁘실텐데 우리가 편한지 지켜봐주시고 편의를 봐주셨다.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저녁을 먹을때 여자애들과 잠시 다툼이 있었다. 히치여행이라고 하지만 고된건 당연한일.. 며칠 여행을 하면서 많은 불만이 있었나 보다. 리더가 된 입장에서 첫 여행을 하는 애들의 불만을 다 받아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이럴때는 많은 여행을 한 상걸이를 믿을 수 밖에..

 비록 여자로서 힘든 여행을 하지만 여행이 끝날때까지 많은 추억과 경험들을 거두어 갔으면 한다.

1월 4일(일)

 7시반에 눈을 떴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마을회관 청소를 하고 나니 이장님께서 용달차를 몰고 마을회관 앞까지 오셨다.

 이장님께서는 우리를 보성의 차밭관광지까지 태워주신다고 하셨다. 여자애들은 용달차 좌석에 태우고 남자 3명은 용달차 짐칸에 탔다.

 짐칸에 탄 탓인지 좀 춥기는 했지만 쭉뻗은 가로수와 융단같은 차밭... 정말 그림 같다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보성은 차로 유명하다. 보성의 기후와 토양은 차가 자라는데 최적의 장소라고 알려져 있다. 때문에 일제시대때부터 차가 재배되기 시작해서 최근 관광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건강열풍에 힘입어 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보성 차밭에 관광객 방문이 잦아지고 있다.

 관광객들을 위한 산책코스도 잘 되어 있었다. 쭉 뻗은 가로수를 지나 온 산을 덮는 초록의 차밭을 보니 상큼한 느낌이 들었다.

 초록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힘을 가진거 같다. 특히 겨울의 초록은 춥고 각박한 세상에 작은 평안함이 되어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밭을 관람하는 다른 방문객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평소 이웃에게 인사한번 제대로 못하는 도시인들이 이곳에서는 서로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

 차밭을 둘러보고 내려오니 이장님께서 계속 기다리고 계셨다. 다시 용달차를 타고.. 차밭에서 얼마 안 떨어진 전망대까지 태워주셨다.

 전망대에 올라서자 멋진 풍광이 한눈에 들어왔다. 근처 차 밭을 한눈에 볼 수 있었는데 저 멀리 저수지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친절하신 이장님은 우리를 가이드해주신 것은 물론 장흥까지 태워주셨다. 축산업을 하시느라 바쁘실텐데 정말 고맙기만 하다.

 이장님과 기념촬영을 하고 강진을 향해 떠났다.

 장흥에서 강진으로 가는 길은 차가 잘 안잡혀서 잠시 걸었다. 본의 아니게 국토순례를 하게 되었지만 이렇게 가끔 걷는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치를 하면 운전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지만 이렇게 걷는 것은 그러한 이야기와 느낌들을 나 스스로 정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전라도의 민심은 날 사색에 빠져들게 하지 않았다. 우리 일행앞에 승합차 한대가 섰고 탤런트 김학철을 닮은 듯한 인상좋은 아저씨가 우리를 태워주셨다.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차안에는 찬송가가 흐르고 덩치 큰 아저씨는 검은 양복을 입고 계셨다. 신앙생활을 한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생활에는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아저씨께서는 10번 잘못할 것을 2~3번 정도 줄여준다고 하시면서 생활의 편안함이 느껴진다고 하셨다.

 인류에게 있어서 종교는 장점은 바로 이 역할인거 같다.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행동의 기준이 되어주고 삶의 안식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는 법. 종교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때에는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는 역사가 말해 주고 있다.

 아저씨는 우리일행을 장흥읍 외곽까지 태워주시고 허기를 채우라면서 만두집 아줌마에게 만원을 쥐어주셨다. 이럴때는 감사하다는 말 밖에... 여행을 시작하면서 너무나 많은 고마운 이들을 만났다.

 만두집에서 만두와 찐빵.. 오뎅을 곁들이면서 허기를 잠시 채운 후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유배지로 유명한 다산초당으로 향했다.

 다산초당으로 가는 지방도는 지나가는 차들이 거의 없었다. 때문에 1시간정도 걸어야 했다. 남자 3명이야 국토순례 경험이 풍부하기 때문에 문제 없는 거리이지만 희진이와 경윤이는 좀 버거워 하는 듯 했다.

 다산초당에서 6.5킬로 떨어진 지점에서 가족들이 탄 듯한 용달차를 히치 했다. 우리 모두는 짐칸에 탔다. 처음 타보는 여자애들은 시원한 기분을 느끼는 듯 신나했다.

 박물관에 먼저 간 후 초당으로 올라갔다. 외진곳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가족 관람객들이 보였다. 아이들에게 위인의 흔적을 보여주려는 부모들의 생각이리라.. 산책도 올겸 교육적 효과도 있는 멋진 곳이다. 또한 주변은 운치있는 산과 나무.. 그리고 저 멀리엔 바다가 보였다.

 다산초당을 관람한 후 히치조를 짜서 완도 연륙교에서 만나기로 했다. 경윤이와 짝이 되어 2번의 히치끝에 연육교에 도착했다. 음.. 히치가 이렇게 쉬울줄이야.. 우리나라의 모든 차들이 나의 자가용이 된 느낌이다..(넘 거만한가 ㅡ.ㅡ)

 섬인 완도를 육지로 만들어준 연륙교에서 모두 기념사진을 찍고, 통일신라시대 해상왕 장보고의 흔적이 있는 청해진 유적지로 갔다.

 1300여년 전의 해상왕국의 흔적은 거의 사라지고 지금은 그저 터라는 곳만 짐작할 뿐이다.

 자랑스러운 역사이지만 그에 대한 연구와 복원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인기 있는 관광지 위주의 발굴이 정작 청해진과 같은 유적지를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 오지 않았는지 의문이 되기도 했다.

 청해진 유적지의 일부인 장도는 지도에서는 섬으로 표시되어 있지만 우리가 갔을때 마침 썰물이라서 걸어서 갈 수 있었다.  

 장도는 한참 공사중이었는데 역사적 사실을 빼면 다른 섬과 다를게 없었다.

 섬을 둘러보고 갯뻘에서 생라면을 부셔먹었다.. 휴.. 식량이 있어야지.. 옛 해상왕국의 중심지에서 둘러 앉아 라면을 부셔먹는 기분이란..

 청해진 유적에서 다시 히치를 해서 완도읍으로 갔다. 완도 여객선 터미널에서 선박 정보를 얻은 후 잠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완도읍을 벗어났다.

 또 히치를 해서 구계등까지 갔다. 마침 일몰때라서 환상적인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일몰과 함께 은은히 비치는 돌 해변.. 아.. 이럴때 애인만 있었어도..

 우리 일행은 각자 해변을 걸으며 감상에 잠겼다. 다른이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 이럴때가 아니지.. 해가 지고나서는 오늘 잠자리를 찾아야 한다.

 일단 해변을 벗어나 조그마한 마을 교회에 들어갔다. 교회에서 목사님이 우리를 맞아주셨지만 교회사정상 우리일행을 재우지는 못하고 완도읍에 있는 큰 교회에 양해를 구하셔서 거기서 재워주시기로 했다. 목사님이 직접 우리를 순복음 교회로 차를 태워주셨다.  

 순복음 교회에 가자마자 집사님들이 우리를 맞아 주셨다. 배고픈 우리들에게 배불리 밥을 주시고 따뜻한 방을 주셨다. 정말 감사할 뿐이다.

 일요일인 만큼 오후 7시에 예배가 있었는데 우리 일행도 같이 참여를 했다. 예배를 하면서 섬지방 교회 예배는 어떤지 비교해 보았다.

 기도 내용중에 정치색을 띤 내용도 있었다. 예를 들면 ‘노무현 대통령에게 힘을 주어 이나라 정치에 평안할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와 같은 내용을 기도하기도 했다.

 또한 병든자와 고민있는자, 소원이 있는자에게 특별 기도를 해주기도 했다.

 목사님이 소원이 있는자는 머리에 손을 얹으라는 말에 나도 오른손을 머리에 언졌다.. 목사님은 기도를 하시고.. 난 마음속으로 소원을 빌었다. 나의 마음 깊숙이 숨겨 있는 소원을 잠시 꺼내다 생각했다.

 예배가 끝나고 모두들 완도 항구로 나갔다. 시원한 바람과 적막한 항구.. 우리 5명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그렇게 걸었다.

 내일이면 보길도로 간다. 내일은 또 어떤 경험과 추억들이 날 기다릴까? 희망에 가득한 단꿈을 꾸며 잠 들었다. 오늘 여행은 한푼도 안 들었다.

 한적한 농촌 마을을 보는 듯한 거금도

 경남이형집 앞에서 모두들 찰칵~

 한적한 부두와 바다바람이 어우러져..

 녹동~거금도를 연락선

 선상에서 마냥 즐거운 두 여인

 친절한 테라칸 아저씨와 함께

 최고의 시설로 이루어진 인심좋은 마을회관 앞에서.

 히치한 트럭위에서 민구와 나

 건방진 표정의 상걸이..

 보성 차밭 공원에서 민구와 나의 주책

 차밭으로 가는 잎구는 훤칠한 나무가 우리를 맞아준다.

 보성차밭의 전경.. 초록의 아름다움이다.

 차밭의 희진이.. 이번 여행에서 얻은 소중한 친구이다.

 날아가는 기분으로..

 먼곳을 바라보는 우리들

 저 멀리서 우리 일행이 달리기 자세를 하고 있다.(참 별짓 다하고 다녔다..)

 민구와 나.. 민구는 언제나 든든한 여행 동료이다.

 차밭의 아름다운 굴곡

 너무도 인심이 좋으신 이장님.. 감사함니다.

 한산한 장흥읍 전경

 포터 뒷칸에 경윤이의 머리카락이 휘날린다.

 다산 정약용 박물관.. 이곳은 다산의 유배지였던 곳이다.

 자작나무 숲에서 포즈를 취한 희진이

 다산초당에서 바라본 바다와 건너편의 장흥

 정자에 다소곳이 앉은 경윤과 희진

 완도대교 앞에서 나..

 썰물 때라서 갯벌이 보인다.

 장보고동상 앞에서..

 1300년전의 해상왕국의 본거지 장도

 갯벌에서 라면 부셔먹는 광경.

 완도 여객선 터미널에서.. 여기서 3시간 반이면 제주도를 간다.

 완도 수산시장 전경

 일몰.. 피곤한 듯한 경윤과 희진 상걸이

 마냥 즐거운 민구와 나

오늘도 해는 저물어 가고....

 

전라남도 섬여행 3 (보길도, 노화도, 해남땅끝)1월5일~6일

1월 5일(월)

 7시 30분 월요일 아침의 교회는 적막했다. 모두들 보길도에 간다는 설레임에 기분이 들 떠 있었다.

 목사님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지만 안 계셔서 사모님에게 인사를 드렸다. 사모님은 우리에게 초코파이 한상자와 귤을 챙겨 주셨다. 이른 아침부터 고마움을 느끼는 순간이다. 교회를 나서니 날씨가 정말 청명했다. 마치 가을 하늘을 보는 듯 했다.

 시장에 가서 싼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주인아줌마가 1인당 4000원을 부르셨는데 학생들이라고 하니까 3000원에 해주셨다.

 그 다음은 보길도로 가는 화흥포구.. 다시 조를 나누어 히치를 했다. 화흥포구에서 11시(1인당 7000원)배를 탔다.

 배는 트럭이 몇 대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큰 배인데 비교적 빠른 속도로 보길도로 향했다. 객실이 따로 있기도 했지만 선상으로 나와서 상쾌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멀어지는 완도를 바라 보았다.

 소안도 노화도를 거쳐 보길도의 중심항구인 청별선착장에 도착했다.

 아름다운섬 보길도 이곳은 고산 윤선도의 유적지로도 유명하다. 윤선도는 51세가 되던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병사들을 이끌고 강화도로 구원을 갔지만 그곳에서 인조가 이미 항복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세속에 대한 회의감으로 은둔생활을 결심하고 제주도를 향했다.

 제주도를 가던중 폭풍을 만나 보길도에 표착하여, 보길도의 절묘한 산새와 해안의 절경에 매료되어 이곳에서 15년을 머물면서 주옥같은 한시들을 지어냈다.

 고산 윤선도의 흔적이 숨쉬는곳.. 그곳에 내려서 가장 먼저 한일은 면사무소에 가서 짐들을 맡겼다.

 보길도 해안도로를 슬슬 걸어가면서 망끝 전망대로 향했다. 섬이라서 그런지 차가 많이 없었다. 걷다가 지나가는 차를 히치를 하고 슬슬 걷기도 하고.. 평화로운 해안과 저 멀리 보이는 섬들.. 초록으로 뒤덮힌 산.. 이곳이 바로 지상낙원이리라..

 망끝 전망대는 보길도의 서쪽 절벽에 있다. 우리는 히치한 봉고차에서 내리자 마자 탄성을 질렀다. 바로 앞의 소도들과 저 멀리 추자도가 보이고, 길을 따라 잠시 걸으니 도로 바로 밑에는 몇 십미터 절벽이었다.

 파도가 철퍼덕 부딧치는 절벽이 쭉 이어져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날씨가 맑기는 했지만 제주도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면사무소쪽으로 돌아가려고 걸으면서 히치를 했는데 우연히도 아까 망끝전망대까지 태워주신 분들이었다.

 청별로 들어가기 직전의 갈림길에서 섬중앙에 있는 윤선도 유적지로 들어갔다.

 유적지 입구의 슈퍼에서 컵라면을 먹었다. 원래 1500원이었는데 인심좋은 아줌마는 1000원만 받으셨다. 섬 안쪽에 있는 부용리를 향하는 도로는 산으로 둘러 쌓여 있어서 바다를 볼 수는 없지만 주변 풍경들이 이뻤다.

 처음에는 문학체험 공원에 갔지만 사람들이 쌓아놓은 돌탑들만 인상 깊을 뿐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다시 1시간정도 걸어 올라가 동척석실로 갔다. 동척석실은 윤선도가 산 중턱 암석 위에 지어놓은 작은 정자인데 길이 길이 가파라 조금 힘들었지만 주변 경치도 너무 좋았고 목표지점까지 간 후의 보람을 생각하며 올라갔다.

 정자까지 올라서니 주변이 한눈에 보였다. 저 멀리 저수지가 보이고 평화로운 마을들과 밭들, 그러한 환경을 보호하듯 병풍처럼 둘러싼 산들.. 잠시 조선시대 선비가 되어 풍취를 즐겨 보았다.

 동척석실 탐방을 마치고 오던길로 내려갔다. 면사무소 방면으로 가는 길에는 오는 길도 그렇듯 돌아가는 길에도 차들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아 그대로 걸어 갔다.

 지나가는 길에 윤선도가 기생첩을 데리고 살았던 세연정을 들른 후 맡긴 짐을 찾으러 면사무소로 갔다.

 오후 4시 30분.. 면사무소에서 짐을 찾은 후, 보길도에 남을지 바로 앞의 노화도로 갈지 결정을 안 내렸다. 이왕이면 노화도를 봤으면 하는데.. 그럴려면 보길도 동쪽 탐방을 포기해야 하고.. 의견을 나눈끝에 노화도로 건너가기로 했다.

 보길도에서 노화도로 가는 배는 수시로 있으며 시간은 5분 걸린다. 하지만 지금 건설중인 다리가 완성이 되면 그러한 낭만도 없어지리라..

 노화로 가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숙소를 잡는 일.. 먼저 파출소에 갔다. 파출소에서는 재워주기는 곤란하다면서 그대신 다른곳을 알아봐주신다고 하셨다.

 면사무소에 들어가서 강원도 춘천에서 왔다고 하니 거의 스타가 되었다. 직원들의 시선은 우리에게 모아지고.. 우리의 여행이야기에 감탄사를 연발 하신다.

 숙소를 잡아주시는건 당연지사.. 근처의 포천리 마을 회관을 소개해 주셨다. 마을회관으로 가는 도중 우리에게 친절하게 말을 거는 분이 계셨다. 전도사님인듯한 그 분은 비록 우리에게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관심을 가져주시고 따뜻하게 맞이해주시는 것 만으로도 감사드렸다.

 마을회관에 다다르자 이장님이 우리일행을 기다리고 계셨다. 이장님은 보일러 트는법과 샤워시설 이용법등을 가르쳐 주신뒤 불편한게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하신다.

 이방인인 우리에게 너무나 친절하시다. 우리는 그저 고마울 뿐..

 마을에서는 우리 일행이 금새 알려졌는지 마을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 오셔서 이것저것 물어보시고 필요한게 없냐고 물어 보신다.

 경윤이와 상걸이와 저녁거리를 사러 읍내로 걸어왔다. 왕복 1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저녁거리 이외에도 오랜만에 단맛을 보라는 의미에서 과자도 사왔다.  

 샤워를 하고 티비를 보고 있을때 이장님이 다시 오셨다. 이장님은 제삿집에서 가져온 귤, 사과, 생선과 소주 2병을 가지고 오셨다.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 신경써주실 줄이야.. 감동의 연속이었다.

 저녁을 먹고 있을때 아까 마을회관쪽으로 오다가 마주쳤던 친절한 전도사님과 사모님이 오셨다.

 전도사님은 궁굼하신게 많으신가 보다. 우리의 여행이야기를 들으시면서 대견해하시고 부러워 하셨다.

 전도사님은 우리의 여행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하시며 해남땅끝 마을까지 가는 배 선장을 잘 알고 있다면서 무료로 갈 수 있게 알아본다고 하셨다.

 전도사님이 떠나신 후 이장님이 가져오셨던 음식으로 때아닌 중풀이를 했다.

 오늘은 다른때와 달리 많은 돈을 지출했다. 1인당 기준으로 계산하면 보길도로 오는 배삯 7000원, 아침 3000원, 점심 1000원, 저녁 1400원, 보길도에서 노화도로 가는 배삯 500원.. 1인당 13300원이다.

 평소때 보다 과도한 지출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헤픈 지출은 아니다. 우린 누구보다도 저렴하고 누구보다도 보람되게 여행하고 있지 않은가!

1월 6일(화)

 아침 6시.. 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해돋이를 보려고 일찍 일어났다. 그러나 날씨도 흐리고 차를 태워주신다는 이장님도 오시지 않으셔서 이내 포기했다.

 처음 계획은 노화도를 관람하고 땅끝 마을로 가는 것이지만, 어제 미처 보지 못했던 보길도의 예송리 해변과 글씐 바위가 아름답다는 말과 노화도는 볼게 별로 없다는 말에 마을주민들의 이야기에 다시 보길도로 넘어가기로 했다.

 오전 8시 노화도에서 보길도로 넘어가는 배를 타고 곧바로 면사무소로 향했다.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면사무소에 짐을 맡겼다. 에구.. 면사무소를 이렇듯 짐 보관소로 몰면 안되는데.. 그래도 직원들은 친절하게 짐을 맡아 주신다.

 면사무소에서 출발한 직후 전도사님이 우리에게 전화를 하셨다. 노화도 산양진에서 출발하는 오후1시 배의 선장에게 우리 이야기를 했더니 흔쾌히 무료로 배를 태워주신다고 약속을 받았다는 사실.. 오~ 이럴수가..

 기쁨을 뒤로한채 몽돌 해변으로 유명한 예송리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조금 걷다가 용달차 히치~ 이곳 섬은 거의 대부분의 주민들이 생업을 위해서 용달차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 섬의 모든 용달차가 우리차가 된 듯..

중학생 딸을 학원으로 데리고 가는 중이었던 용달차 아저씨는 잠시 짬을 내어 우리 일행을 예송리 해수욕장 전망대까지 태워 주셨다. 전망대에 내리는 순간.. 아름다웠다.. 역시 이곳을 놓치지 않고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햇볕에 반사되어 넓은 바다는 반짝반짝 거리고.. 거기 저기 솟아있는 섬들.. 바둑판처럼 질서 정연한 양식장들.. 이 모든게 한폭의 그림을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전망대에서 해변으로 내려왔다. 돌로 이루어진 해변이라 파도에 돌부딧치는 소리가 음악처럼 들려왔다. 해변을 잠시 걸으며 돌을 던져 물수제비도 해보고 평화로운 어촌 풍경도 감상했다.

 이번에는 글씐바위.. 글씐바위는 우암 송시열 선생님이 당파 싸움에 밀려 제주도로 귀양을가시던중 풍랑을 만나 보길도 동쪽으로 피신을 했었는데 그때 읊은 시를 누군가가 바위에다가 적은 바위이다.

 예송 해수욕장에서 항구로 되돌아가는 길에 삼거리가 나오면 동쪽 길로 가야 하는 길이다. 비교적 먼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단 한번의 히치로 그러한 걱정은 끝.. 용달차 한대를 히치를 했다. 원래 삼거리 까지만 가기로 했는데 앞에 탄 희진이가 유리로 나를 부르더니 손가락으로 동그라미 표시를 하는 것이다. 그 말은 곧~ 글쒼바위까지 태워다주신다는 뜻이다.

 용달차를 타면 남자는 짐칸에 타고 여자애들이 앞에 탔는데.. 미인계를 잘 썼던 모양이다.

 글씐바위는 생각보다 한참 들어가야 했다. 차도 거의 안지나가기 때문에 만약에 이차를 잡지 못했으면 꼼짝없이 몇시간을 걸어가야 했으리..

 글씐바위가 있는 장소에 도착해서 처음에는 찾지를 못했는데 절벽을 유심히 살펴보니 찾을 수 있었다.

 글씐바위를 보는것도 의미있지만 이곳의 아름답기 그지 없는 풍경을 보는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이제는 면사무소로 가야했다. 되돌아가는길은 차가 안지나 다녀서 좀 걸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글씐바위 근처에서 낚시를 하는 부부의 차를 얻어 타서 별청항까지 갈 수 있었다.

 짐을 맡겼던 면사무소에 도착하자 10시 40분.. 이런 시간이 너무 남았다. 일단 면사무소에서 인터넷과 신문을 보면서 쉬었다. 이제 면사무소를 짐보관소를 뛰어넘어 휴게실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11시 50분이 되어서 보길도에서 다시 노화도로 넘어갔다. 우리가 도착하니 이미 전도사님이 티코를 끌고 우리일행을 기다리고 계셨다.

 배를 탈려면 섬의 반대편인 산양진항까지 가야 했는데 티코로는 5명을 한꺼번에 태울 수가 없어 일단 여자애들을 먼저 태웠다. 사모님과 남자들은 산양진항 방면으로 걸어갔다.

 걸으면서 사모님과 난 종교에 대한 대화를 했다. 전도사님과 사모님은 일반 교회에서는 이단으로 취급하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였다.

 사모님에게 평소 여호와의 증인에 대해 궁굼했던 내용들에 대해서 여쭤보았다. 여호와의 증인은 성경을 연구하는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150여년전에 결성되었는데 철저하게 성경의 내용을 따르는게 교리이다.

 때문에 평화를 지향을 하며 살생을 위한 모든 행위를 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는 명절로 인정을 안 하는데 예수님이 태어난 날은 성경에 가을이라고만 표시되어 있다. 12월 25일이 크리스마스가 된건 로마의 태양절을 예수님의 생일과 매치시켜서 명절로 만들어서 이다.

 그 외에도 양심적 병역거부, 기존 교회와의 차이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사모님은 우리와 헤어지기 직전 가장 인상깊은 말을 하셨다. ‘곧 이 세상에는 평화가 올거에요. 그 평화를 위해 우리는 성경의 증인이 되어야죠.’ 아마도 여호와의 증인의 핵심적인 내용인 듯 하다.

 여자애들을 산양진까지 태운 티코는 다시 돌아와 우리를 실었다. 산양진으로 가는길에 노화도의 풍경과 광산을 볼 수 있었다. 인구는 더 많지만 풍경은 보길도 보다는 좀 떨어졌다.

 전도사님의 도움으로 선장님을 소개 받았고, 산양진에서 땅끝마을로 무임승차를 해서 갔다.

 아마 공짜로 이렇게 이동한 경우는 거의 없으리라~

 땅끝 마을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찾은건 소년탐험대 선배 경일이형을 만나는 것이다. 소년탐험대는 한국 최초로 국토순례를 창시한 강원규 총대장님(난 이렇게 부른다)이 설립했으며 거의 모든면에서 나의 여행의 기초가 되었던 단체이다.

 경일이 형과 만나고나서 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땅끝 관광을 시키고 난 경일이 형과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했다.

 사실 경일이형을 처음 만난건 춘천교대 여행동아리 여미사 애들을 이끌고 왔던 2년전이었지만 이미 서로의 이름은 알고 있었다.

 경일이 형과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버스에서 많은 청소년들이 배낭을 메고 내렸다.

 아무래도 국토순례 단체인거 같은데.. 다가가서 물어보니 소년탐험대이다. 정말로 오랜만에 보네..

 이왕 보게 된거 강원규 대장님을 보고 가기로 했다.

 마침 땅끝 관광을 마치고 돌아온 4명은 해남방면으로 먼저 출발하라고 했다.  

 나머지 인원들이 출발하고 나서 강원규 대장님이 츄레라를 끌고 왔다. 이렇게 3년만에 다시보게 되었다.

 이왕 이렇게 만난김에 잠시 국토순례단에 참가할까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같이 여행한 일행들의 대장이라는 책임감 때문에 다시 합류를 하기로 했다.  

 92명의 소년탐험대를 위해 저녁밥은 내가 해줬다. 대형 솥과 대형 버너를 이용해서 100명분의 밥을 했다.

 밥을 다하고 일행이 땅끝마을에서 30킬로 정도 떨어진 화산면에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미 7시가 다 되어 있었다. 히치 하기에는 불가능한 시간이다.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려고 하는데 경일이 형이 지나가는 용달차를 세워준 뒤 나를 목적지까지 태워주게 했다.

 여행의 피곤함 때문인지 용달차에서 계속 졸았다. 이러면 안되는데.. 히치를 했을때 운전자를 두고 졸면 예의가 아닌데.. 정신을 차리려고 하지만 계속 졸렸다.

 화산면에서 내리니 상걸이가 마중나왔다. 2년전 여미사 여행때 묵었던 교회 바로 옆에 있는 노인정에 하룻밤 묵게 되었는데 방도 따뜻하고 세면하는데도 무리가 없다. 이 정도는 A급!

 오늘하루도 많은 일이 있었다. 집에서 평상시의 생활을 하면 얼른 넘어가는 하루이지만 여행이기 때문에 이렇게 하루하루를 값지게 쓸 수 있는 것이다.

 모두들 피곤했는지 이내 잠들고 나 홀로 노트북을 꺼내 밀린 여행기를 정리했다.  

 초코파이 먹는 경윤이.. 초등학생 같다.

 배위에서 먼곳을 바라보는 세 사나이

 배떠났을 때.. 점점 멀어져가는 화흥포구

 섬위의 봉우리가 앉아있는 동물을 연상케 한다.

 보길도에 도착해서 연락선에서 내리는 모습

 주변 섬들.. 바다는 양식장밭으로 가득하다.

 망끝 전망대에서 한컷.. 근처의 섬들이 모두 보인다.

 가까운 섬부터 추자도까지.. 날씨가 좋으면 제주도까지 보인다.

 돌탑위에 또다른 돌(상걸)을 쌓는 장면

 아름다운 정원과 어우러져..

 동척석실을 향해 오르는 모습

 작은 정자인 동척석실.. 주변의 풍광이 아름답다.

 아름다운 풍경과 화려한 포즈.. 그리고 강렬한 햇빛

 길을 걸어가면서 찍은 그림자 사진.. 한번 누구 그림자인지 맞춰보길..(사실 나도 모른다.)

 힘든 산행을 끝내고 기념으로..

 윤선도가 머물렀던 정원의 모습

 상걸이의 쓸데 없는 짓.. 참 별쏘를 다 한다.

 보길도~노화도를 수시로 오가는 작은 연락선

 상걸이가 동지를 만났다.! 그의 별명 오리답게 동료들 앞에서 오리 포즈를

 상걸이와 경윤이.. 같은 과로서 친한 친구로 거듭났다.

동이 틀무렵 알 수 없는 경윤이의 동작.

 아침에 바라본 바다와 섬

 예송리 해변근처에서 바다를 배경으로

 몽돌로 이루어진 예송리 해변..

 글쒼 바위가 있는 절벽..

 절벽에 매달린 상걸이..(사실 누웠는데 카메라를 돌리니 이런 효과가)

 글쒼 바위가 있는 바위위에서..

 우암 송시열 선생이 귀양을 가는 도중 썼다는 글쉰바위

 글쒼 바위의 글자를 물렁한 상걸이 배에다 인쇄를 시도

 바위와 어우러진 나의 모습..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좁은 연락선 안에서 도착하길 기다리는 모습

 해남 땅끝 전망대에서 바라본 땅끝마을

 땅끝 전망대에서..

 땅끝 비석과 민구

 내려가는 길은 언제나 가쁜하다..

원숭이 목각을 보고 좋아하는 여인네들(상걸이랑 비슷했대나..)

 아이들이 쓰는 노란 모자와 머플러를 쓴 나.. 쫌 어울린다.

 경윤이가 쓰니 정말 초등학생 같다..

 그렇지만 민구가 가장 잘 어울렸다!!!!

 

 전라남도 섬여행 4 (해남, 진도)1월7일

1월 7일(수)

 오늘도 여지없이 7시반에 일어났다. 아침을 어제 탐험대에서 가져온 감자면으로 떼운뒤 떠날채비를 했다. 읍소재지라 그런지 우리가 잤던 노인정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오신다. 에구.. 어서 떠나 드려야 하는데..

 9시경 노인정을 나섰다. 오늘의 미션은 철새도래지와 공룡발자국화석을 관람한 뒤 진도로 들어가는 것이다.

 고천암 방향으로 슬슬 걸어갔다. 아침부터 히치를 하지 않고 상쾌한 시골길을 걸었다. 1시간정도 걷고 히치조를 나누어 고천암 철새도래지로 갔다. 아침이지만 손쉽게 히치가 되었다.

 고천암 철새도래지는 유명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갔을때는 철새가 없는 시간이라 많은 철새들을 관찰하지는 못했다.

 긴 방조제를 걸어서 넘은뒤 다시 인심좋은 아줌마가 우암리까지 태워주셨다. 오늘 역시 일진이 순조롭다.

 우암리에서 북쪽으로 2킬로를 가서 공룡발자국화석 유적이 있다. 96년 발견된 우암리 발자국화석은 발견당시 세계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많은 공룡발자국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익룡의 발자국은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유적으로 연구가치가 컸다.

 우리가 갔을 때는 한창 공사 중이었다. 짐을 관리소에 맡기고 유적지에 들어섰다. 입장료는 1000원이다.

 교과서로만 봤던 공룡발자국들을 보고 공룡들에 대한 많은 공부가 되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가치에 비해서 보호시설이 미비한 것이다.

 아직 건물이 지어지지 않은 유적에서는 관람객에 의해 파괴된 흔적이 보이기도 했다.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홍보를 하는 것도 좋지만 먼저 완벽한 보호시설이 있어야 한다. 유적은 우리시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물려줄 중요한 자산이기 때문이다.

 관람을 마치니 출출하기 시작했다. 황산 시내에 가서 점심을 먹을 곳을 찾아야 했다. 이렇게 사먹을 때에는 값싸고 양 많은 식당을 찾아야 했다.

 ‘신당동 떡볶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즉석 떡볶이를 먹고 밥을 비벼먹으니 제법 배불렀다.
다음 코스는 진도대교이다. 진도를 섬에서 육지로 만들어준 진도대교를 보는 것도 목적이지만 무엇보다 임진왜란의 종지부를 찍어준 명랑해전의 무대였던 울돌목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해전사에 가장 극적인 해전으로 기록되어 있는 명랑해전은 거의 괴멸당한 조선 수군에 백의종군하던 이순신이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부임되면서 시작이 된다.

 당시 조선수군은 판옥선 12척.. 일본 수군은 200여척이었다. 수군을 포기하고 육군 휘화로 들어오라는 조정의 권고를 무시하고 왜군의 보급로와 해상권 장악을 위해 12척으로 전투를 개시한다.

 당시 전투는 울돌목이라는 특이한 해역과 양군 장수가 지형과 상대세력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한점을 보였다.

 왜군측으로서는 12척의 조선수군이 좁은 울돌목에서 교전하는 것을 기정 사실화 하고 있지만 200여척이라는 숫적인 우위로 밀어붙이면 될거라는 생각을 했을것이다. 적장이 이순신이라는것에는 경계심을 가졌지만

 때문에 남해쪽에서 서해로 향하는 왜군은 당연히 조류가 남해에서 서해로 흐를때를 택했을것이고 이렇게 해서 명랑해전은 시작되었다.

 12척이 한대도 상하지 않고 어떻게 200여척의 왜군을 무찔렀을까?

 이순신 장군이 직접 탄 기함한대가 왜군을 울돌목으로 유인을 했다. 왜군으로서는 적의 작전을 간파를 했지만 조선수군의 숫자를 알고 있었으므로 선선히 유인에 따랐다. 또한 바로 사정거리 앞에 이순신 장군이 탄 배가 있는것이 아닌가? 왜군들을 이순신이라는 존재를 제거할 수 있는 기회로 여기고 더욱 빠른 속도로 유인작전에 걸려들었으리라..

 해류의 속도로 더욱 빨라진 왜군의 200척의 배가 울돌목 안쪽까지 왔을 때 이순신 장군이 탄 배가 갑자기 돌아서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해협사이를 거대한 쇠사슬이 솟구쳐 올랐다. 빠른 속도로 이동하던 왜군 맨 앞 그룹은 쇠사슬에 부딧쳐 꼼짝할 수 없게 되고 뒤이은 배들도 계속해서 충돌을 하여 오고가도 못한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혼전속에서 12척의 조선수군은 마치 사냥 연습을 하듯이 마음껏 먹이 사냥을 했던 것이다.

 물에 빠진 왜군은 뭍에서 대기하던 조선병사에 의해서 처단되었다.

 왜군 133척 격파.. 조선수군은 전사 100명.. 세계 해전사에 거대한 획을 그은 명랑대첩..

 그 역사의 현장 속에 나는 이렇게 우뚝 선 것이다.

 흥분된 마음으로 심호흡을 하고 기념관(입장료 500원)에 들어섰다. 먼저 박물관을 들렀다가 기념석상과 울돌목을 보며 산책을 했다.

 이순신 장군과 명랑대첩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중에 학생들에게 수업을 할 때 임진왜란 부분이 나오면 꼭 알려 줘야지^^

  기념관을 나오고 진도대교를 건너갔다. 원래 이곳은 해류들이 바위에 부딧쳐 소리가 나야 하는데 1984년 다리 공사를 하면서 공사의 편의를 위해 바위들을 메웠다고 한다. 때문에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진도대교를 걸으며 밑의 바다를 보니 정말로 물살이 빨랐다. 예전에는 빠른 물살을 헤치며 육지와 왕래했을 텐데 시대의 발달로 이렇게 편하게 바다를 건너게 된다는 생각을 했다.

 진도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띄는건 당연히 진돗개이다. 다른 잡종개들은 볼 수가 없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진돗개만이 진도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진도에 들어서 가장 먼저 목표를 세운곳은 고려시대 삼별초의 기지였던 용장산성이다. 히치조를 편성해서 경윤이와 상걸과 같은 조가 되었다. 처음에는 용달차를 잡았는데 3명이서 좌석에 앉을려고 하니 내가 상걸이를 안아야 했다.

 용달차에 타는 동안 상걸이의 불어난 몸무게 때문에 내내 고생해야 했다. 키 170도 안넘는게 왜 이리 무거운지.. 거의 숨이 막혔다.

 두 번째 히치는 갈림길에서 했는데 지도상으로 표시된 국도를 향했다. 히치를 하고 나니 아까 갈림길에서 잘못 들어갔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깨끗한 포장도로는 작년 10월에 완공되었고 내가 가지고 있는 관광지도는 그 전의 것이기 때문이다.

 국도가 옮겨진 것도 모르고 그대로 진행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태워주신 분이 다시 되돌아가 용장산성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우리를 내려주셨다.

 봉고차를 한번 더 잡아 용장산성 앞까지 갔다.

 이미 터만 남은 곳이라 건물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돌로 쌓은 성의 형태와 주춧돌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고려 원종이 몽고군에게 굴복한 후 이에 불복한 삼별초 군대는 공격당하기 쉬운 강화도에서 진도로 근거지를 옮겼다. 원종의 6촌 형제인 왕온을 왕으로 삼아 몽고군에게 끝까지 대항을 했지만 결국 여몽 연합군에 의해 무너지고 만다.

 유럽까지도 굴복한 세계의 대국앞에서 꺽이지 않은 기상을 보여준 자랑스러운 역사의 현장이다.

 용장산성 관람을 마치고 내려오니 시간은 5시 반.. 시간이 정신없이 흐른 것을 보니 오늘 역시 많은 경험을 했다는걸 느꼈다.

 경험은 많이 했지만 오늘도 잠자리를 빌려야하는게 급선무.. 바로 밑의 마을의 마을회관으로 갔다.

 마을회관에는 어르신들이 몇 분 계셨는데 강원도 춘천에서 온 대학생이라고 소개하고 마을 회관에서 하룻밤 신세질 것을 청했다. 어르신들은 추은데 고생 많다고 하면서 흔쾌히 수락하셨다. 보일러 기름을 마음껏 써도 되니 따뜻하게 자라는 말씀도 하셨다. 마음이 훈훈해지는 순간이다.

 전라남도에서는 강원도 춘천에서 왔다고 하면 모든게 통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깜짝 놀라면서 도움과 겪려를 아끼지 않으신다.

 여행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정말로 인심이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받은 많은 도움과 인정들을 나 역시 잊지 않고 베풀어야겠지...

 아침일찍부터 걸어가는 모습

 철새 도래지이지만 시간이 일러 철새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개그맨 박명수를 흉내내는 건가?

 세계 최대의 익룡 공룡 발자국 유적지

 열심히 카달로그를 보는 나..

  여기 있는 하나하나의 내용이 다 나중에 살아있는 교육자료이다.

 잡아먹힐 듯한 민구..

 공룡들의 습격!! 모두들 피하거나 빌고 있다.

 진도대교가 보이는 울돌목에서..

 충혼탑에서 묵념을(우쒸! 경윤이..)

 진대대교 입구.. 거북선이 이채로와 보인다.

 빠른 물쌀로 유명한 울돌목 해협

 히치하는 상걸이 모습..

 그 용맹한 진돗개도 생리형상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 보다..

항몽유적지인 용장산성..

 상황설명.. 우리는 이야기 하다보니 전생에  경윤이가 장군.. 내가 장군 부인.. 상걸이가 장군이 타던 말이 되었다.. 한번 그대로 재현해 보는 모습

 

전라남도 섬여행 5 (관매도) 1월8일

 1월 8일(목)

 또 섬에서의 하루가 지나가고.. 동이 트고 온 세상이 환해질 무렵 우리들만의 멋진 추억을 위해 하루를 시작했다.

 처음 진도에 들어올때는 진도를 한바퀴 돌면서 관람하는게 목적이었지만 진도에서 제일가는 절경은 관매도라는 이야기를 듣고 곧장 관매도로 향하기로 했다. 물론 아무런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아침을 먹기 위해 곧장 히치를 해서 진도읍으로 갔다. 하지만 우리 일행은 진도읍에서 아침을 먹을수가 없었다. 한끼에 5000원이나 하는 밥값이 때문이다.

 식당을 이리저리 돌아다녀서 5000원이하인 식단은 없는 실정이다. 여지것 다니면서 가장 물가가 비싼 곳중에 하나인곳 같다.

 결국 진도읍에서 아침을 먹는 것은 포기를 하고 조를 나누어서 팽목항으로 향했다.

 난 희진이와 한조가 되었다. 희진이는 나와 동갑으로서 언제나 명량한 웃음을 짓는 아이이다. 희진이와 걸은지 얼마되지 않아 부산사나이들이 타고 있는 차를 잡아서 수월케 갈 수 있었다.

 팽목항에 도착하니 겨울철에는 관매도로 직접 가는 배는 없다고 하면서 조도로 들어간후 조도에서 관매도로 들어가면 된다고 했다.

 팽목항에서 조도까지는 1인당 3000원.. 11시표를 사고 밥먹을 곳을 찾았다.

 이곳이 외지이긴 외지인가.. 횟집을 빼놓고는 밥먹을만한데가 여의치 않았다. 슈퍼에서 빵과 과자를 산뒤 나눠먹었다.

 여행중에 많은 난관이 있지만 이럴때는 리더로서 대원들에게 참 미안하다. 아무런 불평없이 빵과 과자를 먹는 대원들이 고맙기만 하다.

 11시.. 조도로 가는 배를 탔다. 비교적 큰 연락선으로서 트럭과 차들이 배를 가득 채워도 문제없이 목적지를 향한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런 쇳덩어리가 가라앉지도 않고 바다에 잘 뜨는지..

 그저 당연히 여기는 사실이기는 하지만 궁굼하기도 하다.

 조도 어유포에 도착해서 관매도로 향하는 배를 알아보았다. 어유포는 북쪽에 있는데 관매도로 향하는 배를 탈려면 남쪽에 있는 읍구까지 가야한다고 한다.

 어유포에서 읍구까지는 40분정도 걸어야 했다. 겨울보다는 봄이라고 표현해야 알맞은 온화한 날씨에 평화로운 밭들.. 문명의 이기보다는 때묻지 않은 농촌풍경이 더욱 정겹게 다가왔다.

  읍구에서 남쪽으로 1킬로정도 내려오니 관매도로 향하는 배가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정기적인 연락선이 있는게 아니라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통통배였는데 더 태울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히려 이런배가 섬여행의 낭만을 더해주는거 아닐까?^^

 1인당 3000원씩 내고 통통배를 탔다. 배는 30분 넘게 관매도를 향해 질주 했는데 주변에 흩어진 섬들과 바다목장이 그림을 보는듯한 느낌으로 쭉 펼쳐졌다.

 배가 멈춘곳은 관매도 2구이다. 관매도도 홍도와 마찬가지로 1구, 2구로 나누어지는데 1구는 관매도 중앙에 위치하고 관매해수욕장과 관매초등학교를 포함하고 있는 중심지이다.

 2구는 1구에서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형적인 어촌 마을이다. 이런 곳이 때묻지 않은 섬이다.

 2구 방파제에 내려서 마을로 향했다. 배에서 내리면 이곳 관광정보를 금방 알수 있을거 같은데.. 관광표지판이나 지도는 전무했다.

 마을앞에 있는 마을회관에 들어갔다. 아무도 없어서 민가에서 아줌마에게 여쭤보니 이장님을 뵈야한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이장님 집을 알려주셨다.

 이장님을 찾아뵈니 반갑게 맞아주시면서 학생들이 고생해서 왔을텐데 오늘은 마을회관에서 자고 가라고 하신다.

 먼저 말씀드리기도 전에 이렇게 마을회관을 빌려주시다니..

 이장님과 함께 계신 할아버지는 TV에 출연하셨다고 하는데 관매도에 관한 TV프로그램에서 관매도의 절경과 전설들을 소개하셨다고 한다.

 이장님과 할아버지에게 관매도의 소개와 전설들을 상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사모님은 우리에게 몸좀 녹히라고 커피를 가져오셨다. 귤과 함께 달콤한 커피가 내 몸속에 스르르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관매도 마을인 1구와 2구는 엄연히 다르다고 하셨다.

 관매 8경에 2구가 6개가 들어가는데 원래는 2구 8경이었는데 1구와 합쳐져 관매 8경이라고 하시면서 억울해 하셨다.

 이렇게 작은섬에서도 지역감정이 있나?

 생각해보니 우리나라의 지역감정은 내고장을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데도 오는게 아닐까? 지역발전에 큰 원동력이 될 수도 있는 지역감정을 정치적으로 남용을 해서 오늘과 같은 망국병이 생긴 듯 하다.

 할아버지는 걸어서 찾아갈 수 있는 장군바위에 같이 가시겠다고 하셨다. 궂이 그렇게 안하셔도 괜찮다고 말씀드렸지만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 해주시고 싶은신가 보다.

 관매도에는 8경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제1경-관매도해수욕장
 제2경-방아섬(남근 바위)
 제3경-돌묘와 꽁돌
 제4경 -할미중드랭이굴
 제5경-하늘다리
 제6경-서들바굴 폭포
 제7경-다리축성
 제8경-하늘담벼락바위

 마을에서 걸어서 쉽게 갈 수 있는 3경 돌묘와 꽁돌로 갔다. 거기에는 장군가 떡 버티고 있었는데 그 바위에는 왼손자국과 같은 큰 자국이 있었다.

 장군 바위뿐만아니라 근처의 모든 바위에도 이름이 있고 하나하나에 전설이 다 있었다. 용왕, 견우, 직녀, 거북이, 물범등.. 근처가 마치 용왕왕국을 이루는 듯한 듯 했다.

전설을 설명해주시는 할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우리는 그저 장군바위 하나 있구나 하고 기념사진 하나 찍고 돌아섰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먼저 마을로 돌아가시고 모두들 백사장을 거닐고 있을때 한가지 욕심이 났다.

 8경에서도 제일가는 하늘다리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늘다리는 섬의 서쪽에 있는데 90미터 절벽을 사이로 섬이 두쪽으로 갈라져있다고 한다. 갈라진 사이는 3미터정도로서 원래는 널빤지로 다리가 있었다고 한다.

 유래만 설명하시면서 위험하니까 절대로 가지 말라고 하셨는데.. 사람이란게 하지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그런 심리가 있지 않은가?

 결국 유혹에 못이겨 상걸이와 여자애들은 백사장에서 기다리게 하고 민구와 함께 모험을 떠났다.

 하늘다리로 가는 길은 가파른 산길이고 바로 옆에는 바다절벽인 위험천만한 길이다. 이곳에서 잘못 발을 헛디디면..!

 산을 뛰어오르다시피 해서 하늘다리에 도착했다. 하지만 길이 밑으로 급속하게 기울어져 있어서 하늘다리 밑을 볼 수가 없었다. 순간 유혹이 들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봐야 하지 않을까? 만약 미끌어 떨어지면..

 무모한 모험과 안전사이에서 한참을 고민을 했다. 마음먹고 한번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걸음을 뗀 순간 등에서 식은 땀이 났다. 어떠한 힘이 나를 가지 못하게 당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마음을 고치고 보는 것을 포기했다. 포기하면서도 나의 심장은 계속 쿵쾅거렸다.

 조금 후진을 한후 다시 하늘다리 밑으로 길을 헤치며 다가갔다. 결과는 마찬가지.. 너무 위험했다. 이러다 한 맺히는거 아니야?

 백사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상걸이와 여자애들은 기다리느라 지루했으리라..  

 관매8경을 볼려면 아무래도 배를 빌려야했다. 이장님에게 부탁을 해서 관매도를 한바퀴 돌고 조도까지 태워주는 조건으로 6만원에 배를 빌렸다.

 성수기때는 말도 안되는 가격이지만 관광객이 거의 전무한 지금 수월하게 빌릴 수 있었다.

 배를 빌리고 마을회관에 짐을 챙기니..  호기심 많은 마을 아이들이 마을회관을 기웃기웃 거린다.

 아이들과 함께 1구의 초등학교로 갔다. 육지였으면 모르는 아이들과 함께가는게 큰 오해를 부를 수도 있었지만 자그마한 섬이기에 자연스러웠다.

 아이들과 함께 갯벌을 걸으며 노래도 부르고 장난도 쳤다.

 관매 초등학교는 중학교도 겸하고 있었다. 선생님 한분이서 모든걸 다 가르치시나? 선생님을 찾아뵐려고 했지만 계시지 않았다.

 아이들과 우리일행은 운동장에서 맘껏 뛰어놀았다. 숨박꼭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우리짐에 왜왔니.. 등 지금은 인터넷과 학원에 밀려 보기 힘든 놀이를 순수한 섬 아이들과 함께 했다.

 아이들과 손 잡고 마을회관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밤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밥을 먹으로 각자의 집으로 흩어지고...

 밥집이 없어서 라면을 사다가 마을회관에서 끓여먹었다.

 달은 밝지만 구름에 가려 그게 힘을 내지 못하고.. 나 홀로 고요한 파도소리를 들으며 방파제를 걸었다.

 홀로 방파제에 앉아 주변의 돌 하나를 던지며 생각을 했다.

 ‘나의 미래는 어떨까? 나의 인연도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한참을 생각하며 먼 바다를 보고 있었다.’

 바닷바람의 싸늘함이 몸에 전해질 무렵 난 피식 웃었다.

 ‘그래.. 현재가 있기에 미래도 있는거야. 즐거운 미래를 위해서는 후회없는 현재가 중요하지.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열심히 여행하고 있는거구.. 훗’

 여자애들과 민구는 이미 자고 있었고 상걸이는 방파제에서 마을주민인듯한 사내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여행기를 정리하며 상걸이를 기달렸는데 2시간이 되도록 들어오지 않는다.

 상걸이는 계속 사내와 이야기중이었다. 다가가서 같이 이야기를 했다.

 ‘육지가 그리우신가봐요?’

 내가 사내에게 한 첫 마디이다. 그의 표정과 눈빛에서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아셨죠.. 전 이곳을 벗어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하고 있어요.’

 이 사내는 섬이 정말 싫으면서도 섬에 있어야 하는 상황인가 보다. 나보다 10살이나 많으면서도 결혼을 하지 못했다. 힘든 뱃일과 매일같이 술에 쩔어있는거 같다. 어? 손가락이 하나 없네? 무언가 사연이 있겠지..

  5년전 대학 2학년때 목포에서 어부들과 함께 술마시면서 이야기했던 추억이 떠오른다. 상걸이 이놈도 같은 경험을 하겠구나..

 상걸이의 소중한 추억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다. 같이 술 먹자는 사내의 말을

 ‘우리는 인연이 있다고 믿습니다. 때문에 다시 만나게 되면 그때 한잔했으면 합니다.’라는 말로 정중히 거절했다.

 돌아와 곧바로 잠이 들었다.

 새벽 3시쯤 되서 잠이 깨었다. 건너편에 자고 있던 희진이가 잠을 못이루고 뒤척이고 있었다.

 ‘잠 안오니?’ 라는 말에 희진이는 ‘난 잠자리가 바뀌면 잠이 안와..’

 여행을 해서 꽤나 고생을 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희진이는 나와 동갑이지만 방황을 해서 그런지 대학을 늦게 들어왔다. 복잡하게 많은 생각을 해서 고민이 많은거 같다.

 희진이와 몇시간 이야기하다 보니 ‘희진이가 아픔이 많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면 좀 도움이 될까..?’

 난 희진이에게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은 나의 아픔을 이야기 해 주었다.(내용은 비밀^^;;)

 연락선 출발 직후..

 조도에 도착해서..

 관매도로 가는 배를 탈려고 읍구까지 걸어가는  길

 조도 역시 섬의 많은 부분이 농지이다.

 40분 정도 걷기는 했으나 피크닉 하듯히 가볍게 걸었다.

 관매도로 가는 통통배. 1인당 3000원 받았다.

 통통배 안의 모습.. 마냥 즐거워 보인다.

 뱃머리에 서있는 늠름한 민구

 저 멀리 남근 바위가 보인다.

 해상 동굴이 아름답다.

 관매도 서쪽 부분

 장군 바위 주변의 바위에 대해 열심히 전설을 설명해주시는 할아버지

 거북바위.. 정말 거북이 같다.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많은 야사를 들려주신 할아버지와 함께

 해변과 어우러진 나의 모습

 산에 오르는 모습.. 많이 지쳤다.

 하늘다리정상의 낭떨이지.. 결국 밑을 쳐다보지 못했다.

 관매도 중앙// 저 언덕을 넘으면 마을이다.

 외로히 서있는 작은 섬이 애처롭다.

 언덕을 오르는 모습

 목포에서 학교를 다니는 미화와.. 방학이라서 할아버지 댁에 놀러 왔단다.

 오늘도 본능에 충실히 하기 위해 열심히 사는 갈매기와.

 섬마을 아이들과 갯뻘을 걸어간다..(낭만있네^^)

 아이들과 놀이중

 땅따먹기 놀이를 하는중

 덩달아 신이난 상걸과 경윤

 매일 같이 일지 정리를 하는 상걸이..

  난 노트북으로 일지를 정리한다.

 

 전라남도 섬여행 6 (관매도, 조도, 진도, 목포) 1월9일

 1월 9일(금)

 관매도를 한바퀴 돌기로 한 배와의 약속이 9시라서 여유 있게 일어나 준비할 수 있었다.

 어제 크게 신세진 이장님에게 인사를 드리고 우리를 동심의 세계로 이끈 아이들과도 작별을 했다.

 통통배의 승선인원은 우리 일행 5명.. 배 선장님인 할아버지는 메가폰으로 섬에 대해 설명을 해주시며 출발을 했다.

 관매 8경을 하나하나씩 둘러보는 통통배는 섬을 돌고 설명해주는 형식은 홍도 관광배와 비슷했지만 덜 상업적이고 무엇보다 우리끼리라는 점에서 더욱 신나는 여행이었다.

 처음 눈에 띈 것은 황폐해진 밭들이다. 관매도를 비롯해서 주변의 대부분의 섬들이 사람들이 떠나가는 실정이다. 그렇다 보니 버려진 밭들도 많아지기 마련이다.

 엔진소리를 요란하게 내며 바다를 가로지르는 통통배의 가장 앞에 섰다. 바람이 무척 세차다. 옆에 있는 민구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이다.

 세찬 바닷바람이 나의 머리를 가르고 한쪽 다리를 뱃머리에 올려놓으니 영락없는 해적선 선장 내지 미래소년 코난이 된 기분이다. 한마디로 날아갈듯한 기분이다.

 풍경 역시 이러한 나의 기분은 더 들뜨게 해주었다. 곳곳에 흩어져 있는 섬과 파도가 너울대는 푸르디 푸른 바다.. 저 멀리 병풍도가 병풍처럼 크게 펼쳐져 있었다.

 관매도는 홍도와 비교가 좀 된다. 섬의 크기와 마을 형태는 비슷비슷하지만, 홍도는 관광객들도 이미 물들어 있고, 섬 전체가 검은색은 홍도와 달리 관매도는 백사장의 백색과 검정이 어우러 진다.

 관매도의 이곳저곳에 심취하고 있을때 갑자기 나의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아..... 저기가 하늘 다리였구나’

 섬을 두갈래로 나눈 80~90미터가 푹 패인 절벽이 바로 앞으로 다가왔다. 어제의 궁굼증이 해소되는 순간이다.

 1시간동안의 관매도 배 여행이 끝나가는 순간 저 멀리 남근바위가 보였다. 남근바위는 기묘한 형태의 바위로서 말 그대로 남근 모양의 바위가 있는 조그만 섬이다.

 어제 전설을 알려주신 할아버지의 설명에 의하면 조도에서 뻗쳐오는 산세를 남근바위가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런지 관매도 청년과 조도의 처녀가 결혼을 하면 아들을 낳지 못한다고 하셨다.

 가져온 디지털 카메라로 연일 셔터를 눌러 대며 남근 바위를 찍었다.

 이제 관매도 관람은 끝..

 배는 북쪽으로 머리를 돌려 어제 우리가 출발했던 조도로 향한다.

 읍구에 도착해서 어제 갔던 과정 그대로 어유포로 향했다. 어유포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해야될 것은 배 떠나는 시각을 알아보고 바로 밥을 먹는 것이다.

 배는 2시 40분에 출발한다고 하는데 지금이 12시 이니까 아직 한참 멀었다.

 어제부터 밥을 입에 대지도 못한 관계로 모두가 배가 고팠다. 근처 식당에 가서 가격을 물어보니 1인당 5000원.. 윽.. 비싸다.

 그렇지만 인심좋은 주인 아줌마는 4000원에 해주시겠다고 하셨다.

 꿀맛같은 밥을 먹고 이왕 남는 시간에 조도에서 유명한 등대에 가기로 했다. 등대는 어유포에서 4킬로 정도 떨어져 있어서 걸어갔다 오면 시간이 딱 맞을거 같다.

 배낭을 어유포에 근무하는 군인들에게 맞겨 놓고 등대를 향해 걸었다. 그렇지만 여자애들이 걷는게 익숙치 않아서 그런지 속도가 더디기만 했다.

 10분 정도 걷다가 바로 뒤에 봉고차가 왔다. 우리는 잘 됬다 싶어 필사적으로 히치를 했다.

 인심좋은 아저씨는 우리 5명을 한참을 달려 등대까지 태워 주셨다. 원래 우리가 히치한 장소에서 얼마 안 떨어진 집으로 가는 길이었는데 일부러 등대까지 태워주셨다고 한다.

 등대의 경치는 그야말로 그림이었다. 원래 등대는 주변에서 전망이 가장 잘 보이는곳에 설치하기 마련이다.

 주변의 섬들과 바다를 유유히 헤쳐 나가는 화물선.. 저 멀리 진도가 보였다. 데이트하기에는 너무나 분위기가 좋은 장소이다.

 등대에서 어유포까지는 걸어왔다. 좀 먼거리이기는 하지만 섬의 풍취를 실컷 즐길 수 있었다.

 배를 타고 진도에 나오니 바람이 심했다. 따뜻했던 관매도, 조도와는 달리 진도는 추웠다.

 히치를 해서 남도석성으로 향했다. 성안에 마을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는데 훌륭한 관광자원임에도 관람을 위한 아무런 시설이 되어 있지 않았다. 입구에 새로 지은듯한 화장실만 있을뿐..

 이거 하나만 보면서도 진도는 아직 관광인프라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자애들은 연수 일정 때문에 내일 여행을 마쳐야 한다. 때문에 오늘의 목적지는 떠나기 쉬운 목포이다.

 조를 나누어 히치를 했다. 난 경윤이와 둘이서 걸렸다. 이번 여행에서 경윤이와 같이 히치를 많이 하는군..

 목표는 진도의 입구인 울돌목 진도대교이다. 꽤 긴거리 이다.

 3명으로 이루어진 조가 먼저 차를 잡고 그 다음 우리조가 차를 잡았다. 진도읍에서 한번 내리고 다시 울돌목으로 가는 용달차를 잡았다.

 용달차 아저씨는 광주분인데 진도까지 배달을 왔다가 광주로 돌아가시는 길이라고 하셨다. 만약에 목적지가 광주였으면..

 능숙한 아저씨의 운전솜씨 덕분에 앞서 갔던 3명의 차를 따라 잡을 수 있었다. 우리는 신나서 손을 흔들고 있는데 앞차에 있는 일행은 우리를 못본 모양이다.

 앞차가 당연히 진도 울돌목에서 설줄 알았는데 그냥 지나친다.. ‘어떻게 된거지?’ 우리도 아저씨에게 부탁해서 앞차를 따라갔다.

 경윤이의 핸드폰에 문자가 왔다.. 문자를 보니 앞차가 목포까지 가는 관계로 그냥 목포로 향한다고 하면서 우리도 목포까지 히치해서 오라고 한다. 이런.. 의리없는 것들..

 다시 나에게 연락이 오고.. ‘우린 벌써 울돌목에서 내려서 너희들 기다리고 있는데 왜 안와?’ 하고 속였다. 전화를 한 희진이는 미안해 하며 어쩔줄 모른다. 바보들.. 바로 뒤에 따라가는 것도 모르고..

 아저씨는 재미있다는 듯 스스로의 목적지를 잊은 채 뒷차를 따라간다.

 운전사 아저씨와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사회에 대한 불만이 대단하시다. 정치와 실업자 문제에 대해 열변을 토하시다가 우리가 올해 교사가 될 것을 아시자 촌지 문제에 대해 열변을 토하신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며 계속 앞차의 뒤를 밟았다.

 목포에서 어디내릴지 고민하고 있을때 바로 횡단보도에서 앞선 3명의 일행이 보인다.

 ‘자알 걸렸어 큭큭’ 씨익 웃으며 뒤를 밟았다.

 난 희진이에게 전화를 했다.

 ‘우린 차를 잡지 못해서 아직도 울돌목에 있는데 어떻할거니.. 날은 어두워지고 지금 춥잖아..’ 무척 화난듯한 목소리로 희진이를 다그쳤다.

 ‘어쩌지.. 정말 미얀해.. 그냥 버스라도 타고 오면 안되?’ 어쩔줄 몰라하는 희진이.. 옆의 상걸이와 민구도 당황하는 듯 했다.

 ‘좋아.. 우리가 알아서 할테니까.. 대신 지금 뒤돌아봐..’

 ‘머 지도보라구?’ 말뜻을 못알아들은 희진이는 옆의 두명과 지도를 펼쳐 보았다..

 ‘이그 답답해~.. 뒤! 돌! 아! 보라구!’

 그뒤에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 났을까?^^

 목포의 여관을 잡고 기억에 남을 뒷풀이를 했다. 처음 만났을때는 서로 서먹했지만 이제는 떨어지기 아쉬운 그런 사이가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10일동안 함께 하고 함께 추억을 공유하지 않았는가...

 왁자지컬한 분위기에서 술잔과 함께 마지막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1월 10일(토)~12일(월)

 이 이후의 여행은 섬여행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난다. 10일 아침 경윤이와 희진이는 떠나고 상걸이와 나 그리고 민구가 남았다.

 처음 계획은 충남 태안반도를 둘러보는 것이지만 좀 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작년에 우리가 몸담았던 국토순례 단체에 합류해보기로 했다.

 국토순례 단체는 부산에서 출발해서 우리가 목포에 있었을때는 문경까지 걸어가는 중이었다.

 23번의 히치와 2일의 시간끝에 문경새재 입구에서 국토순례 단체와 만날 수 있었다. 히치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좋은 인심들을 겪었지만 지나온곳의 명소들을 보지 못해서 아쉽기도 했다.

 국토순례 단체와 하루를 하고 2명과 충주의 집에 들어갔다.

 엄마는 반갑게 나와 일행을 맞으며.. 저녁을 주셨다. 아.. 얼마만에 먹어보는 성찬인가..

 목욕탕의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며 스르르 나의 눈이 감겼다.

 12일 동안의 여행.. 내가 가보지 못했고 궁굼해 했던 갈증이 어느정도 풀어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또 다른곳으로 나의 시선이 돌려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배에서 폼 잡고 있는 나..

 섬에는 파괴된 부분도 몇군대 있었다.

 관매도 가장 서쪽의 봉

 희진, 민구와 시원한 바다를 배경으로..

 하늘다리.. 내가 엄지손가락을 펴고 있다.

 이곳은 모든곳이 절벽이다.

 나무들이 적당히 푸르러고 있다.

 하늘다리 반대편..

 뿔난 도깨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은 심했지만.. 그래도 앞에 있음 좋은 풍경들을 ㅂ로 수 있다.

 어제도 봤던 남근 바위.. 왜 남근이라 할까?ㅋ

 하조도 등대.. 좀 멀지만 와볼 만한 곳이다.

 민구와 나와의 애정행각

 주변의 섬들은 정말 평화롭다.

 노숙자 민구와 상걸이

 부채가 되어보자.. 팔의 폄 상태로 나에 대한 믿음을 잴 수 있다. 경윤이가 쫙 폈다.

 남도석성의 외관.. 겉은 번지르해 보이지만..

 남도석성 성루에서..

 옛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다리에서

 당당하게 화장실을 나오는 희진이..

 마지막 헤어짐.. 우리의 지금 모습은 추억으로 남겠지..

 11일 탐험연맹 행사에 도착하고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