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 18일 우리 학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부산에서 춘천까지 국토순례 하고 싶은 사람은 저한테 메일을 보내주세요'

  다소 무모하다고생각이 되는 이 글을 보고 15명이 신청을 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방학이 되는 시점에서 3번을 만났다. 방학이 시작된 이후 부터는 인터넷 채팅을 통해서 여행 준비를 하였다. 방학을 한지 한달 반이 지나있을 때 인원은 9명으로 줄어들어 있었고, 8월 8일 드디어 여행을 출발했다.

 힘든 여행과정이 있었지만 다들 자유를 만끽하였고, 결국에는 우리의 목표를 완수한다. 내가 처음 생각한 것은 1회성의 행사였지만 다들 여행의 끝남을 아쉬워 하며 동아리로 발전시키자고 했다.

 그래서 결성된 동아리가 여미사 이다.

 

 8월 8일

  이제 모든준비는 끝났다. 여행이 시작되기 직전이지만 사실 나 스스로도 많이 두려웠다. 과연 8명의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 혼자 하는거면 자신있는데..

  특히 학교에서의 이미지를 벗고 악역으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10시쯤에 상걸이한테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솔직히 상걸이는 잘 알지는 못하지만 여행을 통해서 친해지는것도 여행의 또다른 매력이다.
상걸이가 무사히 당리역으로 와서 일단 친척집에서 여독을 풀게 했다. 그리고 살며시 현금카드와 지갑을 주었다. 드디어 금전으로 부터 해방이 되는 순간이다.

 상걸이와 부산의 명물인 밀면을 먹고 시간이 되자 부산역으로 향하였다.
역에서 다들 만나는 순간 오랜 기차여행에 지친 표정이었고, 예정대로 부산교대를 가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부산교대에는 며칠전에 갔다와서 맛있는걸 해줄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우리끼리 카레를 해먹고 여행의 일정에 대해 논의하고 각자의 담당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들 그렇지만 아이들을 이끌고 가야할 나로서도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막막함으로 잠못드는 밤이었다.(사실 제일 잘 잤음)

 

여행의 출발.. 처음 만나는 순간(01.8.8)

8월 9일

  전날까지도 낮에 일었났던 내가 6시에 제일 먼저 일어나 애들을 깨웠다. 역시 책임감이라는 것은 이렇게 사람을 변화 시키는가 보다. 부산교대에서 아침을 먹고 비가 내리는 하늘을 원망하며 지하철을 탔다. 노포동에서 하차하여 비가 오는 가운데서도 무작정 양산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길은 물론 내가 찾아야 했다. 지도와 본능적인 방향 감각 때문에 어려울것은 없었다. 첫날부터 다양한 길을 갔다. 논길, 시멘트길 심지어 길없는 곳을 만들어 가기도 했고 기차길까지 걸어갔다.

 첫날이라 다들 힘들어 하고 지쳤다. 양산에 도착하고 큰 다리를 건너 도로옆 가로수 밑에서 점심을 먹었다. 원동 근처의 시골에서 마을 회관을 빌렸지만 근처 아저씨가 방을 빌려주셔서 더 편하게 잤다.

 특히 돌아가는 국도에서 나의 통찰력으로 샛길을 발견하여 거리를 단축시킨게 기억에 남는다.
역시 예상대로 여자애들이 축처진다. 이제부터 냉정해져야 겠다.

지도를 보며 길을 찾는 모습(01.8.9)

  8월 10일

  아침을 먹을 재료가 없어서 7시에 일어나서 원동에 있는 초등학교에 가서 부랴부랴 아침을 해 먹었다. 날은 계속 흐리고 간간히 비가 왔지만 오히려 여행을 하는데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이 날은 주로 기차길을 갔는데 옆에 길이 없어서 주로 철길위를 그냥 무대포로 올라가야 했다. 아주 위험한 일이기는 하지만 나중에 추억에 남을거 같다.

 계속 기찻길을 걸어가다 삼랑진으로 가는 마지막 길목의 철길은 물금에서 부터도 그렇지만 특히 산과 강물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다. 물론 우회하는 도로는 한참 돌아가야 한다.

 처음에는 도전할려구 했지만 마을 주민이 말리고 여자애들도 있어서 실행하지 못했다.

 비도 굵어지고 애들도 지쳐서 여행에 자칫 싫증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삼랑진까지는 히치를 하기로 했다. 15km를 히치를 하기로 결정하니 애들이 무척 좋아하는 표정이다. 대략적으로 요령을 가르처주고 4개조로 나누어서 히치를 했다.

 난 포터 트럭을 잡아서 좋은 경치를 보며 삼랑진 역까지 갔다. 삼랑진에서 조금 쉬다가 애들이 기죽은거 같아서 아이스크림을 돌렷다. 역시 먹을 것에 약한 우리 애들에게 효과 만점이었다.

 삼랑진 지나서도 계속해서 경부선을 따라 갔다. 길도 희미하고 힘도 들지만 애들은 잘 따라와 주었다.

 철길을 계속 가다가 철도 분기점에서 근무하는 아저씨의 친절한 안내에 따라 좋은 길로 갈수 있었다.

 계속 걸었다. 마전 고개를 넘고 다시 가는데 길을 잘못 들어서 험한 자갈 절벽을 조심스레 내려왔다.

 강과 철길사이를 걸을때는 낭만도 잇었다. 또한 쓸모없는 기차터널도 건넜다. 역시 탐험대라는 명칭이 어울릴만한 여행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점심을 못 먹었다. 굶주린 배를 이끌고 밀양 근처에 있는 인전마을에 들어가니 인심좋은 어르신들이 마을 회관을 기꺼이 빌려 주셨다. 하지만 반찬이 문제였다.

 그래서 아이디어를 짜서 여자애들로 하여금 반찬을 얻어오게 했다. 결과는 대성공, 앞으로 2일은 더 먹고도 남을 반찬들을 가저온 것이다.

 마을 회관에서 쉬고 있는데 술취한 할아버지가 들어오셨다. 희규랑 나랑 둘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인생이야기를 하셨다. 솔직히 처음에는 들어주었지만 "내가 일제시대때~" 라는 구절이 다시 리바이벌 된다.

 새내기인 희규에게는 좋은 경험이 될거 같아 전화 거는척 하면서 나왔다. 내가 나온뒤로 희규는 1시간 동안 계속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여행 겨우 2일째인데 다들 백전 노장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연지가 계속 걱정이 된다. 아직까지는 초등학교 2학년도 할 수 있는 수준인데 다들 힘들어 한다. 조금씩 레벨을 높여야 겠다.

 

위험한 철길 위에서 찰칵...

신세진 마을 회관에서 식사하는 모습

 

 8월 11일

 아침을 먹고 9시에 출발했다. 상걸이와의 엔크린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밀양시내까지는 계속 시멘트길이나 철로를 따가는 데이트 하기 좋은 오솔길이 이어졌다.

 여행기간 내내 사진에 집착을 많이 했는데 애들의 원성을 많이 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사진이 얼마나 나중에 남는지를... 특히 이 길을 가다가 지나가는 기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려구 15분 동안이나 비를 맞으며 기다렸다.

 밀양시내에 들어서자 밀양약에서 음료수로 목을 축인 후에 영남루로 갔다. 원래는 관람을 할려고 했지만 입장료가 아까와서 그냥 내려왔다.

 밀양시내를 벗어나 점심을 먹을려고 했는데 장소가 여의치 않아서 계속 청도 방향으로 걸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마음씨 좋은 부부를 만났고 비닐 하우스 집에서 편하게 점심을 먹었다.
점심메뉴는 떡복이 인데 많이 먹었다.

 청도 우체국에서 석우형이 보내주는 물품을 찾아야 하는데 청도까지 너무 멀다. 그래서 히치해서 가기로 했다. 히치는 4조로 나누었다. 나랑 상걸이는 2등을 했다.

 하지만 운이 좋아서 경상남,북도 경계를 직접 넘을 수가 있었다.
그렇지만 청도 우체국에 가니 소포가 없다. 알고보니 아직 안 보낸 것이다. 청도에서 팔조령 방면의 길로 걸어가는데 다들 힘들어 하는것 같다.

 중간에 잘려고 마을을 찾아보니 복숭아가 많은 부자마을에 들어섰다. 집도 좋고 젊은 사람들이 잇는 부자 마을이다. 마을 회관도 새로 지은 너무 좋은 곳이다.

 처음에는빌리기 힘들거 같았지만 이장집 할머니가 기꺼이 비렬 주셨다.
시설은 너무 좋앗따.

 특히 재란이가 4000원을 들고 복숭아 반상자 이상을 가져왔다. 역시 인심이 좋다는 느낌이 들었다.

  복숭아를 실컷 먹으며 힘든 여행 가운데서도 다들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좋은 애들만 잇고 특히 담배 피는 애가 없어서 너무 다행이다.

 

밀양시의 중앙다리 위에서(저 멀리 영남루가 보임)

 

8월 12일

 아침에 일찍 일어났는데 아침거리와 돈이 없다. 그냥 강행군을 했다. 칠곡 초등학교에서 아침을 먹었다. 계속 비가 내리지만 날씨에는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다.

 드디어 팔조령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마을 새마을 길을 통해 팔조령 옛길로 갈려구 했으나 일제 시대때부터 살았던 할아버지의 만류로 포기해야 했다. "이길이 원래 일본군이 지나간 길이다"라고 말했을때 세월의 무상함 마저 느꼈다.

 경사가 있는 과수원을 건너 국도로 올라갔다. 국도는 얼마전에 뚫린 터널이 있지만 팔조령의 정상을 가는 지방도로 올라가는게 여행의 의미 부여에 좋을거 같아서 국도와 지방도 사이가 가장 좁은 절벽을 희규를 앞세워 길없는 길을 갔다. 정말 재미있는 탐험대이다. 풀에 베이기는 하지만 개척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팔조령 정상에 올라가니 청도군이 훤히 보인다. 꼭대기의 물맛도 너무 좋다.
고개에서 내려와서 한 초등학교에서 비빔면을 먹고 4시까지 쉬도록 했다. 대구 교대에 연락해서 오늘 잘수 있도록 처리한 다음 3개조로 나뉘어서 히치를 했다. 나랑 소윤이 재란이가 같은조 였는데 처음에 차를 잘 잡아서 1등을 했다.

 대구 교대에서 짐을 풀고 찬거리를 산 다음 저녁을 먹고 대구교대 총학생회장이랑 담화를 했다.  

 

힘겹게 올라온 팔조령 정상에서

 

8월 13일

 대구 교대에서의 아침이 밝았다. 츠음에 팔달교를 가는 버스를 찾느라 대구 시내를 헤맸다.

 이제부터 전체적으로 25번 국도를 따라 갔다. 여태까지 간 거리중 가장 멀리 간 거리도 힘들지만 무대포로 걸어가는 트럭과 매연 먼지들이 우리를 괴롭혔다.

 아침은 동면에서 먹었고 점심은 칠곡 초등학교에서 먹었다.
애들도 이제 잘 걷는 편이다. 하지만 독기가 어린 연지는 걷다가 앞서가던 날 툭 치기도 했다.

 마을 회관을 잡을려고 희규와 건널목을 건넜는데 한 경찰차가 섰다. 날 파출소에 데려가니 소장이 따뜻하게 맞아 주시면서 파출서에서 자라고 하셨다. 이렇게 해서 파출소에서 자보다니.. 여기 인심이 좋다는 것을 식당에서도 확인할수 있었다.

 순두부를 먹을려고 가게를 헤메던 우리에게 인심좋은 식당아줌마가 순두부 재료를 공짜로 주셨다.
오랫만에 TV를 보고 파출소에서 편하게 잤다.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던 대구교대 앞에서.

 

 8월 14일

 아침에 파출소에서 일어나 짐을 챙겼다. 7시 30분쯤에 기상을 시켜서 뒤늦게 8시 30분쯤에야 아침을 먹지 않고 출발했다. 파출소 앞에서 소장님에게 같이 사진을 찍자니까 허겁지겁 차로 뛰어가시더니 정복을 입고 나오셨다.

 사진을 찍고 소장님은 친절히 배웅까지 해주셨다.

 어제와 같이 무대포로 걸었다. 아침은 돈들여서 식빵이랑 잼을 사서 맛있게 먹었다. 아침 먹고는 주로 폐돋로 갔는데 길 찾기가 너무 힘들었다. 특히 연지가 탈진 직전까지 갔다. 희규의 걱정스러운 말에 연지를 바라보았다.

 혹시 탈락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아직 눈빛이 살아있었다. 난 매정하게 엄살이라고 하고 연지를 외면했다. 연지도 독기가 올랐는지 이후로는 잘 걸었다.

 옛길을 찾느라 산길을 올라가서 선산 골프장으로 가는 길은 힘들어서라기 보다는 너무나 목이 말랐다.

 고개를 넘고 갑자기 건물하나가 보인다. 알고보니 골프장 건물이었다. 거기는 화장실에서도 에어컨이 나온다. 하지만 남의 골프장에 갑자기 들어온 우리는 캐디의 눈치를 보면서 빠져 나와야 했다.

 나머지는 그냥 25번 국도를 걸었다. 특히 내가 뒤로가고 있을때 상걸이가 알아서 쉬지 않고 가준다. 자기딴에는 날 힘들게 하기 위해서라는데 솔직히 하나도 안 힘들었다. 아마 2시간 동안 쉬지 않고 갔을 것이다.

 애들은 기진 맥진 했다. 저녁때는 마음씨 좋은 아줌마와 아저씨를 만나서 마을회관에서 된장국을 먹었고 1만을 드리고 거의 4키로에 가까운 쌀을 구할수 있었다.

 

하룻밤 신세진 파출소에서..(가운데 정복입으신 분이 파출소장님)

 

 8월 15일

 광복절 아침이다. 2일동안 다들 힘들게 걸어서 간 것과 복날이라 고기를 먹을 겸 낙동까지 히치해서 갔다. 낙동에서도 계곡이 없어서 문경까지 히치해 갔다. 생각보다 무척 장거리 였는데 장거리도 히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다.

 문경시에서 고기를 사들고 버스를 타고 진일교까지 갔다. 강에는 3개의 다리가 있었는데 고기를 먹고 물장난을 하며 놀았다. 나도 처음에는 빠지지 않을려고 했으나 빨래도 할겸 옷입은 채로 수영을 했다.

 6시가 지나서 마을을 찾아 헤맸다. 길가에 있어서 그런지 회관은 없었고 믿었던 파출소에서도 뺀치 먹었다. 마행이 마음씨 좋은 아줌마를 만나 성당에서 잘수 있었다. 수녀님은 우리에게 포도와 라면을 끓여 주셨다.

 

히치한 포터 위에서

 

8월 16일

 성당에서 일어나 곧바로 동성 초등학교로 갔다. 소윤이가 일이 생겨서 떠나기 때문에 우편물도 찾을겸 점촌 시내를 갔다. 근데 멍청이 택배회사 때문에 우편물은 안동에 가 있었고 결국 충주집으로 부처 달라고 했다.

 여행 후 처음으로 맑은 날씨에서 행군했는데 무척 힘이 들었다. 땀이 엄청 쏟아지고 그렇게 문경 새재 앞으로 갔다.

 문경새재에서 입장료는 1100원이었다. 어쩔수 없다. 표를 사서 들어갔다. 문경새재에는 왕건 촬영장이 있는데 한참 촬영중이었다.

 시간이 없어서 곧바로 새재로 올라갔다. 고행이다. 사진도 많이 찍었지만 애들이 너무 힘들어했다. 그런 와중에서도 내가 뛰어 다니니 어이 없어 하는 눈치이다.

 3관문을 올라오는 순간 다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워서 쉬고 약수도 먹었다. 하지만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다.

 내려와도 잘데가 없었다. 결국 내려오면서 헤메다가 길에서 장사를 하는 좋은 할머니를 만나 다 쓰러저 가지만 아늑한 산촌 집에서 잘수 있었다.

 

해가 지는 문경새재 정상에서 찰칵

 8월 17일

 산촌 한옥에서 일어나 수안보로 내려와서 초등학교에서 아침을 먹었다. 하지만 너무 더웠다. 35도까지 올라가는 땡볕은 우리의 행군의 의지를 꺽기에 충분했다.

  11시 까지 쉬고 연지를 앞세우고 계속 걸어갔다. 하지만 너무 더워서 힘들었다. 내가 이렇게 지친데 다른 애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 결국 히치를 결정했다. 상걸이가 한번에 잡은 차에 6명이 같이 탔지만 충주 남쪽에 내려 주어서 꼼짝없이 40분 동안 중주 시내를 관통해야 했다. 충주가 이렇게 큰지는 처음 알았다.

 터미널에서 합류를 한다음 탄금대에서 쉬다가 우리집에 도착했다. 아빠가 반갑게 맞아 주어서 고맙기도 했다.

 오랜만에 외식으로 다들 돼지고기를 먹고(사실 상진이가 모는 차때문에 목숨 걸었음) 여자애들은 집에 남자들은 컨테이너 박스에서 잤다.

 

하룻밤 신세진 산촌 가옥 앞에서 찰칵

 

8월 18일

 제일 힘든 하루이자 처음으로 야간 행군을 실행했다.

 우리집에서는 10시쯤에 출발해서 중앙탑을 관람했다. 에어컨이 힘차게 나와서 떠나기 싫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무료인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뒷문으로 가서 입장료를 안냈다. 아싸 6400원 벌었다.

 충주호를 따라 2시간 30분 정도를 걷고 나서 햇살이 뜨거워서 야동 초등학교에서 점심을 먹은 다음에 푹쉬기로 했다.

 4시까지 쉬고 나서 야간 행군을 감행했다. 일단 어두운데 찾길로 가기 때문에 내가 뒤에서 후래쉬로 차들을 서행 시켰다.

 양아치 고개를 넘어서 원주시내가 보였다. 다들 환호했지만 사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오늘 합처서 50킬로정도 걸었다. 원주의 상걸이네 도착해보니 12시가 되어 있었고 나두 어제 다친 오른 발이 고통스러웠다.

 상걸이네에서는 맛있는 밥과 과일을 실컷 먹었다.

 

드디어 강원도다 !!!

 

 8월 19일

 전날 너무 심하게 걸어서 상걸이네서 점심까지 있다가 곧바로 PC방에 들어갔다. 거기서 포트리스를 대충 한다음 에 곧바로 횡성으로 출발했다. 다들 다리가 아팠는지 그리 많이 걷지는 못한다. 초등학교에서 쉬다가 다시 걷기 시작했다.

 저녁은 횡성에서 먹고 홍천쪽으로 출발했지만 이미 밤이 깊어져 있었다.
마을에 들어가서 회관을 빌려야 하는데 마을도 없고 집도 띄엄띄엄 있다. 역시 강원도라는걸 실감할수 있었고 도로의 경찰의 무시를 받으며 집들이 조금 있는 마을로 들어섰다.

 역시 마을 회관이 없다. 밤도 늦고 길도 위험해서 노숙을 결정했다. 4개 조를 짜서 불침번을 세웠다.

 8월 20일

 노숙하고 일어나니 한 할아버지가 꼭 자기집에서 밥을 먹으로고 하신다. 참 고마운 분이다.

 이 날도 딴건 없다. 무조건 걸었다. 강원도에서 만큼은 절대 히치하지 않을려구 노력한 것이다.

 날씨도 정말 더웠고 특히 사람을 살살 약올리는 삼마치 고개를 더욱 짜증나게 했다. 하지만 터널이 있어서 많은 거리를 단축 시킬수 있었다.
전날 노숙을 해서 한 폐교에서 3시간 정도 재웠다.

 홍천에 이르자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오랫만에 떡복이와 튀김을 먹고 홍천 초등학교의 선배방에서 하룻밤 잤다.

 

드디어 춘천 바로 밑에 있는 홍천 군이다.!!!

 

8월 21일

 이제 목적지도 가까워 지고 있었다. 다들 걷는 속도도 붙고 있었고 무리해서 라면 오늘 도착할수 있었다. 하지만 다들 힘들게 가기 싫은 모양인가 보다.

 처음으로 여행을 하는 배낭족이랑 마주쳤는데 역시 우리보다는 속도가 느리다.

 홍천에서 12KM를 가자 드디어 행정구역상 춘천이 나왔다. 더이상 다른 곳은 갈곳이 없는 곳이다.

 저녁때는 춘천 바로 앞에 있느 새슬막에서 좋은 아줌마를 만나 노래방에서 잘수 있었다. 다들 다음날 춘천으로 간다는 사실에 상기되어 있었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중앙일보에서 연락이 왔다. 때 맞춰서 취재를 온 기자는 우리의 여행에 놀라움을 표시하면서 한사람 한사람에게 꼬치꼬치 물어 보면서 수첩에 적었다.

 

이젠  춘천이다!!!(이때는 거의 피로를 못느낌)

 8월 22일

 마지막날의 아침은 초등학교 1학년인 주인 아줌마딸의 방학 숙제를 해주면서 시작되었다.

 원창고개를 너무 올라가기 쉬웠고 올라가자 춘천이 보였다.
감격적인 순간이다.

 교대에 도착할때쯤에 KBS춘천에서 취재하러 왔다.
매스컴을 타다니..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여행이 끝나고 춘천교대 학생회관 앞에서 찍은 사진

 

사진속으로..

 

다들 어리둥절 했을 것이다.
실감도 안나고 다들 성공할지도 미지수 이고
특히 서로가 모르는 상태이기 때문에 많은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서 누구보다도 친한 사이가 되었고  많은 고민도 공유한 좋은 친구가 되었다(난 아냐.. 좋은 선배야)

다들 잊혀지지 않는 추억을 위해 모인
멋진 탐험대이다.

 

처음으로 식사를 만드는 장면..
  다들 서툰솜씨이지만 여행이 끝날 무렵에는 다들 명 요리사가 된다

 

이 사진을 보면 영아가 정말 탐험을 잘했다는것을 느낄수가 있을것이다.^^
그래도 활짝웃는 모습이 진정한 왕엄마 이다

 

처음에 식사는 순번제로 했지만
나중에는 고정 담당을 만들었습니다.
남여 가리지 않고 자신이 맡은바의 책임을 잘 수행한 대원들이었습니다

 

전 대장이고 실질적인 돈줄은 총무인 상걸이가 쥐고 있었습니다

상걸이랑 나랑 이야기 하는 모습

 

이때 부산교대에서 저녁을 얻어 먹을줄 알았는데 우리의 기대는 여지없이...쾅!!

첫날 해먹은 메뉴는 바로 카레 입니다

 

부산교대에서 일기를 쓰는 장면입니다.
이때는 제가 강제로 시켰는데 그것은 추억을 더욱 풍부하게 간직하기 위해서 그런겁니다.

이때는 불만들이 많았지만 탐험을 하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알아서 일기를 쓰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상걸이에게는 총무라는 직책이 맡겨졌습니다.    처음의 우려와는 달리 정말로 훌륭하게 임무수행을 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부산교대에서 떠났는데 비도 오고 정말 막막했습니다.  그래도 여행에서의 추억이 기대가 되기도 했죠

 

지도를 유심히 살펴보는 상진이 처음에는 길찾기에 어리숙했지만 나중에 저의 지도로 능숙해 졌습니다

 

양산에서 물금으로.. 큰다리 입니다.이때까지만 해도 막연한 기분이 들었죠..

 

식사는 가지고 있는 재료나 근처 가게의 형편에 따라 메뉴가 결정되어졌습니다. 하지만 시장기가 밥이라고 밥맛은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한참을 걸어서 늦게서야 점심을 먹었습니다.이때만 해도 막막해서 개강하고 1주일 내에 갈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죠
하지만 날이 갈수록 속도를 내게 되었습니다   사진은 처음 점심을 해먹는 장면

 

낙동강 줄기중에서 전망이 제일 좋은 곳입니다. 뒤쪽에 보면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 펼처지고 있습니다.
사진으로 표현되지 않았지만 좋은 경치였습니다

 

이렇게 기차길위에 올라갈때가 있는데 사진에서 보다시피 오른쪽은 절벽에 막혀있고 왼쪽은 강으로 막혀있었다. 가장 험한 길중에 하나인데.. 경상도에서 이런길을 만날줄이야

지금은 기찻길로 변했지만 실제로 조선시대때 이곳에서 떨어저 죽은 사람도 많다고 전해진다

 

절대 따라해서는 안되는 장면..길이 없어서 어쩔수 없이 가는 거지 사실 엄청난 벌금과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엄청난 소리의 기차 경적소리 ..
사실 기차 기사님들도 많이 놀랬을 겁니다

 

저녁은 주로 잘곳을 정하고 나서 해먹었습니다.

 반찬은 근처 가게의 사정에 따라서 해먹을수 밖에 없었지만 근처 마을 주민들이 가저다 주신 반찬도 있었는데 그 정도가 탐험대 반찬의 상당량을 차지했습니다..

가끔은(사실은 자주) 저희들이 구걸을 한적도 많았습니다

 

하루 신세진 마을 회관에서 찰칵..

아무리 힘들고 지치더라도 절대로 서로 화내거나 싸우지 않은 좋은 분위기 였습니다.
그러한 팀웍 덕분에 탐험을 성공적으로 마친 겁니다

 

원래 기차길을 올라가면 엄청난 벌금과 위험천만한 기차가 바로 옆을 스치는 고행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기차길을 간 이유는 한성 옛길이 경부선이랑 많이 겹치고 또한 옆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옛지도를 근거로 이렇게

오래된 길을 개척할때면 막막한 기분까지 들었습니다.

풀에 긁히고 벌레에 물리고

그래도 결코 절망하지는 않았습니다

 

 

탐험을 할때 이런길들은 많이 다녀야 했습니다.

힘들기는 하지만 보통 아스팔트 길을 갈때 보다는

훨씬 모험적이고 재미있었습니다

 

아침을 먹기위해 신세진 한 초등학교에서 소윤이와 영아와 찍은 사진입니다.

탐험대가 출발하고 처음 8일동안 계속 흐린 날씨였습니다.

햇빛도 없고 비도 안오는 이런날씨는 우리에겐 여행하기엔 더 없이 좋은 날씨였습니다

 

삼랑진에서 아이스크림 먹는 모습

날씨가 더워서 하루에 한 두번씩 아이스크림을 먹곤했는데 왜그렇게 맛있던지....

 

악전 고투하는 탐험대.. 길을 개척해 가는건 힘든 과정입니다.

사진의 왼쪽위에 보면 콘크리트가 보이는데거기를 곡예하듯이 건너서 내려와야 했습니다.

 

길을 가다가 쉴때에는 이렇게 식당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주인 아줌마는 따뜻하게 맞아 주었죠지금 생각해도 고마운 분입니다  

 

 

절벽을 내려올때는 이렇게 뛰어 내려오는게 좋을거 같습니다.
대신 넘어지면 큰사고가 나죠.
어쩌면 큰 도박일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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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선된 경부선터널

 

 

우리나라에 이런곳이 몇군데나 있을까요?
바로옆의 경부선을 두고 일제시대때 쓰던 터널이 있었습니다.

일제 시대때의 건축 양식을 볼수가 있었지만
동굴 입구는 컴컴해서 끝이 어딘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길은 완전히 막혀있구 동굴의 끝은 안보이고
그래도 일단 도전해보기로 했습니다.

터널은 길기도 했지만 나중에 끝에 가보니까 민가하나가 나오고 밀양이 보였습니다

 

내시같은 상진이의 표정...

아침에 일어나서 침낭을 접는 모양인데 상진이의 표정이 정말 재미있습니다.
  조선시대의 내시를 보는 듯한..

 

아픈 다리를 점검하는 여인들

하루하루의 탐험이 끝나고 마을회관에서 잠을 잘때면 풀에 긁히고 상처난 다리가 조금씩 쑤셨습니다.

 

희규의 절망..

언제나 늙은 행동으로 우리에게 웃음을 주었던 희규 많이 피곤했나 봅니다..(아마 여행에 대한 절망이..ㅋㅋㅋ)

 

지도에 나와 있지 않아도 거리를 단축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면 이렇게 공사중인 길도 우리에겐 두렵지 않았습니다

 

소윤이와 영아..

두 00 여학생들은 제가 보기엔 많이 붙어 다녔습니다. 서로에게 의지를 하고 우정을 다지는 좋은 현상입니다

 

여행 초반에는 주로 상걸이가 제일 뒤에 있었는데 제일 뒤에 처지는 여자애들한테 주로 작업들어갔습니다. 뒤에 쳐저서 연예하는 두사람 

 

외딴 시골길.. 탐험대가 주로 간길이도 하죠. 이럴 때는 도박성이 짙기도 합니다.
지도에도 나와있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크게 다시 빠꾸한적은 없었습니다.
(빼어난 대장의 판단능력 덕분)

 

달리는 새마을호 옆에서

바로 이 장면을 찍기 위해서 비오는데 15분동안 묵묵히 서있었습니다. 이때까지 거의 기찻길 따라 탐험을 했고 길을 개척했습니다 

진 사람이 이긴 사람 가방 들어주기 내기를 하고난후

영아가 져서 희규의 가방까지 들고 있는 모습

이런 무모한 짓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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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분들을 만나서 점심을 편하게 먹을수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다 쓰러저 가지만

안에 보면 온갖 가전제품들이 다 있습니다

 

분수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대장의 카리스마가 느껴진듯

 

영남루 계단의 모양이 특이했습니다.

그래서 다들 편한 포즈로 찰칵.

 

검은 피부와 큰배낭

특히 도시를 지나갈때에는 많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다들 도시를 관통하는것을 기피했죠

 

 지금은 작전 회의중!

길이 항상 일정하지 않기때문에 언제나 이렇게 의논을 해야했습니다

 

 

 

 

 

청도까지 거의 15킬로를 히치하고 나서 찍은 사진입니다.

 히치할때는 조를 각자 나누어서 목적지를 정한 다음에 알아서 오도록 했습니다.

히치는 별로 어렵지 않고 오히려 먹을 것을 얻어 먹거나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 할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수도 있습니다

지친몸을 이끌고 쉬는 시간이 되면 장소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사진처럼 그냥 길바닥에서 휴식을 해도 휴식 시간은 왜이리 빨리 가던지...

 

 

 

지금은 작전 회의중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잠을 잘 무렵에
다음날 가야할 길에 대해서 회의를 하곤 했습니다.
그렇지만 전날 정한대로 길을 간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든든한 총무 상걸이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우리 상걸이는
돈계산을 빼놓지 않고 했습니다.
그래서 거의 오차가 없었죠
그러한 총무가 있기에 저렴하게 여행을 할수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연못에서..

길을 지나가다 보면 평소에는 볼수 없었던 광경을 보곤 합니다.
사진처럼 길가다가 아름다운 연못을 볼때면
여행의 재미를 느끼기도 합니다.

 

 우리가 밥을 주로 해먹은 장소는 바로 초등학교 였습니다.
물도 구할수있고 화장실도 있구..
제일 최상의 장소였습니다.
사진은 팔조령 올라가기 직전 아침먹었던 장소

 

 팔조령 아랫마을까지는 잘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길이 끊어진 관계로 다시 국도로 올라가야 했구 거기서 다시 지방도로 올라가야 했습니다.
특히 국도에서 지방도로 갈때에는 완전히 새길을 개척해야 했습니다.. 그때 어려움이 서린 상진이 표정 ㅋㅋㅋ

 

 온갖 풀이 무성하고 길없는 곳에서
희규는 역할수행을 너무 잘했습니다.
희규의 개척덕분에 다른이들이 수월하게 올라왔지만 희규는 다리가 풀에 많이 긁혔을겁니다

 

 국도에서 지방도로 가는길은 정말 험했습니다
소윤이가 높은곳을 오르지 못하자 도움을 받는 장면입니다.
소윤이 잡은 손은 내손^^

 

 험한길을 뚫고 나오자 바로 지방도가 나왔습니다.

지방도는 차가 거의 다니지 않아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여기서 부터는 힘들지 않고 올라갈수 있었습니다

 

 팔조령 정상에서...

힘들게 올라와서 그런지 정말 기분 좋았습니다
특히 청도가 한눈에 보이는 장관이었습니다
우리가 탐험하면서 가장 좋은 경치로 기억하는곳중에 하나입니다

 

 청도가 한눈에 보이는 이곳에서
멋진 포즈를 한 나

 

 

대구교대에서 떠나서
경상북도가 나왔습니다
이때부터는 우리의 속도가 많이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대구교대에서 하룻밤 잤습니다
특히 이곳 총학생회장님과 많은 이야기를 했죠
다른교대를 갔단느 의미는 00, 01한테 새롭게 다가갔습니다

 

 이런길은 아스팔트지만 걷기는 편합니다
지방도라서 차들이 많이 지나지도 않지만
그늘이 많기 때문이죠

 

 우리가 잘곳을 찾아 헤메고 있을때 먼저 찾아와 재워주겠다는 고마운 분들입니다
그래서 편하게 파출소에서 잤죠
아침에 기념사진을 남기겠다니까 파출소장님은 갑자기 차로 뛰어가시더니 정복을 입고 오셨습니다.

옆에 경찰관님은 일명 유승준 경찰관

이런경우가 많았어요..
가끔 실수하면 발이 빠지기 마련이죠
상걸이는 여기서 도랑에 신발이 빠져서
고생했답니다

 

산 정상에서..

가끔 산을 통과할때도있었죠
근데 물이 없어서 다들 기진맥진했을때 입니다
솔직히 나도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산정상에서의 바람은 시원하더군요

탐험대의 골프장 습격 사건

이날 산을 헤치고 헤쳐갔습니다
물로 없고 목마르고 힘들고
근데 갑자기 건물이 보이길래 나오니까
골프장이었습니다
보험들었느냐고 묻는 캐디들의 경고를 받으며 유유히 골프장을
나왔습니다
(제가 든 부채는 나와 여행의 반을 같이한 "제갈량 부채"..주운겁니다)

 

낮잠에 푹빠진 여인들

이날 아침부터 걷고 또 걷고
산에서 헤메구..
말은 안했지만 이날 엄청 돌아서 왔습니다
잠깐의 휴식시간에 모두들 다 잠들었어요..
탐험대의 피곤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진

 

 

저녁때 지치고 힘들때의 모습을 찍은 겁니다
좋은 장면 같아서 연지한테 사진을 빼앗아 뛰어가서 찍었죠..
근데 대원들은 제가 뛰는 모습이 더 허탈했나 봅니다

 

 

마을회관은 거의 우리의 공식숙소였습니다
특히 이 회관은 TV까지 있었죠
하지만 마을근처에 가게가 없어서
반찬은 ONLY 된장이었습니다
특히 어떤 아줌마가 주신 쌀은 너무 많아서 3일동안
들고다니면서(물론 개척대) 먹었습니다

 

 

이날은 광복절과 복날이라는 이유로 계곡을 찾아 히치했습니다
전날까지 엄청나게 걸었기 때문이죠
걷지 않고 차타서 신난다는 표정이 드러나죠?
히치는 조를 짜서 주로 실행했습니다

 

 

처음에는 잘모르겠지만
자세히 보면 철길 다리위에서 포즈취한게 접니다
이거 찍이 위해서 엄청 달려가서 저기까지 올라갔죠..
단선된 문경선에서만 할수있는 사진입니다
뒤늦게 희규가 올라왔지만..
ㅋㅋㅋ 불쌍한놈

희규의 특기 ㅋㅋㅋ

바로 이장면 처럼 노인들 이야기 들어주는 겁니다
액면가도 그들이랑 제일 비슷하고
암튼 노인들 이야기 들어주는 것은 희규 담당임

 

왕건 촬영장의 목챙 성루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찍은겁니다.
내가 생각해도 탐크루즈 같습니다

문경새재는 입장료를 1인당 1100원 씩이나 받았습니다
그래서 뽕이라도 뽑을려고 박물관에 갔죠
엄청난 무더위였던 당시 우리의 목적은
박물관 탐방보다도 에어컨 쇠로 간거였습니다

 

옆에 액스트라들 보이죠?^^
마침 왕건 촬영 기간이라 액스트라들이 쉬고 있는 것을 틈타
얼른 창을 빼앗아 찍은 사진입니다
뒤에 보이는건 문경새재 1관문입니다

문경새재 제 2관문

이미 저녁이 되서 사람이라고는 우리밖에 없었습니다.
다들 기진맥진 했지만
사진만 대충찍고 3관문을 향해 강행군을 했습니다

 

경치는 정말 좋았습니다.
단 시간에 쫓기는 우리는 그것도 감상할새가 없이
2시간 만에 올라갔습니다.
그러한 것들이 아쉬움이 남는군요

절대 들어가서는 안되는 성위에 올라가서
희규랑 나랑 성을 점령한 사진...
왜 들어갔냐고 따지는 공무원한테 선의의 거짓말을 하고
무사히 도망쳤답니다

 

문경새재 제 3관문..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올라갔습니다.
고지를 정복했다는 기쁨보다는 거의 기진맥진한 표정들이었죠
그래도 기념사진은 잊지 않고 찰칵

문경새재를 넘고 수안보로 가는 길목에
석양과 나무가 잘 어울러진 장면이 있어서
찍었습니다.
여행의 막바지를 상징하는 사진이죠

 

쓰러저가는 산촌 집에서..

전날 문경새재를 넘고 잘곳이 없어서 밤까지 헤맸죠..
그때 선뜻 재워주겠다는 할머니가 어찌나 고맙던지
이런집에서 자는것도 좋은 추억이었습니다

충주 탄금대에서...

1인당 거금 600원을 들였지만

돈이 정말 아까운 곳이였죠

그나마 낳았다고 생각한 곳에서 나와 찰칵.

다음 행선지는 우리집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한가운데 세워진 국보6호 탑입니다.
이때 공짜로 많은 문화재를 봤는데
다 뒷문으로 들어간 덕이죠..
여기서 우리가 본 가장 큰 문화재는
너무도 시원한 에어컨 이었습니다

드뎌 강원도다!!!

강원도 표지판 앞에서 기뉴특전대 포즈..(나만 했군)
어두워지기 직전이었습니다...
특히 이걸 넘고 공포의 양아지재가.

 

삼마치재 터널

원래는 엄청난 고개인데 어느새 터널이 뚫려 있군요

덕분에 엄청난 거리를 단축했습니다.

위의 표지판은 횡성에서 홍천으로 들어간다는 표지입니다

춘천에서 홍천 가는 길목

강원도에서는 무조건 도로로 가야했죠..
여행 막바지 걷는 모습입니다.

 

드디어 춘천이다!!

홍천에서 얼마 걸어가지 않자 춘천이라는 표지판이..
목표지점까지는 많은 거리가 남았지만
그래도 행정구역상 춘천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더 힘내게 했어요

우리의 마지막 잠자리

노래방에서 재워주고시 밥도 해주신 고마운 아줌마와
귀여운 1학년 여자애..
다른이들 보고는 오빠, 언니 하면서 희규한테만은 아저씨라구.ㅋㅋㅋ
다들 방학숙제 해준것도 기억하죠?

 

춘천의 입구 원창고개에서..

힘들거라고 예상했지만 의외로 빨리 갔었죠?
사진찍을때에는 시내가 나오는줄 알았는데
연지 키가.,,,^^;;

 

 

 

 

드디어 목적지 도착..

처음이랑 비교해서 다들 시커매졌습니다.
그래도 기분은 날아갈거 같았죠
이 사진 찍자마자 그대로 목욕탕... 직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