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2일(일)
비행기를 타면서 앞에 탄 이집트 청년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청년은 비행기를 타자마자 의자를 뒤로 확 제치며 뒤에 있는 나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청년에게 매너를 지키라고 이야기를 하니 뭐가 문제가 있느냐는 표정으로 대꾸한다.
결국 스튜어디스까지 나서 ‘뒤에 계신 분이 영화를 봐야 하니 이해를 해 달라.’라는 말을 듣고서야 의자를 앞으로 제낀다.
9시간의 비행을 끝내고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3시 반이다.
내리자마자 드는 생각은.
‘도대체 뭘 하지?’
이집트에서도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가이드북이라도 가져왔지 않은가?
다행히 공항 서점에 론니플래닛을 팔고 있었다. 공항 ATM에서 돈을 뽑은 후 론니 동남아시아편을 사려고 했지만 말레이시아-싱가포르-브루나이 편이 따로 나왔다.
어? 언제 나왔지?
2007년판으로 최신판이고 41S$(싱가포르 달러 1S$는 600원 정도)로 비싸지 않다. 당연히 론니를 구입했다. 자 이제 강력한 무기 장착.
입국수속을 밟는데 입국카드에 ‘마약을 운반하면 무조건 사형’이라는 무시무시한 문구가 있다.
싱가포르는 강력한 법치국가로 마약을 들여오면 내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무조건 사형이다. 실제로 얼마 전 베트남계 호주인이 마약을 들고 싱가포르에 왔다가 사형을 당한일이 있었다.
당시 외신에서는 ‘깡패 국가 싱가포르’라는 표현을 써가며 비난을 했지만 싱가포르 정부는 거기에 아랑곳 하지 않고 사형을 집행시켰던 것이다.
인도, 태국 같이 마약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지역의 여행자들은 꼭 주의하기 바란다.
공항에서 MRT(지하철)를 타고 시내로 나왔다.
MRT에서 바라보니 싱가포르의 생활수준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개 무역으로 번성한 싱가포르는 1인당 국민소득이 27,800$로 우리보다 더 높은 국민소득을 자랑한다.
리틀 인디아 지역인 Bugis 역에서 내려 미리 예약해둔 SummerView 호텔에 갔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주변을 둘러보니 근처에 한국 물건을 파는 상점이 있고 북동쪽 쇼핑몰 푸드 코너에는 한국 음식을 팔고 있었다.
오랜만에 한국 음식으로 포식을 했다. 먹는 가격은 한국과 비슷한 가격이지만 맥주만큼은 꽤 비 싼편이다.
싱가포르에 왔으니 관광을 해야 하는데... 뭐 별로 관심 없다.
내일 일정이 시작되자마자 얼른 말레이시아로 떠나야겠다.
8월 13일(월)
퀸터미널에서 말레이시아 Johor Baruh로 떠나는 버스(2.4S$)를 탔다. Johor Baruh행 버스는 10~15분마다 한대씩 있으니 어렵지 않게 말레이시아로 갈 수 있을 것이다.
버스는 30분을 달려 싱가포르 섬에서 말레이반도를 연결하는 다리에 다다른다.
잠시 내려 싱가포르에서 출국수속을 마치고 다리를 건너 말레이시아 입국 수속을 마치면 끝~ 싱가포르는 19일까지 잠시 빠이빠이~
원래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의 한 주였다. 196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해 말레이연방에 가입을 했지만 2년 뒤인 1965년에 싱가포르의 국부인 리관유 총리의 주도로 독립을 하게 된다. 사실상 화교도가 말레이시아로부터 싱가포르를 빼앗아 간 셈이지만 결과적으로 싱가포르를 번영에 이끄는 계기가 되게 한 결정이었다.
싱가포르가 중개 무역항으로 번영하게 된 이유에는 말라카 해협이라는 지리적인 영향이 컸다.
한국, 일본, 중국에서 인도나 유럽으로 화물선을 이동하려면 반드시 말라카 해협을 거쳐야 한다. 화물선들이 그 중간 기착지로 인프라가 잘 되어 있는 싱가포르를 이용하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물류가 싱가포르로 몰리는 것이다.
그럼 싱가포르가 옛부터 번영을 했을까?
그건 아니다. 19세기 초만 해도 싱가포르는 한 어촌마을에 불과했다.
그 해답은 아까 이야기 했던 말라카 해협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말레이시아의 말라카이다.
말레이시아의 역사는 말라카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비중은 절대적이었다.
2세기부터 세계적인 무역항으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해서 고대 그리스에서는 ‘황금의 땅’이라고 알려지기까지 했다. 인도, 흰두교, 불교, 이슬람 문화가 거쳐 갔으며 대항해 시대에는 포르투칼, 네덜란드, 영국 등 세계적인 열강의 침략을 받았던 곳이 말라카이다.
말라카의 가치는 지금의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운명을 갈라놓은 재미있지만 결코 재미있을 수 없는 일화로 알 수 있다.
나폴레옹이 전 유럽을 휩쓸 때 말라카는 네덜란드 지배하에 있었다. 전 유럽을 호령하던 나폴레옹 기세에 눌려 네덜란드는 프랑스 지배하에 들어가고 말라카 자연스레 잠시 프랑스에 넘어갔다.
하지만 영국 주도하에 나폴레옹은 몰락하고 네덜란드 역시 프랑스로부터 해방이 된다.
문제는 그 다음.
독립된 네덜란드가 영국에게 식민지였던 동남아시아를 돌려달라고 하자 영국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분명 돌려줘야 하기는 한데 말라카만큼은 꼭 차지하고 싶었던 것이다.
1824년 네덜란드와의 협정을 통해 말레이 반도는 영국이 차지하고 그 외에 다른 지역은 모두 네덜란드령으로 인정하는 협정을 맺었다.
그 후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전 세계적으로 독립의 열풍이 불었을 때 말레이반도는 말레이시아로 나머지 네덜란드령은 인도네시아로 운명이 갈리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그럼 보르네오섬에 있는 말레이시아는?
거긴 더 웃긴 스토리가 있다.
주인공은 1835년 런던과 보르네오간의 배와 통상권을 3만파운드에 산 제임스 부룩(James Brooke)이라는 인물이다.
당시 보르네오는 사라왁(Sarawak)과 다약스(Dayaks)국 간에 분쟁이 있었는데 사라왁의 요청을 받은 제임스 부룩이 도움으로 사라왁(Sarawak)이 승리할 수 있었다.
사라왁은 감사의 표시로 제임스 부룩을 지금의 쿠칭 지역의 왕에 앉혔는데 그 후 세력을 야금야금 넓혀 보르네오 북쪽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역시 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의 시기에 영국인 출신이 지배하던 이 땅이 지금의 말레이시아로 편입된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19세기 당시 이곳 주민들의 의사와 관계없는 강대국 간의 조약과 개인의 처신이 지금의 이 지역 사람들의 운명을 갈라놓는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는 것이 웃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아리송하다.
그럼 말라카의 몰락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은 무엇일까?
바로 과도한 세금이다. 무역선들은 어마어마한 세금을 피해 새로운 기항지를 찾게 되는데 네덜란드에 의해 개발 된 바타비아(자카르타), 영국에 의해서는 페낭, 조호르 그리고 싱가포르가 새롭게 발전한다.
동남아시아 역사도 쭉 읽어보니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싱가포르에서 말레이시아로 넘어오면 바로 Johor Bahru가 나온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교류규모를 말해주듯 어마어마한 차량과 사람들이 드나든다.
환전을 하니 1S$에 2.26RM(링깃)을 준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1RM에 330원으로 계산하면 편할 것이다.
이곳에서 쿠알라룸푸르(앞으로 KL이라 부르겠다.)로 갈 여행자는 국경을 넘자마자 도열해있는 버스회사의 문을 두드리면 되지만 나처럼 지방으로 갈 여행자는 시내버스를 타고(1.3RM) Larkin 버스터미널로 가야 한다.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면 친절하게 버스정류장을 안내해 줄 것이다.
오후 12시 반에 말라카(14.5RM)로 출발을 했다. 시내를 벗어나다 끝없는 정글이 펼쳐지고 버스는 시원스러운 고속도로를 달린다.
3시간 반을 달려 말라카에 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했다.
바다가 펼쳐질 줄 알았는데 텁텁한 시내이다.
어디로 가야하지?
버스터미널은 쇼핑몰과 붙어 있는데 쇼핑몰에 있는 ATM기에서 돈을 뽑은 후 1회용 카메라를 파는 사진관에 들어갔다.
이집트 룩소르에서 카메라를 깨먹은지라 사진기 없이 여행을 다녔는데 그래도 기록할 것은 있어야겠지? 아쉽지만 1회용카메라(39.5RM)이라도 사야지.. 이걸 들고 다니면서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하기엔 그렇구.. 인물사진은 포기하고 몰래 몰래 풍경 사진이나 찍어야겠다. 에구 내 팔자야~
사진관 점원에게 물어보니 17번 버스를 타면 옛 말라카 도심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17번 버스(1RM)을 타고 마코타(Mahkota)에 내리니 예약했었던 숙소인 에쿠아토리알 호텔의 웅장한 모습이 보인다.
허름한 나의 모습을 본 호텔 도어맨이 ‘웬 놈이여?’라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뭐야? 나도 이곳의 고객이여.’
어제 잤던 싱가포르의 SummerView호텔은 3성급호텔이고 66,000원에 예약을 했다. 이곳은 이보다 3,000원 싼 63,000원에 예약했는데 시설은 최고급인 좋은 5성급 호텔이다.
여행을 하다가 이런 곳에서 잘 데도 있어야지~ 하루종일 최고급 호텔에서의 기분을 만끽했다.
저녁식사를 하러 잠시 시내로 나왔는데 한산한 분위기이다.
수많은 무역선으로 북적 였던 동네인데..
아마 1000년 전에는 아라비아로 향하는 고려 무역선이 잠시 쉬었다 갔을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어떤 기분으로 말라카 시내를 돌아봤을까?
또 한편으로는 1000년 후의 후손들은 어떤 기분으로 말라카를 돌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