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8일(토)
싱가포르 항공으로 카이로까지는 가려면 싱가포르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인천공항에서 싱가포르~카이로 구간의 좌석을 지정하니 창가좌석을 원하는 이는 인천공항에서 요청하면 된다.
이왕 돈 주고 비행기를 타는 것, 평소에는 볼 수 없는 하늘위의 세상은 보는 것이 현명한 여행자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싱가포르에서 카이로를 향할 때에는 꼭 왼쪽 창가 좌석을 타도록 하자. 싱가포르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으며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가 갈라지는 해협도 볼 수 있다.
비행기가 싱가포르에서 떠난지 7시간 정도 지나면 두바이를 지나는데, 보너스로 두바이의 야경을 그대로 내려다볼 수 있다. 특히 꽃잎 모양으로 펼쳐진 인공섬 야경은 TV에서만 가능할 줄 알았는데 비행기에서 직접 내려다보며 경탄하며 지나갔다.
그건 그렇고 싱가포르 항공의 서비스는 정말 끝내준다.
좌석마다 설치된 LCD에는 100개의 영화채널이 있는데 한국영화도 7~8편정도 된다. 또한 닌텐도 게임을 할 수 있다. 싱가포르~카이로 9시간 반이 걸리는 긴 여정이지만 어린 시절 즐겼던 슈퍼마리오를 2시간을 투자해서 클리어하고 한국영화 ‘MR 로빈 꼬시기’, ‘미녀는 괴로워’를 보다 보니 어느덧 카이로가 가까워졌다. 아.. 화산고를 아직 못 봤는데.. 오히려 카이로에 도착하는 것이 아쉬울 정도이다.
기내식 역시 수준급이고 무엇보다 후식으로 잊지 않고 아이스크림을 주는 것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카이로 왕복이 텍스 포함해서 136만원이라 처음에는 비싸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정도 서비스에 아시아나 마일리지 적립을 생각하면 대만족이다. 왜 여행자들이 싱가포르 항공을 선호하는지 알 것 같다.
현지시각 오후 11시에 카이로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맞아준 것은 더위이다. 비행기 안에서 가이드북을 보며 안 사실이지만 이집트는 여름 날씨가 매우 덥기 때문에 비수기라고 한다.
그걸 이제야 알았으니... 뭐.. 오히려 관광객이 많지 않으니 바가지 쓸 일은 별로 없을 테지.
입국심사대로 가는 도중 몇몇 삐끼들이 접근한다. 여기까지 들어오는 것이 가능한가? 가벼운 인사를 하며 지나치다보니 환전하는 코너가 보인다.
이곳에서 우표같이 생긴 비자피를 15$에 사서 입국심사대에 보여주면 1달짜리 여행 비자가 OK.
여행을 하면서 경험 한 것 중에 하나가 공항 환전소는 무조건 바가지라는 것인데 이곳만은 예외이다. 환율이 1$를 팔 때는 5.65£E, 1$를 살 때는 5.66£E이다. 거의 차이가 없다. 1$당 차액이 0.01£E이기 때문에 이정도면 아주 좋은 환전이다.
이왕 환전하는 요령이 나왔으니 자세히 설명을 하면, 환전소나 은행에서 환전을 할 때에는 복잡하게 환율을 따지지 말고 간단하게 달러로 현지 화폐를 사고, 파는 가격의 차이를 보면 된다.
이집트 화폐단위는 이집트 파운드(£E)와 피아스트로(pt)로 불린다. 1£E는 100pt이다. 1£E는 우리 돈 160원 정도로 계산하면 편하다.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도착하는 승객은 제2터미널에 내리게 되는데 비싸게 택시를 이용하지 말고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1터미널 쪽으로 가자.
1터미널 주차장 부근에 버스 정류장이 있는데 마침 독일인 여행자 2명과 일본인 여행자 2명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서성이고 있다.
이들은 나에게 다가와 어떤 버스를 타는지 묻는다. 버스번호가 아랍어로 적혀있어서 구분하기가 힘들다.
뭐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 현지인들에게 물어보면 되지!
인심 좋은 아저씨에게 시내 중심으로 가는 버스를 물어보니 400번을 타면 된다며 친절하게 안내해주신다. 나머지 4명의 외국인도 나를 따라 버스에 주루륵 오른다.
400번 버스(50pt 원화 80원)는 24시간 운행하니(야간에는 편수가 작지만) 쓸데없는 외화 낭비는 하지 말도록 하자.
30분 정도를 달려면 종점에 도착하는데 이곳이 시내 중심이다. 근처에 빨간색 건물인 카이로 박물관이 보인다.
길을 건너 동쪽 Talaat로터리 근처에는 배낭여행객들의 숙소가 있다. 구식 건물 5층에 위치한 Meramees 호텔에 가니 종업원이 반갑게 맞아준다.
이번 여행은 좀 럭셔리하게 다니려고 하는데 역시 여행본능은 가장 저렴한 숙소를 나를 안내한다.(도미토리 25£E)
종업원이 침을 튀기며 여러 투어를 안내하지만 피곤에 쩔은 나로서는 어서 자고 싶은 마음뿐이다.
도미토리에 가니 천장에 팬 선풍기가 돌아가고 서양 여행자들이 잠들어 있다. 특히 여자애 2명은 속옷 차림으로 퍼질러 자고 있다. 참.. 서양 문화에 적응 안 되네..
어서 샤워를 해야 하는데 높은 층이라 물이 나오지 않는다. 별 수 없이 아래층으로 가 종업원에게 요청하니 겸언 쩍은 표정으로 샤워장 물을 틀어준다.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운 시각 새벽 2시.. 한국시각으로는 오전 9시이다.
당분간 시차적응하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며 여행지에서의 첫 잠이 들었다.
7월 29일(일)
새벽 늦게 잤지만 7시에 눈이 떠졌다. 역시 시차적응이 안 된 탓이다.
미니버스(50pt)를 타고 카이로의 메인역인 람세스 기차역으로 간 후 오늘 아스완으로 향하는 기차를 알아보니 표가 동났다고 한다.
기차역에서 남서쪽에 위치한 토루고만(Cairo Gate way)버스 터미널에 가서 오후 5시에 아스완으로 출발하는 버스표(91£E)를 구할 수 있었다.
잠시 호텔에 돌아와 짐 정리를 하고 오전 9시 체크아웃을 하고 호텔을 나섰다. 종업원은 뭐 이리 빨리 가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평소에 카이로하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바로 2차 세계대전 영국식민지로 있을 때의 이미지이다. 당시 사하라 사막을 배경으로 독일군과 영국군이 전차전을 벌이고 있었다. 독일의 명장은 롬멜은 뛰어난 전략으로 영국군을 이집트까지 밀어 부친다.
독일군이 온다는 소식에 당시 카이로는 공황상태에 빠졌고 사람들은 피난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이때 영국특수부대원의 활약이 시작된다. 특수부대원들은 사막 민족인 베드윈의 생활 방식을 그대로 배운 후 적진 깊숙이 침투하여 정보를 얻거나 적을 교란시키는 임무를 훌륭히 수행했다.
특수부대원들이 임무를 마치고 시끌벅적한 카이로에와 맥주한잔을 하며 휴식을 취했다고 한다. 며칠 휴식 후 임무가 떨어지면 홀연히 사라진 영국 특수부대원의 발자취가 카이로에 남아있지 않을까?
빨간색 건물인 카이로 박물관은 고대 이집트 유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이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관이다.
과연 세계적인 명성답게 개장(9시) 전부터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 줄을 서고 있다.
어른 50£E, 학생 25£E.
혹시나 해서 2001년에 만든 국제학생증을 내미니 확인하지도 않고 25£E짜리 학생표를 끊어준다. 앉아서 25£E를 번 셈이네..
입구에서 마주친 40대 한국인들은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한국 학생에게 국제학생증을 빌려 학생표를 끊고 박물관에 들어가신다. 아.. 이게 가능할 수도 있구나..
박물관에 들어서기 전 간호사관학교에 재학 중인 여학생 3명과 이야기를 나눴다. 대학생임에도 자유롭게 여행을 하지 못하는 현실이 답답한가보다.
졸업하고 간호장교로 임관을 해서 6년이 있으면 전역을 할 수 있다며 그때는 꼭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고 싶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한국국제협력단(KOICA) 해외 봉사 활동에 대해 이야기해주니 알려줘서 정말 감사하다며 모두들 메모를 한다. KOICA는 나 역시 언젠가는 꼭 해볼 것이다.
카이로 박물관은 그 어느 곳보다도 카메라에 대한 검사가 엄격하다. 혹시나 박물관 내부를 촬영하겠다고 카메라를 챙겨봤지 소용없으니 카메라는 보관소에 맡기고 편한 마음으로 관람을 하면 된다.
박물관에는 4500년 전인 고왕국시대부터 그리스의 영향을 받은 프톨레마이오스시대까지의 유물이 총 망라 되어 있다.
TV나 교과서에서 보던 석상과 유물, 상형문자가 눈앞으로 쏟아진다. 하나하나가 세계적인 가치를 지닌 유물이지만 너무 많다보니 그러한 것도 희석이 된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인상깊은 유물은 37호실의 ‘라호테프와 네페르트 좌상’과 32호실의 ‘난쟁이 세네브와 가족상’이다. 수 천년 전의 사람들도 각기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는 것이 나에게 확 다가왔다.
석상들을 보며 고대 이집트 사람들의 헤어스타일은 단발머리를 커트를 한 몽실언니 스타일의 머리스타일이라는 생각에 피식 웃었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투탕카멘 유물들이다. 2층 박물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으며 여느 유물을 압도하는 금과 보석들로 가득하다.
특히 투탕카멘 황금마스크는 교과서나 미디어를 통해서 거의 모든 이들이 봤을 정도로 유명한 유물이다. 이것을 직접 보다니..
또한 많은 미이라를 볼 수 있는데 아무리 수천년 전에 만든 미이라라고 해도 붕대가 칭칭 감긴 채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니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3시간정도 박물관을 관람하고 나왔다. 유물하나하나를 더 뜯어보고 싶었지만 너무나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느라 나중에는 어서 빠져나오고픈 생각이 들 정도이다.
박물관 근처의 버스정류장에서 미니버스를 타고 기자 쪽으로 향했다. 그 유명한 스핑크스와 피라미드를 보기 위해서이다.
시내에서 20분 정도를 달리면 기자광장이 나오는데 여기서 내려 1Km 정도 걸어가면 먼발치에서 피라미드가 보인다.
너무나도 유명한 기자의 피라미드는 고왕국 제 4왕조인 쿠푸, 카프레, 멘카우레 세 명의 왕이 건축했으며, 이집트라는 나라를 모르는 이들도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는 알고 있을 정도이다.
언덕을 올라 매표소로 향하니 삐끼들이 낙타와 말을 타고 관람하라고 달려든다. 이곳에서 바가지가 심하다는 것을 익히 들었고, 이미 몽골에서 실컷 탔기 때문에 별로 관심없었다.
매표소에 학생증을 보여주니 25£E 학생표(일반인 50£E)를 끊어준다.
세기의 피라미드 중 가장 큰 쿠푸왕 피라미드가 나를 맞아준다. 원래 높이가 146m(지금은 137m) 밑변의 길이가 230m, 무게는 총 6백만 톤이며 돌들의 무게는 2톤에서 크게는 15톤짜리도 있다고 한다. 또한 각 면이 51°25′로 정확하게 동서남북을 향해있다.
오늘날의 기술로도 대 공사가 될 이런 피라미드를 4500년 전에 건축했다니 놀라울 뿐이다.
피라미드는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아있다. 나일강 상류에서 돌을 깍아 일일이 운반한 과정부터 피라미드를 쌓는 과정을 비롯해 200m가 넘는 네모난 받침돌들을 제단하고 각 층마다 돌들이 완벽하게 수평이 되게 쌓았다. 2톤이 넘는 돌들이 바늘하나 밀어 넣을 수 없을 만큼 잘 맞춰져 있다.
피라미드를 건축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화나 TV 프로그램을 보면 당시 노예들이 힘들게 돌을 운반하고 있으며 바로 옆에는 무시무시한 군인이 채칙을 들며 일을 못하는 노예를 다그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피라미드를 건설한 이들은 놀라운 조직력과 기술을 가진 한 엘리트 집단의 작품이다.
멘델스존의 ‘피라미드 공공 사업설’에 의하면 피라미드를 건설한 이유는 나일강 범람기에 농업에 종사할 수 없는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국가에서 행해진 공공사업이라는 설도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피라미드는 파라오(왕) 한사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든 국민들의 일생일대의 의식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개미 조직에서 본능적으로 자신의 일을 알아서 하는 개미들처럼 피라미드도 자신의 영생을 위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건설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쿠푸왕 피라미드 내부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하루에 300명만 들어갈 수 있다며 이미 정원이 넘어서 안 된다고 한다. 아쉽지만 카이로에 한번 더 오니까 그때를 기약해야겠다.(피라미드 내부 입장료 100£E, 학생 50£E)
다음은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이다. 쿠푸왕 피라미드보다는 약간 작기는 하지만 상단에 화장암이 그대로 남아 있어 아름다운 느낌이 든다.
원래 피라미드는 화장암으로 덮여 있어 미끄러지는 듯한 매끈한 느낌을 주었지만 훼손이 되어 계단식으로 변모했다.
처음에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관람을 했지만 엄청나게 더운 날씨가 날 괴롭힌다.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를 관람한 직후에는 거의 기진맥진 할 정도이다.
세 피라미드 중 가장 작은 멘카우라 왕의 피라미드는 65m이며 다른 두 피라미드에 비해 관람객이 적은 편이다.
더위를 식힐 겸 피라미드를 지키는 경찰들과 잠시 노닥거렸다. 그중 한 경찰은 다음에 카이로에 오면 꼭 연락하라며 내 가이드북 세 군데에다 이름과 연락처를 적어준다.
왕의 피라미드 주변에는 작은 피라미드들이 있는데 바로 여왕의 피라미드라고 한다. 피라미드 규모를 보아 고대 이집트에도 남존여비 사상이 있지 않았나 살짝쿵 생각해본다.
카프레왕 피라미드로 돌아와 언덕을 내려오면 그 유명한 스핑크스가 있다. 어린 시절 들었던 스핑크스의 수수깨끼가 생각이 난다.
내용인 즉...
스핑크스는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항상 질문을 던졌는데 문제를 맞추지 못하면 잔인하게 죽였다고 한다.
공포의 대상이었던 스핑크스가 지나가는 여행자에게 다시 문제를 낸다.
‘아침에는 네발, 점심때는 두발, 저녁에는 세발인 동물은?’
현명한 여행자는 바로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어릴 때는 기어 다녀서 네발, 젊을 때는 두발, 늙으면 지팡이에 의지함으로 세발이라고 한 것이다.
문제를 맞춘 후 스핑크스는 그대로 돌이 되었다고 한다.
스핑크스 앞에 서자 어린 시절 들은 이야기가 기억의 20여년의 망각을 뚫고 다시 살아났다. 인간의 머리를 하고 왕의 가발을 쓴 사자인 스핑크스는 석회암 언덕을 깎아 만들었으며 길이가 57m에 높이가 20m이다. 얼핏 외신에는 스핑크스가 붕괴 위험이 있어 공사를 한다고 뉴스가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복구 작업이 마무리가 되었나보다.
이게 바로 스핑크스구나.. 수많은 전설이 희자 되고 있는 스핑크스는 나에게는 경외감으로 다가왔다. 어린 시절 즐겨했던 전자오락의 보스이가도 한 스핑크스이기에 친근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하다. 어렸을 때 스핑크스 이야기를 들으면 나와는 관계가 없는 먼 세계의 이이기로만 느껴졌는데 지금은 스핑크스와 함께 사진을 찍고 있지 않은가..
스핑크스를 보니 갈증이 밀려왔다. 근처 가게에 가서 물 한 병을 샀다.
이집트 여행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물 값이다. 건조하고 더운 사막기후이기 때문에 항상 갈증이 일어난다. 관광지에서 미네랄워터를 사면 가격이 치솟기 때문에 숙소 근처의 가게에서 미리 사가지고 가는 것이 경제적이다.
미네랄워터 1.5L 정가가 3£E이고, 캔 콜라는 2£E, 1L 콜라는 3£E이다. 탄산음료는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일어나기 때문에 웬만하면 물을 마시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오후 5시 토루고만 터미널에서 아스완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버스 자리가 비좁기는 하지만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와서 다행이다.
버스는 나일강을 따라 남쪽으로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스완까지는 14시간 이상이 걸린다. 밤새 버스에 타야 하는 고행이기는 하지만 많이 경험 해봤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익숙하기는 하다.
오늘 하루 정말로 많은 경험을 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유적과 유물을 직접 봤다는 환희가 몰려왔다.
나의 인생 교과서 역사 파트의 한 페이지에 또 하나의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