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7일(금)
감비아는 낮에는 덥기는 하지만 이곳도 겨울이라 아침에는 다소 쌀쌀하다. 일어나니 이불을 돌돌만 채로 잠이 들었었다.
어제 비자를 취득한 관계로 여유 있는 하루라 반줄 시내를 돌아보기로 했다. 해변의 Bijilo Forest Park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갈까 했지만 시내도 돌아볼 겸 걸어갔다. 시내를 돌아보는데 한산한 편이다. 감비아는 주4일제를 하기 때문에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3일은 휴일이다.
2013년 뉴스를 보면 다음과 같다.
“아프리카 북서부 빈국 감비아에서 2월부터 주 4일제가 실시된다고 BBC방송 인터넷판이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야햐 자메 감비아 대통령은 지난 달 성명을 통해 2월 1일부터 공공부문의 근로자들의 근무일은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이며 노동시간도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 사이로 바뀐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이 발표한 성명은 "새로운 주 4일제 도입으로 인해 감비아 국민들이 사회, 종교, 농업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 할 수 있게 된다"며 "각자의 농지로 돌아가 우리의 식량을 직접 재배해 먹는다면 건강하고 부유한 국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종전에 감비아 정부 부처 직원들을 포함한 공공부문 근로자들은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나와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 해야 했다. 주 4일제를 선택하는 대신 하루 근무시간을 2시간 더 늘렸기 때문에 일주일 노동시간은 40시간으로 예전과 똑같다. BBC방송은 감비아 정부가 인구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는다는 점을 주4일제 도입의 주된 이유로 들고 있다고 전했다. 이슬람교 신자들이 금요일에 기도회를 열기 때문에 종교 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쉬는 날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에서 금요일과 토요일에 일을 하지 않는 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감비아 정부는 주 4일제 도입으로 공공부문 근로자들 뿐 아니라 공립학교들도 금요일에 수업을 하지 않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주 4일제가 시행되면 국민들이 더 나태해지고 경제발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주4일제 근무로 공공부문 근로자들이 금요일에 쉬게 되면 주 5일을 시행하고 있는 서구권 국가들과의 업무가 지장을 받을 것으로 우려 하고 있다.”
부러워 할 수 있는 제도일수도 있지만 여느 선진국들이 실시하지 않는 걸 봐서는 생산적인 면에서는 비효율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비효율은 걸어가고 있는 내가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Bijilo Forest Park까지 생각보다 거리가 멀어 50분을 걷고 나서야 도착했다. 진즉에 택시를 탔으면 되는데..
Bijilo Forest Park는 Kombo 지역에 있으며 반줄에서는 약 11km 떨어진 해변에 있는 작은 열대 자연 보호 구역이다. 이곳은 생태 관광객 및 산책을 하기에 이상적인 장소이기도 하다.
입장료는 론니에는 60달라시로 되어 있지만 표기된 것은 30달라시 그나마도 입장권이 다 떨어졌다며 25달라시를 받고 20달라시짜리 현지 티켓을 준다. 들어가자마자 많은 원숭이들을 볼 수 있는 관광객들은 원숭이들에게 땅콩을 주고 있으며, 원숭이는 땅콩을 먹기 위해 관광객 등이나 어깨에 타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공원은 4.5Km 코스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한적하게 산책하기에 좋다. 마주치는 원숭이들은 사람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원숭이들의 삶을 자연스럽게 관찰 할 수 있다. 특히 어미원숭이가 과일을 먹는데 새끼원숭이가 달라고 해도 어미는 주지 않고 있다가 실컷 먹고 난 후 마지못해 새끼에게 과일을 주었는데, 새끼는 그 과일을 이내 다른 원숭이에게 빼앗기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원숭이도 날라리 엄마가 있구나.. ^^
해변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잠시 해변 쪽으로 가면 광활한 대서양을 배경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열대우림의 모습을 감상 할 수 있다. 반줄을 방문한 탐방객은 꼭 한번 들러 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Bijilo Forest Park는 돌아보고 나니 정오이다. 오전 내내 걸어서 그런지 목이 탄다. 해변 지역이라 낮 시간에 맥주를 싸게 파는 곳이 있는데 맥주 한 병에 25달라시(700원 정도) 하는 곳을 발견했다. 이곳에서 갈증을 풀고 다음 코스인 악어 풀장으로 향했다.
악어 풀장까지는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대기하는 택시 기사가 좋은 가격을 주겠다며 악어 풀장까지 가는데 300달라시를 달라고 한다. 풋.. 이미 이곳 가격을 알고 있는데 100달라시면 충분하겠구먼..
그런데 큰 길목에서 사람들이 쉐어(Shared)택시를 타는 것이 보인다. 쉐어 택시는 서아프리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교통수단으로 현지인들이 버스가 대신 이용하는 노선이 있는 택시를 말한다. 악어 풀장이 있는 Bacau까지는 한번 더 갈아타면 갈 수 있을 듯하다.
지나가는 쉐어 택시를 타니 옆자리에 앉은 할아버지가 유창한 영어로 말을 건다. 한국에서 여행을 왔다고 웃으면서 이야기 응대했다. 할아버지 이름은 멘디이며 자신은 이곳 관광 대학의 교수라고 하시며 마침 학생들을 가르치고 돌아오는 길이라고 말하신다.
이곳 교통편에 대한 많은 정보를 주시면서 비싼 개인택시를 이용하지 말고 구간 구간마다 연결된 쉐어택시는 8달라시면 이용할 수 있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이곳의 국인 선교사를 알고 있다고 하신다.
멘디 할아버지는 쉐어택시에서 내린 Kotu 지점에서 선교사님 댁으로 안내를 해주셨다. 그러면서 악어풀장으로 가는 쉐어택시를 타는 지점도 알려주신다. 집 앞에서 숨을 한번 크게 쉬고 교회에 들어서니 오욱진 선교사님 내외가 반갑게 맞아주신다. 갑작스러운 방문인대도 불구하고 음료와 점심식사까지 대접해 주신다. 감비아에서 먹는 한식의 맛.. 특히 오징어 젓갈이 꿀맛같다.
오욱진 선교사님은 2007년부터 감비아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계시며 자녀 3명을 모두 아프리카에서 낳으셨다. 선교사님에게 감비아에 대해 여쭤보았다.
야야 자메흐 감비아 대통령은 1994년 무혈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인권 탄압 등의 이유로 국제 인권단체의 비판을 받아왔다. 무혈쿠데타 당시 나이는 29세에 계급은 중위. 또래 장교들과 쿠데타를 일으켰다. 젊은 나이에 쿠데타를 성공한 후 이후에는 독재의 길을 걷는다.
대통령이 되고 도로를 건설하고 공항을 건설하는 둥 그나마 전 대통령보다는 나았지만 인권 탄압은 계속되었다. 특히 부인병을 치료하기 위해 마녀사냥을 했다는 일화도 있다.
계속되는 인권탄압 대해 이곳을 식민 지배를 한 영국의 압력을 받았으나, 이에 감비아는 영연방 탈퇴를 선언한다. 영연방은 영국 본국과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나라로 구성된 연방체로, 호주·캐나다·말레이시아·싱가포르·인도·스리랑카·나이지리아·가나·케냐·우간다 등 50여 개 국가로 구성돼 있다.
영연방을 탈퇴한 대신에 이슬람 연맹에 가입을 했지만 지원은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한다. 이에 감비아 경제는 불황을 거듭해서 작년에 1$에 30.8달라시 였던 환율이 1에 40달라시로 치솟았으며, 지금이 관광객이 많은 최성수기임에도 불구하고 관광객이 거의 없는 등의 타격을 받고 있다. 결국 독재자의 잘못된 판단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이 받고 있다.
선교사님 말로는 아프리카 젊은이들이 해변에서 축구를 하는 이유는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축구선수로 성공하기 위해서이고, 또 하나는 늙은 백인 여인과 사귀기 위해서이다. 해변이나 관광지를 가면 나이든 백인 여성과 함께 다니는 현지 젊은이들을 볼 수 있다. 여행을 하면서도 꽤 많은 커플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는 관광 안내원인 줄 알았다.
나이든 백인 여인들은 유럽에서는 그렇게 좋은 직업을 갖지는 못했지만 물가가 산 이곳으로 와 나름 회춘(?)하기 위해서 이고, 젊은 흑인들은 이 여성들과 잘 해서 아프리카를 탈출해 유럽으로 가는 것이 목적이다. 볼꼴사나운 커플들이지만 어쨌든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아프리카 청년들의 축구 역시 현대판 노예로 불리고 있다. 이에 대한 이해는 스포탈코리아의 2013년 2월 28일 기사를 참조하면 다음과 같다.
“정지훈의 아프리카축구 현대판 노예무역, 아프리카 축구선수들
17세기 유럽의 열강들은 담배, 커피, 설탕 등의 생산을 위해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고 부족한 일손을 채우기 위해 아프리카의 서남 해안에서 흑인들을 사냥했다. 당시 에스파냐,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 등이 본격적인 노예 무역에 뛰어들며 많은 아프리카 사람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그러나 아프리카 식민지 시절의 노예 무역이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바로 아프리카의 축구선수들이다.
최근 들어 아프리카 축구선수들의 기량이 높게 평가되면서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최근에는 디디에 드로그바(35, 갈라타사라이), 야야 투레(33, 맨체스터 시티) 등이 유럽 무대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런 활약상은 그저 우연이 아니다. 아프리카에게 축구는 유일한 희망이며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 대가족들의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아프리카의 어린 아이들은 대부분 축구 선수를 꿈꾸고 있고 유럽 무대에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연히 우수한 축구 선수들이 많이 배출되고 있고 최근에는 축구에 있어서 최강이라고 자부하는 브라질까지 아프리카 선수들이 진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아프리카 선수들의 꿈과 희망을 그저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아프리카 선수들을 마치 현대판 노예로 취급하는 유럽 클럽 에이전트들의 이야기다. 최근 유럽 클럽들의 에이전트들은 아프리카에서 돈이 급한 축구 유망주들을 헐값에 계약해서 비싼 값에 유럽 클럽들에게 팔고 있다.
축구를 통해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아프리카 선수들과 이윤을 남겨야 하는 에이전트들의 목적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아프리카 선수들에게는 생전 처음 보는 거액이겠지만 알고 보면 노예계약과 다름이 없다.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 선수들은 실력에 비해 터무니없는 연봉과 장기계약을 맺으며 유럽 하위권 팀들을 전전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아프리카 스타플레이어들이 20대 초반 빛을 보지 못하고 30대에 가까워져 빅클럽에 진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대 초반을 노예계약과 같은 환경 속에서 지내다가 전성기의 기량이 찾아오면 더 큰 클럽으로 가는 것이다. 유럽 선수들이 어린 나이부터 정당한 대우와 함께 스타플레이어로 발전하는 것과는 반대되는 이야기다.
그러나 자원도 없고 실업률도 높은 아프리카에서는 적은 돈이라도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노예계약의 악순환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미 국제 경기에 두각을 드러낸 아프리카 선수들은 몸값이 비싸기 때문에 에이전트들은 아프리카 이곳 저곳을 다니며 13세와 16세 사이의 어린 선수들을 싼 값에 산다.
더 큰 문제는 이 어린 아프리카 선수들의 상품성이 떨어지면 언제든 유럽에 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고 비용도 없는 선수들은 노숙자 신세가 되는 것도 다반사다.
물론 이런 환경에서도 유럽 무대에서 성공한 파피스 시세(28, 뉴캐슬) 등의 사례도 있다. 그러나 이 확률은 희박하다. 아프리카 선수들을 돈벌이로 보는 에이전트들의 만행이 사라지지 않는 다면 아프리카 축구의 발전도 없다.“
이처럼 아프리카 젊은이들은 스스로의 나라에 대해 희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유럽으로 가기를 열망하고 있다. 아프리카의 여러 지역을 여행했지만 서아프리카가 가장 심하며 대부분의 서아프리카 국가에서 발견 할 수 있다. 그만큼 서아프리카는 독재가 심하며 내전, 말라리아, 에이즈, 기아 등 모든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교사님의 목표는 감비아 교회를 한국에서 지원받지 않고 자립시켜 현지화 하는 것이 목표라고 하신다. 한글 교육이 목표이신 선교사님에게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세종학당 사업에 대해 말씀드렸다. 그리고 아까 교회까지 안내해주신 멘디 교수님에 대해서도 말씀드리니 연락해 보겠다고 하신다.
선교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니 어느덧 저녁이 되었다. 댁에 더 있으면 저녁 식사까지 주실 것 같기에 민폐를 끼치기 싫어 부랴부랴 작별 인사를 하고나왔다. 원래 목적으로 했던 악어풀은 못 봤지만 그보다 값진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고보니 쉐어택시를 탄 것과 교수님을 만나 이렇게 선교사민을 뵌 것이 기막힌 우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행의 묘미 아닐까?
숙소인 WestField까지 가는 길에도 쉐어택시로 간단하게 갈 수 있었다. 쉐어 택시를 이용하니 편한 시스템임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가격도 착하다.
저녁이 되니 반줄에 전기가 들어왔다 나갔다 한다. 한나라의 수도임에도 전력상황이 원활하지 않다. 사람들은 익숙한 듯 정전임에도 제 할 일을 다 하는 모습이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대형 정전 사태 때 블랙아웃이 일어나면 재앙이라고 했는데, 이곳 사람들은 익숙하다. 그만큼 우리가 전기에 의존하는 삶을 살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