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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제 저녁부터 비가 내려 새벽까지 이어졌다. 아침에 일어나 날씨를 확인하니 싱그러운 햇살이 나를 맞아준다. 숙소 지하에 식당이 있어 식사를 간단하게 하고 곧장 바트이슐(Bad Ischl)로 향했다. 바트이슐은 짤츠부르크의 근교로 주변에는 호수와 시내가 어우러져 있다. 일요일 오전이라 시내는 한산한 모습이다. 주차장(1시간 1유로)에 차를 대고 시내를 둘러보았다.

 

 바트란 온천이라는 뜻으로 황제 프린츠 요제프의 어머니가 불임으로 고생하다 이곳에서 온천욕으로 치료를 받고 황제를 낳은 것이 계기가 되어 유명해진 곳이다. 1853819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프란츠 요제프 1세가 바바리아의 엘리자베스 왕비와 이곳에서 약혼했으며 약혼 장소는 1989년 슈타트 바트디슐 박물관(Museum der Stadt Bad Ischl)이 되었다.

 

 결혼식이 열렸던 카이저빌라(Kaiservilla)는 왕가의 여름 거주지가 되었는데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지구상의 천국이라고 했을 정도로 경관이 아름답다. 1914728일 이곳에서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포고가 발표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트라운(Traun)강을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되어 있으며 도시를 관람하는데 아침시간이라 박물관이 문을 열지 않은 상태라 돌아보는데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시내 남쪽을 바라보니 산 위에 전망대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저기에서 도시를 내려다보면 아름답겠지?’ 전망대에 오르기 위해 농가에 주차를 해 놓고 약간의 등산을 했다.

전망대에 올라서자 바트이슐이 한눈에 보인다. 아름다운 풍경을 사진에 담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하산했다.

 

 주변은 아름다운 초원에 농가들이 드문드문 자리 잡고 있다. 거의 다 내려올 때쯤 농가에서 개한마리가 달려온다. 반겨주는 것이 아니라 침입자에 대한 경계? 큰 개가 달려오니까 순간 당황했지만 개와 눈을 마주치며 달래주니 물지는 않는다.

 

 바트 이슐에서 한시간을 달려 할슈타트로 이동했다.

 

 할슈타트는 마을의 역사가 BC 1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소금광산으로 번영한 마을이다. 할슈타트는 마을 뒤편으로 펼쳐진 알프스산, 맑고 깨끗한 호수와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건물 때문에 동화 속 마을을 연상시킨다. 얼핏 봐도 오래된 듯한 광장의 분수와 좁은 골목을 메운 목조 건물은 고풍스럽기도 하고 운치도 있다. 옛 모습을 잘 간직한 덕분에 1997년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할슈타트가 유명해진 이유에는 예쁜 마을 모습과 더불어 세계 최초 소금광산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도 있다. 할슈타트의 ’hal’은 고대 켈트어로 소금을 뜻하는데 예로부터 이곳에 소금광산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도 할슈타트에서는 소금광산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할슈타트로 들어서는 길에 긴 터널을 지나야 하는데 중간에 차를 세울 수 있는 주차장이 있다. 이곳에서 마을을 내려다 볼 수 있어 차를 잠깐 세우고 사진에 담았다.

 

 할슈타트는 세계적인 관광지이지만 규모가 작아 차량을 몰고 마을을 들어가려면 어마어마한 주차비를 물어야 한다. 마을 외곽에 주차장이 3군데 있는데 요금은 1시간에 3유로, 2시간에 5유로이다. 자연스럽게 1시간 안에 할슈타트 돌아보는 미션이 생겼다.

 

 주차장에서 100m 정도 걸어가니 소금광산으로 향하는 케이블카가 보인다. 할슈타트의 소금광산의 모습은 예전 그대로 남아 있으며 케이블카를 타고 다흐슈타인 산에 오르면 광산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소금광산 입구에 가니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는데 요금이 꽤 세다. 아쉽지만 Pass~(여행말미에 폴란드 크라쿠프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을 보게 된다.)

 

 마을은 아담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다. 마을 한가운데 중앙 광장이 있고 광장을 둘러싸고 꽃으로 창을 단장한 세모 지붕 집들과 레스토랑들이 늘어서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마을을 둘러보고 있는데 중국인들이 눈에 많이 띈다. 유럽여행의 흐름이 일본-한국에서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마을에서는 소금광부들의 삶과 함께한 중세 교회를 비롯해 알록달록한 집들이 자연과 어우러져 있다.

 

 50분 만에 마을을 둘러보고 할슈타트를 떠나 남쪽으로 향했다. 운전을 하면서 바라보는 차창 밖 풍경은 오스트리아의 알프스 산맥이 쭉 이어져 있고 집들이 아기자기하게 모여 있는 모습이다. 고속도로에 들어서 슬로베니아로 향하는데 진입을 잘못해 10Km 정도 돌아갔다.

 

 남쪽으로 향하니 웅장한 산맥이 우뚝 서있고 밑으로는 긴 터널이 이어진다. 이게 그 유명한 알프스 터널이구나.6Km, 7km 이어진 터널을 지나니 요금소가 나온다. 승용차는 11유로~

 

 오스트리아는 이야기가 다르지만 스위스는 알프스 터널 덕분에 제 2차 세계대전의 전화를 피할 수 있었다. 히틀러는 처음에는 유럽을 정복할 때 스위스도 그 대상에 포함을 했지만 스위스는 독일이 침공할 경우 알프스 터널을 모두 폭파하겠다는 반응에 독일은 침공을 포기한다. 알프스 터널은 남유럽과 북유럽을 이어주는 중요한 통로이기에 히틀러도 침공 할 수 없었다.

 

 터널을 지나 남쪽으로 달리고 있는데 반대편 차선에 교통사고 현장이 보인다. 트럭이 넘어져 고속도로 전체를 막았는데 헬기까지 동원된 큰 사고이다. 그 뒤로는 고속도로 전면통제가 된 상태로 차량이 밀려있다. 하루사이에 교통사고 현장을 두 번이나 보네..

 

 오후 3시경 오스트리아에서 슬로베니아로 넘어갔다. 별다른 국경 통과 과정은 전혀 없이 옆 도시 가듯이 국경을 지나쳤다.

 

 슬로베니아는 알프스 동쪽 자락에 자리한 국가로 작년 발칸반도 여행 때 유일하게 방문하지 않은 구유고연방 국가이기도 한다.

 

 슬로베니아의 역사는 6세기에 남하한 남슬라브족 중에서 일부가 사바강 유역을 중심으로 627년 슬로베니아 왕국을 건설하였다. 이들을 슬로베니아인이라고 부른다. 8세기에는 바이에른과 프랑켄에 속했으나 그후 카롤링거왕조의 프랑크왕국 치하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서유럽문화권에 편입되었다. 슬로베니아는 10세기에 신성로마제국, 14세기에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받았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하에 있던 슬로베니아는 영국과 러시아의 연합국에 가담한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와 전쟁을 치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전쟁에서 패배하자 오스트리아제국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호기임을 알아차리고 남슬라브족임을 내세워 오스트리아로부터의 민족해방운동에 가담하였다. 같은 남슬라브족인 세르비아-크로아티아와 함께 종교적 다민족국가인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을 세웠다. 191812월 베오그라드에서 왕국의 성립이 정식으로 선포되었다. 이른바 베오그라드왕국의 영토에는 과거 오스트리아로부터 독립해 있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를 비롯하여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크로아티아, 보이보디나, 달마티아, 마케도니아와 함께 슬로베니아도 편입되었다. 1929년에는 유고슬라비아로 불렸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에 점령되었으나, 대전 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의 성립과 함께 그의 일원이 되었다.

 

 슬로베니아는 원래 1945년 요시프 티토가 사회주의 이념하에 만든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에 속해 있던 국가였으나, 1980년 티토가 사망하고 80년대 말 사회주의의 종말로 유고연방이 해체되기 시작하자, 1991년 크로아티아와 함께 각각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에 유고연방의 맹주 역할을 했던 세르비아의 공격이 시작되고 이때부터 유고를 구성하던 6개 연방국가 사이에 치열한 내전이 전개됐다. 35개월간 지속된 이 내전은 결국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를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무력 개입과 미국의 중재안인 데이튼 협정이 1993년 맺어지면서 일단은 종료됐다.

 

 슬로베니아는 다른 연방 소속 국가들과는 달리 내전의 피해가 거의 없었던 관계로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룩했다. 20045EU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했으며, 20071월에는 신규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처음으로 유로화를 도입했다.

 

 면적은 한반도의 11분의 1. 대략 1000. 딱 전라도 넓이이며 인구는 200만의 소국이다. 하지만 동유럽의 스위스’, ‘알프스의 양지바른 곳’, ‘전원의 나라등 슬로베니아의 별명을 보면 이곳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다.

 

 오스트리아보다 도로 폭이 좁아지기는 했으나 운전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 오후 4시쯤 블레드 호수에 도착했다.

 

 블레드 호수는 슬로베니아를 대표하는 관광지 가운데 한 곳이다. 빙하 활동으로 인해 형성된 호수인 블레드 호로 유명하며 블레드 호 주위에는 바위로 만든 블레드 성이 있다. 독일의 크림 케이크(Cremeschnitte)에서 유래된 슬로베니아의 크림 케이크인 크렘나 레지나(kremna rezina)로 유명하다. 온난한 기후 때문에 유럽의 수많은 귀족들이 방문했으며 오늘날에는 스포츠 활동(골프, 낚시, 승마)을 즐기려는 관광객들과 인근에 있는 산을 오르려는 등산객들이 몰린다.

 

 블레드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호수를 돌아보는데 비가 오기 시작한다. 블레드 호수 둘레는 7km이며 호수와 함께 절벽 위에 자리잡고 있는 블레드 성이 보인다.

 

 이곳은 발칸반도에서도 손꼽히는 아름다운 곳으로 블레드 중심에는 '빌라 블레드 (Vila Bled)'는 구 유고연방의 티토 대통령 시절 세계 각국의 국빈을 영접하였던 곳이다.

하루 종일 식사를 하지 않아 와이파이가 되는 식당을 찾아 피자를 시키고 휴대폰으로 오늘 묵을 숙소를 검색했다. 어제 숙소에서는 인터넷을 연결 할 수 없어 카페에서 점심 식사를 하면서 숙소 예약을 하려고 했지만 막상 시켜놓고 보니 와이파이가 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식사만 했다.

 

 작은섬은 슬로베니아에서 유일한 섬이며 블래드 호수는 환경보존을 위해 무동력 배 만이 다닐 수 있어 섬을 왕복하는 플레타나가 운행을 한다. 플레타나가 23척이 있는데 18세기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시대 때와 같은 숫자가 유지가 되고 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블레드 호수가 시끄러워지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에 딱 23척의 배만 노를 저을 수 있도록 허가했고 200년 넘은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뱃사공 일은 가업으로만 전해지고 남자만이 할 수 있다고 한다. 요금은 왕복 12유로이다.

 

 플레타나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는 풍경은 무척 평화롭고 고요하다. 주변의 모습이 한폭의 풍경화를 쭉 나열 해 놓은 모습이다. 연신 셔터를 눌렀다.

 

 섬에는 성모 마리아 승천 성당이 있는데 울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전해지는 종을 울리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몰린다. 블레드 섬에는 선사 시대에 사람이 살던 흔적이 남아 있으며 교회가 세워지기 이전에는 슬라브 신화에 등장하는 사랑과 풍요의 여신인 지바(Živa)의 성지로 여겨졌다.

 

 교회로 가려면 99개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하는데 전통적으로 결혼을 앞둔 신랑이 신부를 안고 올라가는 전통이 있는데, 꽤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바로크식 교회 성모마리아 승천 성당이 있다. 1000년이 넘은 오래 된 교회이다. 성당에는 행복의 종이 있는데 종을 울리면 소원을 이뤄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종을 치는 요금은 6유로이다.

 

 돌아오는 배에서 장대비가 쏟아진다. 결국 뱃사공도 비를 견디지 못하고 배에 설치된 천막 안으로 들어와 조곤조곤 노를 젓는다.

 

 뛰어오긴 했지만 옷이 많이 젖은 상태에서 차에 들어왔다. 시트 열선을 켜니 열과 함께 젖은 옷이 마른다. 웬지 모를 안락함이 느껴졌다.

 

 호수를 떠나 슬로베니아의 수도인 류블라냐로 향했다. 고속도로로 가면 빨리 갈 수도 있으나 비넷 비용을 아끼려고 국도로 다녔다. 국도는 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풍경 감상을 여유롭게 할 수 있고, 사람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류블라냐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6시반경. 정해진 숙소가 없어서 저렴한 호텔을 잡으려고 했지만 시내에는 고급 호텔만 있을 뿐 숙소를 찾는 것이 여의치 않았다. 다행히 류블라나 성에서 뒤편에 괜찮은 유스호스텔을 발견했다. 주차를 하고 체크인을 하니 도미토리가 하루에 22유로이다. 위치가 괜찮은 편이고 와이파이도 가능하고 주차도 가능한 최상의 숙소이다. 위치도 시내 중심이고 성수기임에도 숙소에는 여행자가 생각보다 적다. 류블라냐는 수도이지만 작은 도시이기 때문에 숙박보다는 잠깐 들러 가는 도시일 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숙소부근의 마켓에 가보니 과일과 맥주가 저렴하다. 한껏 푸짐히 사서 숙소에서 한국 라면과 함께 조리해먹었다. 자동차 여행의 최대 장점은 한국요리이다. 유럽 자체가 물가가 비싼 편이라 한국에서 준비해 온 즉석식품, 라면, 반찬 등이 여행경비를 줄여주고 있다. 하루에 한끼는 준비해 온 한국음식, 한끼는 현지 식사 식으로 조리해 먹는 식으로 여행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