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6일(토)
즐거울 줄 알았던 기차 여행이 추위로 인해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인도는 막연히 따뜻할 것이라는 환상에 침낭은 물론 점퍼를 전혀 준비하지 않아서 항공 담요로 겨우 몸을 녹이면서 아침이 되기를 기다렸다. 두꺼운 담요를 덮고 자는 현지인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전 세계적인 한파는 인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추위가 엄습하여 많은 사람들이 담요와 두꺼운 옷을 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럴 때 일수록 고통 받는 사람은 빈민일 것이다. 전 세계 빈민의 3분의 1이 모여 있는 인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추위로 고통을 받을까 걱정이 된다.
아침에 차창 밖을 보니 안개가 자욱이 껴 있다. 원래 오전 6시에 도착예정이었는데 짙은 안개 때문에 4시간 늦어진다고 한다.
오전 10시 30분 아그라 역에 도착했다. 아그라에서는 볼 것은 두 가지로 정했다. 첫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타지마할이고 다음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된 아그라성(Agra Fort)이다. 짙은 안개는 정오가 지나야 옅어 질 것 같음으로 아그라성부터 보고 타지마할로 가기로 결정했다.
역에서는 짐을 맡기고 아그라 포트로 향했다. 릭샤는 아그라 포트가 9Km 떨어져 있다면서 50Rp를 달라고 한다. 론니 지도상에는 3Km가 조금 넘는 것 같은데.. 릭샤 운전자에게 3Km 밖에 안 떨어져 있다니까 어디 한번 타보라고 한다.
릭샤 운전자는 아그라성이 방향으로 달리더니 골목길로 빠진다. 지름길이겠거니 생각했는데 금새 크게 원을 그리며 돌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너 왜 돌면서 가는 거야?”
“무슨 말이야. 난 지금 바른길로 가고 있어.”
“Station로드에서 Namner로드로 진입하면 금방인데 넌 다른 길로 가잖아.”
당황한 릭샤는 주절주절 변명을 늘어놓지만 이미 믿음을 잃었다.
아그라성 앞에서 릭샤는 본색을 드러낸다.
“오늘 300Rp를 주면 타지마할, 아그라성은 물론 주변 유적까지 시간 걱정없이 다 둘러 볼 수 있게 할게.”
그럴 생각은 전혀 없음으로 50Rp 지폐를 건네주면서 거슬러 달라고 하니 잔돈이 없다고 한다.
아침 먹을 요량으로 근처 식당에서 주문을 한 다음 돈을 바꿔서 릭샤 운전자에게 20Rp를 건냈다. 운전자는 끝까지 자신의 릭샤를 믿으라고 달라붙지만 이 사람 오늘 상대를 잘 못 만났다.
아그라성 앞에 간이식당이 있는데 짜파티와 카레, 짜이를 시켜서 아침 식사를 한 후 음료수 하나를 집으며 총 얼마가 나왔는지 물어보았다.
“음료수까지 하면 200Rp내면 되겠네.”
“뭐? 아까 짜파티 하나에 5Rp라면서?”
“응 짜파티 4개니까 20Rp이고 짜이 한잔에 50Rp(원래 5Rp면 충분), 카레소스 70Rp(원래 10Rp), 음료수는 40Rp(원래 15Rp)이니까 총 200Rp”
이건 억지를 넘어서 사람을 열 받게 한다. 아그라의 첫 인상이 릭샤와 식당 주인으로 인해서 나빠졌다.
이럴 때면 가격을 깎으려고 싸울 필요가 없다. 이미 음료수는 살 마음이 없었고, 대략 계산해서 40Rp를 식탁에 놓고 나오니 잡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가격을 제시할 때면 피곤하게 싸우지 말고 적당한 돈을 놓고 나오면 된다.
아그라는 고대 힌두 왕국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으며 1501년 술탄 씨칸데르 로디가 수도를 세웠으나 1526년에 무굴제국의 손으로 넘어갔다. 아그라는 아크바르(Akbar), 자항기르(Jehanggir), 샤자한(Shah Jahan)이 통치하던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중반까지 전성기를 누렸으며 이 시기에 아그라요새, 타지마할이 세워졌다.
1638년 샤자한이 델리에 도시를 세웠고 그의 아들 아우랑제브가 10년 후 델리로 수도를 옮겼다.
1803년 영국에게 넘어갔으며 1857년 제 1차 독립전쟁 이후 영국은 이 지방의 행정을 알라하바드로 옮기면서 행정적 역할이 사라졌다. 그 후 중공업의 중심지로 화학 산업과 대기오염으로 유명했다가 타지마할이 세계적인 명소가 됨으로서 관광산업이 활성화 되었다.
아그라성(Agra Fort)은 1565년 아크바르 황제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했으며 그의 손자 샤 자한이 증축했다.
타지마할을 건설한 샤자한은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되는데 1658년 아들 아우랑제브에게 왕위를 찬탄당한 후 8년 동안 이 성에 가둬 졌다가 숨을 거뒀다.
성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는 아마르 싱 게이트(Amar Sighr Gate)이고 이곳에서 입장권(300Rp)을 구입했다. 타지마할 입장권이 있으면 50Rp가 할인이 되지만 아그라성을 먼저 왔기 때문에 할인 받지 못한 채 들어 갔다.
장엄한 성문을 지나니 넓은 정원이 나오고 다완 이암(Diwan-i-am)이 보인다. 이곳은 황제가 청원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공개 접견실이다. 홀에는 존 콜빈(John Colvon) 무덤이 있는데 제 1차 독립전쟁 당시 이 요새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난 인물인데 무덤의 위치가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
다완 이암을 돌아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정원이 나온다. 정원 북쪽의 시시마할(Shish Mahal 거울 궁전)은 문이 닫혀 있고, 남쪽의 앙구리 바그(Auguri Bagh)에는 미로 같은 방과 통로가 펼쳐진다.
자항기르 궁전(Jehangir)은 아크바르가 아들 자항기르를 위해 지어졌다고 하며 전형적인 무굴 문화의 흔적이 엿 보인다. 궁전 앞에는 거대한 돌을 깎아 만든 하우즈 이 자항기르(Hauz-i-jehangir)가 있는데 목욕할 때 사용하던 것이다.
많은 관광객이 있지만 성의 규모가 커서 그런지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이다. 원숭이와 다람쥐가 곳곳에서 보이는데 사람이 다가가도 무서워하지 않고 제 먹을 것을 챙기는 모습이다.
발길을 다시 북쪽으로 돌려 디완 이 카스(Diwan-i-Khas)에 갔다. 중요한 고관이나 외국 대표단을 만났던 비공개 접견실이다. 그 시대에는 감히 이곳에 들어올 엄두를 내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떳떳하게(?) 둘러보고 있다.
옆으로는 무삼만 부르지(Musamman Burj)와 카스 마할(Khas Mahal)이 있다. 흰 대리석으로 된 팔각형 탑과 궁전으로 샤자한이 8년 동안 갇혀 지내다 1666년 생을 마감한 곳이다. 아들에게 쫓겨나서 감시를 받으며 갇힌 기분은 어떨까? 이곳에서는 타지마할이 보이는데(지금은 안개 껴서 안 보임) 그곳을 바라보며 사랑하는 아내에게 가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싶다.
샤자한이 죽고 나서는 아무런 의식도 없이 시신을 배에 실어 타지마할로 보냈다고 한다. 나기나 마스지드(Mina Masjid)는 샤자한의 개인 사원이었다. 이곳을 들어가려면 신발을 벗어야 한다. 아담한 규모의 사원으로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되어 있다. 사원에서 아래쪽으로 내려다보면 관광객은 입장이 금지된 공간이 보이는데 바로 앞에는 궁정 여인들이 물건을 샀던 여인들 바자르(Ladies's Bazaar)가 보인다.
아그라성의 관광객 중에는 유독 DSLR카메라로 사진 찍는데 열중인 관광객들이 많이 보인다. 아그라성은 다양한 건물 색채와 형태로 사진작가들에게도 좋은 영감을 선사한다.
성 관람이 끝날 때쯤 안개도 거의 걷혔다. 성을 나와 타지마할로 이동하려는데 한 서양인 여성이 나를 붙잡더니 갑자기 필요하다면서 다짜고짜 50Rp를 빌려달라고 한다. 이건 뭐야? 50Rp짜리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조용히 타이르니 다른 관광객에게 돈을 빌리려고 시도한다.
아그라성 앞에서 자전거 릭샤를 타고(20Rp) 타지마할로 이동하는데 릭샤에 타는 그 순간에도 서로 자신의 릭샤를 타라고 아우성이다.
릭샤를 타고 이동하는데 운전자 할아버지가 낑낑대는 모습이 안쓰럽다. 다른 자전거 릭샤가 따라붙으며 야유를 보내는데 결국 둘 다 자전거 릭샤를 세우더니 머리를 붙잡고 싸운다. 졸지에 거리에서 싸움을 말려야 하는 나.. 인도에서는 주먹을 쓰지 않고 서로 머리만 잡아당기면서 싸운다는 것을 배우며 싸움을 말렸다. 싸우는 와중에서도 자신의 릭샤에 타라며 손짓 하는 사람들.. 오늘 참 별의 별 사람들을 다 본다.
어거나 인도의 하이라이트인 타지마할(Taj Mahal)에 도착했다. 타지마할에는 남쪽, 동쪽, 서쪽 세 방향으로 들어 갈 서 있다. 내가 도착한 동쪽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외국인 요금 750Rp(18,750원 정도)로 인도에서는 가장 비싼 입장료이다. 입장권을 사고 들어서기 전 물(15Rp)을 사려고 가판대에 가니 100Rp짜리 지폐를 거슬러 줄 잔돈이 없다고 한다. 인도에서는 어디서나 잔돈 부족이다.
그냥 타지마할에 들어가려고 줄을 서려는데 입장권이 보이지 않는다. 당황한 상태에서 입장권을 찾고 있는데 아까 가판대의 주인이 떨어트렸다면서 표를 돌려준다. 정말 고마운 사람이다. 고마운 마음에 콜라 한 캔(25Rp)을 사니 그건 잔돈을 거슬러 준다.
타지마할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엄격한 검문을 받아야 하는데 때문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줄을 선 와중에서도 돈을 주면 빨리 들어가게 해주겠다며 삐끼들이 붙는다.
사진기는 허락되지만 담배, 라이터, 전자기기는 가져 갈 수 없으며 만약 소지를 했다면 물품 보관소에 맡겨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긴 줄을 한번 더 서야 하는 불상사가 생긴다. 나 역시 주머니에 휴대전화가 있어서 불안하기는 했지만 다행히 한 번에 통과했다.
타지마할은 워낙 유명하고 대중매체를 통해 자주 접했던 곳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 불렸으며 시인 타고르는 타지마할을 ‘영원의 뺨에 흘러내린 한방울의 눈물’이라고 표현했으며 루댜드 키플링은 ‘모든 순수함의 결정체’라고 표현했다.
타지마할은 샤자한이 1631년 열네번째 아이를 낳다 세상을 떠난 두 번째 아내 뭄따즈 마할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 뭄따즈 마할의 죽음으로 크게 상심한 황제는 하룻밤 사이에 머리가 반백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아내를 사랑했다. 그러한 가슴 아픈 사랑이 세기의 건축물을 낳았다고 하면 너무 잔인한가? 어쨌든 덕분에 후손들은 주 관광수입으로 잘 벌고 있지 않은가..
1653년 완공되었으나 묘가 완성되고 얼마 안 되어 샤자한은 아들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아그라 요새에 갇힌 후 1666년 세상을 떠나고서 뭄따즈 마할 옆에 묻혔다.
타지마할을 짓는데 2만명의 인도인과 중앙아시아인이 동원되었으며 유럽에서 전문가를 데려 올 정도였다.
1983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나 2002년 도시 오염으로 건물이 변색되는 것이 문제가 되어 대대적인 보수작업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인도의 보물을 위해 수백미터 내에서는 오염을 일으키는 교통수단은 진입하지 못하게 조치했다.
붉은 사암으로 된 30m 관문을 지나니 장엄한 타지마할이 보인다.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할까? 내가 타지마할 앞에 서 있다는 자체가 믿기지 않는다. 마치 유명 연예인 옆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관문에서 타지마할까지는 수로로 이어져 있고 분수 정원의 정취를 높여준다. 수 많은 관광객들이 아름다운 타지마할에 경탄을 하며 사진을 찍는 모습이다.
백옥의 대리석에 사방 어디에서 봐도 똑같은 완벽한 대칭. 장식을 목적으로 지은 40m 하얀 첨탑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아무냐 강을 등지고 하늘을 배경으로 선 타지마할은 세상 그 어디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 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운 나머지 샤자한은 타지마할을 건설했던 인부들의 손목을 잘랐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다.
타지마할이 있는 테라스에는 신발을 벗고 올라가야 하는데 관리해 주는 공간이 따로 있다.(2Rp) 테라스에 올라서 본 타지마할의 모습은 장엄한 모습이다.
건물을 한 바퀴 돌고 중앙 돔 아래의 뭄타즈 마할의 세노타프(Cenotaph of Mumtaz Mahal)로 들어갔다. 가운데는 샤자한과 뭄 타즈 마할의 묘가 아름다운 대리석 병풍에 둘러싸여 있다. 실제 묘는 본당 아래 지하에 있으며 샤자한의 묘는 아들은 아우랑제브가 1666년 아무런 의식도 없이 이곳에 매장했다고 한다.
타지마할에서 2시간 정도 머물면서 이 아름다운 건축물을 나의 뇌리에 박아 넣으려고 쳐다보고 떠 쳐다보았다. 아마 이 같은 건축물은 또 다시 보기 힘들겠지? 타지마할과의 작별은 다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여인과 작별하는 기분이 들었다.
타지마할을 나와 자전거 릭샤(20Rp)를 타고 아그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샤다르 바자르에 갔다. 오늘 오전 추위에 무방비 상태에서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톡톡히 당했기 때문에 침낭이나 담요를 사기 위해서이다. 릭샤가 내려준 곳은 샤다르 바자르 주변의 고급 레스토랑이다. 에구.. 커미션 받기 위해서 여기다 내려다주는 구나.. 릭샤 운전사는 번지수를 잘 못 찾았다.
사람들에게 물어 시장 쪽으로 가니 수 많은 가게와 사람들이 보인다. 시장은 한 나라의 서민 문화를 대변하는 곳이다. 시장 곳곳에서 흥정하는 사람들과 차도 한 가운데를 유유히 지나가는 소, 여기저기서 시끄럽게 울리는 인도 노래 소리.. 어디가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
이곳에서 침낭은 너무 비싸고(1050Rp) 담요를 알아봤는데 아무래도 한국으로 가져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이곳만의 문양이 적힌 담요를 골라 처음 300Rp부르는 것을 280Rp로 깎아 구입했다. 슬리퍼 가게에서는 120Rp부르는 것을 70Rp에 샀다. 이제 어느 정도 여행준비는 끝.
시장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군것질거리이다. 바나나 한다발(20Rp)을 사 입에 물고 길거리 음식 중에 고추 튀김과 계란 치츠 튀김이 있는데 20Rp어치를 샀다. 고추 튀김은 매운 편이지만 꽤 먹을 만 했다.
샤다르 바자르에서 중앙역인 아그라 켄톤먼트역으로 릭샤(30Rp) 타고 와 짐을 찾은 후 대기실에서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인 여대생 한명이 어디로 가는지 묻기에 카주라호 근처인 사트나(Satna)로 간다고 대답하니 자신은 잔시(Jhansi)까지 간다고 대답하며 내가 가지고 있는 론니에 잔시에 오후 9시쯤 도착하면 카주라호로 가는 버스편이 있는지 물어본다.
론니에 찾아보니 잔시에서 카주라호로 가는 교통편은 낮에 마감이 된다. 사트나에 아침에 기차가 도착하자마자 버스를 타고 카주라호로 가는 것이 더 좋지 않는지 권하니 기차표를 나와 같은 것으로 바꾸겠다고 한다.
여학생이 표를 바꾸러 갈 동안 대합실에서 론니를 보며 앞으로의 여정을 정하고 있는데 청년 한명이 꼬마 아이를 내 옆에 앉혀 놓고 나에게 같이 사진을 찍기를 부탁한다.(거의 명령 수준) 웃으면서 사진을 같이 찍어주니 고맙다고 이야기 한다,
여학생이 돌아와서 알려준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은 내가 타기로 한 기차가 안개 때문에 7시간이 연착된다는 것이다.
이런.. 안개 때문에 왜 기차가 연착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래도 다음 방안을 생각해야지.. 여학생과 같은 잔시로 가서 하룻밤 잔 후 다음날 아침에 카주라호로 가는 것이 좋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역 창구에 가서 여학생과 같은 열차로 바꿔달라고 하니 그 열차도 7시간 연착이라 새벽 2시에 도착한다고 한다. 이번에는 내가 여학생에게 비슷한 소식을 배달해 주었다.
그래도 방법은 있었다. 북인도 모든 기차가 안개 때문에 늦어지는 상태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취소를 했을 것이다. 일단 2등석 티켓(Open Ticket)을 산 다음 잔시행 기차를 무작정 타서 기차 안에서 침대칸표로 바꾸는 방법이 있다. 잔씨 오픈 티켓(67Rp)을 끊은 후 바로 들어오는 잔씨행 기차를 탔다.
예상은 적중했다. 열차가 늦어져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지 못하고 취소를 했는지 객실은 한산한 분위기이다.
기차가 출발하고 나서 승무원이 객실내의 자리를 체크하는데 이때 열차표의 차액을 지불하면 영수증을 끊어준다.
델리에서부터 여행을 했다는 여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오후 10시 30분 잔시에 도착했다. 역에서 릭샤에게 론니에 나와 있는 유일한 호텔인 Samrat 호텔로 20Rp를 주고 갔다.
호텔에 도착해서 방을 흥정하는데 시설이 형편없고 가격도 꽤 높게 부른다. 이상하다? 론니에 나와 있는 가격과 완전히 다르잖아. 우리 뒤에 서 있는 릭샤 주인 때문인가?
난 우리 의지로 왔다고 설명하고 왜 론니와 가격이 다른지 물어보니 종업원은 가이드북이 오래 된 책이기 때문이라 대답한다.
훗.. 장난해..?
종업원에게 인도 론니 한글판이 방행된 2009년 12월을 보여주니 할 말이 없다며 고개를 젓는다.
“그럼 이곳 레스토랑은 어디야” 물으니
“무슨 말이야? 여긴 레스토랑이 없어!”
다시 확인하니 릭샤 운전자는 지 커미션을 챙기려고 아주 엉뚱한 곳으로 날 데려다 주었다.
릭샤 주인에게 호통을 치며 Samrat 호텔로 가서 방을 잡았다. 역시 방이 깨끗하고 가격도 합리적이다.
론니에 표기 되었다는 것은 앞으로 오는 여행자들에게 론니에 있는 가격과 서비스를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론니에 올라가서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고 제멋대로 가격을 올리면 다음 편 론니에 바로 삭제가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번 인도 편에 나왔던 바라나시의 한 숙소도 제멋대로 가격을 올렸다가 최신판에서 삭제가 되었다. 이것이 내가 론니를 신뢰하고 이용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오늘 하루의 기분을 표현하자만 황당(릭샤 횡포), 분노(식당 횡포), 안락(아그라성), 짜증(릭샤 할아버지 싸움), 기대(타지마할 입장 전), 환희, 기쁨, 환상(타지마할), 아쉬움(타지마할 떠나고), 뿌듯(바자르에서 물건 잘 깍을 때), 절망(기차 연착), 기쁨(잔시행을 제대로 탔을 때), 냉소(릭샤가 다른 호텔로 데려다줬을 때), 안락(편한 호텔 침대).. 평소에 누릴 수 있는 기분을 오늘 다 느낀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무척 피곤하다. 오랜만에 개인 전원을 쓸 수 있기 때문에 밀린 여행기를 정리하려고 무거운 피곤은 그걸 허락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