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9일(목)
오늘은 아이슬란드 풍광의 하이라이트인 동부 피오르드 코스가 우리를 놀라게 할 것이다.
피오르드에서 일출을 보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아침식사를 하고 오전 8시에 출발 준비를 마쳤다. 아이슬란드에서의 체크아웃은 방에 열쇠를 그대로 두고 오기만 하면 된다.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 국가답게 이곳의 숙소는 여행자에 대해 별 의심이 없다.
호픈에서 기름을 채우고 99번 도로를 쭉 올라가니 1번 링로드가 나온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틀어 듀피보구어(Djupivogur)로 향했다. 새벽의 어둠이 가시기 시작하면서 풍경들이 그 자태를 서서히 드러낸다.
아이슬란드 동남쪽 끝에는 바다와 인접해 거대한 산이 뚝 버티고 있어 험한 산길을 올라야 하는지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터널이 뚫려있다. 터널을 지나니 장엄한 산과 아름다운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오전 8시 45분 일출시간에 맞춰 바다에 다다랐지만 야속한 구름 때문에 해는 보이지 않는다.
갑작스레 경찰차인 것 같은 차량이 우리 차량 뒤를 바짝 따른다. 거의 차량이 없는 도로이기 때문에 경찰차는 무언가 목적성을 띄고 우리 뒤를 따르는 것 같다. 혹시 교통위반을 했나? 90km 도로를 100km 넘게 달려서 그런가? 다행히 차량은 우리를 추월하여 앞서 나간다.
약간의 긴장감이 사라지고 바닷가 옆의 도로에 올라서자 그토록 많은 이들이 격찬한 드라이브 코스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곳 피오르드의 풍경은 느낌을 담을 어휘를 찾기 힘들 정도로 아름답고 웅장하며 보는 이를 압도하고 있다. 섬 중심에서 시작한 아이슬란드의 가파른 산맥이 급격하게 바다로 가라앉는 것이 지금 생각나는 어휘이다. 아이슬란드 도로를 달리다보면 P자 표지판이 보이는데 이는 풍광이 뛰어나거나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장소에 세워둔 표지판이다. 링로드를 달리면서 가끔 보였던 P자 표지판이 피오르드 도로를 달리니 10분~20분 간격으로 나타난다.
바닷가에 접근 할 수 있는 P구역을 들어서니 성난 파도가 끊임없이 화산섬을 때리는 모습을 감상하고 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인기척이 들린다. 뒤를 돌아보니 산양무리들이 살금살금 다가와 풀을 뜯는 것이 보인다. 한 10마리 정도다. 아이슬란드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야생동물과의 만남이다. 그것도 가까이서 보다니 다가가 사진을 찍으려니 망을 보던 수컷 한 마리가 소리를 내더니 이내 가족들을 데리고 이동을 한다. 겨울이고 사람이 거의 없는 곳이기에 가능한 경험일 것이다.
바닷가에서 절벽 지역을 이동을 하는데 중간에 P표지가 보인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데 아까 마주했던 경찰차가 보인다. 지켜보니 그 차량은 경찰차가 아니라 도로관리 차량이다. 절벽 도로를 왔다 갔다 하며 밤새 떨어진 낙석을 제거하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아침에 긴장을 하다니. 다시 목적지로 떠나면서 차량 운전사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니 웃으며 받아준다.
오전 10시 듀피보구어에 도착했다. 호픈에서 103Km를 달려왔다. 듀피보구어는 인구 460명의 작은 항구로 잘 정비되어 있는 분위기이다. 마을을 잠깐 둘러보고 다시 피오르드 탐방을 시작했다.
마을을 떠나니 해발 1,006m Bulandstindur산이 보이고 옆으로 도로가 이어져 있다. 험준한 산을 사이로 바다가 육지 깊숙이 들어 온 지형이기 때문에 직선거리로 5Km인 곳을 40Km를 돌아가야 한다. 마을에서 10분 정도를 달리자 비포장도로가 나타난다. 긴장하면서 속도를 줄이고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길은 정비가 잘 되어 있지만 중간 중간에 구덩이가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다행히 듀피보구어를 기준으로 바다건너 북쪽의 맞은편 지역에 들어서자 다시 포장도로가 나타났다. 이곳 통과시각 오전 11시. 다시 절벽도로가 시작되었다. 멋진 풍광이지만 아까부터 비슷한 풍경이 보여서인지 무감각해졌다. 돌이켜보면 처음 마주했던 풍경이 동부피오르드에서는 제일 낫지 않나 싶다. 중간에 P표지가 있어 차량을 멈춰 둘러보니 링로드 건설의 역사가 사진으로 소개가 되어 있다. 아이슬란드 동부는 험준하기 때문에 도로가 발달하지 않았다. 1962년 사진을 보니 말들이 지날 수 있는 길만 있었다. 그러다가 지금의 도로를 건설하였다. 일부 비포장도로가 있는 것을 봐서 아직 완벽한 완성이라고 여기기는 어렵다. 다시 달리다보니 갈림길이 나온다. 오늘 숙소는 동부교통의 중심지인 에질스타디르인데 이곳에서 5km 터널을 지나면 빨리 갈 수 있다. 다른 길은 피오르드를 계속 달리는 길이다. 오늘의 목적인 피오르드이기 때문에 후자를 선택했다.
오전 11시 40분 Fáskrúðsfjörður에 도착했다. 인구 660명으로 선착장에는 제법 큰 배도 보인다. 호픈으로부터 200Km를 달려왔기에 휴식이 필요해 주차를 하고 잠시 마을을 둘보았다. 짧은 마을 탐방을 마치고 다시금 피오르드를 달리는데 갑작스럽게 비포장도로가 나타나더니 낙석들이 곳곳에 깔려있다. 이미 속도를 낸 상태이기 때고 더구나 절벽이기 때문에 도저히 피할 수가 없다. 순간적으로 가장 작은 돌을 선택해 출동을 했다. 차량에 “쾅”하는 소리가 났다. 속도를 낮춰 차량을 세운 후 살펴보니 다행히 돌의 크기가 앞 범퍼가 감당할 수준은 되어 별 이상은 없었다. 차량을 확인하고 긴장 된 한숨을 내쉬었다.
범퍼는 앞타이어 쪽에 살짝 벌어지긴 했지만 부디 친 돌과는 관련성이 없어 보인다. 차량을 랜터 할 때 이미 보험을 들어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보상은 하지 않아도 되지만 만약 차량에 이상이 있으면 여행이 어렵기 때문에 긴장이 되었다. 앞으로는 운전을 하면서 더 긴장을 하며 운전을 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차량 회사로부터 별 연락은 없었다.)
30Km를 달리자 Reyðarfjörður마을이 나타난다. 인구 1100명의 비교적 큰(?) 도시이다. 이곳에서 식사를 할까 고민하다가 30Km를 더 가면 오늘의 목적지인 에질스타디르에 가서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식사를 하기로 했다. 마을 외곽에는 P표지가 있는데 이곳에서는 동부 지역의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을 보고 낙석에 부디 친 차량을 점검하고 있는데 SUV차량 한 대가 접근해 차창을 내린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차량에는 한국인 여행객 4명이 타고 있었다. 아이슬란드 여행을 하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한국인 여행자이다. 남자 둘 여자 둘로 구성 된 여행객들은 우리와 반대방향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여행 정보를 교환하고 각자의 길로 떠났다.
온통 하얀 눈세상인 고개 하나를 넘어 에질스타디르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 10분. 인구 2270명을 아이슬란드에서 3번째로 인구가 많은 비교적 대도시(?)동부지역의 중심도시이다. 기다란 Lagarfljot호수 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알루미늄 산업 도시이기도 하다.
오늘의 숙소는 Olga게스트하우스이다. 숙소에 들어서니 주변의 하얀 눈 세상과 어울린 빨간 집이 나온다. 숙소 벨을 누르니 전화통화음이 들린다. 주인이 집에 상주하지 않는 게스트하우스는 이토록 벨이 전화로 연결되어 있다. 전화통화를 벨로 하는 어디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상황. 주인장은 5분 정도 기다리라고 한다.
5분 뒤 나타난 주인은 살짝 통통하지만 예쁜 아가씨다. 옆에 와이프가 살짝 눈치를 준다. 주인인 올가는 우리가 너무 일찍 왔다고 하면서도 그래도 게스트하우스 시설과 이용방법을 친절히 소개한다. 하루 숙박비는 62유로이다.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고 오늘의 여행은 끝난 것이 아니다. 컵라면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에질스타디르 북쪽동쪽으로 25Km 떨어진 세이디스피오르(Seyðisfjarðarvegur)로 떠났다. 93번 도로에 들어서 오르막을 올라 정상에 올라가니 에질스타디르와 Lagarfljot호수가 한눈에 보인다. 고개 정상에서 구릉을 달려니 바위 6개가 올려 진 전망대가 보인다. 이곳에서 세이디스피오르로 구불구불한 도로가 이어지는데 도로의 형상이 주변 풍경과 잘 어울린다.
미끄럼길에 조심하며 내리막을 내려오니 동부 피오르드에서 가장 예쁜 마을이 나타난다. 이곳은 미술가, 음악가, 공예가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보헤미안 커뮤니티이며 초록, 하양, 검정, 노랑, 보라, 파랑의 다양한 색의 집들이 풍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차로 마을을 돌아 본 후 마을 외곽에는 큰 폭포가 있는데 올라가려고 하니 길 상태가 좋지 않다. 안전을 위해 포기~
마지막으로 세이디스피오르의 상징은 Blue Chuech라고 불리는 Blaa Kirkjan 교회로 갔다. 하늘색 파스텔톤의 아름다운 교회로 매주 수요일 밤에는 재즈와 클래식 포크 음악이 연주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
오후 3시에 도착해 40분을 둘러보고 다시 에질스타디르로 향했다. 마을에서 전망대를 오르던 도중 폭포가 있어 차를 멈추고 잠시 둘러보았다. 눈이 많이 쌓여 폭포 앞까지 가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다.
돌아오는 길은 아까 평화로운 날씨가 어디로 갔는지 갑자기 흐려지더니 눈이 오기 시작한다. 블리자드가 오기 전에 빨리 돌아가야 했다. 다행히 에질스타디르에 도착할 때까지 블리자드가 오지 않았지만 폭설이 계속 내린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Bounus마트에 들렀다.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면서 가장 반가운 단어가 Bounus가 아닐까 싶다. 아이슬란드의 대표 마트로 우리나라 대형마트와 비견 할 수 없지만 이곳치고는 다양한 종류의 식품을 구비하고 있으며 값도 저렴한 편이다. 특히 햄, 과자, 빵, 돼지고기까지 자체 PB상품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내일은 도시가 없는 지역을 여행 할 것이기 때문에 모레 점심까지의 식량을 구입해야 했다.
숙소에 돌아오니 함박눈이 더 심해진다. 2층 차창에서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맥주한잔을 했다. 따뜻한 오두막 숙소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끼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