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일(토)
Lauk Inn에서는 이불이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덮을 거리를 준비해가야 한다. 부실한 준비를 한 나로서는 새벽부터 추위에 오들오들 떨며 동이 트기를 기다렸다. 지금 8월이 시작되는 시점이기는 하지만 발리엠 계곡 지역은 고지대이기 때문에 밤에는 서늘한 기온이다.
동이 트고 창 밖을 보니 미르콴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멀리 떠나기 때문에 같이 갈 일이 없을텐데..
뜨거운 물을 전투식량에 부어 밥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주머니가 아침을 차려 주신다. 아침 식사까지 제공 될 줄이야..
아주머니의 정성도 있고 해서 전투식량과 밥을 한꺼번에 다 먹었다. 이 정도면 점심 식사까지 안 해도 될 정도.
오늘의 미션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어제 갔던 구아 코티리라에서도 2~3km 떨어진 우스리이모(Wosliimo)에 가서 구아 위쿠다(Gua Wikuda) 동굴을 둘러보는 것.
두 번째 미션은 주인아주머니가 나에게 Manda에서 Wolo 구간을 가리키며 ‘파노라마! 파노라마!’라고 강조하시는데 괜찮은 구간인 것 같다. 이곳을 둘러보는 미션이다.
마지막 미션은 Manda로 다시 돌아와서 오늘의 숙소로 지정한 선교 마을인 피라미드(Pyramid)에서 여장을 푸는 것이다.
발리엠 계곡은 숭가이(Sungai)강을 중심으로 동쪽은 다니족, 서쪽은 라니(Lani)족으로 양분되어 있다. 피라미드는 서쪽 라니족 지역으로 주인아주머니는 피라미드로 가려면 와메나로 돌아가서 피라미드로 가는 택시를 타고 가야 한다고 하지만 론니 지도상으로는 Manda에서 크게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계획대로 하기로 했다.
주인 아주머니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첫 번째 미션을 위해 곧장 우스리이모로 가는 택시를 잡아탔다.
우스리이모에 도착하면 갈림길이 있는데 서쪽 도로는 Manda로 가는 길이지만 잠시 접어두고 동쪽 길을 900m 정도 걸으니 구아 위쿠다가 나온다.
관리인에게 입장료를 내고 동굴에 들어갔다. 물론 조명 장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랜턴을 반드시 들고 가야 한다.
아름다운 백색 종류석이 동굴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종류동굴은 관람객이 다니는 길이 따로 만들어져 있으며 종류석을 만질 수 없게 시설이 되어 있지만 여기는 그런 시설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부실하게 관리해서야 종류석을 따가도 아무도 모를 것 같다. 혼자서 동굴 탐험을 하는데 영화 구니스와 인디아나 존스의 동굴 탐험 장면이 연상된다. 혹시 거대한 몬스터를 만나는 건 아니겠지?^^
동굴을 꽤 깊숙이 들어갔는데도 끝이 안 보인다. 돌아가는 길을 못 찾을 확률이 있어 발길을 돌렸다. 관리인에게 물어보니 길이가 10Km가 넘는 다고한다.
첫 번째 미션을 가뿐하게 끝내고 두 번째 미션인 Manda에서 Wolo로 가는 구간을 위해 Manda로 향했다.
어느 정도 걷다보면 차가 지날 갈 법도 하는데 우스리이모 이후로는 차가 전혀 다니지 않는다. 도중에 인심 좋은 오토바이를 얻어 탔지만 부실한 오토바이 엔진 때문에 100m도 못가서 다시 걸어야 했다.
Manda까지는 쉽게 차를 타고 오려고 했는데 결국 땡볕에 두 시간 반을 걸어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
힘들게 걷기는 했지만 풍경과 이곳 사람들을 사진에 담는 보너스가 따라오기는 했다.
이곳 사람들은 사진을 찍어주는 자체로도 좋아한다. 디카로 사진을 찍어 액정으로 사진을 보여주면 고맙다면서 웃는다. 자신이 가지지도 못하는 사진이지만 찍히는 자체만으로도 좋아하는 순박한 사람들이다.
오후 2시 30분 만다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마을 꼬맹이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다가온다. 많이 걸었기 때문에 이곳에 숙소를 잡아 짐을 풀고 울로(Wolo)로 갈 참이었지만 호텔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마을마다 숙소가 없기 때문에 오늘은 무리해서라도 피라미드까지는 가야 한다. 그렇다고 Lauk Inn 아주머니가 강조한 파노라마는 포기할 수 없고..
파노라마를 조금이나마 감상하기로 했다. 만다에서 울로까지는 산악구간인데 4시간 넘게 걸어야 한다. Wolo까지 걷는 것은 무리이고 근처 마을인 부기(Bugi)까지만 가기로 했다. 걷다가 오후 3시가 넘으면 반드시 하산 한다는 계획을 잡았다.
론니에 Pass Valley 표기 된 이 구간은 험준한 산맥 한가운데 계곡이 펼쳐져 있어 꽤 아름다운 풍경이다. Wolo까지 보면 좋을 텐데..
길을 걷다보니 도로 공사를 하는 구간이 있고 산 위로 올라가는 차가 한대 서 있다. 와메나에서 공수 된 물건을 잔뜩 싣고 Wolo로 가는 차인데 차주에게 태워달라고 하니 흔쾌히 타라고 한다. 생각지도 않게 Wolo로 가게 된 것이다.
차로 Wolo까지 올라가서 내려올 때는 걸으면서 풍경을 감상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40분 걸려 Wolo로 가니 산 중턱의 아름다운 마을이다. 마을 전체가 정원처럼 잘 꾸며져 있으며 주변 마을에 비해 잘 정리되어 있다.
Wolo에서 호텔은 당연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한 청년이 자신의 집에서 자라며 안내를 해 준다.
청년 집에 가서 짐을 푼 시각은 오후 3시..
이곳에 자려고 했으나 아직 이른 시간이라 판단되어 오늘 피라미드까지 가기로 결정했다. 고마운 청년에게 물을 달라고 하니 페트병에 한 가득 채워준다.
물은 흙 맛이 나기는 하지만 산 중턱의 물이라 오염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청년과 그 가족에게 이름을 묻고 한글로 이름을 써 주니 무척 좋아한다. 문자가 없었던 이곳 사람들에게는 영어 이외의 문자는 처음 본 것일 것이다. 한글을 이름을 또박또박 읽어주니 잘 간직하겠다며 고맙다고 한다.(물론 바디 랭귀지로 소통함)
이후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한글로 이름을 적어주어 선물로 주었다. 나야 종이에 글씨를 적는 작은 수고만 하는 것이지만 이곳 사람들에게 한글 이름은 좋은 선물이 된다.
Wolo에서 내려오는데 마침 농사일을 끝내고 마을로 돌아오는 사람들과 많이 마주쳤다. 이곳에서는 주로 고구마를 생산하는데 그 크기가 어른 머리보다 더 크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쎄레~’하면서 인사를 한다. 어? 쎄레? 만다에서는 ‘씨야~’가 인사인데.. 바로 옆 마을인데도 언어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려오면서 풍경 사진을 많이 찍기는 했지만 문제는 비가 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어서 만다까지 가야 하는데..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내려가는데 3시간은 더 걸릴 거라고 말한다. 비 맞으며 고생을 무지하게 생겼다.
다행이 나무를 잔뜩 실은 차량이 지나가기에 세워서 만다까지 태워달라고 하니 흔쾌히 타라고 한다. 좌석이 없어 화물칸 나무 위에 탔는데 구불구불하고 열악한 길 탓에 차량이 크게 흔들려 엉덩이가 나무와 부디 치기 때문에 손으로 엉덩이와 나무 사이에 완충역할을 해줬다.
불편한 자세지만 그래도 한참 걸어 내려가는 것보다는 낫다.
만다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 50분.. 해가 늬엿늬엿 저물어 가는 시점이지만 어쨌든 두 번째 미션은 완수 했다.
피라미드로 가기 위해 걷기 시작했지만 차량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차량이 없는 걸까?
결국 꼬박 걸어야 했고 날은 점점 어두워진다. 오늘 하루 종일 걸어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상황이다.
힘겹게 발걸음을 옮기는 도중에 기타를 들고 걷는 청년을 발견했다. 청년은 내가 힘들어 보였는지 기타를 쳐주며 노래를 불러주는데 멜로디가 귀에 익은 음악이다. 그 착한 청년의 이름은 레미우스이며 주말을 집에서 보내기 위해 가는 길이라고 한다.
레미우스에게 기타 반주만 하라고 하고 김광석의 ‘일어나’를 부르니 청년의 기타 멜로디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이곳 청년 음악과 한국 음악의 조화? 청년은 다른 노래를 불러주는데 멜로디가 느리면서 조용하다.
음.. 이건..
이번에도 레미우스에게 멜로디만 치게 하고 안치환의 ‘내가 만일’을 불렀다.
어둠이 깔리는 아무도 지나지 않는 길 한 가운데 나와 청년의 둘만의 콘서트가 열린 것이다.
청년은 목적지에 도착하자 고맙다며 피라미드로 가는 길을 알려준다. 그래봤자 외길이기는 하지만 이미 어둠이 꽤 깔린 시점이기에 쉽지 않는 길일 것이다.
랜턴을 켜고 무낙(Munak)으로 향했는데 걸어도 도통 무낙 마을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도 아무도 안지나 다니고..
점점 공포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혹시 맹수가 나오는 건 아닐까? 혹시나 침입자로 알고 독침을 쏘지 않을까?
그보다 가장 두려운 건 피라미드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치게 되는 것이다. 만약 길을 놓치면 밤새 떠돌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혹시나 갈림길일까 싶어 들어가니 일하고 있는 사람이 잘 못 들어왔다고 한다. 피라미드로 가는 길을 물어봐도 이해할 수 없는 표현만 한다.
정말 난감하네..
시간이 지나갈수록 마을에는 인적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패닉상태에서 그저 걷기만 했을 때 집 울타리에서 고개를 삐쭉 내밀며 외국인이 지나가는 것을 신기하게 쳐다보는 아이들과 마주쳤다.
아이들에게 무낙 길을 물어보니 따라 나선다. 다행히 호기심에 따라 온 청년 한명이 길을 안내해 준다.
무낙에 도착하니 마침 길을 나서던 와이셔츠 차림의 어른을 만났다. 와이셔츠를 입었다는 것은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사람이겠지?
그 어른에게 피라미드로 가는 길을 물으니 너무 늦은 시각이고 피라미드까지 가는 길이 위험하기 때문에 무낙에서 자고 가라며 비어 있는 집(Hut)으로 안내해주신다.
집은 짚으로 만들어져 있고 바닥 역시 짚이 깔려있다. 길에서 서로 이를 잡아 주는 모습을 많이 목격했는데 분명 바닥에는 이와 빈대가 바글바글 할 것이다. (나중에 선교사님에게 물어보니 맞다고 함)
늦었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피라미드로 가기로 했다.
아저씨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섰다. 날 무낙까지 안내해준 청년은 걱정이 되었는지 피라미드로 가는 갈림길까지 안내해준다고 한다.
청년 이름은 마테우스이며 마을 북쪽으로 한참을 걸어 갈림길을 알려주었다. 마테우스는 수카푸 마을 통해 젬파탄까지 가라고 이야기 하며 꼭 조심해서 가라고 말한다. 만약 청년이 아니었으면 절대 길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마테우스에게 인사를 하고 갈림길을 걷기 전 랜턴으로 론니플래닛을 펼쳐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론니에는 만다에서 피라미드까지 걸어서 3~4시간이면 도착한다고 되어 있지만 완전히 아니올시다다.
마테우스는 걱정이 되었는지 피라미드까지 가주겠다고 한다. 지금까지 걸어와 준 것도 미안한데.. 혼자서 갈 수 있다고 하니 그러면 젬파탄까지만 가겠다고 한다. 참 고마운 청년이다.
젬파탄으로 향하고 나서야 마테우스가 걱정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길은 마을을 통과해 여러 갈래로 나눠져 있으며 정글 속의 외길을 지나야 한다. 정글 역시 험난한 길이다. 한마디로 마테우스가 아니었으면 큰 일날 뻔했다.
정글을 빠져 나오자 숭가이 강변으로 걸어야 하는데 좁디좁은 외길이다. 숭가이강 물살이 워낙 거세기 때문에 만약 떨어지면 끝짱이다.
낮에도 위험한 길인데 지금은 랜턴에 의지해 걷고 있다.
수카푸에 도착하니 건너편 젬파탄으로 연결 된 다리가 있는데 중간 지점의 가운데가 부서져 있다. 아슬아슬하게 다리를 건너 젬파탄으로 도착했다.
‘정말 고마워..’
은인과 같은 마테우스를 와락 껴안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마테우스는 여기서부터 피라미드까지는 외길이고 2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고 한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눈빛과 몸짓으로 대화를 했다. 고마운 마테우스에게 얼마간의 사례를 하니 오히려 나보고 고맙다고 한다.
이 시각이 오후 8시..
한참을 더 걸어야 하지만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제거 된 것만으로도 큰 안심이 되었다.
이 때 처음으로 배낭을 잠시 내려놓고 일지를 정리하며 쉬었다. Wolo에서 얻은 물은 무게 때문에 비웠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최소한의 양은 남겨 놓았다.
그렇지만 아직 먼 길이고 날은 추워지며 비도 조금씩 내리고 있다. 마침 지나가는 할아버지에게 피라미드로 가는 길을 물으니 팔을 빙빙 돌리며 한참을 더 가야 한다고 표현한다.
발에는 온통 물집이 잡혔으며 그제서야 아침에 Lauk Inn 주인아주머니가 했던 말의 의미가 이해가 되었다. 그곳에서 피라미드로 가려면 와메나를 통해서 가야한다.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지금의 나의 모습이 조선 시대 과거 보러가는 선비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전래 동화를 보면 많이 나오는 장면이 있지 않은가? 어둑한 산골짜기에 한 선비가 과거보러 가는 길에 한 집에 들렀는데 귀신이나 도깨비가 나왔대나..
이런 생각이 가능한 걸 보니 그나마 여유가 생겼나보다. 밤늦은 시각이지만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피라미드를 물어보며 지금까지 온 과정을 설명해주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대단하다고 표현한다.
피라미드를 그냥 지나치지 않을지가 걱정되었다. 비는 추적추적 굵어지기 시작하고..
다행히 지나가던 한 할아버지가 피라미드까지 안내해준다고 한다. 미안한 마음에 괜찮다고 이야기해도 밤이 늦었기 때문에 피라미드를 찾지 못 할 거라고 이야기 한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다. 할아버지에게 피라미드가 얼마나 남은 지 물어 볼 때마다 할아버지는 연신 손을 앞으로 가리킨다.
빗살이 더욱 세진 밤 10시가 넘어서야 할아버지는 이곳이 피라미드라고 말하신다.
1시간을 넘게 걸어 온 할아버지에게 사례를 하고 마을로 들어가니 불이 다 꺼져있다.
다행히 어딘가에서 노래 소리가 들리는데 그곳으로 가 문을 두드리니 안에 있던 청년들이 놀란다.
야밤에 갑작스러운 외국인의 등장도 그렇지만 몰 꼴이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청년들에게 물을 달라고 하니 컵에다 따라 준다. 연거푸 2잔을 들이켰다.
피라미드는 선교 활동이 발달한 지역으로 이곳에는 대학이 있다. 지금 내가 온 곳은 대학 기숙사의 식당이다.
청년들은 이곳에 호텔은 없다며 기숙사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잠자리도 가장 좋은 곳으로 잡아 주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오두막 대학 기숙사에서 청년들과 함께 자게 되었다. 몇몇 모기가 날 괴롭히기는 했지만 그런 것쯤은 이제 고생도 아니다.
오늘 난 참 무모했다.
이곳 오지 같은 경우는 현지 사람들 말을 들어야 하는데 너무 론니플래닛에 의지한 내가 잘못되었다.
육체적으로 힘들기는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덕분에 순박하고 정다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은 힘들 때 사람의 정이 그립다고 하는데 그런 면에서 이곳 사람들이 참 많이 위안이 되었다.
생판 모르는 외국인을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주는 착한 사람들을 또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이곳도 문명화가 진행되면 삭막해지겠지?
하지만 나의 기억 속의 이곳 사람들은 한없이 착한 이들로 기억이 될 것이다.
잠드는 순간 딱 한마디를 하면서 잠들었다.
‘그래도 오늘 세 가지 미션은 다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