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일(일)
새벽에 너무 더워 잠이 깼다. 특별히 아픈 건 아니지만 몸에서 열이 많이 나온다. 어제 하루 종일 걸었기 때문에 몸의 엔진이 너무 가열 되서 그런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같은 방에 잠든 대학생 두 명은 한 이불에 부대끼고 자면서 코를 골고 있다.
약간 뒤척이다가 다시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마치 내가 깨기를 기다렸다는 대학생 세 명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오늘 아침에 무낙에서 2명이 죽었대.”
갑작스런 소식에
“왜? 무슨 일 있었어?”
무낙은 어제 열악한 시설만 아니었으면 자려고 했던 곳 아닌가!
“인도네시아 군인들이 도끼로 2명을 죽였대.”
어제 무낙을 향해 한참 걸을 때 인도네시아군 캠프가 있는 것이 기억이 났다. 지나가다가 몇몇 군인들과 마주쳤을 때 헬로 하고 인사를 하면 순수하게 웃으면서 응대해줬는데..
말이 확실히 통하는게 아니라서 대학생들 말을 100%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어쨌든 Axe(도끼)라는 표현을 써가며 이야기 하는 것을 봐 확실히 문제가 생기긴 생긴 것 같다.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
“응. 한 달에 한번 정도를 이런 일이 일어나. 와메나 북쪽에서 자주 일어나” 그러면서 최근 문제가 있었던 지역을 지도로 가리켜 지목하면서 가리켜 주었다.
요 며칠 사이 다니족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무장한 군인들이 많이 지나갔었는데 독립 시위 때문에 최근 문제가 많이 되는 것 같다.
그 밖에 청년들과 대화한 이야기는 그들의 안전 문제 때문에 여행기에 적지는 않겠다.
어제의 여독이 풀리지 않았지만 정신은 버쩍 났다.
만약 내가 무낙에서 잤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분명 군인들이 들이닥쳤을 때 외국인인 내가 나서서 막아보려고 했을 텐데.. 그럼 2명의 희생을 막았을까? 아님 나까지 문제가 되었을까? 혹시나 어제 날 도와준 사람들은 무사한걸까?
무리해서 피라미드로 온 것이 나 혼자만 놓고 보면 참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혹시나 외국인인 내가 있었으면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본다.
오늘 계획은 발리엠 계곡 서쪽의 라니(Lani)족 지역을 둘러보는 것인데 어제 너무 지쳤기 때문에 오늘 계획은 생략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와메나로 가는 차량을 타려면 7Km를 걸어 킴빔(Kimbim)까지 가야한다. 자의든 타의든 라니족 지역을 둘러보게 되었다.
대학생 중에 한명이 와메나에 볼 일이 있다고 하기에 같이 가기로 했다. 숙소에 같이 잤던 대학생 두 명은 킴빔까지 배웅해준다고 한다.
피라미드에서는 다니족 지역인 동쪽이 한눈에 보인다. 다니족과 마찬가지로 라니족 지역 역시 메인 도로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마을마다 학교와 교회가 있는 걸 봐서는 다니족 보다는 문명화 된 것 같다. 다니족 지역에서는 종종 볼 수 있었던 꼬대까를 한 사람을 볼 수 없었다.
날은 화창하고 주변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마치 거대한 정원에 인 것 같은 풍경에 고랭지 채소 밭이 이어진다.
대학생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걷는데 마을을 지날 때 마다 ‘저기가 내가 다녔던 학교야.’ ‘여기는 우리 삼촌이 살아.’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걸었다.
즐겁게 이야기 하지만 발에 물집이 크게 잡혀 있는 상태에서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걷는 건 힘겨운 일이다. 더구나 완전히 지친 상태가 아닌가.
그러한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대학생 한 명이 내 짐을 들어준다.
킴빔에 도착하니 와메나로 가는 손님을 기다리는 차량이 서 있다. 차량에 사람이 찰 때까지 기다렸다.
오늘따라 탄산음료 생각이 간절하다. 평소 같으면 정크 푸드라 해서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탄산음료지만 몸이 지친상태에서는 당분 생각이 많이 나나 보다.
킴빔에서 출발한 차량(15,000루피아)은 1시간을 달려 와메나 북쪽의 홈홈(Homhom)에 도착했다. 홈홈에서 와메나까지는 미니버스를 타고 오는데(4,000루피아) 내 옆자리에 꼬대까를 한 할아버지가 앉는다. 홀라당 벗은 분이 옆에 앉으시니까 부담이 밀려온다.
와메나에 도착고 신발을 추스르는데 왼쪽발 뒤꿈치 부분 양말이 피가 흥건하다. 아까 걸을 때 좀 욱신거린다 했는데 왼쪽 운동화 뒷부분에 뒤꿈치가 쓸렸다.
잘못하면 봉화직염으로 옮겨질 상황이라 더 이상 걷는 건 무리이다. 이대로 와메나에 더 있는 건 무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오늘 하루 쉬었다가 내일 남쪽의 얄리(Yali)족 지역을 둘러보려고 했는데..
몸도 몸이지만 안전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못하다가 이곳 분쟁에 휩쓸릴 위험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 며칠 발리엠 계곡 주변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아쉽지만 한번 결정한 이상 속전속결이다. 내 여행 스타일이기도 한데 선택할 일이 있으면 한번 깊게 생각했다가 결정하면 신속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여행에서 우유부단하면 손해 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리안자야 서쪽 끝인 소롱(Sorong)으로 가는 Pelni 페리가 내일 있다. 원래는 10일에 출발하는 배표를 끊었는데 내일 타면 1주일을 벌 수 있는 셈이며 만약 놓치게 되면 꼬박 1주일을 자야푸라에서 지내야 한다.
결심을 굳히고 곧바로 공항으로 가 선교사님에게 연락을 드리고 센타니로 가는 비행편을 알아보니 좌석이 있다. 항공 요금은 4,500,000루피아(45$)이다. 올 때는 거의 83$ 였는데...
나가는 항공편이 싼 이유는 공항에서도 알 수 있다. 항공에 탑승하려 기다리는 승객이 거의 없다.
공항에서 그토록 마시고 싶던 탄산음료를 마셨다. 한 캔당 가격은 15000루피아(1.5$) 센타니의 3배는 되지만 그래도 마시고 싶은 건 마셔야지..
비행기가 이륙하자 끝없는 정글이 펼쳐진다. ‘내가 저 곳을 헤매고 다녔지..’
자카르타 국립박물관에서 마주친 강한 호기심에 생각지도 않게 왔던 이곳.
이리안자야 사람들..
고생은 많이 했지만 다니족이 사는 볼 수 있어서 괜찮았고 더 좋은 건 순수한 그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 다음으로는 누가 이곳을 여행 올까? 이곳도 문명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많이 변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명의 때가 묻기 전에 이곳을 본 것은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껏 여행하면서 때 묻기 전에 둘러봤던 곳 중에 대표적인 곳이 티베트이다. 티베트는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세 번 둘러봤는데 철도로 연결되기 전이라 그곳 전통 문화를 어느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철도가 연결되고 부터는 문명의 쓰나미에 묻혀버렸으며 그마저도 독립 운동 때문에 티베트를 여행하는 여행자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통제를 받는다. 그 전에 잘 둘러봤다.
센타니에서 숙소를 잡고 예약한 배 편을 바꾸기 위해 자야푸라 페르니(Pelni) 오피스에 가니 문이 닫혀있다. 아! 참 오늘 일요일이지..
저녁때 선교사님 내외가 호텔을 찾아와 주시면서 어제 비행기 한대가 떨어져 승객 전원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주신다. 한 달 전에도 비행기가 떨어졌는데 이곳에서 비행기가 떨어지면 보상도 받지 못한다고 하신다.
선교사님에게 어제 고생했던 과정과 아침에 대학생들에게 들은 소식을 이야기 해 드렸다.
“그래도 선생님은 다행이시네요. 와메나에서 그렇게 밤길을 걸으면 자바(Java) 사람으로 오인을 받아 독립 운동 하는 사람들에게 습격당할 수도 있거든요. 무사히 잘 빠져 나오셨네요.”
여러모로 행운의 여신이 나를 잘 지켜줬음을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