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7일(일)
Samrat 호텔 레스토랑에서 아침(80Rp) 식사를 하고, 카주라호로 가기 위해 릭샤(20Rp)를 타고 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버스 정류장에서 카주라호행 버스를 찾으니 안개 때문에 모든 버스가 취소되고 오직 한대만 남았다고 한다. 카주라호까지 가는 표를 120Rp(110Rp+10Rp짐)를 끊고 버스 문이 열리길 한 없이 기다렸다. 이곳에서 한국인 여행자 네 명과 일본인 부부를 만나 여행정보를 교환했다. 역시 지금 인도 여행에 있어서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안개이다.
버스 지붕에 짐을 가득 싣고 버스 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은 자리를 잡으려고 뛰어 든다. 서로 치열하고 밀고 밀리는 모습이 영락없는 난민들 모습과 흡사하다.
외국인은 비싸게 표를 사서 그런지 가장 먼저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배려해준다.
버스에 웬만큼 사람이 차면 끊을 줄 알았는데 사람들을 모두 태운다. 버스 안의 사람들은 영락없는 샌드위치 신세임에도 계속해서 사람들을 밀어 넣다시피 한다. 결국 100명 이상 사람들을 집어넣은 채 출발한다. 승객들은 아예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자리를 잡는다. 네모난 버스 전체가 하나의 유기물 덩어리가 되었다고 표현해도 되려나?
오늘 역시 안개 때문에 버스는 천천히 운행을 한다. 이런 안개가 지속되는 것을 보니 걱정이 앞선다. 비단 여행하면서 교통편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의 세계가 걱정이 된다.
현재 북반구 전체가 한파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것은 공교롭게도 지구 온난화가 원인이기에 더욱 심각하다. 북극 주변을 감도는 제트기류가 북극의 찬 기운을 가둬놓는 역할을 했는데 지구 온난화로 기온이 올라가면서 제트기류가 풀려버린 덕분에 북극의 찬 기운이 북반구 전체를 뒤덮은 것이다. 마치 봉인이 풀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최소한 인도를 여행하면서 느낀 점은 추위만이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매일 안개가 낀다는 것은 일조량이 적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냉해와 더불어 작물에 악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식량을 자급자족하는 인도에서 대대적인 냉해로 인한 식량 부족사태가 일어날 경우 곡물 가격의 폭등은 눈에 보듯 뻔하다. 인도는 전 세계 인구의 6분의 1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곡물 폭등과 더불어 난방 수요 폭증으로 인한 석유가격 폭등도 예상이 되는 바이다. 이것은 어렵게 되살아나고 있는 전 세계 경기에 큰 타격이 되지 않을까 싶다. 문제는 이러한 냉해가 매년 반복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데 있다. 앞으로의 지구가 걱정이 된다.
이럴 때 내가 만일 투자를 한다면 곡물 펀드나 석유펀드에 투자하지 않을까 싶다. 석유가 폭등하면 전기장판이 잘 팔릴 것이며 추위로 인해 집에서 잘 나오지 않으려고 하기에 게임 산업과 홈쇼핑 산업이 크지 않을까 예상이 된다.
버스는 느릿느릿 간다. 사람을 더 태울 수 없을 법 한데 꾸역꾸역 밀어 넣으면 잘만 태운다.
버스가 출발하고 4시간 반이 지난 오후 3시 30분경 한 도시 버스 정류장에 정차 할 때서야 밀린(?) 용변을 해결 할 수 있었다.
1시간 반 정도 정차했는데 주변의 노점에서 군것질 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특히 우리나라 야채 튀김과 비슷한 먹 거리가 있는데 꽤 먹을 만하다.
4시 반 카주라호로 버스가 출발하는데 아까처럼 많은 사람들이 탄다. 으.. 버스 여행은 괴로움에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가 크게 흔들릴 때 머리에 쾅하고 뭐가 부딧친다. 깨를 뭉친 과자 같은데 으깨져서 내 의자에 묻어난다. 버스가 가고 있는 중이고 사람들로 꽉 찬 상태라 움직일 수 없는 상황.. 그대로 카주라호까지 갔다. 다음에는 절대 버스를 타지 말아야겠다는 교훈과 함께..
카주라호에는 오후 6시 반 쯤 도착했을 때 이미 어둠이 깔려 있다. 숙소를 찾기 힘든 시간일 때는 삐끼를 이용하는 것이 더 좋다.
삐끼가 데려다 준 곳은 Rakshan 호텔로 싱글룸이 150Rp이다. 자체 레스토랑이 있다. 체크인을 하려고 하니 바로 위 칸에 원주시에서 온 여행자가 적어 놓은 기록이 있다.
이곳에서 같은 동네 사람을 만날 줄이야.. 얼른 방을 물어봐 원주시에서 온 여행자를 찾았다. 다짜고짜 온 나에게 친구인 동행자가 지금 샤워중이라 잠시 후 내려가겠다고 답한다.
밀린 여행기를 정리하는 중 나를 찾는 소리가 들린다. 인사를 나누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짜이 한잔을 하며 이야기를 했다.
둘 다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특수교사 이고 윤길옥샘은 집이 원주이지만 근무지는 동해이고, 오미연샘은 논산에서 근무중이다. 같은 직종에 있어서 그런지 말이 금방 통한다.
밤공기가 쌀쌀하기에 마침 레스토랑에 피워놓은 화로에 몸을 녹이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여행이야기를 하다가 나를 호텔로 데려 온 청년과 여관 주인 아들을 비롯한 몇몇 청년들과 어울리며 이야기를 하였다.
그들과는 주인과 손님이 아니라 같은 젊은이로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특히 파키스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는 꽤 진지했다. 무슬림인 그들은 파키스탄에 대해 다 같은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고 표현한다. 인도의 대다수인 힌두교도 눈치도 있고, 그렇다고 같은 종교인 파키스탄에 대해서 비난하기도 그렇고 그들이 인도를 살아가는 한 방법이 묻어 난다는 것을 느꼈다.
청년들 중 한명이 지난 11월 뉴델리에서 열린 인도국제아동연극제에 카주라호 팀을 이끌고 참여 했다는 이야기를 하기에 나 역시 그 대회에 아이들을 이끌고 참여 했다고 말했다. 이런 우연이 있을 수가...
신종플루 와중에서 어렵사리 공연단을 꾸리고 참가했던 제 13회 인도국제아동연극제.. 대한민국 대표로 참여해 많은 인도 사람들에게 한국 문화에 대해 각인을 시켰던 계기기 되었으며, 나를 비롯한 참가한 아이들에게는 큰 경험이 되었던 대회였다.
같은 날 공연은 아니라 서로 몰랐지만 그 대회에 참여한 청년을 여기서 만나다니.. 청년에게 대회를 참여하면서 궁굼했던 내용을 물어 보았다.
“국제연극제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누구였어?”
“이름은 지금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장관이었어.”
“그럼. 공연이 끝나고 트로피와 참가증을 받을 때 왜 그렇게 좋아들 하는거야?”
“그건. 그 대회에 참가했다는 걸로도 그들의 미래가 밝기 때문이야. 인도에서는 크나큰 영광이거든.”
난 아이들에게 현지인처럼 일부러라도 기뻐하는 척 하라고 주문했던 것이 생각나 피식 웃었다. 아이들이 꼭 그래야 하나요? 라고 물을 때 그것도 이곳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고 했었다. 실제 우리 아이들은 기뻐하는 척을 잘 수행했다.
“생각보다 극장 규모가 작고 관람객이 적던데 이 대회가 유명한 대회야?”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이 대회는 인도에서는 아주 권위적이고 큰 대회야. 특히 이 대회 출신은 볼리우드 영화 제작자의 주목을 받게 되거든.”
실제 우리 공연이 끝나고 나서 볼리우드(인도 영화의 메카) 관계자가 명함을 주더니 자기와 함께 일 할 생각이 없는지 물어보았다. 한국에 아이들 가르치러 가야 한다고 대답했더니 아주 좋은 기회라며 더 생각해 보고 연락을 주라고 다짜고짜 이야기 했다. 결국은 뭐.. 한국으로 돌아갔지..
인도국제아동연극제를 통해 받은 유네스코 트로피와 상장 이외에도 이곳 사람들에게는 권위적인 대회에 나갔다는 자부심이 추가되었다.
밤이 깊어지자 청년들과 노래에 대해 이야기 했다. 2002년 티벳을 여행하면서 들었던 인도 음악. 특히 Sonia를 불렀더니 그 노래를 어떻게 아냐며 같이 따라 부른다.
서로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청년 한명이 전통 악기를 들고 북을 리듬에 맞춰 친다.
음.. 가능하겠군.
북치는 청년에게 그 리듬 그대로 치라고 하고 김광석의 ‘일어나’를 옆의 두 선생님과 함께 불렀다. 노래를 다 부르자마자 박수를 치는 청년들
“뭐해? 인도인들.. 이제 너희가 부를 차례야.”
청년들은 현지 노래를 흥겹게 부른 후 이제는 댄스 분야로 넘어간다.
“난 한국의 커플 댄스를 보고 싶어. 보여 줄 수 있지?”
음.. 이제는 우리가 보여줘야 되는군.
“이게 한국의 전통 커플댄스야.”
망설이지 않고 윤길옥샘과 꼭두각시춤을 췄다.^^
흥겨운 분위기였다가도 EU와 같은 인도 경제권 구성 이야기도 하고.. 그렇게 밤을 무르익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