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1일(목)
바라나시의 가트를 탐방하러 숙소를 나섰다. 가트는 갠지스 서쪽 강둑에 늘어서 있으며 시신을 공개 화장하는 가트가 있다. 가트는 총 80여개가 있다고 하는데 각각의 가트가 유래를 가지고 있으며 화장터, 목욕터, 빨래터등 다른 역할을 가지고 있다. 인도에서 영적으로 가장 깨어 있으며 신성한 곳이다.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오늘은 마나까르니까 가트(mananikarnika Ghat)부터 시작해 남쪽 가트를 둘러보기로 했다.
마나까르니까 가트는 가장 성스러운 화장터이다. 이곳에서 시신은 화려한 천으로 감싼 대나무 들 것으로 실어 고다울리아 지역 골목길 을 따라 이곳으로 운구가 된다. 시산의 얼굴에 하얀색 천으로 가렸으면 남자이고, 오렌지색으로 가리면 여자이다. 가트주변에는 장작더미가 쌓여 있고, 앞에는 가족과 장작 상인이 흥정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장작은 저울에 달아 가격을 매기며 장작 종류마다 가격이 다르다. 관광객이 화장장면을 지켜봐도 되지만 사진 촬영은 엄격하게 금지된다.
시신을 화장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 망루가 있지만 올라가지 않고 주변에서 지켜보니 타고 있는 시신 다리 한쪽이 보인다.
이곳에는 마니까르까 우물이 있다. 시바신이 빠르바트(Parvati)가 떨어트린 귀걸이를 찾기 위해 땅을 파면서 흘린 땀이 고여 우물이 생겼다고 한다. 우물과 가트 사이에 짜란빠두까(Charanpaduka)에는 비슈누의 발자국이 남았다고 전해진다. 마침 힌두교 신자들이 그곳에서 설법을 펼치고 있었다.
라리타 골목길을 잠시 헤매 라리타 가트(Lalita Ghat)로 갔다. 가트마다 영어로 쓰여 있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배들이 많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다. 여행객이 지나 갈 때면 “Boat?" 하면서 사공들이 배를 타라고 한다. 한시간에 100Rp 라고 말하지만 잘 하면 더 깎을 수 있을 것 같다.
미르 가트(Meer Ghat)를 지나 만 만디 가트(Man Mandir Ghat) 쪽으로 가니 많은 사람이 성스러운 갠지스강에 물을 적시며 목욕을 하고 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시신을 화장하고 남은 재를 강물에 버리고 있는데 이곳에서는 신성한 표정으로 목욕을 하고 있다.
갠지스강은 이곳 사람들에게는 신성한 강으로 여겨지지만 강물의 용존 산소는 거의 없다시피 오염되었기 때문에 이곳에서 인도인들을 따라 목욕을 했다가 피부병에 걸린 여행객이 있다는 소식을 종종 듣는다.
다사스와메드 가트(Dasawamedh Ghat)는 고다울리아 주도로에 위치해 있으며 많은 사람들과 장사꾼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브라흐마 신이 여기서 10마리의 말 제물을 바쳤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각각이 가트는 신을 가까이서 만나는 신성한 곳이기도 하다. 매일 오후 7시에 신성한 의식이 진행되는데 어제 우연히 본 것이 그 의식이다.
갑작스럽게 한 사내가 다가오더니 다짜고짜 내 팔을 잡으며 안마를 해준다. 안마를 해주며 배울 생각은 없는지 물어본다. 괜찮기는 한데 시간이 없다고 이야기 하니 그럼 자신에게 안마를 받으라고 말한다. 시원하기는 하지만 정중하게 거절.
안개가 자욱이 껴서 그런지 가트 전체가 신성해 보인다. 문시 가트 (Munsi Ghat)를 지나 소메스와르 가트(Somesar Ghat)에 들어서니 빨래터가 보인다. 카일라스 산 기슭의 마나사로바 호수에서 따온 만사로와르 가트(Mansarowar Ghat)와 께다르 가트(Kedar Ghat)는 쭉 비슷한 풍경이 펼쳐진다. 가트에는 배가 정박해 있고, 강에서 목욕하는 사람들과 목욕을 마치고 몸을 헹구는 사람들 빨래를 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빨래를 마치고 가트에 말리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은 수 천년 동안 대를 이어 빨래를 했겠지?
인도에서의 카스트는 불가촉천민을 포함해 5개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수천가지가 넘는 다고 한다. 카스트는 우리가 아는 것처럼 계급을 나눈 것이 아니라 직업군을 나눈 것이다. 고대 시대의 직업의 전문화라고 하면 될까? 직업 전문화를 위한 카스트가 세월이 흐르면서 신성한 신을 모시는 브라만이 가장 위의 직업이 되고, 다음은 군인인 크샤트리아가 다음 계급에 올랐으며 바이샤(상인), 수드라(노동자) 순으로 계급이 매겨졌으며 직업군에 따라 수천가지의 계급으로 나눠졌을 것이다. 인도에서는 카스트 제도를 반대하고 있지만 여전히 그 전통이 깊게 남아 있으며 인도 사회 발전을 저해하는 큰 원인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이유는 현대사회에서는 국가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발전시키는 시대가 아니라 각 개인이 자신의 성공을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하고 그 노력들이 모아져서 사회 전체를 발전시키는 시대이다. 즉 자신의 노력에 의해 성공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은 목표를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카스트 제도는 이미 평생 운명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개인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기가 힘들다. 최하 계급은 불가촉천민 중에는 종교를 바꾸면서 정해진 운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할리슈짠드라 가트(Harishchandra Ghat)는 화장터로 마니까르니까보다 작지만 바라나시에서 오래 된 가트 중에 하나이다. 이곳에서 할머니 시신 얼굴이 보인다. 화장터에서 일하는 사람이 말을 걸어오기에 대화를 했는데 꽤 영어가 유창하다. 그는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면서 3시간 정도 화장터가 쉬기 때문에 지금이 밥 먹으면서 쉬는 시간이라고 한다. 덕분에 궁굼했던 것을 물어 볼 수 있었다.
화장은 천민 계급인 돔(Dom)만 할 수 있으며 조상 때부터 3000년 이상 이일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혹시 외국에서 살게 되면 어떤 직업을 할 건지 물어보니 자신은 화장터에서 일하는 운명을 타고 났기 때문에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다고 말한다.
바라나시 가트에 돌아다니는 개들은 타나 남는 시체를 먹는다고 이야기를 하며 개들 역시 카스트가 있는데 화로 근처에서 자고 있는 개들은 높은 계급이고, 계단에 있는 개들은 중간 계급, 강변에 있는 개들은 하층 계급이라고 한다.
바라나시는 인도 어느 지역까치 커버 하는지 물어보니 뭄바이, 델리를 망라한 인도 전역에게 화장을 하러 바라나시에 오며 이곳에서 화장을 하는 것은 힌두교 사람들에게는 크나큰 영광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지 못하면 이곳에서 화장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인도에서는 독신은 생각할 수 없으며, 독사에 물리거나 여우에 물려서 죽는 경우도 이곳에서 화장을 못한다고 한다.
하누만 가트(Hanuman Ghat)쯤에서 한국인 여행자 세 명과 함께 하게 되었다. 사실 한국 사람들이 넘쳐 나는 바라나시라 신기할 게 없지만 같이 이야기를 하면서 걸어갔다. 세 명 중에 둘은 고등학교 선생님이고, 한명은 취업을 앞둔 청년인데 주식과 경제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남쪽으로 걸어갔다.
오후 1시쯤 가트가 이어지는 가장 남쪽인 앗씨 가트(Assi Ghat)에 도착했다. 한국인 여행자와 헤어지고 출출한 차에 감자전 비슷한 음식을 사먹는데 아저씨가 장사 수완이 있다. 10Rp짜리 두개를 시켜서 먹었더니 다 먹을 때쯤 한개 서비스로 더 주겠다며 세 개를 철판에 굽는 것이다. 이미 굽고 있어 할 수 없이 먹고, 다 먹고 나서 50Rp를 주니 10Rp 거슬러주지는 않고 동그란 과자를 계속 준다. 10Rp를 거슬러 달라고 해도 요지부동.. 결국 군것질에 50Rp어치를 사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할리슈짠드라 가트(Harishchandra Ghat)에 들리니 많은 시신들이 운구 되어 갠지스 강에 적셔지고 있으며 화장을 기다리고 있다. 이 모습을 거부감 없이 그대로 볼 수 있는데 많은 서양여행객이 지켜보고 있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이곳.. 2002년 티벳 조장(시체를 독수리에게 먹임)을 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는 길에는 골목길로 들어섰다. 미로 같은 골목을 돌아다니는데 재미있는 것은 소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먹을 것을 찾고 있다. 소가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피해서 다니고 가끔 가게에 들어가려고 하면 몽둥이를 들며 쫓아낸다.
소를 비롯해 개, 염소, 원숭이 등 온갖 동물들이 이곳에서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가축들에게는 이곳이 진정한 선진국이 아닌가 싶다. 도시 전체가 가축 사파리라고나 할까?
동물도 이곳에서는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를 받는 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블루라씨에 들려 라씨를 한 컵 마시려고 가니 한국 여행자들로 꽉 차있다. 이곳 가게가 한국인 여행자들에게는 자연스럽게 만남의 광장이 되었다. 두 잔을 마시는 동안 많은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했다. 라씨를 두 잔 마시려고 하니 두 잔을 마시다 병원에 실려 간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내 위는 튼튼한 편이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숙소를 찾아 골목을 헤메다 숙소에서 500m 정도 떨어진 빤쯔깡가 가트(Panchaganga Ghat)로 나왔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북쪽도 둘러보기로 했다.
북쪽 가트에서는 이곳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빨래를 말리는 장면이 많이 보이며 이곳저곳에서 크리켓을 즐기는 아이들과 청년들이 보인다.
가이 가트 (Gai Ghat)에는 돌로 만든 소의 형상이 있는데 소의 모습이 귀여워 보인다. 뜨릴로짜 가트(Trilochan Ghat) 2개의 탑 사이에 흐르는 물이 성스럽다고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 이곳 물이 깨끗해봤자 얼마나 깨끗 하려구..
마지막으로 라즈 가트(Raj Ghat)로 가니 거대한 철교가 보인다. 갠지스 강 동과 서를 잇는 중요한 다리로 1층에는 기차가 2층에는 차가 다니고 있다. 라즈 가트는 철교가 생기기 전에는 선착장이었다.
이곳에서 가트 탐방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람 가트와 씬디아 가트, 닷따뜨레아 가트를 자연스럽게 둘러보고 숙소에 들어갔다. 하루 종일 걸어서 그런지 꽤 피곤하다.
Mishra 게스트하우스 옥상에 레스토랑이 있는데 가격이 꽤 저렴하다. 하루 종일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않아 오무라이스와 인도 라면을 시켰다. 옥상에는 갠지스 강이 한눈에 보이는데 마침 일몰이라 그 모습이 더욱 웅장했다.
저녁이 되니 꽤 추워졌다. 낮에는 항공 담요를 덮었는데 기온이 내려가서 아예 담요를 몸에 걸치고 식사를 했다. 계속 되는 추위에 두꺼운 옷을 살까도 생각해 봤지만 여행 기간이 며칠 안 남았기 때문에 옷을 사기가 곤란해서 담요를 덮고 다니며 근근이 버티고 있다. 계속 추위를 느끼는데도 감기는 전혀 기미가 없다. 이제 추위에 익숙해진 느낌이다. 감기는 추위에 당당한 자에게는 인연을 맺기 싫어 한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인도 여행을 시작하면서 목표로 세운 곳이 엘로라 석굴, 아잔타 석굴, 타지마할, 카주라호, 바라나시 가트, 보드 가야였는데 이제 보드가야 한 군데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