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2일(월)
류블랴나(Ljubljana) 슬로베니아의 수도로 생각보다는 작은 규모이다.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큰 도시로 14%의 인구가 살고 있지만 그 숫자는 28만 명.. 내가 살고 있는 원주보다도 5만명이 작다. 하지만 슬로베니아 국민총생산(GDP)의 25%를 생산하는 어엿한 산업화된 도시이다. 그만큼 슬로베니아가 작다는 뜻이다.
류블랴나는 에모나(Emona)라는 로마도시로 출발했고 15세기에 합스부르크 왕조가 통치했다. 이때 흰색의 교회와 저택이 많이 들어섰으며 ‘화이트 류블랴나’라는 별명도 그때 얻은 것이다. 1809년부터 1814년까지는 나폴레옹이 진출하기도 했다.
오전에는 류블라냐 시내를 탐방하고 다음 도시로 이동할려면 서둘러야 한다. 숙소에서 류블랴나 여행의 시작인 프레셰르노프 광장(Presernov Square)으로 이동했다. 시내 중심 강은 운하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어 종종 배가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강을 중심으로 카페와 바가 늘어서 있는데 밤에 왔으면 야경이 무척 아름다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트리플교 옆으로는 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다양한 기념품을 주로 팔고 먹거리 장터도 보인다.
광장에는 슬로베니아의 국민 시인 프레세롄을 기념한 동상이 있는 곳이다. 낭만주의의 선두주자였으며, 강렬한 문장으로 유명했던 시인이다. 시인의 시선이 머무르는 곳에는 그가 사랑했던 여인 율리아가 있다. 평생 사랑했지만 신분 차이로 함께 할 수 없었던 그들이었다. 지금은 동상으로나마 서로를 지켜보고 있다. 그러한 로멘스가 관광객들을 광장으로 이끌고 있다.
광장에서 류블라냐성 쪽으로는 트리플교(Triple Bridge)가 연결해 주고 있다. 말 그대로 3개의 다리가 모여 있으며 슬로베니아의 상징으로 류블랴나 엽서에 가장 많이 등장한다. 이곳은 북서 유럽과 남동 유럽 국가들을 연결시켜주는 위치에 있어 중세시대에 다리를 놓은 이후 1929~1932년에 두 개의 다리가 더 설치했다. 그 중에서도 드래곤 다리(Dragon Bridge)는 다리 입구에 포효하고 있는 용이 나를 맞이해 준다. (생각보다 크기가 작다.)
류블랴나 여행의 핵심은 류블랴나 성이다. 9세기에 처음 세워졌다가 1511년 지진으로 파괴된 후 17세기 초에 재건됐다. 요새를 올라가기 위해서는 걸어가거나 케이블카를 타야 하는데 그리 높지 않아 걸어서 올라갔다.
류블랴나성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서니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요새, 감옥, 병원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다가 지금은 각종 전시회와 이벤트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성 박물관과 내부를 관람하다가 전망대에 올라가는데 류블라냐 시내 전체가 눈에 들어온다. 아름다운 집들이 쭉 이어져 있는 웅장한 모습이다.
류블랴나성 관람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슬로베니아는 이탈리아와 크로아티아 사이에 작게나마 해안선이 형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피란(Piran)은 슬로베니아 가장 서쪽에 위치해 있으며 아름다운 도시이다.
국도를 타고 서쪽으로 향했다. 고속도로와 달리 차량이 많은 편이 아니라 평화로운 시골길을 쭉 달렸다. 2시간 정도 달리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포스토이나 동굴이 나온다. 세계에서 두 번째이자 유럽에선 최고로 큰 종유동굴이지만 오늘은 크로아티아 플리테비체까지 가야함으로 Pass.. 다시 서쪽으로 내달렸다.
항구도시 코페르(Koper)에 다다르자 내리막이 이어지면서 아름다운 도시가 보인다. 처음에는 코페르인 줄 알았는데 구글맵을 살펴보니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이다. 지금은 쉽게 갈 수 있는 이탈리아지만 냉전 시절에는 공산국가인 유고인들이 저 곳을 보며 서방 세계에 대한 동경을 했겠지?
코페르 시내를 관통해 다시 서쪽으로 달려 피란에 도착했다. 이 때 시간이 오후 1시. 피란은 관광지이기 때문에 주차하기가 까다롭다. 다행히 마을 초입에 주차 타워가 있어 이곳에서 주차를 했다. 주차비는 시간당 1.7유로. 2시간 정도 둘러보기로 했다.
피란은 크로아티아의 남쪽, 이탈리아의 북쪽과 접하고 있는 피란반도 끝에 위치한 해안도시이다. 오래된 중세도시라 할 만큼 도시 전체가 중세건축물과 풍부한 문화유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슬로베니아에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도시이다. 빽빽하게 늘어선 15세기 베네치아 고딕양식의 주택과 좁은 거리들, 트리에스테(Trieste)만의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는 언덕 위 성당 등이 주요 볼거리다. 또한,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 주세페 타르티니(Giuseppe Tartini)의 고향으로 타르티니 광장에는 그의 탄생 200년을 기념하기 위한 청동상이 있다.
아드리아해의 에메랄드빛의 아름다운 바다가 넘실거리고 중세의 가옥들이 이어져 있다. 마을 중심인 타르티니 광장으로 가니 광장 자체가 계란형인 특이한 광장이다. 광장 구경을 하고 골목을 헤쳐 47m의 성 조지 대성당에서 마을과 아드리아해를 내려다보았다. 성당을 둘러보고 다시 147개 계단을 오르니 15세기에 지어진 성벽이 보인다. 이곳이 마을의 뷰포인트~ 관람을 마치고 내려와 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는 빵 안에 짭쪼름한 소시지가 들어 있는 음식을 시켰는데 둘이서 먹으로 양이 너무 많다. 결국 남은 것은 챙기고 마을을 나섰다.
크로아티아 국경을 넘으니 검문소가 보인다. 크로아티아는 아직 EU에는 가입 승인이 되었지만 정식 절차가 남아 있어 아직까지는 유로라더지 국경 정보를 공유하고 있지 않다. 옆의 버스는 승객이 내려 짐 검사를 받는데, 동양인 둘이 차를 몰고 국경을 넘는데 별 의심 없이 입국 스탬프를 찍어준다.
크로아티아에 들어서니 자동차 연료가 떨어져 가고 있었다. 주유소에서 멈춰 숨을 크게 들이켰다. 유럽에서 첫 주유를 하는 긴장되는 순간.. 자동차에서 내려 연료캡을 열고 디젤이라고 쓰인 주유기로 주유를 한 후 계산만 하면 끝.. 뭐야? 우리나라 셀프 주유랑 비슷하잖아. 첫 주유를 무사히 마치고 다시 출발. A9도로를 달리다가 모토분(Motovun)으로 가기 위해 44번 도로로 들어섰다.
동행한 여자 친구가 여행을 하면서 모토분은 꼭 들리고 싶어 했다.(하긴 여행 루트를 그녀가 짰으니^^) 모토분이라는 이름은 낯설지만 이곳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천공의 성 라퓨타>의 실제 모델이 된 마을이다. 44번 국도를 따라 쭉 달리니 저 멀리 천공의 성(?)이 보이고 성으로 향하는 도로가 나온다.
모토분은 해발 고도 270m 지점에 위치하며 언덕 위에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경이 유명하다. 마을을 감싸는 성벽 안쪽에는 모토분을 다스렸던 여러 왕조의 문장이 있으며, 1세기경에 만들어 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로마인들의 묘비가 남아 있다.
1278년부터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를 받았으며, 당시에 지어진 견고한 성벽은 오늘날까지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세 구획으로 나누어진 마을은 요새의 탑과 성문을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다. 로마네스크 양식과 고딕 양식, 르네상스 양식이 조화된 건축물들은 모두 14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지어진 것들로 베네치아 공화국 식민지의 전형적인 건축 스타일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적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주차는 성 안으로 들어가면 요금을 내야해서 마을 초입의 공터에서 했다. 실제 주차 요금을 내고 주차한 차량과 거리차이는 얼마 되지 않았다.
오르막을 골목을 오르고 또 올라 정상에 다다르니 성문이 나온다. 성문 안으로 들어가 성을 돌아보니 천공의 성 아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치 내가 환웅이 되어 아래 세계를 내려다보는 느낌. 예전에 예멘의 하늘 도시 쉬하라와 비슷한 느낌이다.
모토분을 둘러보고 차량으로 내려오는데 여자 친구는 여행 전 사진에서 본 모습이 없다고 아쉬워한다. 사진은 모토분이 한눈에 보이는 풍경인데.. 그 풍경을 볼 수 있는 포인트가 어디인지 생각하고 있는데, 마을 정상에서 밑으로 차량이 모여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마을 입구에서 길 따라 2~3Km 남쪽으로 가다보면 휴게소와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이 모토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뷰포인트(View Point)다. 흐린 날씨이지만 모토분이 또렷이 보인다. 천공의 성을 사진에 담고 이제 플리트비체로 출발.
플리트비체까지는 최단거리로 218Km이지만 아드리아해를 드라이브 하는 기회를 놓칠 수 없지.. 다소 돌아가기는 하지만 갈림길인 리예카(Rijeka)에서 빠른 길인 동쪽 고속도로를 가지 않고 남쪽으로 향했다. 리예카 시내를 통과하는데 앞 차량이 비상등을 켜고 있다. 무슨 일인지 속도를 낮추니 과속카메라가 보였다. 하마터면 머나먼 타국에서 딱지 먹을 뻔했다. 그래도 이곳 차량은 의리가 있네.^^
E65 도로는 국도라 차량 속도는 느리지만 오른쪽 차창으로는 아름다운 바다가 펼쳐져 있다. 또 바다 건너 섬들이 쭉 이어져 있다.
해가 질 무렵 센(senj)에 도착을 했다. 플리트비체로 가려면 이곳에서 방향을 돌려 산악 도로로 들어서야 한다. 아름다운 아드리아해와의 이별이 아쉬워서일까? 여자 친구와 센에서 커피한잔을 했다. 해변으로 쭉 이어진 카페 중에 바다가 바로보이는 카페로 들어가 커피 한잔을 즐겼다. 한잔에 크로아티아 돈으로 10쿠나(HKN)이니 1800원 정도라고 보면 된다.
커피 한잔을 하고 산악도로로 향했다. 해안에서 가파른 산악을 올라가는데 구불거림의 정도가 심하다. 30분 정도를 오르고 나니 고개 정상이 보인다. 이곳에서 차를 멈춰 언덕 위에 올라 산 아래를 바라봤다. 웅장하고 장엄한 풍경이 펼쳐진다. 바다와 섬들이 한눈에 보이고, 해는 이미 지고 있어 일몰을 볼 수 없었지만 그 여운은 하늘에 펼쳐져 있었다. 이번 여행의 첫 번째 하이라이트이다.
이제 날이 어두워지고 산길 국도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국도는 포장은 잘 되어 있으나 길이 일차선이라 화물차 한 대가 앞서 달리면 뒤에 차들이 꼬리를 물고 느린 속도로 화물차를 따라가야 한다. 지름길이 없을까?
지도를 보니 실선으로 작은 도로가 보인다. 5128번 도로이다. 실선인 것을 보아 메인도로가 아닌 지방도이긴 해도 직선으로 목적지까지 닿아 있다. 일단 가보자.
Otocac에서 5128번 도로를 들어서니 자그마한 도로가 산 속으로 이어져 있다. 날이 어두운데다 산속을 헤쳐가야 하는 형국이다. 지나가는 차량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현지사람들도 잘 이용하지 않는 도로다. 도로가 워낙 좁아 가끔 맞은편에서 차량이 올 때면 양보하며 지나는 것도 고역이다. 달빛도 없는 숲속이라 으스스한 기분이 든다. 가끔 야생 동물들이 라이트에 비춰지는 모습~ 이건 유령이나 드라큘라가 나올 분위기? 여자 친구에게 이야기 하니 연신 무섭다고 한다.
역시 작은 도로를 현지인들이 가지 않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도로가 워낙 좁고 숲을 헤쳐 나가야하기 때문에 운전을 신경 쓰면서 해야 했다. 으스스한 숲을 벗어나는 데는 2시간이 정도가 걸렸다. 드디어 메인 도로인 42번 도로가 나타나고 20분을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도착 시각은 오후 11시 늦은 시각이지만 주인 할머니께서는 반갑게 맞아주신다.
오늘은 류블랴나, 피란, 모토분, 아드리아해, 산길인 5128번 도로 등 강행군을 했기는 해서 여장을 풀고 간단하게 식사를 하자마자 뻗었다. 여행을 시작하고 힘든 여정이기는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계획했던 것에서 하루라는 시간을 더 벌었다. 내일은 요정들의 호수 플리트비체 탐방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