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일(일)
오전 10시 빈트후크행 버스가 출발하는 관계로 오전 9시에 집을 나섰다. 주인장인 피터는 2일치 숙박비 R260 받고 기분이 좋아졌는지 버스터미널까지 태워줬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ATM에서 남아공 랜드화를 뽑은 후 간단한 준비를 하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짐차를 따로 끌고 가는데 짐의 무게를 재더니 짐표를 준다. 1인당 20Kg까지는 허용된다.
30분 늦은 10시 30분에 출발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승객이 반 정도만 찼다. ‘이렇게 좌석을 남길 거면서 왜 비싸게 받는 거지?’ 그 의문은 버스를 타다보니 풀렸다. 버스는 마을 중간마다 정착을 하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승객들이 탑승한다. 결론적으로 빈트후크에 도착 했을 때는 완전히 꽉 찼다.
케이프타운을 벗어나니 넓디넓은 초원이 펼쳐지고 점점 건조해지는 느낌이 난다. 버스를 타다가 지겨울 때면 정거장에 정차하는데 그곳에는 슈퍼와 주유소가 있어 승객들은 내려서 먹거리를 사먹는다.
도중에 한국인 여행자가 탔는데 내 옆자리가 지정되었다. 버스 안내원이 같은 한국인이라 배려를 해 준 것 같다.
한국인 여행자에게 몇몇 다른 한국 여행자들에 대해 들었는데, 케이프타운에 있는 동안 짐이 도착하지 않은 한국인 여행자를 세 명이나 보았다고 한다. 한 여행자는 짐을 찾았는데 누군가가 배낭을 뒤졌다. 아마 요하네스버그나 케이프타운에서 비행기가 멈출 때, 수화물 담당 직원들이 한국인 배낭만 골라 풀어헤치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인 여행자 배낭인지는 어떻게 알까? 공항에서 짐을 붙일 때 출발지와 목적지를 표시하는 라벨을 붙이는데 인천표시인 'INC'를 골라 배낭을 뒤지는 것 같다. 이야기를 해주는 한국인 여행자는 카타르 도하에 스탑오버를 해서 출발지가 도하로 되어 있기 때문에 무사한 것 같다고 이야기 한다.
만약 다른 나라 여행자 배낭에 손을 댄다면?
그때는 항공사를 발칵 뒤집으면서 손해배상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할 것이다. 항공사도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변상을 해주고 훔친 이를 잡아내지 않을까 싶다. 그렇지만 한국인 여행자는 도난을 당하면 항의조차 안하기 때문에 이를 안 수화물 담당 직원들이 배낭에 손을 댄 것이 아닐까 싶다. 여행 중 불합리한 일을 당했을 때 당당하게 항의하고 변상을 받아내는 것은 나를 위해서이지만 나아가 다음 여행자를 위한 배려라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밤이 되어 남아공-나미비아 국경에 도착했다. 통관절차가 몇 개 있기는 하지만 인터케이프 버스를 타서 그런지 크게 태클을 걸지 않고 통과시켜준다.
국경을 넘으면서부터 휴대폰 로밍이 되지 않는다. 당분간 한국과 나를 이어주는 연결통로가 끊어졌다.
1월 3일(월)
잠에서 깨니 주변에는 사바나 지역이 펼쳐져 있다. 나미비아는 전체가 사막 지역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사바나 지역이 보인다.
오전 7시에 빈트후크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인포메이션센터에서 렌터카와 스와코프문드행 버스를 알아 본 후 카멜레온 백패커스에서 여장을 풀었다. 카멜레온 백패커스는 도미토리가 R110이다. 나미비아 달러(N$)가 있지만 랜드화와 환율이 같고 랜드화도 같이 통용되기 때문에 따로 환전 할 필요는 없다.
나미비아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혹독한 지역에 속하는데 이곳에 처음 살기 시작한 사람은 부시맨이라고 불리는 산(San)족이다. 다음은 코이코이(Khoi-Khoi)족이 이곳을 차지한다. 코이코이족은 사냥을 하기보다는 가축을 기르는 부족이었으며 고고학적인 기록에 따르면 최초로 도자기를 제조한 부족의 하나였다.
2천3,4백년전에 처음으로 반투족이 나미비아 남중부의 고원지대에 나타나게 된다. 반투족이 등장함으로써 남아프리카 사회에 최초로 부족의 구조가 형성된다. 다른 부족들은 사막이나 오카방고 삼각주(Okavango Delta)의 늪지대로 쫓겨나거나 반투족의 노예가 된다.
나미비아는 유럽인들에게도 발견되기는 했지만 세계에서 가장 메마르고 황량한 해안선이기 때문에 죽음의 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특히 스켈리톤(Skeleton)해안은 사막과 바다가 이어져 74km 걸쳐 이어져 있는데 바다에서 조난을 당해 이곳까지 탈출을 해도 물이 없어 살아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해골 해안이라고 이름 지어졌다.
유럽인은 15세기말 인도 항로를 찾던 포르투갈인이었지만 이곳을 식민지로 삼은 것은 19세기말 독일의 비스마르크에 의해서이다. 분열되어 있다가 뒤늦게 통일해 제국을 형성한 독일로서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은 이곳을 식민지로 삼았다.
이곳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으며 독일은 1차 세계대전에 남아프리카 원정군에 항복하여 이곳을 내준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남아프리카는 국제연맹이 정한대로 나미비아지역(그후 서남아프리카(West South Africa)로 알려짐)을 지배하는 위임통치를 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후에 남아공은 이곳을 합병을 하려고 하지만 국제사회로가 승인하지 않았다. 독일 식민지시대 이래 나미비아인들은 강제노동자로 전락하였으며 이것은 1950년대 말 대중시위와 민족주의가 등장하는 주요한 원인이 된다. 1960년까지 대부분의 정당이 남서아프리카 인민단체(SWAPO)가 결성되어 활동하게 되고, 1966년 유엔회의는 남아프리카의 위임통치를 끝맺는 것에 대해 결의하고 나미비아 지역을 관리하기 위해 남서아프리카 의회를 세운다. 그와 동시에 SWAPO는 게릴라 전법을 채택하지만 유엔이 나미비아에 국내정부를 세우지 못함으로써 남아프리카가 지배권을 주장기가 더 쉽게 된다.
남아프리카는 약 1만9천명의 쿠바군이 이웃국가인 앙골라에서 철수하지 않으면 나미비아의 독립에 대하여 유엔이 감독하는 어떤 프로그램에도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부했다. 이에 대응하여 SWAPO는 나미비아 북부지역으로 활동을 엄하게 제한하면서 게릴라활동을 강화하게 된다. 나미비아 국민들은 전쟁에 지치게 되고 경제는 심하게 악화된다. 1985년까지 남아프리카 역시 돈에 쪼들려 고생하고 있었으며 자체내의 내부문제로 정신이 없었다. 유엔이 지원한 협약으로 남아프리카군이 나미비아에서 떠나면 쿠바군도 앙골라에서 떠날 것을 보증하게 된다.
유엔의 감시하에 1989년 11월에 선거가 실시되고 SWAPO가 막대한 다수표를 얻게 된다. 헌법이 1990년 2월에 채택되고 다음달에 SWAPO의 지도자인 샘 누요마(Sam Nujoma)가 대통령직을 맡으면서 독립을 하게 된다. 2004년에도 SWAOP가 압승을 했고 포함바가 새 대통령이 된다.
오랜 식민통지를 받은 나미비아는 가장 최근에 독립한 아프리카 국가이다. 열악한 자연환경 때문인지 한반도의 4배 가까운 영토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210만명을 웃돈다. 수도인 빈트후크는 24만명 정도이다. 내가 살고 있는 원주보다 인구가 적다.
카멜레온 백패커스에서는 아침 식사를 제공한다. 우유, 주스, 식빵, 요거트, 시리얼 등을 원하는 대로 먹을 수 있다. 나미비아 여행의 핵심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나미브 사막 탐방이다. 그걸 위해서는 빈트후크에서 318Km 떨어진 세스림(Sesriem)까지 가야 하는데 투어로 가면 무려 R3000 정도를 부른다. 숙소에는 2박 3일에 R3850이다. 다른 곳을 알아보아도 비슷한 가격이다. 이럴 것을 대비해 자동차 렌터 하기 위해 국제운전면허증을 준비해왔다. 식사를 마치고 빈트후크 탐방도 할 겸 혹시나 있을지 모를 동행자를 찾을 겸 시내로 나갔다.
사실 빈트후크 자체가 작아 시내라고 할 것도 없다. 빈트후크의 상징인 독일 교회 Christuskirche를 중심으로 State 박물관과 국립박물관(National Museum of Namibia)을 들렸다. 두 박물관 다 입장료는 없다.
State 박물관에 들어가니 방명록에 이름과 국적을 적은 후 소감을 적으라고 한다. 소감은 ‘Happy New Year'이라 썼다. 허름한 박에는 나미비아에 서식하는 동물과 원주민의 생활상에 대해 전시가 되어 있다. 한번 둘러보고 나오려고 하니 박물관 직원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물어본다. Korea라고 대답하니 한국 사람치고 키가 크다며 혹시 다른 나라 혈통이 아닌 묻는다. 나보다 큰 사람들이 쌔고 쌨는데.. ‘음 아마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 시대에 아마 오지 않았을까?’ 라고 대답했다. 우스꽝스러운 대답에 직원과 함께 웃었다.
국립박물관은 State 박물관 보다는 낫기는 하지만 허름한 건 마찬가지이다. 박물관에 들어가니 독일 식민지 시대부터 독립 이후까지의 역사가 사진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다. 남아공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간단한(?) 시내 탐방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 자동차 렌터를 알아보았다. 아무래도 투어를 해서 가는 것보다 렌터를 하는 것이 저렴하고, 또 여행 전 사막을 질주하는 상상을 하곤 했는데 그걸 실천하기로 했다. 단지 이곳 운전석과 차선이 우리나라와 반대라서 걱정이 되기는 한다.
숙소 안에는 여행사가 있는데 여행사를 통해 자동차를 알아보았다. 이곳에서는 차를 빌리는 것을 Rent가 아니라 Hire라고 부른다. 혼자 갈 것이기 때문에 가장 작은 차량을 선택했고, 보험은 다 처리가 되는 Full Cover. 거리 제한이 없는 차로 선택했다. 1일에 R415이다. 3일을 빌렸는데 R1,245이다. 카드로 결재하려고 하니 3%가 더 붙는다고 해 현금으로 결재했다. 출발 전 렌터카 회사에서 R1,000를 신용카드로 긁어야 하는데 결재가 아닌 Deposit.. 일종의 보증금이다. 자동차를 정상적으로 반납하면 결재되지 않는 금액이라고 한다.
코스는 빈투후크~세스림(나미브사막)~스와코프문드~빈투후크로 정했다. 여행사 직원에게 도로 상태를 물어보니 괜찮다고 답한다.
빈투후크~스와코프문드 미니버스 편도가 R220이다. 왕복 R440인데 차라리 렌터를 해서 세스림(Sesriem)에서 곧장 스와코프문드로 가기로 했다. 한꺼번에 만은 돈이 들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덕분에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되었다.
과연 3일 동안의 반대편 운전을 잘 해 낼 수 있을까? 최대한 조심해서 여행할 것이다.
카멜레온 백패커즈의 같은 방을 쓰는 여행자들과 친해져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파일럿인데 잠시 휴가를 나온 노르웨이 청년, 무작정 나미비아로 여행 온 핀란드 아가씨, 빈트후크에 온지 3주가 되었지만 아직 아무것도 안한 독일 청년 알렉스. 뒤늦게 대화한 알렉스는 내 이름을 묻더니 Park 라고 하니까 National Park(국립공원)이라며 재미있어 한다. 그대로 내 별명이 국립공원이 되었다. 알렉스가 요리한 팬케이크를 와인과 곁들이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북한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데 그에 대해 많은 것을 묻는다. 넷 다 영어로 소통을 하기는 하지만 나를 제외하고 다들 독일어를 알고 있기 때문에 가끔 독일어가 섞여 나온다. 그들에게 렌터카를 타는데 오른쪽 운전석은 처음이라고 말하니 어렵지 않다고 이야기하며 기어 위치와 엑셀, 브레이크, 클런치 위치는 같다고 설명한다. 사실 긴장이 많이 되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안심이 되었다.
밤이 깊을수록 비가 많이 내린다. 여행자들은 맥주한잔 더 하자고 청했지만 내일 일찍 일어나 여행을 시작해야 하는 관계로 아쉽게 하루를 마무리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