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2일(수)
새벽 3시까지 여행기를 작성하고 늦게 잤지만 일어난 시각은 아침 8시..
일어나자마자 마을 주변을 걷는데 멧돼지 한 마리가 새끼 4마리를 데리고 길을 건너는 도중에 나와 마주쳤다. 멧돼지와 내가 눈이 마주쳤는데 순간 움찔했다. 나한테 갑자기 돌진 하는 것 아니야? 그렇다고 도망치면 오히려 쫓아온다는데..
마침 지나가는 차량이 있어 세워서 물어보니 이곳에서 흔한 일로 조용히 지나가면 별 일 없다며 걱정 말라고 한다. 옆을 지나가기는 그렇고 가만히 서 있다 보니 멧돼지도 경계를 풀고 숲속으로 사라진다.
나름 긴장 된 산책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오니 도미토리에 한국인 여행자와 마주쳤다. 사실 어제 물건은 있는데 밤에 들어오지 않아 내심 누구인지 궁금했는데 미국에서 유학하는 한국학생이다. 그 학생은 빅토리아폭포에서 매일 액티비티(활동)을 하고 있다면서 오늘은 코끼를 타고 투어를 하는 날이라고 한다. 투어비를 물어보니 따로따로 하지 않고 5개(래프팅, 말 타기, 코끼리 투어, 크루즈 여행 등)를 한꺼번에 묶어 400달러에 하기로 했다며 오늘이 4일째라고 한다. 제대로 이곳 여행을 즐기는 학생이다.
시내 인터넷 카페로 가 어제 작성한 여행기를 올리려고 하는데 속도가 너무 느려 홈페이지가 열리지 않는다. 30분 내내 노력을 해도 열리지 않기에 포기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종료가 될 때쯤에 갑작스럽게 홈페이지가 열린다. 결국 1시간 반의 노력 끝에 여행기를 올릴 수 있었다. (30분에 1$)
메일로 말라위의 선교사님에게 연락을 보냈는데 바로 답장을 주신다. 선교사님에게 말라위에서 뵐 수 있을지를 여쭤봤는데 언제든지 오라고 허락하셨다. 말라위를 여행하기로 확정했지만 여기서 선택을 할 것이 생겼다.
말라위는 한국인은 사전에 비자를 받고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잠비아 루사카에서 비자를 받아야 한다. 오늘은 수요일인데 내일은 어떻게든 잠비아 루사카로 가야하고 금요일인 모레 아침에 말라위 대사관으로 가서 비자를 받아야 일정에 맞는다. 그렇지 않으면 토요일, 일요일은 대사관이 쉼으로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온 상태가 심신이 지쳐 빅토리아에서 며칠 쉬려고 했지만 상황이 그걸 허락하지 않는다. 오늘 숙소 체크아웃을 하고 빅토리아 폭포를 과람한 직후 잠비아로 넘어가기로 했다.
어제 푸짐하게 먹었던 피자인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배낭을 바리바리 싸들고 빅토리아 폭포로 향했다. 거리에 나가면 삐끼들이 나와 짐바브웨 달러를 사라고 저마다 성화이다. 짐바브웨 통화는 이미 없어졌기 때문에 화폐로서의 가치는 없지만 워낙 터무니없는 액수를 표기하다보니 관광객들이 기념으로 구입을 한다. 제일 큰 화폐 단위는 100조달러인데 어짜피 환전을 해야 할 보츠와나 풀라로 100조달러 지폐를 샀다. 이게 만약 US 달러면 세계 경제를 주무를 수 있는 금액이다.
빅토리아 폭포는 20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간단한 거리인데도 폭포가 나오지 않는다. l도를 보니 폭포 쪽으로 간 것이 아니라 상류 쪽으로 갔다. 나라면 당연히 길을 잘 찾을 거라는 방심이 부른 실수이다. 힘들기는 하지만 덕분에 계획하지 않은 큰 바오밥 나무를 관람할 수 있었다.
폭포로 가기 전 은행에서 200$를 인출했다. 짐바브웨 여행을 하면서 유리한 점은 이곳에서는 달러가 통용되기 때문에 ATM을 이용하면 $가 나온다는 것이다. 주변의 대부분의 나라가 비자를 $로 받기에 $가 필요한 여행자는 이곳에서 인출을 하면 된다.
12시에 폭포로 나섰지만 잠깐 헤매어서 입구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 10분이다. 입장료 30$를 내고 매표소에 짐을 맡긴 후 폭포를 관람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빅토리아 폭포는 최대 폭이 1,700m 가장 큰 용소는 낙차가 108m로 세계 3대 폭포 중에 하나이다. 여행객에게는 남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빼 놓을 수 없는 명소 중 하나이며 건기에도 물보라가 심해 옷이 젖을 정도이다.
짐바브웨에서는 관광지인 이곳을 활성화 하고자 빅폴이라는 도시를 따로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할 정도이다. 빅폴은 외국인이 많이 들락거려서 그런지 다른 도시와는 달리 여행객에게 안전한 분위기이다.
빅토리아 폭포를 발견한 리빙스턴의 동상을 기점으로 탐방을 시작했다. 폭포 가장 서쪽에서부터 웅장함이 느껴진다. 폭포의 엄청난 수량은 수직 절벽에서 직선으로 떨어지며 거대한 물보라가 형성이 된다. 이 광경을 사진에 담아두려고 했지만 물을 먹어서 그런지 사진기가 계속 말썽이다.
폭포 관람은 Devil's Cataract, Main Falls, Horseshoe Falls로 이어진다. 폭포 관람을 하며 연신 사진기와 씨름을 하고 있는데 ‘혹시 한국 사람인가요?’ 말이 들린다.
이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임에도 낮 시간이라 그런지 둘러보는 관광객이 거의 없다. 아무도 없다시피 한 이곳을 혼자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한국 가족 여행객을 만나니 반갑다. 한국 가족이 남아프리카 여행을 와서 오늘 잠비아에서 짐바브웨로 넘어왔다고 말한다. 가족 전체가 아프리카 여행을 하다니.. 대단한 가족이다. 두 내외분은 교수님 부부이고, 갓 군대를 제대한 아들과 의과 대학원 입학을 기다리는 조카까지 넷이서 장기 여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 가족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같이 폭포를 관람했다. 덕분에 폭포를 배경으로 내가 들어 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짐바브웨쪽 폭포 끝부분에는 Danger Point가 있는데 말 그대로 사진 찍으러 깊숙이 들어갔다가 미끄러질 위험이 있는 곳이다. 조심스럽게 이곳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이제 짐바브웨에서는 끝.. 이제 잠비아이다.
폭포 입구에는 폭포에 관한 많은 설명이 되어 있는데 이곳은 용암이 흐르던 길목이라 낙차가 큰 절벽이 형성되었으며 강이 지그재그로 이어진다는 설명이 되어 있다. 수량표를 보니 1월은 수량이 적은 시기로 표기되어 있다. 수량이 많을 때 왔으면 정말 멋졌을 것이다.
오후 3시 30분 입구에서 짐을 받고 잠비아로 출발했다. 짐바브웨에서 출국 도장을 받고 빅토리아폴 다리를 건너는데 번지점프가 한창이다. 108m의 아찔한 높이를 뛰어내리는데 가격을 물어보니 150$라고 한다.
잠비아 쪽 빅토리아 폭포를 관람하고 입국을 하려고 했지만 갑작스럽게 비가 엄청나게 쏟아진다. 갑작스러운 비에 잠비아 이민국까지 급하게 뛰어갔지만 몸 전체와 배낭이 젖었다. 잠시 몸을 추스르고 비지피는 50$를 내고 잠비아 입국 절차를 밟았다. 잠비아쪽 빅토리아 폭포를 못 보게 되었지만 비가 많이 오는 이상 어쩔 수 없다.
이곳에서 리빙스턴 시내까지는 11Km 떨어져 있기에 이민국 직원에게 어떻게 들어가는지 물어보니 택시는 10$이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타면 2$에도 갈 수 있을 거라고 한다. 마침 트럭 운전사인 사내가 입국 절차를 밟기에 리빙스턴 시내까지 태워줄 수 있는지 물어 보니 타라고 한다. 트럭운전사는 콩고까지 간다고 말하며 시내 입구까지 나를 태워준다. 시내에 도착할 때까지도 계속 비가 내리고 있다. 시내 입구에 내리니 갑작스러운 비에 길가에 물이 차 있다.
Mazhandu Family 버스 터미널로 가 오늘 루사카로 출발하는 버스가 있는지 물어보니 오늘 8시 반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지만 이미 매진되었다고 말한다. 비에 옷이 많이 젖었기 때무에 오늘 정비하고 내일 출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근처 은행에서 필요한 현금을 인출 했는데 1$에 4,750콰차로 계산을 한다. 내일 오전 9시에 출발하는 버스표(80,000콰차)를 샀다.
카메라는 비에 젖어 완전히 작동이 멈췄다. 다행히 가져 온 아이폰이 사진 기능이 되기는 하지만 줌인 기능과 플래시 기능이 없다. 사진기가 없는 이상 선택의 여지는 없다. 그래도 사진기가 빅토리아 폭포까지는 그런대로 견뎌줘서 고맙다.
버스표를 예매하고 배낭여행자들에게 유명한 숙소인 졸리보이스에 가서 도미토리를 알아보았다. 4인실 도미토리는 12$, 사람이 많은 도미토리는 8$이다.
이곳은 배낭여행자의 천국이다. 여행자가 쉬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시설이 잘 되어 있으며 인터넷(1시간 2$)도 여행하면서 가장 좋은 상태이다. 비를 많이 맞은 상태라 그런지 이곳 숙소의 안락함이 느껴졌다. 곧바로 짐을 추스르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니 몸이 나긋해지면서 피로가 풀린다.
같은 방의 영국 할아버지는 잠비아에서 간호사로 봉사하는 딸을 보러 온 김에 함께 빅토리아 폭포를 찾았다며 말을 건다. 딸을 아프리카로 보내는 것에 선뜻 동의했는지 물어보니 딸의 선택이기 때문에 불안하기는 했지만 허락했다고 말하며 지금 생각하면 참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스산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이야기 하신다.
이야기를 심도 있게 하다 보니 세계 경제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할아버지는 낯선 동양 청년이 영국 경제 문제와 버블 효과, 네덜란드의 튤립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하니 신기한 표정이다. 결국 세계 경제는 모두의 문제이며 이제는 따로 해결 할 수 없다는 경지에 이르자 나에게 ‘네 영어는 내가 쓰는 영어와는 좀 다르지만 그래도 뜻은 잘 이해 할 수 있었어.’라고 나름 평가를 해 준다. 이런 평가면 잘 한 건가?^^
밥을 시켜 식사를 하는데 네덜란드 청년 두 명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네덜란드 청년에게 네덜란드는 왜 좋은 축구 선수가 많이 배출되는지에 대해 물어보니 네덜란드에서는 축구에 많은 유망주들이 모이고 체계적인 축구 학교가 있다고 한다. 또한 네덜란드 축구 클럽은 좋은 선수를 육성해 빅클럽에 비싼 가격에 팔면서 수입을 얻고 있기 때문에 유망주 육성에 노력을 많이 하지만 좋은 성적을 내면 그 다음해 주전 선수들이 다른 팀으로 이적해 팀의 전력이 약해지는 단점도 있다고 말한다. 네덜란드 청년에게 K1에서 활동하는 네덜란드 선수들의 이야기와 전국의 운하가 얼면 열리는 전국 스케이트 대회 이야기를 하며 즐겁게 대화를 했다.
졸리보이스에서 한국인 대학생 여행자와 우간다에서 코이카 단원 활동을 하다가 휴가를 온 여성과 함께 이야기를 했다. 그 중 한 대학생은 철학과를 막 졸업했는데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걱정을 하고 있다.
철학은 모든 학문에 기초가 되지만 그렇기에 딱히 똑 부러지는 취직자리가 없는 전공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대학원에서 뮤지컬을 배우면서 석사 논문을 쓰는데 한국형 뮤지컬이 초창기 단계로 그에 대한 철학이 없는 것이 매우 안타까웠는데 뮤지컬의 철학을 세워보는 건 어떤지 권하니 생각해 보겠다고 한다. 만약 이 친구가 내 말을 듣고 뮤지컬의 철학적 연구를 해서 한국형 뮤지컬의 철학을 세운다면 오늘의 대화가 기록에 남게 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그것도 잠비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