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5일(토)
새벽 4시에 일어나 조용히 짐을 챙기고 터미널로 갔다. 새벽 5시 출발이지만 이것저것 짐을 싣느라 20분 늦게 출발했다. 확실히 지난번 이용했던 마잔두 패밀리버스 보다는 확실히 서비스가 떨어진다.
치파타로 가는 길은 Great East Road라고 잘 포장된 도로를 빠르게 달린다. 말라위로 향할수록 산악지형이 나타난다. 버스는 도로에 사람이 나타나거나 간혹 동물들이 나타나면 큰 경적소리를 내는데 그 소리가 매우 커서 짜증날 정도이다. 마잔두 버스를 흉내 내어 과자와 음료수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사람을 사람과 화물을 마구 태워서 발을 디딜 틈이 없다.
오전 11시에 Katete에 도착하니 많은 사람이 내린다. 이제야 안정된 좌석을 확보할 수 있다. 버스가 출발하고 1시간 뒤에 치파타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환전을 하라며 많은 사람들이 몰린다. 남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이렇게 환전하라고 몰린 적이 없었는데..
말라위 콰차와 잠비아 콰차를 1:32 비율로 바꿨다. 원래 1:28이라고 들었지만 잠비아 콰차를 더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손해 볼 것을 알면서 바꿨다.
여기서 국경까지는 30Km 떨어져 있는데 20,000콰차(아직은 잠비아 돈)를 주고 승용차를 잡았다. 그런데 한 청년이 집요하게 US달러를 바꾸자고 한다. 처음에는 1달러에 140콰차를 부르더니 150콰차 155콰차로 올린다. 청년은 탄자니아로 가기 위해 달러가 필요하다며 절박한 표정으로 바꾸라고 한다.
1달러에 155콰차라.. 1년 전 정보인 론니에 보니 138콰차던데.. 미리 환율을 알지 못해 당황스러웠다. 어짜피 달러를 환전을 해야 하기에 100달러를 환전했다.
잠비아 국경에 도착하니 환전상들이 계속 붙는다. 이곳에서는 1달러에 165콰차까지 오른다. 아무래도 달러가 많이 부족한가보다. 출국 스탬프를 받으려고 하니 이민국 직원은 별 표정 없이 귀찮다는 듯 출국 도장을 찍어준다.
말라위로 넘어와 입국 스탬프를 받으려고 하니 이민국 직원이 깐깐하게 입국 이유를 물어본다. 말라위 비자는 국경에서 레터를 받고 수도인 릴롱궤에서 비자를 받아도 된다고 들었지만 만약 그렇게 했으면 쉽게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말라위는 본래 계획에 있었던 나라는 아니다. 작은 나라에 한국인만 100$ 비자피를 받는 나라라 방문 계획이 없었고, 무엇보다 여행 동선이 나오지 않았다. 짐바브웨에서 그레이트 짐바브웨를 보기 위해서는 잠비아 루사카에서 짐바브웨 하라레로 갔어야 하지만 미리 그레이트 짐바브웨를 보고 말라위를 방문하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
여행을 떠나기 2주 전 행정실을 방문 해 남아프리카로 여행을 간다고 하니
‘어? 우리 언니 내외가 말라위에서 선교활동을 하는데?’라고 말한다.
우리학교 직원인 박희정 주사님 언니 내외가 말라위에서 장기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며 혹시 방문하면 이야기 해달라고 한다. 남아프리카를 여행하면서 현지 사정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기회이기에 말라위를 방문한다고 이야기 했다. 다음날 박희정 주사가 선교사님이 허락하셨다면서 말라위를 꼭 들리라고 하셨다.
말라위 화폐 단위는 말라위 콰차로 MK로 표기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계산하기 편하도록 MK1은 7원으로 계산한다. 국경을 넘으면 근처 마을까지 12Km 가야 하는데 승용차를 나눠 타(MK200) 마자 선교사님에게 전화를 걸어 말라위 국경 도시에 도착해 전화 부스를 찾아 곧장 선교사님에게 전화를 드렸다. 선교사님은 릴룽궤의 크로스로드(Cross Raod)에서 만나자고 하신다.
마을에서 릴룽궤까지 버스피는 MK700인데 출발 전 삶은 계란 4개와 음료수를 사먹었다. 릴룽궤까지는 120Km 떨어져 있는데 버스는 중간에 거의 서지 않고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크로스로드 도착 시각 오후 3시 30분..
도착하자마자 선교사님에게 전화를 드리려는데 전화할 곳이 없다. 크로스로드는 쇼핑몰이 있기는 하지만 토요일이라 많은 가게가 문을 닫았다.
‘혹시 목사님 뵙기로 한 한국분이세요?’
차에서 한 여성분이 반갑게 소리치신다. 마침 장보러 오신 선교사님 부인과 마주쳤다. 아이들은 오빠, 형 하면서 반갑게 맞아준다. 평원이와 시원이인데 아직 1,2학년 아이들인데 이 아이들로부터 형, 오빠 소리를 듣다니.. 그냥 삼촌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또한 진주에서 이곳으로 단기 선교를 온 분들이 맞아 주셨다.
‘그런데 이곳이 시내 맞아요?’
주변이 워낙 한적해 이곳에 변두리인줄 알았는데 이곳은 시내 한가운데가 맞다고 하신다. 릴룽궤가 수도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 규모가 작다고 하신다. 그렇다 하더라도 3층 이상의 건물이 보이지 않다니..
강원화 선교사님은 말라위에서 2년째 선교 활동을 하시며 이곳 어린이들을 교육시키는 봉사를 하신다. 300명의 아이들 교육을 시키면서 고생을 잔뜩 하시고 있다.
선교사님에게 말라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말라위는 세계 최대 빈국이면서 공무원의 부패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루에 MK200의(1400원 정도) 일당을 받으며 일을 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신다.
이곳의 상권은 인도인들이 잡고 있는데 10년째 임금을 올려주지 않으며, 서로 담합을 통해 생활용품을 비싸게 받고 있다. 선교사님은 선교 사업을 하시면서 현지인들에게 비교적 높게 일급을 주시기는 하지만 다른 곳과의 형평성 때문에 크게 주지는 못하는 형편이라고 하신다.
말라위에서 모든 전자 제품은 남아공의 2배이다. 내륙 국가이기에 다른 나라 항구에 컨테이너를 들여와 육로로 수송을 해야 하는데, 컨테이너 한대에 항구까지는 2000$이면 되지만 육로로 수송하는데 돈이 더 많이 들어 이곳까지는 7000$ 정도를 지불해야 한다. 결국 선교를 위한 물품을 들여오는데 어려운 점이 많다고 하신다.
말라위에서는 내전이 없고 정치가 비교적 안정된 편인데 역설적이게도 이곳에는 서방 기업이 탐낼만한 자원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관심 밖이기에 평온함을 유지하기는 하지만 사람들의 생활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이곳의 평균 수명은 40세를 약간 웃돌며, 인구 전체에서 15세 미만의 인구가 50%가 넘는 것은 그만큼 의료 수준이 떨어짐을 반증한다.
말라위에는 어른을 기준으로 40여명의 교민이 있는데 예전에 한국 기업이 말라위에서 공사를 하다가 부도를 맞았는데 그때 이곳에 남은 분들이 자리를 잡으셨다.
선교사님은 릴룽궤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Salima에서 선교 사업을 하시는데 마침 주말이라 단기 선교하는 분들과 함께 릴룽궤 댁으로 오셨다고 한다. 내가 시간을 잘 맞춰서 온 샘이다.
선교사님 댁에 오자마자 점심 식사를 했지만 곧장 저녁 식사를 하며 선교사님 가족과 단기 선교로 온 세분과 함께 이야기를 하며 저녁 식사를 하였다. 오랜만에 맞보는 한국 음식.. 그것도 불고기..
선교사님의 매형이 강원도 초등학교에서 근무를 하고 있으신데 혹시 홍천에 근무하시는 김영철 선생님을 아시는지 물어 보신다. 강원도는 거의 춘천교대 출신이 초등학교 교편을 잡기 때문에 간혹 아는 분을 만나게 되지만 김영철 선생님이라..
학번이 물어보니 88학번이라고 하신다.
앗 기억난다..
교사가 되어서 기억나는 게 아니라 대학교 1학년인 14년 전에 만나 뵈어 신세를 졌었다. 당시 대학생이 되어 고등학교 시절 꿈꿨던 자전거 전국일주를 하는데 일주 첫날 횡성에서 잘 데가 초등학교 시름장에서 침낭을 깔고 자려는데, 그때 김영철 선생님이 관사에서 자라고 배려해 주셨다. 아.. 벌써 14년이 지났구나..
나 역시 까맣게 잊고 있다가 여기서 그 기억이 난다. 홈페이지(www.travel4edu.com - 국내여행 - 자전거 전국일주)에 보니 그 때 상황을 자세히 적어 놓았다. 그때 두 내외가 참 선남선녀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변하셨을까? 그당시 애기였던 아이도 지금은 중학교 3학년이라고 하신다.
14년 전에는 누나집에서.. 지금은 동생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다. 이런 인연이 있을 줄이야..
수많은 우연이 작용해서 14년 전 그 당시 횡성 성북 초등학교에 나를 인도하였고, 또다른 수많은 인연이 작용하여 이곳까지 내가 왔다. 김영철 선생님은 지금 홍천에 근무하신다는데 한국에 돌아가면 꼭 연락을 드려야겠다.
진주 청년과 마루에 매트리스를 깔고 모기장을 치고 잤다. 청년은 ‘혹시 불편하지는 않으신가요?’라고 묻는다.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만약 대답을 했으면 이렇게 했을 것이다. ‘아니요^^ 이곳만큼 천국도 없네요.’ 여행을 하기에 평소의 나의 잠자리와 음식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알 수 있는 것 아닐까? 여행은 불편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그 때문에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 나의 삶을 만족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