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0(목)
일어나자마자 사워를 하고 오늘 목표를 설정했다. 일단 무난하게 국경을 넘어 모잠비크 카이아(Caia)까지 비포장도로를 통과한 다음 가능하면 최대한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으로 정했다. 호텔에서는 아침식사를 제공하는데 식빵 4조각과 삶은 계란 하나를 덩그러니 준다. 그나마 커피가 제공되어 다행이다.
7시 50분에 국경으로 출발했는데 무난하게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차량이 한대도 지나가지 않는다. 느산제 마을을 걸어서 통과하니 사람들이 낯선 외국인에게 시선을 집중시킨다. 일단 빨리 빠져 나가자..
마을을 벗어나 2~3Km 걸어도 차량이 지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결국 큰 나무 밑에서 쉬면서 차량을 기다리기로 했는데 한 청년이 다가와 차량은 없을 거라며 국경까지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다고 한다.
이곳의 주 교통편은 자전거로 자전거 택시가 있다. 국경까지 MK600(4$)가기로 했다. 국경까지 20Km 넘는 거리라 MK600이 적어 보일 수도 있지만 이곳 사람들의 하루 일당이 MK250 정도임으로 그 정도면 적은 가격이 아니다.
자전거 택시를 타니 마을길을 통과하는데 사람들의 일상을 볼 수 있다. 도중에 학교가 있는데 영어를 하는 자전거 운전자에게 선생님이 몇 분인지 물어보니 20명이라고 한다. 그럼 학생은? 1000명이라고 한다. 한 선생님이 50명의 학생을 가르치다니..
자전거로 1시간 40분 정도를 달려 국경에 도착했다.(오전 10시 30분) 말라위 출국 도장을 찍으려고 이민국에 가니 직원이 이것저것 계속 물으며 꼬치꼬치 따진다. 대답을 해줬지만 자꾸 묻기에 ‘말라위에서 별로 한 것 없이 통과만 하는데 왜 그래?’라고 말하니 직원은 마지못해 도장을 찍어 준다. 말라위의 끝 모습이 안 좋다.
이곳에서 모잠비크 국경까지는 3Km 정도인데 자전거(MK150)로 국경까지 갈 수 있었다. 모잠비크 이민국에 들어가 입국 절차를 밟으려고 하는데 이민국 직원의 한마디.
‘여기로 들어올 수 없어. 다시 블란타이어 돌아가 비자 받고 와.’
엥? 무슨 소리?
모잠비크는 국경 비자가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처음에는 외국인에게 돈을 뜯으려고 수작을 거는 걸로 알았지만 이민국 직원은 심각한 표정으로 안 된다고 한다. 이쪽은 국경규모가 작기 때문에 국경비자 발급 자체가 안 된다.
혹시 입국 도장을 받고 Caia나 다른 큰 도시에서 비자를 발급 받을 수 있는지 물으니 그것도 안 된다며, 다시 돌아가라고 매정하게 말한다. 어떻게든 입국을 하려고 했지만 이민국 직원은 경찰을 부르며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한다. 혹시 뇌물이 필요한 건지 물으니 그런 종류는 아니라고 대답한다. 정말로 통과가 불가능 한 듯.
말라위 국경에 다시 가도 걱정이다. 말라위 단수비자를 받아서 출국 도장을 찍었는데 다시 국경에 돌아가는 것은 새로 비자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사실을 직원에게 알렸지만 그건 네 사정이라고 말하며 아마 다시 입국시켜 줄거라고 한다.
이렇게 된 이상 다시 블란타이어로 돌아가 국경비자가 발급되는 다른 국경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이렇게 국경에서 입국이 거부 된 적은 딱 한번 있었다. 내 인생 첫 배낭여행인 2002년인 실크로드 여행 때 파키스탄 비자 정보를 잘못 알아 비자가 필요 없는 줄 알고 입국하려다 거부되었다. 그때 참 힘들었는데.. 그래도 덕분에 티벳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그때보다는 여행 경험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하루 소비한 셈 치고 다시 블란타이어로 발걸음을 돌렸다.
말라위 국경으로 돌아가니 아까 출국하면서 잠깐 실랑이가 있었던 이민국 직원은 점심 먹으로 가고 없다고 한다. 돌아오면 사정을 잘 설명해 다시 입국을 해야 한다.
영어가 능숙한 청년이 왜 돌아왔는지 묻기에
‘모잠비크 비자가 없다고 입국 거부당했어. 말라위 비자도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저기(국경쪽)에서 집 짓고 살지도 몰라..’
청년은 껄껄 웃으면서 그럴 일은 없을거라며 안심하라고 한다.
이민국 직원이 돌아오자 사정을 설명했다. 아까와는 완전히 다른 처지.. 이민국 직원은 몇 군데 전화를 하더니 아까 출국 도장을 찍은 것을 취소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마무리 했다. 다행히 따로 비용이 들지 않았다.
이곳에서 다시 자전거 택시로 느산제로 돌아가야 한다. 근처마을까지 자전거 택시로 MK250 간 다음 다른 자전거 택시에 느산제까지의 비용을 물으니 MK300를 부른다. 생각보다 저렴하네.
느산제까지는 20Km 넘는다. 태양이 내리쬐고 배낭을 맨 상태라 어께가 많이 아프다. 국경으로 올 때에도 느끼긴 했지만 그때는 쾌적한 기분으로 대수롭지 않게 왔다. 하지만 돌아가는 길에는 이 모든 것이 무겁고 힘들게 여겨진다.
14:35 느산제에 도착했다. 내 체중이 만만치 않고 배낭도 꽤 무거운데 땀을 뻘뻘 흘리며 이곳까지 운전해준 자전거 택시 운전자가 고마워 MK500을 주며 300에서 나머지 비용은 음료수 사먹으라고 하니 매우 기뻐한다. 그래.. 내가 국경을 통과 못해 행복하게 된 사람이 한사람 정도는 있어야지..
느산제 버스정류장에서 15:00에 블란타이어로 출발했다. 어제 밤 오느라 못 보았던 풍경을 돌아가면서 볼 수 있었지만 별 흥미가 없다.
차량은 사람과 짐을 과도하게 싣는다. 이미 빨리 돌아가는 것은 포기했다. 그저 도착하기만 기다릴 뿐. 내가 오기 전 이 부근에 비가 많이 왔나보다. 곳곳의 길이 물에 잠겨 차량 진행 속도가 느리다. 18:00 이번 버스도 승객이 적어지자 다른 버스로 갈아탄다. 다행히 갈아탄 버스는 승객이 꽉차서 그런지 빠른 속도로 블란타이어로 향한다.
오후 8시가 되어 블란타이어에 도착했다. 숙소는 장거리 버스가 출발하는 Wendela 버스 정류장 근처의 Doogles로 잡았다. 도미토리가 MK1,100으로 괜찮은 가격이다. 숙소는 바를 겸하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다. 바깥의 풍경과 달리 백인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 다른 세계에 들어 온 느낌이다. 오늘 힘든 상황인 나에게는 별천지로 느껴진다.
식사할 곳이 없어 근처 주유소에서 빵과 소시지, 우유를 사 요기를 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도중 내일 갈 다른 국경 도시인 무조라(Muzola)까지의 교통편을 알아보니 이곳에서 버스편이 많다고 한다. 차량의 첫 출발시각은 제각각이다. 오전 3시, 4시, 5시, 6시.. 분명한 건 차량이 많다는 것 정도는 확인했다.
숙소에서 맥주한잔을 하며 오늘 일을 돌이켜 보았다. 여행을 많이 해서 그런지 방심했다는 결론이다. 미리 국경에 대해 확인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앞으로 여행하면서 꼭 주의를 해야겠다.
론니플래닛을 보며 내일 계획을 세우는데 한 백인 청년이 말을 건다. 스코틀랜드에서 의과대학을 다니며 말라위에 3개월째 의료 봉사를 온 청년이다. 어느 나라 사람인지 물으니 북아일랜드라 말한다.
북아일랜드? 생소하지만 배경은 잘 알고 있다. 영국은 4개의 자치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북아일랜드이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에 비해 작은 규모로 알려져 있지 않다. 아일랜드가 800년의 영국 지배를 벗어나 독립을 할 때 신교도가 2/3인 북아일랜드는 아일랜드의 독립에 반대를 했다. 결국 북아일랜드는 영국으로 남았지만 1/3의 구교(카톨릭)도는 이에 반대해 IRA를 창설 해 무장 투쟁을 하다가 최근에 정전협정을 맺었다. 또한 지난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1위를 하다가 나중에 미끄러진 점, 월드컵에 한번 출전 한 경험을 있는 일등.. 내가 아는 북아일랜드의 지식을 주절이 이야기 했다.
말을 하다가 청년의 표정을 살짝 보니 감격을 했다. 내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북아일랜드에 대해 잘 아는 외국인은 처음 봤다며 흥분한다. 여행을 하면서 만나는 주요 국가(프랑스, 잉글랜드, 독일 등) 여행자는 그 나라 이야기를 하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데 변방이나 작은 나라 여행자는 다른 모습이다. 지난번 크로아티아 청년도 그렇고 유럽의 작은 나라도 자신의 나라를 외국인이 알아주기를 바란다는 것을 느꼈다.
여행을 하면서 유럽인과 대화를 하는데 가장 고마운 책이 있다. 바로 먼나라이웃나라이다. 초등학교 시절 처음 본 후 거의 외우다시피 하며 보았는데 그 책의 내용이 머릿속에 깊게 남아 유럽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하는데 꽤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먼나라이웃나라로 세계 사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으며 지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유럽 여행자와 대화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북아일랜드 친구가 돌아가고 잠시 있다가 또 한 청년이 말 건다.
‘내 친구가 북아일랜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하던데. 난 스코틀 랜드인인데 잘 알고 있어?’ 먼나라이웃나라의 지식을 꺼내 스코틀랜드에 대해 이야기 했다.
스코틀랜드 청년과 대화 한 후 동양인이 말을 거는데 일본인이다. JAICA(일본국제협력단)로 말라위에 왔다며 6개월 되었다고 한다. 청년에게 자이카에 대해 물으니 전체적으로 한국 코이카와 비슷한 분위기이다. 다른 점은 2년 임기를 마치면 200만엔(2700만원)을 지원받는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1000만원인데..
국경 통과에 실패해 의기소침했지만 홀로 있는 동양인에게 말을 걸어준 청년들 덕분에 어느정도 기분 전환이 되었다.
본의 아니게 영어를 많이 쓴 날이다. 도미토리에는 서양 여행자 한명이 있는데 다행히 네덜란드 국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