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벳 여행은 처음 여행을 시작할 때 계획되어 있지 않았던 여행지였다. 극심한 고산병을 겪으면서 보게 된 티벳은 그야말로 별 천지였다.

  평소에는 절대 볼 수 없는 경치는 둘째 치고라도 티벳인들의 순박함과 그들의 문화를 접했을 때는 그야말로 충격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티벳은 나에게 특별한 경험들을 주었다. 또한 시간에 쫏겨서 급하게 떠나야 하는 나에게 다시한번 여행해야 한다는 목표를 제시해 주었다.

 

 찬수의 티벳 여행기 1(라싸 들어가는 길)

 7월 31일(수)

 꺼얼무 역에서 11시에 내렸다. 17시간을 난주에서 기차를 타고 오느라고 피곤하기는 했지만 곧바로 라싸행 차를 잡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막상 꺼얼무 역에서 내리니까 막막한 것이다. 어짜피 꺼얼무야 관광할만한게 없으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트럭을 어디서 잡아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먼저 기차역 바로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가격을 물어 보았다. 삐끼가 처음에 제시한 가격이 300위안이었다. 막상 듣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작년에 700위안에 비하면 훨씬 싼 편이다. 가격이 싼것도 기분이 좋았지만 최소한 이제 꺼얼무~라싸 구간은 외국인을 통제하지 않는것을 간접적으로 알려준거기 때문이다. 또한 이정도면 250위안이면 버스를 탈수 있다고 판단이 되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버스를 탈 생각은 없었다. 먼저 트럭을 타면 시간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높은 위치에서 경치를 감상 할 수가 있고 무엇보다도 버스는 선불 요금을 주어야 하기 때문에 무슨일이 있으면 돌려받기 힘들지만 트럭은 라싸에 도착하는 순간 주면 되기 때문이다.

 먼저 점심을 대충 길거리에서 떼우고(2위안) 중국은행에서 환전을 했다. 수중에 1000위안이 있었고 이 금액으로 티벳관광을 떼울려고 결심했지만 아무래도 불안하기 때문에 100달러를 환전을 했다.(100달러-819위엔)

 그런데 막상 라싸행 트럭이 어디에 있는지 알길이 없었다. 어쩔수 없이 꺼얼무 시내 지도를 살려고 하는데 5위안나 한다. 유심히 보는척 하면서 지도상의 시닝과 라싸 갈림길을 확인을 했다. 이제 지도는 필요가 없다. 지도를 3위엔으로 깍아달라고 하니 점원이 관두라고 한다.(자연스럽게 거부)

 꺼얼무 역에서 계속 서쪽으로 가다 보면(한 20분 걸었음) 갈림길이 나오고 거기서 부터 트럭히치를 할수 있다. 하지만 시닝행 트럭도 섞여있기 때문에 고속도로 매표소 근처까지 걸어가면 라싸행 트럭을 쉽게 잡을 수 있다.

 트럭은 생각보다 잘 안 세워주는 편이다. 간신히 세운 트럭에게 처음에 150위엔을 불렀다. 콧방귀도 안뀌고 그냥 가버린다. 몇대의 트럭을 더 세워 봤지만 350위엔을 부르는 트럭도 있고 150위엔으로는 힘들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냥 버스타고 갈걸... 생각을 했지만 잠시 마음을 추스리고 이번에는 200위안에 도전을 해보았다.
갑자기 새 트럭이 짐을 가득 싣고 오길래.. '라싸 얼빠이(라싸 200)'을 소리질렀다. 그러니 트럭이 섰다. 인심좋은 아저씨가 타라고 한다. 아싸~!!

 내가 잡은 트럭은 나온지 2주밖에 안된 새트럭이고, 2대의 트럭이 팀을 이루어 수송을 하고 있었다. 당연히 쿠션도 고급이어서 편하게 갈 수 있었고 한 트럭당 2사람 밖에 안되서 자리도 널널했다. 무엇보다도 트럭 운전사들이랑 금방 친해질수 있었다.

 기름을 넣고, 긴 여정이 시작이 되었다. 신나게 달리던 트럭은 3시간도 안되 트럭이 서버렸다. 그러고 계속 가만히 있었다. 차들은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이해가 안 갔다.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그런거지?
운전사들이랑 필담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을 떼웠지만 차들은 도통 움직일줄을 몰랐다. 그러고 5시간동안 꼼짝없이 있었다.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달리기 시작해서야 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바로 철도 공사를 하는데 도로와 교차되는 지점의 공사라서 그렇게 완전히 막아버린 것이다. 차들의 행렬은 끝이 없었다.

 정말 개인을 배려하지 않는 중국 행정에 치를 떨었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상황에서 아무도 항의를 하지 않는 이곳 분위기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직 중국이 공산주의 사회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트럭을 타면서 중국 트럭 운전사들의 생활을 옅볼 수 있었다. 트럭은 2명이 교대를 해가면서 24시간 운전을 한다. 또한 이 사람들은 밥을 저녁때 한끼밖에 먹지 않는다.

 2대의 트럭의 4명의 운전기사들은 나한테 관심이 많다. 특히 40살인 왕칭고와 28살인 장소빈은 틈만나면 날 챙겨 주었다.
이곳 사람들과 친해지는 방법을 알았다. 저녁을 먹고 장소빈이 같이 똥누러 가자고 한다. 어두운 밤 길거리에서 우리 둘은 바지를 벗고 대변을 누면서 우정을 다져갔다.

 저녁 8시 즐겁게 저녁을 먹고(물론 난 공짜) 다시 여정을 시작했다.
꺼얼무에서 출발한 도로는 계속되는 오르막의 연속이다. 운전기사는 고산병이 걱정된다고 했지만 난 아무렇지도 않다고 이야기 했다.

 바로 내일의 고통을 전혀 예감하지 못한채...

 8월 1일(목)

 7월과 마찬가지로 8월의 시작도 중국에서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날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하루종일 머리가 부서질정도로 아팠다. 바로 고산병이라는 것이다.

 운전사 친구들은 많이 걱정해 주었다.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안심을 시켰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이미 표정으로 감춰지는 방어선은 무너질 정도로 고통이 심했다.

 공안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아직도 청해성이라서 그런가 보다.

 오후 4시경 난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고산병, 두통에다가 중국애들이 준 생라면을 잘 못 먹어서 배탈까지 났다. 무엇보다도 여태까지 여행을 하면서 쌓인 피료가 한꺼번에 탈이 난거 같다.

 하긴 거의 5일동안 내내 버스와 기차를 타고 다녔으니 무리도 아닐 것이다.

 온몸이 움직일수 없을 정도로 쑤시고 마치 온몸이 나를 향해 쿠데타를 일으킨다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약을 먹을 생각을 안했다. 원래 약을 싫어하는데다가 약의 도움없이 극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바로 히딩크 정신을 발휘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트럭은 계속 가다가 중국군 장교를 태웠다. 우리나라의 대위쯤 되는 모양인데 라싸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저녁이 되자 히딩크 정신도 한계에 부딧쳤다.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아팠던 것이다. 결국 약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그런데 음식이 넘어가지 않는다. 약을 먹을려면 음식을 먹고 30분 뒤에 약을 먹어야 하는데 먹을때마다 토하는 것이었다.
이때 기분은 한마디로 '아.. 내가 이렇게 죽는구나...'

 결국 빈속에 투통약 2알을 투입하는 강행군을 개시했다. 약을 먹고 곧바로 눕자 효과가 보이기 시작했다. 몸이 조금씩 움직여 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저녁 9시가 되자 운전사 친구들이 "푸촨슈.. 푸촨슈(내 한자 이름을 중국발음으로 불르면 그렇게 됨)' 하면서 깨웠다.
저녁을 먹으라는 것이다. 약해진 내가 걱정되서 그런지 저녁은 정말로 맛있는 것들을 사줬지만 난 그냥 밥에다 물을 말아서 몸에다 집어넣었을 뿐이었다. 어정쩡한 죽을 먹고 10분뒤에 아까먹은 투통약 2알을 투입했다.
아...
효과가 있다!!!
지금은 기억이 안나지만 내가 먹은 두통약 4알로 고산병을 극복할 수 있었다.

 식당에서 약을 먹을때 공안(중국경찰)이 왔다. 우리 트럭이 누군가 뿌려놓은 못으로 인해 타이어 2개가 펑크났기 때문에 신고를 받고 조사를 하러 온 것이다(사건의 중대함 때문인지 높은 사람 같았다).
허가증 없이 들어온 난 처음에는 움찔 했지만 태연하게 아무렇지도 않게 공안 옆으로 가서 조사하는 것을 구경했다.

 공안은 내가 뻔히 외국인인줄 알면서도 별로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 였다.

 조사가 끝나고 다시 출발 했다... 난 약때문에 어느정도 고산병을 극복할 수 있었지만 약기운 때문에 금새 잠이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산병이라는 고통을 맛보고 중국인 친구들의 우정을 확인할 수 있는 하루였다.

 8월 2일(금)

 새벽 1시... 누가 나를 깨운다. 깨운 사람은 바로 공안이었다.

 휴.. 거의 다와서 걸렸구나.. 머.. 어쩔 수 없지.. 엄연히 불법으로 들어온 거니까.
나보고 신분증을 내보라고 하길래. 여권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는 깜작 놀라면서 '오호... 한궈마(오호.. 한국)' 라고 한다.

 그는 웃으면서 깨워서 미얀하다는 표정으로 다시 자라고 한다.

 공안 뒤에 있던 중국인 친구들은 '거봐 한국인 맞잖아..'라는 당당한 표정으로 공안과 이야기 한다.

 -티벳 갈 사람은 필독-
나중에 사정을 알고보니 현재 꺼얼무에서 한국인이 허가증 없이 라싸로 오는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그렇지만 서양인에 대해서는 그들은 철저하게 막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재 중국은 서양의 언론과 국가들의 눈치를 많이 보고 있는데 만약에 서양국적의 소유자가 티벳에 들어와서 사고라도 당하고 인권에 대한 글을 올린다면 타격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서양 여행자에 대해서는 철저한 관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신경도 안 쓰고 있다는 것이다. 뭐.. 약소국의 서러움일수도 있지만 아무튼 티벳 여행자들에게는 대단한 혜택인 것이다.

 아침이 되자 언제 고산병에 걸렸냐는 듯이 팔팔해 졌다. 끝없는 비포장 도로를 달리기는 했지만 난 티벳이라는 신세계의 환경의 황홀경에 빠져서 그런 불편함은 신경도 쓰이지 않았다. 정말 평화롭고 그림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내 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라싸에 가까워지자 포장도로가 나타났다. 내가 탄 차들도 신나게 달리기 시작했다.2시경 난 드디어 라싸에 도착 할 수 있었다.

 꺼얼무~라싸 철도공사 구간.. 여기서 5시간 이상 기달려야 했다.

 전형적인 티벳 고원이다.. 구름이 낮게 깔려 있다.

 가끔 양떼들에 의해서 통행이 잠시 중단될 때도 있다.

 

 찬수의 티벳 여행기 2(라싸1)

 8월 2일(금)

 트럭 운전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200위엔을 지불했다.

 그렇지만 라싸에 도착하니까 정말로 막막했다. 내 수중에 가지고 있는 정보라고는 난주에서 산 지도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난주의 대만애가 알려준 지닌 빈관이랑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야크호텔을 찾으러 다녔다.

 한 시간 정도 헤메고 나서 약간 조폭처럼 생긴 빠박이 중국 아저씨의 친절함으로 사람은 겉모습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은채 야크호텔을 찾을 수 있었다.

 라싸시내는 포탈라궁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호텔과 빈관은 포탈라궁 동쪽에 몰려있다. 난 제일 서쪽에서 트럭에서 내려서 길을 못 찾았던 것이다.

 야크호텔 도미토리는 하루에 20위엔이다. 생각보다 정말로 저렴했다.

 고된 여행의 피료가 몰려와서 잠시 쉬었다. 아직 머리가 어질 어질 하는걸 보니 고산병에 적응을 할려면 며칠은 더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먼저 호텔카운터에 들어가서 한국인을 찾았다. 한국인은 이 호텔에 많이 묵고 있어서 쉽게 3명의 여자 선생님들과 만날 수 있었다.

 라싸에 대한 정보가 무지했던 난 선생님들과 내일 차를 렌트해서 아름답기로 소문난 남쵸초호에 가기로 했다.

 화장실을 가는 길에 깜짝 놀라는 일이 생겼다. 바로 카스에서 파키스탄으로 넘어가지 못했을때 나를 도와주고 밥까지 챙겨서 배웅까지 해주신 삼성맨 이종호 형을 다시 여기서 만난 것이다.

 우리는 갑작스러운 우연에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며서 반가워 했다. 종호형은 지금쯤 내가 네팔에 있을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종호형은 티벳에서 행해지는 조장(장례)를 한국인 13명과 함께 보고 밥을 먹을려고 가는 길이라고 했다. 당연히 꼽사리 끼어서 오랫만에 밥을 실컷 먹을 수 있었다.(물론 공짜..^^)

 종호형의 회사의 과장님이 라싸로 오셔서 같이 저녁 8시에 맥주한잔 하기로 했다.

 2시간정도 시간이 남았는데 라싸 시내를 한번 둘러 보았다.

 역시 예상대로 한족들이 반이상을 차지 했다. 나머지 장족(티벳사람)의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많은 거지들이 있으며 그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관광객들에게 돈을 요구하는 것이다.

 거지의 50% 정도가 15살 이하의 어린애들이라는 것에 더욱 놀랬다. 이곳의 장족만큼은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지배 민족과 피지배 민족과의 관계를 실크로드 지역을 여행하면서 많이 느꼈지만, 아직도 독립운동을 하는 장족들의 생활상은 정말 참담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8시에 종호형과 과장님을 만나서 야크호텔 레스토랑에서 쥬스(첫날이라 맥주는 무리)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했다. 쥬스한잔에 10위엔이다. 정말 비싸다.

 내가 있는 도미토리에 들어갔다. 내 방에는 6명이 잘 수 있는데 중국남자2명, 중국여자 2명, 스위스인 1명 그리고 나로 구성되어 있다. 난 첫날 부터 그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방안에 있는 6명 모두 영어 구사가 가능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특히 광동에서 왔다던 중국여자 2명은 나에게 필요한 정보를 주었고 서로 이름을 교환을 하면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했다. 그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라싸에서의 첫날은 이렇게 정신없이 지나갔다.

 8월 3일(토)

 새벽 6시에 어제 야크호텔에서 만난 3명의 선생님과 중국에 유학중인 여학생 1명, 그리고 나까지 총 5명이 남쵸초호수를 향해 랜드쿠르져(랜트비 900위엔)을 타고 출발을 했다.

 라싸에서는 각 여관마다 게시판이 있는데 거기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에 대해 쪽지를 올려서 조인트를 할수 있다. 그래서 랜트카가 활발하다.

 남쵸초호수를 가는 도중 아침의 비로 인한 산사태로 길이 끊겼다. 처음에는 조금만 기다리면 되겠다고 생각을 했지만 직접 산사태를 보고 나서 오늘 호수에 가기는 글렀다고 생각이 되었다.

 우리는 결국 돌아가기로 결정을 하고 차를 돌렸다.

 야크호텔에 도착하고 나자 운전사가 길이 끊겨서 돌아올 경우 1킬로에 3위안을 주어야 한다면서 390위안을 요구하는 것이다.

 말도 안된다.. 1시간도 가지도 못해서 돌아왔는데.. 이건 완전히 여행사의 횡포이다.

 내 개인이었다면 필사적으로 버텼겠지만 사실 어제 계약을 할때 신중하게 생각하지 못한 선생님들의 잘 못도 있었다. 결국 350위엔에 합의를 보고 나와 여학생은 50위엔씩 내고, 나머지는 선생님들이 부담 하셨다.

 라싸에서의 첫 여정이 이렇게 실패하다니..

 일단 한국 학생 3명과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한 포탈라궁으로 들어 갔다. 입장료는 원래 70위엔인데 학생할인을 받아서 49위엔에 들어 갈 수 있었다.

 포탈라궁의 안은 정말 보물 창고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굴 되었으면 국보급이 되었을만한 유물들이 수두룩 했고, 눈부시게 발전된 티벳 불교 미술을 한눈에 감상 할 수 있었다.

 제일 놀란것은 달라이라마의 관에 사용된 금의 양이다. 내가 본것만 4개가 되는데 어떤 관은 금을 3700킬로나 써서 만들었다.

 문화재는 활발하지만.. 만약에 여기에 쏟은 정신과 국력을 1950년대 군비에 투자를 했으면 어땠을까?

 티벳은 지형상 다른나라가 침략하기가 정말로 힘든 땅이다. 오히려 그것이 그들이 방심을 부른걸까? 1953년 중국인민해방군 4만명에 의해 그들은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역사에서 과정은 필요가 없다고 하지만 한번쯤은 교훈으로 삼을 만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족들이 그렇게 국력을 쏟아서 만들어낸 문화재와 유적은 지금은 중국정부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포탈라궁을 올라갈려면 많은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데 라싸 도착 2일째인 나에게 무리였던 모양이다.
고산병에 약한 나의 모습에 한계를 느끼면서 낮잠을 잤다.

 저녁때 선생님들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오늘 못갔던 남쵸초호수를 이번에는 렌트비 800위엔에 6명이 가기로 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정말로 움직임이 적은 하루중에 하나였다. 아마 고산병 때문일 것이다.

 평소에 우리나라에서는 비교적 높은 춘천(190m?)에 산다고 자부 했지만 3200m의 이곳에는 역부족이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처음 라싸에서 고산병으로 고생을 해서 처음 며칠동안은 아무것도 안하고 쉰다고 한다.

 평소에 난 8000m이상 봉우리를 등정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별로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나 같으면 8000m 13개 봉우리를 한번에 등정하겠다'라는 오만한 생각을 했는데.. 이때부터 산악인에 대한 존경심이 우러나오기 시작했다.

 8월 4일(일)  

 다시 새벽 6시에 일어나서 남쵸초호수를 향했다. 이번 6명의 멤버는 길이 막혀도 절대 되돌아가지 않는 다는 각오를 했다.
꺼얼무쪽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서 탕슝까지 갔다. 거기서 비포장 도로를 가게 되는데 그전에 식당이 있었다.
아침을 거른 우리는 아침을 시켰다.

  아침을 다먹고 난 후에 계산을 해보니 50위엔이나 나왔다. 처음에는 메뉴판이 없다고 하면서 계산을 할때는 비싼 금액이 적힌 메뉴판을 꺼내는 것이다.

 어쩔수 없이 바가지를 썼지만 다음에는 절대 쓰지 않으리..

 랜드크루져 앞자리는 1명이 앉고 뒤에 4명.. 난 요금을 깍아준다는 조건으로 짐 싣는 부분에 앉았다. 남쵸초호수입구에 들어가니 45위엔씩이나 입장료를 받는다.(이런 도둑놈) 우리는 우겨서 깍아달라고 했지만 결국 그들은 깍아주기를 거부하고 입장권 5장만 끊어준다.

 남쵸초호수로 가는 걸은 정말로 환상적이었다. 방목된 동물들과 웅장한 산들.. 우리는 연신 감탄을 했다.

 아름다운 남쵸초호수가 나타나고 입장권 확인을 하는 장소에 도달을 했다.  큰일이다.. 우린 5장 밖에 안 끊었는데..  결국 짐칸의 난 담요와 배낭을 통해 숨었다. 무사 통과..

 남쵸초호수는 중국에서 2번째 큰 호수로서 물도 맑고 정말 아름다웠다. 우리 일행은 사진을 찍으면서 감탄을 했다.

 근데 일행들 사이에 트러블이 일어났다. 우리랑 같이 했던 남,녀 한쌍이 여기에서 하루 일박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 말은 렌트카 요금을 반 밖에 안내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선생님중에 한분이 그 한쌍에게 따지셨다. '처음 이야기 했을때랑 말이 다르면 우리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결국 한쌍은 다시 돌아가기로 했고, 서먹서먹한 분위기로 다시 5시간을 걸려서 라싸로 돌아왔다.

 남,녀 한쌍은 그렇지만 나와 선생님들 사이의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 내가 나름대로 장난도 치고 재롱을 많이 떨었기 때문이다.(선생님들은 나보고 맨날 꼴보기 싫다고 하면서 날 좋아하신다.)

 야크호텔에 도착하고 나서 돈을 분배를 했다. 다른 사람은 185위엔을 낼때 난 짐칸에 타면서 고생한 공로로 140위엔만 냈다.(돈 벌었다....)

 도미토리(방)에 가니까. 내가 맨날 술이라고 놀리는(이름이 우리말로 감로임.. 감로주^^) 28살 중국 여자가 반가운듯 영어로 말을 건다.

 감로는 많이 아파서 병원에 갔서 진찰을 받고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고, 친구인 나머지 2명은 남쵸초호수에 일박을 하기 때문에 무척심심했던 모양이다.

 하루종일 누워 있으면 많이 배가 고팠을텐데..  다시 밖으로 나가서 수박 반 동이와 꼬치(라싸에서 많이 팜)들을 사가지고 다시 들어왔다.

 감로가 많이 기뻐한다. 그리고 먹을것들을 맛있게 먹는다. 나의 행동이 한 여인에게 큰 기쁨이 되었다는것에 대해 만족했다.
내일은 장족의 장례인 '조장'을 볼려고 한다. 바로 새벽 3시에 일어나야 하기 때문에 일찍 잠들었다.

 라사시내에서 바라본 포탈라 궁

포탈라궁에서 제일 높은 지점에서 기념 촬영

포탈라궁에서 본 라사 시내 전경.. 높은 건물은 보이지 않는다.

멀리서 바라본 남쵸쵸의 모습

 가까이서 본 남쵸쵸의 모습.. 구름이 아래에 깔려 있다.

나와 함께 남쵸쵸에 갔던 일행들.. 2명의 연인은 보이지 않는다.

 

 찬수의 티벳 여행기 3(라싸2)

 8월 5일(월)

 조장을 보기 위해서 새벽 3시에 일어났다. 무척 졸리기는 했지만 말로만 들었던 조장을 직접 본다는 설레임으로 일어난지 5분만에 야크호텔 앞으로 나왔다.

 첫날 부터 함께한 선생님 3분이랑 나 그리고 여학생 1명 5명이서 차를 기달렸다.
그런데 차가 오질 않는 것이다. 3시 30분이 되었는데도 오지 않는 것이다. 왜그럴까? 4시까지 기다렸지만 결국에는 차는 보이지 않았다.

왜그럴까?

 두가지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을 했다. 첫번째는 차가 고장나서 오지 않았던 것이고, 두번째는 우리보다 웃돈을 주겠다는 관광객들에게 간 것이다.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을 보니 두번째 가능성이 커 보였다.

 나야 라싸시내 구경을 하면 되지만 내일 성도로 떠나는 선생님 2분은 결국 조장을 못보고 티벳을 떠나셨다.
새벽4시에 도미토리로 들어와서 다시 잤다.

 아침 10시에 다시 일어났다. 나를 제외한 5명의 침대는 비어 있었다. 벌써 아침을 먹고 각자 관람할것을 찾아서 떠난 모양이다.

 오늘은 조장을 가지 못한 대신 라싸시내에 있는 사원에 가보기로 했다. 먼저 티벳에서 오래된 세라 사원으로 가보았다.
라싸시내와 변두리로 떠나는 버스는 거의 모두 바코크광장에서 출발을 한다.

 바코크 광장에 가서 세라 사원으로 떠나는 5번 버스를 탔다. 세라사원까지는 2위엔인데 25분정도 걸린다.
중국에서 미니버스를 탈때에는 운전사 옆의 제일 앞자리가 유리하다. 일단 혼잡을 피할 수 있으며 도시의 경치를 정면에서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라사원 입구로 가보았다. 역시 입장료를 받는다. 일단 세라사원 주위를 둘러보았다.
산으로 올라가 세라사원을 한참 돌아서 뒤쪽으로 가니 작은 사원 학교가 보였다. 작은문으로 들어가니 곧장 세라사원.. 공짜로 들어갈수 있었다. 들어가는 도중 동자승들을 만나서 잠시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다.

 웅장한 포탈라궁과 달리 세라사원은 아기자기하고 서민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사원에 가면 일단 어리둥절 하게 된다. 많은 건물중에서 어느곳에 먼저 들어가야 할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때는 장족들을 따라서 관람을 하면 된다. 장족들은 사원을 참배하는게 생활화 되어있기 때문에 그들을 따라다니면 편하다.

 장족들은 불교가 생활화 되어 있다. 가난한 가운데서도 사원을 찾을 때는 버터와 작은 단위의 돈을 준비해서 각각의 불상에 일일히 기도를 하면서 돈을 불상 앞에 놓아둔다.

 여기의 절들은 향을 피우는 대신 큰 향로에 버터를 부어서 향처럼 피우는데 그 냄새가 많이 느끼하다. 향이 나기 힘든 지형이라 여기서 많이 구할수 있는 버터를 이용한 것이리라.

 사원에 가면 많은 불쌍을 볼 수 있는데 불상 하나하나가 사원에 있었던 라마들의 모습을 형상화 한것이라고 한다. 때문에 고승일수록 크고 웅장한 불상으로 형상화 되고 또한 그 앞에는 순례자들이 바친 많은 돈을 볼수 있다.(포탈라에서는 100달러 지폐도 보았음)

 아마 여기 있는 모든 라마들의 목표도 존경받는 승려가 되서 죽어서 좋은 불쌍으로 형상화 되는것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라사원 관람을 마치고 야크호텔로 돌아왔다. 일단 선생님들 방에 찾아갔는데 선생님 한분이 라면을 대접해 주셨다. 그리고 준비해온 라싸에 관한 많은 정보를 주셨다.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다시 바코크 광장으로 가서 드레풍 사원으로 가는 3번 버스(2위안)를 탔다.

 드레풍 사원은 티벳에서 가장 큰 사원중에 하나로서 한때 10000명의 승려가 있었던 사원이지만 지금은 800명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사원 입구에서 내리면 산을 한참 올라가야 하는데 덕분에 고산병에 조금 적응 할 수 있었다.

 애초에 들어갈때 입구로 가기 보다는 사원 옆을 통해서 공짜로 들어갈 수 있었다.(35위한 벌었음^^)

 드레풍 사원은 돈주고 보기에는 아깝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세라사원과 달리 황량함이 느껴지고 여기저기서 파괴된 건물들을 볼 수 있었다.

 사원을 둘러보던중 큰 박수소리가 들렸다. 3시가 되면 라마들이 지정 장소에 끼리끼리 모여서 토론을 하는데 그룹에서 한 승려가 일어나서 크게 박수를 치며 토론하는 모습이 정말 재미있다.

 드레풍 사원 입구로 나가지 않고 장족들을 따라 산길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네풍사원이라고 있는데 900년~1000년된 벽화들을 볼 수 있다. 역시 자연스럽게 공짜로 들어갔다.

 야크호텔로 돌아오고 나니 이미 저녁이 되어 있었다. 어제 남쵸초호수에 같이 갔던 멤버들과 만날수 있었는데 난 아침에 세라사원을 공짜로 들어갔지만 나머지 멤버들은 공짜로 가는데 실패했다고 한다.

 어제 남쵸초호수를 같이 간 여학생과 바코크광장 바로 옆에 있는 조캉사원으로 갔다. 저녁 6시 이후에는 입장료를 받지 않는 걸로 알고 있는데 입구에서 입장료 35위엔을 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사람을 제외한 서양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무료로 들어가는 것이다. 여자 매표원은 영어가 유창했는데 왜 한국사람은 돈을 내고 들어가고 서양사람은 공짜로 들어가는지 물어 보았다.

 그녀는 라마 한명을 보내서 표를 확인 했다면서 아까 그 서양사람은 표가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그러는중 서양사람이 무료로 들어가는 것이다. 물어보니 어제 표를 사서 자기가 기억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나빠진다. 그때 처음 들어갔던 서양사람이 나왔다. 난 표가 있냐고 물어보았다. 그의 대답은 표없이 그냥 들어갔다는 것이다.

 난 매표원에게 어떻게 된거냐고 물어보았다. 할 말이 없어진 매표원은 오히려 막 알수없는 말로 소리를 지르면서 떠든다.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든다. 나와 같이 온 여학생은 그냥 가자고 하지만 한국사람을 차별하는 분위기에서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사진을 찍을테니까 만약에 당신이 떳떳하면 응해라고 했다. 그런데 일이 커졌다. 당연히 그들은 거부하며 라마들이 달려오더니 내 사진기를 뺏는 것이다.

 황당했다. 난 라마들이 평화로울줄 알았는데 무척 거칠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최소한 라싸의 라마들은 중국정부의 앞잡이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일단 이런 한심한 모습을 나중에 알리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일이 커졌다. 갑자기 3명의 라마가 내 사진기를 뺏기 위해 달려드는 것이다. '이러다간 사진기를 뺏기고 말겠는걸...' 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주위에 모여있던 사람들이 라마들을 따라서 날 쫏아오는 것이다.
수십명과 나, 추격전이 시작된 것이다.

 다행히 난 달리기가 100미터에 12초대이고 오래달리기에도 자신이 있다. 비록 고산병에 시달리고 있지만 포탈라 궁쪽으로 달려서 적당히 따돌릴수 있었다.

 일단 필름을 뺏길것을 대비해서 남은 사진 5장을 모두찍고 새로 필름을 사서 교체를 했다. 일단 안심... 유유히 걸어서 야크 호텔로 왔는데 당사자인 나보다도 옆에서 지켜보던 여학생과 선생님들이 안절부절 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선생님들은 당연히 야크 호텔에 있을줄 알았던 내가 없자. 선생님들은 혹시 내가 잡혀갔을까봐 다시 조캉 사원으로 갔다고 하다.

 선생님이 돌아오자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한 날 보고 '이 웬수야.. 오늘겨우 고산병을 적응했는데 너땜에 다시 도졌잖아..'라고 하시면서 날 많이 걱정하셨다고 한다.

 내일 성도로 떠나시는 선생님들과 여학생과 난 포탈라궁 앞의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서 맥주한잔을 했다.(물론 선생님들이 다 부담하심..^^)

 야크호텔의 외국인 사이에 내가 유명해졌다. 수백명의 군중들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대한것을 직접 본 외국인들이 많은 모양이다. 프랑스 남자 한명이 나한테 엄지손가락을 피더니 대단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내방에 들어오니 중국 여인들이 감주를 간호해 줘서 정말 고맙다고 한다.(사실 먹을것만 사줬는데...)

 내 방의 분위기는 이곳 호텔에서 가장 좋다. 일단 내가 23살 스위스청년에게 브래드피트라고 부르고, 감주에게는 술, 유지한 이라는 이름을 가진 29살 중국 여자에게는 찐시센(김희선), 북경에서 대학을 다니는 27살 센신에게는 안자우슈(안재욱)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어서 그런거 같다.

 야크호텔 근처의 피시방에 갔다. 라싸에서 모든 피시방은 5위엔으로 중국에서 가장 비싸다.
피시방에 있는 도중 낯익은 얼굴이 들어왔다. 바로 실크로드 이예청이라는 도시에서 같이 티벳 알리를 가기위해 모였던 한국인 4인방중에 하나인 보연이 형이다.

 정말 반가웠다. 형은 알리를 포기하고 중국을 여행했지만 아무리 경치가 좋아도 '저기가 알리만 하겠어...'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성도에서 비행기를 타고(2000위엔!) 라싸로 오늘 왔다고 한다.

 무심코 들어온 피시방에서 날 만난것이다. 밤이 늦어서 우리는 잠시 이야기를 하고 다음날 만나서 술한잔 하기로 했다.

 이날 하루종일 라싸를 돌아다니면서 쓴 금액은 버스4번(8위안)+아이스크림 2개(2위안)+호텔비(20위안) 총 30위안으로 여태까지 여행하면서 가장 저렴하고 알찬 날이다.

 8월 6일(화)

 오늘은 조장이 없는 날이라서 조장은 내일 가기로 했다.

 어제 라싸구경을 한 난 이번에는 변두리를 구경하기로 했다. 새벽 6시 바코크광장에 갔다. 6시반을 넘기면 간덴사원으로 가는 버스가 다 떠나기 때문이다. 간덴사원으는 왕복 20위엔을 내면 된다.

 간덴사원은 높은 산 언저리에 있는데 8시반정도가 되서 도착을 했다. 도로에서 간덴사원까지 가는데 구불구불한 길을 버스가 열심히 올라갔다.

 버스에서 내리니 운전사는 2시까지 오라고 한다. 무려 5시간 이상의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입구로 가기보다는 일단 산을 올라가서 주변 경치를 구경한 다음 사원 뒤쪽으로 들어갔다.(당근 공짜...)
사원자체는 별로 볼게 없다. 티벳의 사원 자체가 비슷비슷하기 때문에 포탈라궁을 하나를 보면 충분하다는 말을 듣는다.
사원을 구경하는 도중 젊은 라마 한명이 나의 손을 잡고 자기 방으로 데려가더니 문을 잠근다.

 난 처음에는 놀랐지만 그가 나의 지도에 흥미를 느끼기에 지도를 보면서 이야기를 했다.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더욱 흥미가 있는 모양이다.

 한자로 간신히 이야기를 하는 도중 갑자기 작은 펜던트를 꺼낸다. 바로 지금 인도에 망명중인 달라이라마 사진이다. 순간 난 긴장햇다.

 티벳역사를 대충알고 있는 난 1953년 중국이 쳐들어오고, 1960,61년을 종이에 적으면서 중국인들이 장족들을 많이 죽인것을 알고 있다고 시늉을 했다. 그는 끄덕거린다.

 또한 1989년에도 장족들이 많이 죽었다고 한다. 난 종이에 독립이라는 한자를 적으며 지금은 중국이 강해서 힘들지만 약해지면 독립할수 있을거라고 했다.

 그는 내 지도에 손으로 원래 자신들의 영토를 그려 주었다. 거의 전체 중국의 4분의 1이 되는것 같다. 아무런 명분없이 일반적인 침략을 한지 50년... 라싸를 잠시 벗어났는데도 이런 독립심이 투철한 승려를 만난것이다. 언젠가는 티벳이 독립한다는것을 느꼈다.

 나와 이야기한 라마는 절대 공안에게 말하지 말라며 헤어짐을 아쉬워했다. 난 힘내라고 이야기를 했다.

 절은 1시간 만에 다 보았다. 사실 절보다도 근처의 경치가 정말로 속된말로 죽인다. 마치 그림앞에 서있는거 같았다.

 아직도 4시간이나 남았다. 그래서 바로앞의 산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한시간이면 올라갔다올줄 알았던 내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산은 아무리 올라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또한 아직도 남아있는 고산증세로 올라갔다 오는데 3시간 반이나 걸린 것이다.

 대신 멋진 경치와 지루한 시간들을 흘려 보낼 수 있었다.

 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가 옆에 앉은 장족 한명이 어디서 왔냐고 하는 것이다. 한국이라고 했다. 그는 반가워 하면서 밥 먹었냐고 물어본다.

 굶었다고 하니까 자신의 가방에서 과자 비슷한 빵과 야크고기 말린것을 나한테 준다. 정말 맛있었다.
그런데 너무 많이 주는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는 억지로 먹었다. 그는 52살이고 라싸에 산다고 한다. 나머지는 말과 한자가 도저히 안통해서 알수가 없었다.

 라싸에 돌아오니 오후 4시 반이 되었다.

 일단 방으로 들어갔다.

 많은 생각을 한 끝에 난 동쪽 티벳을 통해서 나오기로 했다. 이길은 여행책자로 유명한 론니 플래닛에는 '자학하는 자가 가는길'이라고 할 정도로 험한 길이고 한국의 인터넷에서는 도저히 자료를 찾을 수 없었다. 그정도로 험한 길이다.

 행운인지 내방의 중국인중에 3명이 여기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친절하게 나한테 자신들의 정보를 알려 주었다.

 보연이 형과 다시 만나서 보연이 형과 밥을 먹은 후 보연이 형이 성도에서 만났다는 2명의 유학생 방에 들어갔다. 그들은 반가워 하면서 아낌없이 과일과 과자를 대접했다.(사실 거의 뺏어 먹음^^)

 우리 4명은 야시장에 갔다. 야시장은 호텔에서 좀 떨어져 있어서 택시를 타고 가야한다. 우리는 샤브샤브를 먹으로 들어갔다. 샤브샤브는 야채, 고기등 각종 재료를 끓는 물에 넣어서 건져먹는 음식인데 북경 이후 처음 먹어본다.

 우리는 중국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중국에서 느끼고 있었던 일은 우리의 대화가 끊이지 않게 했다.

 결국 1시반까지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졌다.

 보연이형과 난 조장을 출발하는 새벽 3시까지 그냥 밤 새기로 했다.

 공짜로 들어온 세라 사원 입구에서.. 티벳에서 가장 큰 사원중에 하나이다.

 이게 바로 문제의 그 사진.. 주먹을 든 승려를 찍자마자 수십명이 날 쫏아 왔다. 뒤에 날 보는 군중들이 있을 것이다.

 산등성이에 걸쳐 있는 간덴 사원의 모습.. 정말 아름 다운 경치였다.

 

 찬수의 티벳 여행기 4(조장)

 8월 7일(수)

 이 글을 쓰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조장에 관한 인터넷의 대부분의 글들은 내용을 쓰기 보다는 그냥 직접 보고 느끼라는 말이 대부분이다.

 나 역시 고민을 많이 했다. 조장에 관한 과정과 느낌을 글로서 써야 하나..

 이 글을 읽는 이로 하여금 완전히 엽기적인 글로 느낌이 남지 않을까? 또한 나중에 조장을 관람할 이에게 신선함을 떨어트리지 않을까?

 하지만 난 조장에 관한 과정과 느낌을 쓰기로 결심을 했다. 만약에 이 글을 읽는 이중에 내가 걱정하는 바에 속하는 이들은 이 글을 안 읽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새벽 3시 밤을 샌채로 조장으로 떠나는 차를 기다렸다. 우리는 6명의 멤버로서 전부터 알게된 선생님 한분과 어제 오신 선생님 한분, 서울교대 01학번 여학생1명과 그리고 유학생 1명..보연이형과 나 이렇게 6명이다. 6명이서 700위엔에 조장을 보러 가기러 한 것이다.

 첫 출발은 좋지 않았다. 우리가 계약을 했던 차를 탈려는 순간 갑자기 우리는 6명이므로 다른차에 타라는 것이다. 7명이 있는 그룹과 한 차로 이중계약을 한것이다. 우리는 한사코 거절을 했다.

 때문에 나머지 한 그룹이 좁은 차를 타게 되었다. 알고보니 내방의 3명의 중국여자와 매일같이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조장에 관한 흥미를 느끼게된 스위스 남자인 브래트피트(다니엘)이다.

 정말 미얀하기는 했지만 잘못은 이중 계약을 한 브로커에게 있다.

 출발을 했다. 그런데 우리차에서 황당한 일이 생긴 것이다. 운전자가 길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조장을 못보는 것인가?

 내일(8일)부터 15일까지 이곳에서는 축제를 하기 때문에 그 기간에 조장은 없다고 한다. 결국 오늘이 마지막날인데 못보고 마는 것인가?

 운전자에게 도착하지 못하면 돈도 없다고 이야기 했다. 그는 그 말에 몸이 달은걸까? 엄청난 속도로 사람들에게 길을 물으면서 헤멨다.

 결국 1시간 포장도로 3시간정도 비포장 도로를 헤멘 끝에 조장이 시작되기전 거의 마지막으로 우리는 즈궁티 사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지금 생각해도 기적이다.)

 즈궁티 사원은 산위에 있는데 밑의 길을 따라 조장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들어갈 수 있었다.
조장은 8시 30분부터 시작을 했는데 입장료를 15위엔씩 받는 것이다. 죽은 사람에 대한 노자돈이라고 생각을 하고 지불하고 들어갔다.

 조장을 진행을 하는 라마들이 도착을 하고 조장이 시작 되었다. 조장이 시작된걸 어떻게 알았는지 하늘에서 멤돌던 독수리들이 한곳으로 몰렸다. 어마어마한 독수리의 숫자이다. 날개를 펴면 2미터가 넘는 독수리가 100 마리 정도 되는것 같았다. 독수리들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4명이 채칙을 치면서 통제를 했다.

 한사람의 라마가 큰 보자기에서 시체를 꺼냈다. 이곳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1주일을 방치한다고 한다. 시체에서 영혼이 빠져나가는 기간이 1주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피를 뺀듯 시체는 부피가 작아 보였다.

 일단 늙은 승려가 사람들이 서있는 자리를 통제를 한다. 난 자세하게 보기 위해서 될 수 있으면 가까이 있을려고 했다.

 심한 냄새가 났다. 아마 평생 잊혀지지 않으리라. 관람객들은 수건이나 마스크로 코를 막았지만 난 담담하게 서 있었다. 내가 여기 온 목적은 장례를 통해서 티벳 사람들의 전통과 사상을 이해하는 것이지 시체구경하러 온게 아니기 때문이다.

 조장이 시작되었다. 칼을 갈던 2명의 라마가 시체를 자르기 시작한다. 시체는 1주일이 되었지만 머리가 긴 노인이라는걸 알 수 있었다. 먼저 살이 많은 부분을 잘라서 독수리들이 먹기 좋은 곳에 놓아 두었다. 시체에서 피가 나오지 않는것도 놀라운 사실이지만 시체를 분해하는 라마들의 표정이 아무렇지도 않은것이 더욱 놀라웠다.

 시체를 분해하는 동안 독수리들은 채칙을 든 4명의 통제로 접근하지 못했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경악을 했다. 때로는 우는 사람도 보였다. 아마 충격이 심한 모양이다.
나 역시 인상을 찡그리면서 하나하나 살펴 보았다.

 시체를 적당히 분배를 하고 승려들이 비키는 순간 100여 마리의 독수리가 일제히 달려들더니 시체를 덮치는 것이다. 한순간에 원으로 된 제단은 독수리들로 가득찼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독수리중에는 머리에 피로 물든 독수리도 있었다. 아마 시체의 깊은 곳까지 먹었으리라...
부패한 시체 냄새와 독수리 냄새가 코를 찔렀다. 100여명의 관람객중에서 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스위스인 다니엘이 나한테 왔다. 난 다니엘에게 어설픈 영어로 설명 해주었다. '티벳인들은 몸을 가방 처럼 여기기 때문에 죽으면 쓸모가 없어지고 신성하게 여기는 독수리에게 주는거야'라고 설명을 했다. 조장을 관람하기 전에 미리 공부해서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수리들은 서로 먹고 빼앗기면서 시체를 먹었다. 시체는 독수리에게 둘러쌓여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내 앞으로 목뼈를 포함한 해골이 데굴데굴 굴러온다. 5마리의 독수리가 서로 빼앗으며 먹을려고 내 앞으로 온다. 해골의 겉은 거의 독수리에게 파먹혔으면 귀 하나만 달려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멀리 피했다.

 승려 한명이 해골을 들더니 독수리들이 먹기 좋게 귀를 자른 다음 다시 해골을 독수리들 가운데로 던진다.

 10분정도 지나자 다시 채칙을 든 4명이 독수리를 쫏아낸다. 독수리들은 훈련이 된듯 처음 있던 자리에 다시 모인다.

 시체는 여기저기 뼈만 남고 흩어졌다. 승려들은 뼈를 모아서 돌망치고 으깨기 시작한다. 뼈는 분홍색에 가까웠다. 뼈를 으깨는 곳이 공교롭게도 나한테서 2미터 떨어진 지점이다. 뼈위에 밀가루 비슷한 가루를 뿌리고 뼈를 으깬다. 뼈가 이리저리 튀었다. 내 옷에 붉은 피와 뼈조각이 튀었다. 옆의 보연이 형은 얼굴에 묻었다.

 사람들은 피했지만 난 자세히 보았다. 완전히 라마와 사람들 가운데 지점에 내가 있는 기분이었다.

 라마들은 관람객들이 놀라서 뒤로 물러나는게 재미있는 모양이다. 서로 웃으면서 계속 뼈를 으깬다.

 아무런 의식이 없어서 이상하게 여기던 난 여기서 1박을 한 한국사람을 통해서 어제 이곳에서 의식을 치루었다고 한다. 의식을 치루고 영혼이 빠져나간 이상 이제 시체는 그냥 고기일 뿐이다. 지금 라마는 고기를 다져서 인심좋게 독수리에게 주는 것이지 사람을 분해하는게 아니었다. 이곳 사람들은 죽으면 육신은 완전히 고기가 되는 것이다.

 한가지 사실은 조장은 티벳에서도 잘 사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사람이 죽으면 무덤을 호화롭게 해서 죽으면서까지 욕심을 부리지만 이곳 사람들은 모두 다 자연에게 주는 것이다.

 사람은 자연으로 부터 언제나 신세를 진다. 먹을것을 제공을 받고 살아가는 환경을 제공받고... 동물을 잡아먹으면서 사는 이곳 사람들은 죽으면 남게 되는 가방(시체)을 다시 자연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베푸는 것이다. 난 '자연에게 신세진 몸을 다시 자연에게 베푼다..'라고 중얼거렸다.

 뼈를 부수는 동안 늙은라마가 해골의 눈높이 부분을 기준으로 톱으로 가르기 시작한다. 난 그쪽으로 가보았다.

 해골이 열리는 순간 뇌가 쏟아진다. 이때 맡은 냄새는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고약한 냄새이다.

 뇌가 쏟아지고 해골의 머리부분을 가른 순간 승려가 사람들을 모은다. 바로 해골의 뒤통수에 작은 구멍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 구멍이 있는 사람은 머리에 숨을 쉬는 과정의 경지에 까지 오른 고승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해골이라는 사실을 잊은채 신기해 했다.

 한 장족이 오더니 뒷통수를 팔라고 한다. 라마는 장난으로 1000천 위안을 부른다. 사실 이 뒷통수는 절에서 영원히 보관 할 거라고 한다.

 불굴의 경지에 오른 고승의 죽음과 자연에 대한 베품..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이 시체를 소유했던 영혼에 대한 존경심이 우러난다.

 뼈를 독수리들이 먹기 좋게 으깨는 동안 독수리들은 참지 못하겠다는듯 일제히 뇌로 달려든다. 독수리들에게는 뇌가 가장 별미인듯한 느낌이다.

 뼈를 독수리들이 모두 먹어치우고 해골 뒷통수 부분은 사원에 보관하기 위해 술로 싯는다.

 조장은 서양인들은 절대 보지 않는다. 서양인들 사이에서는 조장은 단지 시체구경일 뿐이다. 유일한 서양인 관람객인 스위스인 다니엘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다니엘에게 내가 느낀것을 설명해 주었다.

 사람들의 느낌은 다들 다르다 느낀것이 단지 '독수리는 뼈를 부서줘야 잘 먹는다'가 있는 방면 티벳인들의 전통을 느끼는 사람.. 천차만별이다.

 난 장족들이 항상 자연에게 받았던 은혜를 죽으면 육신으로 보답하는것을 느꼈고, 조장을 진행하는 승려를 보면서 사람이 죽으면 육신은 그저 하나의 가방과 같다고 생각을 했다.

 어떻게 보면 인생의 무상함을 느낀채 다시 5시간을 걸쳐서 라싸로 돌아왔다..

 이 글을 읽는 이에게 한번쯤은 조장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조장이 관광객들에게 개방된지 이제 3년... 이제 티벳이 개발되고 혹시 서방 언론에 공개된다면 다시 비공개가 되거나 없어질지도 모르는 전통이 되기 때문에 혹시 티벳에 여행하는 분은 꼭 보길 바란다.

 -8월 7일 저녁일은 다음편에 계속-

    조장은 촬영이 엄격히 금지 되어 있기에 아무런 촬영도 하지 않았음..

 

 찬수의 티벳 여행기 5(새로운 여행의 시작)

8월 7일(수)

 조장에서 돌아오니 오후 2시였다.

 새벽 3시부터 조장을 갔다온 멤버들은 모두 잠이 들었다.

 그렇지만 난 벅찬 감동을 받아서 그런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일단 9일에 라싸를 떠나기로 결정을 했다. 제일 편하게 나가는 길은 꺼얼무로 통하는 길로 나가는 거지만 다시 온 길을 가기는 싫었다.

 대신 라싸에서 쿤밍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길은 인터넷 상으로는 도저히 정보를 찾을 길이 없었다. 대신 여기에 있는 중국인들에게 정보를 얻을수 있었다.

 우리나라 여행자는 거의 가지 않는 길이고, 론리 플래닛에는 '자학하는 사람들이 가는 길'이라고 표시될 만큼 험한 길이다.
그럴수록 나의 도전욕을 돋구는건 왜 그러는 것일까?

 나의 여행의 마지막을 east 티벳으로 장식하기로 결정했다.

 백화점에 가서 대충 여행에 필요한 물건을 사고 만일에 대비해서 은행에 가서 충분히 환전을 했다.

 저녁을 라싸에서 많이 파는 꼬치로 떼울려고 사왔는데 호텔에서 삼성맨 종호형을 다시 만났다.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하길래 내 방의 중국애들한테 너희들이 생각나서 사왔다고 하면서 꼬치를 주었다. 종호형은 그동안 에베레스트를 갔다 왓는데 많이 고생을 했던 모양이다.

 몇몇 한국인이 모여서 고급 레스토랑을 갔다. 난 여기서 많은 사람들을 소개 받고 이탈리아 스테이크(30위엔 상당)을 먹었다. 물론 난 공짜..

 저녁을 마치고 돌아오자 내방의 중국여자애들을 비롯한 모든 멤버들이 날 기달렸다면서 박수를 친다.
아까 꼬치를 줬던 것에 감격한 모양이다. 그러면서 내일 8시에 자신들이 맥주를 산다고 한다. 이건 공짜복이 완전히 터진 것이다.

 다시 보연이 형을 만나서 한국애들 4명이랑 같이 야크호텔 옥상에서 술을 마셨다. 야크호텔에서 바라본 포탈라 궁과 별들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8월 8일(목)

 어제 밤을 새고 오늘 4시간 밖에 자지 않은 상태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축제가 있는 날이라 모두들 드레풍 사원으로 가는 모양이다.
나도 가기는 했지만 너무 피곤한 나머지 돌아왔다.

 다시 잠이 들고 오후 2시에 일어날수 있었다. 밀린빨래를 하고 내일 출발할 루트를 점검하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데 모든 하루를 다 쓴거 같다.

 저녁때 보연이형과 한국 여자애들이 사주는 한국저녁을 먹었고, 8시에는 중국여자애들과 다니엘과 함께 같이 맥주를 마셨다.

 중국 여자애들은 나한테 관심이 많다. 애인이 있냐고 물업보고, 왜 없냐고 물어본다. 그리고 이상형이 머냐고 물어본다.
마치 연예인이 된 기분이다. 그러면서 영화에도 출연해 보라고 한다.(완전히 왕자 만들기)

 5명이서 티벳에 대해 이야기를 햇다. 중국여자 3명은 달라이라마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거라고 하고 다니엘은 곧 티벳이 독립할거라고 한다. 난 중국 정부가 약해지면 아마 독립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여자애들은 내가 마음에 든 모양이다. 어디가 마음에 드냐고 하니까 '잘생기고, 활동적이고 친절하다고 하다'라고 말을 한다.

 아마 어떤 것을 결정을 하면 망설이지 않고 실천에 옮기는 모습이 새로와 보였나 보다.

 이제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된다.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여행자들은 거의 가보지 못했던 미지의 지역.. 샹그렐라...
아마 많은 정보를 가지고 다시 이곳 인터넷에 글을 올릴것이다. 비록 중국어를 못하고 정보가 없지만 이제 그런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 떠나자~ 미지의 세계로....

야크호텔에서 같은 방에 묶었던 중국인 여행자들과 함께

 내가 안재욱이라고 불러주었던 첸셍.. 북경에서 대학을 다니고 나에게 유용한 정보를 많이 주었다.

 스위스인 다니엘과 함께.. 믿어지지 않겠지만 나이가 23살밖에 안된다고 한다. 그는 같이 조장을 보면서 우정이 늘었다.

 

 

 처음 꺼얼무에서 출발을 하면 황량한 민둥산들만 보일 것이다.

  

 고원지대인 만큼 기상의 변화는 심한 편이다. 사진은 갑작 스럽게 먹구름이 형성되는 장면

 꺼얼무에서 출발하여 티벳에 들어오자 많은 양들이 방목되고 있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티벳의 모습.. 차안에서 지켜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포탈라 궁 위쪽에 올라가다 보면 보이는 궁전..

 포탈라궁 올라가는 길.. 고산병에 시달리고 있었던 나로서는 이런 오르막은 그냐말로 고역이었다.

 남쵸쵸가 멀리 보이는 산 정상에서.. 남쵸쵸는 중국에서 2번째로 넓은 호수이다.

 남쵸쵸의 물은 정말이지 깨끗했다. 수심 10미터 바닥도 보일 정도 였다.

 남쵸쵸호를 보러 온 관광객들.. 비싼 랜드크르져를 타고 와야 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찾는 호수임

 산과 구름, 호수가 바로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남쵸쵸호에서 만난 티벳 할머니.. 그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할머니 이다.

 남쵸쵸에서 라싸로 돌아가느 길에 찰칵.. 저 멀리 설산이 보인다.

 공짜로 들어온 세라사원에 불당 앞에서..

 1960년대 문화혁명의 여파로 파괴된 드레풍 사원의 일부.. 복구되지 않은채 방치되어 있다.

 드레풍사원에서 토론을 하고 있는 라마들..

 드레풍 사원에서 바라본 라사 시내의 모습

 조캉사원에서 절을 하는 티벳인들 (곧 사건을 저지른다)

 생각보다 활기찬 라사시내의 모습

 앞에 보이는 건물은 라사에서 유일한 백화점이다.

 티벳민족의 정신적인 보고 포탈라궁.. 지금은 중국에 의해서 강점 되있는 모습이 황량해 보인다.

 간덴사원에서 찍은 모습.. 정말이지 그림을 보는 경치이다.

 간덴사원에서 지켜본 밑의 티벳 마을.. 여러곳을 중심으로 모여있는 점촌형태 임을 알 수 있다.

간덴사원 정상에서 찍은 사진

 나무가 거의 없는 산이라서 바로 옆 산의 계곡이 한눈에 다 보인다.

 간덴사원 뒷편의 모습.. 흐르는 강이 정말 아름답다.

 고생끝에 올라간 산 정상에서 찍은 간덴 사원의 모습.. 아름답다

 나와 함께 방을 썼던 중국인 여행자들.. 이들과 많은 정이 들었다.